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전 임시정부 주석 국민장 김규식 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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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282년 6월 25일 고 백범 김구동지는 불의의 흉탄에 비참하게도 최후를 마치었다. 이 비보를 접한 김규식은 잔인무도한 폭력적 만행을 무한히 원망하며 우리 국가의 운명과 민족의 장래를 볼 때 한없는 통분을 느끼었다.

이 참혹한 민족적 비애는 3천만 민족으로 하여금 하늘에 애소하고 땅에 발버둥치며 민족적 통곡으로 국토가 양단된 민족이 너 나 할 것 없이 스스로 일어난 통일적 공분을 억제치 못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 직장까지도 포기케 하였다.

오호 동지여! 동지의 최후를 슬퍼서도 울고 우리 자신의 앞날을 위해서도 울고 또 여러 가지로 슬퍼하는 것을 아는가.

동지여! 일생을 바치어 애국애족하였다는 위대한 공적은 약사보고가 있기 때문에 나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동지가 근 80평생을 일신의 명예와 사를 버리고 오로지 조국광복과 반일투쟁에 심혈을 경주한 동지가 이 땅의 왜적이 물러간 오늘 동족의 손에 쓰러졌다는 것은 동족의 치욕일 뿐 아니라 정녕코 우리 사회의 무질서를 증좌하는 것이며 왜적의 심장을 가진 조선인이 아니면 도저히 감행하지 못할 만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흉의의 소재가 내변에 있었던 간에 동지가 위대한 애국자인 것을 안다. 그러나 동지는 갔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분명히 갔다. 민족적 염원인 완전 자주민주 화평통일의 광휘있는 새로운 역사를 보지 못한 채 영원히 이 땅을 떠났다. 영결에 임한 이 순간 우정을 논하고 과거를 추회할 정신적 여유조차 없겠지만 공사간 동지에 대한 우리의 애정은 너무나도 애달프다. 동지여! 1910년 나라가 없어지자 우리는 생명을 홍모에 붙이고 국권회복의 제물이 되려 하였던 것이 아니었던가.

동지여! 그 동안 민족갱생을 위하여 기한과 형장의 고초에 시달린 것이 몇 번이었으며, 외인의 모멸에 나라 없는 치욕과 인간적 비애는 그 얼마나 깊었던가. 더욱 8․15 이후 동지는 우리 민족의 본의 아닌 국토가 양단된 마의 38선과 제약된 국내정세를 민족적 단결로써 분쇄하고 진정한 민주발전과 남북화평통일을 위하여 흉변을 당할 순간 전까지 소신을 꺾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오호 백범 김구동지! 우리는 이제 이 자리에서 동지의 불행을 슬퍼할 것은 물론이어니와 일식이 남아있는 날까지 동지의 정신을 받들어 민족적 당면 과업인 완전통일 대업완수에 성심성력을 다할 것이며 조선민족을 사랑하고 세계인류평화를 협조하려는 모든 애국애족자와 더불어 동지의 유업에 보답하려 한다.

동지! 이 거룩한 영결식장에는 동지의 유가족을 비롯하여 수많은 친지와 내외 인사들이 동지의 최후의 걸음을 애도하고 있다. 인간 백범에 우는 것보다 애국자며 지도자인 동지를 추모하는 것이며 개인적 감정의 충동이 아니라 이 강산의 보존과 국가 사회의 전도를 걱정하는 것이다.

동지여! 이 땅, 이 시간에 동지는 이 민족을 그대로 두고 차마 어이 떠나리오마는 생과 사의 분별이 유할 뿐이니 동지는 고이 가시라. 동지가 실천을 보지 못한 이 국가건설과업은 우리가 일층 더 용감히 추진하여 이미 간 동지 및 무수한 선열의 영령을 위안하며 기한과 만난고초에 허덕이고 신음하는 민족이 완전한 자유와 평화를 획득하도록 더욱 계속 노력할 것을 동지의 영전에서 삼가 서언하노니 동지여 고이 잠드시라.


1949년 7월 6일

출처[편집]

  • 동아일보 1949년 07월 06일 목요일자 기사
  • 자유신문 1949년 07월 06일 목요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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