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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양/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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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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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이 사신으로, 연경으로 떠난 다음, 왕은 당신의 마음속에 수양 숙부께 대한 애모의 염이 의외에도 컸음에 당신 스스로 놀랐다.

한 때는 그렇게도 무섭고 싫던 사람…… 그 얼굴을 멀리서 보기만 해도 은근히 치가 떨리던 사람…… 그렇던 것이 수양대군의 변함없는 충성의 덕으로 그 공포와 혐오가 사라지고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돌아선 것은 왕도 스스로 인정했지만, 수양대군이 가까이 있지 않다는 것이 당신께 그렇게 적적하리라고까지는 생각지 않았다. 그랬는데 수양대군이 먼 길을 떠나고 보니, 왕은 마치 어버이를 잃은 것 같은 적적함과 불안증을 절실히 느끼었다.

「누구를 의지하랴.」

「누구를 믿으랴.」

부왕(문종) 승하한 때에 느낀 바와 흡사한 고적감을 느끼었다. 부왕 승하한 때에는 다만 어리둥절한 가운데 그래도,

「내 앞은 내가 감당해야 한다」

하는 단념이 있었다. 그러고 주위가 늘 두선두선 했는지라, 다만 기막히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나 수양숙이 길 떠났기 때문에 느낀 고적감은 그와 달랐다. 수양숙은 당연히 당신의 곁에 모실 사람이요, 또한 다시 올 사람이라 하는 점에서 더욱 그리웠다.

매부되는 영양위 정종은 늘 참내하였다. 그러나 영양은 동무할 사람이지, 믿고 의뢰할 사람이 아니었다.

수양숙 떠난 뒤에는 안평숙이 이전보다는 비교적 자주 참내하였다. 그러나, 왕께는 이 안평숙이 진실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전 한때에 수양숙은 무섭고 진저리 나는 사람이었지만, 안평숙은 감정적으로 싫고 진저리나는 사람이었다.

안평숙의 비꼬아진 웃음, 긁어내는 말귀, 이런 모든 점이 어린 왕께는 역하고 진저리났다.

더욱이 안평숙은 흔히 수양숙을 헐뜯는 말을 왕께 사뢰었다. 이 점이, (인제는 수양께 마음 돌아선) 왕께는 더 불쾌하였다.

어느 날인가, 편전(便殿)에 났을 때였다. 마침 안평숙과 영상 황보인, 좌상 김종서 등이 모시고 있었다.

그때 무슨 이야기의 끝에 이번의 사행(使行)의 이야기가 났다. 그때 안평숙은 이런 말을 하였다.

『지금쯤은 수양대군은 연경 미색 품고 호사하시겠군.』

입을 비꼬아 웃으며 하는 이 말에 대하여, 좌상 김종서가 대답하였다.

『색에 혹해서 사명이나 다 하올지?』

여기 수상 황보인이 호인다운 웃음을 연방 얼굴에 띄며 한몫 들었다.

『연첩 하나 데리고 오실지?』

왕은 세 사람의 말을 다 모른 체하고 있었다. 즉 안평이 아무리 해도 이 말씀을 왕께 올려야 마음이 피겠는지, 왕께로 향하였다.

『전하. 이번 사행을 좀 연로하셨지만 양녕대군께 부탁하셨드면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납니다.』

『왜요?』

『수양대군도 덕이야 높으시지만 젊은 혈기에 혹시……』

『혹시?』

여기서 안평은 정면으로 여쭙기가 황송하다는 듯이, 입을 비꼬며 머리를 숙여 버렸다.

왕은 불쾌하여 다시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그 대답은 왕이 짐작하는 바이므로─

그러나 이야기를 여기서 끊는다는 것은 안평에게는 도리어 불만한 것일 테다. 왕이 다시 묻기를 기다렸지만, 왕이 그 이야기를 걷어치우고 말으므로 안평은 다시 종서에게 향하였다.

『젊은 혈기와 색과는 할 수 없어.』

『암요! 수양대군이 본시 즐겨하는 일인 데야─』

『열네 살 적에 창가(娼家)에 들어갔다가 그 남편에게 욕볼 뻔한 일까지 있구……』

『영웅호색이 아니오니까? 하하하!』

『하하하하!』

현재 이곳에 있지 않은 사람을 두고, 자기네끼리 올려치고 내리치고 하는 양에, 왕의 마음은 매우 불쾌하였다. 더구나, 당신이 존신하는 수양숙께 대하여, 당신이 싫어하는 안평숙과 김종서가 이런 짓을 하니 더 불쾌하였다. 듣다 못하여 왕은 말을 끼었다.

『수양숙의 말씀이셔요?』

『네? 뭐, 아니옵니다. 다른 모(某)라는 재상의 이야기옵니다.』

이 뻔한 거짓말에 대하여 왕은 당신도 아닌 체하고 드디어 엄책하였다.

『글쎄, 수양숙께는 그런 일이 있지도 않겠지만 설사 있다 해도 내게는 수양숙께 대한 좋지 못한 폄을 아예 마세요. ─아니, 수양숙 뿐 아니라, 도대체 당자 없는 데서 그 사람의 폄을 한다는 건 군자의 할 일이 아닐 겝니다.』

대군과 대신은 칵 얼굴을 붉히고 머리를 숙였다. 소년에게 들은 책망이지만 떳떳한 책망이었다.

이번의 일은 이렇게 싱겁게 지났지만, 이와 비슷비슷한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안평과 종서가 함께 왕을 모시게 된 때는 늘 화제가 수양에게 및고 화제가 수양에게 미치면 언제든 비웃는 듯한 칭찬하는 듯한 내려깎는 듯한─ 요령 얻기 힘든 폄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안평숙과 대신이 함께 모시게 될 때는 왕은 늘 마음속에 불안과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종조부 양녕대군은, 그다지 참내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 양녕대군과 대할 때만이 왕께는 가장 마음 놓이고 자유감을 느끼고 하는 때였다. 이 세상에 떨어지면서 어머님을 잃고 엄격한 아버님의 품 아래서 자란 왕이라, 응석이라 떼거리라(어린애가 본능적으로 가지고 싶어하는)에 굶주린 탓도 있겠지만, 종조부님의 참내는 가슴에 무드기 느껴지도록 반갑고 하였다.

그러나 양녕대군은 연로(年老)한 탓도 있겠고, 근신하는 탓도 있겠고, 또는 다른 까닭도 있겠지만, 그다지 흔히 참내하지 않았다.

신하들은 지긋지긋하였다. 그 사람들이 당신께 강요하는 것은, 무슨 국가에 관한 것이든가 정치에 관한 것이 아니고, 그들이 들고 나오는 것이란 것은 모두가,

「성현이 어떻습니다.」

「삼고가 어떻습니다.」

하며, 하늘이 가물어도 임금의 책임이요, 날이 차도 임금의 탓이요, 살인강도나 불효부정한 사람이 생겨도 임금의 탓이라 하여, 모두 금에게 책임을 씌우려 하고, 신하는 마치 임금을 감독하는 감독자인 듯한 태도를 취한다.

이 신하들과 만날 대하며 그들의 책망(모두 책망하는 태도였다)을 당하는 것이 딱 싫었다.

수양숙만 곁에 있으면 이렇지 않았다. 대체 안평숙이며 대신들은 왕을 무엇으로 여기는지 어전에서도 조금도 삼가는 기색이 없이 자유로이 (버릇없이) 언행하였다. 수양숙이 곁에 모실 때는 대신들이 어디라 감히 버릇없는 언행을 못하더니, 지금은 자기네끼리의 사삿일이며 음담패설까지도 하는 것이었다.

이런 가지가지의 점으로 왕은 수양숙이 나날이 더 그리워 갔다. 국사에 관해서도 그 시끄럽고 군잡스런 문제를 수양숙이 있기만 하면 스스로 맡아서 해결지었다. 전연 자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조카님께 품하고 그 결재를 받고야 행하여서, 숨김이 없고도 또한 왕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다.

친구로, 보호자로 지도자로, 어버이로 믿고 우러르던 수양이 멀리 떠나가 있는 것이다. 왕이 그리워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왕이 이렇듯 수양을 그려하고 사모하는 것은 김종서 등에게는 큰 위험이었다. 그래서 몇 번 그들끼리 몰래 회견을 하였다. 그런데, 우연한 일인지 웬일인지, 그 몇 번 회견하고 헤어질 때마다 헤어지는 길에, 그들의 회견한 장소의 근처에서 수양댁 수하인이 배회하는 것과 마주쳤다.

이 일은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자기네들의 아들을 수원(隨員)으로 데리고 간 것만을 따로이 보자면 혹은 우합(偶合)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지만, 그 뒤 수삼 차 밀회한 그 밀회장 근처에서 한번 수양의 수하인들이 배회하는 것과 합쳐서 생각하자면, 이것이 모두 우연한 일이라고 일소에 붙이기는 어려웠다. 수양이 수양자신 먼 곳에 가 있는 동안, 여기 남아 있는 대신들을 견제키 위해서 그들의 자식을 수원으로 데리고 갔고, 그러고도 그동안의 행동을 늘 주의하고 경계하고 있는 것이라 이렇게밖에는 해석할 수가 없었다.

만약 사실이 그렇다 할진대, 자기네들은 썩 행동을 삼가고 말을 삼가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이 기회에 일거하여 (자기네들의 자식은 어떻게 되든 간에) 일을 결행해 버린다면 모를 일이지만, 자기네들의 자식을 아끼려 할진대, 수양 없는 이 틈에 수양의 수하인들에게 눈치 다른 태도를 보이면 그것은 공연한 손해일 것이다.

수삼 차를 같은 일을 겪은 뒤에는, 그들은 다시는 사사로이 몰래 만나지 않기로 하였다. 수양이 돌아올 때까지는, 아예 별다른 눈치를 보이지 않아서, 자기네의 아들들의 안전을 보전해 두고 겸하여 자기네들의 안전도 도모하기로 이렇게 작정하였다.

수양에게 아무것도 발목 잡힌 것이 없는 안평은 수차 은근히 채근해 보고 역정도 내어 보았지만, 아들들을 수양에게 잡힌 재상들은, 안평을 어름어름하여 두었다.

이리하여 수양이 예상한 바와 같이 안평은 우유부단하여, 꿈쩍을 못하고 있었고, 영상이며 좌상은 그들의 아들을 수양에게 전당 잡히어서 역시 꿈쩍을 못하고 있어서, 수양이 사개월 나마를 먼 길을 떠나 있을 동안도, 왕과 왕의 신변에는 아무런 암영도 띄워 보지 못하고, 안전 무사히 그 기간이 지났다.

─수양은 무사히 사명을 다하고 이듬해 이월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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