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
꽹꽹 언 작은 고무신이 페달을 디디려고 애쓸 때에 궁둥이는 가죽안장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듯이 자전거의 한편에 매어달린다. 왼쪽으로 바른쪽으로, 구멍난 꺼먼 교복의 궁둥이가 움직이는 대로 낡은 자전거는 언 땅 위를 골목 어구로 기어나간다. 못쓰게 된 뼈만 앙상한 경종(警鍾)은 바퀴가 언 땅에 부딪칠 때마다 저 혼자 지링지링 울고, 핸들을 쥔 푸르덩덩한 터진 손은 매눈깔보다도 긴장해진다. 기름 마른 자전거는 이때에 이른 봄날 돌틈을 기어가는 율모기같이 느리다. 그러나 길이 좀 언덕진 곳은 미처 발디디개를 짚을 겨를도 없이 팽팽하게 바람 넣은 바퀴가 자갯돌과 구멍진 곳을 분간할 나위 없이 지쳐 내려가기도 한다. 심장은 뛰고 가슴은 울렁거린다. 이때에,
"남의 쟁골 또 타네?"
하는 고함이 등뒤에서 나면 왈칵 가슴은 물러앉고 정신은 앞뒤를 분간할 겨를조차 없다. 앞바퀴를 돌각담에 박으면서 거의 엎드러지듯이 후덕떡 뛰어내려 돌아다보고 자전거의 주인인 면서기 대신에 계향(桂香)이를 발견하면, 두근거리는 가슴은 좀 가라앉으며 무엇보다 먼점 안심하는 빛이 그의 표정을 스쳐간다. 뛰어내릴 때 부딪친 사타구니가 갑자기 쓰려 오고, 그의 두 눈이 녹초가 져서 뎅그렁하니 넘어져 있는 자전거를 보았을 때, 사슬은 끊어져서 흙받이 옆에 붙어 있고, 고무 페달만 싱겁게 핑핑 돌다가 멎는다. 녹슬어서 도금이 군데군데 벗겨진 핸들은 홱 비틀어져 있다. 고물상 먼지 구덩이에 박혀 있는 항용 보는 엿장수의 매상품이다. 봉근(鳳根)이는 화가 벌컥 치밀었다. 무엇을 짓부수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에 꿈틀거리지만 그대로,
"왜 이래 남 쟁고 배우는데."
하고 저만큼 대문 앞에 서 있는 누이의 얼굴을 노려보면서 울 듯이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너 누구 쟁곤데 물어나 보구 타네?"
봉근이는 아무 대답도 안 하고 사타구니의 아픈 곳을 부비며 너부러진 자전거를 세웠다.
돌담에 비스듬히 세우고 끊어진 사슬을 집어 차대에 얹고 다시 바퀴를 다리 틈에 끼운 뒤에 핸들을 바로잡았다.
"이전 경쳤다. 그게 누구 쟁곤데 닐르는 말은 안 듣구 만날 쟁고만 타더니."
"차서방네 집에 온 멘서기핸데 차서방보구 허가맡었다 뭘. 누는 괜히 민하게 굴어서 사슬 끊어딘 건 난 몰라, 씽."
자전거를 끌고 기운이 빠져서 어슬렁어슬렁 계향이 앞으로 올라간다.
"이 새끼 차서방한테 허가맡어서? 차서방은 아바지하구 강에 나갔는데."
주먹을 쥐고 머리를 치려는 바람에 봉근이는 자전거를 계향이에게로 탁 밀어 버리고 저만큼 물러 뛴다.
"아이구 얘, 이 새끼."
겨우 넘어지려는 자전거를 붙들고 남치맛자락으로 입을 가리운다.
"새끼두 망하겐 군다."
계향이는 눈으로 봉근이를 노려보면서 어이가 없어서 웃어 버린다. 그리고는 목을 돌려 차서방네 집을 향하여,
"김서기 쟁고 건사하우. 결딴났수다."
하고 고함을 질렀다.
봉근이는 바자 틈에 돌아서서 손으로 언 가시나무 가지를 뜯다가 누이의 김서기 부르는 소리에 속이 또다시 활랑거려 힐끗 누이의 얼굴을 쳐다본 채 그대로 꽁무니를 뺄까 한다.
"얘 봉근아?"
하고 즐겨서 자전거는 탔으나 뒷감당을 맡아서 치를 담력은 없는, 자기의 동생을 부드럽게 부르면서 계향이는 약간 쓸쓸함을 느끼었다.
"얘 봉근아, 쟁곤 내 말해 줄게 집에 들어가서 다랭이 가지구 아바지한테 쫓아가라. 꿍맹이 사냥 갔는데 앞강이 사람 탈 만하다더라. 오늘은 아마 큰 고기 잡는대. 주어 닙구 빨리. 어서 뛔가 봐. 또 멘세기 나오기 전에."
계향이의 낮은 목소리가 끝나기 전에 봉근이는 고슴도치 모양으로 대문 안을 향하여 굴러들어가 버렸는데 이윽고 차서방네 집이서 코르덴 당꼬바지를 입고 기성복 외투를 걸친 김서기하고 차서방의 딸 옥섬(玉蟾)이가 행길로 나온다.
"남의 하쿠라이(외제) 쟁골 가지구 왜들 새박드리 야단이야 응."
하면서 김서기는 물고 나오던 마코 꽁초를 불 붙은 채로 길가에 던진다. 그리고 사슬 끊어진 자전거를 바라보고는 침을 한번 쪽 내어뱉고,
"허허 오늘 큰코 다쳤다. 별수 있나, 계향이 하룻밤 화대는 마루키(丸木) 쟁고빵으로 털으야 됐디!"
"그거 이전 엿장세한데 팔든가 페양 갖다 박물관에 보관하디. 멘장 나으리 타시는 구루마 하구는 너무 초라해."
하고 옥섬이가 깔깔 웃으며 분 떨어진 핏기 없는 얼굴로 계향을 바라본다.
자전거를 받아서 사슬을 빼 짐틀에 놓더니 김서기는 장갑 낀 손으로 안장을 툭툭 털며,
"이놈이 이래봬두 내 당나귀다. 말 갈 데 소 갈 데 없이 참 이놈 타구 세금두 많이 받았구 뽕나무 심으라구 야단두 엔간하게 쳤다."
"그리구 또 개새끼두 수없이 짖겠구."
"하하, 아닌게아니라."
하고 김서기는 계향이의 말을 다시 받으면서,
"이 종이 아직 시퍼렇게 젊었을 때 촌동리 어구를 접어들면서 한번 째르릉 하구 울리기만 하문 개새끼는 짖구 닭의 새낀 풍기구 고양이새낀 달아나구 아새낀 모여들구 촌체니는 바자 틈에서 침을 생켰는데, 이놈이 이전 다― 늙어서 이거 이놈 소리두 안 나네."
양쪽 쇠가 떨어져 없어져서 종은 손으로 누르면 찌륵찌륵 하기만 한다.
"오늘은 또 벨이 끊어졌으니 돈냥 탁실히 잡어먹게 됐군. 그저 이동네 오문 이랬거나 저랬거나 말썽이야."
"이왕이면 팔아서 소주나 사게, 날두 산산한데 한잔 먹구 니불 쓰구 낮잠이나 잠세."
제법 사내투로 반말로 받는 바람에 김서기는 입이 써서 멍하고 섰는 것을 계향이는 다시 한번,
"여보시게 서기네 조카."
하고 간드러지게 웃었다.
"허 참 아침 흐더분히 잘 먹구 간다."
자전거를 끌고 골목을 나가려 할 때 계향이는 웃으면서,
"사랑하는 애인 만낼라문 쟁고 사슬 열 개 끊어두 아깝지 않네."
하고 그대로 웃으면서 옥섬이를 바라보았다.
"왜 이건 또 재수(在洙)가 안 와서 걱정인가?"
서너 발자국 가다 김서기는 목을 돌리고 지껄이는데, 옥섬이는 코만 한번 찡긋 하고,
"어떤 사람은 월급봉투두 터는데." 하였다.
"아이구 아서, 새벽부터 오늘 재수없다."
"재수가 왜 없어. 오늘 공일이니 집에 있을걸."
셋은 배를 추며 웃고 제가끔 갈라졌다.
"엣춰!"
"아이 차겁다!"
긴 남치맛자락이 첫추위 바람에 팔락거리며 노랑저고리의 자주고름이 종종걸음을 치는 대로 대문 안으로 사라져 없어진다.
어제까지 푸른 강물이 찬바람에 하물하물 떨고 있더니, 오늘 아침 추위에 조양천(朝陽川)은 백양가도(白楊街道)서부터 천주봉(天柱峰) 밑 저쪽까지 유리창 같은 매얼음이 짝 건너붙었다. 이번 겨울 들어 첫추위라 매운 바람이 등골로 숨어드는 것이 유달리 차갑다. 얼음이 약할 듯싶어 아직 강을 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졸망구니 아이들이 새벽에 가상으로 돌아다니며 아물아물 얼음 진 품을 발로 디뎌 보더니 지금은 그림자조차 간 데 없다.
계향이와 봉근이의 의붓아비 땜장이 학섭(鶴燮)이는, 강가에 셋방을 얻어 살면서 매년같이 매얼음 진 첫날을 놓치지 않고 꿍맹이와 작살로 고기를 낚는 데 재미를 붙였다. 이즈음 날씨가 겨울로 접어들자 며칠을 두고 소주도 덜 마시며 강변에만 정신이 팔려 있더니, 간밤에 분 바람이 잠자리에 맵게 숨어드는 품이 미상불 강을 붙였으리라 짐작되매, 오늘은 이른 새벽 머리를 털며 자리를 나오자 눈을 부비면서 강가로 뛰쳐나갔다. 알린알린 기름칠한 거울같이 건너붙은 것을 보고 강 한중복판을 발로 쿵쿵 디뎌 보면서 언 품을 시험해 보더니, 아침밥도 이럭저럭 쏜살로 작살과 꿍맹이를 준비해 가지고 차서방과 함께 조양천 윗목으로 올라갔다.
한짝 고름이 떨어진 색 낡은 검은 두루마기를 노끈을 이어 칭칭 둘러 감고, 귀에다는 양의 털로 만든 귀걸이를 끼우고서, 빈 다랭이를 든 채 강가로 줄달음질쳐 내려온 봉근이는 강 위를 휙― 한번 두루 살폈다. 학섭이와 차서방의 그림자를 강 위에서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나 두서너 개 소나무 충충 박힌 외에는 바위와 잎 떨어진 가당나무뿐인 가난한 풍경―---산 밑의 강은 은이불을 깔아 놓은 듯이 아침 햇발에 빛나는데 눈에 보이는 것은 끝없이 줄기 뻗은 얼른거리는 비단필, 개새끼 한 마리 찾아볼 수가 없다.
통쾌하게 건너붙은 강을 보고 흥분하였던 것도 삽시간 은근히 의심이 복받친다.
응당히 아버지와 차서방은 내 눈에 보이는 이 앞 강에서 허리를 꾸부러트리고 꿍맹꿍맹 얼음 위를 달리며 고기를 몰고 있을 터인데 사람도 간 데 없고 하늘을 울릴 꿍맹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누이가 또 세무서 인〔尹〕상하고 놀려고 날 속였나. 사실 오늘이 공일이므로 계향이하고 정분난 세무서 윤재수가 대낮에 집에 올 것은 정한 이치다. 무슨 일이 있는지 이즈음은 만나면 잘 웃지도 않고 눈만 멀거니 마주보며 한숨들만 쉬었다. 자세한 곡절은 모른다 쳐도 금년 열한 살밖에 안 먹은 봉근이의 상식으론 그들이 돈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는 단정을 내릴 수는 있다. 월급도 몇 푼 못 받는 인상과 좋아 지내는 것을 아버지와 어머니가 싫어하여 가끔 누이와의 새에 충돌이 있는 것을 보아 온 터이다. 오늘쯤 나까지 강으로 내보내고 무엇을 의논하든가 그렇지 않다 해도 대낮에 문 걸고 히히거리고 놀기라도 하려고 일부러 꾸민 수단일 것 같기도 하다. 싸릿개비로 튼 고기 비늘 붙은 초라한 종다랭이―---이것을 뎅그렁하니 쥐고 섰는 자기가 싱겁기 한량없어,
"제―미 나까타나 볼당 못 볼라구―---"
하고 어른 같은 입버릇을 하며 침을 뱉었다. 그리고 휙 발굽을 돌리려고 하는데 그는 그때에 똑똑히 들었다! 얼음장을 울리고 천주봉을 무너트릴 듯한 꿍맹이 소리가 기관총의 소리같이 연거푸 공중에 진동하지 않는가!
"오! 차서방의 꿍맹이!"
그는 생선 잉어같이 펄깍 기운을 떨쳐 강 가상으로 달음박질쳤다. 꿍맹이는 어디냐? 작살 든 아버지는 어디 있나? 목을 뽑고 굽어보니 과연 있다, 있다. 강이 휘돌아 굽어진 곳에 낡은 순사 외투를 입은 차서방이 꿍맹이를 울리며 화살같이 달아 나가더니 한번 유달리 높게 꿍맹이 소리가 나고 잠시 소리가 멎는 때에, 뒤쫓아오던 학섭이가 바른손을 번쩍 들었다가 긴 작살을 얼음 구멍으로 던진다.
이윽고 작살이 얼음에서 다시 나올 때에, 봉근이의 두 눈은 꺼먼 작살 끝이 팔뚝같이 번뜩 어리는 생선을 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이!"
천주봉이 봉근이의 고함 소리를 받아서,
"어―이!"
대답한다. 봉근이는 아버지가 목을 돌리고 자기를 먼발로 바라볼 때에 다시 한번,
"어―이!"
소리를 치고 다랭이를 번쩍 들어 보인 뒤에 강을 따라 위로 위로 뛰어갔다.
얼어붙은 자갈과 모래를 밟으며 쏜살로 달려가서 천주봉 앞까지 이르도록 차서방과 아버지는 한 번도 이쪽을 바라보지 않고 냄새 맡는 거먹곰같이 얼음장을 굽어 살피며 고기를 찾기에만 바빴다. 그러므로 목구멍에서 쇳내가 나는 것을 참아 가며,
"아바지, 이재 잡은 거 머야?"
하고 헐레벌떡거릴 때 겨우 아버지는 목만을 이편으로 돌린 채 마치 봉근이가 떠드는 바람에 모여들던 늣치떼가 도망을 친다는 듯이 말 대신에 험상궂은 상통을 지어 보였다.
봉근이는 핀잔을 맞고 나서 숨만 쓸데없이 씨근거리며 그래도 먼발로 본 팔뚝같이 번뜩이던 고기가 늣친가 어핸가 붕언가 알고 싶어 어정어정 강 가운데로 걸어들어갔다. 얼음은 몰아치는 찬바람에 표면이 굳어져서 언 고무신을 댈 때마다 물기 하나 돌지 않고 매츠럽기만 하다.
거울 같은 매얼음 속으로 모가 죽은 둥근 자갈과 물이끼와 모래알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이고, 깊은 곳으로 갈수록 물은 파란 기운을 더할 뿐 지척지간과 같이 들여다보였다.
아버지들 있는 쪽으로 갈수록 이따금 얼음 위에는 꿍맹이를 울린 자리와 먼 곳까지 태맞은 자리가 잦아지고 꿍맹이의 자국이 서너 개 함께 엉킨 가운데에 뚱그렇게 구멍이 뚫렸는데 속에서는 물이 하물하물 올라 솟았다. 아까 잡아 놓은 늣치는 바로 그 옆에 눈을 뜬 채로 등허리에 작살 자국과 붉은 피를 묻힌 채 아직 꼬리를 파르르 떨면서 가로누워 있었다. 봉근이는 만족한 듯이 한참 동안이나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침을 꿀꺽 삼키고 들었던 다랭이에 손가락으로 입을 꿰어 옮겨 넣었다.
둘러멜 만한 것도 못 되는 것을 억지로 무거운 것이나 지니는 듯이 다랭이를 어깨에 걸치고 나서 그는 약간 앞산을 바라보았다. 가당나무숲 속에서 금방 산비둘기 한 마리가 푸드득 날더니 뒤이어 차서방의 꿍맹이 소리가 다시 자지러지게 울려 온다. 산비둘기는 산을 넘어 서쪽을 향하여 하늘을 휘어돌아 없어진다.
깍지통같이 주워 입은 차서방이 신이 나서 꿍맹이를 울리며,
"예 간다!"
"예 간다!"
소리를 지르고 얼음 위를 암탉 풍기듯이 뛰어 돈다. 그 뒤론 무릎까지밖에 안 오는 달구지꾼의 더럽힌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키가 늘씬한 학섭이가, 키가 넘는 작살을 얼음 속 생선 대가리에 겨눈 채 꿍맹이를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헤번덕거린다. 봉근이의 가슴은 갑자기 두방망이질을 하듯이 뛰었다. 그리고 무슨 큰 내기나 할 때같이 가슴이 죄어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정신을 잃고 차서방과 학섭이가 콩알 튀듯이 뛰어 도는 것을 바라보다가 알지 못하는 새에 자기도 그쪽으로 달려갔다.
한 길이나 될까말까 한 맑은 물 속에는 어쩔 줄을 모르는 잉어 한 마리가 가끔 흰 배래기를 번득이며 숨을 곳을 못 찾아 어름거리고 있다. 그러나 잉어는 머리 위에서 연거푸 울리는 꿍맹이 소리에 어리둥절하여 마름 포기를 의지한 채 우뚝 서버리고 만다.
"꿍."
하고 얼음을 뚫은 꿍맹이가 슬쩍 빗서기가 무섭게,
"휙."
소리를 내며 작살이 물 속을 가르고, 그 다음 순간 잉어는 흰 배래기를 하늘로 곧춘 채 마름 포기에 박히고 만다. 쇠로 벼른 작살 끝이 잉어 대가리를 끌고 얼음 구멍으로 다시 나올 때 봉근이는 기쁨에 입이 터져서 자기 아버지의 얼굴을 우러러본다. 함석을 가위로 오려서는 납으로 붙여서 물통을 붙여 가며 김치쪽이나 부친 두부를 손가락으로 집어넣고는 사이다 병에서 소주를 따라 마시는 느림뱅이의 땜장이 학섭이가 이렇게 재빠르게 날뛰는 적을 봉근이는 본 적이 없었다. 두 팔로 작살을 들고 꿍맹이 소리에 맞추어 고기를 찌르던 그 긴장한 재주, 그러나 기쁨을 참을 수 없어 봉근이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손뼉을 칠 때 학섭이는 다시 가랫잎을 깨문 듯한 험상궂은 얼굴로 봉근이를 쳐다보았다.
"촐랑거리다 물에 빠질라."
그러고는 또 아무 말도 안 하고 얼음장 속을 들여다보았다.
"한 놈은 어데루 갔을까?"
차서방은 꿍맹이를 집고 봉근이가 생선을 집어 건사하는 것을 보다가 콧물을 찡― 풀었다.
"일본집에 가문 오십 전은 주겠군."
이렇게 혼자말로 중얼거리더니 학섭이와 함께 도망간 고기를 찾으려 다시 허리를 구부렸다.
동지 가까운 겨울해는 짧았다. 그러나 해가 모우봉(暮雨峰) 위에서 남실거릴 때 학섭이네 일행은 다랭이에 차고도 한 뀀챙이가 될 만큼 많은 고기를 잡았다.
해질 무렵이 되매 강 위엔 엄청나게 큰 산그림자가 덮이어 등골론 산산한 바람이 숨어들었으나 한 짐 잔뜩 지고 팔이 굽도록 무겁게 든 봉근이는 손끝밖에는 시리지 않았다. 몸에서는 더운 김이 훈훈히 나고 잔등과 겨드랑 밑에는 땀이 찐득하게 흘렀다.
그는 앞서서 언덕을 올라오다가 골목을 휘돌아 자기 집과 차서방 집을 발견하곤 기쁨을 참지 못하여 소리를 지르며 달음박질을 쳤다.
"고기 한 다랭이두 더 잡았다. 어―이."
"옥섬아, 게향아―---"
이렇게 소리소리 지르며 자기 집 대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봉근이가 고기 다랭이를 토방 위에 놓고 세수 소랭이에는 뀀챙이에 꿰었던 것을 옮겨 놓았을 때 계향이는 세 살 난 관수(觀洙) 동생을 안고 윗방에서 나왔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손에 물을 묻힌 채 뛰어나왔다.
"아이구 이게 웬 고기라니 수탠 잡었다."
"그러게 내가 나가 보라구 안 하딘."
어머니와 계향이는 입이 벌어져서 고기를 내려다본 채 한참 동안이나 움직일 줄을 모른다.
"더 잡을 겐데 꿍맹이 소리 듣구 남덜두 나와서 고만 조꼼 잡았다."
봉근이는 제가 잡기나 한 듯이 뽐을 내는 것을 계향이는 웃으면서,
"욕심두, 그럼 남두 잡아야지 너 혼자만 먹간?"
하였다.
"테―테 차서방이랑 아바지두 우정 남몰래 잡을라구 웃꼭대기에서부텀 잡아 내려오댔는데 모우봉 밑에 오네껜 모두 쓸어 나오는데 그래두 우리가 델 수태 잡아서."
이러고들 있을 때에 뒤쫓아 차서방과 학섭이가 팔짱을 끼고 들어온다.
"왜 이건 보구들만 있니, 정 험한 건 물에 좀 씻구, 작은 건 추려서 한 오십 전 어치씩 께라. 저녁끼때 넘기 전에 어서 팔으야 돈냥이나 산다."
학섭이는 작살을 두루마기 섶으로 닦으면서 투덜거리며 서둘러 대는데 차서방은 꿍맹이를 기둥 옆에 세우고 또 한번 코를 찡― 풀었다.
"큰 거나 팔구 작은 건 옥섬이네하구 논아서 찔게나 하디 머 걸 다― 팔겠소."
봉근이는 어이가 없어서 옆에 멍하니 서 있는데 계향이는 아이를 안은 채 아버지를 핀잔 주듯 하였다.
"얘가 정신이 나갔구나. 이좀 벌이 없는데 이게 벌이다. 팔아서 쌀을 사든지 술을 사든지 하디 우리가 이런 생선을 먹으면 밸이 꼴려서 죽는다."
차서방도 팔자는 주장이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서서 이 사람 저 사람의 얼굴들만 쳐다보더니, 그대로 부엌으로 들어가서 바가지에 물을 떠가지고 나온다.
"인내우다 내 할게. 어서 불이나 때우."
학섭이는 손을 걷고 고기를 골라서 대강대강 씻기 시작한다.
"좀 냄겼다 한잔하야디."
둘이는 쭈그리고 앉아서 중얼거린다.
"여부 있소. 팔다 남은 거 가지구두 술 한 된 치우겠는데."
"아니 아마 이좀 이게 귀한 물건이 돼서 다 팔리리다. 미리 좀 내노야디."
"허리 끊어진 놈두 댓마리 되니 그걸 지지구두 너끈히 술 되는 없애겠는데 어서 다― 께서 팝세다. 한 오 원 벌문 메칠 두구 땟손에 시장치나 않게 안 디내리."
봉근이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고무신을 마루 밑에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서 계향이도 들어온다. 계향이는 아이를 아랫방에 놓고 혼자서 샛문을 열고 자기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관수가 달랑달랑 걸어와서 아랫목에 서서 멀거니 농짝을 바라보고 있는 봉근이의 다리를 붙든다.
"형이 고기 먹어? 고기 먹어?"
이렇게 관수는 봉근이를 쳐다보며 잘 돌아가지 않는 혀로 말을 건넨다.
봉근이는 관수의 말도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아니 지금도 문 밖에서 중얼거리고 있는 아버지와 차서방의 말도 들리는 것 같지 않다. 갑자기 사지가 노곤하여지며 귀와 발가락이 근질근질하고 머리가 휭하다.
지금까지 어깨에 메었던 것 그리고 팔이 휘도록 들었던 것―---느믈느믈한 피 뚝뚝 흐르는 생선들. 그 많은 잉어와 늣치 그리고 어해와 붕어.
밖에서는 언 땅에 물 쏟는 소리가 나더니,
"그럼 차서방은 아랫동네루 가우. 내 요릿집하구 려관으루 가볼게. 그리구 파는 대로 두붓집으루 오우다."
하면서 대문 밖으로 나가는 기척이 들린다. 아마 고기를 다 꿰고 씻어 가지고 팔러 나가는 모양이다.
이윽고 웃방에서 계향이가 담배를 붙여 물고 연기를 푸― 내뿜으며 봉근이 옆으로 내려왔다.
"에나 이거 가지구 호떡이나 사머."
봉근이는 계향이가 쥐어 주는 십 전짜리를 보고 비로소 정신이 펄각 드는 것 같았다. 그는 설움과 분함이 금시에 북받치는 듯이 몸이 일시에 북― 떨리었다.
십 전짜리 백통전을 잠시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이까짓 돈."
하고 방바닥이 뚫어져라고 메어던진다. 그리고는 터져 올라오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는 듯이 펄삭 주저앉으며 엉엉 울기 시작한다. 백통전은 방바닥 위에 손톱자리만한 자국을 그리고 그대로 띠그르르 굴러서 방걸레 옆에 가 멎는다. 관수가 돈을 따라 그쪽으로 걸어가다가 봉근이의 울음 소리에 놀라 이쪽을 쳐다본다.
"이 새끼 무슨 버릇이야."
계향이는 낯이 해쓱해지도록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래서 담배를 내던지고 달려가서 돈을 집어 다시 봉근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나 봉근이는 누이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돈을 동댕이쳐 내던지며 다리까지 버둥거린다.
"그까짓 돈 없이두."
울음에 섞여서 중얼거리다가 말끝을 덜컥 목구멍으로 삼켜 버린다.
"머이 어드래?" 계향이는 말끝을 쫓아가며 따지려 든다.
"호떡 안 먹어두 산다."
봉근이의 말이 채 떨어지기 전에 무섭게 쳐다보던 계향이의 바른손은 봉근이의 눈물에 젖은 왼볼을 후려갈겼다.
"이 자식 죽어 버려라."
계향이는 땅바닥에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앉아서,
"왜 때려."
"왜 때려."
하며 대드는 봉근이를 남겨 두고 자기 방으로 조급하게 올라왔다. 그리고 이부자리 갠 데다 푹 얼굴을 묻고는 소리 안 나게 흑흑 느껴 울었다.
부엌에서 밥을 짓던 어머니는 방 안에서 남매끼리 다투는 소리를 송두리째 들을 수는 없었으나 계향이가 봉근이를 두들기는 원인이 어디 있는지를 알고 있는만큼, 계향이의 주먹이 봉근이를 후려치는 소리는 자기의 가슴을 쑤시는 거나 같이 아프고 뒤이어 엉이엉이 우는 봉근이의 울음 소리에 피는 끓는 솥처럼 설레었다. 아침부터 종일 두고 하는 소리와 짓이 자기에 대한 공치사와 지청구뿐이었다. 그래도 아무 말 않고 내버려두었더니 에미 볼을 후려갈기지는 못해 강바람에 빨갛게 핏빛이 운 봉근이의 뺨따귀에 분풀이를 하고야 마는구나. 계향이와 봉근이의 아버지 김일구(金日九)가 죽은 뒤 얼마나 자기는 살아가려고 애를 태웠던고. 그때 자기는 겨우 스물여섯 살, 계향이는 아홉 살이고 봉근이는 세 살이 났었다. 아이 둘을 옆에 하나씩 끼고 홀몸이 된 자기는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지 하려고 하였다. 광산에 가서 굴 속에 가서 혹은 기계간에 가서 장정과 같이 뼈가 가루 되도록 일할 생각도 먹었다. 그래서 죽는 한이 있어도 계향이가 가는 보통학교 이학년은 계속해 다니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일자리를 안 준 건 광산회산가 세상인가 몰라도 자기는 며칠 안 되어 세상 여편네가 먹는 결심이란 만일 굳건한 용단력이 있다면 죽음밖에 다할 길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 계향이―---그때는 봉희(鳳姬)라 불렀건만--―-그의 공부도 가갸거겨에서 끊어지고 쌀밥이 조밥 되고 밥이 다시 죽이 되는 한 해 동안 해보고 난 것 부대껴 보고 생각한 끝이 재가(再嫁)였다.
그때 김학섭이는 말뎅이 금광이 한참 경기가 좋을 때라 하루에 손에 집는 게 돈이었다. 매일같이 생기는 함석지붕 물수채, 학섭이는 하루 해 있을 때까지만 어물거리면 돈 이 원은 헐하게 잡았다. 지금 계향이가 자기를 나무라는 것이 재가한 데 있다면 대체 그때의 자기로서 이 길 아닌 어떠한 방향이 남아 있었단 말이냐. 그때 김학섭이는 게으름뱅이도 아니었고 술은 안 하는 축은 아니었으나 가끔 먹으면 걸걸하게 웃고 애들과 놀다간 씩씩 자버리곤 했다. 한푼 생기면 쌀보다 소주를 찾게 되고 술 한잔 마시면 한 되 사오라고 집안 사람과 지트럭거리고 낯도 안 닦고 검버섯이 돋은 채로 쭈그리고 공술잔을 거두러 다니게 된 것은 말뎅이 광산이 폐광이 된 뒤 평양을 거쳐 삼 년 전 이곳에 온 뒤부터다. 그래도 자기는 기생으로 넣기를 얼마나 반대했을까. 그때 앞집 차서방 딸 옥섬이의 새옷이 부러웠는지, 찾아다니며 노는 젊은 녀석들과 시시덕거리는 것이 부러웠는지는 모르나, 기생 권번에 들어간다고 서두른 것은 애비도 애비려니와 기실은 봉희 자신이 아니었던가. 기생 허가가 나와서 버젓하게 요릿집에 불리게 되는 동안 일 년 하고도 반 년이나 일 원 오십 전씩 월사금을 물고 소리선생이 왔다고는 삼 원, 검무선생이 왔다고는 오 원씩―---그것을 마련하느라고 쓰인 앤들 어찌 애비에게 없었다 할까. 지금 돈푼이나 들여다 쌀되나 사는 날이 며칠이나 되었길래 벌써부터 서방에다 제 좋구 나쁜 걸 가리려 들고 얼핏하면 에미 노릇한 게 뭐냐구 지청구가 일쑤란 말이냐.
어머니는 손끝에 물이 젖은 채 샛문을 열어 젖히었다.
"이 애가 누구한테 할 분풀일 못 해서 아일 때리구 야단이가. 그래 네 에밀 못 잡아먹어 아침부터 독이 올라서 법석이냐."
어머니가 성이 나서 덜렁거리는 바람에 땅바닥에서 돈을 만지작거리던 관수가 자겁에 놀라 샛문으로 달려가서 어머니에게 매어달리며 집었던 돈을 내어 준다. 어머니는 관수를 부둥켜안고 올라와 나지도 않는 젖을 옷섶을 비집고 물려 주었다. 안팎을 융으로 만든 때 묻은 저고리 속으로 맥없이 늘어진 젖통을 쥐고 힘들여 빠는 소리가 쭐쭐거리며 들린다. 와락 한마디 화를 쏟으면 좀 속이 풀릴까 했더니 어머니의 속은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이 더 목구멍을 치받치었다.
그는 목소리를 억지로 낮추어 차근차근 이르는 말같이 하려고 애쓰면서,
"인젠 네 나이두 셀 쇠면 열아홉이야. 그만했으면 세상 물게두 알구 집안 살림살이두 채잡아 할 나인데 부모가 이르는 말이라믄 역정이 나서 한사하구 말대답이디. 애비가 한마디 하믄 열이 올라서 사흘 나흘 집안 사람을 못살게 굴구."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그는 우깐 딸의 기색을 살피느라고 말을 멈추었다.
계향이는 울기를 멈추고 이불에서 얼굴을 들고 멍하니 어머니의 말을 귓등으로 듣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다시 일층 목소리를 낮추어서 타이르듯이 이야기를 꺼내려고,
"오늘 일만 해두 아침에 내가 한 말이."
까지 하였는데 뜻밖에 계향이의 목소리는,
"듣기 싫여! 한 말 또 하구 한 말 또 하구."
하고 말문이 막히도록 쏘아 버린다. 어머니는 말을 뚝 끊었으나 오히려 냉정하게 가라앉았다. 오냐 그것이 딸이 에미에게 대하는 태도라면 에미도 또한 이 이상 더 붙잡지 않으리라-―--그의 해쓱해지는 낯빛은 이렇게 말하는 듯이 잠깐 묵묵히 앉았다가 갑자기 관수가 물고 있는 젖꼭지를 쭉 빼고 벌떡 일어섰다. 관수가 놀라 불띠가 튄 듯이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한다. 어머니의 정신은 그러나 관수의 울음으로 헝클어지지 않고 일어서는 대로 와락 샛문을 잡아 젖히고 윗방으로 올라간다.
"이년!"
이렇게 한번 소리 지르기가 무섭게 어머니의 손은 계향이의 머리카락을 덥석 쥐었다.
"두말 말구 네 맘에 드는 서방 데리구 맘대루 치탁거리면서 살어라!"
그러나 눈시울이 약간 부어 오른 계향이도 비록 머리칼을 잡히기는 하였으나 매서운 눈초리로 어머니의 얼굴을 낯짝이 뚫어지라고 바라보는 품이 예상보다 녹록할 것 같지 않았다. 아랫방에서 관수와 봉근이가 달려와서 엉이엉이 울며 두 사람을 하나씩 부여안고 그새에 끼어 선다.
"너는 그래 서방 몰르구 이태 살어왔니."
한참 바라보던 계향이의 빨갛게 핏빛이 운 입에서 이 말이 튀어나오자 어머니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다. 연하여 계향이의 독살 오른 목소리가 어머니의 찌그러진 표정을 향하여 조약돌을 던지듯이 튀어나온다.
"애비라구 가갸짤 변변히 가르켜 줬단 말인가. 밥을 알뜰히 멕여서 남처럼 호사를 시켰단 말이냐. 기생질해서 양식 대구 몸 팔아서 술 멕인 게 이붓자식 된 큰 죄가 돼서 술독에 넣어 치닥거릴 못 시켜 죽일 년이란 말이냐. 할 거 다 하구 틈틈이 내 좋은 서방하구 즐기는 게 원수가 돼서 술 먹었노라구 아우성이요 술 안 먹은 건 정신이 말짱하다구 에미 애비 된 자세루 사람을 졸라 대니 나가라믄 나가지 엄매 그늘 밑에서 흔하게 잡은 물고기 한 마리 먹어 본걸."
홱 뿌리치는 바람에 어머니는 멍하니 잡고 섰던 머리카락을 놓치고 좀 앞으로 비틀거렸다. 계향이는 치맛자락을 쥐고 섰는 봉근이를 물리치는 대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저녁 산산한 바람이 열 오른 얼굴을 차갑게 스치고 간다. 귀가 씽― 하고 다시 열리면서 방 안에서 아이들 우는 소리가 유난히 요란스럽다. 그는 한참 동안 정신을 잃고 선 채로 앞산을 바라보았다.
곤하게 들었던 잠이 대문에서 두런거리는 말소리로 깨어 보니 창문이 훤하게 밝았다. 봉근이는 한번 잠이 들면 부둥켜 일으키기 전에는 누가 뭐라고 떠들어도 깨지 못하는 성미였는데 대문 어귀에서 웅얼거리는 술취한 아버지의 말소리에, 기겁을 하여 소스라쳐 깨어난 것은 이상스런 일이었다.
전에는 제 옆에서 술을 먹으며 노래를 부르고 별짓을 다 해도 잠을 깨어 본 일이 없는데 집이 바뀌어 잠자리가 달라지고 아버지가 주정을 하러 올 것을 미리부터 근심하면서 자던 때문인가? 어쨌든 그의 신경이 그만큼 아버지의 목소리에 예민해져 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어제 저녁 물고기 사건으로 어머니와 누이의 싸움이 마루턱에까지 벌어진 채 누이는 생각을 돌리지 않고 그날 밤으로 대강한 것을 꾸려 가지고 봉근이와 함께 이 집―---이 고을 본바닥 기생 명월(明月)네 거리채 두 방을 빌려 가지고 이사해 버렸다. 방에다 불을 넣고 나서 계향이누이는 위선 아랫방에 돗자리를 깔고 이러저러한 방치장만 해놓고는 돈 변통을 나가는지 그 발로 어디엔가 돌아다니다가 요릿집으로 불려간 모양인데 봉근이는 혼자서 윗간 아랫목에 이불을 펴고 엎드려서 학교서 배운 것을 두어 장 복습하는 척하다가 누이는 오지 않고 이사한 것을 모르고 있던 학섭이 아버지가 달려와서 집을 부수고 지랄을 치지나 않을까 근심하며 잠이 들었던 것이다. 꿈에도 여러 번 주독에 코가 빨개진 검버섯이 돋은 학섭이의 얼굴을 보며 자던 터이라, 그리 높지 않은 말소리에 이같이 눈이 뜨인 모양이다.
밖에서 들린 목소리가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아버지의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엔 그는 약간 몸서리가 쳐지고 가슴이 두근거리었다.
누이―---누이는 아랫방에 들어와서 자고 있는가. 만일 누이가 없다면 이 봉변을 혼자서 겪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과, 누이가 없으면 욕이나 몇 마디 하고 가버릴 것이니 오히려 누이가 간밤에 집에 오지 않고 좋아하는 '인상'하고 어디서 밤을 샜으면은, 하는 두 가지 생각이 서로 엉클리어서 머릿속에 뒤끓는다. 뒤쫓아 아버지가 대문 어귀를 돌아 뜰 안에 들어서는 발자국 소리가 난다.
"이 고약한 년 같으니 배은망덕하는 년 같으니."
이렇게 혀꼬부라진 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족제비 잡으려고 파놓은 구멍에 다리가 빠졌는지 쿵 하고 넘어지는 소리와 "에익" 하며 다시 일어나는 기척이 들린다.
마루에 올라서는 쿵 하는 소리를 들을 때엔 봉근이는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서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안으로 건 문을 덜강거리며 열라고 야단을 친다. 아랫방에서 낑― 하고 잠이 깨는 기척이 들린다. 계향이는 낑― 하는데 입을 쩔갑쩔갑 씹는 자가 또 하나 있는 것을 보면 아랫방에서 자는 것은 계향이누이뿐이 아닌 모양이니 만일 '인상'과 같이 품고 누웠다면 아버지와의 이 봉변을 어찌 감당할 것이냐. 항상 미워하고 말끝마다 욕 잘하던 '인상'이 계향이와 품고 누웠는 것을 다른 날도 아닌 오늘 이때에 본다면은 검버섯이 돋은 학섭이의 얼굴은 호랑이같이 무서워질 것이요 그의 두 손은 독수리가 병아리를 채듯 이 두 사람을 덥석 쥐고 갈래갈래 찢어 버리고 말 것이다. 봉근이는 머리 위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을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이윽고 안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나고 문이 삐익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웬일일까 그 뒤에 올 화약 터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한참 문이 열린 채로 있더니 뜻밖에 학섭이는 서투른 말씨로,
"도―모 시쓰레이(실례했습니다). 하하, 오소레오이데스(송구스럽습니다)."
하고 굽실거리는 품이었다. 그리고는 문을 가만히 닫고 달음박질이나 치듯이 뜰을 건너 종종걸음으로 대문을 나가 버린다.
"하하하, 약코상 후루에데 이야가라(녀석, 벌벌 떠는 꼴이란)!"
아랫방에서 사나이의 목소리가 탁하게 들려 온다.
봉근이는 처음에는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 그러나 이불 밖에 얼굴을 내놓고 아무리 전후를 생각하여도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인상'하고 품고 있다가 학섭이한테 찢겨 죽는 한이 있다 쳐도 봉근이는 아랫방에서 계향이가 몸을 맡기고 있는 사나이가 '인상'이기를 얼마나 원하였을까. 그러나 그는 그 때문에 여태껏 아버지 어머니와 충돌하였고 또 이사까지 하게 된 학섭이가 매일같이 같이 자라고 원하던 식료품가게의 젊은 주인이었다.
물론 계향이가 몸을 맡긴 사나이는 봉근이가 아는 것만 해도 반타는 넉넉하다. 그러나 돈 없고 구차한 세무서 '인상' 윤재수하고 좋아 지내게 된 다음부터는 결코 다른 사나이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큰 돈이 떨어진다고 아무리 졸라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구박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는 더욱더욱 완강하게 그들과 싸웠다.
봉근이는 아버지한테 맞고 어머니한테 갉히우면서도 구차한 윤재수와 좋아하며 종시 다른 남자에게 몸을 허하지 않는 계향이를 볼 때에, 무슨 숭고하고 신성한 것을 발견하는 것같이 누이가 우러러뵈었다. 평양 가서 여학교에 다니다가 방학 때마다 돌아오는 누구누구의 평판 높은 처녀들도 이렇게 신성하고 마음이 깨끗할 것 같지 않았다. 그는 학교 동무들이,
"깅호―꽁(金鳳根) 매부 한 다스? 두 다스?"
할 때에도 천연히 속으론 '네 누이들보다 깨끗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이 세상에 사랑도 쥐뿔도 없으면서 돈 때문에 명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처녀들이 나이 많고 개기름 흐르는 사나이의 첩으로 시집을 가는지를 봉근이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던 계향이가 이것이 웬일일까? 물론 집을 뛰쳐나왔으나 간조(봉급) 찾을 날은 멀었고 돈 한푼 없이 살림을 해갈 채비가 막연해서 홧김에 먹어 놓은 술기운에 이 일을 저질러 놓은 것을 봉근이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속에서 여태껏 부모와 주위와 싸워 왔길래 누이는 훌륭하였거늘 결국 돈 때문에 몸을 단 한 번이나마 맡기고 말았다면 어느 모를 취할 길이 있을 터이냐. 어머니와 다투고 집을 뛰쳐나오는데 봉근이가 쫓아나온 것도 그것을 믿고 따랐던 때문이 아니었던가!
봉근이는 모든 것이 더러워 보였다. 아버지, 어머니, 누이―---모두가 더럽고 구려 보였다. 세상에는 숭고하고 신성한 것은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것 같았다.
벌써 해가 치밀어 앞으로 한 시간이면 학교가 시작될 것이다. 봉근이는 무거운 머리를 들고 맥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랫방에선 다시 잠이 들었는지 조용하다. 봉근이는 낯도 씻지 않고 아침도 찾아 먹을 생각 없이 책보를 들고 방을 나섰다.
"얘 조반 안 먹구 발세 학교 가니?"
대문을 나서려고 할 제 이러한 누이의 소리가 들렸으나 그는 들은 척도 안 하였고 또 듣는 것까지도 더러운 것 같았다.
골목을 돌아서서 발샛길을 걸으며 봉근이는 더러운 하수구 속에서 비어져 나온 것같이 마음이 깨끗하고 일신이 가벼웠다.
아랫동리에서 오는 길과 합하는 곳에서 오학년 선생의 아들을 만났다. 그는 봉근이보다 한 학년 위인데 몸은 그와 비등하다.
코 흘린 자국이 발갛게 난 얼굴을 싱글싱글하며 서너 발자국 앞으로 뛰어가면서 훌쩍 얼굴을 돌리더니,
"깅호―꽁. 매부 몇이든지? 한 다스? 두 다스?"
하곤 닝금닝금 뛰어간다. 봉근이는 항상 듣는 이 말이 지금같이 모욕적으로 자기를 충격한 것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어저께로부터 오늘 아침까지 보아 오고 겪어 온, 아니 나서 이만큼 자라기까지 경험한 가지가지의 더럽고 추한 것들이 함께 뭉쳐서 덩지가 되어 그의 얼굴 위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깅호―꽁. 매부 한 다스? 두 다스?"
다시 이렇게 곡조를 붙여서 외면서 선생의 아들은 저만큼 뛰어가고 있다. 봉근이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와락 두 주먹을 쥐고 모자도 책보도 길 위에 집어던지고 뒤를 쫓아갔다. 선생의 아들은 여느 때와는 다른 봉근이를 보고 겁이 나서 달음박질을 치는데 봉근이는 길이고 밭이고 얼음이고 분간 없이 지금 따르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리고 두 주먹을 쥔 채 죽기를 한하고 자꾸만 쫓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