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미술/한국미술의 흐름/고구려의 미술/고구려의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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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고분기[편집]

壁畵古墳期

고구려의 벽화고분은 분묘구조와 병행하여 대략 3기로 바뀌는데 그 기법이나 양식·화제(畵題)는 중국 고분 화상석(畵像石) 및 벽화와 관련된다. 제1기를 대표하는 벽화고분으로는, 용강 매산리(梅山里)의 사신총(四神塚), 만주 통구(通溝)의 삼실총(三室塚) 등이다. 그리고 해방 후에 발굴된 황해도 안악(安岳)의 동수묘(冬壽墓)에서도 가장 오래된 분묘벽화가 보인다. 초기 회화는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 혹은 들어온 후의 고구려인(人)의 신앙과 직결되며 동시에 그들의 일상생활과 장식욕구와도 관련된다. 그러므로 화제도 방위신(方位神)이나 천신지기(天神地祇)에 대한 신앙의 표현, 생활상, 각종 문양표현에 한한다. 초기 벽화의 특색은 대단히 소박하고 고졸(古拙)하며 한 대(漢代)의 정형화(定型化)된 양식을 따른다. 이 시기의 벽화는 벽면이나 석층면의 공간감각이 애매해서 2기 이후에 보이는 바와 같은 공간의 전면적인 장식화, 또는 전체 공간을 하나의 하늘로 가정하고 채색하는 천색(天色)의 의도도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제2기의 벽화는 주로 풍속도(風俗圖)를 많이 다루고 있어서 이른바 '풍속화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분묘 속에 있는 주인 부부를 그리는데 있어 1기에서처럼 주실의 정벽(正壁) 즉 북쪽 벽에 배치하는 것은 같으나 네 귀퉁이에 목주(木柱)를 그려서 주실 자체를 신전화(神殿化)하고 있는 점, 또 주인 부부도 종래의 신주(神主) 같은 초상화에서 벗어나 어떤 사건속의 인물로 등장시키는 점 등이 특이하다. 풍속도는 주인의 생전의 경력과 관련된 장면이며, 주벽을 제외한 나머지 세 벽은 풍속도로 채워진다.

제3기에는 2기에 성행하던 풍속도가 자취를 감추며 그 대신 사신도(四神圖)가 주벽을 차지하게 된다. 이 사신도는 1기에는 별로 크게 취급되지 않았고, 2기에는 천장부로 올라갔다가 다시 주벽에 등장하는 것인데, 1기·2기에서처럼 불교사상을 배경으로 한 벽화가 아니라 중국 고유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벽화임이 실증된다. 이 3기를 통한 고구려 고분벽화의 전반적인 특색을 보면, 상념적이며 도안적이라는 점, 회화의 초보 단계인 도식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 등이 단점으로 지적되고, 장점으로는 고유의 추상화(抽象化)를 실현했다는 점, 그리고 힘찬 기상과 웅혼(雄渾)한 표현이라는 점 등으로 요약된다.

매산리 사신총 주벽 벽화[편집]

梅山里 四神塚主壁壁畵

평안남도 용강(龍岡) 매산리 소재. 고구려 고분벽화기 제1기에 속하는 벽화이다. 긴 막을 드리운 건물 정면을 나타내고 그 속에 주인과 처첩(妻妾) 등 네 사람이 가슴에 손을 모으고 정좌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또 인물의 어깨에는 날개 같은 것이 달려 있어 중국의 4세기경 불상을 연상시키나 건물 옆에 그려진 말 또는 사신도의 고졸한 기법으로 보아 이 벽화가 그려진 연대는 5세기 이후로 생각된다. 그 인물의 표현은 고구려 벽화 특색의 하나인 정면관(正面觀)을 지키며, 평상(平牀) 앞에 놓인 신은 깊이를 나타내기 어려운 데서 오는 측면관(側面觀)임이 주목된다.

무용총 주벽 벽화 접객도[편집]

舞踊塚主壁壁畵 接客圖

만주 집안현 통구에 있는 무용총에는 당시 고구려인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표시한 매우 윤곽이 뚜렷한 벽화가 있는데 이는 주인의 생전 기록이다. 입구에서 마주보이는 현실 주벽에는 무덤의 주인이라 믿어지는 인물이 장막을 걷어 올린 방에서 삭발한 승려(僧侶) 두 사람과 대좌하고 있고 그보다 훨씬 비율이 작게 그려진 시동(侍童)이 한쪽 발을 구부리고 시종하는 정경이 그려져 있다. 매우 활달한 필치의 사실적인 그림이나, 식탁과 그 위에 놓여진 음식물들이 수평위(水平位)로 그려졌고, 또 서로 앞뒤로 겹치지 않은 채 전체 공간에 산개(散開)해 있어 화면의 깊이가 없는 것이 흠이다. 그리고 창방(昌枋) 위 네 곳에 그려진 우산 모양의 초화문(草花紋)은 육조시대(六朝時代) 불상의 광배(光背)를 무늬화한 것이며, 천장의 연화문(蓮花紋)과 함께 짙은 불교의 색채를 띠고 이 현실의 분위기를 몹시 비현실적인 어두운 것으로 만든다. 고분벽화기 제2기의 회화.

무용총 수렵도[편집]

舞踊塚狩獵圖

무용총의 현실 서쪽 벽에 있는 벽화. 무용총에 있는 벽화 가운데서 가장 회화적인 효과가 뚜렷한 장면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고구려 무사들의 사냥 광경을 아무 기교없이 표현했다. 도안화한 산맥(山脈)으로 윗부분의 사슴 사냥 장면과 아래 부분의 호랑이 사냥 장면과를 분리시키는 계선(界線)의 효과를 냈고, 그 아래에 계속하여 우측으로 사 슴 사냥의 그림이 연하여 있다. 제일 윗부분의 달아나는 두 마리 사슴을 반대 방향으로 달리며 돌아서서 활을 쏘는 모습 등은 화면의 단조로움을 깨며 말과 함께 달리는 두 마리 개의 순간적인 동작이나 전체 동물의 움직임도 잘 파악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움직임에 그쳤고, 수렵의 절박한 공기가 느껴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산개한 마상(馬上) 인물의 상위(上位)에 하늘을 표시하는 새 모양의 무늬가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 유목민의 취향을 보이는 약동적인 벽화이면서 환상적인 면이 많이 강조된다. 제2기의 고분벽화.

무용총 우차도[편집]

舞踊塚 牛車圖

수렵도와 함께 현실 서쪽 벽에 있는 벽화의 일부이나 수렵도와는 아무런 연관을 맺지 않는 독자적인 그림이다. 수렵도와 우차도 사이에는 한 대(漢代)의 화상석(畵像石)에서 볼 수 있는 연리수(連理樹)라는 환상적인 형태의 나무 모양이 그려져 있어 양쪽면을 절단하는 효과를 갖는데 화면의 여백을 메우기 위해 넣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래 위에 각 한 대씩의 포장마차가 그려져 있으며, 수레의 앞면은 붉은 색으로 윤곽을 둘렀고, 온아한 풍모의 빨간 옷을 입은 마부가 소 옆에 채찍을 들고 서 있다. 수렵도의 동적인 화면과 대조적으로 정적이며 평온하고 한가한 공기가 감도는 그림이다. 서 있는 소의 사지(四肢)는 복잡을 피해 단순화했는데 전체적으로 간결한 표현을 보인다. 서로 연관지을 수 없는, 주제를 달리한 두 개의 그림을 같은 벽면에 그리는 것은 고구려 벽화미술의 하나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무용총 무용도[편집]

舞踊塚 舞踊圖

무용총 현실의 동측 벽에 있는 벽화. 남녀 14명의 춤추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 데서 무용총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춤추는 인물의 동작이 매우 부자연스럽고 일반적인 고구려의 벽화와 마찬가지로 평면적인 표현이다. 당시의 복식(服飾)을 고증할 수 있는 풍속화이다.

각저총 각력도[편집]

角底塚 角力圖

만주 집안현 통구 소재. 제2기분에 속하는 각저총은 무용총과 거의 쌍묘라고 할 만큼 가까운 위치에 있고 외형이나 구조뿐만 아니라 벽화의 성격도 닮아서 두 묘의 벽화는 같은 사람의 솜씨로 추측된다. 남쪽 벽에 그려진 각력도(씨름하는 장면의 묘사) 때문에 각저층으로 명명되었다. 대체로 예술적인 품격을 가진 그림은 못되지만 당시의 풍속화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가치가 있다. 우차도에서 볼 수 있는 연리수와 같은 모양의 거수(巨樹)를 중심으로 화면이 전개된다. 이 기이한 나무 아래서 웃통을 벗은 반나(半裸)의 역사(力士)가 팔과 머리를 엇질러 서로 붙들고 씨름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 옆에는 승부를 가리기 위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서 있는 백발 노인이 보이는데 등은 꾸부정하고 배는 둥그렇게 휜 자세이다. 씨름하는 두 사람의 모양이 과장 없고 매우 온건한 표현이라 하겠는데 이와 비슷한 성격의 그림은 쌍영총이나 무용총, 통구의 사신총에서도 보인다.

각저총 주벽 벽화[편집]

角底塚主壁壁畵

어떤 사건과 관련된 주인 부부가 그려져 있는데 머리에 수건을 쓴 부인의 고개숙인 모습이 작별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인물 모두가 사면위(斜面位)로 표현되고 얼굴에 표정을 집어 넣었다. 배경의 표현이나 필치 모두 무용총의 벽화와 동일한 기법을 쓰고 있다.

쌍영총 연도동벽화 거마행렬도[편집]

쌍영총은 평양의 남쪽 용강(龍岡) 안성동(安城洞)에 위치하는데, 이곳 현실 앞에 있는 연도의 동쪽 벽에 그려진 벽화이다. 고구려의 고분벽화 중 가장 뛰어난 회화이며, 무용총의 수렵도가 유목민의 발랄한 원시감각을 살린데 비해 이 벽화는 전아한 환상과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특색이다. 화면의 아래 부분에 세 사람의 고구려 부인이 정면으로 나란히 서 있다. 여인들의 머리 위쪽으로는 장수나 말 모두 갑옷에 싸인 특이한 기상 인물(騎上人物)을 설정하고 있는데 세 여인의 정숙한 아름다움과 대조적이다. 최상단(最上端)에는 미풍에 흔딜리는 방울을 달고, 차일을 엎은 우차(牛車)를 시동이 몰고 가는 극히 한가로운 정경이 전개된다. 일반적인 고구려 회화가 모두 그렇듯이 원근투시법의 표현이 미약하여 평면적으로 처리되었고, 전체적인 종합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개별적이며, 상념적이고 도안적인그림이다. 제2기의 고분 벽화.

쌍영총 공양도[편집]

雙楹塚 供養圖

무용총의 접객도와 함께 불교적인 색채가 짙은 회화이다. 향로를 머리에 인 시녀와 이 시녀를 거느린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법승과 네댓 명 시동의 행렬을 그린 것인데, 주인과 시인(侍人)과의 주종관계를 강조하기 위하여 인물을 극대·극소의 비차(比差)를 둔 점은 고구려 풍속회화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특색을 반영한 것이다. 주요 인물들은 엄숙한 면모와 겸허한 걸음걸이를 보이고 있고, 시동들은 좌우로 고개를 돌리고 곁눈질하는 폼이 그들 사이에 대화가 있는 듯하다. 대단히 온건하고 침착한 정서가 보이는 회화이다.

사신도[편집]

四神圖

고구려 고분 예술의 중요한 테마로 사신(四神)이 등장한다. 이것은 비불교적(非佛敎的)인 요소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테마이다. 4신은 네 방위신(方位神), 즉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전주작(前朱雀), 후현무(後玄武)를 뜻하는 것인데, 그 기원은 중국의 오행사상(五行的 天文說)에서 비롯된다.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에 '東宮蒼龍 南宮朱鳥 西宮咸池 北宮玄武'라 하여 그 방향을 지시했고, 이아(爾雅)에는 '靑爲 蒼天夏爲朱明 秋爲白藏 冬爲玄英'이라 해서 그 색(色)을 규정했다.으나 <예기(禮記)> <월령(月令)>에는 '孟春之月…其蟲鱗 孟夏之月…其蟲羽 孟秋之月…其蟲毛 孟冬之月…其蟲介'라 하여 그 형태를 규정했다. 청룡은 용의 형상을 이르며, 백호는 호랑이, 주작은 꼬리가 짧은 새 즉 봉황(鳳凰)이며, 현무는 거북을 뱀이 묶은 형상이다. 이러한 형상들은 외양은 현실의 동물에서 따왔지만 어디까지나 비현실적인 동물이며 중국인들의 형이상학적인 공상의 산물이다. 무덤의 사방을 수호하는 영물(靈物)로서 4신도를 분묘에 장식하게 된 것은 도교(道敎)의 유입과 그 보급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며, 고구려 벽화고분기 제3기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쌍영총의 창룡도(蒼龍圖)나 우현리 대묘의 사신도가 가장 우수한 사신도로 알려지고 있다.

천상도[편집]

天象圖

천공(天空)을 신앙(信仰)의 대상으로 삼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중국에서 유래되었다. 무덤의 천장을 하늘로 가정하고 천장이나 천장받침에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그린 것은 고구려인들의 내세에 대한 깊은 염원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앙에서 태양은 삼족오(三足烏)로, 달은 토끼나 또는 두꺼비로, 천왕(天王)은 비봉(飛鳳) 위에서 번기(幡旗)를 날리고, 지신(地神)은 인수사신(人首蛇身), 양두단신(兩頭短身) 괴물로 표현했다.

우현리 대묘벽화 현무도[편집]

遇賢里 大墓壁畵玄武圖

평안남도 강서(江西) 우현리의 분묘(大墓·中墓·小墓)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우수한 벽화를 남긴 분묘는 대묘이며 고구려 벽화 고분기 제3기에 해당한다. 화강암의 암면(岩面)에 회(灰)칠 없이 직접 그린 벽화는 현실의 남쪽 입구 좌우벽으로부터 시작하여 4신도가 펼쳐지고 천 은 각종 장식무늬로 채워졌다. 사신도 중의 현무도는 북벽에 그려져 있는데, 세선(細線)을 사용하여 하나의 가공적이고 상징적인 괴물(玄武)의 무서운 모양을 패기(覇氣)차게 실물처럼 묘사하고 있다. 필선(筆善) 자체의 속도감보다 물상이 지닌 운동감과 생명력이 더 현저하게 부각되고 있는데, 그 윤곽선이 치밀한 톱니바퀴 모양(鋸齒形)의 파동을 이루는 점이 주목된다. 흑색의 선에 적(赤)·녹(綠)·황(黃)·청(靑)·백의 여러 가지 빛깔을 단색으로 사용했으나, 안료를 무엇으로 썼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필법들은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의 영향을 받았으되 오히려 세련된 점에 있어서는 그것을 능가하는 면모가 보인다. 고구려인의 유목민적인 기질을 살려 웅혼(雄渾)한 기상과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벽화이다.

우현리 중묘벽화 백호도[편집]

遇賢里 中墓壁畵白虎圖

우현리 중묘의 벽화는 대묘의 벽화에 비해 규모도 작으며 간단하고 웅혼한 점에 있어서도 뒤떨어진다. 대묘의 현무도만큼 세련된 기법으로 되어 있지는 못하다 하더라도 신비롭고 유현(幽玄)한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로 영기(靈氣)가 보이는 박력있는 표현이다. 체구가 용에 가까우나 과연 청룡인지 백호인지를 구별하기 곤란할 정도(채색으로 미루어 백호로 구별할 따름이다)의 괴물이 염(焰)과 같은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나는 괴이스런 자태를 표현하고 있는데, 천지신령의 약동하는 모습을 실감케 하며 우주의 영기(靈氣)에 접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담징[편집]

曇徵 (579-631)

고구려의 중·화가. 영양왕 21년에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중 호죠(法定)와 기거를 같이 하며 불법을 강론하고 고행·수도에 정진했다. 한편 채화(彩畵)·공예 및 종이·먹·칠·연애(=맷돌)의 제조법을 가르치는 등 미술 교류에 힘썼다. 일본 나라(奈良)의 호류사(法隆寺)의 금당벽화(金堂壁畵)를 그렸는데, 이것은 중국 윈깡석불(雲岡石佛) 및 경주 석굴암과 함께 동양 최고의 3대 미술품으로 알려진다. 금당벽화는 1949년에 불타 버렸다.

가서일[편집]

加西溢

고구려의 화공(畵工). 463년에 일본에 건너가서 현재 나라(奈良)에 있는 나카미야사(中宮寺) 소장인 수장(繡帳)의 원화(原畵)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