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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원시조/유모 강씨의 상행을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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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유모 강씨(乳母姜氏)의 상행(喪行)을 보내면서


내 젖엄마는 그 시집이 교하(交河)다。우리 집에 들어와서 얼마 있다가 다시 교하로 가더니 내가 보고 싶어서 도로 뛰어나와 첫새벽에 경기 감영(京畿監營) 앞을 지나 성문 열자 곧 회동(會洞)으로 왔다。내가 열한 살에 양근(楊根)으로 내려가 다시 진천(鎭川)으로 가니 엄마는 서울 처져 있었다。우리 집이 서강(西江)으로 온 뒤는 흔히 와 있더니 도로 진천으로 가니 진천은 멀어서 못 오고 목천(木川)으로 나오니 길이 좀 가까와 한동안이나 와 있었다。얼마 아니하여 우리가 또 서울로 오니 엄마 점점 늙었으나 내 아들딸을 보면 업어 주고 안아 주고 고달픈 줄을 몰랐다。돈화문(敦化門) 앞 서쪽 골목에서 조그만 가게를 하면서 틈나는 대로 나를 보러 다녔다。내가 새문 밖 「초리우물」 옆에 살 제 엄마는 농포 안서 세상을 떠났다。발인이 경기 감영(京畿監營) 앞을 새벽에 지나는 것을 보고 나는 옛일을 생각하여 더 슬펐다。이 길이 그 길이다。그때 이 앞을 지나오던 그 모양이 보이는 것 같다。




칠십년 가진고생 다시업슬 외론신세
숨질때 날찻다가 고만감아 버리단말
단하나 밋고바라던 그맘늣겨 하노라




못참아 「왝왝」①하기 잘하고도 「유명지인」②
「허위」③는 고만이오 인정만하 병이랏다
두어라 다밉다해도 나는「구수」④ 하여라

註 ①자기 성미대로 아무 말이나 막 한다는 말。②별명난 사람。③남 주기 좋아한다는 말。④소박(素樸)한 맛。



「경툇절」① 「불공」갈제 나를어이 속엿든가
놀다가 엄마생각 「베정적」②이 어제런듯
달래던 님안계시니 이제운들 뉘알리

註 ①정토사(淨土寺)의 음와(音訛)。②어린애가 생떼부리는 것。엄마가 정토사 불공 갔을 적에 내가 어찌 울었던지, 두 분 어머니가 「자개소반」에 밥을 차리어 나를 달랬다。




집조차 못지니고 다늙기에 겻방신세
「박동」서 저즘보고 해진치마 속알파라
그래도 될바랏더니 븬맘만이 남아라




보고자 보고자던 공능(恭陵)장터 「양완실」①이
차저다 몹시일코 일평생에 못이박혀
「저승」을 뉘미드리만 모자만나 보는가

註 ①엄마의 아들 이름이다。우리 집에 들어온 뒤, 그 아들이 하도 보고 싶어서 국문(國文)을 배우면서 쓴다는 것이 「공능장터양완실이」 여덟 글자뿐이었었다。그 뒤에 데려다가 키우더니 장가까지 들여서 몹시 잃었다。




「사내」①라 술군이오 「딸」「아오」라 범연하다
거적에 싸다십히 막「꾸리어」 치어내니
내세던 젓먹인아들 얼굴업서 하노라

註 ①남편。




차듸찬 단간방에 밤중사경(四更) 누엇슬제
목몃번 말랏든가 속쓰린들 뉘알엇스리
마지막 하려든말도 잇섯슬줄 아노라




사노라 내억매어 범연한적 만핫도다
「한만」한① 늙으니냥 오면오나 가면가나
「야속」②해 더설엇슬일 가슴뭉쿨 하여라

註 ①대수롭지 아니한。②섭섭하여 생기는 원망。




초종일 걱정하기 어이런줄 몰랏더니
저녁상 밧고나니 눈물돌자 목이메어
가는「넉」① 섭섭다마소 내못「니저」 하노라

註 ①혼백(魂魄)。


一○

「불공」도 질기드니 반거의나 보살할멈
승행(僧行)야 잇으리만 맘쎄로는 어엿브다
죄업는 불상한「이넉」 존데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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