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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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오너라.』

왕(세종대왕)은 손에 들고 보던 물건을 고즈너기 놓으며 고 함쳤다. 그리고 영외(楹外)에 꿇어앉아 있는 정승황희(政丞 黃喜)를 건너다보았다. 황 희를 보면서 혼잣말 비슷이 입을 열었다.

『나보다도 동궁이 더 쓸 데 있을걸……』

『절도사(節度使)도 혹은 그런 뜻으로 진상했는지도 모르겠 아옵니다.』

황 희의 복주.

왕의 앞에는 함길도(咸吉道) 절도사(節度使) 김 종서(金宗 瑞)에게서 진상한 돈피 이불이 놓여 있었다. 건장한 왕은 이 런 것까지 쓸 필요가 없어서 약질인 세자(후일의 문종(文宗) 대왕)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왕의 부름에 내관(內官)이 툇마루 아래 국궁하고 대령하매 왕은 내관에게 동궁(東宮)을 부르라 명하였다.

이윽고 쿵쿵쿵 땅이 울리는 소리가 사정전(思政殿) 앞으로 돌아와서 멎었다.

『동궁 대리 등대하왔읍니다.』

우렁찬 이 소리에 굽어보니 거기 등대 한 것은 왕이 부른 동궁이 아니요, 왕의 둘째아드님 진평대군 유(후에 수양(首 陽)대군이라 고쳤다)였다. 벌써 스무 살이 넘은 진평이었지 만 한 개 소년 장난꾸러기다왔다.

눈에 미소를 띄고 손을 읍하고 허리를 굽히고 씨근거리며 뜰 아래 대령하고 있었다.

왕은 이 씩씩한 둘째아드님을 굽어보았다. 굽어볼 동안 눈 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너를 부른 게 아니라 동궁을 불렀다.』

『동궁은 어디 갔느냐?』

『모르겠읍니다.』

『모르면 왜 네가 왔느냐.』

『승전빛(承傳色─內侍)이 동궁마마를 찾기에 신이 대리로 나온 따름이옵니다.』

『너는 모를 일이로다. 동궁이래야지……』

왕은 미소하며 백발 동안(白髮童顔)의 정승 황 희를 돌아보 았다. 황 희도 이 부자지간의 대화(對話)를 미소하며 듣고 있다가 왕이 보는 바람에 좀더 허리를 굽혔다.

뜰에 읍하고 서 있던 진평이 발꿈치를 조금 높이고 머리를 좀 들고 전내(殿內)를 들여다보았다. 돈피 이불을 종내 발견 한 모양이었다.

『옳아, 상감마마 저 돈피 이불을 동궁마마께 하사합시려 고 부르셨읍니까?』

『그렇다. 부러우냐?』

『원 천만에! 신은 그런 걸 쓰면 몸이 썩어집니다. 그런 건 동궁께나 하사합시지 아예 신께는 생각도 마십시오. 신은 또 다른 무슨 분분가 하고 달려왔읍더니…… 그러면 동궁마 마를 찾어 보내오리다.』

『아니 네가 동궁께 갖다 드려라.』

왕은 이불을 문 가까이로 밀어 놓았다. 그것을 진평은 끌 어 당겨 가지고 어깨에 걸치고 무슨 콧노래를 부르면서 내 전으로 물러나갔다.

왕은 물끄러미 그 모양을 바라보다가 다시 황 희에게로 향 하였다.

『어떻게 보시오?』

『네?』

『유를 어떻게 보시오?』

『활발하신 기상이옵니다.』

『동궁과 비겨서?』

『…………』

황 희는 대답지 않았다. 손을 양 무릎에 놓고 머리를 좀더 숙였다. 대답할 바를 몰랐다.

왕이 잠시 뒤에 다시 한 번 채근하여 보았다—

『동궁과 유와 그 사람됨이 어느 편이 낫(優)겠오?』

드디어 황 희가 입을 열었다—

『전하, 전하께서는 단지 그 사람됨을 하문하셨는지?』

이번은 왕이 대답치 못하였다.

『그 사람됨으로 말씀하옵자면 동궁께서는 인자하시옵시 고, 진평 대군은 활발합시어서 일장일단이 있아옵니다.』

왕은 이 만족치 못할 대답에 한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한 편은 인자하고 한편은 활발하다는 이 간단하고 평범하고도 요령부득의 대답을 듣고자 함이 아니었다. 좀더 투철한 대 답, 좀더 요령 있는 대답—말하자면 좀더 세자(世子)와 제이 왕자(진평)의 사람됨을 적절히 지적하는 대답이 왕에게는 듣 고 싶었다.

왕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자식을 알기는 어버이에게 지 나는 자 없다. 번히 왕도 아는 바다. 아는지라 늘 마음에 걸 렸다.

毗아드님 동궁은 그 마음으로든 몸으로든 약하고 부족하였 다. 동궁이라면 장래의 이 나라의 주인이 될 귀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약하고 부족한 점이 많았다.

둘째아드님 진평은 또 그 사람됨이 너무 과하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그 성격이 억세고 커 가서 그것은 재상감 이 아니요 오히려 왕자(王者)의 감이었다. 만인의 위에 서서 만인을 지휘할 감이지 남의 아래 설 감이 아니었다.

이 두 아드님의 상반(相反)되는 사람됨을 보면서 왕은 늘 마음에 엉기는 덩어리가 있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 다. 오늘도 다시 이 문제에 직면하여 왕은 신임하는 원로 재상 황 희에게 그 의견을 물어 본 것이었다.

왕이 자기의 대답에 불만족한 의향이 있음을 짐작하였는 지, 황 희는 조금 뒤에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전하, 신이 두 분 왕자께 대한 우견을 직언하오리까?』

『탓하지 않으리다.』

『네이, 신이 직언하겠읍니다. 정 인지, 황보 인, 김 종서, 남 지(鄭麟趾, 皇甫仁, 金宗瑞, 南智) 등 아직 장년의 명신들 이 조정에 그득히 있아옵니다. 동궁저하(東宮邸下)께오서 장 래 등극을 하오실지라도 보필할 명신들이 그득하오니 무슨 근심할 배야 있사오리까마는 신의 우견으로는 동궁저하는 황공한 말씀이오나 명신의 보필이 없아오면 그—좀—그!』

말하기 힘들어하는 것을 왕이 보충하였다—

『감당키 힘들겠단 말이지요? 나도 짐작하는 배요—그러고 유(진평)는?』

『진평대군께는 더 말씀할 배가 없아옵니다. 진평대군은 현재의 왕자(王子)요 장래의 왕제(王弟)오며 그 뒤는 다시 왕숙(王叔)일 따름이옵니다. 왕자, 왕제, 왕숙의 인물은 논해 서 무슨 필요가 있아오리까?』

왕은 당신의 뜻과 꼭 부합되는 이 명신의 명찰에 빙긋이 웃었다. 그러나 쓸쓸한 미소였다.

『아니, 나도 그 점은 모르는 배가 아니지만 쓸데없는 말 이나마 진평의 사람됨을 어떻게 보시오?』

『네에. 만약 대군께서 동궁으로 탄생하셨다면 보필의 신 하가 쓸데없으실 분이옵니다. 전하께오서도 그러셨아옵지만 명군의 아래는 단지 「신하」가 있을 따름이옵지 「명신」

은 없아옵니다. 나랏님의 명하시는 대로 복종만 하오면 저 절로 명신이 되옵는 것으로서 신 또한 전하의 성대(聖代)에 태어난 덕으로 아무 소능이 없이 무위한 세월을 보냈읍지만 청사(靑史)에는 「명상」 칭호로 오를 줄 굳게 믿사옵니다.

이 모두 전하의 여덕으로서, 진평대군께서도 세자로만 탄생 하셨더라면 보필의 신하가 쓸데없아옵고 단지 고지식하고 부지런한 신하만 있아오면, 무엄한 말씀이오나 전하의 성대 에 손색없을 광휘 있는 세월에 백성들은 배를 두드리며 살 것이옵니다. 그러나 어찌하오리까. 원자로 탄생치 못하오시 고 진토에 묻혀서 일생을 보내실 수밖에 없겠아오매……』

『늘 그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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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늘 그 생각을 하였다.

진평의 인물—그것은 왕자(王子)만이 가져야 할 것이다.

진평의 무술(武術)이 능함을 의미함이 아니다. 진평의 무술 은 차차 시대가 나약해 가는 지금에 있어서는 당대에 제 일 류라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무술이 능하댔자 한낱 무사의 재률에 지나지 못한다.

병법에 능하댔자 또한 한낱 선비의 재률에 지나지 못한다.

정치에 능하댔자 한낱 재상의 재률에 지나지 못한다.

진평의 인물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위압하는 힘이 있었다. 꼭 같은 행동이나 말을 하여도 어째서 그런지 웃사 람의 기품이 보였다. 동궁과 진평이 꼭 같은 자비스러운 일 을 한다 치더라도 동궁의 언행은 「인자스럽다」라고 평할 종류의 것이고, 진평의 언행은 「긍휼히 여긴다」고 평할 종류의 것이었다. 어째서 그런지 어디가 다른지 알 수 없지 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다.

치밀한 주의력을 가진 왕은 늘 이 점을 관찰하고 속으로 근심하였다.

당신이 천추만세한 뒤에 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물론 인자 한 임금은 될 것이다. 지금의 재상 황 희는 그때쯤은 한 더 미 흙으로 화하게 되겠지만 정 인지, 김 종서, 남 지—내려가 서는 성 삼문, 신 숙주, 박 팽년(成三問, 申叔舟, 朴彭年) 등 등의 인물이 잘 보필을 하면 혹은 훌륭한 왕업을 이룩하기 도 하리라.

그러나 보필의 명신들의 힘으로 이룩한 왕업이, 명군 독재 로 이룩한 왕업에는 비기지 못할 것을 잘 안다. 그러므로 지금 세자의 단지 인자롭다는 단 한 가지의 장점(長點)만으 로 국정을 보살핀다는 것을 왕은 늘 부족하게 보고 쓸쓸히 여기었다. 인자와 동시에 힘이 필요하고 관대(寬大)와 동시 에 억셈이 필요하다. 그런데 세자는 한편쪽만 가졌지 다른 한편쪽은 못 가졌다. 이것이 마음에 켕기었다.

『유가 毗으로 태어났더라면……』

지금 당신이 기르는 장래의 명신들을 거느리고 진평이 이 국가를 요리할 날이 있으면 그때야말로 훌륭한 나라를 이룩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진평은 둘째로 태어나고 동궁 은 나약한 것을 어찌하랴.

언젠가 이런 근심을 정승 맹 사성(孟思誠)에게 한 일이 있 었다. 그 때 맹 사성은 간단히,

『그러면 현 동궁을 폐합시고 진평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오 면 좋지 않습니까?』고 대답하였지만 여기 대하여서는 왕은 당연히 그 의견을 눌렀다.

이 왕은 본시 선왕(先王)의 원자(元子)가 아니고 세째 아드 님이었다. 이 왕의 우으르 毗아드님 양녕대군(讓寧大君)이 있었고, 둘째로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있었다. 세째가 즉 당 신이었다. 당연한 순서로 본시는 毗아드님인 양녕대군이 세 자로 책봉이 되었다.

그러나 이 세 분 왕자의 아버님되는 선왕(先王─太宗大王) 은 웬 까닭인지 毗아드님되는 세자(양녕대군)를 몹시 미워하 고 셋째아드님 되는 충녕대군(忠寧大君─現王)을 유난히 사 랑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이미 세자로 책봉되었던 양녕대군 은 정신에 이상이 있다고 폐하여 버리고 세째아드님인 지금 의 왕을 다시 세자로 책봉하였다.

당년에는 아직 연치도 적고 하여 그런 데 대해서 그다지 관심치 않고 그냥 지냈지만 아버님인 선왕이 승하하고 당신 이 등극한 이래로는 늘 그것이 마음에 꺼리었다.

「내 형 양녕대군이 본시 보위(寶位)에 오를 것을 순서가 바뀌어서 내가 이 자리에 올랐거니.」

이런 생각이 늘 들어서 형님되는 양녕대군을 보기가 여간 거북하지 않았다. 그 위에 삼사(三司)는 연하여 양녕대군이 여사여사한 죄를 지었으니 벌합시사 하는 상소를 하였다.

이런 무리 가운데는 이런 상소를 하는 것이 왕의 마음을 흡 족케 하는 것이어니 하는 생각으로 왕의 총애를 사고자 하 는 간악한 무리도 있었다. 또는 양녕의 사람됨이 범인(凡人) 이 아니라 양녕을 그냥 두었다가는 왕의 지위가 위태로울 것 같아서, 양녕을 저퍼하고 꺼리어서 제해 버리고자 하는 무리도 있었다.

이러한 위태로운 입장에 있어서 현인(賢人) 양녕이 처신을 잘하기도 하였지만, 왕 또한 굳게 양녕을 믿고 그의 인격과 그의 견식과 그의 우애(友愛)를 굳게 믿어서, 간사한 무리와 소인배들의 불어 올리는 온갖 참소와 비난과 음험한 궤휼을 일축하고, 형을 옹호하여 왔기에 양녕의 생명이 지금껏 탈 없이 부지되어 왔지, 왕의 우애심에 약간의 틈새라도 있었 으면 양녕은 벌써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었다.

이 현철한 형과 현철한 동생, 세상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사면에서 불어넣는 참소에 형제간에 유혈지극은 반드시 일 어나고야 말았을 것이었다.

만약 선왕으로서 처사를 옳게 하여 毗인 양녕을 폐하지 않 고 양녕에게 위를 전하고, 두 동생 효령과 충녕으로 하여금 형을 보좌케 하여 삼 형제의 합친 힘으로써 나라를 다스리 게 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 뻔하였나. 선왕 처사가 그릇하 기 때문에 형제간에 우애는 늘 협위를 받고 거북살스럽고도 전전긍긍한 세월을 보냈다.

선대(先代)에서 세자위(世子位)의 순서가 바뀌기 때문에 불 쾌하고 거북살스런 경험을 여지없이 체험한 이 왕은, 당신 의 대에서는 다시 그런 일이 안 생기게 하려고 그 점은 퍽 마음썼다. 선대에서는 요행 형 양녕도 현인이요 왕 당신도 형에게 못지 않은 사람인 것을 스스로도 잘 아는 바로서, 요컨대 양녕이 폐사(廢嗣)되고 당신이 책봉되었더라도 국정 (國政)상에는 우열이 없이 처리되었지만 당신의 아드님은 당 신네 형제분과는 다른 점이 있다.

즉 지금의 세자는 나약한 한 개 선비로서, 나약하기 때문 에 의심이 많고 투기심이 많아서 왕자(王子)의 재률로는 부 족한 점이 적지 않다.

毗아드님인 세자가 이러한 반대로, 둘째아드님인 진평은 또 걸출 중의 걸출로서, 어느 모로 뜯어보아도 당당한 왕자 (王者)의 재률이다.

선대(先代)에서 毗을 폐하고 세째를 책봉한 것은 엎치나 뒤 치나 일반인 무의미한 일이었지만, 지금 대(代)에 있어서는 毗을 폐하고 버금을 끌어올린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나약한 毗을 폐하고 억센 버금을 추켜세운다.」

옳은 말이다. 사리 당연한 일이다.

일견 과연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일견」뿐이다. 왕은 누구보다도 잘 안다. 지금의 동궁은 선대의 세자이던 양녕이 아니다.

현인(賢人) 양녕은 부왕의 뜻으로서 까닭 없이 세자의 위에 서 밀려 떨어져서도 쾌활 호담히, 떨어진 자리를 싫다 하지 않고, 이전의 위를 연연해하지 않고,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 지로 호활한 생애를 보내지만, 지금의 동궁이 만약 선대의 양녕과 같이 까닭 없이 폐사가 되면?

암운이 생길 것이다.

비극이 생길 것이다.

혹은 참극이 생길는지도 알 수 없다.

당신의 대에 있어서는 형님 양녕대군이 고금에 다시없는 현인이기에 원만하게 일이 처리되었지만, 동궁의 대에 있어 서는 결코 그렇게 못 될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다. 장차 이씨 만대의 장구지책으로 보아서 도 적장(嫡長)이 위를 잇(繼)는다는 법칙을 세워 둘 필요가 있다. 적장(嫡長)이 뒤를 잇는다는 법칙을 확립하여 두지 않 으면 장차 대대로, 이래서 폐한다 저래서 폐한다하여 후사 문제로 다툼이 늘 생길 것이요, 유혈지극(流血之劇)까지도 안 생기리라고 어찌 보증하랴. 과거로 보아서 태조 이 성계, 이씨 조선을 창업한 이래 정종, 태종—내려오기 겨우 당신의 대까지 네 대째에 지나지 못하지만 그 네 번 다 순탄히 왕 위가 제 순서대로 계승되어 본 일이 없었다.

기위 과거는 그러했지만 인제부터라도 다시는 쓸데없는 비 극은 되는껏 피하기로—적출(嫡出), 같은 적출 중에서는 선후 의 순서로—이 법칙을 세워 두려 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아무리 세자가 그 사람됨이 부족하지만 절 대로 갈지 않으려는 방침이었다. 방침은 그렇지만 늘 왕의 눈앞에 보이는 동궁의 나약한 모양과, 진평의 왕자다운 기 품은 왕으로 하여금 뜻하지 않고 탄식성까지 내게 하곤 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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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희, 맹 사성 등 선왕(태종)의 대부터 내려온 명신들을 비롯하여, 정 인지며 신진 소년(新進少年) 성 삼문, 신 숙주, 박 팽년 등등, 많고 많은 재사들이 왕의 날개 아래서 국가 건설의 대업을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나 왕은 세자의 문제 때문에 늘 쓸쓸하였다. 재상들과 한담이라도 사는 때는 늘 이 세자의 문제를 끄집어내곤 하 였다.

더구나 근심되는 것은 당신이 지금 지휘하고 기르는 대신 들 가운데도 마음놓고 뒤를 맡길 만한 큰그릇이 없는 점이 었다. 당신이 이 사람이면—하고 뽑아내서 부리는 사람들이 라 모두 일기 일능은 있으나 그 일기 일능이 있는 여러 사 람을 통솔해서 부릴 만한 큰그릇이 없는 점이었다.

큰그릇이 없는 바가 아니라 있기는 있었다. 있기는 있으나— 그 큰그릇이란 자는, 하나는 현재 영의정(領議政) 황 희였 다. 황 희만 있으면 넉넉히 그 재사들을 부려서 큰 일을 이 룩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황 희의 나이가 벌써 늙어 서 죽음을 눈앞에 바라보는 형편이니 세자의 대까지는 도저 히 가지 못할 것이었다.

또 하나는 당신의 둘째아드님인 진평(후일의 수양)대군 유 다. 진평만 있으면 넉넉히 그 재사들을 각기 제 재이며 거 기 따르는 구속이 또한 있을 것이다.

또 한 사람 왕의 백형되는 양녕대군, 그러나 양녕대군은 선왕께 광인이라 하여 폐출되었을 뿐더러 왕족으로서 스스 로 근신해야 할 신분이라 정치에까지 용훼치 않을 것이다.

그밖에 황보 인, 김 종서, 남 지 등이며 신 숙주, 성 삼문 등은 모두 제 한 몫은 당할 만한 재사지만 그들에게는 그들 을 통솔하고 지휘할 만한 웃사람이 있어야지, 그렇지 못하 면 제 가진 바 재능도 완전히 발휘하기 힘든다. 이것이 걱 정이었다.

한참 뒤 동궁이 돈피 이불에 대한 사례를 하러 온 때도 왕 은 동궁을 물끄러미 보며 쓸쓸히 머리를 끄덕일 뿐이었다.

왕의 마음을 잘 아는 황 희도 약하디 약한 동궁을 쓸쓸히 절하여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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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

말을 좋아하는 진평이 그 때의 함길도 체찰사(咸吉道體察 使) 황보 인(皇甫仁)에게 당부하고 당부해서 구해온 몽고말 (蒙古馬)을 시험하여 보러 진평은 말게 높이 올라앉았다.

마침 그 날은 친경일(親耕日)로서 저편 경농제(慶農齊)에서 는 우아한 풍류 소리가 바람결에 따라서 이 곳까지 날아온 다. 진평은 배경(陪耕)차로 한 몫 끼었었지만 이 말을 시험 해 보기 위하여 몰래 빠져 나온 것이었다.

『휙—』

말께 높이 올라앉아서 발로 배를 한 번 찰 때에 말은 땅을 차면서 닫기 시작하였다.

진평은 말 등에 납작 엎드려서 연하여 말 배를 찼다. 찰 때마다 속력은 차차 더하여 마지막에는 살과 같이 빠르게 되었다.

꽤 넓은 마당을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고 세 바퀴 돌았 다. 말코에서는 씨근거리는 숨소리가 꽤 놓아졌다.

『어디 몇 바퀴나 도나 보자.』

말의 기운을 시험해 보고자 그는 이 씨근거리는 말을 그냥 돌리려 하였다. 그러면서 걸핏 보매 친경장 쪽에서 웬 사람 하나이 이편으로 향하여 온다.

말을 그냥 달리면서 곁눈으로 보니 그 사람은 정녕 백부 양녕대군이었다.

『하하! 백부는 나를 데리러 오시는구나.』

모든 왕자 중에서 자기를 특별히 사랑하는 백부라 자기가 보이지 않으니까 찾으러 나온 것이 분명하였다.

삼촌은 조카를 본 모양이었다. 곧추 경무대 쪽을 향하여 온다. 그것을 보고 진평은 말을 달려서 광장을 벗어나서 길 로 들어섰다. 그리고 삼촌의 오는 쪽을 향하여 달렸다.

어쩌나 보자 이만한 심사로 말을 전속력으로 달려서 삼촌 의 편으로 향하여 가지만 삼촌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무 심히 온다. 말이 꽤 가까이 이르도록 삼촌을 말을 비키려 하지도 않고 마주 말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온다.

삼촌의 앞 세 결음에 이르러서 진평은 비로소 말고삐를 낚 아채었다. 거기서 말이 뒷발을 구르며 공중으로 날아 올라 갈 때에 진평은 안장에서 올라 뛰어서 길에 떨어졌다. 떨어 진 곳은 삼촌의 꼭 두 발자국 앞이었다.

『버릇없는 짐승이 어른의 머리 위를 넘었습니다. 참(斬)하 리까?』

진평이 벙글벙글 웃으면서 그 자리에 엎드려서 이렇게 말 할 때에 삼촌 양녕은

『말보다 네가 더 버릇없다. 고약한 녀석—』하고 호령하였다.

『그럼 저를 참하리까?』

『그래라.』

『그럽지오—그렇지만 저를 참하면 백부께서 애통해 하실 걸 생각하니 차마 그럴 수가 없습니다.』

진평은 무릎의 먼지를 툭툭 털면서 일어났다.

『왜 몰래 이리로 왔느냐 말이다.』

『네……』

문득 진평은 적적한 듯이 머리를 숙였다.

『제가 있으면 무얼 합니까?』

『없으면 무얼 하느냐?』

『말을 탑지오. 그것은 인군(人君)의 놀이지 저 같은 야인 (野人)이 섞여서 무얼 합니까?』

양녕은 잠시 사랑하는 조카의 얼굴만 뚫어지도록 들여다보 다가

『가자.』

한 마디만 하고는 돌아서서 친경장 쪽으로 향하여 가기 시 작하였다.

진평도 뒤를 따라갔다.

양녕과 조카가 친경장으로 돌아온 때는 방금 친경이 시작 되는 때였다. 왕 이하로 고관 거족들이 모두 야복(野服)을 입고 머리에는 수건까지 동이고, 동서반으로 나누어서 갈라 서고, 커다란 황소에 보습을 메우고 회색 옷을 입히고 왕이 맨 앞서서 보습을 잡고, 한편은 대군(大君), 한편은 군(君)이 대신들과 함께 배경(陪耕)을 하고 관풍각에는, 특별히 배관 의 허락을 받은 비빈(妃嬪)이며 고관 부인들이 발 뒤에서 보 고 있고, 경농재에서는 아악이 부드러이 울리어 나왔다.

그 음악을 따라서 동창 서창(東唱西唱)이 노래를 부르며 노 래에 좇아 주마제조(走馬提調)의 끄는 소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간다.

선왕에게서 광인이라는 칭호를 얻은 양녕은 좀 예사롭지 못한 일이라도 할 만한 특권이 있으리만큼 조카를 끌고, 바 야흐로 소의 발이 첫 걸음을 내어 디딜 때에 대군 열에 끼 어 들어갔다. 안평대군 용(安平大君 瑢) (세자의 둘째동생) 이 노골적으로 불쾌한 안색을 하며 혀를 채는 것을 모른 체 하고 세자의 뒤에 두 사람은 들어가 끼었다.

진평은 처음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마음으로 그 틈에 끼었 다. 아까 타던 말을 좀더 타보고 싶었다. 말을 길 가 소나무 에 매고 왔지만 마음이 그리로만 쏠렸다. 이 친경이라는 것 이 도대체 우스웠다. 공잔가 맹잔가의 소견에 좇아서 임금 도 농부들의 고초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한다 하지만, 도 대체 이것으로 과연 농부의 땀을 알 수가 있을까. 좌우편에 서는 노래와 음악이 흥을 돋우며 대궐에서 이 곳까지 보련 을 타고 오고 전후 좌우에서 부액을 하고 보습 끝에 손만 약간 대는 듯이 하고, 인제 몇 걸음만 나가면 친경을 끝낼 터이며 그러고 대궐로 돌아가서는 몸을 모두 씻고 닦고 내 관들이 부채질을 하여 드리고—이런 일로써 백성의 고초가 알아지랴—이런 생각으로 그다지 달갑지 않은 마음으로 축에 끼었다. 시원치 않은 듯이 한 걸음 두 걸음 나가면서 앞에 아버님 왕의 등을 바라보았다.

왕은 엄숙한 태도였다. 보습을 잡은 손에 일어선 핏대로써 왕이 힘있게 보습을 잡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보습 잡은 솜씨가 서투른지라 연해 한 편으로 쏠리려는 몸을 바 로잡으며 엄숙한 태도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이것을 보며 따라갈 동안, 진평의 마음에 생겨서 차차 자 라난 생각은

『왕이 엄숙한 마음으로 애쓴다.』

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는 알았다. 이 친경이라는 것은 결코 왕이 몸소 농부의 고초를 맛본다는 단순한 의미에 그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좀더 다른 뜻을 가졌다는 것이었 다. 즉, 왕이 백성들의 고초를 알려고 애쓴다 하는 점을 재 상들에게 보이어서 재상들로 하여금 안일에 흐르지 않도록 경계하려는 군왕의 무언의 훈시였다.

진평은 재상들을 둘러보았다. 재상들은 모두 한결같은 없 는 데도 불구하고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이 맺혀 있었다.

진평은 비로소 미소하였다. 그리고 그의 완강한 팔을 펴서 보습의 한 편 채를 힘있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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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고요히 흘렀다. 오 년, 십 년……

장난꾸러기 소년 왕자 진평은 소년에서 청년으로 변하였 다. 이름도 진평대군이던 것을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고쳤다.

그것은 동궁과 수양, 안평 등의 아버님인 왕(세종대왕)의 즉위 삼십 년 축연이 굉장히 경회루에서 열린 날 저녁이었 었다.

그날 낮에 경회루에서 세자와 그의 동생 수양과의 새에 조 그만 충돌이 있었다. 그것은 문제도 그다지 문제라고 될 것 이 아니요 충돌이라고 일컬을 만한 충돌도 아니었다.

왕이 사랑하는 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그 개가 연석에 뛰 쳐 들었다. 그것을 세자가 환관에게 명하여 내어쫓으려 하 였다. 그 때에 수양(진평)이 곁에 있다가 상감이 사랑하는 짐승이니 그냥 두어도 괜찮지 않습니까? 고 말렸다.

수양은 특별히 깊은 뜻이 없이 한 말임을 왕은 잘 안다.

그러나 이 말에 대해서 동궁이 문득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짐승이 외람되어 어전을 더럽히었으니 당장에 내다가 베라 고 엄명하였다.

이런 경우에 싱글싱글 웃기 잘하는 수양도 이번에는 웃지 를 못하고 눈이 둥그렇게 되어 성난 세자를 우러러보았다.

동궁의 노염이 뜻밖에도 너무 컸으므로 수양도 어쩔 바를 모른 것이었다. 만약 수양에게서 무슨 말이 한 마디 더 나 오면 세자는 수양에게 호령이 내릴 형편이었다.

왕은 이 형세를 보았다. 이즈음 동궁이 매우 수양을 미워 하고 꺼리고 그 감정이 나날이 더해 가는 것을 늘 보아 왔 다. 몸이 약하고 마음이 약하니만큼 동궁의 마음에는 나날 이 수양을 투기하는 감정이 가속도로 높아 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심경을 아는지라 왕은 동궁의 편을 도와서 그 짐승 을 내다 베게 하여서 동궁의 뜻을 세우고 수양의 뜻을 꺾었다.

그러나 왕의 마음은 매우 불안하고 어지러웠다.

밤에 왕은 강녕전(康寧殿)에 들어서 세자를 조용히 불렀다.

『동궁. 아까 낮에 경회루의 일을 기억하는가?』

동궁이 북면(北面)하여 자리를 잡은 뒤에 왕은 곧 이렇게 물었다.

동궁의 안색은 문득 벌겋게 되었다가 금시 도로 창백하게 되었다.

『네……』

모기 소리와 같은 대답.

『동궁의 뜻을 세워 주기 위해서 짐승을 내다 베게는 했지 만, 짐승이 사랑하는 주인을 그려서 찾아오는 것이 그다지 큰 죌까. 내가 늘 쓸어주고 붙안아 주고 침전에까지 드나드 는 짐승인 줄은 동궁도 잘 알겠지?』

왕은 눈을 감았다. 약하기 때문에 차차 마음이 외틀어져 가는 세자를 앞에 두고 어떡허든 형제의 의를 상하지 않게 하여 보려고 왕은 눈을 감고 잠시를 생각한 뒤에, 그냥 눈 을 감은 채,

『누구 오너라.』

고 고함쳤다.

지밀상궁(至密尙宮) 한 사람이 달려 왔다.

『음. 나가서 수양대군이 아직 퇴궐하지 않었거든 내가 이 리로 부른다고……』

그러고 왕은 조금 자리를 비켰다.

『동궁. 이리로 와서 앉아.』

당신이 비켜서 곁에 낸 자리를 동궁에게 지시하였다. 거기 앉으면 남면(南面)하여 앉는 것이 된다. 동궁은 황공하여 머 리만 더 푹 숙였다.

『자. 어서.』

『신이 어찌—』

『아니. 동궁은 장래의 나랏님이니……』

그래도 주저하는 동궁을 왕은 억지로 남면하여 앉게 하였다.

수양이 이른 때는 왕은 용안 전면에 수심이 가득하여 있 고, 동궁은 그 곁에 거북한 듯이 남면하여 앉아 있는 때였 다. 수양은 들어서면서 먼저 눈이 동그렇게 되었다. 그러고 는 부자분의 맞은편 쪽에 북면하여 단정히 꿇어앉았다.

『불러 곕시오니까?』

『오냐. 불렀다.』

왕은 잠시 생각한 뒤에 말을 계속하였다—

『너 아까 경회루의 일이 생각나느냐?』

『네이.』

수양은 곧 대답하였다.

『어느 편이 옳다고 생각하느냐?』

『신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왕은 손을 들어 세자를 가리켰다—

『이분은 네게 누구되시는 분이냐?』

『형님이올씨다.』

왕은 보이는 듯 안 보이는 듯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국왕전하오며 계분으로는 아버님이올씨다—』

여기서 수양은 비로소 깨달은 모양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형님은 또한 공(公)으로는 동궁전하오며 장래 임금이올씨 다.』

왕의 약간 찌푸렸던 듯하던 눈살은 도로 펴졌다—

『그렇지. 너는 북면(北面)하고 칭신(稱臣)해야 할 신분인 줄 알지.』

『네……』

『그러면 너 왜 아까 네가 잘한 줄 알면 동궁께 그대로 여 쭙지 않았느냐? 신자의 도리로서 군왕의 실수를 알고도 모 른 체하면 될까?』

『동궁마마의 분부시기에 가만있었습니다. 전하의 분부시 면 가만있지 않었겠읍니다.』

『내가 말할 때는 왜 가만있었느냐?』

『그것은—』

수양은 말을 끊었다. 하기 어려운 듯이 머뭇거렸다.

『그것은 그래 어떻단 말이냐?』

왕이 채근하였다.

『네─동궁마마의 기를 펴 주시려는 어버이의 뜻이신 줄 짐작이 갔기에 가만있었습니다.』

왕은 미소하였다.

『그 말을 너한테서 듣고자 일부러 불렀다. 좀 가까이 오 너라.』

그리고 무릎걸음으로 가까이 온 수양의 손을 당신의 왼손 으로 잡고 동궁의 손을 당신의 오른손으로 잡아서두 손을 마주 갖다 대었다.

『자. 너희들한테 당부할 것은 끝끝내 군신의 의와 형제의 정을 저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 이 자리는 군신간의 자 리라기보다 부자간의 자리로서 서로 흠 없이 이야기하자.

자, 너희들은 장래 끝까지 서로 돕고 서로 의를 지키고 정 을 상치 않게 지내겠다고 맹세를 해라.』

네이. 맹세하오리다.』

그것은 수양의 대답뿐이었다. 동궁은 얼굴이 발갛게 되며 머리를 숙인 뿐이었다.

『동궁은?』

『신도 그러하오리다.』

부왕의 채근을 받고야 나온 동궁의 대답은 마치 여인의 목 소리와 같이 가늘고 작은 음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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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왕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돌아보건대 당신의 업적은 그만하였으면 적지 않았다. 태 조 이씨조선을 창업한 이래, 이씨조선의 자리를 튼튼히 잡 기에 급급하여 백성들의 세세한 사정은 아직 그냥 내버려두 었던 것을 당신이 등극한 이래 삼십 년간에 모두 대략 꾸려 놓았다.

문치(文治)의 방면으로는 집현전(集賢殿)을 두고, 학도들을 양성하는 일방, 혹은 역사를 편수하며, 삼심법(三審法)을 세 우며, 신문고(申聞鼓)를 설치하며, 농서(農書)를 발간하며, 음악 제도를 세우며, 천문 지리에 관한 온갖 기구를 만들며,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으며, 한글을 창정하며—이 러한 문치 방면의 업적과 아울러서 국방(國防) 방면으로는, 육진을 설치하며, 오랑캐를 쫓으며 등등, 문무 양반으로 이 씨조선은 이 왕 이십 년간의 업적으로서 인제는 과도 건설 기(過渡建設期)를 지나서 찬란한 문화국으로 진보되었다.

이만한 업적을 남기고 왕은 동궁으로 하여금 섭정케 하고 당신은 물러앉았다. 왕이 동궁께 대리를 부탁하고 제 일선 에서 물러앉을 때는, 다만 한 사람 신뢰할 만할 재상 황 희 는 벌써 구십이 가까운 노인이요, 그 밖의 재상들은 일기 일능을 가졌지만 기와 능이 집대성한 큰그릇은 없었는지라, 장래 이 나라의 주인 될 동궁이 직접이 일기 일능의 재상들 을 거느리고 구사해야 할 형편이므로, 당신 생존 중에 동궁 으로 하여금 대리왕(代理王)의 지위에 오르게 하여 당신이 직접 손을 잡고 지도하여 동궁에게 왕도를 가르치기 위해서 였다.

당신의 그 능란한 솜씨로 일일이 동궁을 지휘하고 지도하 여 왕노릇하는 법을 사소한 점까지 교수하였다.

그러면서도 왕에게 그냥 마음이 안 놓이는 것은 동궁의 천 성이 하도 나약하므로 왕이 몸소 지도하는 일 가운데도 좀 억센 일을 매우 거북해 하며 어려워해 하는 것이었다. 좀 억세게 해야 할 일을 만나면 아버님 왕께 슬며시 떼밀어 맡 기고 하였다. 이것이 왕에게는 퍽 근심스러웠다.

왕은 둘째 아드님 수양도 늘 대궐로 불러 들여서 동궁께 북면해서 섬기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게 하려 노력하였다.

수양의 성격이 본시 억센지라, 형 되는 동궁을 떼밀어 가면 서 일을 꾸며 나아가는 양을 뒤에서 보며 왕은 흔히 남모르 게 미소하였다. 미소하면서도 왜 순서가 바뀌지 않았느냐고 탄식하곤 하였다.

그런데 동궁은 마음이 나약하기 때문에 수양에게 늘 눌리 면서, 눌리고서는 역정을 내고, 내심 매우 수양을 싫어하고 투기하고 의심하는 것이 왕의 마음에 절실히 꺼리었다. 수 양은 자기 딴에는 이렇게 해야 되겠다는 신념으로서 형 되 는 동궁께 무슨 진언을 하면, 동궁은 도리어 권리를 침해당 한 듯이 뽀롱해지고 하는 것이었다.

어떤 날(그것은 왕이 막내아드님 되는 영웅대군 댁을 별궁 으로 하고 거기 거처하는 때였다) 왕은 좀 늦도록 집현전에 서 젊은 학도들과 언문을 토론하다가 늦게 별궁으로 돌아가 는 길에, 갑자기 손자님을 잠깐 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시 종들은 길가에 멈추어 두고 당신 혼자서 자선당 쪽으로 돌 아갔다.

바야흐로 들어가려다가 멈칫 섰다. 때마침 전내에서는 동 궁의 음성—무엇을 책망하는 듯 위협하는 듯한 심상치 않은 동궁의 음성이 새어 나오므로, 왕은 멈칫 서서 귀를 기울였다.

『이다음에는 삼가, 삼촌은 무서운 사람이야. 알었느냐?』

그것은 동궁이 세손을 훈계하는 것으로서, 요컨대 동궁의 아드님인 세손(世孫)께 삼촌 수양대군을 삼가고 경계하라고 훈계하는 것이었다.

왕은 가슴이 선뜩하였다. 온몸에 냉수를 끼얹은 듯 소름이 쭉 돋았다.

왕은 황홍히 소리 안 나게 발을 돌이켰다. 도망하듯이 그 곳을 피하였다.

그 밤이 새도록 왕은 잠을 못 이루고 이리저리 뒤채며 고 민하였다.

『이 일을 어쩌나.』

차차 눈에 보이게 더욱 더 동생을 미워하고 의심하는 동궁 의 괴벽한 심사를 어찌하나. 지금은 당신이 생존해 있거니— 그러고 당신이 그냥 왕위에 있거니 문제가 크지 않거니와, 당신 천추 후에 세자가 즉위하기만 하면 노골적으로 수양을 괄시하고 괄시를 넘어서 박해까지라도 할 것이었다. 그 위 에 동궁 자신뿐 아니라, 세손에게까지도 그 사상을 부어 넣 어 주니 이 일을 어찌하랴.

수양 없이 세자 뿐으로 넉넉히 이 재상들을 조종하여 나아 갈까. 적재(適材)를 적소(適所)에 두어서 비로소 그 기능이 발휘될 것이다. 아무리 재사라 할지라도 자리를 잘 못 잡으 면 무능한 인물이 될 것이다. 그 적재를 적소에 뽑아 두기 도 동궁으로서는 좀 어려운 일이겠거니와, 적소에 있다 할 지라도 위에 있는 사람의 힘과 장려함이 있고야 비로소 제 기능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동궁 혼자 뿐으로는 도저 히 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뿐 아니라 수양을 괄시해서 불행히 동기간에 유혈 참 극이라도 생기면 이것은 이씨 사직에까지 영향될 무서운 일 이다. 전일 이 왕의 백형 양녕대군이 선왕께 득죄하고 이천 (利川)에 내려가 있는 동안, 왕은 흔히 동교(東郊)까지 나아 가서 배소(配所)의 형을 그리고 모셔다가 잔치를 열어 형제 의 의를 늘 두텁게 유지하기에 애썼다.

그 뒤 배소에서 돌아온 뒤에도 늘 금중(禁中)에 청하여 주 안을 나누며 연락을 같이 하여 형제의 의를 더욱 두텁게 하 여 왔다.

이런 일 등도 모두 사실에 있어서는 도궁에게 보이기 위해 서 일부러 더욱 강조함이었고, 동궁께 보여서 동궁으로 하 여금 형제라는 것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함이어늘 동궁은 어쩐 셈으로 부왕의 그런 행교(行敎)를 보면서도 깨 달음이 없는가.

수양도 형님 되는 동궁이 자기를 꺼리고 싫어하는 것을 물 론 알 터이다. 그만큼 노골적으로 굴매, 모를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냥 꾸준히 입궐하여 형님께 이렇다 저 렇다 싫어하는 말을 하는 것은 오직 신도(臣道)를 다하려 함 일 것이다. 이 수양의 심경을 생각하고 또 동궁의 싫어하는 심사를 생각할 때에 왕은 세상 보통 아버지로서의 번민을 맛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에라.』

탁 폐사(廢嗣)하여 버리고 수양을 세자로 책봉하고 싶은 생 각이 일어날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러기만 하면 뒷 근심이 없어질 듯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까닭 없이 적장(嫡長)을 폐한다는 것은 장래 영원히 왕위 계쟁의 원인이 될 것으로서 이것도 할 일이 못 된다.

성주라는 일컬음을 들은 이 왕도, 가정적으로는 늘 불안하 고 불쾌하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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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간의 불화— 세자와 수양과의 새의 불화.

수양은 그다지 형 세자의 괄시를 탓하지 않는 모양이나, 수양이 탓하지 않으면 않느니만큼 세자는 더욱 이것 보아라 는 듯이 수양을 괄시하였다.

이 두 아드님의 태도를 가만히 관찰할 때에 왕은 때때로 속으로 몸서리까지 쳤다. 한 치의 벌레에도 오 분의 결기는 있는 법—아무리 수양이 활달한 눈으로 형 세자를 대하고 모 든 괄시를 관대히 참아 온다 하나, 이 괄시가 도를 넘쳐서 참을 수 없는 정도까지 이르면 어쩌나.

차차 만년에 들은 왕—장년 시대에는 그래도, 장래에는 어 떡하든 되겠지, 안 되면 되도록 만들기라도 하지, 이만큼 낙 관의 눈으로 보아 왔지만, 만년에 들면서부터는 언제든 여 기 대한 근심이 왕에게서 떠나 본 적이 없었다.

때때로 수양을 불러서 장래 영구히 형 세자께 충성되라고 분부하면 수양은 쾌활히 웃으면서

『신이 이 나라 백성된 이상에야 어찌 감히 군왕을 배반하 오리까.』

하여 자기의 마음을 숨김없이 아버님의 앞에 피력하고 하 였다. 그러고 왕의 투철한 안목은 결코 이 수양의 말에 거 짓이 없음을 안다.

그러나 세자를 불러서 수양에게 한 말과 꼭 같은 말을 하 면 세자는 이 부왕의 말에 어떤 태도를 취하고 하나.

세자는 언제든 얼굴이 빨갛게 변하였다. 그런 뒤에는 좀 외면을 하며,

『신이야 동생을 어떻게 보리까만 수양의 눈치가……』하 여 수양에게 대한 자기의 의심을 나타내곤 하였다.

진실로 괴로운 일이었다.

여기서 만약 왕이 세자에게 수양을 의심치 말기를 강조하 면 심약한 세자는 표면으로는 절하여 이를 승복할지나 내심 으로는 그 미움은 장차 어떤 불길한 결과를 낳을는지 예측 못 할 것이다.

차차 만년에 들면서 장년 시대에 너무도 많은 업적에 골몰 하였던 피곤이 한꺼번에 나서 왕의 몸은 나날이 소약하여 갔다. 태조, 정종, ,태종—전 삼대에 뒤를 이어서 등극한 이 래 이 반조(半造)의 국가를 고정시키느라고 쓴 그 노력의 피 곤이, 만년에 들면서 갑자기 나서 이 달이 저 달보다 못하 고 오늘이 어제보다 못한 당신의 건강을 볼 때에 세자와 수 양과의 새의 가정의 불합이 더욱 마음에 걸렸다.

지금 오십을 조금 넘은—어떻게 보자면 아직도 장년이랄 수 가 있는 춘추였으나, 너무도 많은 업적을 몸소 지휘하고 또 한 가정적으로도 선대에는 형님 되는 양녕대군과의 새의 델 리케이트한 문제며, 당신의 대에는 세자와 수양과의 문제 등으로 심로가 많았더니만큼 보통 사람의 장년인 오십이 이 왕에게 있어서는 만년이었다.

지금은 표면으로는 나라의 정사를 들어서 세자에게 맡기고 당신은 은거한 몸으로 한가히 영웅대군(막내아드님)의 사택 에서 쉰다 하나, 이것은 오로지 약한 세자로 하여금 당신이 아직 생존한 동안 정사를 견학시키고, 당신이 스스로 세자 의 손을 잡고 지도하여 세자를 한 완전한 나라님 감이 되도 록 만들어 보려는 내심에서 나온 것이지, 번거로움은 당신 이 직접 정사를 볼 때보다도 도리어 더하였다. 이런 일 등 때문에 왕의 건강은 더욱 상하고 건강이 상하면 상하느니만 큼 근심이 더욱 커 갔다.

이러한 가운데서 단지 한 사람 그래도 희망을 붙여 두는 사람은 당신의 백형 양녕 대군이었다. 지금의 왕족 중의 어 른이요, 항렬로도 가장 위일뿐더러 고금에 다시 찾기 힘든 이 현인(賢人)인 양녕이 그냥 건장히 있거니 양녕의 좋은 지 휘와 지도가 한 가지의 희망이 되기는 하였다. 장래에 세자 가 국왕의 지위에 등극을 하는 날이라도 왕족의 어른으로 양녕만 그냥 생존해 있으면, 심약한 세자는 거역해서까지 자유로운 행동은 못할 것이고, 양녕의 감시만 있으면(비록 세자도 수양과가 화목까지는 못 한다 할지라도) 유혈지극(流 血之劇)까지는 보지 않고도 견디어 날 것이다.

이리하여 왕은 만년에 더욱 형 양녕을 가까이 찾아서 장래 를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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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讓寧)은 서울 있을 동안은 사오 일에 한 번씩은 잊지 않고 대궐에 사후하여 몇 시간씩 보내고 하였다.

기사년(己巳年) 겨울 어떤 날.

그 날도 왕은 왕이 지금 별궁으로 쓰고 있는 막내아드님 영웅 대군 염(永膺大君琰)의 사저(私邸)에서 양녕과 마주 이 야기를 하고 있었다.

『형님.』

비록 공(公)으로는 양녕과 군신지간이라 하나, 왕은 언제든 양녕에게 대해서 사 분의 형 대접을 깍듯이 하였다.

『사자는 제 새끼가 사자 구실을 감당할 것 같지 못하면 그냥 죽여 버린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도 못하고 참으로 딱하오이다.』

만나는 때마다 늘 듣는 이 아우님의 하소연에 대하여 양녕 은 머리를 숙이고 잠자코 한참을 있다가야 비로소 대답하였다.

『전하, 헐 수 없는 일이올씨다. 기린(麒麟)은 잠자고 스라 소니가 춤추는 시대가 올 모양이니……』

『네 그 스라소니를 형님께서 돌보셔서 과히 숭한 춤이나 안 추도록 지도해 주셔야 할까 봅니다.』

『전하의 분부가 안 계실지라도 신의 힘 자라는껏 해 보기 는 하겠읍지만 한 가지 근심은 스라소니도 호랑이의 새끼라 혹은 이 노마의 지휘에 복종할는지가 의문이옵니다.』

왕은 양녕이 마음을 잘 안다. 양녕은 세자를 좋아하지 않 는다. 양녕은 언제인가 세자에게 관해서 극단의 말까지 한 일이 있었다.

—국가적 안목으로 보자면 스라소니(세자)와 스라소니의 새 끼(세손)는 제거해 버리는 편이 좋겠다.

양녕이 세자에게 대하여 가진 생각은 이런 극단의 것이었다.

왕도 양녕의 그 생각이 그다지 비난할 것이 아닌 줄은 안 다. 단지 이씨 사직의 만년지책으로 보아서 적장(嫡長)을 버 릴 수가 없어서 그냥 두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 적장(스라 소니나마)으로 하여금 좀 호랑이답게 만들어 보려는 것이 왕의 심사였다. 스라소니가 아무리 하여도 호랑이답게 되지 못하면 좋은 호랑이로서 스라소니를 호위케 하여 호랑이로 가식(假飾)이라도 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왕은 세자에게 대하여 여전히 만족의 뜻을 보이지 않는 형 님의 말에 잠시를 묵묵히 있었다.

한참 침묵이 계속되었다. 한참 침묵 뒤에 이 침묵을 깨뜨 리는 왕의 옥성은 약간 떨렸다.

『형님, 마음을 탁 터놓고 형님께 말씀드립니다. 아직껏 새 에 막혀 있던 군신지분이라는 것은 터 버리고, 한낱 형체로 서 이 이씨 일문의 일을 형님과 잠깐 의논하겠습니다.』

『…………』

『형님. 내 생각, 내 마음은 이렇습니다. 형님의 의견도 그 러시겠지만 내 적출 소생 여덟 가운데서 후사(後嗣)로서 만 약 걸출을 취하자면 유(수양)를 취할 것—여기 형님도 이의 가 없으실 줄 압니다. 만약 가장 문학이 나은 자를 취하자 면 용(瑢─안평)을 취하겠습니다. 여기도 이의가 없으실 줄 압니다. 또 만약 가장 사랑하는 자를 취하자면 염(琰─영웅) 을 취하겠습니다. 이것도 형님이 잘 아실 줄 압니다. 그렇지 만 걸출도 버리고 문학도 버리고 애총도 버리고 毗을 취한 것은, 이 까닭도 형님이 잘 아실 줄 압니다. 이것은 취해야 겠으니 취한 게지 어느 볼 점이 있어서 취한 게 아닙니다.

스라소니—형님의 말씀과 같이 스라소니지만 毗인 것을 어찌 하겠습니까. 단지 한 가지, 아직도 희망을 둔 것은—』

왕은 말을 끊었다. 뒷말을 할까 주저하였다. 뒷말은 해도 좋은 말인지 아닌지—아직껏 왕 혼자뿐이 때때로 생각해 본 일로서 남의 앞에까지 내놓기는 너무도 무서운 말이었다.

왕은 잠시 주저하고 있다가 드디어 이 형의 앞에 말하여 버리기로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단 한 가지 희망을 둔 것은—형님. 이 말씀은 한 편 귀로 들으시고 한 편 귀로 흘려서 곧 잊어 줍시오. 무서운 말씀 이외다. 다른 게 아니라, 세자가 몸이 약한 데 한 가지의 희 망을 두었습니다. 아비의 마음으로 자식이 몸 약한 것을 다 행히 여긴다는 것이 여북하면이니까. 세자가 몸이 약해서 내 생존 중에 타계(他界)하고 세손이 제 아비를 닮지 않아서 영특하면…… 이것이 단 한 가지의 희망이외다. 마음 아픈 희망이지만 이 밖에는 다른 길로는 희망 붙일 곳이 없는가 하옵니다.』

양녕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양녕의 활달한 얼굴에도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전하. 성의(聖意)는 신 이미 잘 알고 있는 배옵니다. 유 도 또한 성의를 짐작하는 모양—단지 전하께서 스라소니를 낳으신 것만이 불찰이옵지. 유도 그 인물됨이 (전하께서 더 잘 통찰하실 배옵지만) 호활하고 활달해서 웬만한 작은 감 정에는 구애되지 않을 인물이오니까 장래 세자가 대위에 오 른 뒤라도 유는 끝까지 신자의 도리를 지킬 것은 신이 장담 이라도 하오리다. 단지 세자의 투기가 너무도 괴벽해서 유 에게 위해라도 가하는 날이 있다면, 이 사직을 지킬 가장 귀한 기둥을 스스로 꺽어 버리는 셈으로서 사직이 위태로울 까 하옵니다. 용(안평)은 단지 문학지사라고 흩볼 인물이 아 니라, 만약 세자가 누구를 경계하려면 누구보다도 용이야말 로 경계해야 할 인물이 아닌가 하옵니다. 이 양녕의 눈이 아직껏 사람을 헛본일이 없아온데, 양녕이 본배, 유는 작은 지위나 절(節)에 구애될 소인이 아니옵고, 무엄한 말씀이오 나 전하와 넉넉히 어깨를 겨룰 만한 인물이옵니다. 소홀히 여긴다고 그런 것을 나무랄 인물도 아니옵고, 중히 여긴다 고 또 거만해질 인물도 아니요, 아무런 대접을 할지라도 제 가 믿는 바대로 꾸준히 해 나갈 인물이옵니다. 경계할 것은 용—대체 문학지사라는 것은 좀되고 간특하고 속으로는 이 (利)를 취하고 겉으로는 의를 가식하는 것—전하 천추 만 세 지후에는 유 있으니 이 사직도 반석과 같겠지만, 유만 없으 면 용은 무서운 인물이옵니다. 전하도 보셨겠지만 바둑의 수는 그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세자의 바둑은 방비를 위주하는 것으로서 방비만 하다가 요행적이 공세를 취하기 전에 이편의 방비가 다 되면 그렁저렁 견디거니와, 이편의 방비가 끝나기 전에 저 쪽이 공세를 취하면 세자의 바둑은 전멸이 되옵니다. 유의 바둑은 공격을 위주하는 것—공세를 취하는 중에 한 점 한 점 자기의 진형도 지켜서 적이 공세 를 취할 기회를 안 주고 그러는 중에 적을 전멸시키는 것— 용의 바둑은 살살 속임수만 뚫어서 눈을 속여서 기리(奇利) 를 취하려는 것—이 세 사람의 바둑은 각기 그 사람됨을 말 하는 것이옵니다. 수로 보아서 세자의 바둑이 가장 센 모양 이온데, 대국을 하오면 한 번도 제 수로 유를 이겨 본 적이 없습니다. 때때로 유가 짐짓 져 주는 일이 있아온데 유가 지면 독이 있는 말로 유를 야유하옵고 유에게 지면 안색을 변해 가지고 다시 두자고 강청을 하옵니다. 패배를 인정치 않고 또 두자고 강청을 하는 모양 등은 과연 그다지 향그럽 지 못 한 일……』

『딱한 일이올씨다.』

『참 딱한 일이옵니다.』

[편집]

딱한 일이었다.

과연 딱하였다.

일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왕이 감기로써 몸이 좀 불편해 누워 있을 때에 세자가 문 병을 왔다. 수양도 문병을 왔다.

그 때 또 조그만 충돌이 있었다.

문병을 한 뒤에 세자와 수양, 이 형제가 대청에 물러나가 서 한담을 할 때에, 수양은 이야기를 하면서 종이조각에 무 슨 글을 끼적이고 있었다.

이 장난을 들여다보다가 세자가 문득 질색을 하였다.

『이게 무에란 말인가?』

종이에는 소학(小學)의 한 구절,

『舅姑若使价婦母敢敵?於家婦』라는 글이 적히어 있었는 데, 그 가운데 「?」자가 「偶」자로 되어 있었다. 세자는 그것을 지적하였다.

『왜요?』

—수양이 반문하였다.

『「우」자의 변이 틀렸네.』

『「짝우」자 아닙니까?』

『「짝우」자는 「짝우」자지만 인(人)변에 쓴 자가 아니라 내(來)변에 쓴 자라네.』

『내변이오? 내변이라면 무슨—밭을 간다든가 가래를 어떡 헌다든가 하는 자가 아닐까요? 「밭길 우」라든가 「가래질 할 우」라든가……』

『에익—』

세자는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입술까지 파들파들 떨었다.

『왕가에 태어나서 그렇듯 무식해서 무엇에 쓴단 말인가.

가래래(來)변에 쓴 자는 본시는 「따비 우」자지만 여기서는

「짝우」자로 되는 법이야. 그런 것도 모른담. 그런—』

『「?」자가 본시 「따비(따비가무엔지는 모르겠읍니다만) 우」자고 「짝우」자가 따로이 있으면 「짝우」자를 쓸 경 우에 따비 우 자를 쓸 것이 실수가 아닐까요? 「짝우(偶)」

자를 쓰는게 옳지 않을까요?』

수양은 그냥 벙글벙글 웃으면서 이렇게 반문하였다. 거기 대해서 세자는 기가 막히는 듯이 입을 떨었다—

『에익! 무식한! 옛날 성현이—』

『성현도 아마 저같이 무식해서 오자(誤字)를 쓰신 모양입 지요.』

세자는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그러나 수양은 그냥 벙글 벙글 웃고만 있었다.

—이 웃지 못할 희극—정침(正寢)에 누워서 이 다툼을 들은 왕은 뜻하지 않고 한숨을 쉬었다.

사실에 있어서 수양은 맹자(孟子)한 구절만 따로 바치라 해 도 정확히 바치지 못한다. 뜻만 통할 것 같으면 글자 개개 는 얼마를 고칠지라도 기탄함이 없을 인물이었다. 거기 반 하여 세자는, 뜻은 통하건 말건 (수양의 말마따나) 옛날 성 현이 무식해서 잘못 쓴 딴 자로라도 원문대로 고대로 지키 려는 사람이었다.

이 활달한 둘째아드님과 소소한 毗아드님— 아아, 왜 순서가 바뀌었느냐.

『형님. 부탁이올씨다. 만일에 내가 먼저 불행케 된 뒤라도 동궁의 장래를 형님께 부탁합니다. 동궁은 본시 심약해서 백부님께는 비록 자기가 군왕일지라도 거역을 못하리다. 형 님께서 잘 감시하셔서 유와 불화되지 않도록 주의해 주시기 를 바랍니다. 동생으로서 연로하신 형님께 후사를 부탁한다 는 것은 일이 거꾸로 되었습니다마는 지금 상태로 보아서 아마 이 부탁을 해 두어야 할까 봅니다.』

이 왕의 간곡한 부탁에 대하여 양녕은 절하여 응낙하였다.

[편집]

기사(己巳)년이 가고 경오(庚午)년이 이르렀다.

기사년 가을부터 놀랍게 쇠약해진 왕의 건강은 경오년 철 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더하였다.

초승에 잠깐 조신들의 하례를 받기 위하여 근정전까지 거 동하였던 것이 빌미가 되어 드디어 병석에 눕게 되었다.

이즈음 잦은 한낱 감기쯤으로 여겼더니 환후는 차차 침중 하여 갔다.

어떤 날, (보름께 쯤) 수양은 시어소(영웅대군 사택)에 부 왕의 환후 문안을 왔다.

『전하. 좀 어떠합신지요?』

몹시 추워하기 때문에 겹겹이 장을 친 침침한 웃곡에 엎드 려서 수양이 문안을 드릴 때에, 왕은 수척한 용안을 수양에 게 향하고 물끄러미 보기만 하였다.

수양은 수척한 아버님의 용안을 우러러보았다. 과거 삼십 여 년 간 이 나라의 주제자로서 날고기는 많은 신하들을 마 음대로 구사하던 명군의 야윈 면영을 수양은 엎드려서 머리 만 조금 들고 부왕의 안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왕도 아무 말 없이 이 젊은 아들의 눈만 마주보고 있었다. 서로 보는 눈과 눈, 무표정한 듯하고도 뜻깊은 눈이었다.

『야.』

한참 뒤에야 비로소 왕이 입을 열었다.

『네……』

『내 병환은 골수까지 스미었다.』

『…………』

『아마 다시 일어나지 못할까부다.』

계속하려는 말을 왕이 받았다.

『아니 네 진정으로 대답을 해라. 그럼 네 생각에는 내가 다시 일어날 때가 있을 듯싶으냐?』

수양은 가슴이 선뜻하였다. 본 바의 이 아버님은 다시 일 어날 날이 있음직도 않았다. 자식된 욕심에는 불가능한 일 일지라도 가능하다고 믿고 싶어서, 만에 일의 요행을 바라 고 싶은 생각도 있기는 있으나 냉정한 이성으로 생각할 때 는 이번의 이 병환이 마지막 병환으로 볼밖에 없었다. 그 새의 과도한 노력 때문에 드디어 스러진 이 아버님의 이번 병환은 그의 전 생애를 막음 할 병환일 것이다. 춘추로 보 자면 아직 멀었지만 업적으로 보아서 다른 사람이 몇 대를 두고 하여도 다하지 못할 만한 업적을 겨우 삼십 년간에 끝 낸 이 거인(巨人)은 그 업적의 일단락과 동시에 삶의 막음도 할 것으로 보였다.

수양은 부왕의 하문에 대답을 못하였다. 수양의 대답을 기 다리지 않고 왕은 말을 계속하였다—

『얘야. 이상허구나!』

『?』

왕은 말을 끊었다. 야윈 눈가죽 아래서 눈알이 이리저리 구르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무엇이오니까?』

수양이 재쳐 물을 때에 왕은 눈을 가늘게 떴다. 왕의 눈에 는 아직껏 이 왕에게서 볼 수가 없던—동정을 구하는 듯한 가련한 표정이 나타났다.

『너의 집에 누워서 앓고 싶구나!』

『?』

무슨 뜻? 수양은 얼른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부왕을 우러를 뿐.

『너의 집—너의 집 후당……』

수양은 깜짝 놀랐다. 눈물이 칵 한꺼풀 눈에 씌어졌다.

사 년 전—왕비가 승하한 곳. 환후 침중하매 문득 그 방이 그리워진 모양이었다. 왕비(세자며 수양, 안평 등 여덟 왕자 의 어머님)도 환후 침중하매 대궐에서 나와서 당신네의 가 장 걸출 아드님인 수양의 사택 후당에 나와서 마지막 숨을 들이킨 것이었다. 지금 가장 총애하는 막내아드님의 집에 누워 있으나, 환후 침중하매 문득 사 년 전 왕비의 승하한 그 방이 그리워진 모양이었다.

수양은 눈에 한 껍질 씨워진 눈물을 감추기 위하여 머리를 푹 수그렸다.

『전하의 처분에 달렸읍니다마는 날씨가 하도 차오니까 환 후에 어떠하올는지……』

『아니. 말이 그렇지, 가길 무얼 가겠느냐!』

말이 끊어졌다.

수양은 머리를 푹 수그린 채 묵묵히 있었다. 천 가지 만 가지의 생각이 그의 머리에 왕래하였다. 인젠 벌써 사십을 눈앞에 보는 중년 사나이. 그 사상에 있어서든 골격에 있어 서든 완숙한 장년으로서의 그는 애상적(哀傷的) 기분이란 것 을 잊어버린 억센 사람이었다. 웬만큼 성낼 만한 일은 모두 장자(長者)다이 일소에 붙여 버리고 웬만큼 센티멘탈한 일은 애당초 느끼지도 않을 만큼 호활한 사람이었지만, 이 부왕 의 자조(自嘲)를 띈 하소연에는 가슴이 쿡 찔리었다.

부왕의 지금의 심경을 동정하자면 물론 자기의 집으로 모 셔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왕을 자기의 집으로 모셔 가 면 (그렇지 않아도 사사에 기괴한 에누리를 붙여서 자기를 감시하는) 동궁이 어떻게 생각할까.

다시 회춘치 못할 부왕. 자기 집 후당에서 승하케 되면 부 왕의 마음에는 흡족할지 모르나 동궁과 자기의 새는 더욱 더 트게 될 것이다. 부왕 승하 후에는 동궁이 당연히 국왕 으로서 자기의 보필이 없으면 도저치 한 국가를 요리할 수 없는 샌님이다.

동궁과 자기의 새가 트게 되어, 자기가 국정에서 빠지게 되면 동궁의 시대에 나라를 붙들어 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 아래서 부왕의 이 가여운 뜻은 듣기가 힘들었 다. 부왕도 그 맛 일은 짐작하기에, 스스로 비웃으며 그 문 제를 철회하기는 한 모양이나 부왕의 철회를 다행히 여기고 이 문제를 묵살해 버리려니 더욱 가슴 아픈 일이었다.

—가련하신 아버님이시어.

한참 머리를 수그리고 있다가 수양은 조금 머리를 들었다.

–전하. 일기가 하도 차서 거동합시기가 좀 힘들 듯합니 다.』

아까 한 말을 되풀이하였다.

『지나가는 말이다. 마음에 두지 말아!』

또 잠시 침묵.

『야.』

『네?』

『마음에 두지 말아!』

『네이.』

『그밖에 네게 좀 할 말이 있는데 가까이 오너라.』

『네……』

수양은 무릎걸음으로 바싹 가까이 내려갔다.

『동궁은 아까 다녀갔으니까 오늘 철로는 다시 안 오리라.

네게 좀 할 말이 있다.』

『네……』

왕은 눈을 감았다. 야윈 입술이 몇 번을 들먹들먹하였다.

『너 내 뜻을 알지?』

『네……』

『내 임종 전에 다시 너와 조용히 대할 기회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 이 기회에 내 마음을 있던 말을 다 하련다. 즉 내 유언이나 다름없다.』

『네……』

『동궁은 약한 분이다. 약하기 때문에 의심 많은 분이다.

네가 붙들어야 한다. 동궁이 약하기 때문에 너를 미워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너는 탄하지 않고 충성을 다 해야한다.』

『네. 늘 그렇게 생각하옵니다.』

『그렇지. 나도 안다. 네 마음을 알기 때문에—그러고 너를 믿기 때문에 이 부탁이다. 알아라. 너를 미워할지라도 너는 그 분을 원망할 권리가 없는 사람이다.

『일찍부터 알고 있읍니다.』

『또 약하기 때문에 네가 붙들지 않으면 사직까지 위태롭 다.』

『그것도 압니다.』

『동궁이 아무리 너를 괄시해도—네게 죽음을 명할지라도 너는 거기 거역을 못한다.』

수양은 눈을 들었다—

『상감마마. 신은 동궁마마의 괄시는 결코 탓하지 않겠읍 니다. 그러나 신을 멀리 하시려면 거기는 거역하겠읍니다.

그러나 신을 멀리 하시려면 거기는 거역하겠읍니다. 신이 멀리 가거나 신이 죽사오면 뉘 있어 이 사직을 두호하리 까!』

『오냐. 내가 말을 실수했다. 네 충심을 믿는 배요 네 힘을 믿는 배니 네 마음껏 힘껏 동궁을 보좌해라.』

『네. 신도 일찍부터—』

하려던 말을 끊었다.

『그래서?』

『네……』

『어디 말을 해라.』

수양은 말을 더듬었다—

『네. 저—아직 생존해 계오신 전하께 이런 말씀을 여쭙기 는 불충 불효한 일이오나……』

『마음에 안 남기마.』

『동궁마마 등극하시게 되오면 마마는 곱게 강녕전(康寧殿) 에 모시옵고 신이 사정전(思政殿) 툇마루를 지킬까 이렇게 간간 생각해 보았읍니다.』

왕은 안정을 치떠서 아들을 건너 없었다. 약하고 기운 없 던 눈에 약간 광채가 났다.

『믿는다. 너를 믿는다.』

『지성껏 보답하오리다.』

『또 한 가지, 동궁의 건강이 좋지를 못해. 이런 생각까지 하는 건 지나친 일일는지 모르나 동궁께 불행이 있는 날에 는 세손(世孫)의 장래까지 아울러 당부한다.』

『네. 신의 수(壽)만 넉넉하오면 대대로 몇 대까지라도 주 공(周公)의 역할을 다 하오리다.』

『네가 참기 힘들만치 동궁이 괄시를 할 때는?』

『그래도 참으옵지오.』

『참다참다 참지 못하게 되면?』

『백부(伯父─講寧)께 의논하겠읍니다.』

『아아!』

—내 아들아, 목에까지 나은 이 말을 왕은 꿀꺽 삼켰다.

『백부는 현인이시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백부께 가라. 네 지혜, 네 힘으로면 웬만치 어려운 일은 넉넉히 꺼 나갈 것 이며, 네 참을성이면 대개는 무난하게 넘기겠지만 그래도 당키 어려운 때에는 백부께 문의해라. 동궁도 백부의 말씀 은 거역을 못하리라.』

『그럴 생각이옵지만 참을 인(忍)자 한 자만 마음에 굳게 새겨 두면 백부까지 번거롭게 하지 않더라도 감당할 듯하옵 니다.』

『음. 열 번 참아서 안 되면 스무 번 참고, 스무 번 참아서 안 되면 서른 번 참고—참고 참아라. 인젠 나도 마음놓고 눈 을 감을 수가 있다.』

十一[편집]

그날 왕은 이 아들을 돌려보내기가 싫어서 당신의 침전에 서 저녁까지 먹이어서 밤에야 놓아주었다.

밤에야 부왕께 하직을 하고 별궁을 나온 수양은 그냥 집으 로 돌아갈까 하다가 다시 생각을 돌이켜서 삼촌 양녕을 찾 기로 하였다. 사냥을 갔다가 이삼 일 전에 돌아왔다는 백부 를 그는 돌아온 이래 아직 찾지 못 했던 것이었다. 남녀에 몸을 잠그고 백부의 집으로 가는 동안 수양은 한번도 눈을 떠보지 않았다. 서슬이 푸르른 왕자 수양대군 유의 행차라 고 구종 별배놈들은 의기가 양양하여 우렁차게 호령을 하며 길을 달렸지만 행차의 주인 수양은 무거운 마음으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부왕의 아까의 당부—그것은 자기도 늘 생각하는 바로 그것 이 새삼스러이 마음에 걸리는 바는 아니었지만 아까의 모든 그 말이 모두 부왕의 유탁(遺託)인가 생각하니 저절로 마음 이 무거워졌다.

이전에 그렇듯 풍만하던 볼이 아까 보니 얼마나 야위었느 냐. 그것은 단지 병 때문만이 아니다. 또는 과거 삼십 년간 의 노심의 탓만도 아니다. 마음에 늘 걸리는 동궁과 자기와 의 문제가 근심되어 그렇듯 야위었을 것이다.

—아아. 순서만 바뀌어 났더면…… 가련하신 아버님이시어.

자기도 잘 안다. 아버님이 이런 뜻을 입 밖에 내어본 일은 절무하지만, 마음 깊이는 늘 이 탄성이 울리고 있는 것을 잘 아는 바다.

—순서만 바뀌어 났더면. 왜 자기가 뒤에 났던고.

—순서가 이렇게 된 이상에는 또 하다 못해 자기의 형 동궁 이 부왕의 형 양녕과 같이 활달한 인물로라도 되었더면, 그 래도 좀 나을 것을 왜 그다지도 마음이 작고 좁고 약하고 투기심 많은 인물로 태어났다.

—나는 현재의 동궁이요. 장래의 국왕이니 내 자리는 자리 려니와 내 힘이 모자라는 곳은 네가 도와다오.

—왜 이렇게 솔직히 나오지 못하는가?

자기는 아무 타의가 없고 오로지 형으로서 또는 동궁으로 서 성심성의 섬기거늘 왜 그렇게 자기를 의심의 눈으로 보 고 꺼리고 피하고 멀리하려 하는가.

지금껏은 아직 부왕이 생존해 계시고 부왕의 아랫니 그다 지 탓할 것도 없거니와 만약 부왕 승하하시고 동궁이 즉위 하게 되는 날은 그때야말로 자기에게 대하여 노골적 증오와 기탄이 부어질 것이다. 자기는 모든 일을 다 참고 그날의 형왕께 끝끝내 충성되려 하지만 그 충성을 받지 않으려면 어쩌나. 왕의 잡은바 권력으로서 자기를 멀리 하려면 어쩌나.

필시 그럴 것이다. 필시 그럴 것이라 딱한 일이었다.

거기 항거하는 것은 군왕께 항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거기 승복하면 이는 충성이 아니다. 옹의 그릇된 일을 그대 로 보고 그냥 복종하는 것도 인신의 도리가 아니다.

어쩌나.

괴로운 입장이었다.

『컹컹컹컹.』

와르르, 요란한 소리에 펄떡 정신을 차리니 행차는 어느덧 백부 양녕의 집 대문 안에 들어섰다. 이 댁 사냥개들이 우 렁차게 짖으면서 뛰어 나왔다.

수양은 남녀에서 내렸다.

『이 개!』

둘러서서 짖어대는 개에게 별배들은 겁이 나서 비슬비슬 피하는 것을 수양은 우렁찬 소리로 호령하고 이 댁 하인들 이 달려 나와서 개를 진정시킬 동안 중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十二[편집]

『백부님. 주상전하의 환후가 심상치 못하시옵니다.』

『음. 지금 어소에서 나오는 길이냐?』

『네……』

마주 앉은 숙질.

양녕은 조카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네 얼굴은 근심에 쌓이면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다. 펴 라.』

수양은 고소하였다.

『백부님은 언제던 참 근심이 없으셔서 다행이올씨다.』

『내게 무슨 근심이 있겠느냐. 내 신분이 왕형(王兄)이요, 불형(佛兄—孝寧大君의 兄)이고……』

『그렇지만 저도 왕자(王子)요. 장차 왕제(王弟)가 될 신분 이라도 근심이 태산같읍니다.』

수양은 적적한 듯이 머리를 숙였다.

『그다지 근심 말어라. 동궁도 마음이 약할 뿐이지, 악인은 아니다. 호랑이도 새끼를 많이 낳으면 한 마리는 스라소니 가 있는 법이니라. 스라소니가 毗이 된 게 좀 탈이지만 ……』

양녕은 쾌활히 웃었다.

『자. 노루고기나 좀 먹어 보련?』

『싫습니다.』

『네가 노루고기를 싫다니 웬 일이냐?』

수양은 머리를 숙였다. 한숨이 입에서 새려 하였다.

『백부님. 백부님의 심경이 부럽습니다.』

『일반이니라. 나는 왕형. 너는 왕제니 네나 내나 다를 게 무에 있느냐. 마음 하나 먹기에 달렸지.』

『그럴까요? 백부님의 왕형은 편히 놀읍시고 사냥이나 다 니시면 그뿐이겠지만 제 왕제 노릇은 그렇지 못할까 하는데 요.』

양녕은 잠시 뚫어져라 하고 조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야. 낸들 네 마음을 왜 모르겠느냐. 다 안다. 알지만 할 수 없지 않느냐. 네 팔자 고약해서 그런 걸 어쩌겠느냐. 너 도 동생을 두려면 나 같은 동생을 두었더면 좋지. 이왕에 그렇지 못한 이상에는 근심이나 하면 무얼 하느냐? 근심 걱 정 다 버리고 오늘은 네 삼촌이 잡아온 노루를 안주 삼아 술이나 먹자. 음식은 먹으면 없어지지만 근심은 한다고 덜 어지는 게 아니다.』

수양은 눈을 고요히 들어서 삼촌의 호활한 얼굴을 쳐다보 았다.

일찍이 장래의 이 국가의 주인으로 세자로 책봉까지 되었 다가 그 고귀한 세자의 위를 헌신같이 내어던지고 한 개 왕 자로 그 뒤는 한 개 옹형으로—사냥을 소일삼아 여생을 보내 는 이 쾌활하고 호협한 노인의 얼굴을 우러러 볼 동안 수양 의 마음에도 얼마만큼 우울한 기분이 사라지는 듯하였다.

수양은 밤이 꽤 깊도록 이 집에 있었다. 삼촌과 술을 나누 었다.

자정이 지나도록 삼촌의 술을 얻어먹으며 삼촌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 득도한 노인의 기분이 전염된 탓도 있겠지만, 술에 얼근히 취한 수양의 마음은 꽤 가벼워졌다.

백부께 하직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댓돌에 나서서 우 연히 하늘을 우러러보니 이마 꼭 맞은편 하늘에는 경오년 살별(彗星)이 꼬리를 길게 뻗치고 있다.

『살별이다. 길조(吉兆)냐, 흉조냐.』

수양은 잠시 그냥 서서 그 괴상한 광휘를 내고 있는 살별 을 우러러보다가 뜰로 내렸다.

十三[편집]

이월에 들면서 환후는 매우 중하였다.

이월 열엿새(경오년) 날이었다.

왕은 그 날 아침에는 예에 없이 기분이 깨끗하고 상쾌하여 이즈음 그다지 부르지 않던 소원한 신하까지 와내(臥內)에 불러들이어서 정사(政事)의 하문까지도 하여서, 왕실지친은 물론이요 외신들까지도 적지 않게 기뻐하고, 왕의 환후에 퍽 희망을 품게 하였다.

이월의 짧은 해가 툇마루 밖을 잠깐 비취고 지나갈 무렵에 왕은 옅은 잠을 풀낏 들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축축히 배면서 왕은 잠에서 깨었다.

이 때 용태는 갑자기 변하였다. 못된 꿈을 본 때문이었다.

깨면서 겁에 뜨인 안정을 당황히 구을릴 때에 어렴풋이 보 인 것은 몇 개의 얼굴이었다. 이 「보인다」는 것을 확실히 감각하는 순간에 그 얼굴의 주인이 누구라는 것도 알아내었 다. 그러나 이 얼굴의 주인과 저 얼굴의 주인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인지는 두세 번 다시 본 뒤에야 알았다.

지극히 예민한 감각과 지극히 무딘 감각의 두 가지로 활동 하는 지금의 왕의 두뇌는, 지금 마주 보이는 당신의백형 양 녕대군과 毗아드님 동궁과의 효상 관계를 명백히 하려고 잠 깐 눈을 감았다.

잠시는 알아낼 수가 없었다. 마음이 답답하였다. 그 마음에 못하지 않게 가슴이 답답하였다. 숨을 들이쉬면 시원하도록 들이킬 수가 없이 중도에 도로 토하게 된다. 토하다가는 답 답하여 중도에 도로 들이키게 된다. 가쁘기 한량없었다. 하 ─하─ 숨찬 호흡에 시달리면서, 왕은 온머리의 힘을 집중 하여 맞은편의 한 노인과 한 중년(동궁의 춘추 서른 일곱이 었다)의 효상 관계를 알아내려고 애썼다.

『전하. 기흡이 어떠시오니까?』

동궁의 말이었다. 입을 놀림에 따라서 동궁의 기다란 수염 이 움직이며 그 수염 뒤에 절반만큼 가리워 있던 다른 얼굴 이 칠 분 가량 나타났다 도로 감취었다 한다.

그 수염 뒤의 얼굴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면서 왕은 온 효상 관계가 한숨에 환하여졌다. 수염 뒤의 얼굴은 둘째 아 드님 수양이었다.

왕의 병적 신경은 한 순간 소름 돋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 다. 야윈 뺨에 히믈히믈 경련이 일어났다. 풀솜 넣은 처네이 불 위에 또 풀솜이불과 그 위에 털 이불을 써서 두껍게 덧 덮인 이불을 들치려고 팔을 꺼냈다. 몸을 일으키고 싶었던 것이다.

『전하. 밀수를 뫼(가져)오리까?』

양녕이 그의 웅장한 음성을 기껏 작게 하여 여쭈어 보았다.

『아니. 좀─일어─나─』

숨찬 아래서 왕은 겨우 말하였다.

『안정해 계오시지 왜 일……』

『아니. 좀 부축……』

왕은 일어나려고 한편 팔을 이불 밖으로 간신히 꺼내었다.

꺼낸 팔을 엄습하는 지독한 냉기에 진저리를 쳤다. 그러면 서도 한편 팔마저 꺼내려고 움찔거렸다. 시측하던 사람들이 어찌하여야 좋을지 알 수 없어 서로 얼굴만 보았다. 가만 방임할 수도 없는 일이요, 그렇다고 이 추운 날 중태의 왕 을 일어나게 부축하기도 어렵고 그러니 왕이 이 아픈 몸을 일으키려는 것은 무슨 곡절이 있을듯해서 억지로 말리기도 힘들었다.

시측하는 사람들이 거취를 작정치 못하고 서로 서로 관망 만 할 동안 왕은 양팔을 다 꺼내었다. 그러고는 누웠던 몸 을 엎드리려고 다리까지 음찔음찔하였다.

항(抗)에 불을 때기는 많이 때었지만 지독히도 일기가 매워 서 방안은 서늘쩍하였다. 병인이 일어나기도 적당치 못한 온도였다.

『누구 좀.』

왕은 조력을 청하였다.

드디어 양녕이 나왔다. 양녕은 바람나지 않게 관복의 소매 와 자락을 가다듬고 조심조심히 내려가서 왕의 측면으로 돌 아서 왕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었다.

『전하. 어떻게 하오리까.』

존귀한 아우님의 귀에 입을 가까이 하고 은근히 물었다.

숨찬 호흡, 떨리는 사지—왕은 형님께 몸을 맡기면서,

『좀 앉기어 줍시오.』하고 청하였다. 양녕은 처네를 끌어 빼어 왕의 몸을 감싸면서 부축하여 일어나게 하였다.

왕은 가쁜 숨을 괴롭게 쉬며 몸을 떨며 간신히 일어나 앉 았다. 그러고 뒤에서 부축하는 형께 몸을 기대고 왼쪽 팔은 사방침에 의지하며, 힘없는 안정을 들어 동궁을 건너보았다.

『동궁, 좀 이리로……』

동궁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 구원을 청하는 것같이 얼 른 백부 양녕을 보고 곧 동생 수양을 돌아보았다.

『저하(邸下). 어서 복명하세요.』

수양도 동궁을 권하였다.

동궁은 부왕께 가까이 내려가 부복하였다. 그러나 왕이 동 궁을 부른 것은 마주 대하여 무슨 분부를 하기 위해서가 아 니었다.

『저 보(寶=玉璽)를……』

왕은 옥새를 당신의 무릎 앞에 갖다 놓게 하였다. 그러고 이 국가와 국왕의 존엄을 대리하는 장중한 물건이 들은 함 을 굽어보았다.

수양 이하 모두 조용하였다. 왕의 숨소리만 가쁘게 정숙을 깨뜨렸다.

왕이 잠깐 앉았다가 곧 다시 누을 줄 알았더니 그럴 것 같 지 않으므로 내관이 양녕을 대신코자 가까이 오는 것 같지 않으므로 내관이 양녕을 대신코자 가까이 오는 것을 왕은 금하였다. 그리고 숨찬 가운데서 간신히 정승을 와내(臥內) 로 불러오기를 명하였다. 그런 뒤에는 당신의 분부가 시행 되기까지,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여, 눈을 굳게 감고, 양녕께 몸을 의지한 채 묵묵히 기다렸다.

정승들이 들어왔다. 조심스러이 들어와서 제 대군(諸 大君) 의 뒤에 부복하였다.

정승들이 들어왔는데도 왕은 아무 말도 없으므로 뒤에서 왕을 붙안고 있던 양녕이 조금 목을 앞으로 빼어 왕의 측면 을 보니, 왕은 잠시 들었다.

중태의 왕을 깨우지 않으려고 모두 죽은 듯이 조용하였다.

왕의 가쁜 호흡성만 들리었다.

왕은 오래 자지 않았다. 얼마를 기다리지 않아서 왕은 한 번 진저리를 치면서 눈을 떴다. 뜨고는 둘러보았다.

『동궁.』

동궁을 불렀다. 이번의 음성은 전번보다 적이 명료하였다.

『네이.』

『이리로─이─이리로.』

왕은 안정을 굴려서 동궁의 앉을 자리를 지시하였다. 몇 번을 다시 지시하고 다시 지시해서 동궁이 왕의 뜻에 합하 는 자리에 갔는데, 그것은 왕의 오른쪽 곁으로서, 즉 왕과 나란하여 앉아서 제 대군, 군이며 정승들과 상대하게 되는 것이었다.

동궁을 곁에 앉히운 뒤에 왕은 잠깐 숨을 돌리고 이번은 다시 눈을 적이 굴리어 안평 숙(安平叔)의 곁에 앉아있는 세 손(世孫)을 보았다.

『이리로 나오너라.』

세손을 앞으로 불렀다. 세손이 나와서 부복할 동안 왕은 머리를 틀어서 반만큼 형 양녕께 돌렸다—

『형님. 팔 피곤하시지요.』

『아니올시다.—전하 왜 이렇게 가벼우십니까. 칠팔 세 소아 나 다름없읍니다.』

『잠깐만 더 붙들어 주세요.』

왕은 형께 향했던 안정을 동궁 쪽으로 돌렸다. 가뜩이나 약하던 위에 부왕의 환후 시측하느라고 근래 더 형지없이 피골이 상접한 동궁. 안면은 수염에 감취어서 그다지 모르 겠지만 두 손은 장작개비같이 핏기 없고 살 없었다. 몸이 약할 뿐 아니라 마음 또한 지극히 약해서 지금 뭇 왕실 지 친과 정승들에게 남면(南面)하여 앉은 것이 매우 거북한 모 양으로, 눈이 부신 듯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이편 세손을 건너다보니 아홉 살 난 소년에게 소년다운 활 기보다 어른다운 기색만 풍부히 보였다.

—국가를 조리하기에 너무 약하구나.

왕은 팔을 펴서 무척 애를 써서 옥새를 끌어당겨 동궁 쪽 으로 밀어 놓았다. 그리고 당신의 몸도 많이 애를 써서 옥 새를 끌어당겨 동궁 쪽으로 밀어 놓았다. 그리고 당신의 몸 도 많이 애를 써서 동궁을 향하여 돌아 앉았다.

몸을 돌리고는 양팔을 펴서 방바닥을 찾었다. 차차 차차 머리를 수그리다가 푹하니 엎드려 버렸다.

동궁과 양녕이 깜짝 놀라서 붙들어 일으키려 하매 왕은 엎 드린 채 그냥 두라는 뜻으로 머리를 약간 저으며 『저하(邸 下)─전하(殿下)─휼민(恤民)합쇼. 무겁소이다. 곤하오이다.』

차차 듣기 힘들도록 옥음은 작아갔다.

동궁은 망지소조하여 몸을 와들와들 떨고만 있었다.

왕자와 정승들 틈에서는 느껴 우는소리가 들렸다.

왕은 엎드린 채 다시 일어날 기력이 있어서 몸을 지탱하던 팔꿈치도 넘어지고, 가슴까지 방바닥에 대어버렸다.

양녕이 내관과 협력하여 왕을 다시 자리에 누였다. 동구과 세손은 왕의 분부로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기동(起動)하기 때문에 생겼던 피곤을 한참 삭힌 뒤에, 왕 은 수양을 어전에 불러내었다—

『유야. 내가 임종이야. 나 없은 뒤에는 동궁 저하를 나로 알고 지성껏 섬겨라. 저하는 선비(士)라 도덕 높고 착하기 한량없으시지만 눈이 미처 못 믿는 데가 있을지도 몰라. 그 런 때엔 네가 잘……』

『분부 안계실지라도 생각 믿는껏 섬기고 보좌하오리다.』

왕은 잠시 숨을 돌려 가지고 이번은 안평을 불렀다.

『너도 힘을 합해서 저하께 충성해라.』

『수양형 계신데 신 같은 어리석은 자야 있으나 없으나 일 반이겠읍니다.』

왕은 입맛을 다시고 좀 쉬어서 다시 말을 하였다—

『너는 매사에 수양형께 투심(妬心)을 품어. 형제 화목해 라.』

왕은 왕자들을 차례로 어전에 불러서 유훈을 하였다. 그 뒤에는 형 양녕대군께 모든 조카들은 잘 감독해서 나라에 충성되고 형제 화목토록 지휘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마지막에는 정승들을 불러서 국사와 왕실에 대하여 한결같 이 진충 갈력하기를 부탁하였다.

왕자와 대신들에게 뒷당부를 한 뒤에 왕은 동궁을 물러가 게 하고 그 자리에 세손을 불러 앉히었다.

눈을 감고 세손의 손을 잡았다.

임종을 눈앞에 놓고 이 어린 손자님의 장래를 생각하매 한 량없이 근심되었다.

왕에게는 동궁이 장수치 못할 것 같이만 생각되었다. 이전 에 당신의 형 양녕께는 동궁이 단명하고 세손이 영특하면 좋겠다고 말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날인가, 왕이 우연히 자선당(동궁처소) 뒤로 돌아갈 때에, 동궁이 어린 아 드님(세손)을 훈시하던 그 말—삼촌을 삼가라. 수양숙(首陽 叔)을 삼가라. 무서운 사람이다—하던 말을 들은 이래로 왕 은 새로운 큰 근심 때문에 늘 번뇌하였다.

세손이 만약 어렸을 때부터 아버님되는 동궁께 그런 교훈 을 받고 자라면 장차 영구히 수양숙과는 화목하게 지낼 수 가 없을 것이다. 지금 이 반조(半造)의 국가를 완성시킴에 있어서는 절대로 수양의 힘을 빌지 않을 수가 없다. 동궁이 나약하여 인군(人君)은 될지언정 명군(明君)은 될 가망이 없 는데, 동궁의 아드님인 세손도 또한 그러하다. 지금껏 아버 님인 동궁의 아래서 무엇보다도 삼촌 공포 관념만 길러왔 다. 인제부터 비로소 그 사람됨을 만들어야 할 터이다. 이제 당신 세상 떠나고 보면 그것도 가망 없고 장차로 볼지라도 동궁과 같은 착한 선비는 될지언정 왕자(王者)의 금도와 배 포는 없고 배울 수 없고─배우려면 수양을 믿고 수양을 본 떠야겠는데, 수양에게는 반항심과 공포심만 품은 세손이라, 한심하고 딱하였다.

태조 시대에 무력(武力)으로서의 개국(開國)이 되었고 정 종, 태종, 두 대에 민심 수습을 간신히 끝내어 이 어수선한 국가를 당신이 그 뒤를 받아 삼십 년간, 다듬고 깎고 갈고 닦아서 인제는 국가로서의 기초는 만들어 놓았다.

당신의 손으로 꽃까지 찬란히 피우고 싶었다. 불행히 하늘 이 수(壽)를 빌리지 않아 중도에 손을 떼게 됨에 하다 못해 마음 놓이는 후계자에게 뒤를 맡기로 싶다.

『국가 태평시에는 毗()을 사(嗣)로 하고 국가 어즈러울 때 는 공(功)있는 자를 사로 한다.』는 원칙에 따라서 당신이 이렇듯 수(壽)가 짧을 줄은 모르고 지금은 태평시라 보고 말 을 취하였더니, 급기 임종이 눈앞에 당도하고 보니 아직 태 평시가 못 되었다.

그러나 인제는 다시 바꿀 수가 없는 노릇이다. 당신의 형 님 양녕대군같은 현인이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하고는 지금 바꾸었다가는 더 큰 화란이 미칠 것이다.

일이 이미 이렇게 된 이상에는 동궁의 도량과 수양의 진충 갈력을 기다릴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사랑하는 손자님의 손을 잡고 눈을 감고 있을 동안 왕의 눈 좌우에서는 눈물이 한없이 흘렀다.

十四[편집]

이튿날 왕은 많은 수심을 품은 채 고요히 이 세상을 떠났 다. 수 쉰 넷.

동궁과 수양을 가까이 불러서 형제의 손을 맞잡게 하고 당 신이 몸소 그 두 손을 잡아서 이와 같이 끝까지 서로 붙들 고 살아가라는 뜻을 보이고 그 손을 잡은 채로 승하한 것이다.

묘호(廟號)를 세종(世宗)이라 하였다.

대행왕(大行王)의 뜻대로 毗아드님이 등극을 하였다.

十五[편집]

선왕이 이 세상에 끼치고 간 자녀는 적출(嫡出)이 팔남 이 녀요, 서출이 십남 이녀—합계 스물 두 분이다. 대행왕(세상 떠난 임금—大行王)의 뜻을 이어서 毗아드님(文宗)이 위에 올랐다.

재궁(梓宮)이 아직 빈전(殯殿)인 휘덕전(煇德殿)에 있을 동 안 신왕은 한 시 한 때도 재궁의 곁을 떠나 본 적이 없었 다. 승하한 것이 이월 열 이레—아직도 꽤 추운 절기요, 더욱 이 밤에는 화기(火氣)도 없는 넓다란 빈전엔 건강한 몸이라 도 추위가 뼈까지 스며들며, 몸이 오그라지도록 추웠다. 넓 다래서 한데 같은 빈전에 찬바람이 자유로 왔다 갔다 하였다.

바깥은 볕이나 들었지만 침침하고 막을 데 없는 빈전 안은 밖보다 훨씬 더 추웠다. 시종 드는 내관들은 속에 두꺼운 옷을 겹쳐 입어서 이 냉기를 얼마만큼 막고 그리고도 우들 우들 떨고 빈전 밖으로 심부름이라도 나가면 할 수 있는 대 로 거기서 오래 시간을 보내서 빈전에 들어오기를 피하였 다. 그러나 그렇게 일시적으로 남의 눈이나 속일 처지가 아 닌 신왕은 한결같이 부왕의 영해를 지켰다.

본시 약질인데다가 오래 부왕의 병석을 모셨는지라 건강상 태는 말할 여지도 없었다. 본시 수염이 많은 데다가 그 동 안 소세도 안 하여 때는 낄 대로 끼고 손톱은 돋을 대로 돋 고 옷은 구기고 덜미고—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영해(靈骸)를 영능(英陵)에 안장(安葬)하기 위하여 비로소 몸을 기동하였다.

몸을 일으키다가 눈이 아뜩하여 앞이 캄캄해졌다. 무엇을 붙들으려고 양손을 휘저었지만 눈이 보이지 않아서 허공만 어루만졌다.

내관이 황급히 달려와서 부액을 하였지만 왕은 부액 받은 채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머리를 들으려고 힘썼지만 그 반대로 머리는 무릎에 묻히고 몸은 내관의 품에 쓰러졌다.

모두 당황하였다. 인산(因山)에 수행하려고 전정에 모였던 왕족이며 삼공 이하 문무 제신이며 백관들도 모두 어쩔 바 를 모르고 설레대었다.

대군렬(大君列)에 섞여 있던 수양이 먼저 뛰쳐나왔다. 두서 를 차리지를 못해서 빙빙 도는 중관들을, 두 사람을 불러서 왕을 부축케 하고, 돈피 이불로 옥체를 싸게 하고, 일변 따 뜻한 꿀물(밀수)을 가져오게 하고 스스로는 왕의 수족을 주 무르고 불피운 화루를 몇 개 가져오게 하여 왕에게서 한 반 쯤 되는 곳에 둘러놓게 하였다.

잠시 뒤에 왕은 정신이 들었다. 먼저 당신의 곁에서 팔다 리를 주무르던 수양에게로 눈이 향하였다. 훈훈한 화로의 온기로써 화로의 존재도 알았다.

왕은 돈피 이불을 벗어 버렸다.

『이 화로는 웬 게냐.』

『신이 명하왔습니다.』

수양이 복계하였다.

왕은 일어나려 하였다.

『상인(喪人)에게 당찮은—』

왕은 성가신 듯이 화로를 보았다.

『전하 잠깐만 더—』

수양이 말리는 것을

『아니. 인젠 괜찮으니.』

하면서 비칠비칠 일어섰다.

十六[편집]

봉능하고 돌아 와서 왕은 이틀을 자라에서 나지 못하였다.

침전에서 시무(視務)하였다. 경연관(經筵官)도 침전에 불렀다.

수양이 형왕의 건강을 근심하여 누차, 한 동안 안양하기를 진언하였지만 왕은 굳게 거절하였다. 조금이라도 당신의 몸 에 편하든가 당신께 즐겁든가 당신께 호사스러운 일은 일체 로 금하고 행하지 않았다. 여관은 곁에도 못 오게 하였다.

인산 직후는 성하(盛夏)였다. 찌는 듯이 더웠다. 그러나 당 신은 얼음은커녕 부채질까지도 엄금하고, 이 찌는 듯한 더 위를 그냥 참았다. 의대에는 통 땀이 배고 살이 물컨지고 하여 그 고통이며, 냄새며가 보통 사람으로도 견디기 힘들 만한데 더욱이 금지옥엽으로 자란 왕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때마다,

『지하의 선왕께서는 어떠시랴.』하고 눈물을 흘리고 하였다.

대신이며 재상들도 아무 말도 못 하였다. 그들의 눈에도 나날이 더 쇠하여 가는 왕의 건강이 번히 보였지만, 어떻게 하여야 될지 방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명군의 아래서 좋은 지휘가 있으면 그것을 어김없이 이행할 줄은 알지만 스스로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방책을 안출할 줄은 모르는 그들이었다.

왕은 좀체 자리에 눕지 않았다. 자리에 눕는 것은 죄악이 라 보았다. 일어나서는 강인히 시무하였다. 시무라 한댔자, 그날 그날의 간단한 일을 보고 경연에 나아가고 하는 것뿐 이지, 중대한 용무는 전혀 치지도외하였다. 삼 년을 치르기 전에 중요한 일을 보거나 처리하는 것은 효도에 어긋나는 일이라 보아서 그냥 방임하였다.

신하들도 모두 무위무능한 사람뿐이지, 변변한 사람이 없 었다.

황보 인(皇甫仁) 같은 사람은, 아무 재간도, 지략(智略)도, 압력(壓力)도 없는 한 늙은 선비에 지나지 못하였다. 대궐 문지기 노릇이나 하라면 잘 감당해 나갈 사람이지만 국정 (國政)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 이었다.

한 때 조선 천지를 휘날린 용명(勇名) 높은 김 종서(金宗 瑞) 같은 사람도, 선왕의 아래서 선왕의 지휘대로 다만 충직 하게 일하였기에 큰 일을 성공하였지, 저 혼자 제 마음대로 버려 두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분간도 못하고, 무론 그런 큰 일을 성공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혹은 허후라, 혹은 하연이라, 모두 여사 여사한 일을 해라 하면 충실히 그 일을 실행은 할 사람이지만, 스스로, 어떻게 어떻게 하면 나라에 도움이 되리라고 꾀를 안출하고 베풀만 한 능력은 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들 위에는 다만 명철한 임금이 있어서 지휘하고 지도하고 시키어야만 될 것이어늘, 왕은 다만 복상에만 충 실하고 국사는 돌보지 않는다.

신 숙주라, 성 삼문이라, 박 팽년이라, 신진기예의 학도들 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아직 그 지위도 국정에 용훼할 처지가 못 될뿐더러, 경력이 얕아서, 정치가 어떤 것인지, 치민(治民)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만한 나이가 부족하다. 다 만 슬기로울 뿐이지, 그 인격에서든 경력에서든 지위에서든 역량에서든 국인에게 받는 신임에서든, 또는 수완에서든 이 임(任)에 당할 만한 사람은 수양 단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수양은 형왕의 신용이 없다. 그 지위가 지위라 형 왕은 늘 수양에게 의혹의 눈을 던지고 경계심을 품고 마음 터놓지를 않는다. 이것이 수양에게는 매우 민망하고 답답하 였다.

둘러보면, 형왕은 정사를 돌보지 않고 복상의 예절만 지키 기에 급급하고 대신들은 지금 이 세상을 가지고 태평세월이 라 하여 술이나 먹고 바둑이나 두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고 신진기예의 소년들은, 경서(經書)토론만을 위주하고 있으니, 한심스러운 노릇이었다. 경서 이외의 학술을 잡술이라 하여 수모하기 한량이 없고, 다른 학문에 정진하는 자가 있으면 사도에 어긋난다 하여 배척하여 마지않는다. 선왕 세종은 이렇지 않았다.

선왕 삼십 년간에 가꾸고 기른 찬란한 문화는 지금 나날이 쇠하여 간다. 일기(技), 일능(能)이 있는 자면 그 기, 그 능 이, 비록 한 역학(譯學), 한 야금(冶金), 한 음률(音律), 하다 못해 천한 장인(匠人)에 지나지 못할지라도 좀 빼난 기능이 있으면 육품직 이상의 벼슬을 주어 장려하여 마지않았다.

그랬기에 단 삼십 년 재위 동안에 이 땅은 기름지고 제도 문물이 갖고 문화가 향상되고 방가가 안돈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형왕은 문학 이외의 다른 학술을 모두 잡기라 하여 천대하고 멸시하고 돌보지 않고 그 학술의 발달을 국 가의 불행으로 알고 억압하여 마지않는다.

부왕과 같이 왕 당신이 온갖 학술에 통달하여 당신이 몸소 앞서 지휘하고 가르치고 하지는 못할망정, 그것을 잡술이라 하여 억압하고 배척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무슨 학문 이던 간에 발달되면 그만치 방가에 유익하고 도움되고, 혹 은 시재 필요치 않다 할지라도 언제든 쓸 데 있는 날이 있 을 것이다. 설사 쓸 데 있는 날이 이르지 않는다 할지라도,

「있어서 해로울 것」은 없을 것이다.

유학(儒學)도 물론 쓸데없는 바는 아니지만, 그것이 쓸데 있는 만큼 다른 학문도 또 쓸데 있다. 한 개 방가에는 온갖 학문이 다 갖춰야 할 것이다. 이전 부왕은 그러하였다. 어느 것을 더 중히 여기고 어느 것을 더 경히 여기지 않고 학문 이라는 학문은 다 존중히 여겼다. 부왕 치국(治國) 삼십 년 간에 이 나라가 이렇듯 완전해지고 이렇듯 건실하게 된 것 은 오로지 학문에 경중을 두지 않고 어떤 학문(기예까지)이 든 간에 한결같이 귀히 여기고 장려하고 북돋운 덕이다.

지금 형왕은, 현재는 다만 복상에만 주력하고 장려에도 (그 성격으로 보아) 유학(儒學)만을 힘 쓸 테니, 부왕 삼십 년간 에 닦아 놓은 기초는 무엇을 의지하고 성장하랴.

『아! 아.』

과거를 돌아보고 장래를 생각하면 수양은 저절로 탄식성이 나오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형왕과 다투리라. 다투어서라도 아버님의 유지를 달성하 리라.』

十七[편집]

세종이 승하한지 일년 남아가 지났다.

그때는 왕(문종)의 건강 상태는 말이 안 되게 되었다.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서지는 도저히 못한다. 무심코 몇 번 갑 자기 일어나다가, 정신이 아득하여 다시 주저앉은 뒤부터는 몸을 일으킬 때는 한참을 마음으로 준비를 하고 사지를 약 간씩 움직여서 일어날 준비를 충분히 한 뒤에야 내관을 불 러서 부액을 시키고 그러고도 무릎을 손으로 짚어 가면서야 일어나고 하였다.

어떤 날 왕은 조회를 받기 위하여 근정전에 났다. 즉위한 지 일년 남아 뒤, 신미 년 유월 어떤 날이었다. 품반품서(品 班品序)에 따라서 정하에 정렬하여 국궁하고 서있는 군신들 을 왕은 피곤한 듯이 굽어보고 있었다.

배례가 끝난 뒤에 왕은 편전으로 입어하여야 할 것이었다.

입어하려면 몸을 일으켜야 할 것이었다. 시종이 부액을 하 기 위하여 용상 뒤로 돌아갔다. 몹시 힘을 들여서야 일어서 는 왕인지라, 시종은 뒤에서 옥체를 붙안고 조금 힘을 주었 다. 그러나 옥체는 무겁기가 천근같았다. 조금 더 힘을 들여 보았지만 왕은 일어날 듯싶지 않았다.

대군(大君) 열에 있던 수양은, 왕이 하도 오래 그냥 용상에 있으므로, 눈을 약간 치뜨고 용상을 우러러보았다.

왕은 눈을 감고 있다. 머리가 축 가슴에 묻혀 있다. 뒤에 돌아가 있는 시종들은 몰랐지만 용상 맞은 편에 있는 수양 은, 용안이 심상치 않은 것을 알았다. 뜻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려 하였다. 그러나 감히 그럴 수도 없어서 근심스런 눈 으로 (곁눈으로) 용상만 주의하고 있었다.

내관들은 옥체를 일으키려고 팔에 좀 더 힘을 주었다. 그 힘에 옥체는 용상에서 떠났다.

그러나 다음 순간 왕의 상반신은 맥없이 앞으로 수그러졌 다. 거기 깜짝 놀라서 시종들이 옥체로 정신이 팔리는 순간, 옥체는 시종들의 팔에서 용상 우으로 푹 쓰러졌다.

수양은 깜짝 놀랐다. 이것저것 돌볼 처지가 아니었다. 한 걸음 뛰고 두 걸음 뛰고 세 걸음 뛰어서 용상 아래까지 이 르렀다. 용상에 뛰쳐 올랐다. 옥체를 붙안아 일으켰다.

『전하! 전하!』

그 순간 왕도 머리를 들었다. 그때야 왕도 정신이 회복된 모양이었다. 겁에 뜨인 안정을 두어 번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인젠 괜찮으이.』

비교적 명료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고 수양더 러 내려가라 하고 내관에게 부액을 분부하였다.

그러나 수양은 제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마음이 안 놓 였다.

『전하. 신께 의지합시고 입어하옵시다.』

평소에 꺼리는 동생이로되, 이 비상한 때에 민활하게 당신 을 보호한 공적을 가상하게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왕은 수양의 건장한 팔에 당신의 몸을 맡기었다.

수양은 왕을 편전으로 모시지 않고 내전으로 모시었다. 그 러고 내관을 명하여 금침을 피게 하였다.

극도로 몸이 쇠약하였던 왕은, 조회의 피곤 때문에 일시 상기를 하였던 것이었다. 왕이 안정하여 고요히 잠드는 것 을 보고서 수양은 침전을 물러 나왔다.

수양은 빈청으로 나왔다. 대신들은 모두 아직 당황하여 두 선 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수양이 나오는 것을 보고 모두 들 눈을 수양에게로 향하였다.

『지금 주무시우.』

수양은 간단히 그들의 근심에 대답해 주고 빈자리에서 묵 연히 앉았다.

대신들은 단지 시재의 변괴만 걱정하지만, 수양에게는 다 른 커다란 근심이 있었다. 왕의 건강 문제였다.

왕은 이전 동궁 시절부터 본시 약질인 데다가 학업에 과히 힘을 써서 더할 나위 없이 건강이 상하였다. 그렇던 중에 또한 부왕의 환후가 차차 중하여 가매, 본시 효성 많은 왕 (당시의 동궁)은 침식을 잊고 부왕의 간호를 하였다.

부왕의 환후라는 것은 무슨 갑작스런 병환이 아니고 하도 과로(過勞)하기 때문에 골수까지 스며든 것이라 일조 일석에 더 중하여질 것도 아닌 동시에 일조 일석에 악화할 것도 아 니었다. 시름시름 앓는 것이, 조금씩 차차, 중하여 가는 것 이었다.

그런 장구한 환후를 동궁은 한결같이 시중하노라니 동궁의 신체도 차차 차차 더 약하여 갔다. 그런 중 동궁의 성질이 또 매우 심약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은 일도 크게 걱정하 고 근심하여, 이것 때문에도 건강은 더 나쁘게 되었다.

동궁은 장래의 이 나라의 임금이라 그 건강이 근심되어 수 양은 늘 형께 건강에 주의하기를 권하였다.

보약을 자시고 기름진 음식을 부르기를 늘 권하였다. 그러 나 동궁은 한결같이,

『대전께서 환후가 계신데 신자가 무슨 흥이 난다고 보약 을 먹고 무엇을 잘 살자고 기름진 음식을 먹겠는가.』고 거 절하곤 하였다. 수양이 자기의 뜻으로 동궁께 쇠고기 찜을 바친 일이 있었다. 동궁은 그것을 보고 벌떡 일어나며 음식 그릇을 뜰로 내어 던진 일까지 있었다. 『어느─어느 고얀 놈이 이런 짓을 했느냐?』

동궁은 몸을 떨면서 이렇게 호령하였다. 그리고 수양대군 의 분부로 그렇게 했다는 대답을 듣고는 한참을 말없이 있 다가 마지막에 토하는 듯이, 『고약한.』

한 마디만 하고는 수라반을 물리고 말았다.

그러나 부왕 생존 중은 육즙(肉汁)만은 간간 받았다. 그렇 던 것이, 부왕 승하하고 동궁이 신왕으로 되어 등극한 이래 는 나락과 채소 밖에는 절대로 가까이 하지 않았다. 어물(魚 物)도, 고기도, 죄 멀리 하였다. 복상 삼 년간은 비린내 나는 음식은 절대로 멀리 하였다.

「父之法三年不改.」(아버지의 세운 법은 삼 년을 고치지 않는다)라 하여, 정사 제도 등등도 하나도 손대지 않고 그냥 두었으며, 삼 년간을 비린내 나는 음식이며 계집을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였다.

영양 부족과 운동 부족으로 왕의 형색은 나날이 초췌하여 갔다. 걸음걸이까지도 비칠비칠하여 바로 가지를 못하였다.

이것을 가장 근심한 것은 수양이었다.

『전하. 옥체를 보증하오시는 것이 효도올씨다. 어버이의 끼치신 옥체를 손상하는 것은 효도가 아니올씨다.』

이렇게까지 말해서 형왕으로 하여금 영양을 섭취케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왕은 늘,

『성현의 가르치신 바는 못 어기느니.』하여 수양의 말을 거절하고 하였다.

이렇게 지나기를 일 년 반— 정전에서 조회를 받다가 상기한 날, 수양은, 빈철에서 대신 들과 등지고 돌아앉아서 혼자서 곰곰이 생각하였다.

이러다가는 형왕도 얼마를 지나지 못하여 부왕의 뒤를 좇 게 될 것이다. 부왕께 효도를 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 든 왕께 보양을 하도록 진언을 해야겠다. 어떤 견책을 자기 는 받을지라도 왕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또는 떠나신 아 버님의 영을 위하여 왕께 강권이라도 해야겠다.

수양은 내관을 불러서, 왕이 아직 누워 계신지 기침하셨는 지 알아보고, 기침하셨다는 대답을 듣고는, 들어가 뵙겠다는 말만 통하고 윤허는 내리기 전에 (왕은 수양을 꺼리므로 거 절할 줄을 미리 알고) 내전으로 들어가서 영외에 읍하고 섰다.

『수양 등대하왔읍니다.』

왕은 물론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외면한 채 대답도 없었다.

『전하, 신 수양이 아뢸 말씀이 있아와 등대하였읍니다.』

왕은 비로소 약간 머리를 돌렸다.

『아까는 수고했네.』

『신이 한 말씀 상계하고저……』

『무슨 말인가?』

『늘 아뢴 바여니와 옥체를 보중하오서!』

또 그 소리냐 하는 표정이었다.

『맛나는 음식을 먹으란 말이지?』

『…………』

『계집도 부르고.』

『아니옵니다.』

안정은 수양에게로 돌아왔다.

『고서를 읽었으면 알 것이지마는 자네는 나를 만고의 죄 인이 되란 말인가?』

『아니옵니다.』

『아니란?』

용안에는 차차 노염이 분명히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천가지 죄 중에 불효보다 더 큰 죄는 없어. 나더러 불효 자가 되란 말인가?』

『옥체를 손상하는 게 더 효도에 어그러지지 않을까 어리 석은 소견엔 그렇게 생각되옵니다.』

『자네는—』

왕은 노염 때문인지 숨찬 때문인지 한 순간 말을 끊었다가 계속한다—

『나하구 언쟁을 할 셈인가?』

수양은 딱 막혔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자네나 계집 부르고 주육 부르고 질탕히 놀게. 나는……

난……난……차마 못하겠네.』

『전하!』

『나가게!』

『전하!』

『냉큼 나가게.』

『전하. 삼사하소소. 백성이 웁니다. 선대왕께오서 근심하 십니다.』

『자네 같은 불효자를 두셔서 선왕께서도 걱정하시겠네.

냉큼 나가게!』

할 일 없었다. 수양은 초연히 물러 나왔다.

무거운 걸음걸이로 물러 나오다가 수양은 생각난 일이 있 었다. 부왕 임종 전에 수양 자기에게,

『너로 당하지 못할 일이 있거든 양녕 백부께 의논해라.

백부는 현인이시다. 동궁 심약해서 비록 마음에 없는 일이 라도 백부의 명령이면 차마 거역을 못 하리라.』하던 말이 생각났다.

—백부를 찾자. 백부께 의논을 하자. 이 무겁고 중한 임무를 백부께 맡기자.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수양은 백부 양녕을 찾아서 이 무겁고 어려운 짐을 떠맡기 려 하였다.

十八[편집]

『네 처지도 딱하긴 하다.』

수양의 하소연과 부탁을 들은 양녕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백부님. 참 민망하고 딱하오이다.』

『짐작한다.』

『이 일을 어떻게 처단하오리까?』

『내니 도리가 있느냐?』

숙질은 서로 얼굴을 보았다.

수양은 손톱으로 방바닥만 긁고 있었다. 생각하여 보아야 형왕의 성벽이 고쳐지기 전에는 사실 아무리 현인이라는 백 부로도 어찌할 도리가 없을 듯하였다.

『백부님!』

『왜?』

『선대왕께서 승하하오시기 전에 제게 한 말씀이 있습니 다.』

『무에라시더냐?』

『어려운 일, 감당키 힘든 일이 생기거든 백부님께 의논하 라시구……』

수양은 머리를 푹 숙이며 이렇게 말하였다.

양녕은 머리를 기울였다.

『선대왕은 고금에 다시없으신 현인이시지만 그래도 역시 어버이로구나. 어버이는 자식이 한 자(一尺)만 하면 두 자만 한 것으로 보구 두 자만하면 석 자만한 것으로 보는 법이니 라. 상감의 성벽이 그다지도 야릇하신 줄은 선대왕도 모르 셨지. 네 말에 안들으셨으니 내 말이라구 들으실 듯싶으 냐?』

수양은 머리를 숙였다. 형왕의 성벽이 하도 곧아서 백부의 권이라고 들을 듯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달려든 바이니, 되건 안 되건 한 번 백부를 움직여 보게 되면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그냥 백부께 떼를 쓰기로 하였다.

『백부님. 일의 성 불성은 두고 보아야 할 일이어니와, 되 도록 힘을 써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지. 되건 안 되건 간에 내 한 번 예궐해서 힘 껏 권해 보리라. —너도 퍽 애를 쓰는구나. 그 정성을 왜 하 늘이 몰라주시나.』

『백부님. 탄원이올씨다. 꼭 애써 봐 주세요.』

『오오. 되는껏 힘은 써 보자.』

양녕은 사랑하는 조카 수양을 위하여, 대궐에 들어가 왕께 옥체 보중하기를 간하마고 약속하였다.

『그런데, 야. 내게 걱정이 하나 있구나?』

『무에오니까?』

『문신(文臣)들이 가만있을 듯싶지를 않구나. 무슨 말썽을 피우지.』

『왜요?』

『왜란? 네가 용상에 뛰쳐 올랐다지. 용상은 신자의 올라 가지 못할 자린 줄 너도 알 배가 아니냐?』

『그래두 그런 위급한 경우에—』

『위급하고 안하고를 안다드냐. 문신이란 건, 주둥이만 깐 게 돼서, 사체의 여하를 막론하고 네가 용상에 올라간 것은 범상(犯上)의 죄로 의논하리라.』

듣고 보니 백부의 말이 당연하였다. 선대왕 시대며 또 그 전 태종 때에 문신들이 백부 양녕을 처벌하자고 청죄한 것 도 무슨 백부에게 큰 죄가 있어서 그런 바가 아니었다. 단 지 무엇이든 말썽을 부려서 왕의 주의를 끄는 것이 벼슬살 이의 정도라 생각하기 때문에 무슨 핑계든 생기기만 하면 욱적하는 것이 그들의 상례였다. 더구나 용상까지 뛰쳐 올 라갔으니 가만있을 리가 만무하였다.

이튿날 헌부(憲府)에서 수양 청죄의 의논을 발하였다.

동시에 간원(諫院)도 들고 일어섰다. 그와 함께 옥당(玉堂) 도 차자(箚子)하였다.

모두 한결같이, 수양대군이 용상까지 뛰쳐 올라가서 옥체 를 어루만지고 붙안고 함은 범상의 죄니 중하게 벌하옵소서 하는 것이었다.

양녕은 수양의 부탁으로 이튿날 왕께 알현하러 예궐하였다.

한헌의 문안을 드리면서 틈을 엿보아서 우러러보니 용안은 뵙기 참혹하였다. 그 새 먼발로 뵙기는 누차 하였지만, 가까 이서 우러러 뵙기는 진실로 오래간만이었다. 용염(龍髥)에 깊이 감추여 먼 발로는 알아보기 힘들지만 가까이서 우러르 니 광대뼈가 쑥 두드러지고 쑥 들어간 안정 안에서는 두 동 자가 유난히도 광채 난다.

선비로 생장하여 평소에 앉아서 지냈고 눕기를 싫어하는 왕이었지만 하도 몸이 괴로워서 잠시를 가만히 앉아있지 못 한다. 자리를 이편으로 눕히고 저편으로 눕히고 몸을 앞뒤 고 혹은 좌우로 저으며, 어떻게 하여서는 약간이라도 편한 자세를 취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수양에게 들었아온대, 전하 환후 심상치 못하오시다 고?』

『그닥지 않습니다.』

『전하, 적당한 운동을 하오시고 원기조양에 주력하오서.

하루바삐 쾌차되오시기를 만민이 바라고 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양녕은 그윽이 용안을 우러렀다.

『전하, 성궁(聖躬)은 전하 혼자의 것이 아니옵니다. 만 백 성이 기다리고 우러르는 배옵니다. 지금 늙은 눈 분명치 못 하오나, 심상치 못한 듯하오매 보증하소서. 시속 말에 고기 한 점이 귀신 천 머리를 쫓는 법이오라 전하 무엇보다도 식 양(食養)에 용력하소서.』

왕은 피곤한 안정을 들어서 백부 양녕을 건너보았다. 백 (伯)도 또한 수양의 한 말과 같은 말씀을 하시오 하는 눈치 였다.

『백부님. 수양에게도 들었습니다. 지금 또 백께도 듣습니 다. 그러나—』

희로애락이 무시로 발하는 왕은 지금 갑자기 슬픈 감정 때 문에 말을 중도에 끊었다. 잠시를 진정하였다. 그러고야 다 시 말을 계속하였다. 힘이 하나도 없고 숨찬 음성이었다—

『선왕 승하하오신지 일년 겨우 남아, 지하에 계신 선왕을 생각해서라도 어찌 나 혼지 뜨뜻이 잠자고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겠읍니까? 차마 못하겠읍니다. 백부님의 엄명일지 라도……』

양녕은 더욱 머리를 숙였다—

『지당하신 하교옵니다. 그러나 전하 생각해 보십시오. 선 대왕께서도 전하가 효도를 다하기 위해서 성궁을 해치는 것 을 기뻐하시겠읍니까, 혹은, 성궁이 건장하셔 선왕의 끼치신 유업을 잘 복돋우시는 것을 기뻐하시겠읍니까. 일(一)을 생 각하시고 이(二)를 생각치 않으심이지, 선대왕의 영을 위로 키 위해서 성궁을 더욱 보중하오셔야 되지 않을까, 신은 이 렇게 생각하옵니다.』

『그래도 내 마음이 그렇지 못한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백 부님. 이 고충을 알아줍시오.』

탄원하듯이 하는 이 말에 양녕도 더 아뢸 말이 없었다.

그날도 삼사(三司)에서는 수양의 범상(犯上)의 죄를 벌하자 고 차자(箚子)하고 논박하고 야단하였다.

그러나 왕은 여기만은 끝끝내 불윤(不允)의 두 자를 뻗치었다.

수양의 행위가 예절에 어그러지고 범상한 형적은 있지만, 임금을 생각하는 지성에서 나온 바니 물론(勿論)하라고 하교 하였다.

十九[편집]

왕의 용태는 갑자기 변화하는 일이 없었지만 나날이 조금 씩 조금씩 더 중하여 갔다. 인제는 가벼운 물건조차 들 기 운이 부족하여, 내관을 불러서 시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선왕의 제사 절차며 예의에 관한 행사는, 어떤 일이 있든 몸소 행하였다.

대신들도 이 왕의 수(壽)가 얼마를 더 가지 못할 것을 번히 알았다.

국정의 밀린 것은 산적하였다. 선왕 환후 수년간, 국정을 돌보질 못하였고 그 뒤를 받은 지금 왕도, 오로지 예절 지 키기에만 힘썼고 정사는 방임하였고, 대신 재상들도 국록이 나 먹고 안양이나 하였지, 국정을 돌보려는 사람이 없었다.

왕이 국정을 돌보지 못할 등안은 대신들이 당연히 돌보고, 행할 일을 행하고 금할 일은 금할 것이로되, 이 대신들은 그럴 줄을 몰랐다. 고금 동서에 다시없는 현철한 선왕의 아 래서 삼십 년을 지냈는지라, 국정이라 하는 것은 다만 임금 이 시키는 대로 충실히 실행하면 되는 것으로 알았지, 대신 네 자기들이 무슨 좋은 꾀를 내어서 왕께 진언을 하여 시행 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하였다.

그런지라 이런 대신들 위에는 현철한 국왕이 있어서 지휘 하고 지도하고 명하여야 할 것인데, 왕은 그런 점을 생각도 않고 다만 예경(禮經)이나 읽고 다시 읽고, 고서(古書)나 외 우며 시문(詩文)이나 희롱하는 것으로 일삼고, 그 밖의 군잡 스러운 일은 모두 예절에 어그러지고, 고인이 행하지 않은 일이라 하여, 무시하여 버렸다.

선왕 삼십 년간에 창안하고 장려하고 북돋운 온갖 기예(사 류들의 일컫는 바 잠기─雜技)는 돋던 싹이 쓰러지고 자라 던 움이 꺾어지고 커가던 가지가 부러져서 다시는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유학(儒學)의 한 길만 소위 사도(斯道)라 하 여 유일의 가치 있는 학문으로 국왕 이하 서민에 이르기까 지 여기만 힘쓰고 노력하였다.

이런 가운데서 단 한 사람, 이 사태를 근심한 사람은 수양 대군이었다.

수양은 왕의 신임을 잃고 대신들의 꺼림을 받고 재상들의 배척을 받고 언관사신(言官嗣臣)들의 탄핵을 받으면서도 꾸 준히 대궐에 들어가서 형왕께 알현하고 배척도 기탄치 않고 주목도 탓하지 않고, 왕의 책망 회피도 모른 체하고 연하여 왕께 믿은 바대로 아뢰고 생각하는 바대로 조르고 하였다.

왕은 수양이 들어오는 것을 끔찍하게 알았다. 들어오면 들 어올 적마다 조르고 떼쓰는 것이었다. 아무리 졸라도 형왕 이 승낙하지 않을 줄을 알면서도 졸라서 마지않는 것이었 다. 그러고 정 졸리운 뒤에는 왕도 그 끈기에 못 이기어 백 에 하나쯤 씩은 승낙하고 실행도 하는 것이었다. 수양은 이 백에 하나 천에 하나쯤 그것이나마 불충분하게 실행되는 이 현상을 바라고 졸라대는 것이었다.

수양의 박력(迫力)과 끈기에는 왕의 굳은 결심도 간혹 꺾이 는 때가 있었다. 왕이 그렇게도 완강히 거절하던 육찬도 고 기를 고기대로는 그냥 못 놓게 하였지만 육즙(肉汁) 쯤은 놓 으라는 윤허가 내렸다. 방에 불 때기를 엄금하던 것도 조금 풀려서, 밤에만은 침전에 약간 불을 때도 무관하다는 윤허 가 내렸다. 탕약도 조금씩 진어하였다.

그러나 이 맛 일로 왕의 건강이 회복되거나 증진되기에는 너무도 시기가 늦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한참씩 몸이 너무도 아파서 자릿 속에서 준비를 하고야 일어났다. 한 번 몸을 움직이려면 마 음으로 한참을 준비를 한 뒤에야 움직였다. 뼈에 기름기가 하나도 없어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삐걱삐걱 온몸이 아팠 다. 눈을 한 번 감으면 다시 뜨기가 싫어서 한참씩 주저하 였다.

다시 쾌차될 날이 이르지 못할 것은 당신이 가장 잘 알았 다. 경연(經筵)에는 아침 한 번 밖에는 (그것이나마 간신히) 나아가지 않았다. 늘 어린 세자를 무릎 앞에 불러서 교훈을 게으르지 않았다.

왕의 남자 동기가 적출(嫡出)로 왕까지 여덟 분, 서출로 열 분, 합계 열 여덟 분이었다. 그 가운데서 왕 혼자가, 마음으 로든 육체로든 매우 약하였지, 그밖엣분은 모두 억세고 건 강하였다. 중조부 태조의 혈통, 할아버님 태종의 혈통, 외가 (外家)의 혈통 등을 물려받아 억센 위에, 아버님 세종의 지 혜까지 아울러 물려받았는지라, 그 적서 열 여덟 분의 힘을 아우르면 이 세상을 무서울 자 없었다.

그 가운데서도 동생 수양은, 할아버님의 욕략과 아버님의 지혜를 한 몸에 물려받았는지라, 가장 걸출이었다.

이 아우님을 잘 손아귀에 넣어서 수족과 같이 써야 할 것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은 당신의 옥체가 하도 약하 고 보잘 데 없으니까, 아우님을 투기하기 시작하고, 투기는 차차 변하여 의심으로까지 되었다.

아우님을 의심하고 보니 매사가 모두 의심되었다.

왕을 돕고자 좋은 진언을 하면 그 원인을 캐어 의심하고 싶었다. 왕의 건강을 위하여 진언하면, 나를 만고의 죄인을 만들려는 복선이거니 의심 갔다. 편안히 쉬기를 청하면 나 쉬는 동안 무슨 짓을 하려나 의심 갔다.

이러기 때문에 의심은 더욱 의심을 낳고, 그 의심은 나날 이 증가되는 뿐이었다. 그러고 이 호랑이 같은 숙(叔)들의 앞에 아직 어린 세자를 남겨 두고 가기가 겁이 나고 무서웠다.

틈 있을 때마다 어린 세자를 무릎 앞에 불러놓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한숨 지고 하였다.

『동궁.』

『네?』

아직 어린애나마 그 눈찌는 너무도 노숙하였다.

『내가 만약 천추하면 동궁은 누구를 믿고 누구를 의지할 꼬?』

『양녕 증조부.』

『또?』

『수양숙, 안평숙.』

꼽아 내리려는 것을 왕은 막았다.

『안 된다. 왜 차심치를 않느냐. 안평숙은, 괜찮지만 수양 숙은……』

걱정이었다. 왕은 탄식하였다.

二十[편집]

임신 년 봄도 다간 어떤 날.

왕은 그날 울울한 심회를 금할 수가 없었다. 특별히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니라, 공연히 울울하고 심난하였다. 그 새 정사가 하도 밀렸으므로, 며칠을 강잉히 시무를 하였더니 그 탓인지, 옥체도 과히 피곤한 위에 이즈음 상기하는 도수 도 매우 잦았다. 몸을 일으킬 때마다 정신이 아뜩하여 무엇 을 붙들거나 그렇지 않으면 다시 한 번 앉았다가 일어나고 하였다. 내관에 부액을 받고도 온몸을 내관에게 맡기지 않 고는 스스로는 걸어 다니기가 힘들만큼 쇠약하였다. 구미는 하나도 없어서 미음이나 육즙을 조금씩 마시어서 해갈이나 겨우 하는 것이었다.

그날은 더욱이 심기가 불평하여, 생명에 대한 위협을 많이 받았다.

이러다가는 불시에 어떤 일이 생길는지 예측을 할 수가 없 었다.

영외에는 내관이 국궁하고 대령하고 있고 왕의 곁에는 소 년세자가 혼자서 무슨 글을 외우고 있었다.

『야!』

왕은 소리쳐 내관을 불렀다.

『유신들 가운데 누구 있는가 나가 보아라.』

동궁시절의 학우(學友)요, 장차 이 국가의 큰 기둥이 될 학 사들을 불러보고 싶었다.

왕은 유신(儒臣)들을 편전으로 부르라 하고 당신도 의대를 정제하고 내관의 부액으로 편전으로 나갔다. 어린 동궁도 배행하였다.

한각경쯤 뒤에는 거기서는 군신간에 연회가 열렸다. 아직 복상중이라, 여약이며, 음률은 없었지만, 왕은 몸소 떨리는 손으로 술을 부어 신하들에게 행주를 하였다.

『범옹이(신 숙주), 근보(성 삼문). 옛날 함께 글 배우던 생 각이 나는가?』

『전하. 신들이 죽기 전에야 그 때 영광을 왜 잊사오리 까?』

『옛날일세.』

왕은 신하들을 위하여 술을 따랐다. 부왕의 투철한 안목으 로 뽑아 낸 이 명신들.

당년에 그렇게도 능란하고 그렇게도 명민하던 이 신하들 이, 당신 재위 이 년간에 무엇을 하였다. 무위무능하게 이 년간에 무엇을 하였다. 무위무능하게 이 년간을 보냈다. 그 들이 갑자기 무능하게 되었다. 혹은 당신이 신하를 제 기능 에 따라서 시킬 줄을 알지를 못했다.

『자. 근보 마시게.』

『황공하옵니다.』

『범웅이도 마시게.』

『황공무지로소이다.』

『임금이 주는 술이니 마음놓고 먹게. 혹은—』

왕은 말을 끊었다. 끊고 뒷말은 계속하지 않고, 얼마를 더 술을 돌렸다.

적지 않게 술이 돌았다. 술이 돌고, 그래도 정신 잃지는 않 으리만큼 되었다. 그 때 왕은 약간 자세를 바로 하며 돌던 술잔을 멈추고, 세자의 손목을 끌어서 앞으로 나오게 하였다.

왕은 고요히 입을 열었다—

『내 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

두선거리는 기색이 있었다. 왕은 말을 끊으려는 눈치도 있 었다. 좌석은 일시에 조용하여졌다.

『여러 말 안하마. 단 한 마디 내게 충성된 것과 일반으로 이 어린 세자에게도 충성되게. 긴말은 쓸데없고 단 한 가지 의 부탁일세. 세상 떠나도 눈감지 못할 일—세자의 장래만 잘 보아주겠다면 다른 부탁은 아무 것도 없네.』

『전하!』

『딴 말은 말고 세자만!』

『전하!』

취기가 일시에 깨었다. 숙주가 먼저 푹 머리를 숙였다. 뒤 따라 삼문, 팽년, 모두 머리를 숙였다.

흐득흐득 느끼는 소리가 그들 새에서 났다.

세자는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자네네 같은 현신이 있으니 뒷일을 무엇을 근심하리. 다 만, 세자가 하도 연천해서 그게 마음에 걸리는 뿐.』

二十一[편집]

오월 열 나흘.

그 해는 더위가 일찍 와서, 오월 십일 경에는 찌는 듯 꽤 무더웠다.

근일 왕의 환후는 갑자기 중하여졌다. 시름시름 눈에 뜨이 지 않게 조금씩 중하여 가던 용태가 오월 십일 경에는 갑자 기 중하여졌다.

열 나흗날 아침에 국을 한술 마셨다. 그러고 한참 있다가 갑자기 숨채기를 시작하였다.

의관(醫官)들이 황급히 달려 왔다. 달려 와서 진맥을 하였 으나, 이 급작스런 변화에 응할 방책이 없었다. 물러 나와서 서로 의논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대책이 없었다. 그러는 동 안 왕은 정신을 잃었다.

의관들이 협의한 결과 무슨 탕약을 한 주발 들여올 때 왕 은 약간 정신을 수습하였다.

이때야 대령하고 있던 승지들은 약간 두서를 차렸다.

『정승—정승은 들어왔느냐?‖ 모기소리와 같은 왕의 옥성이었다.

내관이 대청의 승지에게 정승 입직 여부를 물었다.

『이리로 불러라—음, 종친—더우기, 수양은 부르지 말아 라.』

중관은 왕명을 받고 빈청으로 달려나갔다.

그 때 수양은 빈청에서 영의정 황보 인과 함께 왕의 환후 를 근심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전날 밤도 내전 대청후를 근심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전날 밤도 내전 대청에서 밤을 세고, 왕이 조금 안돈되는 듯하여서 나와 기다리던 것이었다.

내전에서 중관이 달려 나왔다.

『입직한 정승과 판서 듭시라오.』

어명에 불리운 사람들은 옷깃을 바로 하며 중관의 뒤를 따 랐다. 수양도 당연히 불리운 줄 알고 함께 일어났다. 그러나 중관은,

『수양대군은 좀 뒤에 듭시라는 분부요.』

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내전으로 가버렸다.

일어섰던 수양은, 싱겁게 우뚝 서 버렸다. 물론 들어갈 수 없었다. 우두커니 서 있기도 싱거웠다.

홱 노염이 폭발하려 하였다. 괄괄한 성미로 참기 힘들었다.

그러나 수양은 꾹 참았다. 어명이었다. 어명에 거역할 수 없었다.

『열 번 참아 안 되면 스무 번 참고 스무 번 참아 안 되면 서른 반 참고, 참고, 참고 또 참겠습니다.』

일찍이 부왕께 맹세한 이 말이 문득 생각났다.

『아—아, 형왕께서는 왜 그리도 괴벽하시나?』

과거를 돌아보아도 그 말에서든 행동에서든 손톱눈만큼도 불공하거나 불쾌한 생각을 품어본 적이 없거늘, 왜 이다지 도 괄시를 하시나.

『형님!』

눈물이 솟았다.

창피며 체면은 둘째 문제다. 아마도 보매 임종이시다. 임종 이면 필시 고명이시다. 고명에 수양 자기만을 뽑아 치우는 것은 웬 일일까.

지금 자기는 이 종실의 가장 어른이 아니냐. 여섯 대군(大 君)과 열 군(君)이 휘돌아 가는 이왕실에서 자기 같은 억센 사람이 있어서 눌러 놓지 않으면 장차를 어떻게 수습하려는가.

왕실도 그렇거니와, 대신으로 볼지라도, 황보 인, 김종서, 정 본, 누구, 누구, 모두 아무 능도 없는 사람들—누가 위에 있어서 그들을 지휘하고 지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할 위인들이다. 세종 말년 수년간을, 정사를 방임하였고, 이 임금 이 년간 역시 복상이라 하여 무위히 보내서 해이하 고 문란한 이 정부를, 이제부터라도 바로 잡아야 할 터인데, 불행히 형왕 승하하고 소년 조카가 등극하여, 선왕의 고명 이라 하여 늙고 무능한 신하들 이 정권을 잡고 무위한 세월 만 보내면 나라의 꼴이 무엇이 되랴.

태조와 태종의 정력을 다 모아서 국가를 건설하고 세종의 지식과 박학으로서 기초를 잡아 놓은 이 방토는, 이러다가 는 다시 꺼질 밖에는 도리가 없을 것이다.

분하다기보다 억울하다기보다, 기가 막혀서 수양은 움쩍도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서 있었다.

어이없고 기가 막혀서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을 때에 누가 어깨를 치므로 돌아보니 백부 양녕이 들어온 것이었다.

백부를 보매 지금껏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백부님!』

『오오. 한데 너 울기는 왜 우느냐?』

『임종이십니다.』

백부는 눈이 둥그렇게 되었다.

『아, 그럼 너는 왜 여기 있느냐, 어서 들어가자.』

『들지 말라는 분부올씨다.』

양녕은 수양의 얼굴을 보았다. 눈치채었다.

『누구누구가 들어갔느냐?』

『영상, 좌우상, 좌우상찬성, 이, 호, 예, 병조판사, 기타 수 삼인이올씨다.』

『지금 고명이시구나.』

『그렇습니다.』

『네나 내나 모두 못 불리기야 일반이니라, 여기서나마, 자!』

양녕은, 손을 읍하고 북향하여 길이 절하였다. 수양도 백부 를 따라 절하였다.

안평 이하 대군이며 군들도 차차 들어왔다.

고명이 끝난 뒤에야 왕은 삼촌과 동생들을 와내에 불렀다.

『길지 못한 생애를 폐만 많이 끼쳤구나, 어린 조카 의지 할 데 없는 동궁이니, 숙(叔)들이 잘 보좌해서 장차 현철한 군주가 되도록 지도해 주게.』

뭇 동생에게 어린 세자를 부탁하였다.

『동궁. 좀 이리로.』

가까이 불러 앉히었다. 초췌한 용안—더우기 어린 세자를 이 어지러운 판국에 남겨놓고 떠나는 왕은 못내 마음이 놓 이지 않는지, 매우 힘들이어 세자 쪽을 바라보고 다시 못 대군 쪽을 바라보고 하였다.

『백부님.』

양녕도 찾았다.

『하도 백부님 연노하셔서 뒷일을 부탁한다는 건 사체가 되지 않았습니다만, 백부님 생존 중에는 끝끝내 어린 동궁 을 보호해 줍시오.』

『분부가 안 계실지라도 조금인들 소홀히 생각하리까. 안 심하소서.』

고명, 부탁, 다 끝나고 그날 저녁 왕은 잠자는 듯이 고요히 이 세상을 떠났다. 임신년 오월 십 사일.

수 삼십 구. 경오년 이월에 즉위하여 재위 이년 석 달이었다.

묘호(廟號)를 문종(文宗)이라 하였다.

이 왕의 외아드님(후일의 단종)이 그 뒤를 이어 보위에 올 랐다.

二十二[편집]

며칠째 끈끈하고 불쾌한 더위가 계속되었다. 새벽녘이라는 시각은 좀 서늘해지는 법이지만 이 공식을 무시하고 새벽녘 도 도무지 서늘해질 줄을 몰랐다. 그러다가 조반 때 좀 지 나서는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비는 비지만 냉기를 퍼쳐 주 는 줄기찬 비가 아니요 침침하고 음산한 기분만 더 늘려 주 는 시원치 못한 비였다. 더위는 줄지 않고, 날은 캄캄하고 비는 내리고—역한 날씨였다.

빈전(殯殿)은 더 축축하고 더 침침하였다. 향 연기 서리어, 지척을 분간키 어려울 지경이었다. 정신까지 혼미하여질 듯 하였다.

열 두 살이 어린 신왕(新王─瑞宗)은, 그새 여러 날 자리에 눕지도 못하고 지냈기 때문에 극도의 피곤을 이기지 못하여 끄덕 끄덕 조을고 있다. 신왕을 모시고 있는 뭇 종친(宗親) 들, 종친 중의 장로 수양.

웃 항렬도 백부 양녕이 있기는 하지만 양녕은 나이도 많은 위에 태종대왕의 처분으로 공공한 시사는 근신하는 신분이 라 대행전하(文宗)의 아우님이요 신왕의 숙부되는 수양이 지 금의 왕실의 장로였다.

수양은 눈을 조금 구을려서 존귀한 조카님의 용안을 엿보 았다. 끄덕끄덕 조을고 있는 용안에 사무친 피곤, 번게 야위 었고, 뵙기 민망하도록 덜미었다.

수양은 합죽선을 내어서, 급격하지 않게 용안에 바람을 보 내어 드리었다. 그리고 내관을 손짓으로 불러서 사방침을 가져오게 하여, 몸소 가만히 붙안아 오른편 팔을 들게 하고 내관에게 사방침을 그리로 갖다 대개 하였다.

신왕은 당신의 몸을 누가 건드리므로, 한 순간 눈을 뜨는 듯하였으나, (그냥 왼손으로 수양이 보여주드리는) 부채바람 이 상쾌하여 다시 안정을 내려뜨리며 사방침에 옥체를 의비 하였다.

수양은 살근살근 부채질을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적적하십니까.

이 아직 어머님 그리워할 유년에 양친을 다 저 세상으로 보낸 어린 상감의 심경을 생각하면 수양은 눈물겨웠다.

이 세상에 떨어지면서 어머님을 잃어버린 가련한 고아.

그 뒤는 어머님을 대신하여 사랑해 주시던 해에 떠났다.

그로부터 겨우 사 년이 더 지나서는, (어린 왕손이 가장 응 석을 부릴 수 있었고 그 응석을 늘 즐겁게 받아 주시던) 할 아버님(世宗)까지 잃어버렸다.

아버님은 좀 어려웠다. 자애보다 감독이 더 많았다. 애무보 다 꾸중이 더 많았다. 그러나 어린 왕손에게는 이 세상에 단 한 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이었다. 그 분마저 지금 또한 이 고아를 버리고 떠나니, 신세 외롭기 어찌 이루 다 말하랴.

수양은 잘 안다. 이 어린 상감이 수양 자기를 무서워하고 꺼리는 것을…… 형왕 (신왕께 아버님) 생존 중에 늘 수양 자기를 삼가라는 교훈을 듣고 자란 왕이라, 언제든 자기를 보면 의포(畏怖)와 아첨의 기색이 넘치던 분이다. 지금 아버 님까지 잃었으니 얼마나 외롭고 주위가 무서우랴.

그 심경을 생각하면 수양 자기가 물러 비켜 드리고 싶다.

그러면 약간은 안심을 드릴 수가 있을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 국가 다난하고 더욱이 왕실이 하도 창성하여, 어린 왕 한 분만을 동그랗게 내어놓고 굳센 보호의 손이 없 으면, 차차 무슨 화단이 생겨날는지를 알 수 없다. 자기의 종실 장로라는 지위와 억센 팔로써 튼튼히 보호하지 않으면 어린 왕의 신변이 위태롭다.

—전하여. 고독하신 전하여.

무상한 인간 세계.

할머님(太宗妃)의 재궁(梓宮)을 모신 것이 지금부터 겨우 육 년 전.

아버님(世宗)의 재궁을 모신 것이 또 겨우 이년 전. 지금 벌써 또 형님의 재궁을 모시게 되었구나.

—네가 보좌해라. 너를 믿는다.

—어린 조카도 네가 보좌해야 한다.

아버님 말년에 자기게 늘 하시던 말씀. 이 유촉 가운데서 형님은 종내 보좌를 해드리기 전에 저 세상으로 가셨다. 대 상(大祥)을 방패로 굳이 안 듣기 때문에 종내 보좌할 기회— 날짜가 없는 동안에 승하하니 어찌할 수가 없는 천명이다.

형님께 못해 드린 보좌를 어린 조카님께는 반드시 이곱, 삼곱으로 하리라. 혹은 조카님은 당신의 아버님(文宗)이 늘 훈계하시던 말씀을 좇아서 수양 자기를 꺼리고 멀리하려 하 고 두려워하고 피하려 할지는 모르지만 그런 괄시를 탓하지 않고 자기의 힘껏, 지혜껏, 지식껏, 보좌해 드리리라. 일년, 이년, 삼 년, 사 년, 오 년……아무런 괄시 박대도 기탄치 않고 그냥 충심으로 모시는 동안에는 오랜 날짜를 지나면 조카님도 그 오해를 푸실 날이 있겠지. 그럴 날이 이르겠지.

경오년 이월 아버님의 환후 급변하시자, 대신들에게보다도, 재상들에게보다도 다른 종친들에게보다도 누구에게보다도 먼저 수양에게, 형왕을 도와라, 어린 조카를 보호해라, 고 부탁하신 그 부탁을 저버리지 말자.

결코 저버리지 않으리라. 하늘에 계오신 아버님의 영을 안 심케 하리라. 장차 그곳서 아버님을 뵈올 때, 자랑하는 심경 으로 뵈올 수 있게, 만난을 물리치고 어리신 조카님을 보호 하고 붙들리라.

부채질을 하면서 간간 용안을 엿보면, 피곤한 용안, 겁에 띄운 용안, 피지 못한 용안, 어머님의 몸에서 이 세상에 떨 어진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내 불행에 이은 또 불행 으로, 그 성장(成長)이 호화로운 궁중임에도 불구하고, 그 연치가 한창의 열 두 살임에도 불구하고, 시들고 초췌한 양 눈물겨웠다.

수양 자기네 형제가 아버님의 슬하에서 자랄 때에, 마음껏 피고 마음껏 벋었던 그 기상과 이다지도 판이할까.

같은 대궐, 같은 왕손……

덜컥!

밖에서 나는 무슨 소리에, 왕은 흠칫하며 안정을 떴다.

『아아.』

하품, 기지개.

『좀 더 주무세요. 오죽이나 피곤하실까. 사방침에 좀 더 옥체 편히 의지하시구.』

수양이 권하였다.

왕은 용안을 음성 들리는 편으로 돌렸다. 겁에 뜨인 안정, 다시 더 돌이켜 안평(수양의 다음 아우)을 스치어 그냥 더 돌았다. 종조부 양녕에게까지 미쳐서 약간 안심의 표정이 보였다.

『조부님.』

양녕을 찾았다.

『오오.』

양녕은 황급히 그의 늙은 몸을 무릎을 짚으며 일으켜서, 어전 가까이 와서 부복하였다.

『불러 계시오니까?』

『조부님, 비가 그냥 오지요?』

『네이, 오나보옵니다.』

『아아, 지루두해라.』

『장마가 질까봅니다.』

『…………』

사방침에 의지하고 있는 왕의 손가락은 포르르 끊임없이 떨린다. 쇠약 때문이다.

수양은 무언히 부채질만 계속하고 있었다. 조카님의 떨리 는 손가락, 꺼지는 듯한 호흡, 가슴 쓰라린 일이었다.

고귀하게 탄생하여 고귀하게 자란 조카님……

우르르면 우르를수록 애처롭고 민망하였다. 왜 형님은 이 다지도 빨리 떠나시어서 당신의 아드님으로 하여금 이런 답 답한 지경에 빠지게 하였다.

조카님의 정경을 우(哭)는 것과 동시에 떠나신 형님의 일생 이 또한 통곡하고 싶도록 동정이 갔다. 형왕이 겨우 수(壽) 서른 아홉이라는 짧은 일생은, 왕자(王子)답지 못하고 왕자 (王者)답지 못한 고적한 생애였다.

태조, 이씨조선을 창건한 뒤에 이 형님이 진정한 의미의 초대(初代)의 왕자(王子)였다.

태조는 본시 고려의 장수였다. 쉰 여덟이라는 만년에야 임 금이 된 분이다. 그 다음의 공정왕(恭靖王─正宗)도 역시 고 려의 신하로서, 서른 여섯에야 비로소 왕자(아버님 태조 이 씨조선 창건)가 되고 마흔 둘에 임금이 되었으며, 제 삼대 태종도 역시 고려의 신하로 태어나서 수물 여섯에야 왕자가 되고, 스물 여덟에야 임금이 되었다. 그 뒤, 제 사대 세종(대 행왕과 수양의 아버님)은 이씨조선 창업 이후에 탄생하였으 매 본시부터 왕자로는 탄생하였지만 제 삼 왕자이기 때문 에, 일곱 살까지는 다만 왕자 일 따름이지 세자가 못 되어, 장래의 왕위는 기약할 수가 없던 바이다.

승하한 이 형님이야말로 본시부터 왕실의 적장(嫡長)으로 탄생하여 이씨조선 최초의 「진정한 세자)로 대위에까지 올 랐던 분이다.

그러나 일만 가지의 복(福) 가운데 으뜸인 건강을 못 가진 불행한 분이었다.

그 위에 또 가정적으로 끝끝내 낙을 보지를 못하였다. 두 번 맞아들이었던 세자빈(세자빈)을 다 폐하지 않을 수 없는 불행, 그 뒤 세 번째의 빈 (처음은 궁녀로 들였다가 두 빈이 폐하게 되면서 세자빈이 되었다)도 겨우 십 년 뒤에 왕자(어 린 신왕)를 탄생하고는 저세상으로 갔다.

본시 허약하여 그다지 여인에 관심치 않던 위에 세분의 빈 (嬪)과 다 불행한 결말을 지었는지라, 다시는 빈을 맞지 않 고 쓸쓸한 자선당(慈善堂─동궁처소)을 어린 세자를 기르며 홀로이 지켰다. 왕세자로 삼십 육 년의 의로운 삶을 살다가 부왕 승하 후에 보위에 올랐으나 왕비는 종내 맞지 않고 그 냥 홀몸으로 이년 조금 남짓이, 그러고는 당신도 또 승하하 였다.

세자생활에서 왕생활—이 존귀한 삶을 끝끝내 인생 최대의 복(福)인 건강을 잃고, 인생최대의 낙(樂)인 짝을 모르고 지 낸 이 형님의 일생은 「비극의 삼십 구 년」이랄 밖에는 없 었다.

외로운 일생을 보낸 형왕.

고닲은 장래를 맞을 신왕(端宗).

이 부자간의 기구한 운명을 생각할 때에 수양의 입에서도 한숨이 나왔다.

『전하, 식혜라도 부르오리까? 갈하시지……』

수양은 작은 소리로 조카님께 여쭈어 보았다.

왕은 수양의 말소리에 비로소 삼촌이 부채질하고 있던 것 을 안 모양이었다.

『아이, 숙부님, 덥지 않습니다. 부채질 그만 두서요. 언제 부터시라구, 팔 고단하시게, 민망스러워.』

『신은 괜찮습니다. 식혜 부르오리까?』

『그만 두서요. —야 자치(自治)야 좀 이리온.』

신왕은 내관을 불렀다.

『자치야, 네 대군께 부채 받어서 제조부(諸祖父)며 숙을 부쳐 올려라.』

『—괜찮습니다.』

『—신들은 덥지 않습니다.』

대군들에게는 일제히 사양하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자치 는 부채를 수양에게서 받아서, 임금께 부쳐 드리었다. 고요 하기 때문에 일직선으로 하늘로 올라가던 향로의 연기는 부 채 바람에 어즈러이 흩어진다.

『수양 숙부님.』

왕은 안정을 고요히 수양에게 돌리었다.

『네이?』

『저─저─』

용안에 눈물 한 줄기.

『이즈음 두구두구 생각하는데, 천리(天理)가 너무도─불─ 공평해요』

『…………』

뒤에 무슨 말이 나올지는 모르나, 용안의 눈물이 수양에게 서도 눈물을 자아내려 하였다. 수양은 푹 머리를 숙였다.

간신히 한 마디—

『네……』

『왜오니까?』

곁에 있던 안평이 끼었다. 왕은 한 순간 안평숙을 보았다.

안평숙의 묻는 말에 수양숙께 대답하기도 어렵고, 수양숙께 시작한 말을 안평숙께 대답하기도 어려운 모양이었다. 안정 은 양녕조부께로 돌아갔다—

『조부님, 하늘은 왜─왜─』

또 더듬었다. 눈물이 또 한 줄기.

『왜─대행(大行)전하껜 동궁으루 삼십 육 년 수를 빌리시 구, 내겐 단─』

드디어 참지 못하여 쿡 느끼었다. 그 가운데서,

『이년─하구 겨우 석 달 더……』

수양에게서도 종내 눈물이 흐르고야 말았다. 병풍을 격하 여 있던 내명부(內命婦)들의 느끼는 소리도 새어나왔다.

『전하.』

수양이 느낌을 억지로 감추고 아뢰었다—

『—대행전하께서 남은 수를 다 전하께 물려 드렸습니다.

전하, 동궁으로 오래 계시기보다 지존(至尊)으로 천세만세 하시라고 먼저 가셨습니다.』

수양의 뒤를 양녕이 받았다—

『전하의 수, 신보다 십 백배하소서.』

안평도 한 마디, 금성(錦城)도 한 마디, 모두 한 마디씩 위 로의 말씀을 올렸다. 그러나 이런 위로는 왕의 구슬픈 심경 을 위로치 못하는 모양으로, 왕은 드디어 마리(머리)를 사방 침에 엎드리며, 흐득흐득 느끼기 시작하였다.

소년부마(駙馬) (왕의 매부) 영양위 정종(寧陽尉鄭悰)은 한 편에서 코를 골면서 잔다.

밖에서는 장맛비 가랑잎에 내리는 소리가 우수수 들려온다.

二十三[편집]

하늘 높고 말 살찌는 가을철.

선왕 생존 때에는 선왕은 여러 왕자 대군에게는 형님이 되 는 분이요, 그분이 성미가 곧고 까다로와서 대군들도 얼마 만큼 꺼리었다. 그러나 그분 승하한 뒤에는 왕은 모든 대군 에게는 조카 항렬이 되고, 게다가 아직 유충하기 때문에 대 군들도 어려워하지를 않았다. 매일 대군청(大君廳)에는 한 둘, 혹은 너덧의 대군이 아니 들어와 있는 때가 없게 되었 다. 대군청에서 빈청(賓廳─高官處所)으로—대군들은 마치 대 궐 안을 자기네 집인 듯이 왕래하였다. 우리 종조부께서 세 운 나라이니 우리의 것이라 하여, 대궐을 자기네 뜰로 삼았다.

『집이 화하여 나라가 되었다.』

이 나라의 제도는 나라와 왕실을 같이 여기어 나라를 국왕 개인의 것과 같이 보느니만큼 대군들은, 「우리집」이라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었다.

소년임금이고, 소년인지라 그분께 아직 동궁이며 왕자도 없으며 그 위에 내전 지밀한 곳까지라도 웃어른이 없고 임 금 홀로이 궁녀들과 함께 살림하는 「집안」같은지라 내전 까지도 기탄치 않고 출입하기가 일수였다.

대군이며 제「군」들 가운데서 안평(安平)맘은 좀 입궐하는 돗수가 적었다. 그는 자하문(紫霞門)밖 경치 좋은 곳에 무이 정사(武夷精舍)를 짓고 또 남호(南湖) 호변에 담담정(淡淡亭) 을 짓고, 우으로는 정부의 재상을 비롯하여 벼슬아치며 선 비들이며, 무사, 협객, 심지어는 시정의 부랑잡배까지 청하 여 놀며, 시서금기(詩書琴碁)며 가무연락(歌舞宴樂)으로 방 탕하고 난잡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만 권 서적을 쌓아두고 문사들로 마음대로 보게 하고, 사 회(射會)를 무시로 열러 기술이 능한 자는 후히 상주고, 도 박, 음소(飮騷) 등으로, 잡배들을 연결하여 호탕하고 잡스럽 고 방탕한 세월을 보내느라고 따라서 입궐하는 돗수도 적었다.

지금 수양의 지위는 국가에나, 왕실에나, 다 좀 처(處)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수양은 때때로 스스로 물었다. 자기는 대체 무엇인가……고.

무론 왕실에는 장로(長老)였다. 나이는 겨우 삼십을 약간 넘은 듯 만 듯한 청년이었지만, 세상사와 절연한 백부 밖에 는 가장 웃 항렬이라, (지친 중에서) 종실(宗室) 전체를 감 독하고 거느리어야 할 사람이었다.

종실에는 그렇다 하거니와, 정부와의 새가 아주 기묘한 것 이었다. 어린 임금이 등극하였으니 이치로 따지거나 옛날의 선례(先例)로 보거나 연장한 왕족이 있어 보필하여야 할 것 이다. 모후(母后)나 친조모(선왕비) 생존했으면 그분이 수렴 청정(垂簾聽政)할 것이로되 그렇지 못하면 종실 중의 촌수 (寸數) 가까운 어른이 섭정(攝政)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 열 두 살의 어린 임금이 등극하였고 모후 없으니, 조 (祖)나 숙(叔)중에 누구가 당연히 섭정을 해야 할 것이다.

조(祖)의 항렬의 분은 세상사를 관여하지 않는 분이요, 숙 가운데 수양이 가장 毗이니, 당연히 수양이 섭정을 해야 할 것이다. 아버님(세종)승하 때에는, 동궁이 춘추 서른 일곱의 장년이니, 섭정의 필요가 없었지만, 그러한 그 때에도 부왕 은 수양 자기에게, 「형왕을 보필」할 것과 장차 조카(단종) 까지도 지도해 달라는 하교가 있었다. 형왕 임종 때에는 후 계자가 겨우 열 두 살의 소년이요, 모후까지 없으매, 형왕은 당연히 자기에게 섭정의 고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고명이 없었을 뿐더러, 「수양은 들지 말라」

하여 고명 하는 자리까지 못 보게 하였으니, 여기서 자기는 어떻게 처신하여야 할까.

어린 임금을 돌보고 지도할 사람이 없어 버려 두어 신하들 의 자유농락에 맡길까, —이것은 못할 노릇이다. 나라를 위해 서든 왕실을 위해서든 또는 왕 개인을 위해서든, 군신(群臣) 의 자유농락에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 하면, 자기는 무슨 명색으로 임금께 뵈며 신하들과 대할까.

섭정의 고명이 없으니, 여기서 수양 자기가 자진하여 내가 섭정합시다 하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왕도 보필을 청하지 않으니 왕께 청할 수도 없었다. 이런 사정에서는 대신들이 왕께 계청을 하여 수양에게 섭정의 하명이 내리든가 종친들 의 이런 거조가 있던가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신 각료들의 심사는, 수양의 마음과는 판이하였다. 어린 임금이 매 이 임금 성인 되기까지, 현상을 유지하여 아무 변통도 하기 싫어하는 기색이 분명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섭정이 라는 존재는 필요치 않을뿐더러 도리어 귀찮았다. 이러이러 해라, 이러이러 하자, 모두 귀찮은 일이다. 지금의 이런 태 평세월에 무슨 변이 있으랴. 배를 두드리며 술이나 부르며 미희의 가무나 즐기며 지낼 태평세월에 쓸데없는 일을 빚어 내고 만들어 내어 스스로 귀찮음을 사랴. 거저 곱게, 거저 평온히.

이렇거늘 하물며 수양? 세종대왕 때부터도, 세종대왕의 그 광대한 사업도 그냥 부족한 듯이, 「이러면 어떻습니까」

「저러면 어떻습니까」하여 앞장서서 졸라대고 하였으며 문종 재위 이년 석 달 동안은 문종이 거상을 방폐로 그렇게 도 꺾는데도 불구하고 역경나도록 성화 시키는 수양을 「섭 정」이라는 것은 당찮은 일이다. 수양이 섭정을 하게 되면 각신들은 바쁘고 숨차서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지금 요행 선왕(문종)의 외신들에게는 고명을 하고 수양은 금절하였으 니 환란을 미연에 방지하듯 마음이 가볍기 한량없거늘 자진 하여 수양을 섭정으로 칭한다는 것은 망령이다.

이런 형편으로 수양의 희망은 이루어 질 길이 없었다. 뿐 더러 수양이 간간 정치에 용훼하려 하면 그들은 선왕의 고 명을 방패삼아 쌀쌀히 거절하고 하였다. 때로는, 「우리게는 고명이 게섰고 친아우님인 당신께는 아무 말씀도 없으신 점 을 생각하시오」하는 뜻을 노골적으로 나타내기조차 주저하 지 않았다.

수양은 매일 종친부(宗親府)에 나와서 종친부로 빈청(賓廳) 으로 혹은 각 각(閣)이며 사(司)에 왔다갔다하며 참견도 하 며 혹은 자기의 의견을 내놓기도 하고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며 하였지만, 그들은 할 수 있는껏 수양과는 「한담」이 외의 이야기는 피하고, 숨기고 한풀 감추고, 웬 간섭이냐는 태도를 분명히 보이고 하였다. 이런 일을 당한 때마다, 수양 은 칵 치밀어 오르는 격분을 감추기 위하여 한참을 고심하 지 않으면 안되고 하였다.

야속하신 형님이여, 저런 물건들이 형님께는 믿어집니까?

저런 것들에게 나라와 및 당신의 아드님을 부탁하시고 마음 이 놓이십니까?

분노의 근원인 선왕께 원망은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드디어 대신들과 충돌을 하였다.

먼저 안평과 충돌하였다.

본시 안평은 부왕(세종) 생존 때도 늘 수양에게 불복하는 태도를 취하고 매사에 긁고 깎는 기색이 있어서 부왕께 엄 책도 듣고 하였다.

부왕 승하 뒤에 형왕(문종)은 수양을 퍽 꺼리는 동시에 그 반대로 안평에게는 비교적 호의를 가졌었다. 부왕과는 반대 였다. 수양의 청하는 바는 대개 물리쳤고 안들었지만 안평 의 청하는 바는 대게 들었다.

안평은 부왕 생존에는 부왕의 분부에 대하여 늘 「수양 형 님 계시오매」하여 긁는 태도를 취하고는 부왕께 엄책을 듣 고 하였지만 천성이 어찌할 수가 없어서 이 태도를 끊지 못 하였다.

형왕 때에는 이전 같으면 「수양형 계시오매」하여 긁을 일을 당하여도 부왕 때와 같은 태도를 취하지 않고,

『하명대로 봉행하오리다.』

하며 그 표정과 말투로 「수양께 분부하면 필시 봉행 않으 리다」는 뜻을 보이고 하였다.

부왕과 형왕이 다 승하하고 어린 조카님의 대에 와서는 조 카님을 멸시하는 듯한 태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어릴 뿐 아니라 항렬로도 아래인 조카님은 모든 숙에게 아 무 분부도 없었다. 그 분부를 기다리지 않고 수양을 늘 무 슨 진언이며 계청을 하였지만 안평은 「어린애가 무얼 ……」하는 태도로 진언도 계청도 없었다. 어떻게 되어 무 슨 분부라도 있으면 입을 비꼬아 웃고,

『글쎄올씨다.』

하여 「말하면 무얼하리」하는 뜻을 분명히 나타내고 하였다.

더구나 수양이 무슨 분부라도 하면 「내가 뭘 압니까, 형 님이 잘 하시면서…… 난 아무 것도 몰라요」 하는 뜻을 은 근히 암시만 할 뿐 아니라 입으로 말로도 그 마음을 표시하 고 하였다.

하루는 수양이 그날도 마침 종친부—대군청에 있다가 정부 에 대신을 좀 만나러 나가고자 할 때에 며칠만에 안평이 입 궐하였다.

형(수양)께 문안하고 동생들의 인사를 받으려 할 때에 수양 은 그 때 어젯저녁 누구에게 들은 어떤 문제가 생각나서 안 평에게 물어보았다—

『이즈음 자네의 그 무이정사(武二精舍)에 잡배들이 많게 된 일인가?』

다른 대군들도 무슨 잡담들을 하다가 毗형님의 말에 잡담 은 끊어지고 이쪽으로 귀를 기울였는지라 안평이 못 들었을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안평은 형의 말에 대답은 않고 아홀 (牙笏)을 왼손으로 바꾸어 쥐며 오른 손으로는 부채를 쫙 펴 면서,

『어 더워, 가을날이 복거리같군.』

훨훨 부채질을 하였다.

흔히 있는 일이었다. 수양이 무슨 말을 할지라도 못들은 체하고 딴 일만 하는 것을—

『응? 어떻게 된 일인가?』

수양은 다시 물었다. 그때야 안평은 형을 보았다—

『네? 뭐라구 하셨어요?』

아깟말은 못들은 체하고 재쳐 물었다. 수양은 다시 한 번 아까 한말을 되풀이하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그래, 어떻게 된 일인가?』

『글쎄올시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부채질만 그냥 한다.

『몰라? 그래두 실지루 목격한 사람들두 적잖은데.』

『글쎄올씨다. 누구가 언제 어떤 일을 목격했답니까?』

『전자는 그만 두구, 어저께─그저께로군, 그저께도 삼 사 십 명이 무이정사에 모여서 법석하며……』

이번에는 안평이 도리어 수양의 말의 중도에 끼었다─

『어떤 미친놈이 그런 소릴 합디까. 그저께는 제집에 삼 사십 명 사람이 모였던 일은 있지만 잡배는 하나도 없구.』

뒷말이 미처 안 생각나는지 더듬는다. 수양이 체근하였다—

『그래서?』

『그래서─가 아니라 모여서 습사회(習射會)를 한 일은 있 지만 모두가 당당한─사람들이지 잡배는 없었습니다.』

『당당한 어떤 사람인가?』

『당당한─말하자면 그따위 미친 소릴 하는 놈들과는 상종 도 안 할 신현(紳顯)들이란 답니다.』

쏘는 말이었다. 수양을 눈을 고즈너기 들어서 동생을 보았 다. 그 수양의 눈에게 안평은 자 보십쇼 하는 태도로 마주 보았다.

『음, 어떤 신현인지 어떤 귀인인진 내 모르는 배지만 성 명까지도 말하지 못 하는걸 보니 그다지 이름 있는 사람도 아닌 양 해. 또 설사 귀현이라 하더라도 내 귀에 온 소문은 고약하니 그 소문이 내 귀에 오노라면 딴 귀에는 안가겠다.

삼가야 할 일일세. 더구나 사람의 입이란 고약해서 깨알 만 한 홈은 호박 만하게 불려서 폄하고 그 말이 한 입에서 두 입 세 입만 넘으면 그때는 태산 만하게 불려 놓고야 마는 법이니 처신 삼가야 하네.』

처신에 대하여 경계를 들은 안평은 불쾌한 표정이 분명히 나타났다. 그러나 그 무리들을 잡배라 아니 할 수는 없는 안평은 부르튼 표정으로 외면을 하였다. 그러나 외면하였다 가 즉시 도로 마주 형을 흘겼다—

『나보다 형님도 좀 처신을 잘 하시오.』

『나? 나야 뭘?』

『형님 네 댁에도 잡배 출입이 많답니다. 도성 안이 그 소 리 천집니다.』

『응? 누구?』

『권람(權擥)이라, 또─』

『또─좌우간 그따위─』

『권람이가 어떻단 말인가. 명문의 자손이고 거유(거유의 예(裔)고 경오년에 백의(白衣)로 장원해서 벼슬이 청환에 있 으니 가문으로든 신분으로든 재간으로든 어디로 보아서 잡 배란 말인가.』

『그따위 너절한 놈—』

『하여간, 왕자(王子)의 길로 말할지라도 잡인을 허트루 사 귀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거상중의 몸으로—』

『거상 거상 하시니 형님이 거상의 예를 준행하십니까? 그 래서……』

『내가 어쨌단 말인가?』

『생각해 보십쇼.』

『생각할 여지도 없네. 나는 거상 중 실수한 생각이 없 네.』

『네 옳습니다. 그래서 거상중이신 현능(顯陵—문종)께 주육 을 권했읍니다그려. 금상께도 권하신다지요? 왜 미색도 좀 권하시지요. 흥.』

『내가 언제 주(酒)를 권했단 말인가.』

『참, 술은 잊으셨다나요.』

수양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말 마디마디에 되었건 안되 었건 집어 대며 긁어대는데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괘씸한!』

주먹을 들어서 서안을 내려쳤다.

『좀된 사람 같으니! 성궁 허약하오시매 고량을 권한건 애 군지념이야. 그것과 잡인 교유가 같단 말인가?』

안평은 대꾸를 못하였다. 이 폭발된 노명에 한 마디만 더 기름을 부었다가는 형의 손 가까이 놓여 있는 연적이 필시 날아올 것이다.

『흥.』

입을 비꼬으며 외면하였다.

두 분 웃형이 다투는 것을 듣고 있던 대군들도 이 험악하 게 된 형세에 모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었다. 안평은 외면 하고 부채질만 하고 있었다. 일기도 그다지 덥지 없거니와 그만큼 부채질을 했으면 땀도 식었을 터인데.

한 순간 주먹으로 서안까지 두드렸지만 수양은 즉시로 제 냉정을 회복하였다.

『여보게 남보기도 숭하거니와 우리 꼴에도 안됐어. 아직 인산도 전에 골육지친에 꼴이 뭔가. 내가 서안을 두드린 건 큰 실수이. 허물허지 말게. 그렇지만 자네는 어려서부터 그 버릇이 고약해. 다투려면 당당히 다투고 그렇지 못하겠으면 당초에 말 게지 남의 노염만 돋구게 긁어내는 건 천한 못된 버릇이야. 지금 유충하신 전하 재상(在上)하신 이때, 철들은 우리들이 그런 시시한 일로 다툰다는 것도 못할 일이요, 더 욱이 성청에 들리면 얼마나 근심하시겠나. 자 내 노염은 깨 끗이 사죄할테니 자네 부르튼 마음도 녹여 버리고 우리 형 제 한려같이 손목 맞잡고 갈충보국해서 대대 조종의 영께 안심드리고 우리 종실 천만세하도록 힘을 쓰세. 요만 일로 형제가 불화하면야 되겠나? 그러구 자네게 내 부탁하고 싶 은 일이 있지만 그새 기회가 없어서 못했는데 오늘 이 기회 에 그 당부를 할 테니 들어주게. 다른 게 아니라 자네 좀 자주 들어와 주게. 철 없는 저 사람들(대군들) 공연히 늘 궐 내에서 욱적지걸하고 하면 남의 이목도 괴이하고 그간에 또 무슨 풍설훼담이 생겨날지 알겠나? 나와 자네가 웃동생이니 우리들에서 아랫동생 잘 감독해서 공연한 남의 의심 사지 않고 공연한 남의 말썽 듣지 않도록 해야겠어. 지금 전하재 상하오시고 섭정하는 모후나 종실이 없는 이 때, 우리 성상 을 외신들에게만 맡겨 두고, 전하의 우익이 없으면 그 틈에 무슨 권간이 생겨날지 모를 형편일세그려. 우리 강헌전하 평생신고의 대업을 우리 형제가 보호하고 지켜드리지 않으 면 누가 하겠나. 그러니까 좀 철들은 우리가 우리 사사 다 툼은 그만두고 일심협력해서 성상을 보필하세.』

안평은 묵묵히 있었다. 아까 외면한 채 저편 앞만 바라보 고 있던 그 고개도 그냥 그쪽으로 향한 채였다. 부르튼 것 이 가라앉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 정부에 좀 들어갔다 오마. 제제(諸弟)들과 함께 용비 어천가(龍飛御天歌)나 읽으며 강헌전하의 위업이나 제제들에 게 해설해 주어 주게, 아직 저 매부(영양위 정종도 의빈부 (儀賓府)에서 방금 건너왔다)는 물론이요, 우리 형제 중에도 염(琰─영응대군) 같은 소년은 모르는 성업이 많으니까, 좀 강논해 주게.』

수양은 안평에게 매부며 동생들을 용비어천가를 해설해서 건국의 위업을 회상케 해 주기를 부탁하고 정부로 갔다.

의정(議政)은 황보 인(皇仁甫)과 김 종서(金宗瑞)가 있었고 좌우 찬성이 서향하여 있었고 그때 마침 신 숙주(申叔舟) (集賢殿校理)가 무슨 계목을 가지고 의정께 뵈러 와 있다가 대군 행차라는 바람에 마주 나와서 맞아들였다.

절하여 맞는 정승들에게 수양도 상례하여 응하고 두 정승 의 새에 들어가 좌정하였다.

한헌의 인사가 끝이 났다. 소심하고 그 위에 이미 늙기 때 문에 세상 만사를 어름어름하여 무사히 지나기만으로 일삼 는 수상 황보 인은 말썽 많은 대군의 내림에 양손을 비비며 연방 미소하였다. 김 종서도 억지의 미소를 띄어보였다.

서로 인사가 사귀어지고 평범한 이야기가 한참 사귀어졌 다. 그런 뒤에 수양은 드디어 오늘 가져온 문제를 꺼내었다.

즉, 근일 건주(建州)의 야인(野人)들이 자주 변경을 침범하 는데 신왕 즉위지초에 국위를 크게 떨치고 야인의 불손을 벌하는 뜻으로 건주 정벌을 하면 어떠냐 하는 문제였다.

좌의정 김 종서(최근까지 남지(南智)가 좌의정이고 김종서 는 우의정이다가 남 지가 병으로 사직하고 김 종서가 오른 것이다)는 세종의 명을 받아 오래 색북에 가있으면서 그곳 의 야인을 토벌하여 위엄을 그곳 오랑캐들에게 떨치고 그 지방을 드디어 조선영토로 고정시킨 것이다. 함길도(咸吉道 즉 육진이다)는 이렇게 하여 조선 땅이 된 것이었다.

그 때에 왕(세종)은,

『과인(寡人)이 없으면 이 일을 시킬 사람이 없고, 과인이 있을지라도 김 종서가 없으면 역시 이 일은 능히 행치 못한 다.』하여 김종서의 충직을 칭찬하였다.

그 때 두만강과 압록강 건너로 쫓겨간 야인들이 근자에 또 자주 변경을 침범한다. 그러나 세종 이미 떠나서 지휘할 분 이 없고 선왕(문종) 재위 이년 석달은 무위무사로 보냈는지 라, 야인들은 더 교하게 되어 이즘에는 꽤 우리 땅 깊이까 지 들어오고 한다.

이제 이것을 그냥 버려 두었다가는 세종 때에 많은 노력의 대상으로 얻었던 피의 대상을 도로 잃을 염려가 있다.

이 신정지초에 야인들을 토벌하여 국위를 떨치기 겸 웬만 하면 좀 더 국토 확장까지도 해 보면—이것이 수양의 벼르던 일이었다. 그런데 마침 어제도 함길도 관찰사에게서 야인 내침의 장계가 왔는지라, 이 기회에 치자, 세종 계실 때 직 접 그 충에 당하였던 김 종서가 지금 새로 좌의정이 되었으 니 김 종서는 혹은 찬성하지 않을까. 다른 일 같으면 김 종 서도 못 재상들과 일반으로 무위무사만 꾀하기 쉽겠지만 야 인 토벌에는 혹은 찬성할지도 모르겠다. 이리하여 수양은 정부에 그 건의를 한 것이었다.

그랬더니 김종서는 첫마디에 그 건의를 물리쳤다—

『유주(幼主) 재상(在上)하오신 이 때 그런 큰 일을 어찌 친재(親裁) 없이 시작하겠오이까?』

그래도 야인 토벌이라면 그렇게 냉담히 거절할 줄은 의외 였다. 수양은 벙벙하여 종서를 보았다.

—인젠 늙었구나.

겁을 내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럼 대감.』

『말씀하세요.』

『성조(聖祖)께서 그만치 노력하오서 얻으신 땅—용흥지기 (龍興之其)—이씨 발상지)를 내버리잔 말씀이요?』

—수양은 힐문하는 듯이 말하였다.

–그럴 리야 있습니까?』

『그럼 야인들의 밟는 발에 버려 두자는 건 웬 일이오?』

『버려 두자는 게 아닙니다. 성재를 기다리잔 말이외다.』

이 정부에서 매사에 수양에게 반대하고 반항하는 태도를 취하는 종서였다.

『그럼 만약 야인의 내침이라는 것이 좌상(左相)께도 괘씸 하게 보이면 계청해서 윤허를 얻어서라도 속히 결말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건 마땅히 정승들이 할 일…』

종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허리를 좌우로 저으면서 외면을 하고 말았다. 수양은 다시 영의정 황보 인에게 향하였다—

『영상 대감의 의견은 어떠시오?』

자기게로 날아오는 질문에 인은 당황히 얼굴에 미소를 장 식하였다—

『허허허, 노생들이야 뭐, 전하의 분부대로만 할께지오.』

『분부 안계시면?』

『…………』

『안 계시면 국토를 다 잃어도 가만들 있겠단 말씀이오?』

일단 외면하였던 종서가 머리를 획 수양에게로 돌렸다.

『나으리, 정부의 일은 의정들이 잘 맡아서 하오리다. 나으 리 걱정 안하셔두.』

웬 참견이냐는 어조였다.

『그럼 좌상, 어떤 거조를 하시려오?』

『그 때 보아서 하지요.』

『그 때라니? 지금 벌어져 가는 일을……』

『…………』

종서는 다시 대답이 없었다. 허리만 저었다.

『여보소, 정승네들 왠 참견이냐구 하시겠지? 그렇지만 우 리 성조 성종께서 이룩하신 땅을 한치라도 남에게 잃기가 후손된 마음에 분해요. 그래서 하는 말이외다. 좌상이 야인 토벌의 경험도 계시니 의향이 어떠세요?』

외면을 하여도 그냥 추궁하는 바람에 종서는 외면을 한 채 로 허리를 그냥 저으며 인(황보 인)에게 향하여, 『대감 이 즈음 손발이 좀씩 떨려 오는데 이게 아마 늙은 탓이겠지요?

대감은 안 그렇습니까?』

전혀 딴 말을 시작하여 수양의 말에 대답을 피하였다.

인과 종서의 새에는 딴 말이 몇 마디 왕래하였다. 이 전혀 자기를 무시하는 태도에 수양의 젊은 마음에는 차차 노염이 움돋기 시작하였다. 두 정승 새에 쓸데없는 객설이 그냥 계 속되는 중간으로 수양은 끼어 들어갔다—

『정승네들, 종친이 들어와서 국사를 의논하자는 데 대감 네들은 객담만 하시니 웬 일이외까? 어디 좌상, 야인 토벌 에 대해서 대감의 의견을 들읍시다.』

종서는 수양에게 얼굴을 돌렸다. 불쾌한 표정이 분명히 나 타났다—

『나으리, 나으리는 종실의 장노시니 종실들이나 잘 거느 려 줍시오. 국사는 정부에서 할 일이니 종실에까지 염려를 안 끼치리다. 온 참—』

마지막의 「온, 참」은 종래 수양의 노염을 폭발시키고야 말았다. 아까 안평에게 서안을 두드렸던 수양은 여기서 또 다시 종서에게 서안을 두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감네들이 태평세월인 듯이 아무 일도 않고 있으니 종 실에서 참견하는 게 아니오? 국록을 자시고 국록에 대해서 무얼로 보답을 하시려오?』

종서도 여기서 마주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수양을 마주 보며,

『우리 노생들은 현능(顯陵─문종)께 고명을 받자와 금상전 하를 보필할 임무가 있어요. 금상 아직 유충하오신 이때 사 (師)를 일으켜 색북에 보냈다가 도리어 욕을 보면 지하의 현 능께 무슨 낯으로 뵙겠오? 나으리께서 대신 사죄해 주시겠 오?』

『실국(失國)보다야 낫지 않으리까.』

『흥사토이(興師討夷)하면 반드시 실국하게 됩니까?』

『나으리, 나으리는 현능께 고명을 받으신 바가 아니지 요?』

『…………』

『노생들은 고명을 받자와 유군을 보호할 책임이 있어요.

잘 들으세요. 보좌만이 아니라 보호올씨다.』

보호라고 꼬집어 말하는 태도에 수양은 정면으로 종서를 마주 보았다—

『보호라는 건?』

『네, 말하자면 강성한 대군들의 날개 아래서 미약하신 금 상전하를 보호하라는 말씀이외다.』

『무얼—』

수양은 팔을 걷었다—

『다시 한번 말해봐라!』

수양은 벌떡 일어섰다. 그의 오른 손은 종서의 멱을 잡았 다. 동시에 왼손은, 종서의 따귀를 향하여 날아갔다—

『간물! 영능(英陵─세종)의 유교로다! 불초 수양은 영능의 유교로 현능도 보좌했거늘 하물며 금상이랴. 너희 같은 간 물은—』

인이며 좌우찬성이며 사인 검상(舍人檢詳)에 이르기까지 일 제히 일어섰다. 인은 와들와들 몸을 떨었다. 제 자리에 일어 선 채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손을 빌며 떨고만 있었고, 다른 재상들도 어쩔 바를 몰라서 모두 떨기만 하였다.

연하여 서너 번 내리는 수양의 손뼉에 종서의 코에서는 코 피가 났다. 또다시 손을 들려 할 때에 웬 다른 손이 수양의 손을 잡았다.

돌아보니 계목 가지고 들어왔던 신 숙주가 꿇어앉아서 수 양의 손을 잡고 있다. 숙주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나으리 참으서요. 늙은 대신네가 망령된 말씀을 올렸아 오니 나으리께서 참으서요.』

수양은 굽어보았다. 숙주의 유명한 영특한 눈에 눈물을 가 득히 고여 가지고 양손으로 자기의 손을 잡고 간하는 양이 진실로 기특히 보였다. 수양은 종서의 멱을 풀어놓았다.

『대감, 대감이 기력이 없어서 색북 원정이 겁나면 겁날 게지, 왜 종실을 걸고 들어가오? 영능(세종 고명하시는 자리 에는 대감 당시에 지위 얕으니 못 참례했지만 여기 영상 황 보 보국이 동참해서 목도했을게요. 그 때……』

그냥 계속하는 중간을 인(仁)이 연해연방 미소하며 말을 끼 었다—

『아무렴요. 보고 말고요. 양녕대군 부액 하에 영능 기석합 시고 현능은 당시 동궁으로 영능전 부복합시고.』

『금상은 세손으로 시좌합시고 대군께 고명합시든 광경이 노생 오늘도 서언히 눈에 보이어요.』

그러나 수양은 인의 말에는 대답도 않고 숙주를 다시 굽어 보았다. 일품 정승들이 벌벌 떨며 어쩔 줄을 모르는 마당에 일개 오품관으로 뛰쳐 들어서 호랑이 같은 자기의 손목을 잡고 눈물로 간을 하는 그 모양은 기특하였다. 영능 생존시 에 늘 수양께도 숙주는 큰그릇이라고 하시던 그 눈은 과연 밝았구나. 수양은 빙그레 웃으며 돌아섰다. 그러고 좌중을 향하여 말하였다—

『대체 국왕을 보좌한다 하는 건 국가를 안목에 두고 이 국가에서 이 임금이 좋은 임금이 되시도록 하는 것이지 국 가에는 이롭건 해롭건 국왕의 일신과 마음만 평안히 해드리 고자 하는 건 참된 보좌가 아니라오. 혹시는 고간(苦諫)을 할 때도 있고 혹은 쟁간(爭諫)을 할 때도 있고 자기의 생사 를 안 돌아보고 죽기를 기써서 내왕(乃王)과 싸울 때라도 있 을 것이지 국왕 일신의 안일만 꾀하는 건 신도에 어긋나는 일일뿐더러, 이야말로 잘못하면 실국(失國)하는 대변까지도 생길 염려가 있는 일이니까 이 점을 잘 알아차리세요. 아까 좌상은 나더러 웬 간섭이냐고 합니다마는 대신이 실정을 하 면 나라이 패하는지라 내가 다만 종실이래서 하는 말이 아 니라 이 나라 신민의 한사람으로 근심스러워서 한 말이외 다. 그걸 편벽되이 고명 받았다, 안 받었다 해서 보필할 권 리가 있다 없다하는 건 나라에 불충되고, 내왕께 불신(不臣) 된 일,

『암, 그렇구 말구요.』

응하는 사람은 영상 인이었다. 종서는 코피 닦는데 정신 팔린 체하여 대답이 없었다.

젊은 왕자가 늙은 대신을 절절히 훈계하는 마당에 다른 재 상이며 관원들은 숨소리를 죽이고 듣고 있었다.

일찍이 부왕(세종)이 하신 말씀—내가 있어도 종서 없으면 육진개척의 대업은 못한다 하신 그 말씀은 종서의 용맹을 칭찬한 말씀이 아니라 「지혜는 없으나 벨은 곧아서 지자 (智者)가 위에서 시키면 직자(直者)는 아래서 딴 생각 없이 봉행하리라」한 뜻에 다름없었다. 은대신 각료가 반대하는 가운데서 종서의 「직」이 없었더면 육진 개척의 대업은 결 코 달성치 못할 것이었다. 굉굉히 울리는 반대성 가운데서 적임자 종서를 발견한 부왕의 명안은 귀신 이상이었다. 그 때 부왕이 하루를 멀다 하여 (서울에 앉아서) 현지의 종서에 게 서찰로 격려, 지휘—지도(地圖)를 앞에 놓고 베푸는 전략 은 어쩌면 그렇게도 주밀하고 상세하고 밝아서 베푼 꾀가 어긋나 본적이 없었고 내린 지휘에 착오난 일이 없었다. 종 서의 직(直)은 충성되게 이 분부를 봉행하여서 대업을 무난 히 성취하였다.

그러나 꾀 없는 종서는 위에서의 좋은 지휘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할 사람이다. 게다가 곧은 밸 위에 과거의 공을 자 랑하는 자긍과 자신(自信)이 있는지라 남의 말에 굴하기를 싫어하고 또한 보좌와 보호를 혼동하고 「충」의 전체를 이 해하지 못하는 한 「늙은이」에 지나지 못하였다.

재상자(在上者)는 내왕(乃王)을 잘 보좌해서 현군명주가 되 도록 해서 우으로는 재천의 조종의 영께 안심을 드리고 겸 해 내왕으로 하여금 만세의 영명을 남기게 하고 아래로는 억만 서중으로 땅을 치며 노려 부를 수 있는 성대의 일민으 로 되게 해야 하는 것—내왕의 과오(過誤)가 있으면 죽음으 로 간쟁도 해야 하고 그릇된 분부가 있으면 거역도 해야 할 겝니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유유낙낙 군명이라고 그 냥 봉행하고 국사는 되었건 안되었건 내왕께 근심만 안 드 리고자 감추고, 피하고, 맹종하고 하는 건 신도에 어긋날 뿐 아니라 내왕을 만세의 용주가 되게 할지도 모를 일이외다.

내가 단지 종실의 한 사람이라고 권(權)으로 말하는 게 아니 라 이 나라의 신민의 한 사람이라는 자격으로 국사가 근심 이 되어 하는 말이니 잘 생각해 보셔서 선처하십시오. 유주 재상(在上)하오시고 법정하는 연장자 없는 이 때 나라에 손 톱눈 만한 흠단이 생겨도 책임질 사람은 대감네들—지중하고 지난한 세월에 지중하고 지난한 자리에 있는 대감네들이 코 나 어루만지며 손이나 비비며 지내서야 되겠오이까? 일생을 평온히 지낸 대감네들이 만년(晩年)에 「무능(無能)」 두 자 의 아호(雅號)를 얻어서야 되겠오이까? 만절(晩節)을 더럽히 지 않도록—그 위에 모모(某某)가 유주를 잘 보좌하여 이런 성대(聖代)를 이룩했다 하는 광휘 있는 이름을 청사에 남기 도록 힘을 쓰서요. 수양 무능 무재하지만 대감네들이 팔 걷 고 국사에 헌신하시려면 수양은 종중(宗中)을 모아서 종가까 지 합력해서 대감네들의 노력에 만 분의 일이나마 후원을 하오리다. 우리들의 힘으로 어디 빛나는 방가를 만들어 봅 시다 그려.』

수양의 얼굴은 차차 빛이 났다. 눈에는 미소가 나타났다.

그러나 인(仁) 이하의 신료들은 아무 말도 없이—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도 알아보기 힘들도록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다만 숙주(叔舟)만이 꿇어앉아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二十四[편집]

궁중과 부중(宮, 府中)은 나날이 기강이 해이하여 갔다.

대궐 안에서는 혜빈 양씨(惠嬪楊氏)가 가장 세력자였다.

양씨는 본시 천한 집의 딸로 대궐에 불리어 잡역을 하다가 우연히 왕(세종)을 모시게 되어서 그 총애를 받고 왕자 세분 을 보았다.

그 뒤 동궁빈이 왕손(지금의 왕─端宗)을 탄생하고 곧 세상 떠나자 어머님을 잃은 강보의 세손을 양씨의 것으로 자랐다.

세종 승하한 뒤에는 대궐에서는 차차 양씨를 괄시하였다.

총애하던 임금이 떠나고 의지할 데 없는 양씨였지만 왕의 총애를 받던 때의 교앙이 그냥 있는 위에 그 출신이 천하여 천태가 그냥 있어서 유자(儒者)의 기상을 가진 문종께는 눈 에 벗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출신이 천하다 하여 같은 궁녀끼리도 입을 비죽거리며 대하였다. 드디어 대궐에서 내 보내어 여염에서 살고 있었다.

문종도 승하하자 어린 동궁이 등극하였다.

어린 임금이 국왕이라는 존귀한 위에 오르기는 하였지만 그 주위가 하도 고적하였다.

넓은 대궐에는 남성(男性)이라고는 소년 왕 단 한 분뿐이었 다. 여성은 적지 않게 있었지만 모두가 궁녀—하인뿐이지 어 린 왕의 동무가 될만한 가문의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아 직 어머님 그리울 춘추에 어머님 아버님은커녕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혼자서 대궐을 지키는 어린 왕은 남보기에도 민망하였다.

왕의 이 심경을 생각하고 동정하여 수양은 (여염에 나가 있던) 양씨를 대궐로 불러들인 것이다. 양씨의 것으로 자란 왕이니 만약 지금 세상에 정 가는 여성을 찾자 하면 그것은 양씨 단 한 사람뿐일 것이다.

왕은 양씨가 가까이 모시게 되매 얼마만큼 고적감이 덜하 여졌다.

그러나 양씨는 천한 집의 출생이라 하여 같은 여관들끼리 도 양씨를 얕보고 입을 비죽거리며 대하였다. 양씨도 또 제 출신이 출신이라 자기의 교양을 마음대로 부리지를 못하였다.

대궐 안에는 어른이 없었다. 제각기 한 패거리 한 패거리 가 되어 핥고 뜯고 중상하고 남의 흠잡기만 위주하는 여인 들의 모임이라 기강이 해이되고 문란하고 질서 없고 규칙 없고 허튼뱅이의 살림이었다.

이 대궐에서 여주(女主 세종비)가 없어지기는 벌써 칠 년 전이다.

그러나 세종 생존 중인 어디라 감히 버릇없이 굴 수가 없 었다. 그 위에 그 때는 세종의 총애를 받는 양씨가 여주행 세를 하여 기강은 그냥 유지되었다. 이렇듯 기강이 유지는 되었으나 내전 심비처까지는 왕의 눈이 미치지 못하여 자연 히 문란의 싹은 그 때부터 돋았다.

세종 승하하고 문종 등극하자 문종은 유자적 엄격으로 양 씨까지 내보냈고 그 때부터 내전은 전혀 감독자 없는 자유 상태에 버려 두었다.

내전이 기강은 해이될 대로 해이되었다. 여관들이 정장(正 裝)을 하고 있는 일이 쉽잖고 대개 편복으로 지냈고 해가 중천에 오르도록 아침잠을 자고 여관들끼리 할퀴고 뜯으면 서 싸우기가 일수요 간간 환관(宦官)아닌 남성의 그림자가 보였다는 둥 수군거리는 일도 있었고, 여관들의 친정에 보 따리 인 계집종의 왕래가 부산하였고—해괴하기 짝이 없었 다. 왕은 당신의 일신까지도 거누기가 귀찮은 분이라 그런 일까지 간섭하고 감독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의 대궐에 또 어린 왕이 동극을 하였는지라 여관 들의 방자함은 다 이를 수 없고 어전에서 싸움질 농질을 하 기조차 기탄치 않았다.

수양은 왕께 계청하여 양씨를 다시 불러들이는 동시에 양 씨에게 내전 감독까지 맡겼다. 그러나 여관들은 양씨의 감 독 따위는 우습게 여기고 삼갈 꿈도 꾸지 않았다.

궁중은 궁중으로 이렇듯 어지러워 가는 때에 부중(府中)은 또 부중으로 기강이 해이되고 질서가 어지러워갔다.

세종이 말년에 당신의 건강도 좋지 못하거니와 동궁(문종) 이 정무라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유(儒에 치우치 는 것이 근심이 되어 동궁 참결서무(參決庶務─섭정)를 명하 였다. 그리고 당신이 직접 세자의 손을 잡고 지도하여

「유」에 치우치는 동궁께 왕도(王道)를 몸소 가르쳤다. 그 중도에 세종의 건강은 더 쇠하여 차차 「병」으로 변하여서 승하 전 한 동안은 정부의 전부를 세자에게 일임하였다.

그 때부터 정치 방침은 세종 때와는 아주 다르게 되었다.

세종은 「유(儒)도 학문 중의 하나이라」는 견해로써, 유를 존중하는 것과 동시에 불(佛)과 도(道)도 존중하였고, 이 세 상의 학문이라 하는 것은 귀천이 없이 한결같이 존중이 여 기고 북돋우고 장려하여서 만박학문 기예의 황금시대를 이 룩하였다.

그러나 유에 치우친 동궁은 동궁시대와 및 동궁시대를 지 나서 국왕시대를 통하여 한결같이 유 뿐을 존귀한 것으로 여기고 다른 학문 기예는 모두 천대하였다. 온갖 과학은

「기(技)」라 일컫고 「술(術)」이라 일컬어서 천대하기 짝 이 없었고 그 위에 「도교」라든가 「불교」라든가 하는 유 와 반대되는 학문은 억압하고 박멸시키려 하였다. 세종 때 에 세종의 놀라운 안목으로 뽑아 올려서 중하게 쓰던 일기 일능의 달인(達人)들도 이 왕의 때에는 다시 한번 채질에 걸 려서 「유」가 아닌 자는 모두 내치거나 떨구거나 낮추거나 하여 버리고 유 뿐 높이 쓰고 긴히 썼다. 그런 결과로서 깊 은 기술이 있어야 하는 군사며 축성 교량이며 회계 율심(律 心)방면까지도 모두 유생을 갖다 썼다.

적재 적소(適材適所)라는 것이 없었다. 유생 통재(儒生統 載)였다.

아직 이십소리하는 소년무사 이징옥(李澄玉─스물 넷에 죽 었다)을 뽑아 올려 함길도 절도사(咸吉道節道使)로까지 중용 한다든가 하는 일은 문종에게 말하라면 망령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이런 정치방침 아래서 조직된 경부며 백관들이라 일에서 십까지가 다 유생이요, 일에서 십까지가 다 유교였다. 세종 의 명으로 요동까지 여러 번 왕래하며 연구에 연구를 쌓아 만들은 언문 같은 것도 문종에게 말하라면 쓸데없는 일일뿐 더러 신 숙주며 성 삼문과 같은 유용의 인물을 그런 잡학에 몰두케 하여 아까운 세월과 아까운 재질을 남용하였으니 통 탄할 일이었다.

더우기 측우기(測雨器)를 발명하며 악기(樂器)를 개인하며 각종 시계 일계(時, 日計)등을 발명하며—그 부지기수의 세종 의 업적은 문종께는 재간과 시간의 낭비에 지나지 소하였다.

이렇게 되니 한 때 황금시대를 연출하려던 문화도 도로 위 축도어 버리고 무슨 재간이든 간에 「유」로 돌아버려서 위 로는 일품 대신부터 아래는 구품 말직에 이르기까지 제 장 기가 무엇이든 간에 「유」 노릇을 하였다.

여기서 사람들의 기상도 자연 위축되고 퇴폐적 기운만 농 후하여 갈 때에 문종도 승하하였다. 어린 임금이 등극을 하 였다.

이 어린 임금께는 섭정하는 조숙(祖叔)도 없고 청정(聽政) 하는 대비도 없었다. 대신이 섭정을 할 밖에는 없었다. 이 대신들 가운데라도 좀 분명한 사람이 있었으면 그래도 얼마 만큼 보잘 데가 있겠지만 이 대신 들은 선왕의 고명을 「어 린 임금을 잘 키워 달라는」것쯤으로만 알고 이 임금이 성 장할 때까지 무상 평온히 지내기만 하면 된다 하여 만사를 버려 두고 어서 왕의 성장하기만 기다리며 무위의 그 날 그 날을 보내는 것이었다.

정무는 침체되었다. 경사는 해야되었다.

하관은 상관에게 지휘를 빌지 않았다. 빌어야 무슨 신기한 지휘도 없으려니와 지휘를 빌을 만한 중대한 사건이라도 어 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라 보이었다.

상관은 하관에게 지휘하려 하지 않았다. 지휘를 청하지도 않았거니와 청할만한 일이 있음 즉도 않았다. 어찌 어찌해 서 지휘를 청할지라도 경한 일은 하관의 자유 재단에 맡기 어 제 책임을 피하였고, 중대한 일이면 왕이 장성한 뒤까지 기다리며 밀어 두기를 위주 하였다.

—수양에게는 한심키 짝이 없었다. 부왕(세종)계실 때에 그 렇듯 활기 있던 방가가 근근 수년에 이다지도 변한 단말인 가?

저런 무리들은 모두 묶어서 한 뭉텅이로 하여 처치해 버려 야 할 것으로 보였다. 두어서 쓸데도 없으려니와 도리어 방 해되고 나아가서는 남이 하려는 일까지도 방해하는 것이었 다. 있어 무익할 뿐 아니라 유해하였다.

수양은 이렇듯 침체케 만들은 책임이 형왕 문종께 있다고 보았다. 문종이 좀 더 활기 있던가 그렇지 않으면 부왕 세 종의 고명대로 수양 자기에게 조력이라도 청하였다면 이 꼴 까지는 되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으신 형님이여.

아버님이 새삼스럽게 그리웠다.

조카님의 성장이 기달리었다. 어서 성장하셔서 친재를 하 시게 되면 그 때는 어찌될까, 아무리 못 된다 할지라도 형 님 때 이상으로 침체될 것이라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어서 성장합소서 성장합소서 기다렸다.

조카님이 영특하시든가 혹은 조카님 몸소 수양 자기에게 협력을 청하든가 하여간 현재 이상으로 침체된다는 것은 존 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아─』

나오는 탄식.

二十五[편집]

수양이 정부에서 김 종서와 충돌을 한 직후에 이상한 소문 이 들렸다.

그 소문은 수양의 사설 고문(私設顧問) 한 명회(韓明澮)가 얻어듣고 수양께 재빨리 품하였다.

다른 것이 아니라 종실 대군들이며 정부 당상들의 분경(奔 競)을 금합시사고 왕께 계청을 하였다 하는 것이었다. 계청 하기는 헌부에서요, 대사헌 기 건(大司憲奇虔)이 이 임에 당 하였다 하는 것이었다.

『흠.』

명회의 보고를 듣고 수양은 머리를 기울이고 생각하였다.

『그러굽쇼. 나으리 이 현로(李賢老)가 이것을 대신들에게 건책했다는 물론(勿論)입더이다.』

『글쎄, 이 현로도 그 맛 일은 할 위인이지만 좌상 김 종 서가 발안해서 이 현로를 추겨 헌부를 동케 했을걸.』

분경을 금한다 하는 것은 서로 다투어가면서 정치며 시사 며에 간섭을 하는 것을 금한다 하는 것이었다. 대군과 정부 당상관들의 분경을 금한다 하는 것이었다. 대군과 정부 당 상관들의 분경을 금한다 하나, 정부 당상관까지 낀 것은 대 군들만을 상대로 하기가 어려워서 그렇게 된 것이겠지 참 목표—상대는 대군들만임이 분명하였다. 당상관 운운하였지 만 지금 당상관 중에 「금지 당할 만큼 과격히 분경」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고 또 대군들 운운하지만 숙행(叔行)이 되는 양녕, 효 령 등이며 어린 동생(수양의)들도 대궐에 드나들기는 하지만

「분경」이라고 지목 받을 만한 일도 없고 단지 수양자기와 (간간 입궐하는)안평을 목표로 한 것이 분명하였다. 이 현로 도 그 맛 일은 할 만한 사람이나 김 종서야말로 가장 의심 둘 사람이었다. 종서의 성격도 성격이려니와 현 정부에서 노골적으로 수양에게 난항하는 최선봉이요, 엊그제 수양 자 기와 정면 충돌까지 한 그였다. 그때의 야인들은 관찰사의 독단으로 쳐서 물리쳤다 하니 다행이거니와 만약 그렇지 못 했더면 또다시 충돌이 있고야 말했다.

이런 관계로 보아 수양의 궁중 출입을 가장 싫어하고 가장 꺼릴 사람은 김 종서였다.

『나으리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명회는 수양의 의견을 물었다.

『그야 정부에 말해서 싹여 버리도록 하게 하지.』

『쉽게 되리까?』

『그야 되구 말구!』

『어디 나으리 수단을 한 번 봅시다.』

『수단까지 쓸 게 있겠나?』

웃음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이튿날 수양은 예궐하는 길에 수찰로서 안평을 대궐로 불 렀다. 그러고 들어온 안평에게 붑경법 문제를 꺼내었다. 아 직 수양만큼 침착할 나이가 못되는 안평은「각신들이 왕자 의 분경을 금하도록 상계를 한다」는 형의 말에 주먹을 부 르쥐며 성을 내었다.

『그래 형님은 그 모욕을 감수하실 작정입니까?』

『이미 헌부가 계청을 했으니 일을 사전(事前)에 막지는 못 했지만 대신을 시켜서 도로 철회하도록 하세나.』

『어떻게 해서—』

『염려 말게!』

일은 수양 혼자서 당할 것이로되 안평의 배행(陪行)이 필요 하였다. 분경을 금한다 하는 것은 그 목표가 수양 한 사람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니까, 이런 일에 수양 혼자서 나서기는 쑥스러운 노릇이었다. 백부 양녕이 함께 해 주면 가장 좋지만 늙은 백부까지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었다.

수양은 다른 동생들은 물리치고 안평과 단 둘이서 정원에 하인을 보내서 도승지 강 맹경(都承旨姜孟卿)이를 대군청으 로 청하였다.

수양이 맹경이에게 논집한 주지는 대개 이러하였다.

—지금 헌부에서는 종친들의 분경을 금하는 법을 계청하였 다 하는데, 그 주지는 어디 있는가. 「분경」이라는 악명을 씌워서 이것을 금한다 하는 것은 요컨대 종실(더우기 대군 들)을 자주 궁중에 못들어 오게 하려는 것이다.

—왕의 지친을 자주 입궐치 못하게 하자는 것은 그 까닭이 둘 가운데 하나이겠으니, 일자는, 대군들을 의심함에서 나오 는 일이겠고, 그렇지 않으면 대군들에게 의심받을 일을 행 하면서 대군들의 눈을 피하려 하는 것이다.

—재상들이 스스로 자기네들을 의심한다는 것은 말이 서지 않는 것이니, 필시 대군들을 의심하기 때문에 이런 거조에 나온 것이다. 우리 대군들이 의심받는다는 것도 유야무야 중에 싹이지 못하겠거니와, 우리 임금으로 하여금 우리를 의심하시도록 하는 일도 묵과할 수 없다.

—우익(羽翼)을 잘라버려 전하로 고립 무원(孤立無援)케 하 는 것은 어떤 필요로 하려는 일인지는 우리는 길이 없으되, 우리들로서는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니 첫째로는 국가로 보아 서 어리신 임금을 고립 무원케 하여서 권간(權奸)에 맡겨둘 수 없고, 둘째로는 우리 종중이 가장 우두머리 되시는 분을 남의 농락에만 맡겨둘 수 없다.

—우리는 국가의 휴척(休戚)으로 이 국가 위난한 때니 지금 도리어 재상들이 우리를 멀리하려 하니 이는 우리를 의심하 기 때문인지 혹은 우리에게 의심받을 일을 하면서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그 계략에 눈뜨 기 속을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억울한 사정과 재상들의 알 수 없는 심정 을 전하께 상서해서 그르고 옳은 것을 재단해 줍시사고 빌 려 하였지만 혹은 이 거조가 재상들의 지휘 명령이 아니고 유사(有司)의 착오로 이런 일이나 생기지 않았는가 해서 먼 저 대신께 이를 고하는 바이라, 그 속사정을 알아 가지고, 전하께 대죄(待罪)를 하든가 변명을 하든가 하려는 바이다.

—이만큼 이르고 수양은 도승지를 돌려보냈다. 과연 도승지 가 돌아가자마자 정부는 욱적하며 사인(舍人)들이 낭패하여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며 정원(政院─承旨)의 공기도 당황 해지고 헌관 간관(憲, 諫官)들이 몸소 달음박질로 이리 저리 다니고—꽤 소란하였다.

이윽고 영의정 황보 인이 몸소 늙은 몸을 대군청으로 옮겼다.

『나으리. 용서해 주십쇼.』

좌정하면서 인은 코를 방바닥에 비비었다.

『헌부의 철없는 소년들이 뉘게 품하지도 않고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려. 헌부소년들도 알아보니 나으리네—대군네들 이 아니고 화의군(和義君─세종의 서자)이라 기타 먼 종친 몇 분과 재상들을 지목한 겐데 전하는 동안에 와전(訛傳)이 되어서 나으리께 오해를 샀군요. 하여튼 명목이 문신(文臣) 으로 말 한 마디 변변히 하지도 전하지도 못하는 위인들이 니까 나으리께서 관대히 보아 주세야지 어쩝니까. —더벅머 리들도— 뒷갈망도 못할 일을 왜 한담. 허허, 참 이런 일로 상(上)께 글월까지 올려서 성심을 번거롭게 해서야 되겠습니 까. 나으리 살피세요.』

땀을 뻘뻘 흘려 가면서 변명하였다. 수양은 이 늙고 겁 많 고 우둔한 인의 변명을 고소하면서 들었다.

『글쎄, 그러면 그렇겠지. 대감네들이 아시고야 그런 일을 하도록 버려 두시겠오이까. 내 그런 줄은 알었지만 그래도 ─하고, 아까 강승지한테 말했던 것이외다.』

『온, 나으리두, 왜 그런데 추호라도 의심을 두신단 말씀이 오? 팽복시충심(膨腹是忠心)이요 만부시적성(滿腹試赤誠)이 어늘, 나으리도. 허허허.』

『암. 내 큰실수외다.』

『헌부 더벅머리들을 기회 봐서 좌천을 시키도록 계청을 하겠습니다. 아참, 나으리도 좌천해야 하겠군요. 실수를 하 섰으니.』

『그럽시다. 대군을 소군으로 할까.』

『소소군으로 하서야지.』

『그럼 극미군(極微君)으로 합시다그려.』

『허허허허.』

『에에. 오해 풀리니 가슴이 시원하군.』

『피차일반이올씨다.』

—팽복시겁(膨腹是怯)이요 만부시저(滿腑是)로다.

『그럼 대감. 해오(解誤)축하로 극미군이 한 턱하리다.』

『사양치 않으리다.』

이 정승 치하의 백성들이어.

수양의 고소(苦笑) 가운데는 탄식이 다분히 섞여 있었다.

二十六[편집]

구월(임신년) 하순.

꽤 서늘어웠다.

왕은 주강(晝講)을 마치고는 곧 내전으로 들었다. 내전에는 매부(妹夫) 영양위 정 종(寧陽尉鄭倧)이 대청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왕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친척은 정 종에게 시집가 있는 누님이었다. 누님의 반연으로 영양위와는 매부처남으로 사 귀었고, 연갑(年甲)인 탓으로 정이 깊이 들어서 이 세상에서 는 영양위가 유일의 벗이었다. 넓다란 대궐 안에 많은 내관 들이며 여관들이 있었지만 친구로 대할 사람은 하나도 없는 고적한 왕—종친들이며 재상들은 늘 대하지만, 알지 못할 까 다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자고 하고 하는 그들은 왕에게 있어서는 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귀찮은 존재였다. 벗할 만한 소년이라는 것은 대궐 근처에는 물론 있을 까닭이 없 다. 이복 동포(異腹同胞)가 하나 있고 아저씨뻘 되는 소년이 며, 먼 종실 소년들이 몇 명 있는 모양이다. 그 소년들은 무 슨 절차라도 있을 때에 문후하려 입궐하는 이외에는 왕과 벗하여 놀지 못하였다. 수위에서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영양위만은 재상이나 종친들도 함께 노는 것 을 방해하지 않고 떼 내지 않았다. 그래서 왕은 영양위가 오면 대개 내전으로 들어가서 놀았다. 어른 없고, 여인 없는 내전(여관들은 같은 사람이 열에 꼽지 않는다)으로 들어가서 혹은 격구(擊毬)도 하며 혹은 습사(習射)도 하며 소년답게 희희히 노는 것이었다. 두 고귀한 소년의 새에 맺어진 우애 는 매우 컸다. 왕은 매일 틈만 있으면, 의빈부(儀賓府)에 영 양위를 부르러 중사를 보내고 당신이 몸소 영양위의 집에까 지 거동하는 일도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

흠 없이 놀았다. 늙은 내관이며 여관들은 왕의 심경을 이 해하는지라 이심전심으로 왕도 그것을 알고 이 내관들만 보 는 곳에서는 영양위와 팔씨름, 눈깜박이 이런 놀이며 내기 (밖엣 사람인 영양위가 심중의 왕께 이런 속된 일을 가르쳤 다)까지도 하며 기탄 없이 놀았다. 젊은 궁녀들은 영양위를 보기 위해서 (부르지도 않았는데) 가끔 들여다보고 부러 주 의를 끌기 위해서 소리도 내보고 하였지만 놀이에 정신 팔 린 두 소년은, 이 짧은 시간(하루에 세 번씩이나 하자는 경 연이 사실 귀찮았다)을 할 수 있는 껏 길게 즐겼다.

이날 내전에 들어와서도 처음에는 조금 점잖게—그 뒤 점점 흠 없이—이런 과정으로 접근하다가 왕은 문득

『영양 이봐.』하고 찾았다.

『네?』

『너 연경(燕京)구경 하구 싶지 않으냐?』

『욕견미달이로소이다.』

『참 좋다드라. 경궁요대—오보에 일루(樓)요 십 보에 일각, 호숫가에는 정자가 섰고 정자 아래로는 기화 요초가 만발했 고, 못에는 연꽃 피고 잉어 뛰놀아, 고기와 꽃이 희롱하는 양이 선녀 도원에 춤추는 것 같고 옥난간 비취 걸상에는 동 자 저를 불고—』

『아이, 춤 넘어갑니다. 좀 그만 둬 주서요.』

『가보고 싶으냐?』

『아이, 싫습니다.』

왕은 웃었다—

『잘 싫겠다.』

『상감. 자구 칭찬만 하시면 뭘 합니까? 화중지병이 아닙 니까?』

『가 보련? 아아, 나는 가보구 싶어도 국왕은 불가경동이 라, 침만 삼킬 뿐이로구나.』

『신도 그러하옵지요. 연경 만리를 어떻게 갑니까?』

왕은 잠깐 생각하였다. 안석에 의지하고 다리를 길게 뻗치 고 양손을 뒷덜미에서 결고 절반만큼 누워서 문 틈으로 방 싯이 보이는 무한한 창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 보내 주련? 연경에.』

영양은 한 순간 얼굴이 환하게 되었다. 그러나 즉시 그 표 정은 사라졌다. 한숨이 나왔다. 연경은 못 갈 것이다. 월경 (越境)은 방색이 엄중하여 실행치 못한다. 잠행이라는 것은 이 고귀한 소년은 그런 방도가 있다는 것도 모른다.

『참 좋대요. 인간의 선경—선경도 그 손색은 부끄러워 할 만하대요. 사람이 세상에 나서 연경유람 한 번은 반드시 해 야 한다고—갔다 온 사람은 여출일구로 그러든 걸요.』

『그러기에 너 한번 가보지 않겠냐는 말이야. 싫으냐.』

『벌받을 말씀이지. 싫다뇨. 갈 수가 없어서 못 가는 게옵 지 신 평생의 소원이옵니다.』

왕은 절반만큼 누운 채 눈까지 감았다. 사랑하는 친구의 평생 소원이라는 것을, 하나 들어줄까?

이번 당신의 동극에 대하여 명나라에서 고(誥)와 면(冕)을 보냈다. 거기 대한 사례로 사례사를 우리 나라에서도 보내 면 어떠할까. 이 답례사는 정사(正使)는 왕자든가 부마(駙 馬)든가 정승이라야 된다.

평생 소원이라는 연경 유람을 이런 기회에 한 번 시켜줄까.

왕은 눈을 떴다. 손으로 방바닥을 짚으며 일어나 앉았다.

『내 주선해 주지. 연경 유람을 고면(誥冕)사례사를 불일 보내야 돼. 영양, 그 정사(正使)로 가볼까?』

『아이고, 황송하고 고마워라, 상감 꼭 주선해 주서요.』

『어디 해 보세.』

소년끼리는 소년다운 약속이 성립이 되었다.

영양은 꿈에도 생각 않았던 연경 유람의 기회가 홀연히 눈 앞에 떨어졌는지라 그 황홀한 광채에 취한 듯하였다. 동경 에 불붙는 소년다운 정열의 눈을 치뜨고 이야기로 듣던 연 경의 풍광에 미혹된 듯 숨소리까지도 가쁜 듯이 들렸다.

『절기가 좋지 못하구나 시월에 떠나서 색북 극한지지를 돌아서 설에 연경에 들게 됐으니 너무 추우면 구경이나 변 변히 하게 되겠다고? 춘삼월 호시절에 좋은 벗 짝지어 성현 의 미친 터를 꽃따며 유람했으면 오죽이나 좋을라구.』

『그건 욕심이 과해요. 연경 배람만 해도 신 같은 인생에 게는 과하거늘 그 이상 욕심을 내리까.』

『하하하하』

『상감 덕택으로 평생 소원이 성취가 됩니다그려.』

『아아. 나도 가보고 싶으이.』

『신이 가서 깨깨 구경해다가 상감께 그대로 일러바치리 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영양의 입재간이 당해 내겠느냐, 네 일쯤으로 그 선경 말할 수 있다면 가 볼만한 가치가 있 겠으나 도리어 선경 더럽힐라.』

『너무 수모 마세요.』

『하하하하.』

봉명 사신의 길이 아니라 유람의 길이었다.

『재상들이 반대나 안하리까?』

왕은 이 질문에 한 순간 안색을 변하였다. 말썽꾸러기의 존재를 왕은 깜박 잊었던 것이었다. 일이 국사라기보다는 당신께 내린 고고서와 면류관에 대한 사례의 사신이라, 그 러고 또 영양을 기쁘게 해주리라는 희망이 앞서기 때문에.

영양에게서 듣고 보니 과연 물론 가만있지 않을 것이었다.

왕의 십 년이라는 전생애에서 「사물을 이해할 수 있는 소 년시기」 오 년간을 통하여 왕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대 체 신하라는 것은 내왕(乃王)이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신하 가운데 몇 사람은 반드시 반대를 하였다. 조부님 세종의 처 분이나 분부에 대하여서까지 무슨 반대—하다못해—의견을 끼지 않고는 못배겨 하는 것이 신하의 버릇이다. 관원 혼자 거나 헌부까지 합해서 양사(兩司)거나, 심한 때는 집현전, 승문원, 모두 성세를 합하기까지 하여 내왕의 하는 일에는 딴 의견을 제출한다. 전연 고장 없이 낙착 지은 일은 기억 에 잘 나지 않도록 희귀하였다.

사신파견에 대해서도 물론 무슨 말썽을 부릴 것이었다. 더 욱이 사신이 왕의 사사로운 매부요, 아직 소년이 매 더 말 썽이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일단 영양에게 승낙했던 일이라, 그냥 흐지부지 해 버릴 수도 없게 된 왕은 이 일을 수양에게 부탁하려 하였다.

二十七[편집]

일년, 이년, 삼 년 오 년 한결같이 충성을 다하자. 장구한 세월을 변함없이 충성을 다하면 조카님도 오해를 푸실 날이 이르겠지.

—형왕(文宗)의 재궁 앞에서 깊이 스스로 맹세한 이래 수양 은 더욱 더 충성을 다하여 조카님을 모시었다.

강보적부터 부왕께 늘 「수양숙을 삼가라, 무서운 사람이 니라」는 교훈을 들으면서 자란 왕은 세상 무엇보다도 수양 숙을 무서워하였다.

아버님도 승하하였다. 수양숙은 무서운 사람이라는 제이천 성을 품고 왕은 등극하였다.

빈전에서 재궁을 모실 동안 왕은 처음에는 참으로 기막혔 다. 세상 무엇보다도 무서운 사람—수양숙이 딱 겉에 붙어 앉아서 잠시 한 때도 떠나지를 않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진 저리나게 무섭고 애가 탔다.

한 달— 두 달— 석 달— 가까이 지낼 동안 차차 무서움증이 덜어졌다. 동시에 수양 숙의 헌신적 보호가 차차 눈에 뜨이어 갔다. 그 체격, 음성, 모두가 유달리 굵고 큰 그 숙에게서 어디서 그런 세밀한 주 의가 나오는지. 어린 왕이 피곤한 기색이 보이면 곧 누울 자리를 준비하였다. 갈한 듯하면 무엇을 눈치를 채는지 곧 내관에게 식혜나 밀수를 부른다. 원상(院相─왕이 빈전에 있 을 동안 정무를 맡아보는 대신)이 무슨 문제를 가지고 빈전 까지 찾아오면 수양이 맞아서 듣고, 거기다가 이 문제를 해 결할 방책을 상책 중책 하책의 세 가지로 나누어 그 문제 (원상이 가져온)와 아울러 해결 삼방책까지를 왕께 아뢰어 신료의 어리석은 행동에는 왕을 대신하여 책망도 하였다.

만사를 독재(獨裁)하는 일은 없고 반드시 왕은 윤허를 얻어 서야 행하고 아직 어린 임금이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있으면 소상하고도 명쾌하게 가르치어 올리고 지도하여 올 리고 그러면서도 또한 옥체 보중까지 용의주도하게 감독하 고 돌보는 것이었다.

이 수양에게 비하여 다른 어린 숙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안 평숙의 태도도 너무 차이가 컸다.

안평숙은 자기가 직접 왕으로부터 명을 받거나 심부름을 받은 일이 아니면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가장 변변치 않은 일을 예로 들지라도 가령 왕 이 무엇을 집으려 하는데 팔이 채 자라지 않는 경우를 당했 다 치면 안평은,

『저것 좀 이리로 밀어 주세요.』하던가, 혹은,

『좀 집어 주세요.』하고 직접 자기를 지목해서 시키는 일 이면 부득이 행하지만, 왕이 혼자서 집으려고 애를 쓰든가, 혹은 누구라고 지목하지 않고 다만,

『저 것 누구 좀 안 집어 주시나.』 하든지 하면 외면하고 모른 체하여 버리는 것이었다. 역시 물건을 집는 것으로 예 를 들자면 가령 왕이 안평에게 향하여,

『안평숙 저것 좀 집어 주세요.』할 때에 안평의 겉에 다 른 사람이 있어서 일어서려 하면 안평은 부러 행동을 느리 게 하여 그 사람이 집어 바치도록까지 안평은 집으러 가려 는 행동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근한 예에 지나지 못하지만 안평은 만사에 다 그 러하였다.

『군명은 복종해야 한다.』

『음찔거리기 싫다.』

이 두 가지 마음의 합작이 안평의 온 행동을 이루는 것이 었다. 이런 일에 있어서 수양은 그 꼭 반대로, 어떻게 알아 내는지 입을 딱 벌릴 밖에는 도리가 없도록 왕의 「하고 싶 어하는 일」을 알아내어 봉행하며, 미처 못 알아낸 일이라 도 왕의 분부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보다 앞서서 하명을 봉 행하고 모든 정무에 대해서도 그의 활달한 눈으로 관찰하여 가장 적당한 방책을 골라내어 왕의 재단을 청하고—그는 빈 전에 있을 동안은 섭정, 섭정 가운데서도 가장 믿을만한 섭 정의 책무를 스스로 맡아 봉행하였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 나는 동안 왕은 이 수양의 성심을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도록 절실히 느끼었다.

—아버님이 숙을 오해하셨구나.

수양숙께 대한 감사의 염과 존신의 염이 왕의 마음에는 종 내 크게 자랐다.

—할아버님이 역시 바로 보셨다.

왕도 분명히 기억하는 바, 수양이 부왕의 병석에 와서 무 슨 진언을 하고 할 때에 부왕은 흔히 외면하여 버리셨다.

어떤 때는 혀를 채며 냉큼 나가라고 호령하실 때도 있었다.

이런 일을 당하면 감정나서라도 한동안이라도 일궐 않기가 쉽다. 그런데 수양숙은 한동안은커녕 그 자리에서 그냥 미 소하면서 부왕께 무슨 말씀을 여쭙고 하였다.

「수양은 삼가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따라서 수양에게 호감을 못 가졌던 당시의 세자는 수양의 이 태도 를 보고 뻔뻔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부왕 승하한 뒤에 가까이 조석으로 대하고 보니 대 하면 대할수록 그 성의가 느껴지고 상종하면 상종할수록 그 마음이 믿어워진다.

부왕 승하하시기 직전에 고명하기 위하여 대신들을 부를 때에 수양은 들지 말라 하여 대신들에게 수양을 믿지 않노 라는 뜻을 분명히 나타냈다. 지금도 내관들이 저희끼리 하 는 잡담의 마디마디를 뜯어보면 대신들은 부왕의 이 말씀을 방패삼아 수양숙과 간간 다툼이 생기는 모양이다.

이런 일을 당하면 사람이란 얼마나 불쾌한 감정이 일어날 지 왕은 짐작할 수가 있었다.

「숙부님 미안합니다.」

二十八[편집]

왕이 명나라에 보내는 사절에 정사로서 매부되는 영양의 정 종을 보냈으면 하던 희망은 가엾게도 꺾어지고 말았다.

수양에게 그 건의를 부탁하려 하던 바였는데, 당신께 그런 계획이 있느니만큼 내전으로 수양을 부르는 것도 남이 이사 하게 보는 것 같아서 주저하고, 외전에서는 이목이 번다하 여, 꺼리는 바가 있어서 주저하고 있었는데, 마침 어느 석양 에 왕이 혼자서 편전에 앉아 있고 대청에는 내관들이 대령 하고 있을 뿐, 정원(승지)은 아무도 없을 때 수양이 대청에 와서 부복하였다. 이렇게 승지나 주서(注書)도 모르게 왕께 뵙고 한다고 각신들은 이것을 꺼리는 것이었다.

마침 수양을 만나고 싶던 왕은 반가와서 수양을 영내에 들 어와 앉으라고 청하였다.

『마침 잘 오셨오이다. 나는 숙부를 뵙고 싶은 일이 있었 는데.』

왕은 다른 방해자가 오기 전에 벼르던 말을 하려고 이 말 부터 꺼내었다.

『신도 전하께 좀 조를 일이 있사와 참내하왔습니다.』

『무슨 일이오니까?』

『전하는 무슨 일로?』

『숙부는 무슨 일로—숙부부터 먼저.』

『전하 먼저—』

『네 나는 다른 게 아니라 불일 상국에 사례사를 보내야지 않겠습니까?』

『네……』

『그 일로 사절사를 누구를 보낼지—』

『신도 그 일로 누구를 보냈으면 좋을는지.』

『숙과 의논하고 싶어서. 숙의 의향으로 누구가 좋을 것 같소이까?』

『신이 가오리라.』

왕은 손에 들었던 홀(笏)을 내려뜨리도록 놀랐다. 용안이 주홍빛이 되었다. 뒤에 무슨 말이 나오랴.

수양은 푹 머리를 방바닥에 묻었다. 한참을 잠자코 있었다.

한참 뒤에야 머리를 조금 들었다—

『전하. 사절사에 관해서 성의 계신 곳을 신 짐작하옵니다.

영양위 정 종에게, 성의 계오신 것을 아옵니다. 알면서 성의 를 꺾었습니다.』

일단 순색으로 회복되려던 용안은 다시 주홍색이 되었다.

『그게야 숙—』

『알고서 거역하고 지금 대죄합니다.』

수양은 약간 머리를 들었다.

『전하. 지금 상국서는 우리 나라를 매우 주목합니다. 세종 승하하오시고 문종 등극하신 이후 이년남아를 효(孝)에 치우 치시고 정(政)은 삼년 상(祥)이라 해서 안돌아보오시고 변경 은 호(胡) 있아와 넘보는 자 많은 가운데 전하 또한 소년으 로 임상(臨上)하오시니 오늘의 형세는 성태조 개국하신 이래 의 가장 위난한 때라 이 때에 모성태조 개국하신 이래의 가 장 위난한 때라 이 때에 모(侮)를 덜고 방(謗)을 제하지 않 으면 안될 것이올씨다. 영양위 소질이 영특하고 명민하와 사절로 군명을 더럽힐 염려는 만만 없아오나 다만 연치가 약간 부족하와 저 나라 사람들에게 조선엔 사람이 없어서 흥안 소년으로 사절의 중임을 맡겼는가 하는 웃음이라도 사 면 크게 한되는 일이옵니다. 신이 성의를 거슬려서까지 영 양위 파송 중지를 청하옵는 뜻은 여기 있습니다. 굽어살피 소서. 신이 죄는 성명전 대죄하옵니다.』

왕은 당황히 수양의 말을 끊었다—

『숙! 숙부. 대죄가 무슨 대죄여요. 내가 어리석어 그런 생 각을 잠깐 낸 일은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철 없기 짝이 없었어요. 영양을 한번 호사시켜 보고자 하는 철없는 마음 으로 그런 생각을 해보기는 했지만 숙부의 말씀을 듣고 보 니 스스로 부끄러워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거기 대해서 는 내가 부끄러우니 다시 말씀도 말어주서요. 영양에게는 내가 직접 잘 타일러서 나무람 없이 단념케 하오리다. 숙부 께 참 미안합니다.』

『황공무지로소이다.』

『그럼 숙부. 사절로는 누가 가장 좋을꼬. 역시 숙부이상이 생각이 안납니다그려.』

『글쎄올씨다. 신의 생각에도 신 밖의 적임자가 얼른 생각 안 납니다.』

수양은 미소하였다.

왕도 미소하였다—

『역시 숙부 밖에는 누가 있오이까? 삼공은 모두 연노해서 먼 길에 도중—죽기까지야 하리까만 피차에 자미 없고—』

『부마(駙馬)……』

『…………』

『외에는 대군과 군들이온데 왕자가 가려면 역시 신이 가 겠습니다.』

『숙이 꽤 가고 싶으신 모양이외다그려.』

왕은 미소하였다.

『네……저 사람들을 만나서 우리를 멸시하는 기색이 뵈오 면 그 그릇된 생각도 곤쳐 주옵고 요지 선경이라는 상국 자 궁도 다시 한 번 배람하고 싶습니다.』

『영양도 그걸 보고 싶다고.』

『가여운 일이올씨다. 소년의 마음에 품었던 꿈을 깨트려 버렸읍니다그려.』

『할 수 없지요.』

숙질은 화기 애애하게 담소하였다.

그날 저녁으로 명나라에 갈 정사와 부사는 정식으로 작정 이 되었다.

숙질이 의논한 결과 일단 임금의 뜻이라는 형식으로 부마 영양위를 망에 올렸다가 예기하였던 바와 같이 영양위는 아 직 과히 어리다 하여 반대가 일어날 때에 수양이 자진하여,

『신이 가오리다.』

자기를 전처하고, 왕은 다른 재상들이 반대할 시간이 없이, 수양의 말이 끝나자 마자,

『그럼 숙부께 부탁합니다.』 하여 결정을 지어버렸다. 김 종서가 무엇이라고 입을 열려 하였지만 그 때는 벌써 숙부 께 부탁한다는 하교 내린 뒤라 종서는 입을 닫혀 버리고 말 았다.

부사(副使)로는 공조판서 이 사철(工曹判書李思哲)을 보내 게 하고 집현교리 신 숙주로 종사관(從事官)을 삼았다.

번갯불같이 처리하고 결정하여 버리어서 재상들은 무슨 영 문인지 모두들 어안이 벙벙하였다.

안평도 이 자리에 있었다.

안평도 무슨 말을 꺼내려고 누차 기회를 엿보는 모양이나 종내 기회도 얻지 못하고 말았다.

벼락치듯 일을 다 결정지은 뒤에 수양은 그날 밤 집에서, 한 명회 권 람 등 몇몇 친구를 모아 가지고 주연을 열었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겠다는 뜻을 일찍이 들은 일이 없는 권과 한은 수양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경악의 눈을 던지었 다. 명회는 목소리를 낮추어 수양에게 말하였다─

『나으리. 나으리께서 진심으로 극사를 근심하시면 부연(赴 燕)은 중지하시고 한동안 이곳 형세를 관망하시는 편이 좋 을걸요.』

『왜? 무슨 일이 있는가?』

『요즈음 며칠을 매일 좌상 혼자거나 혹은 수상도 끼어서 밤을 타서 담담정(淡淡亭)을 찾아다니며, 늘 병인(屛人)하고 무슨 밀회를 한다는데, 이런 때 나으리 멀리 가시는 건 그 다지 자미가 없을 줄 압니다.』

『무얼?』

수양은 올라 뛰리만큼 놀랐다. 당황히 잔을 상에 놓았다.

『그—그게 참말인가?』

『참말이구 말굽쇼. 오늘도 모였을 겝니다.』

정승이 왕자(王子)를 찾아다닌다.

병인(屛人)하고 밀담한다.

한 명회(韓明澮)가 가져온 이 보고에 수양은 악연하였다.

선왕의 재궁(梓宮—王의 ?棺)이 아직 빈전에 있는 국상 망 극 중임에도 불구하고 안평(安平)의 행동에 대하여는 향그럽 지 못한 소문이 적지 않게 떠돌고 수양의 귀에까지 들어온 것도 꽤 많았다. 선왕이 생존해 계실 동안도 왕자(王子)의 행위로는 근신치 못한 일을 한다는 소문이 번번히 들렸지 만, 적어도 선왕 승하하고 그 재궁이 아직 빈전에 있을 동 안은 근신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평의 행동은 근신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 때문에 수양은 누차 동생 되 는 안평을 책망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불근신에 지나지 못하였다. 지금 한명 회가 가져온 보고는 전혀 성질이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무릇 왕자의 길이라 하는 것은「영(榮)은 누리고 「권( 權)」을 피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지금과 같이 어린 왕이 위에 임한 때에는 한층 더 근신하여 세상의 의혹의 눈이 자 기의 위에 부어지기를 절대로 피해야 할 것이다. 만약 국사 나 정치에 관해서 자기에게 무슨 좋은 의견이 있다하면, 광 명 정대히 왕이나 혹은 대신에게 진언을 해야 할 것이다.

수군수군한다든가 혹은 무엇을 한풀 감추는 듯한 행동은 절 대로 피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어린 왕께 모후도 안 계시고 섭정의 고명을 받은 종친도 없는 데다가 호랑이 같은 왕숙(王叔)들 이 적서(嫡庶) 합하여 이십 명이나 되어 의심 많은 세상의 눈은, 왕숙들의 일거일동을 주목하여 마지않는다. 이런 때에 임하여 왕숙들의 취할 태도는, 그 한가지는 그가 만약 진실 로 국가의 안위를 근심할 것 같으면, 정정당당히 표면에 나 서서, 왕께 힘을 돕고 대신들과 힘을 아울러서, 나라에 보답 해야 할 것이다. 혹은 이렇게 하려면 세상의 의혹의 눈이 자기의 신상에 미칠지도 모를 것이지만, 이것은 국가—국가 를 위하여 하는 노릇이라 참고 지내야 할 것이다. —수양 자 기는 지금 그 길을 취하고 있다.

만약 그 길을 안 취하겠거던, 사람들과의 교제를 끊고 수 신과 제가(修身齊家)에나 힘쓰고 은거 생활을 해서, 영화나 누리지 권력에서는 멀리 피해야 할 것이다.

—백부 양녕대군은 그 길을 취하고 있다.

지금 안평의 하는 일은 그 양자가 다 아니고, 가장 삼가고 가장 피해야 할 길을 밟고 있는 것이다.

잡인과 사귀고, 함부로 출입하며—이것만해도 벌써 왕자의 길에서 벗어난 행동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주착없는 행동이라 기탄할 정도에 지 나지 못한다. 왕자로서 그게 무슨 점잖지 못한 일이냐고, 경 멸할 정도에 지나지 못하는 행동일 뿐이다.

지금 한 걸음 더 나가서, 한 명회가 가져온 보고라 하는 것은 그 정도를 훨씬 넘을 것이다.

정승과 밀회를 하며 밀담을 한다. 안평은 황보 인이나 김 종서와 사분(私分)으로는 친교가 없다. 이 국가의 왕자와, 이 국가의 대신이라는 공적 교제와 공적 명분이 있을 뿐이 다. 공적 교분 밖에는 없는 사람이 서로 만난다 하는 것은 공적 사무일 밖에는 없다. 그런데, 그들은 공무가 아닌 용건 으로 자주 만난다 하는 것이었다.

이 밀회를 거저 단순히 볼 수가 없었다. 무슨 이면이 있고 딴 뜻이 있다고 볼 수밖에는 없었다.

수양은 동생 안평의 위인을 생각해 보았다.

『너는 좀되다. 』

『너는 삐뚜러졌다.』

부왕(세종) 생존시에 늘 안평을 경계하던 이 말씀은 안평의 위인을 여실하게 말하는 바였다. 무슨 일을 행함에 있어서 정도(正道)로 행하여도 될 일을 안평은 반드시 권모 술수라 는 도정, 음모라는 도정을 밟아서야 행하는 사람이었다. 가 령 누구를 자기의 수하로 부름에 있어서도 공명 정대히 불 러도 올 사람일지라도 음모적으로 「뽑아오는」 형식으로 부르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말 한 마디를 함에 있어서도 비 꼬아지게 하며 반어(反語)를 쓰며, 각작각작 긁는 말과 태도 를 하는 사람이었다.

형왕 승하함에 있어서도 안평도 수양이나 일반으로 「어린 조카님을 보좌하라」는 고명을 받지 못했다. 만약 안평으로 서 권력에 대한 아무 미련이나 욕망이 없이 허심담담하였으 면, 그의 정자(亭子), 담담정(淡淡亭)에 길게 누워서 잡인을 상종치 않고 담담한 여생을 보냈어야 될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 정치적으로 무슨 욕망이 있으면 공공히 대신 재상들과 정치를 의논하고 정사를 토론하고 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 나 저도 이도 하지 않고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었다) 면은 국가 동태에 무관심한 듯이 가식하고, 일면으로는 문 무잡배들을 주위에 모아 가지고 헌화하며, —그 위에 또한 거기 끊치지 않고 대신들과까지 밀회를 하고 밀담을 한다는 것이었다.

무슨 의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 사분으로 친교가 없 는) 왕자와 대신 새의 의논이요, 그 위에 내놓고 하지 못하 는 점으로 미루어, 「가볍게 볼 의논」이 아닌 것만은 확실 하였다.

때가 때요, 시국 형세가 형세라, 수양은 한 명회의 보고를 듣고 악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평과 대신과의 밀교.

『—무슨 딴 작회를 하려는 모양이다.』

안평의 성격으로 미루어 있음직도 한 일이었다.

왕의 지친(至親)에 옷 항렬로는 백부 양녕과 효령과 성녕이 있지만 그분들은 잡세에서는 은거한 분이다.

지금의 어린 왕의 항렬로는 남자 동기가 없었다.

선왕(문종)의 항렬로는 수양을 필두로 하여 적출 입곱 분이 다. 안평은 수양의 바로 아래다.

가령 지금 무슨 사건이 돌발하여 어린 왕이 물러서거나 없 어지면, 그 뒤를 받을 이는 수양이요, 수양의 다음 순서로는 안평이다. 과히 요원한 것이 아니다. 여기 만약 안평에게 딴 야심이 있다 하면, 그 열매는 과히 먼 곳에 있지 않다. 손을 내밀면 넉넉히 따질 곳에 있다. 좀 된 사람, 성격상 음모를 좋아하는 사람—이 안평의 성격과, 안평의 현재의 지위와, 안 평의 이즈음의 언행으로 미루어 볼 때에, 안평은 결코 심상 하게 볼 사람이 아니었다.

『한 서방. 오문(誤聞)은 아니겠지?』

『딴 말씀!』

『어디서 난 소문인가?』

『소문이 아니올씨다. 양 정(楊汀)이가 매일 매복을 하고 엿봅니다.』

정승들이 안평을 몰래 찾아다니는 것은 떠도는 풍설이 아 니라, 양 정이가 숨어 지켜서 실지로 본 것이라 한다.

『무슨 밀담인지 듣지는 못했겠나?』

『그게야 들리겠습니까?』

수양은 두 세 마디 물어본 뒤에 그 질문을 끝막았다.

수양은 푹 머리를 숙여버렸다. 마음이 차차 괴로워 왔다.

안평과 대신들의 의논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무론 상 세히는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사정으로 따져 보아서 어린 조카님의 신상에 좋지 못한 결과를 나타낼 의논이라는 것만 은 추측할 수가 있었다. 그런 꾀를 하는 사람은 수양 자기 의 동생이요, 그 꾀가 이루어진다 하면 거기서 해를 입을 사람은 수양 자기와 조카님, 그 두 사람이다. 수양에게는 끊 으려야 끊을 수 없는 가까운 사람들이다. 수양 자신과 가까 운 만큼 또한 따라서 베푸는 사람이며 당하는 이 끼리끼리 도 그만큼 가까운 사람끼리다.

오! 무슨 까닭으로?

무엇 때문에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을 해치기 위해서 꾀 를 배풀려 하며, 다른 한 사람은 그 꾀로서 해를 입을 입장 에 서게 되었느냐.

—어리석은 동생아.

왕손이요, 왕의 아드님이요, 아우님이며, 현재 또한 왕의 아저씨로서, 부귀, 영화 부족이 무엇인가. 왕의 생활에는 크 고 무거운 책임이 있고 근심이 있고 걱정이 있고 고단함이 있지만 너는 누릴 부귀는 왕에게 못하지 않고, 져야할 책임 은 네 집안 가사 밖에 없으니 그 이상 무엇을 바라고 그 이 상 무엇을 탐내랴. 이 막히고 답답하고 어리석은 동생아.

어리신 조카님의 두 어깨에 짊어지어 있는 무거운 짐이 애 련하지 않으냐. 어깨 아프실 것이 마음 씌어지지 않느냐. 우 리 장발한 종친들이 도와 드리고 붙들어 드리어서 나약하신 옥체 고단하지 않도록 해 드리어야 할 것이로다. 딴 생각 왜 품는단 말이야.

수양은 안평의 뒤에 감취어 있는 김 종서의 그림자를 분명 히 직각하였다.

일찍이는 세종대왕의 지휘 아래서 육진 개척의 큰 일을 성 취한 이 늙은 재상— —우직하고 울뚝밸이 세기 때문에 좋은 지도자의 아래서는 큰 사업도 성취는 하였다. 그러나 늙고 모록한 지금에 그에 게 남은 것은 우직한 밸이요, 그 밸의 위에 (늙기 때문에 생 겨난) 음흉한 성격이 다분히 섞여 있었다.

안평이 만약 좋지 못한 편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하면, 그 뒤에서 안평에게 기름을 붓는 김종서의 그림자는 너무도 명 료한 것이었다.

음모를 즐겨하는 사람은 제 꾀에 넘어간다. 안평의 얕은꾀 는, 김종서의 음흉한 꾀에 넘어갔으리라는 점을 수양은 직 각하였다.

지금의 정부에서 가장 수양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꺼리는 사람은 김 종서였다. 수양 또한 지금의 정부에서 김 종서를 가장 미워하고 싫어하였다.

영의정 황보 인은 무능한 대신에 또한 호인이어서 모든 일 에 겁만 앞서는지라, 어떤 음모에 가담했다 하면 김종서의 충동인 때문일 것이었다.

이 정부에서 수양을 반대하는 마음을 품은 사람이 있다 하 면 그것은 김 종서일 것이다.

종서는 선왕에게 어린 임금을 보좌하라는 고명을 받은 사 람이다. 그 고명을 방패삼아 어린 임금을 모시고 무사태평 히 노후(老後)를 보내고자 하였다. 어린 왕도 부왕의 고명까 지 있었는지라, 늙은 대신을 신뢰하고, 그들 뿐을 힘입으려 하였다. 거기 수양이 곁들이 하였다. 그러나 부왕께 늘 수양 은 무서운 사람이라는 훈계를 들어온 어린 왕은, 수양을 무 서워하고 꺼리고, 더욱 더 늙은 대신들에게 의뢰하려 하였 다. 이리하여, 비록 수양이 곁들이는 하였다 하지만, 왕의 신뢰가 없고, 따라서 늙은 대신들의 지위는 반석과 같이 튼 튼한 듯하였다.

그러나 이 현상은 잠깐새였다. 수양의 지성과 충심이 어린 왕께도 차차 이해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렇게도 무서워하 던 수양을 차차 가까이 부르고 차차 신뢰하여 가는 것이 분 명하였다.

여기서 늙은 대신들은 신상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 을 것이다. 왕이 수양을 꺼리는 동안은 자기네의 신분도 반 석과 같으되 왕이 수양을 신뢰키 시작하면 자연히 수양과는 등진 자기네들의 신변이 안전치 못하다. 여기서 꾀는 빚어 졌을 것이다. 가볍고, 주접대기를 즐겨하는 안평은, 여기 한 허수아비로 끌려들었을 것이다. 수양께 대하여 이유 없는 반감을 품고 있는 안평은, 대신들의 농락에 비교적 쉽게 끌 려들었을 것이었다.

—이 전후곡절을 마음에 분명히 직각한 수양은, 차차 마음 으로 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린 조카님— 안평— 두 그림자는 힘있게 감고 있는 수양의 눈가에 어릿거렸다.

지금 자기는 바야흐로 중대한 사명을 띄고 연경으로 떠나 려고 아까 궁중에서 그 일이 작정되었다. 자청하여 취한 길 이라, 이제 세삼스러이 「싫습니다」고 사퇴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번 길의 목적은, 표면은 고(誥)와 면(冕)에 대한 사례사 라 하지만, 수양으로서는 이번 길에 그곳에 가서 그곳 문물 제도를 좀 잘 시찰하고 연구하고 싶었다. 잘 시찰하여 그곳 의 좋은 제도며 풍습을 이곳에 옮겨오고 싶었다. 왕자의 신 분은 가볍게 움직이기 어려운 것이라, 이번 기회를 놓치면 장래 언제 또 그런 기회가 올는지 아득하다. 지금 어린 왕 이 위에 계시고, 차차 수양 자기를 신뢰하여 오는 현재에, 자기가 왕께 보좌하여 좋은 시정을 하고자 함에는 아직도 안목이 넓고 크지 못함을 스스로 안타까이 여기는 때가 적 지 않다. 몸소 그곳에 가서 주(周)이래의 발달된 문물제도를 보고 그것을 참고로 하여 이 땅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여 부 강한 방토를 이룩하고자—그런 야망을 품고 있는 수양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큰 야망이 있었다. 옛날 부왕 생존시 에 무척이 내심 벼르기만 하면서도 입밖에 꺼내보지도 못하 였던 위대한 야망—구 고구려 영토의 회복—을 어떻게 할 수 없을까. 요동(遼東)일대를 몸소 밟아서 그 땅을 검분이라도 하여보고자 한 것이었다. 서장관으로 신숙주를 택한 것도, 숙주는 부왕의 분부로 (언문을 제정키 위해) 누차 요동에 왕 래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평의 존재라는 것이 꺼림칙하였다. 안평이 단지 수양 자기에게만 비꼬아진 행동을 취한다면, 그것이야 아무 렇단들 관계가 없지만, 이즈음 정승들과 사귄다는 것, 자주 왕래하며 밀담한다는 것이 꺼림칙하였다. 국가에 관계되는 일이면 왕께나 수양 자기에게 감추고 할 까닭이 없었다. 사 사이든 간에, 왕이며 수양 자기를 기이려하는 일이면 결코 온당한 일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적지 않게 꺼림칙한 일이다. 그러나 안평이라면 그것도 또 한 그다지 큰 두통거리가 아니다. 안평은 그 성격이 비꼬아 지고 좀되지만 과단성(果斷性)이 없는 사람이었다. 비틀고 비꼬는 언행은 한다 할지라도 엉행에 끊칠 뿐이지, 무슨 일 을 저지를만한 과단성이 없는 사람이었다. 입으로 말로 남 의 감정을 헐뜯고, 긁는 말을 하고, 남을 이간 붙이는 말이 며, 남을 폄하는 말은 할지나, 행동으로서 무슨 엉뚱한 일은 못할 사람이다. 정면으로 맞서면 저편에서 피하고 숨어서, 입으로나 야스꺼운 말이거나 혹은 고담준론도 할 것이지, 정정당당히 대하기는 피할 사람이다. 따라서 안평 혼자만이 면, 아무런 일도 성사를 하지 못할 사람이다.

안평과 김 종서의 합작이라 하는 것이 성가신 문제였다.

종실의 지친, 한두 다리만 건너면, 국왕의 위에라도 오를만 한 안평의 신분에다가 김 종서라 하는 날개가 달리면 이것 이 적지 않게 귀찮은 문제였다.

한두 가지의 문제로 한두 개의 사람만 젖혀놓으면, 안평은 당연한 순서로 왕위에도 오를 수 있는 사람으로서 그런 신 분의 사람을 중으로(혹은 허수아비로) 앞장세우고 몇몇의 꾀 가 진행된다 하면, 놀랄만한 사건도 빚어질 것이다. 안평 혼 자면 이런 대담한 생각은 내지도 못할 좀된 선비에 지나지 못하지만, 그의 뒤에서 부채질하는 사람이 있다 하면—아니, 부채질이라기보다, 등뒤에서 떠미는 사람이 있다 하면, 안평 이 선두에 나서지 않으리라고 보증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즈음 안평과 자주 접근한다는 김 종서는 어떤 사람인가.

선왕 문종의 총애를 받아서, 좌의정이라는 중직에 있는 사 람이다. 한 때는 그의 자리가 튼튼한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근자, 왕이 차차 수양을 신용하는 편으로 기울어지 는 듯 하자, 수양과는 등진 종서는 자연히 자리의 흔들림을 느끼고,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게 된 사람이다.

김 종서는 많은 자손을 거느린 사람이다.

김 종서로서 만약 옛날의 명상과 같이 부귀와 영화를 초개 같이 여기는 재상이라 하면 문제가 안 되거니와, 불행히 종 서는 아첨하기를 즐겨하고 이간질하기를 좋아하는 성품을 다분히 가진 사람이었다.

일찍이 태종대왕이 그 毗아드님인 양녕대군을 세자로 봉하 였다가, 다시 사위(嗣位)를 세째아드님 충녕대군(세종대왕) 으로 바꾸고자 할 때에, 김 종서는 다만 태종의 뜻에 영합 하고자 하여, 얼마나 많은 말을 꾸며내어서 양녕대군을 헐 뜯었던가. 양녕대군이 아무 죄도 없는 줄을 번히 알면서도 다만 왕의 뜻에 영합하고자 양녕에게 가지가지의 죄안을 꾸 며내어 씌웠던 종서였다. 양녕이 종내 폐사가 되고, 충녕대 군이 사위에 올랐다가 등극까지 하자 충녕—변하여 신왕(세 종대왕)께 대하여서도 종서는 연해 양녕을 참소하였다. 신왕 은즉 양녕을 대신하여 등극한 분이라, 신왕께 양녕을 욕하 는 것이, 신왕의 총애를 사는 방도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 었다. 신왕(세종)은 종서의 이 비루한 심사를 더럽게 보았 다. 당신을 영립한 공로가 있는 종서였지만, 왕은 그를 엄책 하였다—

『그대의 마음으로 내 마음을 추측하는가? 본시 친륜으로 말하자면 양녕대군이 누릴 대위(大位)를 지금 내가 누리는 것이라, 저 필부(匹夫)라 할지라도 형제간에는 서로 악을 감 춰 주고 신을 나타내 주다가 불행히 하나이 죄에 걸리면, 애걸하고 뇌물해서 구해내려고 애쓰는 것이 인정이거늘 한 나라의 임금으로 필부만도 못하게 제형(양녕)을 감싸주기는 커녕 벌까지 하라고 내게 조르는가? 다시 내게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종서가 공조판서(工曹判書) 때에 종서는 공조에 시켜서 정 승 황 희(黃喜)에게 주과(酒果)를 바쳤다. 황 정승은 그 주 과를 물리치고 종서를 책망하였다—

『국가가 예빈시(禮賓侍)를 둔 것은 정승을 대접하기 위해 서라, 내가 시장하면 예빈시에 시킬 것이어늘 공조판서가 사사로이 대접하는 건 웬 일인가?』

뿐 아니라, 평생을 노색(怒色)을 나타내어 본 일이 없다는 황 정승도, 김 종서에게만은 매우 엄하였다.

말하자면 김 종서는 아첨하기를 좋아하고, 아첨할 필요상 이간질이 필요하다 하며, 이간질도 사양치 않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부귀하기 위하여, 자기가 영화되기 위하여는 어떤 일이라도 감행할 사람이었다. 많은 자손을 거느린 그요, 부 귀라는 데 애착심이 강한 그요, 또한 부귀를 얻거나 유지하 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는 불감증인 그라, 만약 그에게 수 양의 존재라는 것이 제 부귀의 방해물이라 보면, 수양 제거 에 힘을 쓸것이며, 수양이 지금 왕의 신임을 입고 있어 수 양만을 떼서 제거하기 힘들면 더 높은 데까지라도 손을 뻗 쳐 보려 할 위인이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볼 때에 수양의 마음에는 종서에게 대한 증오의 염이 차차 크게 일어났다. 다만 무능한 재상이라고 경멸하고, 수양 자기에게 적대하는 사람이라고 밉게 여겼지 만, 그 인물이 지금 생각하는 바와 같은 그런 음흉한 꾀를 품고 있다 하면, 단순히 미워만 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크게 경계하고, 그 대책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안평이, 그런 인물과 조종하는 연극에서 놀아난다 하면 그 것은 수양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었다. 김종서는 만약 수양 이 득세를 하면, 자기는 몰락을 할 판이니 기써서 다른 꾀 를 안출하려고 갈팡질팡할 것이나, 안평이야 무엇이 부족하 고, 지금의 이상으로 무엇을 더 바래려고 그의 농락 아래로 들어갈 것인가.

사사에 수양 자기와 맞서려 하고 거슬리려 하는 안평은, 가증하기는 가증하였다. 가증하기는 가증하나 그래도 동생 이었다. 동생끼리 아랫동생이 웃동생에게 지기를 싫어하고, 매사에 거역하고 하는 것은 괘씸한 하나마, 그것은 집안 일 에 지나지 못한다. 남의 농락 때문에—제삼자의 행복을 위하 여, 아랫동생이 웃동생을 거역한다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 이었다.

한 명회와 이야기를 하다가 수양은 머리를 수그린 채 한참 을 들지를 못하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으리. 이번 사행(使行)을 그만두시면 어떻습니까?』

수양의 머리를 수그리고 생각에 잠겨 있을 동안, 한 명회 도 역시 잠잠히 있다가 수양이 약간 몸을 움직일 때에 비로 소 말을 걸었다. 그 기회에 권 람(權擥)도 함께 말하였다—

『지금 나으리께서 먼길을 떠나시면 여러 가지로 좋지 않 은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양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 직접 들어서 그들의 생각과 자기의 생각이 같은지 어떤지를 알고 싶었다.

『그야—』

『그야—』

두 사람의 입에서는 같은 말이 함께 나왔다. 그리고는 함 께 끊어졌다.

『그야 어떻단 말인가?』

재쳐 물었으나 대답은 없었다.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은 입 밖에 내기가 어려운 말이기 때문이었다.

『안평이 신기(神器─옥새)를 엿본단 말이겠지? 황보정승이 나 김 정승이 안평을 떠받을리란 말이겠지? 그런가?』

수양은 그들의 말을 꼬집어 밟았다. 그러고 거기도 역시 대답을 못하는 그들에게 무거운 눈을 부었다.

『그렇지만 이보게. 이번 사행(使行)은 누가 가란 것도 아 니고 가 달란 것도 아니고 내가 자진해서 가겠읍니다고 한 겐데, —그것도 열흘 이십일 전도 아니고 아까 방금 가겠다 고 한겐데, 체면도 있지, 이제 무에라고 그만 두겠읍니다고 하겠나?』

『그야, 탈이 나섰다던가 무슨 핑계야 없오이까?』

『핑계야 없겠나마는, 그렇게 가볍게 가겠읍니다고 했다 그만 두겠읍니다고 했다 번복무쌍하면, 이 뒤 내가 무슨 일 을 한다면 누가 신용을 하겠나. 그 점도 생각을 해야지.』

『그러니 나으리께서 어떻게 떠나시겠읍니까?』

『글세. 무슨 도리가 있겠지.』

『무슨 도리니까?』

수양은 머리를 기울였다. 먼저 동생 안평을 생각하여 보았다.

『안평은, 우익(羽翼)만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할 사람. 돌아 다니면서 남에게 역한 말이나 하라면 잘할 사람이지 만, 입 만 살았지 속살이 없는 사람일세. 치지도외하고—』

『영상(領相)은?』

수양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미소로 감추었다. 예전 황보 인 이 세종께 대하여 어떤 설원간(雪?諫)을 할 때에 정신 없이 도 사모를 거꾸로 쓰고 어전에서 엄숙한 얼굴로 열변을 토 하기 때문에 도모(倒帽)재상의 별명을 듣는 황보 인이었다.

『지봉(芝峰)—(황보 인의 호)은 도모지시(倒帽之侍)의 칭호 를 듣느니만치 우활할 뿐더러 소심하고 겁 많고 늙어서 아 무 일도 못하는 위인. 턱이나 어루만지고 발바닥이나 쓸면 서 식은 코 들여 마시는 밖에는 장기가 없는 사람이니까 역 시 치지도외할 밖에.』

『그럼 좌상(左相)은?』

『이 절재(節齎)—(김종서의 호) 하나이 두통이지만 그것도 어떻게 될 도리가 생기겠지.』

『어떤 도리가 생기겠읍니까?』

『이렇게 하면 어떨까, 지금 생각한 바인데 지봉(芝峰)의 아들 석(錫)이와 절재(節齎)의 아들 승규(承珪)를 수행으로 데리고 갔으면……』

『글쎄올씨다. 그것도 한 방책은 되겠읍니다.』

『한 방책 뿐이 아니라, 만전지책일 것일세. 지봉이든 절재 든 무슨 안평에게 대한 충성이 크다든가, 국가에 대한 충심 이 커서 그러는 게 아니고, 단지, 늙마에 평안히 살고 자자 손손이 영화 누리자고, 그러는 게 뻔한 일인데, 내가 저희들 의 아들을 전당잡아 가지고 저 땅에 간다면 그동안이야 저 희네들이 꼼짝이나 할 것인가. 그 사람들이 국가에 충성이 있다든가 하다못해 안평에게라도 적심으로 정의를 가졌다 면, 자식은커녕 당자를 죽인데도 굽히지 않을 게지만 자기 일신의 영화를 도모하는 데 지나지 못하니 내가 그 자식들 을 데리고 가면 누구를 위해 꾀를 하겠나?』

『하기는 그렇습니다.』

한 명회 등은 드디어 수양의 의견에 승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평과 황보 인, 김 종서 등에게 대할 방침은 대략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이번 수양이 연경에 가게 된 것은 아까 궁중에서 갑자기 결정된 일이라, 수양의 수한인 한 명회며 권 람이며 이런 사람들과도 아무 의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수양이 멀리 가 있는 동안 여기(서울)서는 무엇을 하고, 무슨 일을 진행시키며, 어떤 일을 착수하며, 무슨 계획을 세운다든가 아무런 선후책도 의논한 일이 없었다. 거기 대해서도 대략 의논을 해야 할 것이다.

안평이 무이정사(武夷精舍)와 담담정(淡淡亭)을 꾸미고 문 무 잡배들를 모아 가지고 인심수획을 도모한다. 여기 대해 서도 무슨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한 명회며 권 람등이 제출할 때, 수양은 그런 일은 그다지 크게 보지 않았다.

안평은 우유부단하여 결단력이 없는 사람이니 무슨 일을 창도하지는 못할 사람이요, 황보 인 역시 겁 많고 과단성이 없는 사람이니 문제삼을 것 없고 김 종서도 역시(그의 아들 승규(承珪)만 수양이 데리고 가면) 딴 짓은 못 할 사람(한댔 자, 무의미한 일이니까)이라 수양이 연경을 다녀서 다시 돌 아올 때까지, 아무 별 일이 생기지 못할 것이라—수양은 굳 게 믿었다.

안평이 문무 잡배를 모아 가지고 술을 먹이고 대접을 후히 하여 인심을 모은다 하지만, 안평의 위인이 인격적으로 그 들의 존신(尊信)을 사고 숭앙을 받을 힘이 있는 바가 아니 요, 임시로 술과 환락에 끌려 모여온 오합지중이라, 안평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나설 사람은 없을 것이니, 무이정사 며 담담정에 모여드는 무리는, 한 번 고함치면 산지사방할 부랑배들로서 이 역시 크게 평가할 바가 아니라, —수양은 이것도 아주 가벼이 보았다.

그러니까 안평의 꾀하는 일이라 하는 것은, (자기와 및 자 기 자손의 부귀 영화를 위하여) 기쓰고 덤벼드는 김 종서 한 사람이 좀 꿈꿈한 뿐이지, 다른 사람들은 볼 데가 없다.

김 종서는 좌일보 우일보로서 몰락과 영화가 갈리는 판이 매, 악에 바쳐서 죽을 힘 다 쓸 것이로되, 그의 아들을 수양 이 잡고 있으면, 김 종서도 옴짝들썩 못 할 사람(누구를 위 하여 일어서랴)이니 염려할 바가 없다.

그러나 장차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용기와 힘을 아울러 가 진 사람을 수하에 가질 필요가 있으니, 전국에 널리 구하여 그런 사람을 모아들이어 한 개의 세력을 형성하여 두는 것 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을 좀 구하여 보라.

안평에게 모여든 무리들과 같이 술이나 탐내고 안락이나 꾀 하는 무리는 쓸 데 없고, 장차 한 마디 호령이면 목숨이라 도 아끼지 않고 물붙이라도 저어하지 않을 사람들을 물색하라.

—이만한 의논과 지휘가 있은 뒤엔 그날 밤은 그대로 헤어 졌다.

때는 자정이 썩 지난 양반이었다.

二十九[편집]

한 명회 등이 돌아간 뒤에, 수양은 정침(正寢)에 들었다.

그러나 자리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사방침에 몸을 의 지하며 비스듬이 앉아 버렸다.

술을 먹지 않았으니 취하지 않았다. 취하지 않은 똑똑한 머리에는 안평의 생각이 불끈 솟아올랐다.

어렸을 적부터 까불고—까부는 위에 또한 비꼬아진 성격은 아직도 조금도 고쳐지지 않았다. 부왕(세종) 생존시에도 부 왕은 얼마나 안평의 위인을 걱정하셨다. 부왕이 가사를 의 논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인 백형 양녕대군을 조용히 만나 면, 늘 첫째로는 동궁(선왕 문종)의 나약함을 근심하고 계속 하여 반드시 안평의 위인을 걱정하고 그 비틀어진 성격을 근심하고 하던 일은 수양은 아직 번히 기억하는 바다.

더욱이 백부 양녕은 부왕보다도 더 안평을 미워하던 분으 로 그는 언젠가 아우님(세종)께 대하여,

『문학지사란 것은 겉으로는 의(義)를 가식하고 속으로는 이(利)를 도모하는 것, 안평이야 말로 이 사직에 가장 경계 할 인물이올씨다.』고 극언한 일까지 있었다.

부왕이 꺼리고 불신하는지라 부왕 생존시는 안평은 뒤로 숨어 다니면서 비꼬아진 웃음과 긁어내는 언어로나 앞막이 를 하고 있었으나, 부왕 승하한 뒤 형왕(문종)등 극하자, 형 왕은 수양보다도 안평을 신임하니만큼, 안평은 부왕시절과 달리, 표면에 나서서 가장 형왕을 돕는 체하며, 형왕께 대하 여 수양을 깎고 긁어서 형왕으로 하여금 한층 더 수양을 불 신하게 하였다.

그 형왕마저 승하하고 어린 조카님이 등극하자 안평은 어 떤 태도를 취하였다.

어머님도 없으신 어린 조카님이라 당연히 보좌하고 보호하 고 해야 할 것이어늘 그 책임을 피하고, 무이정사며 담담정 에 길게 누워서 일신상의 안락을 꿈꾸고 있다 하는 것도 마 땅치 못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혹은 너무 궁중에 접근하 면 남의 의혹을 살 염려가 있으니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라 면 이 역시 세득이한 일이다. 그런데 다만 길게 누워 있는 것이 아니고, 대신들과 결연하여 비밀히 왕래하며 무슨 꾀 를 도모한다는 것은 웬 일이냐.

먼저 도(道)로 생각하리라.

—이 국가의 임금이시다. 이 국가의 신민으로 어찌 임금과 떠나서 신자들과 결탁을 하여 그의 농락 아래서 딴 생각을 하랴.

다시 의(義)로 생각하리라.

—형님(문종)의 외아드님이요, 아버님(세종)의 장손되는 분 께 어찌 딴 생각을 둘 수 있으랴.

또한 인정으로 생각하리라.

—어리신 왕의 외로운 환경에 동정인들 어찌 안 가랴. 어느 모로 뜯어보아도, 안평의 행위에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다 만 지금의 결론이 단지 수양 자기의 억측이라든가 한 명회 의 보고가 허보(虛報)라든가 하여야 안 평의 입장이 서게 될 터인데, 거기는 또한 과거의 안평의 행동과 근일의 행위 등 을 종합하여 볼 때에 「허보」로 돌릴 수가 없었다.

그 새의 안평의 언행 등으로 미루어 벌써 그 맛 추측은 갔 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상식 이상의 일이요, 또한 동모제(同母弟)라는 핸디캪이 있기 때문에 생각이 거기 및지 못하였던 것이다. 한 명회의 보고를 듣고 보니, 그런 일이 있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아. 이 일을 어찌 하나.』

안평이 나이 벌써 삼십, 그의 성격은, 인젠 굳어질 대로 굳 어진 사람이어서 아무런 노력이라도 고칠 수가 도저히 없을 것이었다. 안평이 이 세상에서 무서워하는 다만 한 사람인 부왕이, 생존시에 그만큼 늘 엄책하고 훈계하여 고쳐보려 하였으나 고쳐지지 않은 안평이라, 성격 이미 굳어진 위에 또한 내심 복종치 않은 수양 자기의 책망 훈계쯤으로는 어 림도 없을 것이었다.

성격은 못 고치나마 그의 품고 있는 생각이나마 어떻게 고 칠 수가 없을까.

비꼬아진 사람이라, 잘못 건드리었다가는 더 빗나갈 염려 가 있다. 그렇다고 얼르고 달래서 마음 돌리기에는 너무 장 발하였다.

과단성이 없는 사람이라, 앞장서서 뚱기칠 김 종서만 없으 면 자기가 앞장서지는 못할 사람이다. 그러나, 이(利)에는 생사를 가리지 않는 이 속세에서, 김 종서가 없어진다 해도 제 이 김 종서가 또 생길 것이고, 제 삼 김 종서가 또 생길 것으로, 끝이 없고 한이 없을 것이다.

잘못하다가는 이(利)를 위하여 생겨날 유혈극— 수양은 몸을 떨었다. 안평의 문제를 썩 잘 해결하지 못하 면 반드시 유혈의 참극은 일어날 것이었다. 일을 저될 대로 내버려두면, 어린 임금은 아무 것도 모르고 대궐에 안온히 날 동안, 밖에서는 자기의 일신의 안전과 영을 도모하는 음 모가 빚어져서, 가장 고약한 종류의 유혈극이 연출될 것이 었다.

이 유혈극을 방지하는 수단으로 「독(毒)을 제하는데 독으 로 한다」는 방법을 쓰면 또 다른 종류의 유혈극이 연출이 될 것이었다.

어느 편으로라도 유혈극이요, 어느 편으로라도 혈족 상잔 의 참극이었다.

이 두 가지를 다 피하고 평온리에 무사할 도리는 없는가.

선왕(문종)도 적지 않게 성격이 비틀어진 분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백부 양녕대군만은 저어하고 양녕의 진언이면 약간 뜻과 상반되는 일이라도 승복하였다. 그러나 안평은 백부에 게까지도 불복할 뿐 아니라 반항하기까지도 사양치 않을 사 람이었다. 양녕 또한 입장이 입장이라, 위력으로까지 안평을 누르지 못한다.

여기 만약 안평을 정면으로 꾸짖고 호령할 사람이 있다하 면 그것은 수양 자기뿐이다. 친형이라는 지위로서 안평을 호령하려면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형에게 대하여 심복은 커녕 반항심을 품고 있는 안평이라, 그 호령에 복종치는 물 론 않을 것이요, 도리어 반대의 길로 벋기가 십상팔구요, 혹 은 딱 버티고 대항할는지도 알 수 없다. —이도 못할 노릇이 었다.

이도 못하고 저도 못하고, 그렇다고 또한 방임할 수도 없 고—안평의 문제는 과연 골치 쓰고 난처한 일이었다. 지금 임시적으로나 저쪽에서 손쓰지 못하도록 황보 인과 김 종서 의 아들을 이번 사행에 수원으로 데리고 가려고 마음먹었 다. 그 두 아들을 수양이 잡고 있을 동안은 아무 일도 생겨 나지 못할 것으로 임시의 안심은 얻을 수가 있겠지만 그 뒤 는 어찌하나.

三十[편집]

이튿날 입궐하여, 수양은 이번의 사행의 수원(隨員)으로 황 보 인의 아들 석(錫)과 김 종서의 아들 승규(承珪)를 자벽 (自?)하였다.

수양에게 뽑힌 두 사람의 아버지 인(仁)과 종서는 당황하여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고많은 청년 재사들 가운데서 자기네 두 사람의 아들을 골라낸 의외의 일에 놀란 것이었 다. 석이나 승규가 다 수양에게 특별히 사랑을 받는 사람이 라든가 혹은 가장 적임자라든가 한 바로 아닌데 왜 하필 이 두 사람을 골라내었는지, 알 수 없는 이 일에 딴 생각 품고 있던 두 늙은 대신은 가슴이 섬뜩하였다.

정사(正使)로 조선국왕의 친숙(叔)되는 수양대군 이유(李).

부사(副使)로는 공조판서 이 사철(工曹判書李思哲). 종사관 (從事官)으로는 집현교리 신 숙주(集賢校理申叔舟). 그 밖에 수행으로 황 보석, 김 승규 등이 결정되었다.

일행 인원이 작성된 뒤, 영의정 황보 인은 가슴이 떨리고 서늘하여 더 있을 수가 없어서 먼저 자기의 집으로 물러 나 왔다. 나올 때에 좌의정 김 종서에게 눈짓하여 뒤따라 나오 라는 뜻을 전하고……

인은 집으로 물러 나와서, 황황히 사랑으로 들어가면 시 청지기에게 분부하여 문객 겸인들도 사랑에 들게 하고, 김 종서만 오거든 들이라고 하여 두었다.

설레는 가슴으로 안절부절 코를 어루만지며 손을 비비며 기다릴 때에 (인에게는 무척이도 오래 기다린 것 같았다) 기 다리던 종서가 인의 집으로 왔다.

『대감. 어떻게 된 일이오?』

인사도 절차도 차릴 여유가 없이, 종서의 귀에 입을 갖다 대고 떨리는 작은 소리로 이 말부터 하였다.

『참……』

종서는 인보다는 좀 덜 당황하였다. 그러나 역시 낭패한 창백한 얼굴이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하잡니까?』

인이 겁에 띄어서 벌벌 떨며 하는 이 말에 대하여 종서는 그래도 좀 침착하였다—

『하지만 대감. 이 일이 뭐 꼭 수양대군이 눈치채고, 한 일 이라고 만이야 어떻게 생각하리까. 거저 함부로 뽑는 게 우 연히 그렇게 된 게 아닐까요?』

『글쎄올씨다. 그렇지만 왜 하필 우리 두 집안 아들을 ……』

『그게 글쎄 우연한 일이 아닐까요?』

『그러면야 오죽이나 좋으리까만—수양대군은 좀……』

알지 못할 위압력을 수양에게 느끼는 것이었다.

『절재(節齋—종서의 호), 난 뽑아 주시오.』

『뭘 말씀입니까?』

『늙마에 와석종신도 못할까보이다. 난─치사(致仕)하고 선 향에 돌아가 와석종신이나 할까보이다.』

『대감도, 그래 만약 수양대군이 눈치 챘다면 대감 치사하 신다고 와석종신이 될 듯 싶소이까?』

『그러니, 공연히 그런댔자 안평대군의 살이나 되는 일을 —』

『왜 안평의 일이어요? 우리 일이지. 안평이야말로 우리 살이에 노는 게 아닙니까? 하여간 대감. 일이 이렇게 된 이 상은 인제 뒷걸음질 못합니다. 대감 혼자서 빠져나가라고 누가 가만 둔답니까? 죽어도 같이 죽고 영화 봐도 함께 보 고—어딜 빠져요?』

작은 소리나마 마디마디 힘 주어 하는 이 말에 인은 한 순 간 눈을 치떠 종서를 보았다. 그리고 그 눈에서 튀어나오는 불길에 몸서리치며 곧 눈을 떨어뜨리었다.

진퇴유곡이었다. 수양이 득세하는 날에는 우리는 몰락을 피하기 위해서 수양을 제거합시다. 제거하려면 안평을 앞세 워야 합니다. 이 말에 끌려서 단순한 마음의 주인인 인은 종서와 동반하여 안평을 찾아다닌 것이었다. 수양의 억센 압력에는 인도 늘 내심 전전긍긍하던 바였다. 그러나 특별 히 수양과 원수진 일이 없으매, 굳이 배척할 생각까지는 없 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수양이 득세하면, 우리는 몰락이라 하는 말을 듣고 보니, 또한 그도 그럴 듯한 말이었다. 수양의 성격으로 보아 서 자기네 같은 노물들을 내쫓을 듯한 점도 부인 할 수 없 었다. 많은 식솔을 거느리고—한 포의서생에서 출발하여 영 영공공 오늘날의 지위와 부귀를 획득한 그는 또한 그만큼 부귀와 영화에 대한 동경과 애착이 강하였다. 마음은 약하 고 오직 착하였지만, 부귀에 연연한 그의 심리는, 유혹에 빠 지기가 쉬웠다. 잘못하다가는 부귀를 잃어버릴지도 모르겠 다 할 때에, 부귀를 놓치기 싫은 본능과 함께, 잃지 않을 방 도를 강구할 유혹이 생겨났다.

『안평과 접근하자.』

이것이 수양을 제거할 방도라 할 때에, 이 단순한 늙은 선 비는 그럴 듯이 들었다. 다만 안평과 접근하여 수양의 세력 을 꺾는 것이라 단순히 생각하였다.

한 번 두 번 종서와 동반하여 안평을 찾는 동안에, 인은 지금의 하려는 일이 단순히 안평을 수양보다 높이자는 것이 아니고, 더 다른 목적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발목이 잡혔는지라, 부득이 호인다운 미소를 연방 얼 굴에 띄워 가지고, 그들에게 추수하여 다른 뜻 없다는 점을 나타내기에 급급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 늘 일말의 불안은 느끼지 않지 못하 였다. 드러나기만 하면 구족이 멸망이라—이 위협감에 그는 늘 바늘방석에 앉은 듯한 불안을 느꼈다. 후회막급하였다.

일찍이 치사해 버렸으면 무난할 것을 지위에 연연하여 치사 하지 못했고, 그 위에 또 더 오래 영화를 누리려는 공연한 욕심을 냈다가, 지금은 발목 뽑으려야 뽑지 못할 굴함에 걸 리게 되었다.

수양대군이 수원을 자벽함에 있어서 자기의 아들과 김 종 서의 아들이 뽑힌 것이 우연한 일이라면 그 이상 다행한 일 은 없겠거니와 아까 수양이 두 수원을 지정하면서 적이 눈 을 구을려 자기와 및 김 종서를 한 번 둘러본 눈치는 심상 한 것이 아닌 것같이 보였다. 자기네 두 늙은이의 기색을 살피는 눈치로 보였다. 그 때의 수양의 눈에 자기는 몸서리 친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수양— 한편으로는 김 종서— 단지 노후를 안락히 보내자는 욕망 때문에 깊이 생각도 하 지 않고, 처신을 가볍게 하여 지금 도리어 노후에 커다란 위협을 느끼고 까딱하면 일신은커녕 일족이 몰락할지도 알 수 없는 위태로운 낭떠러지에 서게 되었다.

『절재, 이일을 어쩌면 좋겠오?』

인은 양손을 맞잡고 그 손을 안타까이 떨면서 신음하였다.

종서에게 대한 원망이 크게 일었다.

그러나 장본인인 종서는 비교적 평정하였다. 간이 인보다 컸다.

『대감도, 기위 이렇게 된 이상에야 어쩌겠습니까? 할 수 없는 일 아니오이까. 이렇게 된 이상은, 더 우리 일을 채어 야 할 겝니다. 안평께도 여쭙고—』

『그러니 우리 자식들이 수양대군의 손안에 들었으니.』

『그게 곤란해요. 그러니까, 세부득이 그 애들이 상국에 들 어갔다가 나올 때까지는 속수무책 거저 가만히 기다려야 느 끼지오.』

『아아! 이럴 줄 알었드면……』

『대감도 너무 노심치 마세요. 수양대군이 꼭 눈치챘다고 하는 배도 아니고, 거저 좀 가슴 선뜩한 일이 있을 뿐이니 까 하회를 기다려 보아야 할 겝니다……좀 있다가 안평께 좀 알현할까요?』

『어어, 싫습니다. 오늘은 싫습니다. 수양대군이 떠나시기 전에는 내 목을 베간대도 다시 안평대군께는 가지 못하겠오 이다.』

『허허허. 참 소심허시군. 그러니 도모지간(倒帽之諫)을 허 섰지요.』

종서는 인제는 당황한 기색이 아주 없어졌다. 그러고 인의 벌벌 떠는 모양을 도리어 조소하는 태도로 볼 수 있으리만 큼 평정하게 되었다.

『대감. 생은 이제 안평댁에 가 뵙겠는데 대감은 싫으서 요?』

『나는 싫소이다.』

『너무 염려 마세요. 무슨 일이 있오리까. 수양대군은 아직 우익이 없는 이라 기회를 봐서 우리가 먼저 손쓰면 수양인 들 날고기지 못하는 이상 속수무책입지요. 육진을 개척한 이 절재의 위력을 보십쇼. 대감은 평안히 누워 계시다가 굴 러 오는 복이나 한 덩어리 붙잡으세요. 허허허.』

인제는 평정을 회복한 종서는 이런 말까지 하였다. 그러나 인의 겁에 뜨인 얼굴에는 그래도 미소나 화기가 나타나지 않았다.

종서가 돌아갈 때도 인은 떨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서 종 서를 보낸 것이었다.

약한 사람은 원망이 많다. 인은, 자기가 마음 약하기 때문 에 유혹에 걸렸다기보다, 자기를 유혹한 사람에게 대한 원 망만 앞섰다. 김 종서의 유혹만 없었더면 자기는 본시부터 그다지 수양에게 원심도 없었으니까, 현재에 만족하고 있었 을 것을—가만있는 사람을 공연히 뚱겨 쳐서 죽을 구덩이에 빠지게 하였다고, 연해 혀를 차면서 분개하였다. 그러나 남 에게 발표할 수도 없고 하소연이나 통사정할 수도 없는—벙 어리 냉가슴이었다.

三十一[편집]

고(誥)와 면(冕)에 대한 사은사(謝恩使)로 연경에 가기로 결 정되고, 그 수원까지도 작정된 뒤에도 수양은 특별한 준비 라는 것의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라는 것도 따로이 없었다. 국가의 일에 대하여 는 늘 온갖 각도로써 온가 사물을 관찰하여 아무런 일에 다 닥칠지라도 거기 대처할 준비가 충분하였는지라 「사행(使 行)」이라고 따로이 별다른 마음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짐도 또한 별다른 것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떠나는 날을 기다리며 그날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에 고구 려와 고려 때의 강역을 좀 상고하여 보았다. 요동의 광막한 지역—본시 고구려의 강역이요, 그 뒤 고려가 선 뒤에도 그 강역을 회복하고자 여러 번 움직여 보았으며, 더욱이, 여말 (麗末)의 우왕(禑王)은 요동정벌의 대군까지 일으키려다가 실패하였고, 아조(我朝)에 들어서 아버님되는 세종대왕이 온 국력을 기울여서 육진을 개척하며, 야인 토벌에 주력한 것 도 이 고구려 구구의 회복을 도모하는 복선이었다. 명나라 를 상국으로 섬기는지라, 표면(현재는) 명나라의 강토인 요 동을 회복하련다는 눈치만은 보일 수가 없었으나, 북진(北 進)은 늘 게을리 하지 않았었고, 이 북진정책에 대하여 명나 라에서 항의를 하고 책망을 할지라도 그런 항의는 묵살하고 북진정책은 그치지 않았던 바이다. 이 지역에 대한 지식을 좀 얻어두기 위해서였다. 인정, 풍속, 기후 산물 등에 대한 지식이었다.

그런 것 밖에는 특별히 준비가 필요 없었다.

수원들이 결정된 날 저녁, 수양은 한 번 좌참한 허 후(左參 贊 許?)와 만났다. 일부러 허 후를 찾은 것이었다.

그 전날 어전에서 수양이 자청하여 연경행을 지원할 때에 허 후는 거기 대하여 반대하는 뜻을 나타내었다.

『나으리. 나으리가 가신다는 건 좋지 못한 줄 생각합니 다.』

허 후는 늙은 눈을 들어 수양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수양의 뜻에 대하여 반대하는 사람은 현재의 정부에는 없 었다. 모두 수양을 싫어하고 꺼리기는 하였지만 워낙 억세 고 위압력이 있는 위에 중실의 장로라는 지위를 가졌는지 라, 반대하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런데다가 일전 김 종서가 수양의 주먹에 된 피를 흘린 일까지 있어서 수양이 무슨 의 견을 말하면 모두들 유유낙낙하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허 후는 수양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대를 하였다. 수양은 이 뜻 안한 정면 반대에 눈을 허 후에게로 돌렸다. 하도 야위기 때문에 「수응재상(瘦膺宰相)」이라는 칭호를 듣던 아버지 (세종 때의 좌의정 허 조─許調)를 닮아서 싸리채같이 수척 한 허 후는, 또한 성격까지 아버지와 한 판으로 한 푼의 융 통성도 없는 사람이었다. 아버지 허 정승의 융통성 없는 성 격은 부처생활까지도 너무 엄격하고 규율적이어서, 세상에 서는 「허 정승은 음양 지도를 모르는 사람인 모양이라」는 소문까지 높아서 허정승으로 하여금, 「내가 음양을 모르면 후(?)와 눌(訥) (허정승의 아들들)은 어떻게 생겼겠느냐」하 였다는 일화까지 있는—그런 아버지의 아들이라, 역시 한 푼 의 융통성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껏 지내본 바로서, 허 후는 수양을 배척하고 멀리하려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던 허 후가 정면으로 반 대하므로, 수양은, 불쾌하다기보다도, 괘씸하게 보기보다도, 다만 의외로 생각하였다. 더구나 수양 자기를 배척하는 사 람이며 등진 사람들까지도 아무 딴 말이 없는데 허 후 혼자 서 반대하므로 더 기이하였다.

『왜—무엇이 좋지 못하오이까?』

허 후의 반대하는 말에 반문하는 수양의 음성은 고요한 편 이었다.

『네. 다를 이유가 아니라, 지금 국상이 어제의 일이고, 유 주(幼主)께오서 당국(當局)하신 이 때, 대신들도 아직 주상 전하께 익지 못하고, 전하 또 의지하고 의논하실 데 없으신 이런 때에, 종실의 어른이신 나으리께서 거증하서서, 좌우편 을 잘 융화시켰고 단합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오서 는 아직 신하들에게 생면이시고, 치국에 미숙하신 이 때, 나 으리 같으신 분이 안 계시면 군신간의 융화를 바라기 힘들 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이유로 나으리께서 나라를 떠나시 는 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수양이 섭정을 해야 한다. 적어도 군신간의 돌쩌 귀는 되어야 한다 하는 뜻이었다.

이 말이 수양에게는 고마웠다. 문종도 수양의 섭정은 커녕 섭정이 될쎄라 해서 겁을 냈고, 지금의 대신들은 더욱 더 그런 일이 생길까 기써서 방지하려는 이 때에, 이 정부에 있어서, 허 후 혼자서, 수양의 섭정을 바라며, 수양이 지금 이곳을 떠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기위 작정한 일이요, 더욱이, 수양은 이 기회에 그 땅에 가 서 선진국의 문물 제도를 견학하려는 심산이 있는지라, 가 기를 중지한다든가 할 수는 없었지만, 허 후의 말이 지극히 고마웠다. 그래서 허 후를 찾아서 한참 이야기라도 하여 보 고 싶은 생각이 난 갔다.

허 후는 여전히 싸리채같은 꼬장꼬장하고 융통성 없는 태 도로 수양을 맞았다.

『대감은 어제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이번 사행에는 내가 꼭 가야겠오이다.』

단 두 마디의 인사의 뒤에 수양은 이 말을 꺼냈다. 거기 대하여 후는, 역시 애교도 없고, 그렇다고 배척하는 태도도 아닌 표정이었다.

『나으리가 꼭 가신다는 데야 할 수는 없읍지만……』

『대감은 어떤 점이 걱정이 되십니까? 어떤 점이 근심이 되십니까?』

『…………』

『융화가 속히 안 되오리까?』

『글쎄올씨다. 전하께서 과히 연소하셔서 대신들을 어려워 하시어요.』

『대감, 나는 종인이라 한겹 막힌 데가 있기 때문에 대신 들의 생각이라든가 먹는 마음이라든가를 잘 모르는 데가 있 어요. 대감 아시는 대로 어디 말씀해 봐 주십쇼.』

『생일들 뭘 알리까마는, 전하께오서도 대신들을 어려워하 시는 모양이지만, 대신들도 역시 전하가 너무 연소하시니까, 어려워하는 것 같어요. 선대왕이며 영묘께 대해서는 좀 억 지의 계청이며 상소도 할 수가 있었지만, 금상께는 그걸 못 한단 말씀이지요. 전하 하도 연소하시니까, 무슨 계청할 일, 조를 일이 있어도 못하고 말어요.』

『흠!』

『전하께서도 또한 매한가지로, 무슨 분부하실 일이 계서 도 못하시는 모양이야요. 간간 보면 도리어 늙은내관들이 성지를 엿듣고, 승지(承旨)에게 전해서, 승지에게서 대신에 게로—이렇게 전지가 되는 일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군신간 에 의사의 소통이나 융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새도 보자 면 나으리께서 가운데 계신 덕에, 웃 뜻이 아래로 전해지고 아랫 뜻이 우에 달한 일이 비일비재가 아닙니까? 이런 때 에, 나으리 오래 멀리 가 계시면, 군신 의사 소통이 한 동안 끊어지면, 그 뒤간에는 새에 한 겹간이 막히게 되지 않으리 까. 생은 이렇게 생각되고, 그것이 근심됩니다그려.』

『참, 내 늘 어느 대관을 조용히 만나면 터놓고 물어보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오늘 마침 대감께 뵈니 생각납니다. 내 마음 터놓고 대감께 한두 마디 뭐 물어볼 일이 있는데 대답 해 주십시오.』

『무에오니까?』

『지금 삼공 중에 국가를 위해서 목숨이라도 안 아낄 사람 이 누구오니까?』

이 말에 허 후는 한참을 생각하였다.

『글쎄올씨다. 다 과히 늙었아와요. —사람 늙으면 영기가 꺾입니다.』

『지봉(芝峯)은—영상(領相)은 어떠리까? 사조 역사의—』

후는 또 한참 생각하였다—

『지봉도 늙었아와요. 소년시부터의 교우로 잘 아옵지만— 늙었아와요. 충의야 뉘게 지리까마는—』 한 뒤에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게다가 식솔이 많으와요.』

『절재(節齋)는? 좌상은?』

후는 또 한참 생각하고야 대답했다—

『절재는 교분이 엷어서 잘 모릅니다.』

대답을 피하려는 눈치였다. 수양이 뒤따라 다시 물었다—

『그래도 짐작이야 안 가리까. 어디 말씀해 보서요.』

후는 또 잠시 생각하였다—

『약간 탐욕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노인답지 않게 담력 은 아직 있지만. 함길도 절제사 적에도 황금을 즐긴다는 추 성이 들리더니, 근자에도, 늙인이답지 않게 야화(野花)라니 하는 야인(野人) 계집애 하나를 구해다 놓고, 말 듣지 않는 다고 밤 낮 성화시킨다고 폄들을 하나 봅디다.』

『우상(정본)은?』

『약간 경망합니다.』

『그러면 대감은?』

『가장 다겁(多怯)합니다.』

웃지도 않고 하는 대답이었다.

수양은 탄식하였다—

『아조(我朝)육십 년에 목숨을 아끼지 않을 충의의 대신 이 한 사람도 없담.』

『다 늙었아와요.』

『늙으면 충성도 늙으라는 대감의 의견이서요?』

이 말에 후는 당황하였다—

『아니올씨다. 천만에. 이런 늙은이들은 해골 묻을 땅이나 어서 구해야 합지요. 그러기에 나으리 같으신 분이 나서 주 서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부중에 노소 재상이 충성이 부족 한 배는 아닙지만, 용기는 줄었어요. 절재(종서)같은 이도 장년 때는 그렇게도 훌륭하고 비범하더니, 용기는 줄고—그 대신—』

말을 끊었다. 그러나 뒷말은 「탐욕만 생겼다」는 뜻으로 들을 수가 있었다.

수양은 머리를 숙였다. 허 후의 어제의 고마운 말에 사례 하려 왔던 바이지만, 이야기하는 동안에 차차 기분이 불쾌 한 편으로 기울어졌다.

늙어서 용기가 줄었다? 늙으면 혹은 용기도 줄리라. 그러 나 충성도 줄랴. 충성이 있으면 충성에 따르는 용기도 줄랴.

예로부터 순국(殉國)한 재상이 다 젊은이었더냐.

아니로다. 충성에 어찌 노약이 있으랴. 그러고 진실한 충성 에 어찌 목숨을 아끼랴.

요컨대 이 백성의 마음이 위축된 때문이다. 태조에서 시작 하여 정종, 태종의 대를 지나서 나라의 기초가 섬에 따라서 정부와 백성이 한결같이 안심하는 바람에 방심까지 하였다.

세종 재위 삼십 여 년간— 그 말년 수년간을 건강이 상하기 때문에 정사를 동궁께 맡겼다.

「유(儒)」의 한 길 밖에는 모르는 동궁이 더욱이 병약하기 때문에 심약하여, 나라를 북돋우려는 노력은 다 내던지고, 게으른 지도를 하였다.

이 동궁이 섭정을 한 수년과, 동궁이 즉위한 뒤 수년 동안 의 정치적 나타는 이 백성으로 하여금 용기 없는 백성으로 화하게 하였다.

무엇보다도 육진 개척의 위업을 이룩한 김 종서의 출장입 상(出將入相)하던 시절과 지금 단지 겁과 욕과 게다가 늙은 이답지 않게 색욕까지 겹쳐가지고 있는 모양을 비겨 보면 얼마나 위축되었는지 짐작갈 것이다.

큰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큰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지금 어린 임금이 위에 오른 이 때, 그냥 버려 두면 더욱 쇠퇴하여 갈 밖에는 없을 것이다. 아래로 떨어지려 하는 힘 은, 그 자리에 받아 멈추기만 하려 해도 힘들 것이다. 하물 며 도로 위로 올려 밀려 하면 엔간한 힘이 아니면 성공키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버려 두면 아주 떨어지고 말 것이니, 어떻게 해서든 도로 위로 올려 밀 방책을 강구해야 겠다.

여기 수양에게 있어서 가장 다행한 것은, 왕의 마음이 전 과 달라진 일이었다. 이전 세자시대부터 즉위 초까지는 수 양 자기를 두려워하고 꺼리고 피하려 하였다. 그런 때에야 수양이 아무리 좋은 말을 가지고 왕께 아뢴다 해도 아무 효 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양의 한결같은 정성이 통하여 이즈음은 왕도 수양을 꽤 믿고, 수양을 의뢰하고자 한다. 아 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는 왕으로서는, 혹은 당연한 결과인 지는 모르나, 수양에게 있어서는 천만 다행한 일이었다. 아 무리 수양이 좋은 의견을 가지고 왕께 좋은 일을 합시다고 한다 해도 왕이 수양을 싫어하고 그 말을 듣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왕은 차차 수양을 믿 어 온다.

수양은 현재는 단지 종실의 한 사람이라 하는 뿐이지 아무 명목도 없는 사람이라, 따라서 정치에 용훼할 자격도 권한 도 없다. 그러나 왕의 신임만 넉넉하게 얻으면 그런 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

문종이 동궁으로 참결서무(參決庶務)하는 수년간과 문종 등 극한 뒤 수년간을, 수양이 가슴에 품고도 시행하지 못한 가 지가지의 시정(施政)을 장차 마음대로 베풀게 될 날도 이르 겠지.

이 겁만 많고 자기 일신의 영화만 도모하려는 재상들—그것 만해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것이 과한 일이고, 사사에 방해만 되겠거늘 하물며, 그 위에 다른 꾀를 도모하는 형적 이 있는 것은 과하기도 너무 과하다.

『대감.』

수양은 잠시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다시 허 후를 찾았다.

『네?』

『지금 삼공은 다 치사하고 선향에 돌아가 노후를 평안히 보내는 게 좋을 것 같구려. 대감 의향은?』

『생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봉께는 흠 없는 새라 권고도 몇 번 해 보았지요. 지봉은 선향에 길게 누워도 부족이 없 는데……』

『절재도 그렇지.』

『절재는 조금 더 바래리다.』

『영상자리?』

『그러믄요.』

그의 공적으로 보아서 만년만 잘 지켰다면 영상자린들 무 엇이 과하랴.

수양은 탄식하였다. 빗나간 욕심.

三十二[편집]

내일이면 사은사(謝恩使)가 출발한다는 그 전 날, 왕은 대 궐 내전에서 몇 몇 종친을 청하여 곡연(曲宴)을 열었다. 수 양이 왕께 계청을 하여 열게 된 것이었다. 숙부가 먼길을 떠남에 정부에서 공식으로의 송별연은 있었지만 종실들끼리 탐탁하고 흠 없는 연회를 하여 보자는 표면 이유였다.

그러나 수양이 조카님께 계청하여 수양 자기게 대한 송별 연을 열게 한 것은, 이 작은 연회로써 가까운 종실들끼리 한 자리에 모여서 담소를 하여 좀 더 흠 없고 친근한 기분 을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아버님 세종이 생존한 동안은, 양녕, 효령, 성녕, 동의 숙행 (叔行)은 무론이요, 적서(摘庶) 합하여 이십 인이나 되는 형 제들이며, 서숙, 서사촌, 오촌들이 늘 대궐에 들어와서 세종 께 알현하며 종실끼리의 교분도 계속되었다.

아버님 떠나고 형님(문종) 등극한 뒤에는, 큰 돌쩌귀 빠지 기 때문에, 종친들도 입궐하는 돗수가 줄었다. 몸이 약하기 때문에 당신의 한 몸의 건사조차 귀찮은, 문종은, 종친들의 알현도 귀찮아서 반가와하지 않으니, 자연 종실들도 소원하 여 졌다. 양녕, 효령의 친숙이며, 형제들도 부득이 입궐해야 되는 날 밖에는 대궐을 피하였다.

어린 조카님이 등극하매, 한 층 더하여졌다. 그들은 종친부 나 대군청에까지 들어와서도 거기서만 시간을 보내지, 왕께 배알하는 일은 좀체 없었다. 수양 단 혼자서 늘 왕께 뵙고 하였다.

넓다란 대궐을 단 혼자서 지키는 어린 조카님—아직 어리기 때문에 젊은 궁녀들은 기뻐할 줄도 모르고, 늙은 궁녀들은 패거리 패거리가 생겨서 자기네들의 경쟁에 몰두하기 때문 에, 역시 왕에게는 귀찮고 시끄러운 존재였고, 대신 재상들 은 무시무시하고 어렵기만 하고 이런 고적한 환경이 수양에 게는 눈물겨웠다. 이즈음 겨우 수양 자기에게 대하여 차차 신뢰하여 오는 어린 조카님—이분을 남겨두고 한동안 멀리 떠나 있어야 할 수양은, 자기가 없는 동안 다른 종친들이라 도 자주 왕께 뵈어서 왕을 위로 드리도록 그 실마리를 틀 기회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좌석에서 안평에게

「조카님을 보호하는 책임」을 좀 지을 수가 있으면 그것까 지도 좀 하여보고 싶었다.

양녕은 수양과 동반하여 가장 먼저 왔다. 효령은 몸이 불 편하여 오지 못하였다. 수양, 안평, 금성, 이 삼형제와, 매부 영양위 정 종—이렇게 단 여섯(왕까지)의 아주 탐탁한 잔치 였다.

세종이 사랑하는 손자님(지금의 왕)을 늘 붙안고 거닐던— 유서(由緖)깊은 자미당(紫薇堂)에서 잔치를 하기로 하였다.

술을 즐겨하는 양녕을 위하여서는 특별히 주효도 있었다.

비록 인원은 단 여섯에 지나지 못하지만, 세종대왕 승하한 뒤로는, 종친들이 (화목하기 위해서) 이렇게 모여본 일은, 첫 번이었다. 양녕도 늙은 눈에 눈물까지 고여 가지고 기뻐 하였다.

『전하. 영묘(세종) 빈천하신 이래 처음이올씨다. 오무 바 쁜 몸이니, 자연 소원도 해지거니와, 성인(聖代)가신 뒤에는 큰 돌쩌귀 빠지기 때문에 자연히 헤지게됩니다그려.』

—이런 말을 하였다.

왕도 이 잔치는 가슴에 무드기 뻗치는 듯 기쁨을 느꼈다.

수양은 거진 매일 보지만, 조부 양녕이며, 숙 안평 금성 등 은 꽤 여러 날일 뿐더러, 이 여러 웃사람들이 한자리에 모 이고 그 위에 화기 애애한 기분으로 모인 것이 진실로 기꺼 웠다.

『조부님. 숙부님. 지금도 생각나요. 한 옛날 일이지만, 영 묘께서 어린 나를 안고 이 창란(窓欄)에 기대어서 머리를 쓸 어 주시며 용비어천가를 들려주시던 그 기억이—』

『전하, 신도 생각납니다. (수양이 끼어 들었다) 그 시절에 한창 장난꾸러기던 신도 매일 입궐해서 영묘께 귀찮게 굴고 또 현묘(顯廟)께—』

수양은 말을 끊었다. 끊었다가 숨을 한 번 돌리고 계속하 였다—

『현묘(顯廟)며 안평이며 임영(臨瀛)이며, 이 자미당 앞에 서 격구(擊毬)를 놀고 있노라면 영묘께서는 그때의 강보의 전하를 안으시고 구경을 하시며, 상을 주시고—』

『참 (양녕은 눈물어린 눈으로 안평을 보면서) 안평은 격구 가 서툴기도 하더니.』

『현묘께서도 서투셨지요.』

수양도 웃으며 안평을 보았다. 이런 몇 마디의 이야기가 왕래할 동안, 아직 잠잠히 있던 안평이 비로소 끼어들었다—

『격구를 점잖지 못하게 누가 합니까?』

『숙부도. 왜 격구가 점잖질 못해요.』

『그게 뭐오니까. 상스럽게 달리고 뛰고 넘어지고—』

『그럼 숙부께는 뭐이 점잖습니까?』

『독서, 영시—이런 일이 군자의 할 일이옵지요.』

『유희로는?』

『유희로는—바둑, 거문고顯廟)지요.』

안평의 본시의 성질이 또, 나오려는 것을 본 수양은 화두 를 돌리기 위해서 끼어 들었다—

『참, 안평의 탄금은 유명합니다. 현대의 백결(百結)—신라 때의 유명한 탄금가—이라고 명성이 자자합니다. 어디, 안평, 한 번 성청에게도 들리거니와 내 길 떠나는데 송별곡 한 곡 못 뜯어 줄까?』

안평은 잠깐 형을 보고 입을 비꼬아 웃었다. 어린애가 아 니고 그런 칭찬에 넣겠느냐는 뜻인 듯이.

『참, 숙부, 한 번 들려 주서요.』

『신이 뭐이 잘하는 게 있으리까. 오히려 형님의 탄궁(弓) 소리가 더 훌륭할 게올씨다.』

『이 사람. 그리 비싸게 그러지 말구. 전하께서도 소청이시 구, 나도 소원이니, 한 곡조 듣세.』

『…………』

『백부님 비파가 또한 안평의 거문고에 못지 않게 항간에 소문이 높습니다. 백부님, 비파 한 곡조, 안평의 거문고와 아울러.』

『영양위의 소고(小鼓)가 또한—』

—가장 친애한 매부 영양을 자랑하고 싶은 왕은 영양의 소 고를 천하였다.

『금성(錦城)의 생(笙)도 또—』

—양녕의 천이었다. 왕도 소년다이 만면에 기쁜 기색이 넘 쳤다.

『나도, 저(笛)는 간신히 율이나 아는걸요.』

『이러다 보니까 신(수양) 혼자서 풍류는 아주 어둡습니다 그려.』

『숙부의 경(磬)은 고금족보라고 영묘께서 늘 말씀하시던 일이 있는데 천만에—』

—수양이 겸손에 왕이 수양의 편을 들었다.

양녕도 노인답지 않은 풍부한 얼굴에 웃음을 가득히 나타 내었다.

『전하. 우리 종중 전부가 풍류지인이올씨다. 오늘 수양을 먼길 떠나보내는 이 자리에서 수양의 길을 축복해서 모두 풍류를 울려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십시다.』

이리하여 내관에게 명하여 온갖 악기를 자미당으로 가져오 게 하였다. 세종이 박 연(朴?)을 지휘하여 제정한 악기들.

질탕하고 유쾌한 풍류의 한 장면이 지났다. 늙은이로부터 어린이까지가 모두, 소년 같은 마음으로, 이 풍류를 즐겼다.

안평은 처음에는 그다지 냅더지지 않는 기색으로 거문고를 들었지만, 일 곡, 이 곡, 지나가는 동안에 그도 드디어 흥이 난 모양으로, 이마에 핏대 줄을 세워 가지고 열 있게 뜯었다.

풍류 연주는 끝이 났다.

아까 초벌 젓가락을 대었던 상은 풍류 때에 걷어 치웠고, 다시 음식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커다란 교잣상만 한 상에 임금 이하 여섯이 둘러앉아서 음식을 나누게 교자 하나 만 이었다.

『조부님. 조부님을 보시고 음식을 함께 한다는 것은— 내 생후 처음인 듯싶습니다. 많이 잡수서요.』

『참 전하께 배식하는 건 처음이올씨다. 저(笛)는 기음(氣 音)이오라 허하시리다. 많이 진어하서요.』

사실 저를 부느라고 용안에 올랐던 도홍색 핏기는 아직 사 라지지 않았다.

『숙부도 명일 떠나시면 한동안 우리 나라 음식은 못 대하 실 테니 많이 잡수서요.』

『그릇을 부시오리다.』

『안평, 금성 양숙(兩叔)도, 영양(寧陽) 너도.』

수라를 이렇듯 흥성스럽게 유쾌하게 받기는 왕의 생후 처 음이었다. 진실로 유쾌하였다. 도홍색의 소년다운 용안에는, 희열이 흐르고 넘쳤다.

모시는 환관들의 자기네끼리의 이야기를 엿들은 바에 의지 하면 저 민간에서는 오촌 육촌(친척의)은커녕 구촌 십촌까지 도, 한 집에서 살며, (적어도 조석으로 서로 만나며) 친근히 지낸다 하는데, 왕실이라는 데는 어떤 까닭으로, 형제가 벌 써 소원해지고, 삼촌 사촌이 되면 벌써 남과 같이 되는가.

신변이 고적하기 때문에 사람이 그립고 더욱이 일가친척이 그리운 왕은, 민간의 그 제도가 무척이도 그리웠다.

이렇듯 일가친척이 함께 즐기고 한 상에서 음식을 나누며 담소하는 것은 오죽 유쾌한 일인가. 왕실은 어찌하여 이렇 게 지내면 안 되는가. 당신 즉위한 이래, 종친이라고는 수양 숙 한 사람과, 인척으로 매부되는 영양위만이 늘 들어오는 뿐, 다른 종친들은 (특별한 일이 있기 전에는) 좀체 가까이 나오지 않으며, 수양이 가까이 오는 것조차 「분경」이라 무엇이라 하여 정부에서 말썽을 부리며, 영양은 마치 못 볼 사람들을 보는 것 같이 눈치를 보아가면서 만나야 하니 무 슨 까닭인가.

『조부님. 오늘 이렇게 조부님이며 제숙과 한 상에서 담소 를 하니 참 기뻐요. 종종 이렇게 대할 기회가 있으면……』

『황송이옵니다.』

오늘의 이 잔치는 이런 기분이 생기게 하기 위하여 왕께 청하여 열었던 바라, 수양은 여기서 알선하는 지휘에서야 되게 되었다.

『백부님. 참 저도 여기 대해서 늘 생각하고 했는데, 전하 께오서 오죽이나 적료하시겠습니까? 백부님도 그러하섰겠지 만 저희네 형제로 말씀해도 소년 때에는 양친이 계시고 형 제가 수두룩해서 적적한 것도 모를뿐더러 영묘께서 만날 부 르시고 배우(配?) 영입하시기까지는 이야기 벗까지도 없으시 니 오죽 적적하시겠습니까. 백부님 노체에 피곤두 하시겠지 만 우리 전하를 위해서 좀 틈내 주서요.』

『전하께서만 용납하시면 신은 내일부터라도 상참하리 다.』

『안평 자네, 백부님은 노체에 피곤도 하시겠지만 자네는 청춘에 또 가장 한가한 신분이야. 담당정이나 무이정사를 비어두고라도 자구 참내하면 어떤가.』

아까의 유쾌한 기분의 탓일 것이다. 안평도 비교적 순순히 그러기를 약속하였다. 금성이며 영양에게도 같은 일을 부탁 하였다. 모두들 순순히 그러기를 약속하였다.

저녁도 모두 대궐에서 함께 하였다.

저녁 뒤에는 쌍륙을 내다놓고 편을 갈라 가지고 경기까지 하였다.

임금까지 섞이어서 저녁을 한 상에서 하고 쌍륙같은 경기 까지 한다는 것은, 이씨 개국이래 처음 있는 일일 것이었다.

조손(祖孫) 군신(君臣)이 여섯 귀인들은 세종대왕을 증측으 로 한 일가로서 한 자리에 모여서 한 저녁을 유쾌하게 보냈 다. 그리고 이 저녁의 유쾌함을 맛보았기 때문에 이 뒤에도 이런 희합을 가끔 하자고 의논이 나서, 그렇게 하자고 의견 이 합하였다.

밤늦게 왕께 하직하고 대궐 밖에 나와서 백부께도 하직하 고 아우들이며 영양위와도 작별하고 초헌(招軒)에 늪이 앉아 서 집으로 향하는 동안 수양은 근래에 맛보지 못한 큰 희열 을 느꼈다. 아까 대궐에서 유쾌히 지낸 그 기분의 여력이라 기보다 또는 왕께 매우 유쾌한 기분을 드렸다는 그 생각의 기쁨보다, 안평의 태도가 매우 순순한 것이 가장 기뻤다. 안 평은 처음은 한참 뾰로통해 있었지만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 과 기분이 넉넉히 맞도록 융화가 되었다.

안평이 항상 수양 자기에게 적의를 품고, 그 위에 근자에 는 김 종서 등과 접근한다는 일 때문에 내심 매우 불쾌하였 고 기분 나빠서 수양도 차차 안평에게 대하여 좋지 않은 생 각이 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런 생각은 좋지 않은 생각이라 고 수양은 늘 스스로 자기를 꾸짖고 스스로 불쾌히 여기는 바다.

오늘 안평을 그 잔치에 오게 한 것은, 안평에게 어린 조카 님 보호의 책임의 일부를 맡겨서 안평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의 양심을 불러일으키게—적어도 그렇게 되면 다행이라 하는 생각으로 오게 한 것이지, 안평이 그렇게까지 융화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바였다.

그러나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해보니 한 조상의 후손이라, 예기하지 않았던 융화의 싹이 보인 것이었다.

안평의 태도가 이만큼 연화되었으면, 안평에게 대하여 근 심할 필요는 없어졌다. 이 위에 오늘의 약속대로 자주 대궐 에 들어오면 어린 조카님께 대한 동정심도 더 일어나겠지.

그렇게 되면 더욱 더 호전할 것이다.

여기서라도 만약 안평의 뒤에서 부채질하는 사람이 있다면 줏대 약한 안평은 또 다시 어디로 기울은지 알 수 없지만 부채질할 사람도 수양이 연경에서 돌아오기까지는 수수방관 할 밖에는 도리가 없을 형편이라,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적어 도 한 동안은) 푹 마음을 놓을 수가 있을 것이다.

가벼운 기운으로 수양은 자기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사은사의 일행은 성대한 송별을 받으면서 연경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가을 하늘 맑게 개인 날……

三十三[편집]

사신의 일행은 평양에서 사흘을 지낼 뿐이지 그 밖의 지방 에서는 밤만 지나서는, 다시 길을 재촉하고 하였다. 이 땅의 특수한 청명한 일기는 연일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어서 상쾌한 길을 계속할 수가 있었다.

정사(正使) 수양은 부사보다도 서장관 신 숙주를 신임하여 길을 갈 때나 또는 저사에 묵을 때나 언제든 자기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이 청년학사 신 숙주의 정밀하고도 풍부한 지식은 수양에는 귀엽고 기특할뿐더러 여러 가지로 수양을 고문에 대할 수가 있었다.

더욱이 압록강을 건너서서 다른 땅에 들어서면서는 숙주가 더 필요하였다.

옛날 정 도전(鄭道傳)이 태조의 분부로서 고려사(高麗史)를 편찬할 때에, 고려사를 전연한 물건으로 만들었다. 고려라는 나라를 둘러엎고 생긴 이씨조선인지라, 고려사를 나쁘게만 고칠 필요를 느낀 것이었다.

그 뒤 세종 때에 당시의 예문제학(藝文提學)이던 정 인지 (鄭麟趾)에게 명하여 또 고려사를 편찬하였다. 정 도전에 의 하여 한 번 꺾인 고려사는 정 인지에게서 재차 꺾이어 아주 다른 역사가 되어 버렸다.

그 때, 신 숙주는 정인지의 아래서 정 인지에게 협력하였 다. 따라서 고려의 정원초기(政院草記)를 상세히 열독할 수 가 있었는지라 개조되지 않은 고려의 역사를 알 것이었다.

머리 총명하고 기억력 좋기로 집현전의 여러 재사 중에도 가장 빼난 신 숙주라 그 중요한 것은 그냥 기억에 남아 있 을 것이었다.

옛날 고구려의 터요 그 뒤 고려도 늘 넘겨다보던 터인 요 동을 통과함에 그 때의 사적을 알 필요가, 있었다. 역사의 기록은 정 인지 이후에는 불살라 없어지고 지금은, 단지 사 람의 머릿속에만 남아 있는 사실이라 신 숙주의 머리가 필 요하였다.

압록강을 건너서면 명나라 땅. 외국의 첫날 저녁을 진강부 (鎭江府)에서 지내기로 되었다.

평양서부터 배행하던 역리며 선친 관속, 의주, 용만(義州龍 灣)의 통인이며 관기(官妓)등은 용만의 나룻머리에서 차례로 하직하였다. 그리고 사신 일행의 인마(人馬)며 방물(方物)등 은 다섯 척의 배에 분승하여 강을 건넜다.

본시 배에는 그 첫배에는 정사와 표자문(表咨文)과 수역(首 譯)과 및 그 대솔(帶率)이 함께 오르고 다음 배에 부사와 서 장관이며 그 대솔이 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양은 서장 관 신 숙주를 자기와 한 배에 오르게 하였다.

이곳의 물살은 여간 세차지 않았다. 사람들이 배에 오르고 사공이 첫 삿대로 배를 떼어놓은 다음 순간은 배는 벌써 언 덕에서 멀리 떨어져, 언덕에서 하직하던 무리는 왼편으로 전전하여 순간순간 차차 작아가며, 아득하여간다. 굴강한 사 공들의 조종에도 불구하고, 배는 물살이 가자는 대로 달음 질친다. 저편에서 뗏목(筏)이 흘러오는가 하면 그 뗏목은 어 느덧 이 배의 곁을 지나서 아래쪽으로 쏜살같이 내려가고 한다. 벌부(筏夫)들의 입은 옷이 벌써 딴나라였다.

『벌써 이국(異國)일세 그려.』

수양은 (물소리를 누를만한) 큰 소리로 숙주에게 이렇게 말 하였다.

『네이. 연년이 더 이국화해 갑니다.』

『전에는 지금과 달랐는가?』

『소인이 세묘의 분부로 언문의 음운(音韻)을 상고합고저 황 한림(黃翰林—名瓚)을 심양(瀋陽—奉天)에 찾어다녀올 때 만 해도, 심양까지도 아직 고려 유속(遺俗)이 적잖게 남어 있더이다.』

『흠. 어떤 것이?』

『말—언어로 말씀할지라도 우리 나라 평안도 방언과 요동 토민들의 말은 같은 자가 많었읍니다. 아주 같은 것도 비일 비재옵고.』

『흠.』

『풍속, 문물, 제도—시골에 가면 외국이 아니고 우리 나라 시골이나 아닌가고 실수하기도 쉽더니요.』

『그때도 그랬으면, 국초에는 더 같었겠구먼.』

『그렇구 말굽쇼. 여사(麗史)를 보자면 옛날 고구려가 당나 라에게 당한 뒤에 고구려의 구신(舊臣) 대씨(大氏)가 고구려 땅에서 고구려 백성들을 거느리고 발해(勃海)국을 세우지 않 았습니까? 그 때 발해국의 영토는 압록강 이북만이었는데 압록강 이남도 역시 고구려의 옛 터라 백성들은 같은 백성 이니까 피아의 교류(彼我交流)는 한 나라나 일반이었읍니다 그려. 그러다가 발해는 요(遼)에게 망하자, 같은 연간에, 왕 씨의 고려국이 압록강 이남에 생겨났읍니다. 그렇게 되니까, 없어진 나라 발해국의 유민들은 혹은 새 나라 고려국에 와 서 붙고 혹은 요국에 가서 붙었지만 본시 같은 백성들이니 까, 백성끼리의 교류는 그냥 끊치지 않았었어요.

왕씨의 고려국은 스스로 고구려의 후신이라고 자칭하느니 만치, 옛날 고구려의 땅이던 요동까지를 고려의 영토로 삼 고 싶었고 요국에서는 또 자기네가 발해 국을 삼키고 발해 의 주인이 되었으니까 발해의 옛터는 자기네 것이라고 버티 고, 이러는 동안에 사실 왕권(王權)은 고려의 왕권도 발해 옛터에 및지 못하고 요국의 왕권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발혜 국의 옛터인 요동 땅이며, 여진(女眞)은 아무의 왕화도 믿지 못하고 백성들끼리 지방지방의 추장의 아래서 살아 왔겠지 요. 그러니까 고구려의 백성은 그냥 고구려의 유민으로 요 동, 여진 땅에 남아 있고 그냥 교류는 계속됩죠.

그 뒤 요국도 망하고 원나라이 선 뒤에 원나라에서는 다른 정책을 썼습니다. 즉 원나라이 중원까지 들어가서 한족(漢 族)의 주인이 되면서, 원나라 토종 몽고인을 요동이며 중원 으로 옮기고 한족들을 많이 요동에 옮겨서 땅은 그냥 요동 대로 있으되 그 땅에 사는 백성은, 요동의 본토인인 고구려 족이며, 한족이며, 여진족이며 뒤섞어 놓았읍니다.

이렇게 한 삼 백년 지나는 동안 관리며 상류급의 언어 풍 습이 따로 생기고, 백성들의 언어 풍습으로는 그 여러 가지 종속의 혼합물이 생겨났어요. 그런데 이곳 본토인 이 고구 려 후인이니만치 고구려 풍이 가장 많이 있었지요.

그러다가 원나라가 한족에게 도로 쫓기고 명나라가 생기 자, 명나라는 요동은 본시 원나라 영토라 해서 철령에 책 (寒)을 세우고 피아의 교류를 아주 엄금해 버렸읍니다그려.

그 때 우리 나라에서도 아조(我朝)가 용흥(龍興)배우는데, 아조는 여진의 옛터에서 용흥했으므로 여진 땅(함경도)은 차 마 버리지 못할 땅이올씨다. 그 고려 오백 년 동안에는 고 려는 고구려의 후신이라 자임하면서도 고구려이 옛터는커녕 압록강까지도 왕권이 및지 못했어요. 힘이 모자랐습지요. 그 것을 세묘 삼십 년의 노력으로 동으로는 두만강 건너의 야 인의 촌까지, 서로는 압록강까지 우리 땅으로 만들어는 놓 았읍니다마는 강대하던 고구려의 옛터에 비기자면 오분의 일도 못 되옵는 가련한 형세올씨다. 세모께서 놀라우신 지 략으로 국토를 확장하오시고 두만 압록 양대강까지를 우리 땅으로 만들자, 명나라에서는 겁을 더 내서 국경의 방알을 더욱 엄중히 하고 피아 교류를 더 엄중히 막기 때문에, 우 리 나라는 우리 나라 그대로 있거니와, 압록강 건너는 더 한화(漢化)해서 풍습, 언어, 최근 십 년간에도 얼마나 더 변 하였는지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요란한 물결 소리를 누르기 위하여 이맛관지에 핏댓줄을 세워 가지고 하는 이 말을 수양은 머리를 끄덕이며 들었다.

숙주의 그 논지(論旨)에 감복했다기보다 그 기개에 감복하였다.

집현전 학사요 따라서 유제자(儒弟子)인 숙주가 명나라의 처분을 부당하게 생각하는 것은 희귀한 일이었다. 승당존명 (崇唐尊明)사상으로 빚어 놓은 듯한 유생들 가운데서 이런 생각을 품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과연 희귀한 일이었다.

일찍이 세종이 언문을 창제하고자 할 때에 온 사림(士林)에 서는 얼마나 반대를 하였던가. 합사진계, 내지 항소까지 하 여 그 불가함을 극론하였었다. 「성인이 끼져주신 글자가 있는데 언문을 만든다는 것은 무슨 일이오니까」「선왕의 제를 무시한다는 것은 웬 일이오니까」 굉장한 반대성 가운 데서도, 세종은 이 반대성을 무시하고 언문 창제를 강행하 였다.

이 분부를 신 숙주와 성 삼문, 최 항등에게 내렸다. 왕명보 다도 사문(斯文)을 중히 여기고, 국가를 위해서는 한 손톱을 상하기를 피하나 사무에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 유인들이라, 성인의 글 아닌 언문 따위를 제작하는 것은 아무리 왕명일 지라도 거절할 것이다. 청년 명사인 신 숙주, 성 삼문 등이 라(왕명이라도)거역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그러나 이 분부를 광명으로 알고 받았다. 선배며 친구들의 욕설 비난을 무릅 쓰고 봉행하고, 더욱이 제 가진 바의 지식 재주를 경주하여, 어명에 봉답하였다. 이만한 견식이 있겠기에 세종도 이 청 년들을 골라서 분부한 것이었고, 이 청년학도들도 이것이 옳은 일이라는 신념이 있었기에, 선배, 부형, 친구들의 비난 을 무릅쓰고, 제재지를 다하여 사문의 외도를 감행한 것이 었다. 이번 수양이 사신으로 떠남에 임하여, 하고많은 재사 들 가운데서 신 숙주를 골라낸 것도 또한 이만한 견식을 크 게 보기 때문이었다.

한(漢)을 숭상하고 당(唐)을 존신하는 이 땅의 학자들은, 한당(漢唐)을 전지전능으로 알고 스스로 비굴하고 스스로 자 하한다. 지금의 요동이 예전 고구려의 땅이라 하면 그런 참 람한 말이 어디 있느냐, 성을 내고, 당태종이 고구려인 양만 춘의 살에 눈을 잃었다 하면 그런 불경한 말이 어디 있느냐 펄펄 뛰며, 을지문덕이 수양제를 책망하였다 하면 미친 사 람이라 욕하며, 고구려의 패수(浿水)를 평안도 평양에서 찾 으려 하며—요컨대 조선이라 하는 땅은 압록강과 두만강 이 남에 있는 반도에 한한 것으로 알고 그 너머 광대한 요동 여진등지가 다 고구려라는 것을 상상도 못한다.

그런 무리들 가운데, 신 숙주라 하는 딴 종자가 있는 것이 었다. 대담하게도 명나라를 비평하고 고구려의 응대를 찬송 하는 것이었다.

수양은, 자기가 종사관을 뽑는데 결코 잘못 뽑지 않았다고 스스로 믿었다.

『고서의 평양 혹은 패수(浿水)가 무론 지금 평안도의 평양 이며 대동강은 아닌 모양인데, 그게 어딜까?』

『글쎄올씨다. 그 점을 소인도 늘 생각해 보는데, 혹은 이 렇지 않을까 생각되어요. 즉, 평양이라, 패수라 하는 건, 어 느 일정한 땅, 일정한 강을 일컬음이 아니고, 도회와 거기 달린 강을 평양이라 패수라 함이 아닐까요. 옛날 주(周)에서 기씨(箕氏)를 봉해서 평양에 도읍했다는 건, 요양 근처의 평 양이 아닐까요. 광녕현(廣寧縣)에 기자의 묘(廟)가 있고 소 상(塑像)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거기가 옛날의 평양이 아닐 까요. 그 뒤 기씨는 연인(燕人) 위씨(衛氏)에게 가운데를—본 국과의 가운데를 끊겨서 동으로 쫓겨가는 길에 한동안 자리 잡고 하는 데마다 거기를 도읍지로 쓰고 했는데, 그 한동안 씩 닻준 곳마다 거기를 평양이라 일컫고, 거기 있는 강을 패수(浿水)라 일컫고 한 게 아닐까요? 평양은 일정한 곳이 아니라 기씨가 닻주고 한데가 다 평양이 아닐까요? 그 뒤 한(漢)에서 사군을 둘 때는 기씨가 마지막 자리잡았던 평양 을 그냥 답습해서 지금의 평양이 마지막 평양으로 그 칭호 가 지금까지 그냥 씨어오는 것이 아닐까요? 한의 사군도 고 구려에게 망하고, 고구려는 도읍지를 국내성(國內城)에서 환 도성(丸都城)으로, 그 뒤 장안(長安)으로 평양으로 여러 번 옮겼는데, 마지막 고구려가 옮겼던 평양이 지금의 평양이고 그 전의 평양은, 요동 근처의 어디라고 소인은 그렇게 생각 되어요.』

『옳으이. 나도 늘 그렇게 생각되어.』

『동사(東史)를 알려면 고구려 역사를 알어야겠는데 고구려 문헌은 당장 이 적(唐將李笛)이 한, 수, 당, (漢隋唐)의 참패 기(慘敗記)를 없이하기 위해서 통 불사라 버렸으니 분한 노 릇이어요. 한토에 남아 있는 한인의 기록으로 겨우 만 분 일의 면영이나 엿볼 뿐인데 한인의 기록에도 숨기지 못한 참패사 뿐인데 한인의 기록에도 숨기지 못한 참패사 뿐이 니, 실상은 얼마나 창피하고 참담한 것이었을지, 참 궁금해 요. 하여간 몇 나라이 고구려에게 망하고 또 망하고 해서 칠백 년간에 수 없는 나라이 차례로 망하고 당나라 때, 당 나라도 당태종의 강성으로도 역시 참패에 참패를 거듭하고 고종(高宗)에게 정려(征麗)의 유언을 하고 떠나고, 고종도 원정을 거듭하다 못해 마지막에 신라와 연합해 가지고야 겨 우 떨하지 않었읍니까. 그 한족의 칠백 년간의 창피한 역사 를 감추기 위해서 고구려 문적이라는 문적은 통 불사라 버 렸읍니다그려.』

『또 김 부식(金富軾)이, 삼국사 찬술한 김 부식이는 신라 를 추켜세우기 위해서 고구려의 웅대하던 점은 다 제거해 버리고 고구려의 숭한 점만 고르고 지어내고 해서 역사를 편찬했으니 소인의 행사입지요. 더욱이 한인에게 꺼리어서 한서에 있는 일까지도 말살해 버렸읍니다그려.』

『학이재(學易齋)도 후인에게 칭찬 못 받으리.』

숙주는 머리를 숙였다.

『지당한 말씀이올씨다. 소인도 고려사 편수에 약간 참여 했읍거니와 아조(我朝) 용흥은 천명이로라, 선조(先朝)를 욕 한다고 아조가 더 훌륭할 배도 아니고 선조를 높였다고 아 조에 불리할 배도 아니온데 학이재대감 굳이 고집을 해서, 선조의 사실을 곡필하고 더욱이 선사(先史)에 「조(祖)」라

「종(宗)」이라, 혹은, 조, 칙, 짐, 폐하(詔勅朕陛下)등을 짐 칭이라 해서 죄 왕이라, 교라, 여, 혹은 전하(王, 敎, 余, 殿 下)등으로 고치는 등 마땅치 못한 데가 많습니다.』

『재승덕, 재주가 과해.』

『…………』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배는 대안(對岸)에 이르러 무성한 갈 밭 틈으로 배의 머리를 디밀었다.

『격강이 천리라, 만리 타향이라 강하나 건너서 남의 나라 에 왔으니 일만 일 천리를 온 셈인가.』

돌아보니 부사의 배는 꽤 하류까지 흘러 내려가서 그 근처 의 물에 대려고 삿대질들을 하는 모양이었다.

어디서 뛰어 나오는지 몇 명의 야인(野人)이 이 배를 향하 여 무에라고 지껄이며 달려온다. 이 배에서 사람들을 물의 마른땅까지 업어다 주고 삯전을 얻으려는 토인들이었다.

여기서 내리면 명나라 관인들에게 수검(搜檢)을 받아야 한 다. 사람과 말의 적(籍)이며, 성명, 주소, 연령, 수염의 유무, 체격, 키꼴 등을 교열하고 소지품(所持品)의 품목이며 수량 등을 조사하여, 금제품이나 남월을 취체하고 겸하여 국경의 경계를 하는 것이다.

수양 이하는 토민의 등에 업히어 배에서 내려서 명나라 관 원의 둔소의 앞을 지나서 완전히 명나라 땅에 발을 들여놓 았다.

三十四[편집]

시월의 상쾌한 대기(大氣)를 즐기면서 연경(燕京)으로 연경 으로 길을 차는 사신을 일행.

정사(正使) 수양(首陽)은 이 짧지 않은 전 도정을, 서장관 (書狀官) 신 숙주(申叔舟)와 침식 기거를 함께 하였다.

『신서장(書狀).』

『신서장.』

무슨 일을 당하건 어떤 일을 만나건, 반드시 신 숙주를 찾 았다.

수양은 이 길에서, 신 숙주의 위인에 흠빡 반하였다. 숙주 의 총명함, 슬기로움, 명민함, 내지 그의 강기(强記)에만 반 할 뿐 아니라, 숙주의 품고 있는 사상이며 정치적 견해에, 반하였다.

숙주는 그 때의 유생이며 학자들이 품고 있는 공통적 사상 인, 「무조건 사대주의자」「무조건 명나라(明)숭배자」가 아니었다. 정치적 현상으로 현재 명나라는 상국이요 조선은 그 한 변방이라 제도가 그렇게 되었으니 고(誥)를 받고 사례 를 하며, 이 나라에 무슨 일이 있으면 저 나라에 품하고 하 기는 하지만, 이것은 단지 한낱 국교상의 의식에 지나지 못 하지 저 나라의 윤허가 없으면 이 땅의 자의로는 아무 일도 못한다는 유생들의 공통적 사상과는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사상을 품은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또한 그는 진서(眞書)가 아닌 글을 연구하기 위하여 칠팔 회를 요동 땅에 출입도 한 것으로서, 무조건 사대주의자들은, 이 언문(諺文)창제에 대 하여 얼마나 반대를 하였던가) 수양은 숙주의 이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리고 숙주를 귀 엽게 보고 숙주를 믿음직이 보고, 밤낮을 숙주와 함께 지내 며, 숙주의 놀랄만한 기억력과 비판력을 고문 삼아 긴히 썼다.

압록강을 건너서면 인제는 명나라 땅. 그러나 그 토속, 향 풍에는 아직 조선의 북도의 민속과 유사점이 현저히 발견되 는 것을 수양도 숙주와 함께 주의 깊게 보면서 길을 갔다.

역사상의 안시성(安市城)이 어딘지, 백암성(白巖城)이 어딘 지는, 지금 찾아낼 바이없다. 그것을 구구히 여기로다 저기 로다 다툴 필요도 없다.

이 끝이 없고 한이 없는 넓은 평원—옛날 고구려 무사의 말 달리고, 활 쏘던 대평원은, 단군 일 천년의 업을 일으킨 땅 이었다. 그 뒤 한 때는 이 지역의 한편 구석은, 기씨(箕氏) 라, 위씨(衛氏)라, 그 밖 한족(漢族)에게 침식을 당한 일은 있지만 성봉 백두를 중심삼은 대부분의 강역은 단군의 후예 인 부여가 물려받아 전면히 일 천 수 백년을 누려 오다가 그 뒤를 고구려가 또한 받았다.

고구려 칠백 년의 광휘 있는 역사가 소멸되자, 이 지역은 천하의 축녹장이 되었다.

고구려의, 국호를 물려받은 「고려」는 겨우 본래의 고구 려의 한 군현(郡縣)쯤인 남방에서 신라와 백제를 합하여 조 그만 새 나라를 이룩하고 고구려 지역의 대부분인 압록강 이북은 고구려의 한 지족(支族)으로 발해(渤海)국을 이룩했 다가, 발해국은 기탄(契舟)에게 망하고, 기탄은 또다시 고구 려의 한 지족인 여진(女眞)족으로 이룩한 금(金)국에게 망하 고, 금국은 몽고에게 망하고, 몽고는 명에게 망하고—이리하 여 이 지역은 천하의 축녹장이 된 것이었다.

그 동안의 고구려의 국호를 물려받은 고려(왕건이 이룩한) 의 뒤를 이어서 지금 다시 고려의 뒤를 물려받은 이씨의 조 선. 계통적으로 따져 올라가자면, 「조선」에서 「고려」로,

「고려」에서 「고구려」로, 「고구려」에서 「부여」로,

「부여」에서 「단군」으로—이렇게 올라갈 수가 있지만, 지 역적으로 보자면 지금의 조선은, 옛날의 겨우 한편 구석에 다가, 백제와 신라를 합하여 그 전부를 합친 것으로도, 고구 려의 강역의 십분의 일도 못될 귀퉁이요, 그 대부분은 압록 강 건너에 남아 있다.

만약 「조선」으로서 옛날의 고구려의 후신이라 일컫고자 할진대 요수(遼水)이동의 지역은 전부 자기의 땅으로 삼아야 할 것이었다. 고구려 망하고 이 땅이 천하의 축녹장이 된 이 후에도 이 땅에 군림함 자는 혹은 발해라, 혹은 금국이 라, 모두가 고구려의 지족이었다. 전조(前朝)의, 우왕(禑)이 일으키려던 북벌의 대군도 역시 이 땅을 도로 찾아보려 함 이었다.

이씨조선 태조의 증손자 되는 수양으로는 이 땅에 무관심 할 수가 없었다. 만약 이 땅에 여진(女眞)족의 후예가 주인 으로 앉았다면 여진족 역시 고구려의 한 지족이라, 그다지, 남이라 할 수도 없겠지만, 명나라는 전혀 관계없는 종족이 었다. 이씨조선으로서는 이 땅은 적지 않게 비위 동하는 땅 이요, 또한 넘겨다 볼만한 권리도 있는 땅이었다.

기억력 좋은 신 숙주를 데리고 이 땅의 위를 스치고 지나 간 고금의 역사를 토론하며, 수양은 첫 겨울의 상쾌한 대기 가운데서 여행을 계속하였다. 이리하여 사산의 일행은, 그해 석 달도 절반이나 가서 연경에 득달하였다.

그러나, 연경에서는 수양은 실망하였다. 주(周)이래의 발달 된 문물 제도를 시찰하려 하였지만 그 땅에는 그다지 배울 만한 것이 없었다. 부력(富力)이 이곳만 못하고 사람의 수효 가 이곳만 못할 뿐이지, 문물 제도로서는 수양의 부왕(세종) 의 세운 바가 결코 이 땅보다 못하지 않다는 점을 수양은 절실히 깨달으며, 동시에 아버님께 대한 존신의 염이 새삼 스러이 더 느껴졌다. 약 삼 년 전 형왕(문종) 등극 때에도 이번과 꼭 같은 사명을 띠고 이곳을 찾은 일이 있었지만 그 때는 다만 이 땅의 화려하고 부요한 점에 눈이 흑하여, 크 고 훌륭한 나라로다 보아 두었지만, 이번에는 이 땅의 문물 제도를 연구할 심산으로 왔는지라, 주의하여 관찰하여 보매, 다만 크고 부요한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우리 땅보다 문물제 도로는 그다지 혹할만 한 데가 없었다.

다만 그 크고 부요한 점이 부러웠다. 연경으로 모여드는 국내의 물산으로 보아도 그 강역이 얼마나 넓은지, 조선 땅 안에서 자란 수양으로는 측량하기조차 어려웠다.

겨울에도 과일을 따먹는다는 남쪽 끝에서, 여름에도 털옷 을 입는다는 북쪽 끝까지, 그것이 얼마나 넓은지는 짐작도 잘 되지 않았다.

사명을 치르고 사신의 일행은 다시 본국으로 향하여 돌아 섰다.

돌아오는 길에 중원의 본토와 외지와의 경계인 고북구(古 北口)에서 수양은 신 숙주와 함께 가마에서 내려서 서면을 둘러보고 길이 탄식하였다.

천하이 한번 동하면 백골의 산과 피의 바다로 화하는 이 고북구. 이 고북구의 험(險)이 있기에 중원은 능히 오천 년 의 역사를 누린 것이었다. 옛날 고구려는, 동남으로 신라와 백제라는 적이 있는 탓에 온 국력을 이리로 모으지 못하여 종내 한, 수, 당(漢隨唐)을 넘겨보기만 하면서도 고북구를 넘지 못하였다.

고북구를 무사이 넘은 기탄(契舟), 금(金), 원(元)은 능히 천하를 뒤흔들었다.

고북구의 저편 쪽은 한(漢)족의 안거처(安居處)요, 그 이쪽 은 천하의 축녹장— 고북구를 넘어서 중원을 잡았던, (한민 족이 아닌) 다른 민족들은 도로 고북구로 하여 쫓겨났다.

개벽이래, 이 고북구에서 흘린 피가 얼마나 되며, 여기 쌓 인 백골이 얼마나 되는가.

또 다시 밟은 요(遼)의 무변광야.

백설이 덮인 그 광야는 지금은 명(明)나라의 날개 아래 평 화로이 뻐쳐 있다. 그러나 이 고래의 축녹장이 언제까지나 평화가 유지될까.

북에는 아직 원(元)나라의 예(裔)인 몽고가 틈새만 엿보고 있다.

동에는 야인 이 만주(李滿住)의 일당은 세종이 토벌하였다 하나, 그의 잔족들이 장백산 기슭에서 제 실력을 따로 가지 고 있어서 명나라의 위력이 거기까지는 및지 못한다.

기탄(契舟)의 잔족도 또한 제 실력을 따로이 가지고 있다.

여기서 언제 다시 축녹전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어찌 보증하랴.

이 축녹전에 이 지역의 정통 주인 되는 조선이 끼어 들지 못할까. 이 기름진 무변 광야를 우리 손안에 넣을 수가 없 을까. 우리 임금으로 하여금 이 광대한 지역의 주인이 되게 하지 못할까. 지금 어린 조카님을 임금으로 모시고, 스스로 는 섭정의 위를 꿈꾸는 수양은 자기가 섭정하여 이 나라를 부강케 하고 어린 조카님으로 하여금 부강한 국가의 주재자 가 되게 하고 싶을 야망은 다분히 품었다.

이번의 왕복 넉 달 동안의 여행에 있어 수양은 신 숙주의 사람됨을 속속들이 꿰어 보고, 큰 기둥감이라는 판단을 내 렸다.

숙주 또한 마찬가지로 수양대군이 결코 상린(常鱗)이 아니 요 놀랄만한 큰그릇임을 알았다. 그리고 이 수양대군의 지 휘에 따라서 잘 준행하면 이 국가가 다시 이전 세종대왕 때 와 같이 흥성되리라고 굳게 믿었다.

三十五[편집]

수양대군이 사신으로, 연경으로 떠난 다음, 왕은 당신의 마 음속에 수양숙부께 대한 애모의 염이 의외에도 컸음에 당신 스스로 놀랐다.

한 때는 그렇게도 무섭고 싫던 사람—그 얼굴을 멀리서 보 기만 해도 은근히 치가 떨리던 사람—그렇던 것이 수양대군 의 변함없는 충성의 덕으로 그 공포와 염오가 사라지고 믿 음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돌아선 것은 왕도 스스로 인정 했지만, 수양대군이 가까이 있지 않다는 것이 당신께 그렇 게 적적하리라고 까지는 생각지 않았다. 그랬는데 수양대군 이 먼 길을 떠나고 보니, 왕은, 마치 어버이를 잃은 것 같은 적적함과 불안증을 절실히 느끼었다.

『누구를 의지하랴.』

『누구를 믿으랴.』

부왕(문종) 승하한 때에 느낀바와 흡사한 고적감을 느끼었 다. 부왕 승하한 때에는 다만 어리둥절한 가운데, 그래도,

「내 앞은 내가 감당해야 한다」하는 단념이 있었다. 그러 고 사위가 늘 두선두선 했는지라, 다만 기막히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고 사위가 늘 두선두선 했는지라, 다만 기막 히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나 수양숙이 길 떠나기 때문에 느낀 고적감은 그와 달 랐다. 수양숙은 당연히 당신의 곁에 모실 사람이요, 또한 다 시 올 사람이라 하는 점에서 더욱 그리웠다.

매부되는 영양위 정종은 늘 참내하였다. 그러나 영양은 동 무할 사람이지, 믿고 의뢰할 사람이 아니었다. 수양은 떠난 뒤에는 안평숙이 이전보다는 비교적 자주 참내하였다. 그러 나, 왕께는 이 안평숙이 진실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전 한 때에 수양숙은 무섭고 진저리 나는 사람이었지만, 안평 숙은 감정적으로 싫고 진저리나는 사람이었다.

안평숙의 비꼬아진 웃음, 긁어내는 말귀, 이런 모든 점이 어린 왕께는 역하고 진저리 났다.

더욱이 안평숙은 흔히 수양숙을 헐뜯는 말을 왕께 사뢰었 다. 이 점이, (인제는 수양께 마음 돌아선) 왕께는 더 불쾌 하였다.

어느 날인가, 편전(便殿)에 났을 때였다. 마침 안평숙과 영 상 황보 인, 좌상 김 종서 등이 모시고 있었다.

그 때 무슨 이야기의 끝에 이번의 사행(使行)의 이야기가 났다. 그때 안평숙은 이런 말을 하였다—

『지금쯤은 수양대군은 연경 미색 품고 호사하시겠군.』

입을 비꼬아 웃으며 하는 이 말에 대하여, 좌상 김 종서가 대답하였다.

『색에 혹해서 사명이나 다하올지.』

여기 수상 황보 인이 호인다운 웃음을 연방 얼굴에 띄며 한몫 들었다.

『연첩 하나 데리고 오실지.』

왕은 세 사람의 말을 다 모른 체하고 있었다. 즉 안평이 아무리 해도 이 말씀을 왕께 올려야 마음이 펴겠는지 왕께 로 향하였다—

『전하. 이번 사행을 좀 연노하셨지만 양녕대군께 부탁하 셨드면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납니다.』

『왜요?』

『수양대군도 덕이야 높으시지만 젊은 혈기에 혹시—』

『혹시?』

여기서 안평은 정면으로 여쭙기가 황송하다는 듯이, 입을 비꼬며 머리를 숙여 버렸다.

왕은 불쾌하여 다시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그 대답은 왕이 짐작하는 바므로.

그러나 이야기를 여기서 끊는다는 것은 안평에게는 도리어 불만함 것일 테다.

왕이 다시 묻기를 기다렸지만, 왕이 그 이야기를 걷어치우 고 말으므로 안평은 다시 종서에게 향하였다—

『젊은 혈기와 색과는 할 수 없어.』

『암요. 수양대군이 본시 즐겨하는 일인데야.』

『열 네 살 적에 창가(娼家)에 들어갔다가 남편에게 욕 볼 뻔한 일까지 있구.』

『영웅 호색이 아니오니까. 하하하.』

『하하하하.』

현재 이곳에 있지 않은 사람을 두고, 자기네끼리 올려치고, 내리치고 하는 양에, 왕의 마음은 매우 불쾌하였다. 더구나, 당신이 존신하는 수양숙께 대하여, 당신이 싫어하는 안평숙 과 김 종서가 이런 것을 하니 더 불쾌하였다. 듣다 못하여 왕은 말을 끼었다—

『수양숙의 말씀이서요?』

『네? 뭐, 아니옵니다. 다른 모(某)라는 재상의 이야기옵니 다.』

이 뻔한 거짓말에 대하여 왕은 당신도 아닌 체하고 드디어 엄책하였다—

『글세. 수양숙께는 그런 일이 있지도 않겠지만 설사 있다 해도 내게는 수양숙께 대한 좋지 못한 폄을 아예 마세요. — 아니, 수양숙 뿐 아니라, 도대체, 당자 없는 데서 그 사람의 폄을 한다는 건 군자의 할 일이 아닐겝니다.』

대군과 대신은 칵 얼굴을 붉히고 머리를 숙였다. 소년에게 들은 책망이지만 떳떳한 책망이었다.

이번의 일은 이렇게 싱겁게 지났지만, 이와 비슷비슷한 일 이 여러 번 있었다. 안평과 종서가 함께 왕을 모시게 된 때 는 늘 화제가 수양에게 및고 화제가 수양에게 미치면 언제 든 비웃는 듯한 칭찬하는 듯한 내려깎는 듯한—요령 얻기 힘 든 폄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안평숙과 대신이 함께 모시게 될 때는 왕은 늘 마음속에 불안과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종조부 양녕대군은, 그다지 참내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 양녕대군과 대한 때만이 왕께는 가장 마음 놓이고 자유 감을 느끼고 하는 때였다. 이 세상에 떨어지면서 어머님을 잃고 엄격한 아버님의 품 아래서 자란 왕이라, 응석이라 떼 거리라(어린애가 본능적으로 가지고 싶어하는)에 굶주린 도 있겠지만, 종조부님의 참내는, 가슴에 무드기 느껴지도록 반 갑고 하였다.

그러나 양녕대군은 연노(年老)한 탓도 했겠고, 근신하는 탓 도 있겠고, 또는 다른 까닭도 있겠지만, 그다지 흔히 참내하 지 않았다.

신하들은 지긋지긋하였다. 그 사람들이 당신께 강요하는 것은, 무슨 국가에 관한 것이든가 정치에 광한 것이 아니고, 그들이 들고 나오는 것이란 것은 모두 「성현이 어떻다」

「삼고가 어떻다」하며, 하늘이 가물어도 임금의 책임이요, 날이 차도 임금의 탓이요, 살인강도나 불효부정한 사람이 생겨도 임금의 탓이라 하여, 모든 임금에게 책임을 씌우려 하고, 신하는 마치 임금을 감독하는 감독자인 듯한 태도를 취한다.

이 신하들과 만날 때하며, 그들의 책망(모두 책망하는 태도 였다)을 당하는 것이 딱 싫었다.

수양숙만 곁에 있으면 이렇지 않았다. 대체 안평숙이며 대 신들은 왕을 무엇으로 여기는지 어전에서도 조금도 삼가는 기색이 없이 자유로이(버릇없이) 언행하였다. 수양숙이 곁에 모실 때는 대신들이 어디라 감히 버릇없는 언행을 못하더 니, 지금은 자기네끼리의 사삿일이며 음담패설까지도 하는 것이었다.

이런 가지가지의 점으로, 왕은 수양숙이 나날이 더 그리워 갔다. 국가에 관해서도 그 시끄럽고 군잡스런 문제를 수양 숙이 있기만 하면 스스로 맡아서 해결 지었다. 전연 자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조카님께 품하고 그 결재를 받고 야 행하여서, 숨김이 없고도 또한 왕을 번거럽게 하지 않았다.

친구로, 보호자로 지도자로, 어버이로 믿고 우러르던 수양 이 멀리 떠나가 있는 것이었다. 왕이 그리워하는 것이 당연 하였다.

왕이 이렇듯 수양을 그려하고 사모하는 것은 김 종서 등에 게는 큰 위험이었다. 그래서 몇 번 그들끼리 몰래 회견을 하였다. 그런데, 우연한 일인지 웬일인지, 그 몇 번 회견하 고 헤질 때마다 헤지는 길에, 그들의 회견한 장소의 근처에 서 수양댁 수하인이 배회하는 것과 마주쳤다.

이 일은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자기네들의 아들 을 수원(隨員)으로 데리고 간 것만을 따로이 보자면 혹은 우 합(偶合)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지만, 그 뒤 수삼 차 밀회한 그 밀회장 근처에서 한번 수양의 수하인들이 배회하 는 것과 합쳐서 생각하자면, 이것이 모두 우연한 일이라고 일소에 붙이기는 어려웠다. 수양이 수양자신 먼 곳에 가 있 는 동안, 여기 남아 있는 대신들을 견제키 위해서 그들의 자식을 수원으로 데리고 갔고, 그러고도 그 동안의 행동을 늘 주의하고 경계하고 있는 것이라 이렇게 밖에는 해석할 수가 없었다.

만약 사실이 그렇다 할진대, 자기네들은 썩 행동을 삼가고 말을 삼가고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었다. 이 기회에 일거하 여(자기네들의 자식은 어떻게 되든 간에), 일을 결행해 버린 다면 모를 일이지만, 자기네들의 자식을 아끼려 할진대, 수 양 없는 이 틈에 수양의 수하인들에게 눈치 다른 태도를 보 이면 그것은 공연한 손해일 것이다.

수삼 차를 같은 일을 겪은 뒤에는, 그들은 다시는 사사로 이 몰래 만나지 않기로 하였다. 수양이 돌아올 때까지는, 아 예 별다른 눈치를 보이지 않아서, 자기네의 아들들의 안전 을 보전해 두고 겸하여 자기네들의 안전도 도모하기로 이렇 게 작정하였다.

수양에게 아무 것도 발목 잡힌 것이 없는 안평은 수차 은 근히 채근해 보고 역정도 내어 보았지만, 아들들을 수양에 게 잡힌 재상들은, 안평을 어름어름하여 두었다.

이리하여 수양이 예상한 바와 같이 안평은 우유부단하여, 꿈쩍을 못하고 있었고, 영상이며 좌상은 그들의 아들을 수 양에게 저당 접히어서 역시 꿈쩍을 못하고 있어서, 수양이 사 개월 남아를 먼길을 떠나 있을 동안도, 왕과 왕의 신변 에는 아무런 암영도 띄어보지 못하고, 안전 무사히 그 기간 이 지났다.

—수양은 무사히 사명을 다하고 이듬해 이월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三十六[편집]

사신의 일행이 위세 좋게 서울로 돌아올 때에 나라에서는 종친은 무론이요, 삼공륙경 이하 백관 서료에 이르기까지 모두 모악원(母岳院)까지 길 맞이하였다. 이것은 이 나라 개 국 이래의 전무한 굉장한 길 맞이였다.

일개 이 나라의 사신은 물론이요, 명나라 사신이며, 왕의 거동에도 이러한 성대한 길 맞이는 본조 창업이래 전례가 없었다.

왕의 분부—왕이 희망이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수 양에게 발목이 잡혀 있는 수상과 좌상이 앞장서서 찬동하여 서 몇몇 문신들의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전무 한 굉장한 길 맞이를 한 것이었다. 그러고 모악원에서 잠깐 길맞이의 대작도 있고 하여, 돈의문(敦義門) 안에 들어설 때 는 밤도 중야는 되었는데도, 왕은, 수양대군을 곧 대궐로 들 라는 분부를 내렸다. 정식의 알현과 복명은 물론 내일의 식 대로 할 것이지만 우선 곧 대궐로 들라는 것이었다.

물론 수양만 들라하는 것이지, 부사(副使) 이하 다른 수원 들은 각각 제 집으로 돌아갔다.

수양은 이 분부에 칵 눈물겨웠다. 그새 넉 달, 얼마나 적적 하고 외로왔으면 밤중인데도 불구하고 대궐로 곧 들라시는 것인가.

왕읜 연침에서 수양을기다리고 있었다.

『전하. 그간 무양하시오니까.』

『숙부님. 피곤하신데 곧 옵시사 해서, 미안합니다.』

두 인사가 함께 나왔다.

『무양하오신 용안 우러르오매, 기쁜 말씀 올릴 바이 없읍 니다.』

『숙부님. 먼길에 얼마나 피곤하실까. 그걸 내 욕심 채기로 곧 옵시사 해서—편히 앉으서요.』

『신은 피곤한 줄을 모르는 위인이옵니다. 용안 우러르오 매 다만 황송하옵고 기쁠 따름이옵니다.』

걸핏 우러르매 용안 참으로 반가운 듯이 빛났다.

『이 혹한에 색북을 휘돌아서……』

『삼십 소년이 겨울을 칩다 해서 무엇에 쓰오리까.』

『피곤하실 텐데 앉으서요.』

『신은 피곤치 않습니다. 전하 옥체 편히 펴오서요.』

왕은 조금 안석에 몸을 움직여서 좀 더 편한 자세를 취하 였다.

『숙부님. 기달렸어요.』

탁 목이 메려 하였다.

그 동안의 조카님의 고적한 사위. 믿을만한 사람 하나도 없고, 무시무시한 사람들만 그 주위에 출입하였을, 넉 달 동 안에 넓은 대궐을 불안 가운데서 지냈을 심경을 생각하매 가슴에 무슨 덩어리가 칵 뭉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 었다.

『하루 바삐 사명 다합고 용안을 우러릅고저, 초조히 넉 달을 지냈습니다.』

『물론 숙부님 친히 사셨으니 사명이야 거침없이 치르셨겠 지만 무슨 이문이나 없습니까?』

『무슨 이문이야 있아오리까. 다만 상국도 북경으로 천도 하온 이래, 궁궐이며 경내가 화려 웅대하게 자리 잡혔아와, 우리 동방의 궁궐과는 비길 바이 아닙더이다. 이것이 신께 는 부럽사옵니다. 신, 그것을 볼 때마다 우리 성상으로 하여 금, 이런 궁궐에 계오시게 하면 얼마나 좋으랴, 이 생각이 나고 합더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도 소방(小邦), 분에 넘 치는 것을 부러워하고 흉내 내려 하다가는 국가를 망칠 일 이오라 딴 꿈 꿀 수도 없아옵고, 이것이 한국이옵니다.』

『그게야 참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요 땅을, 그 무변 광야를, 아아 그것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까.

『전하. 복생선의 배와 같이, 이 땅을 불릴 재간이 있아오 면—』

수양은 웃으면서 이렇게 아뢰었다. 왕도 미소하였다.

『땅을 복 생선의 배와 같이 늘릴 수가 있다면 오죽이나 좋으리까.』

『신이 원행한 동안 이곳에서는 무슨 별고가 없었습니 까?』

『무슨 별고 있오리까. 아침에 해뜨고 저녁에 해지고— 그 뿐입니다.』

『그건 저기도 일반이옵니다.』

왕이 수양을 부른 것은 무슨 특별한 용무가 있든가 해서가 아니라, 그새 넉 달 남아를 그리고 기다리던 나머지라, 어서 바삐 만나보고 싶다는 단순한 정일 뿐이었다. 아까는 당신 몸소 모악원에 까지 나가 보겠다는 의견을 내었다가, 안평 과 김 종서에게,

『국왕의 체모로 그런 법이 없다.』고 반대를 받고 중지한 것이었다. 그런지라, 수양을 곧 불렀지만 무슨 특별한 하교 도 없고, 수양에게 연경 유람담을 시키고 당신은 고요히 듣 고 있을 뿐이었다.

수양은, 왕께 대하여, 이 소년왕이 듣고 재미있을 이야기와 및 들어서 이해하고 참고될만한 이야기를 골라 가면서 사뢰 었다.

밤이 매우 깊도록 수양은 대궐에 그냥 있다가, 용안에 피 곤과 졸음의 자취가 나타남에 임하여, 조카님께 하직을 하 고 집으로 돌아왔다.

三十七[편집]

이번 연경에 다녀온 뒤부터, 수양은 저절로 섭정의 지라에 가 서게 되었다.

왕이 임명한 바도 아니요 정부에서 결정한 바도 아니요, 형세상 저절로 섭정이 것이었다.

왕은 무슨 일이 생기건 무슨 일을 당하건, 수양과 의논하 였다. 아직 왕비도 없는 소년왕이매 가정적으로는 무슨 일 이 있을 까닭이 없고, 모두가 대외적 사무라, 왕이 친재를 하지 않으면 수양에게 밖에는 의논할 데가 없었다.

간간 어떻게 하여 대신들과 의논을 시험해 본 적이 있었지 만, 대신들의 아뢰는 말이라는 것은 그 당한 사건에 대한 사무적 대답이나 해결책이 아니고, 반드시 인성(人性)이 어 떠니 옛날 성현이 어떠니 하여 추상적이요 요령부득의 것뿐 이었다. 그리고 좀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반드시,

『전하 마음을 정(正)히 하시고 뜻을 깨끗이 하시와 옛날 성현을 사모하시는 지성으로 궁행하시면 인세 따라서 발라 지고 천리 따라서 순해지와 지치(至治) 자연히 생겨날 것이 올씨다.』하여 구체적의 대답도 없을 뿐 아니라 그 책임을 임금께 밀어버리고 말려 한다.

거기 반하여 수양은 실제적으로 임금이 행할 일과 시킬 일 을 아뢰어서 무슨 일에든 명쾌하고 순조로운 해결안을 내리 고 하였다.

이런지라, 왕은 수양만을 믿고, 수양에게만 의지하려는데 차차 기울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제는 왕의 신임을 한 몸에 지니게 되었다. 아직 양압 중 이니 정치상의 중대한 변혁이라든가 하는 것은 좀 꺼리는 바이지만 조금씩 조금씩의 개량은 꾸준히 하여보려 하였다.

그러면서도 수양에게 매우 마음 씌우는 두 가지의 점이 있 었다.

하나는, 수양 자기도 단지 임금의 삼촌이라는 이외에는 아 무 실직권이 없는 점이었다. 정부에게 직접 명한다던가, 유 사(有司)에 직접 분부할 권한이 없는 사람이었다. 조카님께 아뢰어, 조카님이 정부에 분부하고…… 이렇게 군잡스런 수 속을 밟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한 가지의 마음 씌우는 점은, 지금 조카님과 수양 자기 가 서로 믿는 새가 된 이 신임에 이간붙이는 손이 이르는 것을 엄중히 삼가고 경계하여야 할 일이었다.

첫째 점도 매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수양이 조카님께 사 뢰어 조카님이 또 정부에 분부를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마 음대로 진행되고 실행되지를 못하기가 예사였다. 왕이 정부 에 명하면 정부는 유사에 명하고—이런 순서를 밟아야 일이 실행되는 것인데 이 정부의 수뇌자는 수양에게 적개심을 품 은 사람이라 지금의 왕의 분부라는 것이 수양의 의견에서 나은 것임을 뻔치 아는 그들은, 왕명에도 잘 복종하지를 않 았다. 말다툼과 이론 캐는데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그들 은 무슨 이론이든 들어 가지고 왕명을 불복하였다. 또한 왕 은 춘추가 어리고 마음이 나약한 분이라, 대신들이 반대하 면 이것을 강행시킬만한 압력이나 기백이 부족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제도에는, 삼사(司)라 하는 것이 있 다. 입만 까놓은 삼사의 관원들은, 자기네의 직책을 「무엇 에든 트집잡고」 「무엇에든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 문사들로 조직된 삼사는 문사 아닌 사 람들은 통 몰아 속물이라 하고, 더욱이 종친이나 인척(왕의) 이 정치에 용훼하는 것을 가장 꺼린다.

수양이 선왕께 섭정의 고명이라도 받았을 것 같으면, 수양 의 지위는 왕의 대리이니, 감히 이렇다 못하지만, 그렇지 못 한 수양이 끼어 드는 것을 그들은 규탄하여 마지않았다.

게다가 지금의 정부 삼공은 모두가 홍문 출신을 사류(士類) 에 속하는 사람이라, 같은 파가 될 수가 있었거니와, 수양의 참견은 전연 분에 넘치는 일이라 보기 때문에 매사에 규탄 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니까 수양은 왕의 신임은 얻었다 하나, 그 신임으로서 실행할만한 손발이 없었다.

이 점이 이런 데다가, 한편으로 수양 자기와 왕과의 새를 이간 붙이려는 공작이나 없는가 엄하게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었다.

수양은 수하인들을 시켜서, 김 종서와 황보 인이며 안평의 신변, 행동 등을 엄중히 감시하고 경계하였다.

한가지로는 왕과 자기의 새를 이간 붙이려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것은 그들일 것이다. 이것을 감시하는 동시에 또한, 그들의 새에 엉뚱한 딴 공작이나 시작되지 않는가 하는 점 을 더 엄중히 감시하였다. 인제 이 상태로만 간다 하면, 김 종서, 황보 인등의 권세와 영화는 시들어 버릴 밖에는 없는 운명에 섰다.

권세에 연연하고 영화에 연연하는 그들인 데다가, 또한 김 종서는 자기의 목적을 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라도 피 하지 않는 위인이라, 결코 가볍게 볼 수가 없었다. 일을 이 대로 버려 두었다가는 자기네들의 몰락은 너무도 분명한 사 실인지라, 그들은 갈팡질팡 딴 꾀를 베풀으려고 돌아 갈 것 이었다. 궁한 쥐는 고양이에게도 달려든다. 무슨 무모한 행 동이 그들에게서 나올지 예측도 할 수가 없었다.

자기의 신변도 신변이려니와 어린 조카님의 신변을 썩 잘 지키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김 종서(김 종서에게는 황보 인도 포 함된다)와 안평은 그 목적에는 서로 공통된다 하지만 면의 적(敵)으로 여길 사람은 서로 다르다.

김 종서가 당면의 적으로 여기는 사람은, 수양 자기이다.

수양 자기가 있기 때문에, 그러고 왕의 신임이 수양 자기에 게로 돌아왔기 때문에, 종서는 왕이 신임을 잃었다. 수양 자 기만 없어지면 김 종서는 선왕의 고명을 자세 삼아 다시 왕 의 신임을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 일신의 부귀영화 를 위하여 왕의 신임을 바라는 종서라, 종서의 당면의 적은 수양 자기다.

그러나 안평의 당면의 적은 그렇지 않다.

그새 두고두고 조사한 바에 의지하건대 김 종서와 안평이 뜻을 같이하여 무서운 일을 하려는 의사를 교환한 것뿐인 분명한 사실인 모양이다. 친동생이니 만큼 안평의 성격 등 을 잘아는 수양은, 안평이 주동자가 되거나 앞장을 서서 딴 짓을 꿈꿀만한 과단성도 없는 사람인줄을 안다. 세력과 영 화의 권에서 떨어지게 된 종서가, 어떻게 하여서든지 자기 를 몰락의 굴함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안평을 충동하고 안평 을 뚱기쳤을 것이다. 왕위 계승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거 리에 있는 안평이요, 본시 주착없고 가벼운 안평이라, 이 충 동에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지라, 안평의 당면의 적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분이 요, 수양 자기는 제이순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김 종서는, 현재의 임금의 아래서든, 안평의 아래서든, 부귀영화를 누리기만 하면 그 뿐이요, 안평은 부 귀영화보다도 다른데 뜻이 있다.

서로 그 목적이 공통은 되면서도, 동일하지는 않은지라, 그 들의 모략은 기운차게 진행되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첩자의 보고에 의지하면 간간 의견의 충돌도 있는 모양이 었다.

그러나 역시 목적에 공통점이 있는지라, 일이 진행되기는 되는 모양이었다.

지금, 이 나라에는 여러 가지의 세력이 얽히고 섥히어 대 립되었다.

하나는 정부 대신들의 세력이었다. 이 세력의 아래는 (같은 사류(士類)라는 공통점을 가진) 문신(文臣)들이 속하였다.

이것이 표면적으로 나누인 두 개의 세력이었다. 따로이 이 면적 세력이 있었다.

이면적 세력으로는, 안평의 담담정(淡淡亭)이며 무이정사 (武夷精舍)에 모여드는 문무배들과 및 정부 대신들이 한 개 세력을 이루었다.

거기 대하여, 수양은 이 세력을 견제할 겸, 나아가서는 거 기서 무슨 행동이 나올 때는 거기 대하기 위해서 자기의 수 하에도 무사 차력들을 모아들였다.

임금(임금에게는 수양도 한편이다)과 정부가 대립하였다 하 는 것은, 백성들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두 왕자—수양과, 안 평이 서로 경쟁하여 수하에 사람을 기른다 하는 것은 세상 에 적지 않은 의혹과 불안을 주었다.

이 가운데 안평의 수하에 모인 무리는 문사와 무사가 반반 으로 문사라 하는 것은 끼리끼리 유사(有司)에 통하고 정부 에 통하는 연줄이 있는지라, 좀 점잖은 축으로 보이는 대신 에, 수양의 아래 모인 무리는 태반 무사들 뿐이라, 평판이 떨어졌다.

세상은 차차 불안에 싸이기 시작하였다. 봄과 여름(계유년) 을 지나서 초가을쯤은, 꽤 두선두선 유언비어가 돌아갔다.

세종대왕 승하하고, 그 뒤 이년 조금 남아에 문종 또 승하 하고, 어린 임금이 등극하였다는데 섭정하는 왕족도 없다 하는 이 점만으로도 세상에 불안을 일으킬 재료는 넉넉히 되는데 이러한 불안한 시국에 두 왕자(수양과 안평)가 서로 경쟁하여 수하에 문무잡배들을 모아들인다 하는 점은, 세상 의 의혹은 안 일으키려야 될 수가 없었다.

『수양대군이 왕이 된다.』

『안평대군이 왕이 된다.』

『아니, 수양대군이 왕이 되려고 하는 것을 안평대군이 못 하게 하려 한다.』

『아니, 안평대군이 딴 뜻을 품은 것을 수양대군이 못하게 한다.』

항간에는 가지가지의 유언이 돌아갔다.

수양 귀에도 이 풍설은 들어왔다. 수양은 가슴이 선뜻 하 였다. 그 유언은 어느 편이고 간에, 왕위에 변동이 있으리라 는 결론이었다.

이 풍설이 왕께까지 들리면 어리신 마음에 얼마나 놀랍고 두려우랴. 걱정스런 일이로다. 조카님의 귀에까지는 이 풍설 이 및지 말고저.

수양은 이 일이 무엇보다도 근심스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외롭고 쓸쓸하고 의지할 데 없는 환경에 계신 조카님 께 이 풍설까지 들어가면 얼마나 놀라우랴. 세상은 왜 이다 지도 입을 놀리기를 좋아하는가.

이 여름에서 초가을—수양도 매우 마음이 언짢은 세월을 보 냈다. 좀체의 일은 두고두고 근심을 계속하는 수양이 아니 었지만, 지금의 세상 형편은 그의 마음을 몹시 불쾌하게 하 였다.

안평이 야속하고 딱하였다. 아무리 주착없고 가볍기로서니, 몇몇 대신의 농락에 놀아나서 딴 생각을 어디 감히 품을소 냐. 수양의 감시가 엄중하고, 그 위에 그들의 목적의—당면 적(敵)도 서로 다른지라, 계획이 활발하게 진행되지는 못하 는 모양이나, 무기(武器)를 몰래 준비하는 형적도 있고, 수 하인을 더욱 널리 구하며, 현재 조정의 관리들도 더욱 많이 담담정이며 무리정사로 청하여 대접을 후히 하여 인심 사기 에 급급하며, 한편으로는 유언비어를 빚어내어 퍼치며, 수양 에게 대한 악풍설의 태반은 거기서 생겨나는 모양이었다.

장차 안평이 대체 어떤 수단을 써서 목적을 달하려는지는 예측할 수 없으되, 지금의 형세로 보자면 이전 태종정사(太 宗定社) 때와 동일한 수단을 쓰려는 듯싶었다. 그리고 또한 그런 수단 밖에는 다른 방도는 없을 것이었다.

이런 형세 아래서 수양은 단단히 결심한 바가 있었다.

김 종서를 제거해 버리어야겠다 하는 점이었다. 설사 딴 생각 없다 할지라도 종서는 이 국가에 있어서 유해무익한 인물이다. 선왕의 고명을 받았다는 방패를 앞장세우고, (수 양이 있으면 자기의 부귀영화가 뜻대로 되지 않겠으므로) 모든 일에 수양에게 맞서며, 수양이 왕께 계청하여 행하려 는 일도, 선왕의 고명이라는 방패로 눌러버리기를 일삼는 이런 인물은, 국가 흥성에 큰 지장이 될 뿐 아니라, 그 반대 의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종서가 자진하여 벼슬을 내어 던지고 여생이나 안온하게 지낼 생각으로 있다면여니와 부 귀에 연연한 그는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도리어, 제 부귀공명에 장해되는 사람을 제거하려 하며, 그 사람만 을 제거할 수 없으면 그 웃사람까지도 제거할 필요를 절실 히 느꼈다.

수상 황보 인은 호인인 대신에 우물(愚物)이다. 한 포의에 서 현재의 인신의 극이라는 자리까지 올라간 그는 역시 지 위에 연연하기 때문에 남의 유혹에 넘어갔다.

황보 인 산 사람 뿐이면 다만 벼슬이나 깎고 시골로 내치 면 그만이지만, 지금의 형세가 그렇게 단순하지 못하다. 지 금 김 종서가 주동하여 가지고 이룩한 세력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황보 인을 충동하고 안평을 충동하여 그 아래모 아 들인 문무 잡배들로 형성한 세력이었다. 이것은, 단지 표면, 서로 호기롭게 놀며 왕래하며 하는 뿐이지, 표면으로 내놓 은 목적은 없는 (수뇌자 삼 사인만이 안다)무명세력이었다.

또 하나는, 선왕의 고명을 받은 신하들로 조직된 세력이었 다. 황보 인, 김 종서며, 이 양(李穰), 민 신(閔伸)등등 아홉 사람으로서 내놓은 목적, 기차는, 「수양배척」이었다. 선왕 께 고명은커녕, 그 반대로 배척을 당한 수양대군이 지금 어 린 왕을 충동하고 놀러 가자고, 온갖 일에 용훼할 뿐 아니 라, 도리어 선왕께 고명 받은 신하들을 물리치려 하니, 이 수양을 배척하자 하는 기치 아래, 한 개의 세력을 형성하여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은 귀신이 아니니,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는 없지 만 이만한 외형만으로 추측하건대, 김 종서는 이 두 가지의 세력을 조종하여, 만약 이편이 성공되기 쉬우면 저편으로는 안평까지라도 배척할지도 모를 것이었다. 선왕의 고명을 받 았다는 것을 방패로 한 개 세력을 이룩한 이 단체도 전연 유해무익할 뿐 아니라, 장치 여차하는 날에는 두 세력이 한 뭉치가 될는지도 알 수 없는 바였다.

지금 왕의 앞에서, 이 나라의 정치를 숙청하려 함에 있어 서, 이 무능하고 무지하며, 김종서의 농락 아래서, 아무 스 스로의 주장이며 의견은 못 가지고 남의 조종하는 대로 놀 아나는 이 세력도, 일소하여 버릴 필요가 있었다. 이 편에서 먼저 손을 쓰지 못했다가는 저편에서 먼저 손을 쓸 것이다.

저편에서 조종하는 자는 김종서라, 김종서가 안평과의 합 작 세력을 먼저 움직일는지, 혹은, 고명신하들과의 세력을 먼저 움직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편으로든지 수양 배 척이 가장 먼저 할 일이요, 지금 이 나라에서 수양 자기가 떠나면 그 뒤의 정권이 안평에게로 가든지 대신들에게로 가 든지 간에, 나라의 운명은 참담한 데로 빠질 밖에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가장 수양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안평의 문제였다.

어리석은 동생아—연하여 나오는 탄식이 이것이었다.

그러나 이 찬식만으로 무엇이 되랴. 안평을 어떻게 떼어 낼 수가 없을까.

이편으로든 저편으로든 김 종서는 제거해야 할 것이지만, 안평은 떼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잘 아는 바 안평의 성격— 잘못 건드리면 더 가로 뻗어나가는 안평이다. 직접 면대하여,

『너는 누구누구와 여사여사한 일을 도모한다니 그게 웬말 이냐?』고 물어 보지고 못할 성질의 사건이었다. 그렇다고 또한, 은근히 그런 뜻을 포함한 말로서 그를 훈계한다 할지 라도, 그렇게 되면 안평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듯이, 딴 소 리로 앞을 가리고 흐려버릴 것이었다.

이런 일은 지극히 난처한 일로서, 명료히 입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은근하게 암시로 나타내면 상대자는 각각 제 뜻 대로 해석을 하는 것이었다. 현재 수양 자기가 신임하고 수 하에 둔 권 람이며 한 명회 등도 수양 자기의 진심을 이해 하지 못한다.

그들의 귀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그들에게 수양은,

『자기는 옛날 선왕을 보좌한 주공의 역할을 하려노라.』

고 자기의 진심을 말하였고, 조금도 다른 뜻을 보이지를 않 았지만, 그 자기의 수하인들부터가, 수양의 그 말의 뒤에는 다른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눈치가 분명하 였다. 그런 눈치는 분명하지만 또한 이런 문제는 노골적으로,

『자네는 그렇게 오해하는가?』고 물어볼 종류의 것도 못 되므로, 수양은 다만 기회 있을 때마다 수하인들에게 되풀 이하여 자기의 진심을 설명하고 하였지만, 이 설명이 상세 하면 상세할수록 그들은 그 뒤에 감추인 딴 뜻이 있는 것이 라고 해석을 하는 것이었다.

진실로 딱하였다.

이렇듯, 진심을 설명하여도 다르게 해석하기가 쉬운 델리 케이트한 문제라, 가뜩이나 마음이 비꼬아진 위에 또한 수 양께 반항심을 품고 있는 안평에게 대하여, 그 문제를 꺼내 고 안평의 마음 돌리기를 (암시적으로든 노골적으로든) 권고 하였다가는 큰 불집이 일어나기가 십상팔구요, 혹은 안평은,

『세상 평판이 형님이 흉한 마음을 품고 있답니다. 자기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마세요.』

버럭 고함지르고 자리를 떨치고 일어설지도 모를 것이고, 일이 이렇게 전개되다가는 두려운 결과가 돌발할지도 모를 것이었다.

그러나 안평은 어떻게 해서든 빼어내고 싶었다. 같은 아버 님과 같은 어머님의 새에서 난 친 형제. 이 친 형제의 새에 유혈지극이 생긴다 하는 것도 역겨운 일이지만, 그 유혈지 극의 근본 원인이 어디 있느냐는 점을 생각할 때는 수양은 이 인간 사회의 너무도 더럽고 괴악한 일면에, 뜻하지 않고 몸서리치고 하였다.

생각하고 생각한 너머지에 수양은 한 번 직접 안평에게 따 져 보기로 생각하였다. 이 즈음의 정세는 더욱 불안해 가고 더욱이 수양에게 더 형세가 좋지 못해 갔다.

김 종서와 안평 및 그 수하— 김 종서와 고명 받은 대신들— 이 두 그룹의 새에서, 서로 연락되는「사류(士類)」라는 무 리를 통해서 세상에 유포되는 풍설,

『수양대군이 딴 꿈을 꾼다.』하는 소문은 나날이 높아가 서, 이러한 풍설에 속아서 수양에게 붙으려는 무리와, 수양 을 배척하는 무리가 나날이 늘어가서, 그냥 버려 둘 수도 없게 되었으므로, 수양은 안평을 직접 면대해서, 그에게 따 져 보고, 그 결과로서, 자기가 장차 취할 방침을 결정하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수양은 구월(계유년) 어떤 날, 안평을 무이정사 (武夷精舍)로 찾았다. 그날 마침 무이정사에서는, 안평이 무 사들을 모아 가지고, 사회(射會)를 하는 날이었다.

오륙십 명의 활량들이 모여서, 활쏘기의 경기를 하는 자리 로 수양은 안평을 찾아갔다.

三十八[편집]

안평의 무이정사에 수양대군의 행차.

아무리 심복치는 않지만 그래도 형님의 행차라 안평은 황 황히 문 밖에 형님을 맞았다.

수양은 가마에서 내리며 미소하며 안평의 인사를 받았다.

『오늘 사회(射會)가 있다지? 나도 좀 구경하세.』

이 형님의 말에 안평은 좀 어색한 듯이 미소하며 정자를 돌아서 후원에 열린 사회장으로 형님을 인도하였다.

안평의 인도로 수양은 사장으로 돌아갔다. 차일 아래 남향 하여 중앙에 호상(胡床)하나가 놓여 있고, 그 좌우 경기자는 청과 홍으로 나뉘어서 동서에 갈려 있었다. 하인들은 수양 의 자리를 마련하느라고 돌아간다.

그 동안 수양은 위에 친 차일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안평 을 보았다.

차일에는 미리(龍)를 수놓았다. 안평의 몸에는, 흡사히 용 포와 비슷한 청포가 입히어 있었다.

수양은 한 번 거기 눈을 스친 뒤에는 천연스런 표정으로 준비된 자리(안평의 오른편)에 고요히 앉았다.

안평은 형님이 그 두 가지(차일과 옷)를 한 순간이나마 주 목하는 것을 알고, 잠깐 재미없는 안색을 하였다.

형제는 잠자코 경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 자리의 경기자 들이며 구경하는 문객들도 모두 뜻 안한 수양의 행차에 다 기분이 싱거워졌다. 이즈음 차차 이면적으로 불안하여 가는 세상 형편을 알므로 수양이 이 자리에 뛰쳐들리라고는 그들 도 의외였다.

수양은 표면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으로 경기를 보고 있었 다. 그러나 사실은 눈을 그리로 향하고 있는 뿐이지, 경기를 구경하는 것은 아니었다. 청이 나은지 홍이 나은지 전혀 의 식치 못하였다.

수양의 마음에 지금 걸려 돌아가는 것은 안평의 옷과 차일 이었다.

불쾌하였다. 아무리 자기의 문객과 겸인들만 모인 자리라 할지라도 감히 용을 수놓은 차일을 치랴. 용포를 본뜬 옷을 입으랴.

잠시 (전혀 의식을 못하면서) 눈을 경기하는 데 붓고 있다 가 수양은 벌떡 일어섰다.

『활을 보니 나도 한 번 쏘고 싶군.』

차차 불쾌하여 가는 자기의 기분을 싹이기 위해서였다.

형님의 안색 때문에 안평도 내심 불안하던 차이다.

『그러서요.』하고 하인에게 명하여 가장 센 활과 살을 가 져오라 하였다.

등대 되는 활과 살을 가지고, 수양은 서너 걸음 나서 차일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옷소매도 걷는 듯 마는 듯 그러고 겨냥도 하는 듯 마는 듯, 살 다섯 대를 연하여 쏘았다. 그러 고는 과녁에 맞는지 안 맞는지도 주의하지 않고 (굳은 자신 이 있으므로) 활을 내던지고 돌아섰다. 돌아서서 차일 안으 로 들어서서 안평의 소매를 잡았다.

『국향(菊香)이나 맡으며 좀 뒤고 돌아가 보세.』

큰 소리도 아니요 명령적 어조도 아니었다. 그러나 안평은 불복하지 못할 압력을 느끼고 따라 일어섰다.

형체는 차일 밖에 나섰다. 나서면서 수양이 또 입을 열었 다—

『차일 참 좋을세. 이 차일은 대궐에 바치고 다른 것 치 게.』 한 뒤에 곧 뒤를 이어,

『지금 즉시 말일세.』하고 보태었다.

이것은 거역하지 못할 말이었다. 이 말에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땅에는 없다. 안평은 역시 머리를 숙이고 뒤를 따랐다.

형제는 뒤 산길로 나섰다. 차차 사람들의 소리도 안 들리 는 데로 찾아 들어갔다.

산국(山菊)의 향내는 그윽히 코로 몰려 들어왔다. 이 국화 덤불을 헤치며 형제는 묵묵히 더 깊숙한 데로 찾아갔다.

적지 않게 갔다. 인적 끊친 꽤 깊은 곳까지 이르렀다.

앞서서 가던 수양이 홱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팔을 길 게 폈다.

이 갑작스런 행동에 안평은 소스라쳤다. 부르짖음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아이 아!』

그 때 수양은 팔을 펴서 안평의 관복이 흉배(용을 수놓은 ) 를 낚아 뜯었다.

『기린(麒麟)흉배 있겠네그려.』

비교적 고요한 음성이었다. 그러나 안평은 대답지 못하고 몸만 와들와들 떨었다.

『좀 앉어 쉬게.』

수양은 어떤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러고, 그냥 몸만 떨고 서 있는 안평에게 앉기를 권하였다.

수삼차의 권고에 안평이 간신히 앉을 때에 수양은, 한마디 씩 한 마디씩 생각해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내 신분이 왕자이니 괜찮으리라고 심상히 여기고 하는 일이겠지만 남의 이목도 있으니 삼가게.』

다른 때 같으면 형님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무슨 톡 쏘는 대답을 할 안평이었다. 그러나 직전에 겪은 두 가지의 일은 안평으로 하여금 아무 대답도 못하게 하였다.

수양도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있었다.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자네, 이즈음 절재(節齋─김 종서)와 너무 자조 왕내한다 고 항간에 말이 많데. 자네도 절재의 위인을 짐작치 못하 나? 예전 절재가 헌묘(獻廟─태종)께 대해서며 영묘(英廟─ 세종)께 대해서 양녕백부를 얼마나 참소했는지 자네도 알겔 쎄그려. 양녕백부가 무슨 흠절이 있는 분인가. 청풍명월 같 으신 영녕백부의 기백이야 천하에 모를 사람이 없는데, 절 재인들 그걸 몰랐겠나? 그러면서도 참소 또 참소, 그 더러 운 심사를 생각하게. 아첨해서 고임받기 위해서 남을 참소 한다, 죽을 구덩이에 집어넣는다—양녕대군을 죽입시다, 죽입 시다, 얼마나 참소했는가. 자기가 고임 받자고 남을 참소—참 소도 죽이자는 참소를 하는 그런 마음보를 가진 사람과 가 까이 상종하는 건 이롭지 못한 일일세.』

수양은 여기서 말을 끊었다. 그러고 안평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표정에 좀 다른 움직임이 있기를 바라고 들여다보았다. 그 러나 안평은 입을 뾰로통하니 비꼬고 눈을 푹 내리깐 채—입 으로 대답은 안 하나 마음으로 여전한 불복의 표정이었다.

수양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고 말일세, 자네가 지금 절재와 가까이 상종한다 하 나 그 사람됨이 그런 이상은, 언제 자네를 해하려고 참소하 고 모해할지 어찌 알겠나. 사람의 천성은 바꾸지 못하는 법 이라, 지금 자네와 상종하는 게 잇속이 있을 듯 싶으니 상 종하지 장차 다른 사람과 상종하는 편이 이로울 것 같으면, 그 때는 자네를 배반할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 맛 눈치, 지각은 자네도 있음직 하이그려.』

그냥 안평의 얼굴을 보면서 말하였다. 그러나 안평의 얼굴 은 여전히 뵤로통한 채로 변함이 없었다.

수양은 또 입을 열었다—

『또─또 다른 일을 생각해 보세. 우리 돌아가신 아버님 (수양은 「세종」이라지도 않고 「영묘」라지도 않고 아버 님이라 하였다)의 단 의꼭지 장손 되시는 우리 조카님, 우리 전하—그분이 잘 되서야 우리 문중(종중이라 하지 않았다)이 창성하고, 그분이 복 누리서야 우리 문중이 영화로운 것이 아닌가. 그분께 불행이 계시면 우리 눈 중의 불행이요, 그분 께 불길한 일이 생기면 우리 문중의 곤란이야. 우리 문중이 합력해서 그분 잘되시도록 그분께 복 내리시도록 해 올려야 할 것일세. 이 점도 서로 잘 알아서—』

그 뒷말이 좀 힘들었다. 하기 매우 어려운 말이었다. 한 순 간 주저한 뒤에, 천천히 뒤를 꺼내었다—

『남의 농락에 속아서 자멸지도를 밟지 않도록. 남에게 속 아서 화를 스스로 사지 않도록—』

과연 안평에게서 대답이 튀어져 나왔다. 맞서는 말이었다.

『형님. 지금껏 잠자코 듣고 있으니까, 형님은 혼자서 올려 치고 나려치고 별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마는, 난 온 무슨 말씀인지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오이다. 절재가 어쩌니 참 소가 어쩌니 무슨 말씀인지—』

수양은 곧 대답하였다—

『스스로 마음에 묻게.』

『물어야 그렇지. 절재는 우리 나라 칠재 개척의 영웅, 용 흥지지(龍興之地)를 회복해서 우리 땅으로 만들은 은인이 아 닙니까?』

『그게 영묘의 공적인가 절재의 공적인가?』

『영묘의 분부로 절재가 한 일이지요.』

『여보게. 말을 가지고—말재간을 가지고 말다툼을 하랴는 게 아닐세. 내가 한 말이 마음에 짚이는 데가 있으면 재고 삼고하란 말일세.』

『재고 삼고는 커녕, 십 고 이십 고를 해야 그렇지요.』

수양은 눈을 번쩍 들었다. 노염에 불붙는 눈찌가 나타나려 하였다. 그러나 즉시로 그것을 삭였다.

한 순간 주저하고 입을 열었다—

『다른 말은 그만 두고, 절재는 만고의 흉물, 더욱이 게다 가 불측한 심사까지도 품은 듯싶은 점이 많아. 그래서 근근 주상께 계청해서 군측에서 제거할까 하는데. 자네가 그냥 절재와 가까이 사귀다가는 공연한 화가 자네게까지 미칠지 도 모르겠기에 미리 말해 두는 걸세. 나라의 휴척으로 그런 사람과 친근한 때문에 결련이 되었다면, 말대까지의 치욕이 니 그만치만 알아두게.』

어떻게 보자면 몹시 경망한 말과도 같은 이 말이지만 수양 은 이 말까지 하면 혹은 안평도 내심 저퍼하는생각이 들어 서 마음 달라지지 않을까 해서 이 말을 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수양은 속으로 울고 싶었다. 아무런 말을 할지 라도 안평의 뾰로통한 마음은 달라지는 것 같지가 않았다.

수양은 해가 저물어서야 무이정사를 나섰다.

전혀 허사였다.

안평을 달래보기도 하였다. 위협적 언사도 써 보았다. 의리 와 인정으로서 효유해 보기도 하였다. 동정도 빌어보았다.

그러나 안평은 끝끝내, 자기는 아무 것도 모르고 따라서 수 양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겠다는 태도를 버리 지 않았다.

민망하였다.

설사 다른 별 짓이 없다 할지라도 김 종서는 국가 쇄신상 국가 확정상 제거하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다. 하물며 수양 자기를 배척하는 위에, 자기를 배척하기 위해서 더 무서운 마음까지 품었음에랴.

이 절재를 제거하려매 안평은 왜 함께 덧묻으려 하는가.

그만큼 알아듣도록 타이르고 책망까지 하다시피 했는데 그 냥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은 웬 셈이냐.

안평의 심사는 얄미웠다. 수양 자기를 반항하려는 심사라 든지, 또는 더 높은 데를 반항하려는 심사든지를 생각하면 얄밉기는 얄미웠다.

그러나— 문득 생각났다. 어렸을 적에 아버님의 품안에서 어머님의 품안에서 함께 놀고 함께 자라던 그 정에 대궐의 후원을 손 목을 잡고 나비를 잡으려 돌아다니던 그런 추억— 어렸을 적부터도 비꼬아진 성격이 없는 바는 아니었지만 한 부모의 아래서 함께 자라던 그 정애가 무럭무럭 상기되 어 장차 실행될 확청행동에 있어서 안평이 덧걸려 들어간다 하면 그것은 참지 못할 일이었다.

『손을 놓아라.』

『떨어져라.』

그만큼 말하는데 왜 그냥 붙어 있으려 하느냐. 이것을 떼 는 재간은 없을까, 몹시 기분이 무거웠다.

언짢은 기분, 불쾌한 기분, 걱정스런 기분, 노여운 기분—가 지가지의 나쁜 기분이 마음속에 뒤서리어 돌아갔다.

이런 좋지 못한 기분 때문에 마음 불편할 때는 언제든 양 녕백부를 찾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일어나는 수양이었다.

수양은 행차를 백부의 댁으로 가자고 분부하였다.

양녕은 수양의 마음이며 사람됨을 잘 안다. 아버님 세종대 왕과 백부 양녕대군의 두 분은 수양의 입장을 잘 알며, 수 양의 심경을 잘 이해하며, 수양의 고충을 늘 동정하는 것이 었다. 「울분」이라고 형용하고 싶은 지금의 심경을 백부의 앞에 피력하였다.

『백부님. 안평과 김 종서를 떼어낼 수가 없겠습니까?』

안평과 절재의 새세 특별한 관계가 있고, 그 결합된 관계 가 지적하는 바 목적까지 설명한 뒤에 수양은 이렇게 하소 연하였다.

『백부님도 무론 잘 아시겠지만 안평은 누가 뒤에서 줄잡 아주는 자가 없으면 계자씨만한 일 한가지도 하지 못하는 위인이 아니오니까. 종서와만 떼면 안평은 손가락 하나 어 떻게 움직여야 할지 제 판단은 못 가질 위인이 아니오니까.

떼고 싶어요. 아니 떼고 싶을 뿐 아니라. 꼭 떼어야겠어요.

그런데 제게는 뗄 방침이 생각나지를 않습니다그려.』

『너뿐 아니라 영묘가 계셔도 그 방책은 생각해 내지 못하 리라. 김 종서는 스스로는 떨어지지 않을 위인이고, 안평은— 안평도—둘 가운데 하나이 이 세상에서 없어지기 전에는—안 타깝기로 앞이 딱 막힌 위인하고, 멧돼지 같이 완미하고도 음흉한 위인이고—』

백부는 안평을 지극히 미워한다. 뭇 조카님 가운데 선왕(문 종)과 안평은 양녕이 진심으로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 가 운데 선왕을 싫어한 것은 선왕의 마음이 왕자다운 긍휼성이 없고 장자다운 관대심이 없고 대인다운 활달이 없고 유자 (儒者)다운 훈계성이 없고 한낱 시정의 여편네 같이 투기심 많고 의심 많고 배타심(排他心) 많은 점을 싫어한 것으로서 요컨대 일국의 국왕으로서의 기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평을 싫어한 것은, 안평의 온 사람됨을 다 밉게 보기 때문이었다. 비꼬아지도 남을 긁기 좋아하고 깊은 꾀 도 없이 음모를 좋아하고, 게다가 주접대고 주착 없고—그 위인의 일에서 십까지를 죄 싫어하고 미워하였다.

그런지라, 일찍이 아우님 되는 세종대왕께도 늘, 만약 장차 동궁(문종)이 누구를 의심하려면 안평이야말로 의심할만한 사람이라고 아뢰고 하였다. 성격상으로도 양녕과 온갖 점에 있어서 정 반대였다. 이것이 더욱 양녕으로 하여금 안평을 싫어하게 한 큰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던 안평이, 이전 양녕 자기가 예언한 바와 같은 일을 하는 형적이 분명하다고 할 때에 양녕은 자기의 예언이 불 행히도 적중한 데 탄식하였다.

『그러나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물론 종서는 없애버려야 할 게지. 이건 내 사삿원혐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마는 종서의 위인이 이전 영묘께 대해서 얼마나 이 나 양녕을 없애버리자고 야단을 쳤느냐. 종서인 들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나를 없애 잔 게 아닌 건 저도 알겠지. 내왕(乃王)께 영합하고자 제 더러운 소인의 마음으 로 성인(聖人) 영묘(세종)의 마음을 촌탁해서 나를 없애자는 게 내왕께 굄받는 방도라고 생각하고 애매한 나를 죽이자고 야단을 하다가 도리어 영묘께 엄책을 듣지 않았느냐. 심사 이런 인물이 국가에 재상으로 있으면 나라의 꼴이 무엇 되 겠느냐. 이번의 흉심은 차치하고라도 그런 인물이 국정을 맡아보았다가는 나라를 망칠 일이니 없애버려야지. 하여간 평생을 노안(怒顔)을 나타내 보지 않은 황정승(황 희)도 늘 절재에게는 책망이 지엄했고 중인의 앞에서도 치욕을 늘 주 고 했고나.』

『네, 저도 잘 압니다. 문제되는 것은 안평이올씨다. 절재 만약 법에 엎드리게 된다면 그 심술이 저 혼자 당할게 아닙 니다. 반드시 안평을 끌고 들어갈 겁니다. 그것을 어떻게 합 니까. 지(智) 없이 용(勇) 있고 의(義) 없이 욕(慾)있는 위인 이오라 이모저모 한 모도 쓸데는 없지만, 안평을 끌고 들어 가면, 이 일을 어쩝니까?』

여기서 수양의 우울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양녕은 파안일소 하였다.

『너는 용도 없고 지도 없구나. 선참후주해 버리려므나.』

『네?』

『못 들었으면 그만 둬라.』

못 들을 까닭이 없다. 그리고 양녕도 참으로 못 들은 줄 알았으면 다시 한번 말해 주었을 것이었다. 들었겠기에 흐 려버리고 만 것이었다.

과연 세상을 더 오래 살았으니 만큼 양녕의 의견은 수양이 생각도 못하였던 곳을 암시하여 주었다.

흐르던 물이 등에 막혀서 못 흐르다가, 동이 터지기 때문 에 한꺼번에 흐르듯—안평의 문제 때문에 해결방책이 막혀 있던 것이 이 한 마디로 한꺼번에다 해결되었다.

『그런 탐욕 하나밖에는 아무 것도 없는 위인이 어떻게 육 진 개척의 위업을 성취하였는지, 참.』

『그러기에 말이로다. 영묘가 사람을 알아보시는 안목은 귀신 이상이었느니라. 도대체 다른 일보다도 영묘께서 제 삼자(子)로서 사위(嗣位)에 오르시기를 수락하신 그 놀라운 안목을 보아라. 남을 알아보기도 힘들지만, 사람이란 자기 스스로를 알아본다는 건, 대 성인이 아니고는 못하는 법이 니라. 본시 내가 장자(長子)이니만치 순서대로 내가 먼저 사 위에 섰다가, 헌묘(獻廟)의 뜻이 나를 폐하고 제 삼자를 택 하시고자 하실 때, 만약 영묘께서 당신 스스로를 잘 아시지 못하면—당신이 이 나 장자보다 낫다고(優) 스스로 굳게 믿 으시지 않았으면 그 의리 굳으신 마음에, 내가 폐사(廢飼)되 고 당신이 대위(代位)하시겠다고 승낙을 하셨겠느냐. 당신이 이 毗아들 되는 나보다 썩 나으시다고 굳게 믿으셨기에 대 위를 승낙하셨지, 그렇지 못하고서야 그 굳으신 의리로써 한사코 거절하시지 승난하셨겠느냐. 당신 스스로를 그만치 아시는 분이니까, 남을 알아보시는 안목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

『영묘 육진 개척의 큰 뜻을 품으시고, 만조의 백료 중에 서 골라내신 것이 절재 김 종서가 아니고는 이 일을 시킬 사람이 없고, 절재 아니고는 이 일을 치를 사람이 없다 하 신 말씀—삼공육경에서 비롯해서 미관말직에 이르기까지 모 두 이건 못할 일이라고 반대하는 가운데서, 김 종서를 골라 내서 종서에게 시키섰구나. 모두 깜짝 놀랐지. 그 지혜라는 건 약에 쓰려도 없는 위인이 어떻게 이 큰일을 감당하랴 하 고. 그랬더니 뒤에 보니, 놀라운 안목, 지혜 있는 사람이면 이 일을 감당을 못해. 도저히 못할 일이라고 겁이 앞서고 겁이 앞서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니라. 지혜 없기 때문에 부임을 했고, 그 막하에 꾀 있는 사람들을 속하게 해서, 멧 돼지 같은 밸과 막료의 지혜로 앞을 당하고, 영묘는 서울 계시면서 세밀한 점까지 모두 친히 지휘하시고—그 때 그 세 밀한 지휘는 나는 대개 잊었지만, 정원일기를 뒤져보면 알 리라. 절재에게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뇌물을 질겨합니다.

너무 국탕을 남용합니다. 연해 올라오는 참소를 모두 깔아 버리시고 연해 칭찬만 하시고, 친찬 뒤로 지휘를 겸하셔서 이 지혜는 없는 절재의 마음을 흡족히 해주시고, 색북생활 에 만족하도록 해 주시고—과연 영묘 아니면 이 일을 시키지 못하고 절재 아니면 그 임에 당하지 않고—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게다. 육진개척은 이렇게 해서 됐구나. 국가에 대해 서 공적도 크기도 하지.』

『저도 그 공적을 압니다. 그 공적을 가지고 노후만 더럽 히지 않으면 그 공적을 압니다. 그 공적을 가지고 노후만 더럽히지 않으면 그 공적이 죽백에 새기게 될 것을.』

『현묘(文宗)의 실수니라. 유난히 괴벽한 고명을 하셔서 종 서의 자긍심을 길러 주신 게 실수니라.』

수양은 머리를 숙였다.

『수양은 들지 말라.』

현묘 고명 때의 억울하던 회상이 획 마음을 스쳤다. 수양 자기를 꺼리면 하다 못해 양녕 백부께라도 고명을 하셨던 들 김종서로 하여금 유아독존의 만심을 품게 하지 않았을 것을.

『백부님. 저는 이즈음 매일 용안을 우러릅는데, 우러르면 우러를수록 애연해요. 영묘 승하사신 이후로는 누구 한 번 머리를 쓸어 올린 분도 없이 귀염 한번 못 받아 보시고—백 부님, 저 어렸을 적에 늘 절 보시고는 요 녀석 요 녀석 하 시고, 좀 자란 뒤에는 이 녀석, 이 녀석하고 하시지 않으셨 여요? 근년 제가 자라고 보니, 그런 말씀 그런 호령 안하십 니다그려. 그게 제겐 쓸쓸해요. 요놈하고 한번 꾸중하시는 걸 듣고 싶어요. 어린애의 응석—우리 전하는 그런 재미 한 번 못 보시고, 보수 겨우 열 셋에 벌써 노숙한 분 같으신 데가 많이 뵈어요. 우리 어렸을 적과 왜 그렇게도 다르겠습 니까. 제 뜻대로 만할 수가 있다면 우리 전하는 강녕전으로 들여 모시고, 장발하시기까지 단 일 이년간이라도 보통 소 년들과 같으신 자유로운 생활을 하시도록 해 드리고 싶어 요. 어렸을 적에 어린 재미 하나를 못보고 건느고, 장발하면 일생에 무엇하나 잃어버린 것 같지 않을까요? 그 재미 한번 들여보고 싶어요.』

『네 성미가 내 성미와 비슷해서 그런 생각을 하느니라.

나도 본시 세자로 책봉되어 까다롭고 결박된 생활을 하다가 문득 영묘께 사위를 물려 드리고자 일부러 차차 난행(亂行) 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일부러 시작한 노릇이지만 그 길 에 발을 들여놓고 보니, 인간지락이 거기 있어. 그 재미를 맛보고 왕후 정상이 두 무에냐, 인간 수효 억조창생이라 해 도 나만치 복 있는 사람 없으리라.』

수양은 백부를 우러러보았다. 일 국의 세자라는 존귀한 위 를 헌신같이 차 던지고 그 여생을 산수간에 자유로이 돌아 다니며 호활 노락히 보내는 이 노인.

그 견식이 부족하랴. 학식이 부족하랴. 그러나 그것은 그런 듯이 내세우지 아니하고 부귀와 영화만을 누리고 인간 세계 의 군잡스런 문제에서는 멀리 떠나서 지내는 이 존귀한 노 인. 백부는 수양 작기에게,

『너는 나를 닮아서……』

라 한다. 물론 호활뇌락하고 작은 절에 구애되지 않은 점 은 닮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는 속세의 속무에 연연 하여 이 백부와 같이 모든 잡된 사무에서 초연할 수 는 없 었다. 돋는 달, 지는 해나 즐기며, 천하를 도외시하고 지내 기에는 자기는 속세에 너무 집착이 크다.

—어떻게 해서든 이 국가를 더 훌륭하고 좋은 국가로 만들 어 보자.

그의 마음에는 이 생각이 강력히 자리잡혀 있어서 이것만 은 버릴 수가 없다. 신분으로 말하자면 자기나 이 양년 백 부나 꼭 같다. 왕의 지친으로 그 지위든 부귀든 백부와 추 호 다른 데가 없다. 자기도 세상 잡무를 내던지고 산수간에 놀면, 어디 조금도 백부와 다른 데가 있으랴. 활쏘기에 능하 고 사냥을 즐겨하고, 호활히 놀기를 즐겨하고, 술을 즐겨하 고—이런 성벽까지도 흡사하다.

그러나 자기는 백부와 같이 산수간에 놀자면, 국사가 근심 되고, 좋은 친구와 술상을 대하려면 정치 담이 먼저 나오고 —요컨대 인선(人仙)이 될 수는 도저히 없음을 어찌하랴.

수양은 길이길이 탄식하였다. 이 자기의 정치와는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침착성과, 양녕 백부의 신선 같은 심경과 및 안평의 헛된 욕심—이 세 가지를 비교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뒤서리어 마음은 여전히 무겁고 어지러웠다.

三十九[편집]

수양이 안평을 무이정사로 찾아 본지 며칠 뒤부터 김종서 등의 움직임이 좀더 활기를 뜨기 시작하고 그 행동이 차차 나타나게 보여 갔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순서로 어떤 행동을 취하려는가. 어떤 수단을 밟으려는가. 수양의 엄중한 감시의 눈은 그들의 위 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태종 정사(太宗定社) 때와 같이 쿠데타 행위로 나오는 것이 가장 귀찮은 문제였다. 그렇게 일이 돌발하여 이쪽에서 손 쓸 새가 없이 결착까지 지으면 속수무책이었다. 이 방면을 가장 엄중히 경계하였다.

그러는 한편 자기가 먼저 숙청 행동을 취하면 그 뒤에 자 기가 써야 할 방침에 대해서도 착착 진행을 시켰다.

자기의 배하에 끌어들여야 할 사람도 착착 골라서 접근하 였다.

정치의 대 방침에는 수양 자기가 몸소 당하여야 할 것이었 다. 그 아래는 사무적으로 재능 있는 인물들을 배치해야 할 것이었다.

첫째로 현재 우참찬(右參贊) 정 인지(鄭麟趾)를 끌어들이기 에 성공하였다.

정인지는 선왕께 고명 받은 신하 가운데 가장 정치적 기술 에 능할 뿐 아니라 이 나라의 국론을 잡고 있는 집현전(集 賢殿)의 원로학자로 또한 수양이 연경에 갔을 적에 연경 한 림(翰林)들에게서도 정 인지의 이름을 여러 번 들었는지라 이 점으로도 크게 평가할만한 사람이었다.

정 인지는 비교적 쉽게 수양의 날개 아래로 들어왔다.

그 밖 집현전 학사 중에 신 숙주는 물론이요, 성 삼문, 박 팽년 등 몇 사람과도 가까이 하여 그들을 자기의 품 아래로 넣었다.

권 람이며 한 명회는 본시부터 수양의 수하에서 활동하던 사람이라 다시 말할 것도 없었다.

이렇게 자기의 산하에 넣은 사람 가운데도 수양은 세 가지 의 성격을 보았다.

하나는 수양의 아래 붙어서 이 국가 흥기의 대업에 조력하 려는 충심에서 수양을 따르는 패였다. 현하에 침체된 국정, 침체된 세태를 활기 있게 하여 옛날 세종대왕 때와 같은 지 치(至治)를 보고자 하는 무리. 수양의 역량과 수완을 믿는 집현전 학사들이 대개 이 편이었다.

또 하나는 그 반대로 수양에게 딴 뜻이 있는 듯이 해석하 여 수양에게 붙어 두어야 되겠다는 생각 아래 온 무리였다.

한 명회, 권 람이며, 그 밖 이즈음 모아들인 무사가 대개 이 런 패였다.

나머지 하나는 그 중간으로 수양의 진의가 어디 있는지는 똑똑히 모르나 수양께 굄 받으면 좌우간 유리하고 수양께 협력하는 편이 국가에도 좋다는 생각을 가진 무리였다. 정 인지 그 밖 집현전 소년의 몇몇이 이런 사람들이었다.

이 무리들은 그 생각하고 바라는 바는 각각 다르지만 그들 은 한결같이 근근 수양이 일대 숙청 행동을 일으킬 것은 굳 게 믿었다.

더욱이 상대 쪽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그러면서도 수양 측에서의 감시가 엄중하므로 다른 행동은 취하지 못하고 그 대신 연하여 수양 일파에게 대한 고약한 데마만 날리고 있 었다. 그들은 수양 측의 감시 때문에 쿠데타적 행동에는 나 올 틈새가 없고 그 대신에 세상 물론을 일으켜서 수양으로 하여금 세상의 의심을 받게 하고 이리하여서 수양을 먼저 떨구어 버리고─이런 순서로 나오려는 모양이었다.

이 소식은 매일 수 없이 수하인들에게서 수양의 귀로 들어 왔다. 그리고 수하인들은 어서 바삐 수양의 결심을 재촉하 고 결단을 재촉하고 분기를 재촉하였다. 저쪽에서 단지 언 사로만 농락하여 수양의 세력을 잃게 하려는 동안은 괜찮지 만 저편에서 먼저 실질적의 행동을 취하면 이 편이 몰락되 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이런 일에 어서 먼저 손을 못 쓰면 ─못 써서 저쪽에게 먼저 쓰게 하면 이쪽은 역적의 이름을 듣게 되는 것은 정한 일이었다. 이러기 때문에 수하인들은 차차 초조하여 가서 수양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수양은 움직이지 않았다. 감시만 엄중히 하여 저쪽 에서 먼저 손을 쓰지 못하게만 하고 이편에서는 아직 그냥 방관하였다.

몇 번 종서를 빈청(賓廳)에서 만났다. 종서는 언제든 적의 (敵意)품은 불관(不關)의 태도를 취하였다.

황보 인은 언제든 송구한 듯 억지의 웃음을 만면에 장식하 고 안절부절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이양, 민신, 등 선왕의 고명을 받고 지금 수양 배척의 운동 (김종서의 날개 아래서)을 도모하는 그들은 역시 적의와 불 관심의 태도를 아울러 가지고 수양을 대하였다.

안평은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다. 안평이 입궐치 않고 수 양을 찾지 않고, 수양 역시 안평을 찾지 않아서 서로 대면 할 기회가 없었다.

지금의 이 불안한 상태(나라와 및 정부의)는 내관들의 입을 통하여 왕께 까지 상달이 된 모양이었다.

내관 가운데도 수양에게 호의 가지는 패와 반대하는 패가 생긴 모양으로 왕께 상달된 소문은 수양을 나쁘게 말하는 것과 좋게 말하는 것─두 가지가 있었다.

왕의 어린 마음은 이런 소문에 대단한 불안을 느꼈다. 당 신은 수양숙을 굳게 믿지만 풍설이 하도 가지가지라 대중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당신이 수양숙을 믿으니, 그러고 수양숙 이 태산과 같이 튼튼하여 믿음직하니 근심할 바는 없지만 그래도 풍설이 어지러우면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 다. 그런 위에 왕의 유년기와 소년시기의 생장 환경이 환경 이요 거기서 짜아낸 성격 아래 이런 불안을 받으면 당신이 믿는 수양께도 당신의 심경을 호소해서 그 불안을 타개할 생각을 않고 당신 혼자 가슴속에 불안은 감추고 참아 나가 는 것이었다.

수양은 여전히 조카님께 쾌활히 대하고 아무런 불안도 드 리고 싶지 않았지만─그러고 그렇게 하느라고 애썼지만 왕 은 당신의 불안을 당신 혼자서 감추고 겪고 있었다.

왕께 대한 대신들의 태도도 전보다 달라졌다. 친애한 맛이 란 손톱만큼도 없고 유난히 모(角)가지도 의식(儀式)적이요 은근하였다.

수양을 대하기도 몹시 어려웠다. 믿음직하고도 마주 대하 면 무한한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이 즈음은 동무로서의 정 종(매부)이 가장 반가웠다. 아무 불안도 없고 압박감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오직 정종 한 사 람 뿐이었다.

한 때 소년다이 피어가던 용안은 근자에 다시 노성해 갔다.

이러는 동안에 구월 달도 다 지나가고 새달이 잡혔다.─계 유년 시월.

四十[편집]

수양은 드디어 마지막 결심을 하였다.

첫째로는 용안이 나날이 노숙해 가고 꾹 구중을 봉한 채 아무 하교도 없이 사위에 대해서 경계하는 기색만 농후하여 가는 것이 보기에 민망하였다. 숙청할 일을 얼른 숙청해 버 려서 왕께 안심을 드리고 다시 소년다운 활기를 회복하도록 해 드리어야 할 것이었다.

둘째로는 저편 상대 쪽을 경계만 하고 감시만 하기가 수양 에게도 차차 숨이 차왔다. 저편을 경계하자니 이편도 언제 까지나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저편은 저편으로 이편의 감시가 하도 엄중하니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착수하지도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지나자면 십 년이고 이십 년 이고 서로 대치하여 있기만 할 밖에는 도리가 없다. 끝장날 날이 없다. 이것이 차차 지루하고 숨이 찼다.

세째로는 이편에서 경계만 하는 동안에 저편에서 몰래 선 착 수를 하게 되는 날에는 큰 변이다.

이런 귀찮은 일들을 제거하기 위하여서 이편에서 선착수 하기로 결심을 한 것이었다.

본시는 저편에서 무슨 실질적의 행동을 시작할 때에 그 꼬 리(증거)를 잡아 가지고 일어서려고, 아직 유예미결 하던 바 였다. 그러나 일전에 양년 백부가 한말! 하다가 흐려버린말,

『선참후주하려므나.』

하전 그 암시는 수양에게 광명을 주었다. 벼락치듯 이쪽에 서 일을 실행해 버리고 그 뒤에 왕께 아릴 것—이 방책이 듣 고 보니 최상 책이었다. 저편에서 실질적으로 움직이기를 기다리다가 덜컥 저편에서 먼저 손쓰는 경우에는 다 망쳐 보리는 일이며 더욱이 안평의 문제로—만약 저편에서 움직이 는 것을 보아 착수하여 저편을 국문을 하고 하는 경우에는 그 심술 곱지 못한 위인이 저 혼자 끌려들기가 싫어서 안평 을 끌고 들어가면 무가내 안평에게도 국법에 의지하여 극형 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포상잔이라는 이 비극을 피하 기 위하여서 이편에서 벼락치듯 일을 결행해 버리기로 결심 을 하였다.

시월 초하룻날.

아침부터 내려 붓는 비가 이 땅에는 쉽지 않은 현상으로 그냥 오후까지 줄기차게 내려 붓는다. 장마 때 이외에는 한 나절을 비가 계속 오지 않고 혹 온다 칠지라도 혹은 가랑비 혹은 소나기로 알맞추오는 이 땅에서 그 격식을 무시하고 아침부터 소나기가 오후까지 그냥 쏟아진다.

이런 날 수양은 자기의 결심을 실천에 옮기고자 그 뜻을 한 명회에게 피력하였다. 조용히 이런 의논을 하기에는 아 주 적당한 날이었다.

김 종서 등 몇몇(아홉 사람이다)을 없애 버릴 것은 기이 작 정한 방침이지만 어떤 수속을 밟아야 할지, 어떤 방식을 처 치를 할지는 그 생장이 고귀한 수양으로서는 잘 알지 못하 는 바였다. 이 실천 순서를 한 명회와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나이 사십이 지나도록 맨 하급 관리 생활과 허튼 생활만 해 왔고 그러나 또한 지혜 덩어리인 한 명회는 이런 방면에 있어서 종횡의 기지를 수양께 알려 바치는 것이었다.

『이보게. 저자들은 다 합하면 아홉 명이라 하지만 원흉 김 종서만 없애버리면 뒤는 말할 게 없는데 어찌해야 되겠 나?』

이 말에 대하여 한 명회는 대답하였다—

『이렇게 합세요. 옛날 태종의 정사(定社)의 선례도 있거니 와, 아무리 성재(聖裁)를 받아 가지고 일을 한다 해도 정부 에 문의하면 역시 이렇다 저렇다 잔소리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런 일 다 집어치고 어는 좋은날 택해서 일을 실 행합는데, 어느 좋은날 택해 가지옵고 그 날 장사 몇 명을 택해 좌상(左相)댁에 매복시켰다가 좌상 퇴궐 귀택하기를 기 다려서 일을 합는데 불문 곡직하고 「어명」소리 한 마디로 좌상은 없애 버려야 하지 않겠읍니까?』

『그렇구말구.』

『그런 뒤에는 장사들을 사대문에 지켜서 좌상댁 사변이 문안에 소문 못 들어오게 하고 나으리께서는 곧 어전에 상 달합시고 그 성재를 받아서 없애버릴 사람들을 어명으로 대 궐로 불러 들여 국문 국사 다 쓸데없이 벼락치듯—』

이런 계획에 있어서 명회는 치밀하기가 짝이 없었다. 그 명회의 꾸며낸「실행 순서」라 하는 것은 요컨대 수양이 세 운 안인「선참후주」를 사무적으로 치밀하게 순서 따져서 실행 순서 안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 의견으로 말하자면 원 흉 김 종서를 불문 곡직하고 제거해 버리고 그 뒤에 왕께 수양이 직접 김 종서를 처치한 이유를 계달하고 그 뒤 김 종서와 연락하여 수양배척의 운동을 이면으로 꾸며나가던 사람들을 대궐로 불러 들여서 어명으로 치죄하자는 것이 원 줄거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밟아야 할 사무적 순서를 꾸 민 것이었다.

『거기 씌울 사람 누구는 무엇을 하고 누구는 어디 지키고 하는 건 죄 자네가 맡아서 하게.』

대략 순서가 결정된 뒤에 수양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건 소인이 하오리다.』

『또 일자는 중(重)십이로 이 달 열흘로 하기로 하고.』

『네……』

대략한 의논은 여기서 끝났다.

이것을 고 끝막음하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려 할 때에 한 명회가 무엇에 좀 미진한 듯이 수양을 쳐다 보았 다. 그 눈 치를 알아보고 수양은 물어 보았다.

거기 대해서 명회는 잠시 주저한 뒤에 입을 열었다—

『나으리. 안평대군은 어떻게 하실 작정이서요?』

수양은 대수롭지 않게—

『어쩔 것 있나? 모른 채 해버리고 말지.』

하였다.

『나으리. 그게 무슨 말씀이서요? 대군을 첫째로는 도리상 그냥 둘 수 없지 않습니까? 국사(鞠詞)없이 처리하니 대군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세상의 의혹을 어찌합니까.

좌상이 신기(玉璽)를 엿보았다고는 세상이 믿지도 않을 것 입고 설사 요행 이번에 그냥 지나게 된다 할지라도 이 뒤로 또 다른 김 종서가 또 생기고 하면 어쩝니까. 나무를 웃 동 이만 자르고 밑 동이를 그냥 두면 자른 보람이 어디 있습니 까?』

수양은 슬그머니 부정하였다—

『그건 자네가 모르는 소릴세. 내 동생이나 보호하자는 내 욕심 때문만이 아니라, 안평의 위인이 좁고 잘아서 뒤에 누 가 들추어내는 자만 없으면 움직일 생각을 못해. 김 종서만 없애 놓으면 안평은 저절로 가라앉고 말 위인일세.』

『그러기에 말입쇼. 대군은 스스로 아무 일도 못하시겠지 만 대군이 하도 남의 충동에 동하기 잘하는 분이니까 또 다 른 누구가 생겨날 게 아닙니까. 다른 김종서가 또 생기지 않으리까. 금상께오서 유충합시고 안평대군은 남의 말 잘 듣는 분 이옵고 또 비위 동할만한 일이니깐 다른 김 종서가 왜 생기지 않으리까?』

『그래도 김 종서의 일만 처리되면 겁나서 다시 덤벼들 자 도 잘 생겨나지 않으리.』

수양은 이 문제를 가볍게 치워 버리려 하였다.

그러나 명회는 쉽게 그 문제를 버리지 못하였다—

『나으리도 세상을 너무 홑으로 보십니다 그려. 누구든 죄 지을 때 이 죄가 장차 발각되리라고 생각하고 짓겠습니까?

자기만은 곱게 면하고 좋은 일 보겠다고 하는겝지, 하도 욕 심 낼만한 일이라 반드시 다른 김 종서가 생겨날 겝니다.』

『글세, 그렇게 말하면 그럴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안 그럴 걸세.』

수양은 그냥 피하려 하였다. 그러나 명회는 그냥 완강히 그 문제에 매어 달려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나으리도, 온. 어떤 근거로 안 그러리라고 하십니까?』

『……』

『네?』

『거저 그렇게 생각되네 그려.』

말에는 좀 걸렸다. 근거 없이, 이유 없이, 다만 안평은 건 드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부인하는 것이었다.

『나으리 화초밭에 김을 매는 사람이 잡초를 아주 뽑아 버 리지 않고 그 잎만 뜯어버리면 됩니까? 손 대인 김에 아주 뿌리까지 뽑아야지.』

『그럼 어떻게 하잔 말인가? 자네 의견은 어떻게 하여야 되겠단 말인가.』

『글세 뿌리를 없애 버려야겠단 말씀이 아닙니까?』

『비유로 말하지 말고 분명히 밝혀 말해 보게.』

『밝혀 말하자면 안평대군도 좌상 등과 같이 해얍지요.』

수양은 눈을 들어 명회를 보았다.

『안평도 처치한다?』

『그럼요.』

『김 종서와 같이 말이지.』

『……』

명회는 그렇단 뜻으로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수양은 이 대답에 대하여 무거운 눈치를 명회의 얼 굴에 부은 뿐이었다. 그 눈치와 일반으로 마음도 사실 무거 웠다.

이 나라 벼슬아치들의 성미는 수양이 잘 아는 바다. 현재 자기의 수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물론이요 장차(일을 결행 한 뒤에) 다른 벼슬아치들도 지금 한 명회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진심으로 안평이 그냥 있으면 숙청의 본의를 잃은 것이라는 근심으로 이런 어조에 나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수양의 마음을 제 뜻대로 해석하여

「이리하여야 수양의 굄을 받으리라」고 생각하고 조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었다.

지금 김종서를 처치하려 하면서 여기서 예전 김종서가 부 왕(세종)게 양녕대군을 죽입시다고 성화 시키던 그와 흡사한 일을 자기가 스스로 당하는 기괴한 운명에 마주쳤다.

한 명회의 심정은 수양이 잘 안다. 명회는 이러함으로써 더 굄 받겠다는 것이 아니고 이러함이 첫째로는 국가에 안 전하고, 둘째로는 수양과 및 명회 자신에게 안전하다는 생 각에서 나온 것임은 짐작한다. 그러고 명회의 말에 일리 있 는 것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수양은 명회의 말과 같은 일을 실행하기는 싫었다.

그것은 결코 장차 악명을 남기기 싫다든가 하는 공명심에서 나온 바가 아니고 이런 일로 형제 상잔의 유혈극을 연출하 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서방, 한서방의 생각은 그렇지만 난 차마 내 동생을 어떻게 하라고 할 수가 없어. 이 일이 말하자면 이씨 왕실 을 흥성케 하자는 일인데 이씨 왕실 흥성케 하자는 일에 어 떻게 이씨 임금의 지친(至親)되는 사람을 해치는 일을 하겠 나? 못할 일이야.』

『그렇지만, 나으리, 세상사는 명분(名分)을 밝혀야 하는 겐뎁쇼. 좌상께만 죄를 씌우고 대군께는 아무 말도 없으면 명분이 흐려지고 명분이 흐리면 백성의 신망을 어떻게 얻겠 습니까. 백성의 신망이 없으면 나라를 처리하는 데 잘 되겠 습니까?』

수양은 머리를 숙이고 생각한 뒤에 대답하였다.

『하여간 난 못하겠네. 내 인정도 인정이려니와 우리 전하 께서도 유헌하시지 않을 게야. 그러니까……』

계속하는 말을 명회가 끊었다—

『그 게야 역시 좌상같이—』

선참후주하자는 뜻일시 분명하였다.

『다른 것보다도 내가 할 수 없어 하니까 그 이야기는 내 게는 다시 하지 말게. 듣기도 싫으이.』

『그래도……』

그래도 무슨 의견을 끼려는 것을 수양은 내려 씌우듯이 막 았다—

『그만 둬, 그만 둬. 누구 위해서 하자는 노릇이라고 내 동 생 해치겠나. 아예 다시는 말도 말게.』

내려 씌우는 바람에 명회는 말을 계속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수양은 내심 꽤 무거운 기분이 생기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명회는 지금 내려씌워 막아 버렸으니 입을 봉 하기는 할 것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의 사정으로 따져 보 아(명회든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서라도) 반드시 일어 날 문제였다.

이 일은 또 어떻게 처치해야 하는가? 이 나라 벼슬아치들 의 심정으로든 또는 전후의 사정으로든 안평을 처치하자는 의견은 크게 일어날 것이었다. 예전 양녕 백부 때는 양녕 백부는 처백 무후한 사람이었거늘 그 때도 그런 문제가 크 게 있었으니 이 안평에게는 더 맹렬히 일어날 것이었다. 진 실로 귀찮았다.

수양은 탄식하였다.

四十一[편집]

한 명회와 회견한 이튿날 수양은 신 숙주를 숙주의 집으로 찾았다.

안평(安平)의 일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한 명회와는 단지 그 꾀—지혜를 의논하였다. 유문(儒門)의 출신인 신 숙주와는 의리와 도덕이 겹친 끼를 의논하고 싶었다.

신을 거꾸로 신으며 뛰어 나오는 신숙주와 하게 조용한 산 정(山亭)으로 돌아갔다. 먼저 한헌의 인사 한 두 마디가 지 나간 뒤에 수양은 한 무릎 다가앉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뜻을 알아챈 숙주는 마주 다가앉으며 손을 내밀었다. 수양 은 숙주의 양손을 자기의 양손으로 꽉 잡었다—

『신서장(申書狀).』

연경(燕京)을 다녀왔으면 인제는 서장관이 아니었다. 그러 나 수양은 그냥 숙주를 「서장」이라 부르고 하였다.

『이 즈음 집현전이나 성균관(成均館)소년들 새에 어떤 말 이 돌아가나?』

숙주는 대답치 않았다. 난처한 질문이었다. 바른대로 말하 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또한 감추기도 어려웠다.

『응? 어디 바른대로 말해보게.』

수양의 얼굴에는 미소가 나타나 있었다. 기쁨을 나타내는 미소도 아니요 우습다는 미소도 아니요 또는 고소(苦笑)도 아니요—호기심으로 기다린다는 미소였다.

숙주는 주저하다가 매우 말하기 어렵다는 듯이 말을 더듬 으며 대답하였다—

『철없는 소년들의 말을 무엇을 괘념하리까?』

『그러기에 바른대로 알려달란 말이 아닌가? 내가 그런데 괘념하겠는가?』

『철없는 사람들의 말이 나으리께서 대보(大寶—욱새)를 엿 보신다고요.』

수양의 얼굴에 나타났던 미소는 한층 더 농후해졌다.

『고마울 세. 자네 입에서 내 뜻에 맞을 거짓말이 나올 줄 알았더니 들은 대로 말해 주니 참으로 고마울 세. 그러면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소인이야 나으리의 뜻을 모르오리까? 다시 안 물으실 지 라도……』

『그것은 그렇다 하고—』

수양은 자기의 손에 잡혀 있는 숙주의 양손을 마치 장난하 듯 주물면서 말소리를 더 낮추었다—

『안평대군의 일이 걱정일쎄그려. 저를 어쩌나? 절재의 심 술로 자기 혼자 죄를 쓰겠나? 안평대군을 물고 들어 갈겔세 그려. 그 아니 탈인가?』

숙주는 얼른 수양의 낯을 한번 쳐다보았다. 숙주의 생각으 로는 안평이고 누구고 간에 이번의 숙청에 방해되는 사람은 일소하여 버리고 싶었다. 조정의 인심이라는 것을 잘 아는 숙주는 지금 어린 왕이 위에 임한 이 기회에 한몫 보려는 사람이 비단, 모, 모, 뿐이 아님을 짐작한다. 수양이라 하는 튼튼한 기둥이 버티고 있기에 표면소동이 못 일어나지 만약 수양이나 한사람이던가, 혹은 수양이 엄중히 감시하고 있지 않으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울근불근 덤벼들 사람이 많다.

이런 왕이고 그 위에 또 한 아직 총각이니 이 왕의 신상에 여차 하는 일이 생기는 날에는 숙행(叔行)이 당연히 나설 차 례라 좀 눈치가 들은 어떤 숙(淑)들은 딴 궁리 수군거리는 형적이 보였다. 어느 숙에게는 누가 문객으로—누구에게는 누구가 문 객으로 필요 이상 자주 출입하는 형적이 뻔하였 다. 안평을 찾는 사람들은 이 나라의 정승들이라 가장 형세 가 급박할 뿐이지 안평이 없어지면 그 뒤가 또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수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수양의 그 명민한 관찰안도, 동기간의 문제에는 무디게 되는 모양 으로 수양의 생각은 지금 안평은(본시 주착없는 사람이라) 뒤에서 충돌하는 무리들 때문에 놀림감에 놀아나지 뒤에서 딴 사람의 충동만 없으면 잠잠하여 버릴 것이고 태평 무사 한 세월이 되리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수양이 지금 말하는 바「이 아니 딱한가」하는 것은 안평까지 걸려들 것을 근심 하는 뜻에 틀림이 없었다.

형님의 마음이 이러하거늘 동생은 사사에 형님을 배반하는 행위만 하는가? 일전에도 수양과 조용히 의논을 하던 때에 또 이 문제가 난 일이 있었다. 그 때 숙주는 수양께,

『죄에는 수(首)와 종(從)이 있압고 수범이 있아오면 종범 은 면사(免死)를 하게 되는 게라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면사 키 위해서 수범을 반드시 불러 넣으리다. 대군은 면치 못할 줄로 생각되옵니다.』

하였더니 수양은 질색을 하며 엄책을 하였다.

이 수양의 심경을 잘 아는지라 숙주는 수양께,

『만약 안평대군을 온전히 율론 하오면 국인이 승복치 않 을 터이오니, 논죄하는 마당에서 어명을 받자와 가까운 어 느 섬에 찬배를 보냈다가 국인들이 잊어버린 때쯤 해서 소 환(召還)하오 시도록 하오면 최상 책일까 하옵니다.』

하여 그렇게 하기로 내정하였다.

어차피 일을 결행하는 이상에는 이편에서 먼저 손 서야지 저편이 먼저 손쓰는 날에는 되려 뒤집혀 잡혀 이편이 패배 를 할 것이니 이편에서 먼저 손쓰되 중십일(重十日)인 시월 열흘날로 기일을 정하고, 결행하는 세목 절차에 관해서는 한 명회에게 꾀를 꾸미게 하게 하고, 지금의 정부에서 뽑아 쓸 사람과 제거해 버릴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신 숙주에게 맡기기로 하고, 장사패 지휘에는 홍윤성(洪允成)이 담당하기 로 하고, —이렇게 대게 담임 사항까지도 내정이 되었다.

그러나 장차 결행할 일이 어떤 일인지며 또 그 결행한 날 짜가 어느 날인지는 두드러진 몇몇 사람 밖에는 알지 못하 였다.

단지 수양의 놀라운 지배력과 감화력이 그들에게 작용되어 수양의 지휘에는 무조건으로 복종하려는 사상만이 굳게 뿌 리 박힌 뿐이었다.

四十二[편집]

시월 열흘날.

그 날 수양의 집에서는 경사(競射)회가 있다 하여 무사들을 불렀다.

사랑에서는 한 명회와 홍 윤성이 모여드는 사람들을 응대 하고 후원에서는 주효까지 준비하여 놓고 백여명이 모여서 일변 대작들을 하며 일변 사회의 예비 연습들을 하며 들썩 하였다.

수양은 내실에서 나지 않고 묵연히 앉아 있었다. 부인과 단 둘이서……

어제까지도 이 일에 대하여 아무 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급 기 그 일을 결행하려는 오늘에 이르러서 차차 가슴이 무거 웠다. 자기가 바야흐로 하려는 일은 나라를 위하여서요 사 직을 위하여서라 하늘과 땅에 부끄러운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이 일이 아직 조카님께 여쭈어 결재를 얻지 못한 일이요 또한 자기의 동생이 하나 걸려드는 일이다. 그것 때 문에 마음이 무거웠는가?

단순히 그렇지도 않았다.

오늘 행하려는 일 자체가 그다지 마음 냅뜨지지 않는 일이 었다.

그새 늘 사랑에서 한 명회며 권 람등과 수군수군 의논은 하였지만 부인에게는 오늘이야 비로소 그 내막을 알리었다.

그러매 부인은 올라 뛰다시피 하면서 기뻐하였다. 그 기뻐 하는 뜻을 알아보고 수양은 가슴이 선뜻하였다.

부인도 역시 지아버님의 참뜻을 모르고 자기 혼자의 해석 을 내기고 기뻐하는 것이었다.

부인은 지아버님의 하는 일을 그릇 해석하여 지아버님은 장차의 국왕 자기는 왕비가 될 그 예비 행동으로 해석을 하 는 것이었다. 분명히 「그렇다」고 입 밖에 나타내기까지는 않았다. 그것을 입 밖에 나타내는 것은 (아무리 내외 단 둘 의 의논일지라도) 역적 행위라 직접 말로는 하지 않지만 그 기뻐하는 태도가 분명 장래의 왕비를 봉상하고 있는 것에 틀림이 없었다.

말—언어로 나타내지 않는 일이라 수양도 말로 부인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알아들으리만큼,

『장차 조카님이 장성하여서 친정을 하시기까지에 이 국가 를 훌륭한 국가로 만들어서 조카님께 내어드리겠노라.』

는 뜻을 명백히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부인은 역시 그 말의 뒤에는 다른 뜻이 포함된 것으로 인정하고 그 뜻으로 지아 버님의 등을 밀어 재촉하는 것이었다.

부인마저 이렇게 해석하니 수하인 한 명회며 권 람배가 오 해하는 것이 무엇이 괴이하랴.

부인이며 수하 인물들이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사람인들 또 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랴.

다른 사람이야 또 아무렇게 생각하든 간에 그다지 관심할 바가 아니지만 만약 조카님이 그렇게 생각하시면 이런 민망 한 일이 어디 있으랴. 세상이 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카님인 들 또 왜 그렇게 생각치 않으시랴.

조카님을 돕고자—조카남으로 하여금 부강한 국가의 임금이 되시도록 하게—일변으로는 한 때 조카님이 위에 내리려는 박해를 없이하려는 고심이 도리어, 그 반대쪽으로 해석되어 지금껏 안심하고 계시던 조카님으로 하여금 불안과 공포 가 운데서 지내시게 하면 이런 민망스러운 일이 어디 있나.

그러나 인제 중지하거나 뒷걸음칠 수는 없었다. 수양의 수 하 가운데 입이 좀 경하고 뽐내기를 좋아하는 홍윤성이가 제 자랑을 하기 위하여 오늘의 계획의 일부를 누설을 한 모 양이었다. 즉 수양대군은 오늘 정부의 못된 무리들을 일소 하고 스스로 정권을 잡게 되며 홍 윤성 자기는 훈련대장으 로 내정이 되었노라는 말을 자랑삼아 하였다. 술기운에 에 누리까지 합쳐서 한 이 호기에 소심한 어떤 사람은 겁이 나 서 도망친 사람까지 있었다.

홍윤성이 호기를 뽑고 그 때문에 두선두선하는 기미를 본 한 명회는 깜짝 놀라서 윤성을 꾹 찔러 가지고 조용한 데로 돌아갔다.

『여보 홍 선달, 나으리께서 분부하시기까지 그냥 비밀히 해둘 게지 왜 그렇게 경망하오?』

『아무러면 알리지 않을 테요? 그래……』

『알려도 좀 있다가 알리지. 저 보오. 아, 벌써 슬금슬금 피하는 자가 있는 걸!』

아닌게 아니라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도 몇이 있었다.

윤성이 벌꺽 주먹을 부르쥐었다.

『어느 놈이, 내 당장에 박살을 하지.』

『여보. 그러면 소리만 더 커지지. 내 나으리를 모셔 내올 게.』

이리하여 명회는 급히 내실로 하인을 들여보내서 수양을 사랑으로 청하였다.

수양은 먼저 사랑으로 나와서 사랑에 있는 무리들까지 데 리고 후원으로 들어갔다.

그새 저편 사람들이 퍼진 소문으로 수양이 의심을 품고 있 다는 평판이 적지 않게 높았던 위에 오늘 사회라 하여 백여 명의 무리를 모아 놓고도 주인 수양은 미시(未時)가 썩 지나 도록 내실에서 나오지도 않고 게다가 홍 윤성의 무시무시한 소리까지 듣기 때문에 모두 마음이 두선거리고 무슨 큰 변 이나 생기지 않는 가고 불안 가운데 싸여 있던 무리들은 수 양을 보고야 겨우 좀 진정하고 수양이 앉은 호상(胡床)의 맞 은 편에 읍하고들 섰다.

수양은 한 명회를 시켜 오늘 사람들을 모은 연유를 설명케 하였다.—황 보인, 김종서배가 불측한 마음을 품고 안평대군 을 추대하고저 음모를 하고 있으니 그 무리들을 제거해야겠 다. 오늘 사람들을 모은 것은 그 일을 결행키 위해서다. 수 양대군이 친히 거느리고 지휘할 터이니 그 분부에 복종하자 —한 명회는 이런 뜻을 말하였다.

드디어 두선 거리고 당황해 하는 기색이 확연하여졌다. 몸 을 빼서 이 집을 벗어나려는 사람도 있었다. 이 집안에서나 마 그다지 눈에 안 뜨이는 곳으로 숨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어서 대궐에 계달해서 금부에 분부하도록 하자는 사람, 혹 은 순군에 알려서 일망타지하자는 사람, 또는 어명으로 대 궐로 불러서 조사를 하자는 사람, 가지각색의 의견이 나왔다.

수양은 불쾌한 안색으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내실에서 도 불쾌한(부인의 오해)을 보고 마음이 불편하게 나왔는데 여기 모인 무리들이 모두 제각기 모피 하려는 기색만 보이 니 매우 속이 좋지 않았다.

묵묵히 그 꼴들을 보고 듣고 있다가 입을 열 때는 수양은 자기의 불쾌한 기분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한서방. 다들 가라게.』

『나으리. 작사도방(作舍道傍)이면 삼년불성(三年不成)이라 고 끝이 나지 않을 겝니다. 나으리께서 결정을 지으서요. 그 래야 끝이 나오리다.』

그 곁에서 홍 윤성이 말을 끼었다.

『이런 일에는 얼른 손을 써야 합니다. 한 서방의 말과 같 이 나으리께서 직접 처단을 하서요.』

『그러기에 저자들은 돌려보내라는 것일세.』

수양은 먼지를 털면서 일어섰다.

『이미 사직에 바친 몸—내 스스로 당할 테니 모두들 비키 거라! 고약한!』

분노에 불붙는 마지막 말을 내던지고 수양은 그들을 남겨 두고 앞뜰로 돌아왔다.

중문 앞으로 돌아올 때에 누가 달려오면서 수양을 붙들었 다. 획 돌아보니 부인이 갑옷을 가지고 따라온 것이었다.

『자, 이걸 입고 가서요.』

수하에 기르던 무리들에게 배반을 받은 불쾌감을 품고 나 오던 수양은 부인의 정성이 한없이 고마웠다. 아까는 자기 의 마음을 오해했기 때문에 불쾌히 생각하였던 부인이로되 지금 손아래 기르던 무리들이 배반할 때에 부인 혼자서 지 아버님의 신상을 근심하여 갑옷을 지아버님의 몸에 입혀드 리는 것이었다. 수양이 도포를 벗고 그 아래 갑옷을 입은 뒤에 다시 도포를 입을 동안 부인은 가동(家?) 임 운(林芸) 을 재보내서 지아버님을 모시고 가게 하였다.

그 때는 시월의 짧은 해는 벌써 서산으로 거진 그 자태를 감춘—황혼이었다.

황혼의 돈의문(敦義門)근처에는 벌써 사람의 그림자도 드물 었다.

돈의문 가까이까지 이른 때에 뒤에서 사람들의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리마님. 저—』

임 운이 이 기척을 듣고 수양께 아뢸 때는 수양도 그 소리 를 듣고 품의 철퇴를 소매 안으로 잡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가까이 이르렀다. 보매 한 명회 등이다.

수양이 몸을 떨치고 나가는 것을 보고 한 명회는 권 람이 라 양정이라 몇몇 무리를 몰아 가지고 숨이 턱에 닿게 뒤를 따라온 것이다.

『나으리 혼자 가시면……』

『아무도 안 따르니 혼자라도 가야지.』

『설마 소인이야 안 따르겠습니까? 나으리 혼자야 어떻게 가서요? 절재의 아들도 있겠거니와 문객들도 수두룩한 그 집에 나으리 혼자서……』

『고마우니. 나 혼자인들 어떠하리 마는 그럼 저 양 정이, 홍 순손이, 유 수 세 명을 내가 데리고 감세.』

이런 때에 임하여 수양의 머리는 기민하게 활동하여 일호 의 착오도 안 나게 지휘하였다.

『또 한 서방(명회)은 홍 선달(윤성)과 함께 여기 나를 기 다리되 내가 돌아오기 전에 문(돈의문)을 닫으려거던 내분 부로 못 닫게 하고 또 다른 잡인은 문에 출입을 못하게 하 고……』

그러고는 권 람에게 향하여,

『자네는 순청(巡廳)에 가서 달손(達孫)에게 내 말로 순군 을 그냥 멈추어 두게 하고……』

이번은 권 연에게—

『자네는 내 집에 가서 오늘 왔던 사람들 아무도 못 나가 게 붙들어 두고……자, 그렇게 하고는 나오도록 내 길보(吉 報)를 기다리게.』

양 정 등 장사들은 멀리 뒤따르게 하고 수양은 임 운 단 한 사람을 데리고 돈의문을 나섰다.

수양의 주종이 집에 이른 때는 사위가 꽤 컴컴하였다.

종서의 집 솟을대문 밖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몇 개 서있는 것이 보였다. 수양은 속으로 혀를 채었다. 자기가 이제 행하 려는 일에 대하여 방해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가까이 이르 러 보매 그것은 종서의 아들 승규(承珪)가 신사면(辛思勉)과 윤 광은(尹匡殷)과 함께 무슨 한담들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승규는 자기의 집 앞에서 말게 내리는 사람을 보고 누구인 가고 와서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수양을 알아보고는 황공히 절하였다.

『춘부대감 계신가?』

수양은 가볍게 승규의 절을 받으면서 물었다.

『네이. 계시옵니다. 들어가 여쭈오리까?』

『여쭈어 주게.』

승규는 총총히 들어갔다. 들어갔다가 제 아버지를 인도하 여 다시 나왔다.

서로 좋지 않은 감정을 품은 줄 뻔히 아는 처지였다.

종서는 대문 안에 선 채로 달갑지 않은 듯한 태도로 수양 께 인사를 하였다.

일찍이 빈 청에서 큰 충돌까지 있었던 수양, 그 뒤 또 연 경에 사행으로 떠날 때는 종서의 아들(승규)을 전당잡아 가 지고 갔던 수양이 이 두선 거리는 시절에 더욱이 황혼을 타 서 찾아 온 것이 종서 에게는 적지 않게 의외인 모양이었 다. 대문 안에서 인사할 뿐 한 순간 주저하였다. 그러나 지 금의 왕의 아저씨요 선왕의 친 아우님인 수양께 대한 대접 으로도 잠자코 있지 못하겠는지,

『누추합지만 잠깐 들어오서요.』

말은 하였으나 그 태도가 어름같이 차고 냉담하였다. 수양 은 미소하였다. 아무 별 생각 없다는 듯이 명랑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흘렀다.

『문(돈의문)도 닫힐 시각이 임박했는데 들어갔다가는 큰일 나게요? 대감께 잠깐 의논할 일이 있어서 왔는데 잠깐만 틈 을 내어 주십쇼.』

『무에오니까?』

수양은 종서에게 대답지 않고 승규며 사면 등을 돌아보았다.

『내 대감과 잠깐 내밀할 의논이 있는데 좀 피하거라.』

이 말에 승규 등은 약간 물러서는 듯하였다. 그러나 수양 의 말에 대한 인사로 조금 물러선 뿐이지 역시 조금 물러선 듯 만 듯한 정도였다.

수양은 눈을 들어 한 번 사면을 살폈다. 살핀 뒤에 다시 종서를 향하였다. 들릴까 말까 하는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대감, 내가 황혼을 타서 온 까닭을 짐작하시오?』

그 말의 이면에 섞인 다분의 위협 미를 종서는 알아챈 모 양이었다. 종서의 얼굴에는 경악과 공포가 나타났다.

『생이 어떻게 알리까?』

마치 구원을 부르짖듯 큰소리로 대답하며 한 걸음 뒤로 움 쳤다.

그러나 움치던 종서의 옷소매는 수양에게 꽉 잡혔다. 잡히 기 때문에 비츨하는 종서에게 수양의 두 번째 말이 내려씌 우듯 나왔다─

『대감은—대감뿐 아니라 황보 정승까지도 이 즈음 자주 안 평을 찾아다니는 연유는 무엇이오? 왜 몰래 찾아다니며 병 인(屛人)하고 밀담을 하고 하오?』

이 말에 종서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와들와들 떨면서 수양의 손을 뿌리치려 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엔 벌써 수양 의 소매 안의 철퇴는 높이 들린 때였다.

『간물!영묘의 현모의 은총이 크거늘 감히 그런 생각을 낸단 말이냐. 간물을 보면 저절로 날뛰는 철퇴가 가만히 있 지 않으련다!』

고함과 함께 종서의 머리에 정면으로 내리는 철퇴에 종서 는 외마디 크게 부르짖으며 그 자리에 꼬꾸러졌다. 두 번째 의 철퇴가 내리려 할 때는(그다지 멀리 물러서지 않았던)승 규가 달려들며 제 아버지의 몸을 자기의 몸으로 덮어 막았다.

수양의 뒤에 등대하고 기다리던 임 운도 칼을 뽑았다. 제 아비를 보호하는 승규에게로 임 운의 칼은 힘차게 내렸다.

이 때는 좀 멀리 뒤따르던 양 정이며 홍 순손, 유수 등도 달음박질하여 달려온 때였다. 꼬꾸러진 종서의 부자에게 몽 치는 어즈러이 내렸다. 그 아래 종서 부자는 기다랗게 몸을 누이고 움직임 없이 되고 말았다.

퍽! 퍽! 철퇴가 내리는 육둔한 소리가 몇 번 힘차게 났 다. 첫 번 외마디의 부르짖음을 한 두 번씩 낼 뿐 종서 부 자에게서는 다시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 동안 수양은 두 어 걸음 물러서서 철퇴에 묻은 피를 닦으며 땅에 엎쳐져 있 는 부자를 굽어보았다.

—왜 딴 생각들을 하였느냐. 그만한 부귀와 그만한 영화면 넉넉하거늘 인제는 치사(致仕─벼슬사퇴)하고서노후나 안락 히 보냈으면 더 부족이 없겠거늘 더 무슨 욕심을 내려 하였 느냐. 세종께서도 말씀하신 바,

「나 아니면 이 일을 시킬 사람이 없다」하신 뜻을 옳게 해석하여 좋은 지휘자 없으신 뒤에는 자기는 한낱 우용(愚 勇)에 지나지 못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일찍이 물러 섰드면 육진 개척의 광휘있는 영에는 영구히 청사상에 빛날 것어어 늘 당치 않은 욕망을 내었다가 와석 종신조차 못하고 오늘 이런 더러운 죽음을 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꼴이냐. 푸들푸 들 경련 하는 부자의 시체를 굽어보며 수양은 잠연히 탁식 을 하였다.

자 인제는 어떻게 하나.

본시는 수하인 전부를 모아 부서(部署)를 갈라 가지고 수양 자기를 반대하는 무리(전부 아홉 명이었다)를 같은 시각에 처치를 하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일이 뜻과 같이 되지 않아 서 수양 혼자서 김종서 하나만을 처치하였으니 나머지 여덟 명(黃甫仁, 李穰, 閔伸, 趙克寬, 尹處恭, 李命敏, 元矩, 趙蕃) 은 어떻게 처치하랴.

종서는 아래 깔리고 그 아들 승규는 아비를 보호하고자 그 위에 덮힌 채 칼과 철퇴를 무수히 맞았는지라 드디어 약간 경련하던 경련까지도 없어지고 기다랗게 두 주검이 덧놓여 있을 뿐이었다. 신 사면과 윤 광은도 두동강이에 나서 네 개의 고깃덩이가 따로 굴렀다.

이것을 보면서 잠깐 선후 책을 생각하였다.

수양의 민첩한 머리에는 벌써 방침이 서게 되었다.

『인제는 돌아들 서자.』

이런 큰 일을 저지른 사람 같지 않은 침착한 분부가 수양 에게서 내렸다. 그러고 자기는 먼저 말께(부축도 받지 않고) 올랐다.

돈의문(敦義門)까지 이르러 보매 벌써 문이 닫힐 시간이 지 났는데도 불구하고 문은 그냥 열려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그 성벽(城壁)위에는 한 명회와 홍 윤성이 서서 어둑컴컴한 성밖을 내다보고 잇다가 수양 주종이 오는 것을 알아보고 내려와 맞는다.

『나으리 어떻게—』

수양은 벙긋 웃었다. 그리고 한 명회의 물음에는 대답치 않고 다른 말을 물었다—

『아까 내가 시킨 일은 다 어떻게 되었나?』

『그 게야 분부대로 하왔읍니다마는 나으리께서는?』

『내야 내가 몸소 간 이상에 실수가 잇겠나? 여기 일을 내 가 시킨 대로했으면 어서 그 사연을 전하께 상계하고 남은 적괴들을 법대로 처분해야겠으니 내 집에 있는 무리들도 이 리로 부르거니와 순군도—순군은 그냥 멈추어 두었겠지?』

『네이 분부대로 하왔읍니다.』

『그 순군들도 모두 이리로 부르고. 한 서방(명회)은 내 의 논할 일이 있으니 가지 말고 다른 사람들만 가게.』

수양은 홍 윤성을 호위로 지키게 하고 한 명회를 데리고 곁길로 들어가서 사람 기척 없는 곳에 몸을 감추었다. 그리 고 한 명회의 귀에 입을 갖다 대고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생살부(生殺簿)는 준비됐겠지?』

『네 그건 됐습니다만 지금 전하께오서는 대궐에 계오시지 않습니다.』

『무얼? 그럼 어디 계신가?』

의외의 말이었다. 대궐에 계신 줄 알고 그 조건 아래 방침 을 세웠거늘 그러면 어디 계신가.

한 명회는 대답하였다—

『영양위 정 종의 댁에 거동하오섰읍니다……』

『언제? 아직 거기 계신가? 분명……』

『그럴 줄 아옵니다. 거기서 출어하오시면 즉시로 이리로 알리라고 해 두었압는데 아직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흐음.』

수양은 한 순간 머리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은 벌써 새로운 대책이 생각이 났다—

『아무데 계시고 간에 자네는 그 적괴들이 누구가 누군지 얼굴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황보 이하 여덟 명 말일세.』

『소인은 한두 명밖에는 모르옵니다만 권 생원(권람)은 다 짐작을 할겝니다.』

『그럼 그렇게 하게. 나는 전하게 배알하고 간 흉들의 흉 계를 여쭈어서 성재를 받을 터이니 조사(朝士)들의 얼굴을 알아보는 권생원(권람)을 시어소(時御所)의 대문 안에 장사 두어 명을 데리고 기다리게 해서 참내하는 재상마다 배종한 하인은 대문 밖에 멈추어 두게 하고 권생원은 매 사람마다 직함과 성명을 큰소리로 하뢰어「모 직(職) 모(某) 참내요」

하고 외친단 말이어. 그러면 자네는 제 이문에서 생살부와 대조해서 살려둘 사람이면 잠자코 인사하여 맞아들이고 없 이할 자이면 홍 선달에게 눈짓해서 철퇴로 머리를 내려 부 서서 단매에—두 번 손질 않도록 단 매에 꺼꾸러뜨리란 말일 세. 불길한 소리가 들리시어 전하를 경동 하게 사지 않도록 곡 단 매에 꺼꾸러지도록 홍 선달, 유 선달(柳洙)등에게 단 단히 잘 부탁하게. 알아듣겠나?』

『네……알겠습니다.』

『주의 주의하게.』

『네이.』

분부를 하고는 수양은 다시 말게 올랐다. 고삐를 늦구고 천천히 말을 몰아서 다른 무리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나왔다.

말게 앉아서 잠잠히 앞만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양을 누구 가 볼진대 그의 마음에 장차 큰 일을 저지르려는 배포를 구 미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아주 무심 하고 태평한 태도였다. 이윽고 불린 무리들은 차례로 이르 렀다. 먼저 수양 댁에 있던 무리가 이르고 뒤이어 홍 달손 (洪達孫)의 거느린 순군이 이르렀다.

순군 이미 수양의 지휘 아래 있는지라 수양의 길을 막을 자는 없었다. 수양은 위의 당당히 순군에게 호위되어 시어 소(時御所)인 영양위의 댁에까지 이르렀다. 놀라서 달려나오 는 내금위(內禁衛)에게 오늘 입직 승지(承旨)는 누구냐고 물 었다. 그러고 최 항(崔恒)이 입직했다는 대답을 듣고 수양은 최 항을 급히 불러내었다.

최항에게 사연의 대강을 말하였다. 그러고 일이 급하므로 먼저 김 종서만은 참(斬)하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직 그냥 있다는 말과 이것은 성재(聖裁)를 받아서 처치하여야겠으니 급히 전하께 이 뜻을 상계하여 곧 배알하도록 분부가 계시 게 여쭈어 달라고 최 항에게 부탁하였다.

최 항도 이 의외의 사변에 두서를 차리지를 못하였다. 수 양에게 채근을 받고야 간신히 들어가서 그 뜻을 아뢰었다.

최 항의 상주에 왕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이 놀랐다. 꿈이 나 아닌가, 무슨 착오나 아닌 가고 당신 스스로를 의심하면 서 수양을 불렀다.

달음박질로 어전에 나온 수양—푹 그 자리에 부복하여 버렸 다—

『전하!』

우러러보니 용안은 사색이 되었다.

아아, 수양 자기가 벌써 적괴중의 수령인 김종서를 쳐치하 였는 데도 이렇듯 놀라시니 만약 돌연히 사변이 돌발하여 수양도 모르는 틈에 전하가 먼저 알으셨더면 어리신 마음에 얼마나 놀라시랴. 얼마나 가슴이 선뜩하였으랴. 사전(事前) 에 방치하기를 참으로 잘하였다. 사색이 되어 와들와들 더 시는 조카님—

『전하!』

『숙부님!』

떨리는 가운데서 간신히 옥음이 나왔다.

『전하! 안심합서요.』

『숙부님. 이 일을 어찌하리까. 숙부님 살려 주십쇼.』

수양은 침착한 소리로 복주하였다—

『전하. 수양이 전하를 모시옵니다. 수양이 불민하오나 전 하를 모시오니 안심하오서요.』

왕은 안정을 수양에게로 옮겼다. 잠시를 (부복하고 있는) 수양을 굽어보았다.

그의 튼튼한 등판, 믿음성 있는 머리의 위에 한참 안정을 붓고 있었다.

드디어 옥음이 또 나왔다. 아까와 같은 낭패하고 떨리는 음성은 아니었다—

『숙부님. 이게 꿈은 아니지요?』

『왜 꿈이오리까!』

『아아,—그 적당은 누구누구오니까? 몇 명이나 됩니까?』

수양은 김 종서 등 아홉 명의 두드러진 사람의 이름을 아 뢰였다. 그 아홉 명의 전부가 안평 옹립의 무리는 아니었지 만 수양을 배격하자는 사람들이었다.

『전하, 수양 있아오매 푹 안심을 하오서요. 수양의 눈동자 검을 동안은 전하의 터럭 끝 한 올인들 다치게 하오리까.

만반사 신께 일임하시옵고 편히 침전에 드시옵소서. 오늘은 벌서 지었압고 길도 두선거리오니 이곳서 이 밤을 쉬시옵소 서. 내금위 봉 석주 휘하의 금위병과 홍 달손 휘하의 순군 이 합세하여 겹겹이 시어소를 방위하옵는 위에 적괴중의 수 령 김 종서는 이미 처참되었아오니 아무 염려 마시고 신을 푹 믿고 계시옵소서.』

이 명쾌한 상주와 또한 수양의 믿음성 있는 태도에 왕은 약간은 안심이 된 모양이었다. 사색으로 변하였던 용안에는 약간 수색이 나타났다.

『숙부님,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니까? 무슨 일이오니 까?』

수양은 더욱 머리를 방바닥에 대었다. 작은 소리로—그러나 똑똑한 어조로 복주하였다—

『전하, 전혀 신의 탓이로소이다. 신 너무 경망한 탓이로소 이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오니까?』

수양은 이 하문에 극히 간단하게 자기가 조카님을 애모하 는 마음이 급급하여 저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할 여유를 잃 었고 그 때문에 저 사람들의 지위가, 영화가, 위태롭게 되어 저 사람들은 자기네들의 지위와 영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불 측한 생각을 품게 된 그 내력과 경과를 아뢰었다.

『신이 불민하고 경망하와 널리 뒷생각을 못한 탓이옵니 다.』

『그게 무슨 숙부님의 탓이리까. 아아, 그러나 선묘의 고명 까지 받은 몸으로—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가로 벋는 것이오니까.』

『아룁기 황송하옵니다. 신 차차 전하께 신임을 받자옵자 좌상 이하의 그 사람들은 자기네의 힘이 꺾일 것을 두려워 하와 벌써 딴 뜻을 폼기 시작한지는 오랬습니다. 그러나 신 이 그 눈치를 알아채옵고 그들을 감시하기 엄중하옵기 때문 에 거사는 못하고 좋은 기회만 기다리면서 초조하게 주저하 고 있압던 것—신 연경에 사행으로 떠난 동안도 그네들의 자 식들을 신이 전질해 가지고 갔기 때문에 꿈쩍을 못하고 있 었던 것이옵니다. 그것이 일자는 차차 길어지옵고 신의 감 시는 그냥 풀리지 않으오매 할 일 없이 죽든 살든 간에 결 말을 지으려고 근자에 더욱 밀의를 급급히 하와 형세 방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신도 드디어 이번의 거조에 나오 게 된 바로소이다. 통촉합소서.』

왕은 잠자코 있었다. 있다가 간신히 들릴까말까 하는 약한 소리로 말하였다—

『숙부님 알았습니다. 그러나 모자(謨者)는 그들이라 하되 모자의 뒤에는 수령이 따로이 있을 게 아니오니가. 그 수령 은 누구오니까?』

수양은 머리를 푹 숙였다. 아뢰지를 못하였다. 왕이 드디어 채근을 하였다—

『숙부님, 감추지 말고 알려 주십시오. 누가 수령이오니 까?』

『전하, 그네들이 모자이옵고 모자가운데 누구가 하나 수 령이 될 것이옵니다. 신이 불민하와 그 점까지는 알아내지 못하왔습니다.』

『숙부님 아니올씨다. 나도 대궐 안에서 내관들의 수군거 리는 소리로 들은 배가 있습니다. 기연가 미연가 해서 잠자 코 있었지만 오늘 숙부님의 말씀을 들으매 그 일이 전혀 황 당한 헛소문도 아닌 듯하니 내가 들은바「수령」도 전혀 황 당한 소리라고 돌릴 수가 없습니다. 내가 들은 배는 안평 숙……』

계속하는 말을 수양은 당황히 막았다—

『아니옵니다. 천만에─전하 어떤 말씀을 누구에게 들으섰 는지는 모르지만 안평이 어찌 감히—천만의 말씀이옵니다.』

『아니 그래도 내 그 소문을 들은 이래로 안평숙을 눈주어 보았는데 그 태도, 행동, 모두 의심하여 보자면 의심할 데가 부지기수옵니다. 첫째로……』

『전하, 아니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안평이 어찌 감히—』

『숙부님 건방진 말이라고 꾸중을 하실지 모르지만 기군 (欺君)은 죄입니다. 숙부님 분명 아니오니까?』

수양은 푹 머리를 방바닥에 대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말에 는 아뢸 바이없었다.

『어떻습니까 숙부님. 대답해 주서요.』

『신을 죽여 주십사.』

당신 스스로 기연가 미연가 하던 일—그러면서도 부인하고 싶던 일—엄하게 수양숙에게 그 대답을 채근하면서도 왕은 그래도 그냥 수양숙이 그 일을 부인하고 부인할 수 있는 증 거를 수양숙이 들어주기를 내심 기대하였던 것이었다. 당신 의 마음이 그랬는데 수양숙은 죽여줍시사고 복죄를 하는 것 은 안평숙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않기 를 기대하던 왕은 그만 맥이 탁 빠졌다.

『으음.』

아득하여지려는 정신을 왕은 간신히 걷어잡았다.

『숙부님.』

내가 죽고 싶습니다 하는 말을 억지로 삼켰다.

조카님이 기막혀 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수양도 기가 막혔 다. 안평이 이 노물(老物)들에게로 이용되었다는 점을 조카 님께는 알리고 싶지 않았다. 국문(鞠問)이고 옥초이고 모두 약(略)하여 버리고 장사들로 문간을 지켜서 벌할 자는 그냥 멸구책(滅口策)을 쓰려던 것이 수양의 예정계획이었다. 이 나라의 신하들의 심리(수양이 잘 아는 바)는 아무리 수양이 멸구책을 쓴다 할지라도 그 사건을 왕께 일러바치는 것이 왕의 굄을 사는 것으로 알고 반드시 왕께 고자질을 할 것이 다. 그러나 그때는 수양이 정부의 실권을 잡고 이 고자질에 대하여,

『아마 몇몇 재상이 안평을 끼려 다니기는 한 모양입니다 마는 안평은 그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어름어름하여 두었던 모양입더이다.』

쯤으로 임금께 아뢰고 대신들을 누르면(확증은 없는 일이 라)조카님의 마음을 과히 쓰고 아프게는 하지 않을 것이었 다. 그러나 왕이 미리 의심을 두셨다가 이번에 확증까지 나 타났으니 어리신 마음에 얼마나 통분하시랴.

『죽고싶소이다.』

말로까지는 안 타나태시나 마음으로 잡수신 그 고통—수양 은 진실로 가슴이 쏘았다.

『전하.』

한참을 묵묵히 있다가 수양이 종내 입을 열었다—

『안평이 본시 약간 경망하와 성조 영묘(세종)게도 늘 꾸중 을 들었습니다. 경망한 사람이 음흉한 노물들의 꼬임에 어 름어름하기야 했겠읍지만 설마 망령된 생각이야 품었아오리 까. 신은 안평의 동기로서 한 어버이의 슬하에서 함께 길러 났아오매 그 마음보도 잘 아옵니다만 안평 본시 성질은 경 망하지만 망령된 생각은 결코 낼 위인이 옷 되옵니다. 전하 자세히 들으십소서. 망령된 생각을 안 내일 인물이 아니옵 고 못 내일 인물이옵니다. 전하 안심하소서.』

그러나 왕의 마음에 생긴 불쾌감은 잘 삭지를 않는 모양이 었다. 수양의 드리는 말씀에는 답이 없이 불쾌한 안정을 멀 리 창밖(닫겨 있는)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수양은 어서 이 안평의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다른 말을 꺼 내었다—

『전하, 적당의 수괴 김종서는 일이 급하옵기 미리 참해버 렸읍거니와 황 보인, 이 양등 거기 칠 팔명은 그냥 남았아 옵니다. 그무리들이 수괴 김종서 처참한 일을 듣사오면 무 슨 불측한 일을 행할는지 예기치 못할 배오니 그 소식 듣기 전에 명패로 부르시와 궐하에 치죄하오시기를 바라옵니 다.』

왕은 대답이 없었다. 수양은 참을성 좋게 한참을 기다렸다.

한참 뒤에야 왕이 대답하였다.

『숙부님, 당임(當任)해 주십쇼. 나는 난……난……』

뒷말이 끊어졌다. 머리를 좀 딴데로 돌릴 뿐이었다. 그러나 수양은 말하지 않는 조카님의 뒷말을 알아들었다. 나는 ……난……가슴 아프외다. 하는 말이었다. 수양도 한참을 잠 자코 있다가야 아뢰었다.

『신이 당임 하오리다. 전하는 침전에 드오서 쉬옵서요. 밤 도 해시가 가까왔읍니다.』

사직이 안정되면 영화는 조카님께로—만약 불행 일에 착오 가 생기면 뒷감당은 수양 자기가—이렇게 마음먹고,

『그럼 신은 사랑으로 나가서 소문 퍼지기 전에 일 처리를 하오리다.』

하고 어전을 하직하였다.

『나도 하회를 기다리리다.』

물러 나가는 수양에게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사초롱으로 길을 비취는 영양댁 하인의 인도로 수양은 사 랑으로 나왔다. 부마 영양위는 왕과 함께 내실에 있고 사랑 은 승지 최 항이 혼자 있었다.

수양이 들어와 앉으매 청지기 방에 잇던 한 명회와 권 람 이 분부를 받으며 따라 들어왔다.

따라 와서 영외에 읍하고 서있는 그들을 모른 체하고 수양 은 아랫목에 내려가 앉았다.

수양의 마음은 차차 무겁고 괴로워 왔다.

조카님의 심경을 생각하니 가슴 아프기 한량없었다. 대신— 대신 가운데도 선묘께 고명 받은 대신이 전부 당신을 배반 하였다. 가장 신임해야 할 그들이 단지 허욕 때문에 선묘의 은총을 배반하고 선묘의 유명까지도 배반하니 원통하고 분 한 마음 이를 데 있으랴.

대신들은 그래도 또한 남이로다. 친숙(叔)인 안평이 당신을 배반한 것은 얼마나 가슴 쓰리시랴. 부귀, 영화, 무엇이 부 족하길래 그보다 무엇을 더 바래서 당신을 배반하는가. 인 신으로서의 가장 가멸코 가장 귀한 자리에 있는 안평숙이 그보다 더 무엇을 바라고 당신을 배반하였나.

이런 고통은 가장 마음 굳고 억센 사람으로도 참기 힘든 일이다. 용하게 참으셨다. 그 고통을 남에게 안 보이고 혼자 참으시느라고 얼마나 마음달아 하실까.

이런 때에 왕비라도 있어서 위로해 드리면 그래도 약간의 위안은 되겠거늘 넓고 쓸쓸한 대궐을 혼자 지키시고 어떠한 가슴아픈 일이 계실지라도 위로 없이 혼자서 겪고 참고 지 내시어야 할 고적하신 조카님.

선묘의 일년 이상을 지나면(예의며 격식을 다 무시하고라 도) 왕비라도 영입하여 고적한 대궐의 동무를 지어 드리자, 오늘 밤 장차 이 집에서 실행될 참극—수양 자기가 당임한 일—도 할 수만 있으면 좀 연기하여 왕의 모르는 동안에 실 행하고 실행한 뒤에 사필상주에 끊칠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왕께 알게 그 일을 실행하여 어리신 조카님의 가슴 을 더 선뜩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일의 일부분으로 김 종서를 버러 처참했으니 밝 은 날 사대문이 열리기만 하면 그 소문은 쫙 장안에 퍼질 것이요, 그 소문이 저쪽의 귀에 들어가면 어떤 모피책 어떤 흉계를 꾸며낼는지 알 수 없다. 그러매 오늘 밤 안으로 일 을 끝막음을 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왕은 그냥 깨어서 하 회를 기다리겠다 하니 이미 왕께 그 일단이 알려진 이상은 끝막음까지 하여 안심을 드리어야 할 것이었다.

무시무시하면서도 안심드릴 수 있는 그 끝막음.

자—수양은 눈을 들었다. 처분을 기다리는 수하인들은 그냥 영외에 읍하고 서 있다.

『최 승지.』

수양은 발치에 읍하고 서 있는 최 항을 불렀다.

『네이.』

『명패로 대신들을 부르게, 어명일세.』

『대신들 다 부르오리까?』

『문안에 있는 대신 재상 전부……그러고 한 서방.』

수양은 한 명회를 불렀다.

『네이.』

『한 서방은 아까 내가 시킨 대로—잊지 않았지?』

『잊을 리가 있습니까?』

『아까 시킨 그대로 하게.』

『네이.』

한 명회는 권 람, 홍 윤성 등과 함께 사랑 밖으로 나갔다.

한 명회 등이 나간 뒤에 수양은 다시 최 항을 불렀다.

『최 승지, 이제 재상들을 부르지만 그 뒤에 여기서 생기 는 일은……』

수양은 여기서 일단 말을 끊고 최 항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특별나게 엄한 어조가 아니요 명령적 어조도 아니로되 한 마디씩 끊어서 똑똑히 하는 수양의 말은 거역 할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혹은 비상한 일, 놀라운 일일지도 몰라, 간담이 서늘한 일이 생겨날지도 몰라, 그러나 이건 어명으로……수양이 어 명을 받들고 하는 일이니 영감은 잠자코 보고만 있게, 공연 한 입을 놀렸다가는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온화하고 순조롭게 하는 말이지만 본시 천품으로 위압력을 타고난 데다가 또한 비상한 명령이라, 최 항은 떨리는 가슴 을 간신히 억제하고,

『알았습니다.』

고 여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금군 불러서 재상들을 부르도록 채비하게.』

『네이.』

수양의 분부를 듣고 최 항이 대청에 나서서 내금위 봉석주 를 불러 지휘를 한 동안 수양은 안석에 몸을 기대며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생각할 동안 오늘 이곳에서 처참될 재상들의 얼 굴이 걸핏걸핏 수양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호인 황보 인—호인이기 때문에 김 종서에게 넘어서 딴 생 각 품었다가 그 탓으로 생명을 잃지 않을 수 없는 영상 황 보 인이 가장 가엾었다. 한 포의(布衣)에서 몸을 일으켜 영 영공공 오늘날의 지위를 쌓아 올렸던 그는 남의 탓으로 와 석 종신도 못하는구나. 그 언제 수양 자기가 빈 청에서 김 종서의 멱을 잡고 세찬 주먹을 한 번 내릴 때 몸을 벌벌 떨 면서 나오지 않는 웃음을 연방 웃어가며 수양을 말리던 그 의 모양— —아아 욕심이란 것은 과연 무서운 것이로구나.

황보 인도 황보 인이려니와 또 안평—어린 조카님이 가엾지 도 않더냐. 왕께서 비록 벌써 아셨다 해도 수양은 애써 안 평을 보호하고 싶었다. 조카님도 안평의 행위를 괘씸히 생 각은 하시겠지만 그래도 멀지 않은 골육이시매 구태여 엄벌 하실 생각까지는 없으실 것이다. 수양이 변명해 드리면 조 카님도 수양의 의견을 쫓으실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 재상 들이라는 것이 괴악하고 망측하여 안평의 죄목을 정면으로 들고나서서 떼쓰면 이 일을 장차 어찌하랴.

재상들이 말썽을 내기 전에 자기가 먼저 서둘러서 안평을 근도(近島) 찬 배쯤으로 끝막음하도록 하게 하자. 재상들이 말을 꺼내기 전에 안평을 벌주어 재상들의 말썽을 미리 방 지하자─이윽고 우참찬(右參贊) 정 인지(鄭麟趾) 참내라는 권 람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에 잠겼던 수양은 고요 히 눈을 떴다.

<이하 텍스트 못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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