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양/27
27
[편집]왕이 명나라에 보내는 사절에 정사로서 매부되는 영양위 정종을 보냈으면 하던 희망은 가엾게도 꺾어지고 말았다.
수양에게 그 건의를 부탁하려 하던 바였는데, 당신께 그런 계획이 있느니만큼 내전으로 수양을 부르는 것도 남이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서 주저하고, 외전에서는 이목이 번다하여, 꺼리는 바가 있어서 주저하고 있었는데, 마침 어느 석양에 왕이 혼자서 편전에 앉아 있고 대청에는 내관들이 대령하고 있을 뿐, 정원(승지)은 아무도 없을 때 수양이 대청에 와서 부복하였다. 이렇게 승지나 주서(注書)도 모르게 왕께 뵙고 한다고 각신들은 이것을 꺼리는 것이었다.
마침 수양을 만나고 싶던 왕은 반가와서 수양을 영내에 들어와 앉으라고 청하였다.
『마침 잘 오셨오이다. 나는 숙부를 뵙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왕은 다른 방해자가 오기 전에 벼르던 말을 하려고 이 말부터 꺼내었다.
『신도 전하께 좀 조를 일이 있사와 참내하왔습니다.』
『무슨 일이오니까?』
『전하는 무슨 일로?』
『숙부는 무슨 일로─ 숙부부터 먼저.』
『전하 먼저─』
『네 나는 다른 게 아니라 불일 상국에 사례사를 보내야지 않겠습니까?』
『네……』
『그 일로 사절사를 누구를 보낼지─』
『신도 그 일로 누구를 보냈으면 좋을는지.』
『숙과 의논하고 싶어서. 숙의 의향으로 누구가 좋을 것 같소이까?』
『신이 가오리라.』
왕은 손에 들었던 홀(笏)을 내려뜨리도록 놀랐다. 용안이 주홍빛이 되었다. 뒤에 무슨 말이 나오랴.
수양은 푹 머리를 방바닥에 묻었다. 한참을 잠자코 있었다. 한참 뒤에야 머리를 조금 들었다.
『전하. 사절사에 관해서 성의 계신 곳을 신 짐작하옵니다. 영양위 정종에게, 성의 계오신 것을 아옵니다. 알면서 성의를 꺾었습니다.』
일단 순색으로 회복되려던 용안은 다시 주홍색이 되었다.
『그게야 숙……』
『알고서 거역하고 지금 대죄합니다.』
수양은 약간 머리를 들었다.
『전하. 지금 상국서는 우리 나라를 매우 주목합니다. 세종 승하하오시고 문종 등극하신 이후 이년남아를 효(孝)에 치우치시고 정(政)은 삼년 상(祥)이라 해서 안 돌아 보오시고 변경은 호(胡) 있사와 넘보는 자 많은 가운데 전하 또한 소년으로 임상(臨上) 하오시니 오늘의 형세는 성태조 개국하신 이래의 가장 위난한 때라 이 때에 모(侮)를 덜고 방(謗)을 제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올시다. 영양위 소질이 영특하고 명민하와 사절로 군명을 더럽힐 염려는 만만 없아오나 다만 연치가 약간 부족하와 저 나라 사람들에게 조선엔 사람이 없어서 흥안 소년으로 사절의 중임을 맡겼는가 하는 웃음이라도 사면 크게 한되는 일이옵니다. 신이 성의를 거슬려서까지 영양위 파송 중지를 청하옵는 뜻은 여기 있습니다. 굽어살피소서. 신이 죄는 성명전 대죄하옵니다.』
왕은 당황히 수양의 말을 끊었다.
『숙! 숙부. 대죄가 무슨 대죄여요. 내가 어리석어 그런 생각을 잠깐 낸 일은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철없기 짝이 없었어요. 영양을 한번 호사시켜 보고자 하는 철없는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해보기는 했지만 숙부의 말씀을 듣고 보니 스스로 부끄러워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거기 대해서는 내가 부끄러우니 다시 말씀도 말어주서요. 영양에게는 내가 직접 잘 타일러서 나무람 없이 단념케 하오리다. 숙부께 참 미안합니다.』
『황공무지로소이다.』
『그럼 숙부. 사절로는 누가 가장 좋을꼬. 역시 숙부 이상이 생각이 안 납니다 그려.』
『글쎄올시다. 신의 생각에도 신 밖의 적임자가 얼른 생각 안 납니다.』
수양은 미소하였다.
왕도 미소하였다.
『역시 숙부 밖에는 누가 있오이까? 삼공은 모두 연로해서 먼 길에 도중─ 죽기까지야 하리까만 피차에 자미 없고……』
『부마(駙馬)는……』
『…………』
『외에는 대군과 군들이온데 왕자가 가려면 역시 신이 가겠습니다.』
『숙이 꽤 가고 싶으신 모양이외다그려.』
왕은 미소하였다.
『네…… 저 사람들을 만나서 우리를 멸시하는 기색이 뵈오면 그 그릇된 생각도 고쳐 주옵고, 요지 선경이라는 상국 자궁도 다시 한번 배람하고 싶습니다.』
『영양도 그걸 보고 싶다고.』
『가여운 일이올시다. 소년의 마음에 품었던 꿈을 깨트려 버렸습니다그려.』
『할 수 없지요.』
숙질은 화기 애애하게 담소하였다.
그날 저녁으로 명나라에 갈 정사와 부사는 정식으로 작정이 되었다.
숙질이 의논한 결과 일단 임금의 뜻이라는 형식으로 부마 영양위를 망에 올렸다가 예기하였던 바와 같이 영양위는 아직 과히 어리다 하여 반대가 일어날 때에 수양이 자진하여,
『신이 가오리다.』
자기를 전처하고, 왕은 다른 재상들이 반대할 시간이 없이, 수양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럼 숙부께 부탁합니다.』
하여 결정을 지어버렸다. 김종서가 무엇이라고 입을 열려 하였지만 그때는 벌써 숙부께 부탁한다는 하교 내린 뒤라 종서는 입을 닫혀 버리고 말았다.
부사(副使)로는 공조판서 이사철(工曹判書 李思哲)을 보내게 하고 집현교리 신숙주로 종사관(從事官)을 삼았다.
번갯불같이 처리하고 결정하여 버리어서 재상들은 무슨 영문인지 모두들 어안이 벙벙하였다.
안평도 이 자리에 있었다.
안평도 무슨 말을 꺼내려고 누차 기회를 엿보는 모양이나 종내 기회도 얻지 못하고 말았다.
벼락치듯 일을 다 결정지은 뒤에 수양은 그날 밤 집에서, 한명회 권람 등 몇몇 친구를 모아 가지고 주연을 열었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겠다는 뜻을 일찍이 들은 일이 없는 권과 한은 수양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경악의 눈을 던지었다. 명회는 목소리를 낮추어 수양에게 말하였다.
『나으리. 나으리께서 진심으로 국사를 근심하시면 부연(赴燕)은 중지하시고 한동안 이곳 형세를 관망하시는 편이 좋을걸요.』
『왜? 무슨 일이 있는가?』
『요즈음 며칠을 매일 좌상 혼자거나 혹은 수상도 끼어서 밤을 타서 담담정(淡淡亭)을 찾아다니며, 늘 병인(屛人)하고 무슨 밀회를 한다는데, 이런 때 나으리 멀리 가시는 건 그다지 자미가 없을 줄 압니다.』
『무얼?』
수양은 올라 뛰리만큼 놀랐다. 당황히 잔을 상에 놓았다.
『그─ 그게 참말인가?』
『참말이구 말굽쇼. 오늘도 모였을 겝니다.』
─정승이 왕자(王子)를 찾아다닌다.
─병인(屛人)하고 밀담한다.
한명회(韓明澮)가 가져온 이 보고에 수양은 악연하였다.
선왕의 재궁(梓宮─帝王의 棺)이 아직 빈전에 있는 국상 망극 중임에도 불구하고 안평(安平)의 행동에 대하여는 향그럽지 못한 소문이 적지 않게 떠돌고 수양의 귀에까지 들어온 것도 꽤 많았다. 선왕이 생존해 계실 동안도 왕자(王子)의 행위로는 근신치 못한 일을 한다는 소문이 번번히 들렸지만, 적어도 선왕 승하하고 그 재궁이 아직 빈전에 있을 동안은 근신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평의 행동은 근신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 때문에 수양은 누차 동생 되는 안평을 책망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불근신에 지나지 못하였다. 지금 한명회가 가져온 보고는 전혀 성질이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무릇 왕자의 길이라 하는 것은 「영(榮)」은 누리고 「권(權)」을 피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지금과 같이 어린 왕이 위에 임한 때에는 한층 더 근신하여 세상의 의혹의 눈이 자기의 위에 부어지기를 절대로 피해야 할 것이다. 만약 국사나 정치에 관해서 자기에게 무슨 좋은 의견이 있다하면, 광명 정대히 왕이나 혹은 대신에게 진언을 해야 할 것이다.
수군수군한다든가 혹은 무엇을 한풀 감추는 듯한 행동은 절대로 피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어린 왕께 모후도 안 계시고 섭정의 고명을 받은 종친도 없는 데다가 호랑이 같은 왕숙(王叔)들이 적서(嫡庶) 합하여 이십 명이나 되어 의심 많은 세상의 눈은, 왕숙들의 일거일동을 주목하여 마지않는다. 이런 때에 임하여 왕숙들의 취할 태도는, 그 한가지는 그가 만약 진실로 국가의 안위를 근심할 것 같으면, 정정당당히 표면에 나서서, 왕께 힘을 돕고 대신들과 힘을 아울러서, 나라에 보답해야 할 것이다. 혹은 이렇게 하려면 세상의 의혹의 눈이 자기의 신상에 미칠지도 모를 것이지만, 이것은 국가─국가를 위하여 하는 노릇이라 참고 지내야 할 것이다. ─수양 자기는 지금 그 길을 취하고 있다.
만약 그 길을 안 취하겠거던, 사람들과의 교제를 끊고 수신과 제가(修身齊家)에나 힘쓰고 은거 생활을 해서, 영화나 누리지 권력에서는 멀리 피해야 할 것이다.
백부 양녕대군은 그 길을 취하고 있다.
지금 안평의 하는 일은 그 양자가 다 아니고, 가장 삼가고 가장 피해야 할 길을 밟고 있는 것이다.
잡인과 사귀고, 함부로 출입하며─ 이것만 해도 벌써 왕자의 길에서 벗어난 행동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주착없는 행동이라 기탄할 정도에 지나지 못한다. 왕자로서 그게 무슨 점잖지 못한 일이냐고, 경멸할 정도에 지나지 못하는 행동일 뿐이다.
지금 한 걸음 더 나가서, 한명회가 가져온 보고라 하는 것은 그 정도를 훨씬 넘은 것이다.
정승과 밀회를 하며 밀담을 한다. 안평은 황보인이나 김종서와 사분(私分)으로는 친교가 없다. 이 국가의 왕자와, 이 국가의 대신이라는 공적 교제와 공적 명분이 있을 뿐이다. 공적 교분 밖에는 없는 사람이 서로 만난다 하는 것은 공적 사무일 밖에는 없다. 그런데, 그들은 공무가 아닌 용건으로 자주 만난다 하는 것이었다.
이 밀회를 거저 단순히 볼 수가 없었다. 무슨 이면이 있고 딴 뜻이 있다고 볼 수밖에는 없었다.
수양은 동생 안평의 위인을 생각해 보았다.
『너는 좀되다.』
『너는 삐뚜러졌다.』
부왕(세종) 생존시에 늘 안평을 경계하던 이 말씀은 안평의 위인을 여실하게 말하는 바였다. 무슨 일을 행함에 있어서 정도(正道)로 행하여도 될 일을 안평은 반드시 권모 술수라는 도정, 음모라는 도정을 밟아서야 행하는 사람이었다. 가령 누구를 자기의 수하로 부름에 있어서도 공명 정대히 불러도 올 사람일지라도 음모적으로 「뽑아오는」 형식으로 부르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말 한 마디를 함에 있어서도 비꼬아지게 하며 반어(反語)를 쓰며, 각작각작 긁는 말과 태도를 하는 사람이었다.
형왕 승하함에 있어서도 안평도 수양이나 일반으로 「어린 조카님을 보좌하라」는 고명을 받지 못했다. 만약 안평으로서 권력에 대한 아무 미련이나 욕망이 없이 허심담담하였으면, 그의 정자(亭子), 담담정(淡淡亭)에 길게 누워서 잡인을 상종치 않고 담담한 여생을 보냈어야 될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 정치적으로 무슨 욕망이 있으면 공공히 대신 재상들과 정치를 의논하고 정사를 토론하고 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저도 이도 하지 않고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었다), 표면은 국가 동태에 무관심한 듯이 가식하고, 일면으로는 문무잡배들을 주위에 모아 가지고 헌화하며, ─그 위에 또한 거기 끝치지 않고 대신들과까지 밀회를 하고 밀담을 한다는 것이었다.
무슨 의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 사분으로 친교가 없는) 왕자와 대신 사이의 의논이요, 그 위에 내놓고 하지 못하는 점으로 미루어, 「가볍게 볼 의논」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였다.
때가 때요, 시국 형세가 형세라, 수양은 한명회의 보고를 듣고 악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평과 대신과의 밀교─
『무슨 딴 작희를 하려는 모양이다.』
안평의 성격으로 미루어 있음직도 한 일이었다.
왕의 지친(至親)에 웃 항렬로는 백부 양녕과 효령과 성녕이 있지만 그분들은 잡세에서는 은거한 분이다.
지금의 어린 왕의 항렬로는 남자 동기가 없었다.
선왕(문종)의 항렬로는 수양을 필두로 하여 적출 입곱 분이다. 안평은 수양의 바로 아래다.
가령 지금 무슨 사건이 돌발하여 어린 왕이 물러서거나 없어지면, 그 뒤를 받을 이는 수양이요, 수양의 다음 순서로는 안평이다. 과히 요원한 것이 아니다. 여기 만약 안평에게 딴 야심이 있다 하면, 그 열매는 과히 먼 곳에 있지 않다. 손을 내밀면 넉넉히 따질 곳에 있다. 좀 된 사람, 성격상 음모를 좋아하는 사람─이 안평의 성격과, 안평의 현재의 지위와, 안평의 이즈음의 언행으로 미루어 볼 때에, 안평은 결코 심상하게 볼 사람이 아니었다.
『한 서방. 오문(誤聞)은 아니겠지?』
『딴 말씀!』
『어디서 난 소문인가?』
『소문이 아니올시다. 양정(楊汀)이가 매일 매복을 하고 엿봅니다.』
정승들이 안평을 몰래 찾아다니는 것은 떠도는 풍설이 아니라, 양정이가 숨어 지켜서 실지로 본 것이라 한다.
『무슨 밀담인지 듣지는 못했겠나?』
『그게야 들리겠습니까?』
수양은 두세 마디 물어본 뒤에 그 질문을 끝막았다.
수양은 푹 머리를 숙여버렸다. 마음이 차차 괴로워 왔다.
안평과 대신들의 의논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무론 상세히는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사정으로 따져 보아서 어린 조카님의 신상에 좋지 못한 결과를 나타낼 의논이라는 것만은 추측할 수가 있었다. 그런 꾀를 하는 사람은 수양 자기의 동생이요, 그 꾀가 이루어진다 하면 거기서 해를 입을 사람은 수양 자기와 조카님, 그 두 사람이다. 수양에게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가까운 사람들이다. 수양 자신과 가까운 만큼 또한 따라서 베푸는 사람이며 당하는 이 끼리끼리도 그만큼 가까운 사람끼리다.
왜! 무슨 까닭으로?
무엇 때문에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을 해치기 위해서 꾀를 배풀려 하며, 다른 한 사람은 그 꾀로서 해를 입을 입장에 서게 되었느냐.
─어리석은 동생아!
왕손이요, 왕의 아드님이요, 아우님이며, 현재 또한 왕의 아저씨로서, 부귀, 영화 부족이 무엇인가. 왕의 생활에는 크고 무거운 책임이 있고 근심이 있고 걱정이 있고 고단함이 있지만 너는 누릴 부귀는 왕에게 못하지 않고, 져야 할 책임은 네 집안 가사밖에 없으니 그 이상 무엇을 바라고 그 이상 무엇을 탐내랴. 이 막히고 답답하고 어리석은 동생아.
어리신 조카님의 두 어깨에 짊어지어 있는 무거운 짐이 애련하지 않으냐. 어깨 아프실 것이 마음 씌어지지 않느냐. 우리 장발한 종친들이 도와 드리고 붙들어 드리어서 나약하신 옥체 고단하지 않도록 해 드리어야 할 것이로다. 딴 생각 왜 품는단 말이냐?
수양은 안평의 뒤에 감추어져 있는 김종서의 그림자를 분명히 직각하였다.
일찍이는 세종대왕의 지휘 아래서 육진 개척의 큰 일을 성취한 이 늙은 재상─
─우직하고 울뚝밸이 세기 때문에 좋은 지도자의 아래서는 큰 사업도 성취는 하였다. 그러나 늙고 모록한 지금에 그에게 남은 것은 우직한 밸이요, 그 밸의 위에 (늙기 때문에 생겨난) 음흉한 성격이 다분히 섞여 있었다.
안평이 만약 좋지 못한 편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하면, 그 뒤에서 안평에게 기름을 붓는 김종서의 그림자는 너무도 명료한 것이었다.
음모를 즐겨하는 사람은 제 꾀에 넘어간다. 안평의 얕은꾀는, 김종서의 음흉한 꾀에 넘어갔으리라는 점을 수양은 직각하였다.
지금의 정부에서 가장 수양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꺼리는 사람은 김종서였다. 수양 또한 지금의 정부에서 김종서를 가장 미워하고 싫어하였다.
영의정 황보인은 무능한 대신에 또한 호인이어서 모든 일에 겁만 앞서는지라, 어떤 음모에 가담했다 하면 김종서의 충동인 때문일 것이었다.
이 정부에서 수양을 반대하는 마음을 품은 사람이 있다 하면 그것은 김종서일 것이다.
종서는 선왕에게 어린 임금을 보좌하라는 고명을 받은 사람이다. 그 고명을 방패삼아 어린 임금을 모시고 무사태평히 노후(老後)를 보내고자 하였다. 어린 왕도 부왕의 고명까지 있었는지라, 늙은 대신을 신뢰하고, 그들 뿐을 힘입으려 하였다. 거기 수양이 곁들이 하였다. 그러나 부왕께 늘 수양은 무서운 사람이라는 훈계를 들어온 어린 왕은, 수양을 무서워하고 꺼리고, 더욱 더 늙은 대신들에게 의뢰하려 하였다. 이리하여, 비록 수양이 곁들이는 하였다 하지만, 왕의 신뢰가 없고, 따라서 늙은 대신들의 지위는 반석과 같이 튼튼한 듯하였다.
그러나 이 현상은 잠깐새였다. 수양의 지성과 충심이 어린 왕께도 차차 이해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렇게도 무서워하던 수양을 차차 가까이 부르고 차차 신뢰하여 가는 것이 분명하였다.
여기서 늙은 대신들은 신상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왕이 수양을 꺼리는 동안은 자기네의 신분도 반석과 같으되 왕이 수양을 신뢰키 시작하면 자연히 수양과는 등진 자기네들의 신변이 안전치 못하다. 여기서 꾀는 빚어졌을 것이다. 가볍고, 주접대기를 즐겨하는 안평은, 여기 한 허수아비로 끌려들었을 것이다. 수양께 대하여 이유 없는 반감을 품고 있는 안평은, 대신들의 농락에 비교적 쉽게 끌려들었을 것이었다.
─이 전후곡절을 마음에 분명히 직각한 수양은, 차차 마음으로 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린 조카님─
안평─
두 그림자는 힘있게 감고 있는 수양의 눈가에 어릿거렸다.
지금 자기는 바야흐로 중대한 사명을 띄고 연경으로 떠나려고 아까 궁중에서 그 일이 작정되었다. 자청하여 취한 길이라, 이제 세삼스러이 「싫습니다」고 사퇴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번 길의 목적은, 표면은 고(誥)와 면(冕)에 대한 사례사라 하지만, 수양으로서는 이번 길에 그곳에 가서 그곳 문물 제도를 좀 잘 시찰하고 연구하고 싶었다. 잘 시찰하여 그곳의 좋은 제도며 풍습을 이곳에 옮겨오고 싶었다. 왕자의 신분은 가볍게 움직이기 어려운 것이라, 이번 기회를 놓치면 장래 언제 또 그런 기회가 올는지 아득하다. 지금 어린 왕이 위에 계시고, 차차 수양 자기를 신뢰하여 오는 현재에, 자기가 왕께 보좌하여 좋은 시정을 하고자 함에는 아직도 안목이 넓고 크지 못함을 스스로 안타까이 여기는 때가 적지 않다. 몸소 그곳에 가서 주(周) 이래의 발달된 문물제도를 보고 그것을 참고로 하여 이 땅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여 부강한 방토를 이룩하고자─그런 야망을 품고 있는 수양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큰 야망이 있었다. 옛날 부왕 생존시에 무척이 내심 벼르기만 하면서도 입밖에 꺼내보지도 못하였던 위대한 야망─구 고구려 영토의 회복─을 어떻게 할 수 없을까. 요동(遼東)일대를 몸소 밟아서 그 땅을 검분이라도 하여 보고자 한 것이었다. 서장관으로 신숙주를 택한 것도, 숙주는 부왕의 분부로 (언문을 제정키 위해) 누차 요동에 왕래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평의 존재라는 것이 꺼림칙하였다. 안평이 단지 수양 자기에게만 비꼬아진 행동을 취한다면, 그것이야 아무렇단들 관계가 없지만, 이즈음 정승들과 사귄다는 것, 자주 왕래하며 밀담한다는 것이 꺼림칙하였다. 국가에 관계되는 일이면 왕께나 수양 자기에게 감추고 할 까닭이 없었다. 사사이든 간에, 왕이며 수양 자기를 기이려하는 일이면 결코 온당한 일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적지 않게 꺼림칙한 일이다. 그러나 안평이라면 그것도 또한 그다지 큰 두통거리가 아니다.
안평은 그 성격이 비꼬아지고 좀되지만 과단성(果斷性)이 없는 사람이었다. 비틀고 비꼬는 언행은 한다 할지라도 언행에 그칠 뿐이지, 무슨 일을 저지를만한 과단성이 없는 사람이었다. 입으로 말로 남의 감정을 헐뜯고, 긁는 말을 하고, 남을 이간 붙이는 말이며, 남을 폄하는 말은 할지나, 행동으로서 무슨 엉뚱한 일은 못할 사람이다. 정면으로 맞서면 저편에서 피하고 숨어서, 입으로나 야스꼬운 말이거나 혹은 고담준론도 할 것이지, 정정당당히 대하기는 피할 사람이다. 따라서 안평 혼자만이면, 아무런 일도 성사를 하지 못할 사람이다.
안평과 김종서의 합작이라 하는 것이 성가신 문제였다.
종실의 지친, 한두 다리만 건너면, 국왕의 위에라도 오를만한 안평의 신분에다가 김종서라 하는 날개가 달리면 이것이 적지 않게 귀찮은 문제였다.
한두 가지의 문제로 한두 개의 사람만 젖혀놓으면, 안평은 당연한 순서로 왕위에도 오를 수 있는 사람으로서 그런 신분의 사람을 중으로(혹은 허수아비로) 앞장세우고 몇몇의 꾀가 진행된다 하면, 놀랄만한 사건도 빚어질 것이다. 안평 혼자면 이런 대담한 생각은 내지도 못할 좀된 선비에 지나지 못하지만, 그의 뒤에서 부채질하는 사람이 있다 하면─아니, 부채질이라기보다, 등뒤에서 떠미는 사람이 있다 하면, 안평이 선두에 나서지 않으리라고 보증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즈음 안평과 자주 접근한다는 김종서는 어떤 사람인가.
선왕 문종의 총애를 받아서, 좌의정이라는 중직에 있는 사람이다. 한 때는 그의 자리가 튼튼한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근자, 왕이 차차 수양을 신용하는 편으로 기울어지는 듯 하자, 수양과는 등진 종서는 자연히 자리의 흔들림을 느끼고,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게 된 사람이다.
김종서는 많은 자손을 거느린 사람이다.
김종서로서 만약 옛날의 명상과 같이 부귀와 영화를 초개 같이 여기는 재상이라 하면 문제가 안 되거니와, 불행히 종서는 아첨하기를 즐겨하고 이간질하기를 좋아하는 성품을 다분히 가진 사람이었다.
일찍이 태종대왕이 그 맏아드님인 양녕대군을 세자로 봉하였다가, 다시 사위(嗣位)를 세째 아드님 충녕대군(세종대왕)으로 바꾸고자 할 때에, 김종서는 다만 태종의 뜻에 영합하고자 하여, 얼마나 많은 말을 꾸며내어서 양녕대군을 헐뜯었던가. 양녕대군이 아무 죄도 없는 줄을 번히 알면서도 다만 왕의 뜻에 영합하고자 양녕에게 가지가지의 죄안을 꾸며내어 씌웠던 종서였다. 양녕이 종내 폐사가 되고, 충녕대군이 사위에 올랐다가 등극까지 하자 충녕─변하여 신왕(세종대왕)께 대하여서도 종서는 연해 양녕을 참소하였다. 신왕은 즉 양녕을 대신하여 등극한 분이라, 신왕께 양녕을 욕하는 것이, 신왕의 총애를 사는 방도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신왕(세종)은 종서의 이 비루한 심사를 더럽게 보았다. 당신을 영립한 공로가 있는 종서였지만, 왕은 그를 엄책하였다.
『그대의 마음으로 내 마음을 추측하는가? 본시 친륜으로 말하자면 양녕대군이 누릴 대위(大位)를 지금 내가 누리는 것이라, 저 필부(匹夫)라 할지라도 형제간에는 서로 악을 감춰 주고 신을 나타내 주다가 불행히 하나이 죄에 걸리면, 애걸하고 뇌물해서 구해내려고 애쓰는 것이 인정이거늘 한 나라의 임금으로 필부만도 못하게 제형(양녕)을 감싸주기는커녕 벌까지 하라고 내게 조르는가? 다시 내게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종서가 공조판서(工曹判書) 때에 종서는 공조에 시켜서 정승 황희(黃喜)에게 주과(酒果)를 바쳤다. 황 정승은 그 주과를 물리치고 종서를 책망하였다.
『국가가 예빈시(禮賓侍)를 둔 것은 정승을 대접하기 위해서라, 내가 시장하면 예빈시에 시킬 것이어늘 공조판서가 사사로이 대접하는 건 웬일인가?』
뿐 아니라, 평생을 노색(怒色)을 나타내어 본 일이 없다는 황정승도, 김종서에게만은 매우 엄하였다.
말하자면 김종서는 아첨하기를 좋아하고, 아첨할 필요상 이간질이 필요하다 하며, 이간질도 사양치 않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부귀하기 위하여, 자기가 영화되기 위하여는 어떤 일이라도 감행할 사람이었다. 많은 자손을 거느린 그요, 부귀라는 데 애착심이 강한 그요, 또한 부귀를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는 불감증인 그라, 만약 그에게 수양의 존재라는 것이 제 부귀의 방해물이라 보면, 수양 제거에 힘을 쓸것이며, 수양이 지금 왕의 신임을 입고 있어 수양만을 떼서 제거하기 힘들면 더 높은 데까지라도 손을 뻗쳐 보려 할 위인이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볼 때에 수양의 마음에는 종서에게 대한 증오의 염이 차차 크게 일어났다. 다만 무능한 재상이라고 경멸하고, 수양 자기에게 적대하는 사람이라고 밉게 여겼지만, 그 인물이 지금 생각하는 바와 같은 그런 음흉한 꾀를 품고 있다 하면, 단순히 미워만 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크게 경계하고, 그 대책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안평이, 그런 인물과 조종하는 연극에서 놀아난다 하면 그것은 수양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었다. 김종서는 만약 수양이 득세를 하면, 자기는 몰락을 할 판이니 기써서 다른 꾀를 안출하려고 갈팡질팡할 것이나, 안평이야 무엇이 부족하고, 지금의 이상으로 무엇을 더 바래려고 그의 농락 아래로 들어갈 것인가.
사사에 수양 자기와 맞서려 하고 거슬리려 하는 안평은, 가증하기는 가증하였다. 가증하기는 가증하나 그래도 동생이었다. 동생끼리 아랫동생이 웃동생에게 지기를 싫어하고, 매사에 거역하고 하는 것은 괘씸한 하나마, 그것은 집안 일에 지나지 못한다. 남의 농락 때문에─제삼자의 행복을 위하여, 아랫동생이 웃동생을 거역한다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
한명회와 이야기를 하다가 수양은 머리를 수그린 채 한참을 들지를 못하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으리. 이번 사행(使行)을 그만두시면 어떻습니까?』
수양의 머리를 수그리고 생각에 잠겨 있을 동안, 한명회도 역시 잠잠히 있다가 수양이 약간 몸을 움직일 때에 비로소 말을 걸었다. 그 기회에 권람(權擥)도 함께 말하였다.
『지금 나으리께서 먼길을 떠나시면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양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 직접 들어서 그들의 생각과 자기의 생각이 같은지 어떤지를 알고 싶었다.
『그야……』
『그야……』
두 사람의 입에서는 같은 말이 함께 나왔다. 그리고는 함께 끊어졌다.
『그야 어떻단 말인가?』
재쳐 물었으나 대답은 없었다.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은 입 밖에 내기가 어려운 말이기 때문이었다.
『안평이 신기(神器─옥새)를 엿본단 말이겠지? 황보정승이나 김정승이 안평을 떠받을리란 말이겠지? 그런가?』
수양은 그들의 말을 꼬집어 밟았다. 그러고 거기도 역시 대답을 못하는 그들에게 무거운 눈을 부었다.
『그렇지만 이보게. 이번 사행(使行)은 누가 가란 것도 아니고 가 달란 것도 아니고 내가 자진해서 가겠습니다고 한 겐데, ─그것도 열흘 이십일 전도 아니고 아까 방금 가겠다고 한겐데, 체면도 있지, 이제 무에라고 그만 두겠습니다고 하겠나?』
『그야, 탈이 나섰다던가 무슨 핑계야 없오이까?』
『핑계야 없겠나마는, 그렇게 가볍게 가겠습니다고 했다 그만 두겠습니다고 했다 번복무쌍하면, 이 뒤 내가 무슨 일을 한다면 누가 신용을 하겠나. 그 점도 생각을 해야지.』
『그러니 나으리께서 어떻게 떠나시겠습니까?』
『글쎄. 무슨 도리가 있겠지.』
『무슨 도립니까?』
수양은 머리를 기울였다. 먼저 동생 안평을 생각하여 보았다.
『안평은, 우익(羽翼)만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할 사람. 돌아 다니면서 남에게 역한 말이나 하라면 잘할 사람이지 만, 입만 살았지 속살이 없는 사람일세. 치지도외하고……』
『영상(領相)은?』
수양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미소로 감추었다. 예전 황보인이 세종께 대하여 어떤 설원간(雪寃諫)을 할 때에 정신 없이도 사모를 거꾸로 쓰고 어전에서 엄숙한 얼굴로 열변을 토하기 때문에 도모(倒帽) 재상의 별명을 듣는 황보인이었다.
『지봉(芝峰)─(황보인의 호)은 도모지시(倒帽之侍)의 칭호를 듣느니만치 우활할 뿐더러 소심하고 겁 많고 늙어서 아무 일도 못하는 위인. 턱이나 어루만지고 발바닥이나 쓸면서 식은 코 들여 마시는 밖에는 장기가 없는 사람이니까 역시 치지도외할 밖에.』
『그럼 좌상(左相)은?』
『이 절재(節齎)─(김종서의 호) 하나이 두통이지만 그것도 어떻게 될 도리가 생기겠지.』
『어떤 도리가 생기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어떨까, 지금 생각한 바인데 지봉(芝峰)의 아들 석(錫)이와 절재(節齎)의 아들 승규(承珪)를 수행으로 데리고 갔으면……』
『글쎄올시다. 그것도 한 방책은 되겠습니다.』
『한 방책뿐이 아니라, 만전지책일 것일세. 지봉이든 절재든 무슨 안평에게 대한 충성이 크다든가, 국가에 대한 충심이 커서 그러는 게 아니고, 단지, 늙마에 평안히 살고 자자손손이 영화 누리자고, 그러는 게 뻔한 일인데, 내가 저희들의 아들을 전당잡아 가지고 저 땅에 간다면 그동안이야 저희네들이 꼼짝이나 할 것인가. 그 사람들이 국가에 충성이 있다든가 하다못해 안평에게라도 적심으로 정의를 가졌다면, 자식은커녕 당자를 죽인데도 굽히지 않을 게지만 자기 일신의 영화를 도모하는 데 지나지 못하니 내가 그 자식들을 데리고 가면 누구를 위해 꾀를 하겠나?』
『하기는 그렇습니다.』
한명회 등은 드디어 수양의 의견에 승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평과 황보인, 김종서 등에게 대할 방침은 대략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이번 수양이 연경에 가게 된 것은 아까 궁중에서 갑자기 결정된 일이라, 수양의 수하인 한명회며 권람이며 이런 사람들과도 아무 의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수양이 멀리 가 있는 동안 여기(서울)서는 무엇을 하고, 무슨 일을 진행시키며, 어떤 일을 착수하며, 무슨 계획을 세운다든가 아무런 선후책도 의논한 일이 없었다. 거기 대해서도 대략 의논을 해야 할 것이다.
안평이 무이정사(武夷精舍)와 담담정(淡淡亭)을 꾸미고 문무 잡배들를 모아 가지고 인심수획을 도모한다. 여기 대해서도 무슨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한명회며 권람 등이 제출할 때, 수양은 그런 일은 그다지 크게 보지 않았다.
안평은 우유부단하여 결단력이 없는 사람이니 무슨 일을 창도하지는 못할 사람이요, 황보인 역시 겁 많고 과단성이 없는 사람이니 문제삼을 것 없고 김종서도 역시(그의 아들 승규(承珪)만 수양이 데리고 가면) 딴 짓은 못 할 사람(한댔자, 무의미한 일이니까)이라 수양이 연경을 다녀서 다시 돌아올 때까지, 아무 별 일이 생기지 못할 것이라─수양은 굳게 믿었다.
안평이 문무 잡배를 모아 가지고 술을 먹이고 대접을 후히 하여 인심을 모은다 하지만, 안평의 위인이 인격적으로 그들의 존신(尊信)을 사고 숭앙을 받을 힘이 있는 바가 아니요, 임시로 술과 환락에 끌려 모여온 오합지중이라, 안평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나설 사람은 없을 것이니, 무이정사며 담담정에 모여드는 무리는, 한 번 고함치면 산지사방할 부랑배들로서 이 역시 크게 평가할 바가 아니라, ─수양은 이것도 아주 가벼이 보았다.
그러니까 안평의 꾀하는 일이라 하는 것은, (자기와 및 자기 자손의 부귀 영화를 위하여) 기쓰고 덤벼드는 김종서 한 사람이 좀 꿋꿋할 뿐이지, 다른 사람들은 볼 데가 없다.
김종서는 좌일보 우일보로서 몰락과 영화가 갈리는 판이매, 악에 바쳐서 죽을 힘 다 쓸 것이로되, 그의 아들을 수양이 잡고 있으면, 김종서도 옴쭉달싹 못 할 사람(누구를 위하여 일어서랴)이니 염려할 바가 없다.
그러나 장차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용기와 힘을 아울러 가진 사람을 수하에 가질 필요가 있으니, 전국에 널리 구하여 그런 사람을 모아들이어 한 개의 세력을 형성하여 두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을 좀 구하여 보라.
안평에게 모여든 무리들과 같이 술이나 탐내고 안락이나 꾀하는 무리는 쓸 데 없고, 장차 한 마디 호령이면 목숨이라도 아끼지 않고 물불이라도 저어하지 않을 사람들을 물색하라.
─이만한 의논과 지휘가 있은 뒤엔 그날 밤은 그대로 헤어졌다.
때는 자정이 썩 지난 양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