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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를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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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를 먹다
저자: 이상화

1935년 12월 『조광』 2호에 尙火라는 필명으로 발표

구름은 차립옷에 놓기 알맞어 보이고
하늘은 바다같이 깊다라ᅟᅵᆫ 하다.

한낮 또약빛이 쬐는지도 모르고
온 몸이 아니 넋조차 깨온― 아찔하여지도록
뼈저리는 좋은 맛에 자스러지기는
보기 좋게 잘도 자란 과수원(果樹園)의 목거지다.

배차 속처럼 피ㅅ기 없는 얼굴에도
푸른 빛이 비최여 생기를 띠고
더구나 가슴에는 깨끗한 가을 입김을 안은 채
능금을 바수노라 해를 지우나니.

나무가지를 더우잡고 발을 뻗기도 하면서
무성한 나무닢 속에 숨어 수집어하는
탐스럽게도 잘도 익은 과일을 찾어
위태로운 이 짓에 가슴을 조이는 이때의 마음 저 하늘같이 맑기도 하다.

머리가닥 같은 실바람이 아무리 나붓겨도
메물 꽃밭에 춤추던 벌들이 아무리 울어도
지낸 날 예뿐이를 그리어 살몃이 눈물지는,
그런 생각은 꿈 밖에 꿈으로도 보이지 안는다.

남의 과일밭에 몰래 들어가
험상스런 얼굴과 억센 주먹을 두려워하면서.
하나 둘 몰래 훔치든 어릴 적 철없든 마음이 다시 살어나자
그립고 웃읍고 죄 없든 그 기쁨이 오늘에도 있다.

부드럽게 쌓여 있는 이랑의 흙은
솥뚜껑을 열고 밥김을 맡는 듯 구수도 하고
나무에 달린 과일― 푸른 그릇에 담긴 깍뚝이 같이
입안에 맑은 침을 자아내나니.

첫 가을! 금호강(琴湖江) 구비쳐 흐르고
벼 이삭 배부르게 느러져 섰는
이 벌판 한가운데 주저앉어서
두 볼이 비자웁게 해같은 능금을 나는 먹는다.

【註】 능금……(능금=林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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