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양/36
36
[편집]이번 연경에 다녀온 뒤부터, 수양은 저절로 섭정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왕이 임명한 바도 아니요 정부에서 결정한 바도 아니요, 형세상 저절로 섭정이 된 것이었다.
왕은 무슨 일이 생기건 무슨 일을 당하건, 수양과 의논하였다. 아직 왕비도 없는 소년왕이매, 가정적으로는 무슨 일이 있을 까닭이 없고, 모두가 대외적 사무라, 왕이 친재를 하지 않으면 수양에게밖에는 의논할 데가 없었다.
간간 어떻게 하여 대신들과 의논을 시험해 본 적이 있었지만, 대신들의 아뢰는 말이라는 것은 그 당한 사건에 대한 사무적 대답이나 해결책이 아니고, 반드시 인성(人性)이 어떠니 옛날 성현이 어떠니 하여 추상적이요 요령부득의 것뿐이었다.
그리고 좀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반드시,
『전하! 마음을 정(正)히 하시고 뜻을 깨끗이 하시와 옛날 성현을 사모하시는 지성으로 궁행하시면, 인사 따라서 발라지고 천리 따라서 순해지와 지치(至治) 자연히 생겨날 것이올시다.』
하여 구체적의 대답도 없을 뿐 아니라, 그 책임을 임금께 밀어버리고 말려 한다.
거기 반하여 수양은 실제적으로 임금이 행할 일과 시킬 일을 아뢰어서 무슨 일에든 명쾌하고 순조로운 해결안을 내리고 하였다.
이런지라, 왕은 수양만을 믿고 수양에게만 의지하려는데 차차 기울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제는 왕의 신임을 한 몸에 지니게 되었다. 아직 양암 중이니 정치상의 중대한 변혁이라든가 하는 것은 좀 꺼리는 바이지만, 조금씩 조금씩의 개량은 꾸준히 하여보려 하였다.
그러면서도 수양에게 매우 마음 쓰이는 두 가지의 점이 있었다.
하나는, 수양 자기도 단지 임금의 삼촌이라는 이외에는 아무 실직권이 없는 점이었다. 정부에게 직접 명한다던가, 유사(有司)에 직접 분부할 권한이 없는 사람이었다. 조카님께 아뢰어, 조카님이 정부에 분부하고…… 이렇게 군잡스런 수속을 밟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한 가지의 마음 쓰이는 점은, 지금 조카님과 수양 자기가 서로 믿는 사이가 된 이 신임에 이간 붙이는 손이 이르는 것을 엄중히 삼가고 경계하여야 할 일이었다.
첫째 점도 매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수양이 조카님께 사뢰어 조카님이 또 정부에 분부를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마음대로 진행되고 실행되지를 못하기가 예사였다. 왕이 정부에 명하면 정부는 유사에 명하고─ 이런 순서를 밟아야 일이 실행되는 것인데 이 정부의 수뇌자는 수양에게 적개심을 품은 사람이라 지금의 왕의 분부라는 것이 수양의 의견에서 나온 것임을 뻔히 아는 그들은, 왕명에도 잘 복종하지를 않았다. 말다툼과 이론 캐는 데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그들은 무슨 이론이든 들어 가지고 왕명을 불복하였다. 또한 왕은 춘추가 어리고 마음이 나약한 분이라, 대신들이 반대하면 이것을 강행시킬만한 압력이나 기백이 부족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제도에는, 삼사(司)라 하는 것이 있다. 입만 까놓은 삼사의 관원들은, 자기네의 직책을 「무엇에든 트집 잡고」 「무엇에든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 문사들로 조직된 삼사는 문사 아닌 사람들은 통 몰아 속물이라 하고, 더욱이 종친이나 인척(왕의)이 정치에 용훼하는 것을 가장 꺼린다.
수양이 선왕께 섭정의 고명이라도 받았을 것 같으면, 수양의 지위는 왕의 대리이니 감히 이렇다 못하지만, 그렇지 못한 수양이 끼어 드는 것을 그들은 규탄하여 마지않았다.
게다가 지금의 정부 삼공은 모두가 홍문 출신을 사류(士類)에 속하는 사람이라, 같은 파가 될 수가 있었거니와, 수양의 참견은 전연 분에 넘치는 일이라 보기 때문에 매사에 규탄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니까 수양은 왕의 신임은 얻었다 하나, 그 신임으로서 실행할만한 손발이 없었다.
이 점이 이런 데다가, 한편으로 수양 자기와 왕과의 사이를 이간 붙이려는 공작이나 없는가 엄하게 감시하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었다.
수양은 수하인들을 시켜서, 김종서와 황보인이며 안평의 신변, 행동 등을 엄중히 감시하고 경계하였다.
한가지로는 왕과 자기의 사이를 이간 붙이려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것은 그들일 것이다. 이것을 감시하는 동시에 또한, 그들의 사이에 엉뚱한 딴 공작이나 시작되지 않는가 하는 점을 더 엄중히 감시하였다.
인제 이 상태로만 간다 하면, 김종서, 황보인 등의 권세와 영화는 시들어 버릴 밖에는 없는 운명에 섰다.
권세에 연연하고 영화에 연연하는 그들인 데다가, 또한 김종서는 자기의 목적을 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라도 피하지 않는 위인이라, 결코 가볍게 볼 수가 없었다. 일을 이대로 버려 두었다가는 자기네들의 몰락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인지라, 그들은 갈팡질팡 딴 꾀를 베풀려고 돌아갈 것이었다. 궁한 쥐는 고양이에게도 달려든다. 무슨 무모한 행동이 그들에게서 나올지 예측도 할 수가 없었다.
자기의 신변도 신변이려니와 어린 조카님의 신변을 썩 잘 지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김종서(김종서에게는 황보인도 포함된다)와 안평은 그 목적에는 서로 공통된다 하지만, 당면의 적(敵)으로 여길 사람은 서로 다르다.
김종서가 당면의 적으로 여기는 사람은, 수양 자기이다. 수양 자기가 있기 때문에, 그러고 왕의 신임이 수양 자기에게로 돌아왔기 때문에, 종서는 왕의 신임을 잃었다. 수양 자기만 없어지면 김종서는 선왕의 고명을 자세 삼아 다시 왕의 신임을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 일신의 부귀영화를 위하여 왕의 신임을 바라는 종서라, 종서의 당면의 적은 수양 자기다.
그러나 안평의 당면의 적은 그렇지 않다.
그사이 두고두고 조사한 바에 의지하건대 김종서와 안평이 뜻을 같이하여 무서운 일을 하려는 의사를 교환한 것뿐인 분명한 사실인 모양이다. 친동생이니만치 안평의 성격 등을 잘 아는 수양은, 안평이 주동자가 되거나 앞장을 서서 딴짓을 꿈꿀만한 과단성도 없는 사람인 줄 안다. 세력과 영화의 권에서 떨어지게 된 종서가, 어떻게 하여서든지 자기를 몰락의 굴함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안평을 충동하고 안평을 뚱기쳤을 것이다. 왕위 계승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안평이요, 본시 주착없고 가벼운 안평이라, 이 충동에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지라, 안평의 당면의 적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분이요, 수양 자기는 제이순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김종서는 현재의 임금의 아래서든, 안평의 아래서든, 부귀영화를 누리기만 하면 그뿐이요, 안평은 부귀영화보다도 다른데 뜻이 있다.
서로 그 목적이 공통은 되면서도 동일하지는 않은지라, 그들의 모략은 기운차게 진행되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첩자의 보고에 의지하면 간간 의견의 충돌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역시 목적에 공통점이 있는지라, 일이 진행되기는 되는 모양이었다.
지금, 이 나라에는 여러 가지의 세력이 얼키고 설키어 대립되었다.
하나는 왕과 및 왕의 신임을 받는 수양의 세력이었다. 그러나 이 세력의 아래는 봉행이 아랫사람이 없었다.
하나는 정부 대신들의 세력이었다. 이 세력의 아래는 (같은 사류(士類)라는 공통점을 가진) 문신(文臣)들이 속하였다.
이것이 표면적으로 나누인 두 개의 세력이었다. 따로이 이면적 세력이 있었다.
이면적 세력으로는, 안평의 담담정(淡淡亭)이며 무이정사(武夷精舍)에 모여드는 문무배들과 및 정부 대신들이 한 개 세력을 이루었다.
거기 대하여, 수양은 이 세력을 견제할 겸 나아가서는 거기서 무슨 행동이 나올 때는 거기 대하기 위해서 자기의 수하에도 무사 차력들을 모아들였다.
임금(임금에게는 수양도 한편이다)과 정부가 대립하였다 하는 것은, 백성들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두 왕자─수양과, 안평이 서로 경쟁하여 수하에 사람을 기른다 하는 것은 세상에 적지 않은 의혹과 불안을 주었다.
이 가운데 안평의 수하에 모인 무리는 문사와 무사가 반반으로, 문사라 하는 것은 끼리끼리 유사(有司)에 통하고 정부에 통하는 연줄이 있는지라 좀 점잖은 축으로 보이는 대신에, 수양의 아래 모인 무리는 태반 무사들뿐이라 평판이 떨어졌다.
세상은 차차 불안에 싸이기 시작하였다. 봄과 여름(계유년)을 지나서 초가을쯤은 꽤 두선두선 유언비어가 돌아갔다.
세종대왕 승하하고, 그 뒤 이년 조금 나마에 문종 또 승하하고, 어린 임금이 등극하였다는데 섭정하는 왕족도 없다 하는 이 점만으로도 세상에 불안을 일으킬 재료는 넉넉히 되는데, 이러한 불안한 시국에 두 왕자(수양과 안평)가 서로 경쟁하여 수하에 문무 잡배들을 모아들인다 하는 점은, 세상의 의혹은 안 일으키려야 될 수가 없었다.
『수양대군이 왕이 된다?』
『안평대군이 왕이 된다!』
『아니, 수양대군이 왕이 되려고 하는 것을 안평대군이 못 하게 하려 한다.』
『아니, 안평대군이 딴 뜻을 품은 것을 수양대군이 못하게 한다.』
항간에는 가지가지의 유언이 돌아갔다.
수양 귀에도 이 풍설은 들어왔다. 수양은 가슴이 선뜻하였다. 그 유언은 어느 편이고 간에, 왕위에 변동이 있으리라는 결론이었다.
이 풍설이 왕께까지 들리면 어리신 마음에 얼마나 놀랍고 두려우랴? 걱정스런 일이로다. 조카님의 귀에까지는 이 풍설이 및지 말고저!
수양은 이 일이 무엇보다도 근심스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외롭고 쓸쓸하고 의지할 데 없는 환경에 계신 조카님께 이 풍설까지 들어가면 얼마나 놀라우랴. 세상은 왜 이다지도 입 놀리기를 좋아하는가?
이 여름에서 초가을─수양도 매우 마음이 언짢은 세월을 보냈다. 좀체의 일은 두고두고 근심을 계속하는 수양이 아니었지만, 지금의 세상 형편은 그의 마음을 몹시 불쾌하게 하였다.
안평이 야속하고 딱하였다. 아무리 주착 없고 가볍기로서니, 몇몇 대신의 농락에 놀아나서 딴 생각을 어디 감히 품을소냐. 수양의 감시가 엄중하고, 그 위에 그들의 목적의─당면 적(敵)도 서로 다른지라, 계획이 활발하게 진행되지는 못하는 모양이나, 무기(武器)를 몰래 준비하는 형적도 있고, 수하인을 더욱 널리 구하며, 현재 조정의 관리들도 더욱 많이 담담정이며 무이정사로 청하여 대접을 후히 하여 인심 사기에 급급하며, 한편으로는 유언비어를 빚어내어 퍼치며, 수양에게 대한 악풍설의 태반은 거기서 생겨나는 모양이었다. 장차 안평이 대체 어떤 수단을 써서 목적을 달하려는지는 예측할 수 없으되, 지금의 형세로 보자면 이전 태종정사(太宗定社) 때와 동일한 수단을 쓰려는 듯싶었다. 그리고 또한 그런 수단밖에는 다른 방도는 없을 것이었다.
이런 형세 아래서 수양은 단단히 결심한 바가 있었다.
김종서를 제거해 버려야겠다 하는 점이었다. 설사 딴생각 없다 할지라도 종서는 이 국가에 있어서 유해무익한 인물이다. 선왕의 고명을 받았다는 방패를 앞장세우고, (수양이 있으면 자기의 부귀영화가 뜻대로 되지 않겠으므로) 모든 일에 수양에게 맞서며, 수양이 왕께 계청하여 행하려는 일도, 선왕의 고명이라는 방패로 눌러버리기를 일삼는 이런 인물은, 국가 흥성에 큰 지장이 될 뿐 아니라, 그 반대의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종서가 자진하여 벼슬을 내어 던지고 여생이나 안온하게 지낼 생각으로 있다면여니와, 부귀에 연연한 그는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도리어 제 부귀공명에 장해되는 사람을 제거하려 하며, 그 사람만을 제거할 수 없으면 그 웃사람까지도 제거하려기를 사양치 않고, 그 목적을 위해서는 주착 없는 안평가지 뚱기쳐서 딴짓을 꿈꾸게 하니, 이런 인물을 제거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수상 황보인은 호인인 대신에 우물(愚物)이다. 한 포의에서 현재의 인신의 극이라는 자리까지 올라간 그는 역시 지위에 연연하기 때문에 남의 유혹에 넘어갔다.
황보인 한 사람뿐이면 다만 벼슬이나 깎고 시골로 내치면 그만이지만, 지금의 형세가 그렇게 단순하지 못하다.
지금 김종서가 주동하여 가지고 이룩한 세력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황보인을 충동하고 안평을 충동하여 그 아래로 아들인 문무 잡배들로 형성한 세력이었다. 이것은 단지 표면상 서로 호기롭게 놀며 왕래하며 하는 뿐이지, 표면으로 내놓은 목적은 없는 (수뇌자 삼 사인만이 안다) 무명세력이었다.
또 하나는, 선왕의 고명을 받은 신하들로 조직된 세력이었다. 황보인, 김종서며, 이양(李穰), 민신(閔伸) 등 아홉 사람으로서 내놓은 목적 기치나, 「수양 배척」이었다. 선왕께 고명은커녕, 그 반대로 배척을 당한 수양대군이 지금 어린 왕을 충동하고 눌러 가자고, 온갖 일에 용훼할 뿐 아니라, 도리어 선왕께 고명 받은 신하들을 물리치려 하니, 이 수양을 배척하자 하는 기치 아래, 한 개의 세력을 형성하여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은 귀신이 아니니,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는 없지만, 이만한 외형만으로 추측하건대, 김종서는 이 두 가지의 세력을 조종하여, 만약 이편이 성공되기 쉬우면 저편으로는 안평까지라도 배척할지도 모를 것이었다. 선왕의 고명을 받았다는 것을 방패로 한 개 세력을 이룩한 이 단체도 전연 유해무익할 뿐 아니라, 장차 여차하는 날에는 두 세력이 한 뭉치가 될는지도 알 수 없는 바였다.
지금 왕의 앞에서, 이 나라의 정치를 숙청하려 함에 있어서, 이 무능하고 무지하며, 김종서의 농락 아래서, 아무 스스로의 주장이며 의견은 못 가지고 남의 조종하는 대로 놀아나는 세력도 일소하여 버릴 필요가 있었다. 이편에서 먼저 손을 쓰지 못했다가는 저편에서 먼저 손을 쓸 것이다.
저편에서 조종하는 자는 김종서라, 김종서가 안평과의 합작 세력을 먼저 움직일는지, 혹은, 고명 신하들과의 세력을 먼저 움직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편으로든지 수양 배척이 가장 먼저 할 일이요, 지금 이 나라에서 수양 자기가 떠나면 그 뒤의 정권이 안평에게로 가든지 대신들에게로 가든지 간에, 나라의 운명은 참담한 데로 빠질 밖에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가장 수양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안평의 문제였다.
「어리석은 동생아.」
연하여 나오는 탄식이 이것이었다.
그러나 이 탄식만으로 무엇이 되랴? 안평을 어떻게 떼어낼 수가 없을까?
이편으로든 저편으로든 김종서는 제거해야 할 것이지만, 안평은 떼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잘 아는 바 안평의 성격─ 잘못 건드리면 더 가로 뻗어 나가는 안평이다. 직접 면대하여,
『너는 누구누구와 여사여사한 일을 도모한다니 그게 웬 말이냐?』
고 물어 보지도 못할 성질의 사건이었다. 그렇다고 또한, 은근히 그런 뜻을 포함한 말로서 그를 훈계한다 할지라도, 그렇게 되면 안평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듯이 딴소리로 앞을 가리고 흐려버릴 것이었다.
이런 일은 지극히 난처한 일로서, 명료히 입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은근하게 암시로 나타내면 상대자는 각각 제 뜻대로 해석을 하는 것이었다. 현재 수양 자기가 신임하고 수하에 둔 권남이며 한명회 등도 수양 자기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귀에 굳은 살이 박히도록 그들에게 수양은,
『자기는 옛날 선왕을 보좌한 주공의 역할을 하려노라.』
고 자기의 진심을 말하였고, 조금도 다른 뜻을 보이지를 않았지만, 그 자기의 수하인들부터가 수양의 그 말의 뒤에는 다른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눈치가 분명하였다. 그런 눈치는 분명하지만, 또한 이런 문제는 노골적으로,
『자네는 그렇게 오해하는가?』
고 물어볼 종류의 것도 못 되므로, 수양은 다만 기회 있을 때마다 수하인들에게 되풀이하여 자기의 진심을 설명하고 하였지만, 이 설명이 상세하면 상세할수록 그들은 그 뒤에 감추어진 딴 뜻이 있는 것이라고 해석을 하는 것이었다.
진실로 딱하였다.
이렇듯 진심을 설명하여도 다르게 해석하기가 쉬운 델리케이트한 문제라, 가뜩이나 마음이 비꼬아진 위에 또한 수양께 반항심을 품고 있는 안평에게 대하여, 그 문제를 꺼내고 안평의 마음 돌리기를 (암시적으로든 노골적으로든) 권고하였다가는 큰 불집이 일어나기가 십상팔구요, 혹은 안평은,
『세상 평판이 형님이 흉한 마음을 품고 있답니다. 자기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마세요.』
버럭 고함지르고 자리를 떨치고 일어설지도 모를 것이고, 일이 이렇게 전개되다가는 두려운 결과가 돌발할지도 모를 것이었다.
그러나 안평은 어떻게 해서든 빼어내고 싶었다. 같은 아버님과 같은 어머님의 사이에서 난 친형제─ 이 친형제의 사이에 유혈지극이 생긴다 하는 것도 역겨운 일이지만, 그 유혈지극의 근본 원인이 어디 있느냐는 점을 생각할 때는 수양은 이 인간 사회의 너무도 더럽고 괴악한 일면에, 뜻하지 않고 몸서리치고 하였다.
생각하고 생각한 나머지에, 수양은 한 번 직접 안평에게 따져 보기로 생각하였다. 이즈음의 정세는 더욱 불안해 가고 더욱이 수양에게 더 형세가 좋지 못해 갔다.
김종서와 안평 및 그 수하─
김종서와 고명 받은 대신들─
이 두 그룹의 새에서, 서로 연락되는 「사류(士類)」라는 무리를 통해서 세상에 유포되는 풍설─
『수양대군이 딴 꿈을 꾼다.』
하는 소문은 나날이 높아가서, 이러한 풍설에 속아서 수양에게 붙으려는 무리와, 수양을 배척하는 무리가 나날이 늘어가서, 그냥 버려 둘 수도 없게 되었으므로, 수양은 안평을 직접 면대해서 그에게 따져 보고, 그 결과로서 자기가 장차 취할 방침을 결정하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수양은 구월(계유년) 어떤 날, 안평을 무이정사로 찾았다. 그날 마침 무이정사에서는, 안평이 무사들을 모아가지고 사회(射會)를 하는 날이었다.
오륙십 명의 활량들이 모여서, 활쏘기의 경기를 하는 자리로 수양은 안평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