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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미술/미술의 종류/디 자 인/현대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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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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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 design

현대 디자인에 관해 논하려면 먼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두에 걸쳐 펼쳐진 몇 가지 주요한 디자인 운동의 변천을 더듬어 보지 않을 수 없다. 디자인계(界)에서 18세기를 하나의 혁명기로 본다면 19세기는 오랜 봉건제도의 붕괴와 급격한 기계문명의 진출로서 혼돈되었던 문자 그대로의 유동기라고 볼 수 있다.

18세기에서 19세기를 거치는 동안 영국에서 일어났던 소위 산업혁명의 영향은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 즉 백만인의 소비와 기호를 위한 대량생산을 산출케 했다. 이런 결과는 대량생산에서 오는 염가구입과 대중 기호의 보편화 내지 획일적인 생산 가능 등의 좋은 점도 있겠지만, 너무나 단조롭고 차가운 제작공정에서 인간본능의 따뜻한 감정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결함도 많았다. 그리하여 모든 공예가들은 반항적인 태도를 표명했고 그 대표되는 것이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es, 1834-1896)에 의해 주창되었던 공예운동(Arts & Crafts movement)이었다.

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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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Morries

그는 근로의 즐거움과 따뜻한 손길이 간 공예미를 존중, 근대적인 기계생산을 좋지 않게 생각하면서 오히려 중세적인 생산조직을 재현하여 사회개량에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그는 제조의 기계화, 대중생산화에 의한 아름답지 못한 상품배출은 예술활동과 노동이 일치하지 못한 것이라 지적하고 수공업적 생산방식을 일으켜 보려고 노력했다. 더구나 특권계급을 위한 미술공예를 서민층을 위해서 혁신적인 방향전환을 모색했고, 이러한 그의 주장은 유럽대륙을 휩쓸어 프랑스에서 아르누보(Art nouveau), 오스트리아에서는 세세숀(Secession) 운동이 벌어졌다.

아르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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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Nouvea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이 운동은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을 가지고 우아한 곡선을 특색으로 하여 벨기에를 중심으로 주로 건축공예에 나타났던 양식이다. 벨기에인 올타(Horta Victor 1861-1947)나 야반데 벨데(Van de Velde H.1863-1957) 등은 종래의 장식주의적인 형식을 거부하고 곡선을 주로 한 자유로운 디자인으로 가구나 건축을 만들어냈다.

1896년 한 미술상(商)이 벨데를 파리에 초청하여 몇 상점을 장식하게 하고 '아르 누보'라 이름지은 것이 그대로 양식명이 되어 이 곡선의 장식양식이 전 파리에 유행되었다. 그 명작으로 하겐의 호르크방크 박물관(1901)이 있고, 기마르(H. Guimard

1867-1942)의 파리 지하철역 입구 장식이 있다.

세세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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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ession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대두되었던 운동이다. 이 운동은 직선적인 디자인을 특색으로 하고 과거의 모든 예술양식에서 분리하여 새로운 시대의 획기적인 공간조형을 지향한 디자인 운동이다. 로마의 고사(故事 Secessio plebis)에서 유래한 말로서 특권계급에 대한 서민계급의 분리운동이 그 시발점이 된 것 같다.

빈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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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工房 Winer Werkstatt

1897년 올브리히(Olbrich J.M. 1867-1908)와 호프만(Hoffmann J. 1870-1956) 그리고 화가, 조각가를 합친 19인의 젊은 예술가들이 빈의 건축가 바그너(Wagner Otto 1841-1918)의 탁월한 건축이론을 찬양하며 빈에서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시작한 운동을 말한다.

1903년 요셉 호프만에 의해서 일어난 운동이다. 이 빈 공방의 주장은 과거의 장식주의적이면서 감각적인 공예에서 분리하여 재료가 가지는 특성을 살리면서, 구조의 단순화, 합목적성의 강조를 주창, 독자적인 형식과 명쾌한 색채를 나타내는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호프만의 디자인 특색은 평평한 평면에 검정 직선을 가장자리에 잘 두루고 백색 화장칠의 입방체를 곧잘 썼다. 그리고 조각가 데 스틸(De Still), 화가 몬드리안(Piet Mondrian) 등이 같이 합세하여 면의 기하학적인 분할미를 나타냈고 추상형태의 단순화 운동의 선구가 된 셈이다. 이와 시기를 같이하여 유럽에서는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그의 심미적인 건축디자인을 연구했고 후에 스틸 그룹들에 의하여 그의 구조와 형태의 추상원리를 결정짓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은 기능의 결핍이 많아 공업화에 실패를 보았고 제1차대전 후 1930년 폐쇄되었다.

바우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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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uhaus

1907년에 빈 공방보다 뒤늦게 건축가 피터 베렌스(Peter Behrens, 1868-1940)에 의해 독일의 공작연맹(Der Deutsche Werkbund)이 결성되었는 데 이것이 바우하우스의 출현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1919년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정부 집정시 건축가였던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1883-1969)는 정부원조하에 건축공예, 회화, 조각 등의 종합예술을 조형적으로 지향하는 조형학교를 바이마르에 창립하였다. 이것이 바우하우스며, 여기에서 자신이 교장이 되어 독일 공작연맹의 이념을 계승하였다. 그는 기초교육, 공장교육, 건축교육 3부문으로 교육과정을 나누었으며 칸딘스키·클레 등의 교수진을 두어 건축, 공예, 회화를 통하여 새로운 디자인과 아이디어를 가르치게 하여 우수한 디자이너를 양성했다.

바우하우스의 이상은 공업품의 제작에는 일체의 표면장식을 없애고, 필요없는 선이나 문양이나 색채 등을 없애고 기능을 존중하는 합리적인 형태를 구상했다. 그리고 최소의 재료를 쓰고 최대의 기능 효과를 발휘하도록 하는데 힘썼다. 따라서 기계를 조형을 위해 불가결의 새로운 수단으로 생각하고 기계와 조형과의 융합을 적극적으로 탐구했다.

그리고 제1차대전의 패배에서 결사적인 복구의 노력은 상품의 판로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신념이 철저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품질의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양질제작(良質製作)에 전력을 다했다. 이것은 다소 모리스 운동과 비슷한 경향이었지만 틀린 점은 기계 생산을 긍정하고 대량생산을 하되 탁월한 디자이너와 유능한 기술자를 존중하고 이들을 이해하는 기업가가 되어야 양품생산(良品生産)이 나올 수 있다고 주창했다.

그러나 바우하우스는 보수파 정부의 압박을 받아 1924년 폐쇄되었다가 1932년 나치 정권시 드디어 해산케 되었다. 해산 후 1937년 그로피우스는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의 건축교수가 되었고 모홀리 나기는 1938년 시카고에서 뉴바우하우스라고 디자인 연구소를 창립하여 현대 디자이너 양성에 공헌이 컸다. 이 학교가 현재 일리노이공대 디자인 학부(Illenois Institute of Technology)이다. 여기에서 미국 현대 디자인이 발족했고 따라서 그 발전에 박차를 가한 셈이다.

현대 디자인의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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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傾向

디자인에 대한 기본 이념이 서구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많이 변화되었다. 나아가 제2차대전 후 파괴에서 건설과 부흥의 불가분의 상황에 따라 모든 디자인이 장식이라고만 생각하던 사고방식을 버리고 실용성과 미를 총합한 생활의장의 중요성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자유 평등을 기조로 한 기성도덕이나 권익에 반항하고 20세기 새로운 과학생활의 합리성을 중시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또다시 창안되는 새로운 형태, 새로운 재질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 위주의 능률적이고, 공학적인 기준을 연구하고 생활의 합리화, 기능의 효율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국면의 기계문명을 구가하는 사상상, 예술상의 현대주의를 낳게 하였다. 이 모더니즘은 극히 창조적인 것, 예술상의 가장 전위가 도는 아방가르드(Avant Garde)의 요소를 중대시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흐름의 최신 유행을 모색한다. 이것이 오늘날 인간생활에서 근대과학과 예술의 융화를 겨누는 새로운 운동의 전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로 인해 현대의장의 목표가 되는 것은

1. 기능과 형태의 융합미를 찾고

2. 새롭고 독창적인 것

3. 정확한 인간공학적인 능률을 고려한 것

4. 과학기술에 입각한 것

5. 재료의 특성을 유효하게 살린 것

6. 근대적인 감각을 가진 것

등등을 들 수 있다.

수공예품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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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工藝品-

전기화, 기계화가 가정생활 구석구석에 미치게 된 현대생활은 자칫하면 너무나 정교한 기계로 무미건조하고 비인간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우려가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장은 인간의 따뜻한 손길이 닿은 수공예품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즉 고도의 기계문명에 의한 대량생산이 인간적인 즐거움을 잃고 냉랭한 도구로 받게 되는 억압에서 또다시 해방되려고 한다. 이러한 수공예품이 때로는 생활의 휴식을 갖게 하고 실내의 액세서리로서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에 북유럽에서는 Swedish Modern, Danish Modern 따위 이름으로 미국시장에서 격을 올리고 있다.

건축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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建築-

건축은 대담한 직선미를 가지고 개방적인 형태로 변모해 간다. 채광을 자유로이 받을 수 있는 넓은 창과 가벼운 자재의 명랑성, 단조로운 벽면의 구조체 등은 중후하고 협소했던 재래의 이미지를 완전히 소멸케 하고 있다. 자료를 보면 목질에서 점차로 철과 콘크리트로 바뀌었고, 외부 벽면은 거의 전면 유리나 스테인레스 기타 강철과 경합금(輕合金)을 많이 쓰고 있다. 미장재료(美粧材料)로서도 플라스틱, 알루미늄같이 가볍고 엷은 재료를 선택하는 경향이 보인다.

오늘날의 건축가들은 개인 건물 디자인보다 집단 빌딩 디자인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도시계획도 물론이지만 도시 안에 세워질 빌딩 집단 계획에 치중하고 새로운 시대의 총합적인 디자인에 관해 많은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좁은 공간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독일의 본 크헤(Whon Kche), 미국에서 리빙 키친(Living Kitchen)이 발표된 것이 그 예이다.

가구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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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具-

실내 역시 좁은 공간을 넓게 보이기 위해 많은 색채가 연구되고 새로운 가구 디자인이 채택된다. 단조로운 디자인의 가구들은 공간을 시원하게 보이게 하고 이 가구들은 하나하나가 놓이는 자리에서 다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야 한다. 현대 가구들은 실용성도 중요하지만 경쾌하고 명랑한 실내의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자료의 선택이 다양하게 되었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목재는 물론이지만 스틸과 합성수지판이 실내장식 재료로서 많이 채택되고 최근에는 신축성 있고 유통이 좋은 스트레치 섬유직물이 가구에 많이 쓰이고 있다.

또한 미국의 허만 밀러 회사(Herman Miller, Inc.)의 디자이너 찰스 엠(Charls Eams)에 의해 제작된 섬유를 보강재로 한 폴리에스테르 수지(樹脂)로 만든 의자는 근자의 획기적인 디자인이라 하겠다. 이어서 폴리에틸렌 등의 합성수지 재료로 다양한 디자인의 가구를 양산하게 되었고 또 멜라민 화장판의 탁자, 책상, 벽면 재료 등으로 디자인을 다채롭게 하여 주택과 실내를 더욱 산뜻하고 밝게 꾸미고 있다.

1960년 미국 놀 회사(Knoll Association, Inc.)의 디자이너 사리넨(Fero Sarinen)에 의해 디자인된 플라스틱 의자와 로에(Van Der Rohe)의 스틸 튜브 의자, 가죽과 스틸바로 만든 바르셀로나(Barcelona) 의자는 대단히 유명하다. 그리고 단조로운 실내의 디자인을 보충하기 위해 다채로운 아크릴 수지의 투명효과를 이용한 조명기구가 공예품 시장에 많이 나오고 있다.

순수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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純粹-

순수미술 즉 회화나 조각 등도 입체주의를 경과한 조형감각의 표현으로 변하고 추상회화, 비구상 조각, 초현실주의 조형예술이 아방가르드(avant garde)의 현대미술로서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현대미술은 자연의 단순한 재현에서 분리되어 실재를 추상화하고 전통 타파, 형식 붕괴의 조형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범주 안에 입체파, 표현파, 신조형파, 구성파, 다다이즘, 미래파, 초현실파, 추상파 등의 여러 파들이 속하고 있다.

<裵 滿 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