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변명-발가락이 닮았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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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집]

『발가락이 닮았다』는 <東光[동광]>誌[지] 五月號[오월호]에 게재된 나의 小說[소설]이다. 그것은 물론 한 개의 소설이지 결코 批評文[비평문]이나 傳記[전기]의 일절이나 感想文[감상문]이 아니다. 그것을 쓸 때에도 아무 他意[타의]가 없는 「나의 産物[산물]」이라는 마음으로 썼고 발표된 것을 볼 때에도 그런 마음으로 보았다.

그랬더니 이 자그마한 한 개의 소설이 뜻밖에도 物議[물의]를 낳아 지금 극도의 신경쇠약으로 머리가 어지럽기 짝이 없는 나로 하여금 또한 잡기 싫은 붓을 잡게 한다.

양력 정월 초승께 나는 생명이 위태롭도록 重態[중태]인 病床[병상]에 누워 있을 때 서울 어떤 친구에게서 <네가> 東光[동광]에 낸 <발가락>」에 대하여 廉想涉君[염상섭군]한테 「이것은 나를 모델로 한 소설이다」는 항의 비슷한 반박문이 東光社[동광사]에 왔다는 기별을 받았다. 그러나 그때는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귀중한 나의 생명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할 때였으므로 그 말을 중대시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 며칠 뒤에 또 다른 친구한테서 「대체 발가락은 그게 무슨 짓이냐? 지금 적지 않게 문제가 되어 있다」는 기별을 받았다.

그 역시 내 병이 낙관치 못할 때라 역시 그 말도 과장된 허풍선에 지나지 못하니쯤 알아두었다.

이번 요양차 어떤 곳으로 떠나는 길에 그 여비를 구하기 위하여 서울을 들렀다. 滯京[체경] 중 나는 「발가락」에 대한 조상을 받았다. 더구나 어떤 친구는,

『내가 사이에 들어서 잘 알선할 테니 廉君[염군]과 화해를 하오.』

하는 간곡한 권고까지 한다.

여기서 나는 「발가락」이 文[문]을 業[업]으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 꽤 크게 문제가 되어 있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여기 그 변명을 몇마디 쓰려고 한다.

廉君[염군]은 반박문을 <東光[동광]>에 보내기는 하였지만 印刷[인쇄]까지 다 된 뒤에 갑자기 반박문전부의 취소를 東光社[동광사]에 申込[신입]하였다. 東光社[동광사]에서는 이미 印刷[인쇄]까지 다 되었던 것을 전부 뽑아 버렸다. 이리하여 廉君[염군]의 반박문은 지면에까지는 나타나지 않고 없어져 버렸다.

비록 표면에 나타날 반박문은 없어져 버렸다 하나 廉君[염군]의 마음속에 남은 의혹함은 영구히 없어져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의 변명의 이유는 여기 있다. 시이저의 친구가 만번 더 고려하기를 청하매 시이저 대답하기를,

『나는 내 아내의 품행이 어떤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나쁜 평판이라도 받는 아내를 시이저는 데리고 살 수가 없다.』

고 했다.

비록 온갖 방면으로는 시이저라는 絶世[절세]의 영웅과 비교도 못할 小[소] 東仁[동인]이지만 潔癖[결벽]과 漫心[만심]만은 결코 시이저 못지 않게 가지고 있는 나는 나에게 부어진 廉君[염군]의 의혹의 마음을 풀기 위하여, 그리고 일부 社會[사회]에 벌써 퍼진 「발가락」에 대한 나의 마음을 알리고자 이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2[편집]

廉君[염군]은 얼마 전에 廉君[염군]에게도 친구가 되고 나에게도 친구가 되는 某君[모군][1](편의상 ✕君[군]이라 부르자)의 사건을 그대로 두고 어떤 小說[소설]을 쓴 일이 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몇 달 뒤에 나의 「발가락」이 發表[발표]되었다.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소설이 대체 廉君[염군]을 모델로 하고 썼는지 아닌지는 차차 말하려니와 廉君[염군]은 ✕君[군]에 대한 자기의 小說[소설]과 「발가락」과를 因果的[인과적]으로 연결시켜 가지고,

「내가 이전에 ✕君[군]을 두고 소설을 쓴 일이 있는데 ✕君[군]이 東仁[동인]에게 부탁을 하여 복수적으로 발가락을 쓰게 하였다.」

고 반박문의 첫머리에 썼다.

여기 대하여 나는 여러 가지 말을 하고자 아니한다.

廉君[염군]의 도량이 이렇듯 좁으면 더 말할 여지조차 없다.

대체 文學者[문학자]가 누구의 부탁을 받아 복수적으로 붓을 잡는다 하는 일은 文學者[문학자]인 廉君[염군]의 良心[양심]에 물어볼 뿐 구구이 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廉君[염군]에게는 혹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創作[창작]은 創作[창작]이지 결코 무슨 武器[무기]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는 信條[신조]를 가지고 아직껏 文[문]에 대하여서만은 潔癖[결벽]과 自尊心[자존심]과 信用[신용]을 지켜온 나는 한번도 이 信條[신조]를 범하여 본 일이 없다. 대체 廉君[염군]은 「발가락」을 읽고 어떤 점이 廉君[염군] 자신과 공통된다 하는가?

「두세 가지의 점을 제하고는『발가락이 닮았다』는 분명히 나를 모델로 하여 쓴 소설이다.」

고 갈파를 하였지만 어떤 점이 君[군]과 M(발가락의 주인공)과 공통이 되는지 이것은 作者[작자]인 나도 알 수 없다.

물론 두세 군데 공통되는 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三十[삼십]이 다 넘도록 가난한 총각으로 있던 점, 연애도 持參金[지참금]이 목적도 아닌 결혼을 한 점 등 두어 가지는 혹시 廉君[염군] 자신과 공통된다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세상의 많고 많은 소설의 그 어떤 人物[인물]에서든 少許[소허]의 공통점도 가지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톨스토이에 『復活[부활]』의 네흘류도프가 젊었을 때 방탕한 점 또는 그 性格[성격] 뒤를 돌아보지 않는 魚突性[어돌성] 등이 나(東仁)와 공통된다고 결코 『復活[부활]』은 나를 모델로 쓴 소설이라는 항의를 톨스토이에게 할 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廉君[염군]과의 사이에 두서너 개의 공통점이 있다고 M은 廉[염]을 모델로 삼은 것은 人物[인물]이랄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철두철미하게 『발가락이 닮았다』는 사실이 廉君[염군] 가정 내의 實在[실재] 사실과 부합된다 할지라도 우연히 暗合[암합]이라는 것을 거부할 수가 없는 것이어늘 겨우 두세 군데 공통된다고, 즉시로 그 소설은 나를 모델로 한 것이 분명하다고 들고 일어서는 것은 너무 경솔스런 노릇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발가락이 닮았다』의 內容[내용] 사실이 전부 廉君[염군] 가정 내의 현실과 부합된다면(비록 우연의 暗合[암합]이라 할지라도) 아직껏 友誼[우의] 관계상 상당한 책임 있는 대책이라도 講[강]할 수가 있겠지만 廉君[염군] 자신도 「발가락」의 내용과 자기의 사실과에는 數個所[수개소]의 相違點[상위점]이 있다는 것을 승인하는 이상 廉君[염군]에게 대하여 나는 아무런 책임감도 느껴지지를 않는다.

廉君[염군]이 「발가락」을 가리켜 자기를 모델로 하여 쓴 소설이라고 內言[내언]한 그 근거가 어디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廉君[염군]은 「발가락 을 가리켜 이것은 자기를 」 모욕하기 위하여 또 자기의 자식에게 私生子[사생자]라는 惡名[악명]을 붙이기 위하여 쓴 소설이라 하지만 그것은 지나친 廉君[염군]의 상상에서 나온 바이지 결코 나는 廉君[염군]을 모델로 쓴 바가 아님을 여기 말하여 둔다.

3[편집]

나는 여기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소설을 보지 못한 讀者[독자]를 위하여 그 내용을 대략 쓰겠다.

「 M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三十[삼십]이 넘은 총각이요, 가난한 사람이었다. M은 총각으로 오래 지내는 동안 가장 下類[하류]에 속하는 온갖 방탕을 다하여 별별 性病[성병]을 最惡度[최악도]까지 앓았다. 그 M이 문득 三十[삼십]이 썩 지나 결혼을 하였다. 결혼한 얼마 뒤에 M의 새 아내가 잉태를 하였다. 여기서 M의 번민이 시작된다. 그는 아직껏 자기에게는 生殖機能[생식기능]이 破滅[파멸]된 줄로 알고 있었다. 그 결과로 자기의 아내가 평생 임신을 못할 줄로 알고 있었다. 그랬는데 그의 예기에 반하여 아내가 임신을 한 것이었다. 그는 어떤 아는 의사를 찾아가 자기를 ○○에 검사하여 보아 자기의 번민을 해결코자 하였다.

그러나 급기 검사하려 함에 다른 무서운 생각이 났다. 그것은 만약 검사를 하여서 生殖機能[생식기능]이 破滅[파멸]되었다는 것이 증명되기만 하면 자기의 번민(질투)이 더욱 커질 것은 둘째 치고 영구히 後孫[후손]을 둘 가망을 온전히 끊어 버리지 않을 수가 없는지라 이것은 人生生活[인생생활]의 가장 孤寂[고적]한 일이다.

이 <일평생을 자식을 둘 수 없다.>하는 絶望的[절망적] 경우에 자진하여 뛰어들기가 두려운 나머지 M은 자기 아내의 腹中[복중]에 있는 胎兒[태아]에게 대하여 커다란 의혹을 품고 있으면서도 종래 ○○ 검사는 하지 못한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세상에 나왔다.

M은 그 아이가 자기를 닮았으면 자기의 종자라는 것을 시인할 수가 있으므로 <자기를 닮은 점>을 엄밀히 조사하였다. 그리하여 발가락이 자기의 발가락 모양으로 생긴 것을 발견하였다.

여기서 M은 억지로 조금 안심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가진 소설에 대하여 廉君[염군]은 어떤 점이 자기를 모델로 하여 썼다고 인정하였는지 나에게 항의를 申込[신입]한 것이었다.

「나의 자식이 이 뒤에 성장하여 아비에게 가질 의혹을 풀어 주기 위하여 廉君[염군]은 그 抗議文[항의문]을 썼다」 하나 이제 성장할 장래의 사람이 廉君[염군]의 愛兒[애아]는 둘째 치고 그저 廉君[염군]과 가까이 지내는 여러 친구들도 그 소설을 廉君[염군]의 진실이라고는 보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 소설을 廉君[염군]의 사실 그대로라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같이 論[논]할 바 없는 무지한 사람이든가 그렇지 않으면 狂人[광인]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그 소설은 作者[작자]인 내가 廉君[염군]의 사실을 쓰지 않은 것이 분명하니까……

대체적으로 모델 소설이라 하는 것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실을 그대로 小說化[소설화]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人物[인물]의 性格[성격]을 따서 作中[작중]에 잡아 넣는 것이다.

그러면 廉君[염군]은 右[우] 兩者[양자] 중 어떤 점이 그 소설은 자기를 모델로 쓴 것이라 하는가?

그 소설의 內容[내용]이 廉君[염군]의 사실과 부합되는가? 또한 M이라는 人物[인물]의 性格[성격]이 廉君[염군] 자기의 性格[성격]과 같은가?

나는 그 소설의 작자인지라 거기에 대한 똑똑한 批判[비판]은 내릴 수가 없다. 그러나 내 눈에 보이기에는 그 소설을 內容[내용]도 (먼저 말한 바와 같이 二[이], 三[삼]점의 우연의 暗合[암합]을 제한 외에는) 廉君[염군]의 사실과 부합되는지 안 되는지 전연 모르는 바다.

M이라는 人物[인물]의 性格[성격]도 廉君[염군]의 性格[성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면 廉君[염군]은 어떤 근거에서 그런 結論[결론]을 내렸나?

4[편집]

또한 소설의 주인공인 M과 廉君[염군]과 結婚[결혼]한 연령이 상이하다는 소위 첫째 공통점에 대하여 한 마디 써보련다.

소설의 구성상 주인공의 연령은 中年[중년]쯤 되어야 할 것은 구구히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승인할 듯싶다. 三十[삼십] 이상의 中年[중년]이 아니면 자식을 무릎에 안아보고 싶은 절실한 욕망도 적을 것이요, 後孫[후손]이 없음에 대한 絶望[절망]도 그렇듯 절실치 않을지라 불붙는 시기와 血氣[혈기]로써 당장에 무슨 결말을 냈을 것이지 이 소설과 같이 진행은 안될 것이다. 혹시 넓은 세상이라 이와 반대되는 性格[성격]의 人物[인물]도 있을지 모르나 우리의 상식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는 소설의 주인공이 中年[중년]의 사내라야 眞實性[진실성]이 더욱 많다.

주인공이 가난한 지식 계급이라 하는 것도 역시 性病[성병]을 완전히 처리하지 못한 점 등이며 그의 친구에는 의사 등이 있었다는 점으로서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 가장 필요한 계급의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 밖에 또한 廉君[염군]과 공통되는 점이 있다 하면 그것은 우연일 수밖에 없다. 廉君[염군]은 「二[이], 三[삼]의 점을 제하고는 그 소설은 나를 두고 쓴 것이라」 하였고 그 抗議文[항의문]의 題目[제목]조차 「모델의 복수」라 하였으며 廉君[염군] 자신으로는 그 소설에서 더 많은 공통점을 발견하였는지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도에서는 더 많은 공통점이 있음직하지 않다.

그런지라 만약 廉君[염군]이 그 소설의 소설적 價値[가치]를 論[논]하였을 것 같으면 나는 반갑게 廉君[염군]의 말을 들었을지 모르지만 모델 問題[문제]로 抗議[항의]를 한 데는(비록 그 항의를 數三[수삼] 友人[우인]의 권고로 중지는 하였지만) 나 자신을 변명하기 위하여 이런 변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 나만큼 短篇小說[단편소설]에 엄한 規律[규율]을 두고 그 규율로 자기를 결박하고 있는 사람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껏 短篇小說[단편소설]을 씀에 一句一字[일구일자]라도 덧붙이기를 한 일이 없었으며 그 소설에 영향을 입을 자는 한 자라도 그냥 남겨둔 일이 없을이만큼 자기의 作品[작품]에 대하여 엄격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양심이 許[허]하는 안에서 나는 『발가락이 닮았다』에 대하여서도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다.

스트린드 베르히가 이미 지적한 바, 자식에게 대한 男親[남친]으로서의 번민과 사랑의 쓰라린 단념을 나타내기 위하여 쓴 그 소설의 첫머리는,

「노총각 M이 혼약을 하였다.」

에서 시작하여 마지막의 클라이맥스인 발가락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 자 한 구라도 곁길로 들어간 적이 없었다. 클라이맥스를 향하여 一直線[일직선]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켰을 뿐이다.

이렇게 少許[소허]도 곁길을 들지 않고 클라이맥스를 향하여 진행된 소설 에 있어서는 그 철두철미가 실재 사실이든가 性格[성격]만이 누구를 모델로 하였든가 하는 이외에는 절대로 모델 소설이 될 수 없다.

사실을 단편소설의 實在[실재] 일부에 취입을 하려다가는 흔히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直線[직선]」에서 벗어나기 쉽다. 그리고 短篇小說[단편소설]로서 그 직선에서만 벗어나면 십중팔구는 지리멸렬되고 만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껏 實在[실재] 사실에서 직접 短篇小說[단편소설]의 題材[제재]를 취한 일이 없다.

혹은 實在[실재] 사실에서 그 힌트를 얻는다 하는 일이 있다.

그 이 힌트와『모델 問題[문제]』와를 혼동할 만큼 廉君[염군]의 小說眼[소설안]이 굽지는 않았을지라 나는 廉君[염군]의 「발가락」에 대하여 품은 오해를 이해할 수가 없다.


(一九三二年[일구삼이년] 二月[이월] 六日[육일] ~ 七日[칠일] <朝鮮日報[조선일보]> 所載[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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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