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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양/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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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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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능하고 돌아 와서 왕은 이틀을 자리에서 나지 못하였다.

침전에서 시무(視務)하였다. 경연관(經筵官)도 침전에 불렀다.

수양이 형왕의 건강을 근심하여 누차, 한동안 안양하기를 진언하였지만 왕은 굳게 거절하였다. 조금이라도 당신의 몸에 편하든가 당신께 즐겁든가 당신께 호사스러운 일은 일체로 금하고 행하지 않았다. 여관은 곁에도 못 오게 하였다.

인산 직후는 성하(盛夏)였다. 찌는 듯이 더웠다. 그러나 당신은 얼음은커녕 부채질까지도 엄금하고, 이 찌는 듯한 더위를 그냥 참았다. 의대에는 통 땀이 배고 살이 물커지고 하여 그 고통이며, 냄새며가 보통 사람으로도 견디기 힘들 만한데 더욱이 금지옥엽으로 자란 왕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때마다,

『지하의 선왕께서는 어떠시랴!』

하고 눈물을 흘리고 하였다.

대신이며 재상들도 아무 말도 못 하였다. 그들의 눈에도 나날이 더 쇠하여 가는 왕의 건강이 번히 보였지만, 어떻게 하여야 될지 방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명군의 아래서 좋은 지휘가 있으면 그것을 어김없이 이행할 줄은 알지만 스스로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방책을 안출할 줄은 모르는 그들이었다.

왕은 좀체 자리에 눕지 않았다. 자리에 눕는 것은 죄악이라 보았다. 일어나서는 강인히 시무하였다. 시무라 한댔자, 그날 그날의 간단한 일을 보고 경연에 나아가고 하는 것뿐이지, 중대한 용무는 전혀 치지도외하였다. 삼 년을 치르기 전에 중요한 일을 보거나 처리하는 것은 효도에 어긋나는 일이라 보아서 그냥 방임하였다.

신하들도 모두 무위무능한 사람뿐이지, 변변한 사람이 없었다.

황보인(皇甫仁) 같은 사람은, 아무 재간도, 지략(智略)도, 압력(壓力)도 없는 한 늙은 선비에 지나지 못하였다. 대궐 문지기 노릇이나 하라면 잘 감당해 나갈 사람이지만 국정(國政)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한 때 조선 천지를 휘날린 용명(勇名) 높은 김종서(金宗瑞) 같은 사람도, 선왕의 아래서 선왕의 지휘대로 다만 충직하게 일하였기에 큰 일을 성공하였지, 저 혼자 제 마음대로 버려 두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분간도 못하고, 무론 그런 큰 일을 성공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혹은 허후라, 혹은 하연이라, 모두 여사 여사한 일을 해라 하면 충실히 그 일을 실행은 할 사람이지만, 스스로, 어떻게 어떻게 하면 나라에 도움이 되리라고 꾀를 안출하고 베풀만한 능력은 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들 위에는 다만 명철한 임금이 있어서 지휘하고 지도하고 시키어야만 될 것이어늘, 왕은 다만 복상에만 충실하고 국사는 돌보지 않는다.

신숙주라, 성삼문이라, 박팽년이라, 신진기예의 학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아직 그 지위도 국정에 용훼할 처지가 못 될뿐더러, 경력이 얕아서, 정치가 어떤 것인지, 치민(治民)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만한 나이가 부족하다. 다만 슬기로울 뿐이지, 그 인격에서든 경력에서든 지위에서든 역량에서든 국인에게 받는 신임에서든, 또는 수완에서든 이 임(任)에 당할 만한 사람은 수양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수양은 형왕의 신용이 없다. 그 지위가 지위라 형왕은 늘 수양에게 의혹의 눈을 던지고 경계심을 품고 마음 터놓지를 않는다. 이것이 수양에게는 매우 민망하고 답답하였다.

둘러보면, 형왕은 정사를 돌보지 않고 복상의 예절만 지키기에 급급하고 대신들은 지금 이 세상을 가지고 태평세월이라 하여 술이나 먹고 바둑이나 두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고 신진기예의 소년들은, 경서(經書)토론만을 위주하고 있으니, 한심스러운 노릇이었다. 경서 이외의 학술을 잡술이라 하여 수모하기 한량이 없고, 다른 학문에 정진하는 자가 있으면 사도에 어긋난다 하여 배척하여 마지않는다. 선왕 세종은 이렇지 않았다.

선왕 삼십 년간에 가꾸고 기른 찬란한 문화는 지금 나날이 쇠하여 간다. 일기(技), 일능(能)이 있는 자면 그 기, 그 능이, 비록 한 역학(譯學), 한 야금(冶金), 한 음률(音律), 하다 못해 천한 장인(匠人)에 지나지 못할지라도 좀 빼난 기능이 있으면 육품직 이상의 벼슬을 주어 장려하여 마지않았다.

그랬기에 단 삼십 년 재위 동안에 이 땅은 기름지고 제도 문물이 갖고 문화가 향상되고 방가가 안돈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형왕은 문학 이외의 다른 학술을 모두 잡기라 하여 천대하고 멸시하고 돌보지 않고 그 학술의 발달을 국가의 불행으로 알고 억압하여 마지않는다.

부왕과 같이 왕 당신이 온갖 학술에 통달하여 당신이 몸소 앞서 지휘하고 가르치고 하지는 못할망정, 그것을 잡술이라 하여 억압하고 배척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무슨 학문이던 간에 발달되면 그만치 방가에 유익하고 도움되고, 혹은 시재 필요치 않다 할지라도 언제든 쓸 데 있는 날이 있을 것이다. 설사 쓸 데 있는 날이 이르지 않는다 할지라도, 「있어서 해로울 것」은 없을 것이다.

유학(儒學)도 물론 쓸데없는 바는 아니지만, 그것이 쓸데 있는 만큼 다른 학문도 또 쓸데 있다. 한 개 방가에는 온갖 학문이 다 갖춰야 할 것이다. 이전 부왕은 그러하였다. 어느 것을 더 중히 여기고 어느 것을 더 경히 여기지 않고 학문이라는 학문은 다 존중히 여겼다. 부왕 치국(治國) 삼십 년간에 이 나라가 이렇듯 완전해지고 이렇듯 건실하게 된 것은 오로지 학문에 경중을 두지 않고 어떤 학문(기예까지)이든 간에 한결같이 귀히 여기고 장려하고 북돋운 덕이다.

지금 형왕은, 현재는 다만 복상에만 주력하고 장려에도 (그 성격으로 보아) 유학(儒學)만을 힘 쓸 테니, 부왕 삼십 년간에 닦아 놓은 기초는 무엇을 의지하고 성장하랴.

『아! 아.』

과거를 돌아보고 장래를 생각하면 수양은 저절로 탄식성이 나오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형왕과 다투리라. 다투어서라도 아버님의 유지를 달성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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