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고대사회의 발전/고대국가의 형성과 문화/한국 민족의 유래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한국 민족의 유래〔槪說〕[편집]

한민족(韓民族)의 기원과 형성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만족할 정도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민족의 종족적 구성과 문화의 기원이란 문제는 자료 결핍으로 말미암아 문헌 기록만으로는 인식하기 어려운 것이고, 고고학·인류학·언어학·신화학(神話學) 등 인접과학의 종합적 연구가 있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고고학을 비롯한 이러한 과학을 원용(援用)한 한민족의 연구가 우리나라에서는 뒤늦게 시작되었고, 게다가 고고학 외에는 이 분야에 대한 업적이 적은 편이었다. 한편 일반사가(一般史家)들도 각기 전문분야의 연구 과제가 산적(山積)하여 이 문제에 대한 연구는 일반적으로 적었던 듯하다. 그런 중에도 근년(近年)에는 고고학·인류학 등에 대한 연구에 진전을 보고 있으며, 또 이들의 연구 성과와 문헌연구의 성과를 종합하는 경향이 보이고 있어 앞으로의 결과가 기대되는 것이다.한민족은 보통 단일민족이라 한다. 그러나 학문상으로 엄밀히 말하면 단일인종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고 그 중에는 비록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더라도 수개(數個) 이상의 다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고 하겠다. 즉 한인(韓人)·몽골인·만주인(滿洲人)·왜인(倭人) 기타 남방 폴리네시아 계통 등의 요소가 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하여 혼잡다이(混雜多異)한 복합체라고는 할 수 없으며, 한민족으로서의 주(主)된 기본적 요소는 언제나 지배적 지위를 가지면서 여기에 다른 요소가 가미된 것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한민족을 다른 민족에 비해 순수한 단일민족이라 할 수 있는 점일 것이다.한민족의 근간(根幹)은 몽골족·만주족·터키족(土耳其族), 즉 ‘우랄 알타이어(語)’ 계통족(系統族)과 공통된 먼 공동조상(共同祖上)에서 분파(分派)된 일족(一族)이라고 생각되며, 그것이 문헌상으로 한(韓)이나 예맥(濊貊)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믿어진다. 이들은 중국 북방에서 만주와 한반도에 살던 선주민(先住民)들을 구축하면서 동으로 이동하여 왔던 것 같다.여기에서의 선주민이란 구석기 시대인과 즐문토기 문화인(櫛文土器文化人)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한국의 구석기 문화 유적지로는 함경북도의 동관진(潼關鎭)과 굴포리(屈浦里)·부포리, 충청남도의 공주 석장리(石壯里) 등지에 불과하나 앞으로 한강과 낙동강 및 수원·안성 등지이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석장리의 유적이라고 최근에 논의되는바 이곳에는 전기·중기·후기의 선주민들이 거쳐간 흔적이 보인다고 지적되고 있다.

이 유적의 4·5층의 것은 15만년 이전의 전기 구석기로, 그 위층의 중기 구석기 문화는 410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하며, 또한 후기 구석기 문화층에 속하는 상층은 방사선탄소측정법에 의하면 30,690년 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물론 이 3기의 인종이 같다고 볼 근거도 없으며, 각 시기의 인종은 그때마다 멸망했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갔을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구석기 문화가 상당한 기간 지속되고, 그 후 신석기 문화를 가진 즐문토기 문화인들이 북쪽에서 이주하여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신석기문화는 우리나라의 경우 약 5천년 전에 시작되어 기원전 6,7백년쯤에 청동기시대로 들어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즐문토기 문화이고 즐문토기는 기본적으로 바이칼호(湖) 지역의 시베리아 토기 문화에 연결된다. 그 부족이 주로 하천 유역에서 어로(漁撈)를 생활 수단으로 하였던 점으로 보아 인종적으로 현재 시베리아에 남아 있는 고아시아족(古Asia族)으로 생각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일찍 만주와 한반도에 정착한 예맥인들이 시베리아 토기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데서 즐문토기를 사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즐문토기의 유적은 광범하게 분포되어 한때는 만주와 한반도 전역에서 번성하였다 하겠으며, 나아가 일본의 규슈 지방이나 오키나와에도 번지고 있다 하겠다.즐문토기 문화와 무문토기 문화(無文土器文化)와의 시간적 관계는 그 두 문화가 층위적(層位的)으로 발견된 유적이 없기 때문에 선후(先後)를 단정할 수는 없으나 현재까지의 연구로 보아 기원전 7세기경까지의 즐문토기인들은 그 이전부터 서쪽에서 대량으로 이주하여 오는 무문토기 문화인들에게 정복되어 혹은 연해주(沿海州)나 시베리아 지역으로 구축되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이렇게 등장하는 무문토기 문화인들이 오늘날의 한국 민족의 근간이 된다 할 수 있으며, 이들이 예맥이라고 불린 종족으로 생각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예맥의 원주지(原住地)는 중국의 북방이었으며, 이곳에서 허베이(河北)의 구청현(固城縣) 방면으로 옮겨 한 줄기는 중국 산둥(山東) 방면으로 내려가고, 한 줄기는 다시 동으로 이동하여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분포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각처에 거주하던 예맥이 중국인들에게 동이(東夷)라는 범칭(凡稱)으로 불리었던 것이다. 이들이 동으로 이동하게 된 이유는 보다 생활 조건이 좋은 곳을 찾게 되었다는 점도 있지만 한편 서쪽으로부터 한(漢)족의 동천(東遷)과 서북으로부터 흉노(匈奴)의 압력 때문인 것 같다. 이리하여 적어도 기원전 10세기 전부터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정착하기 시작한 예맥은 북방적 요소가 강한 청동기문화를 수용하면서 각처에서 부족국가를 건설하여 갔던 것이다. 그 중에도 가장 먼저 정치적 세력을 성장시킨 것이 대동강 유역에 정착한 예맥족이라 하겠고, 이들이 고조선(箕子朝鮮)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한편 중국의 산둥 방면으로 남하(南下)한 예맥의 일파는 산둥 반도로부터 화이쓰(淮泗) 유역에 걸쳐 거주하면서 진(秦)에 의하여 중국이 통일될 때까지 동이지역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때 이들이 남긴 신화나 설화(說話)가 산둥성 자샹현(嘉祥縣)의 무씨사당(武氏祠堂) 석실(石室)의 벽화와 서언왕설화(徐偃王說話)였다. 무씨사당 석실의 벽화 내용은 고조선의 단군신화와, 서언왕설화는 고구려의 주몽설화(朱蒙說話)와 대비되며, 이들은 같은 계통의 신화로 생각된다. 더욱이 고고학적으로도 무문토기인들의 분묘인 지석묘(支石墓) 석상분(石箱墳)·옹관묘(甕棺墓)의 분포는 만주나 한반도 및 산둥 반도 지방에 미치고 있어 이들과의 관련을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