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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사담집 1/토끼의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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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전(月前)에는 왕(百濟王 = 義慈)이 몸소 대군을 이끌고 와서 신라를 침략하여 이 나라(新羅)의 四O여 성을 빼앗았 다. 그 놀란 가슴이 내려앉기도 전에 八월에 들면서 백제는 또 장군 윤충(允忠)을 시켜서 신라의 대야성(大耶城)을 쳐들 어온다는 놀라운 소식이 계림(鷄林)의 천지를 또다시 들썩하 게 하였다.

이 소식이 들어오자 꼬리를 이어서 따라 들어오는 소식은 가로되,

「대야성은 함락되었다. 대야성 도독 김품석(金品釋) 이하 는 모두 죽었다.」

하는 놀랍고도 참담한 소식이었다.

그 뒤를 이어서 그 상보(詳報)가 이르렀다. 그 상보에 의지 하건대─ 대야성이 백제 장군 윤충의 군사에게 포위되자, 대야성 성 내에서는 반역자의 분란이 일어났다. 대야성 도독 김품석의 막하에 점일(點日)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점일에게는 젊고 아리따운 아내가 있었다. 도독 김품석은 자기의 지위를 이 용하여 점일의 아내를 빼앗았다. 이 때문에 도독에게 원심 을 품고 있던 점일은 백제의 정벌군이 이르자 아내 빼앗긴 분풀이로 제나라를 배반하고 백제군에게 내응하여, 성내의 각 창고를 불놓으며 성내에서 난을 일으켰다. 그러지 않아 도 백제의 강령을 도저히 대적치 못하겠거늘, 성내의 반역 분자까지 생기고 보니, 인제는 이 대야성은 더 볼 나위가 없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매 김품석의 막하에 서천(西川) 이라는 사람이 성에 올라가서 적장 윤충에게,

『내 목숨만 거두어 주신다면 성을 들어 항복케 하오리 다.』

고 굴복할 뜻을 나타내였다. 그리고 윤충에게서,

『온 성이 항복을 하면 생명을 보전해 주마.』

는 대답을 얻은 서천은 도독 김품석에게 그 뜻을 전하여 동의를 얻고, 다른 사람에게도 모두 그 뜻으로 권고를 하여 동의케 하였다.

그런데 그 가운데 죽죽(竹竹)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 어머니가 내 이름을 죽죽이라고 지어 주신 것은 꺾 어질지언정 굴하지 말라신 뜻인데, 내 어찌 죽기를 두려워 하여 적에게 굴하랴.』

하며 동지를 모아 가지고 끝끝내 항전하기로 하였다. 항복 한 무리들(도독 김품석이하, 서천(西川)이며 그 밖에 허다한 장졸 백성들)은 성문을 열고 목숨을 보전하려 성 밖으로 나 갔다. 그러나 목숨을 보전하러 나간 무리들은 백제의 군사 에게 전멸을 당하였다. 성을 들어 항복한다더니 아직 성내 에 적지 않은 군병이 있지 않느냐. 그러매 생명 보전을 허 락할 수 없다 하는 것이 백제의 구실이었다.

이 항복한 국민이 성밖으로 나간 뒤에 죽죽(竹竹)은 성문을 굳이 닫고 남은 무리를 지휘하여 백제 군사에게 대항을 하 여 용감히 싸워 최후의 한 군사까지도 남지 않고 백제군의 칼 아래에 장렬한 전사를 하였다.

그 항복한 무리에 섞이어, 부끄러운 목숨을 그냥 어떻게 유지하여 보려고 대야성을 빠져 나오다가 죽은 사람 가운데 는, 도독 김품석의 아내 고타조(古陀炤)가 있었다. 고타조는 신라 이찬(伊 ─벼슬 이름) 김춘추(金春秋)의 딸이었다.

八월─ 찌는 듯한 잔서가 아직 심할 때였지만 아침 저녁은 꽤 서늘하였다.

김춘추(金春秋)는 바야흐로 대궐에 들어가서 임금(善德女 王)께 대야성 구원을 보내야 하겠다는 말씀을 아뢰려고 할 때에, 대야성 함락의 보도가 이른 것이었다.

무얼? 행차로 나가려던 발을 김춘추는 멈추었다.

월전에는 미후 등 四O 여성을 백제에게 빼앗겼다. 그 상처 가 낫기는커녕 그 상처의 아픔을 명료히 감각할 겨룰도 없 이 지금 또 대야성을 잃는다? 백제의 횡포를 미워하는 생각 보다도, 내 나라의 미약함을 한탄하기보다도, 다만 이 연달 은 불행에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나가려던 발을 멈추고 기 둥에 몸을 기대인 채 얼빠진 사람같이 어두커니 서 버렸다.

죽기가 두려워서 성을 들어 항복하려다가 제 목숨까지 잃 어버린 사위 김품석의 가중코 치사한 행위를 밉게 보랴.

무명지사(無名之士)를 연하여 일으켜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무고한 백성을 도탄에 울게 하고 남의 국토를 침식하는 백 제의 행위를 괘씸히 보랴.

또는 자기의 딸 고타조─ 고귀한 가문의 딸로 태어나서 고 귀한 가문에 출가한 것이, 결국에 있어서는 비겁한 매국한 의 아내로, 그나마 남편의 고임조차 받지 못하고 남편은 남 의 유부녀에게 혹하여 그것이 원인되어, 지키던 성을 잃고 지위와 신분을 잃고 종내 생명까지 잃는다는 인생 최대의 비극을 겪고, 불충 불의한 남편과 함께 적(敵)에게 해를 입 어 죽은 그 가련한 딸의 인생 항로를 조상하랴.

그런 모든 광경을 건너뛰어 김춘추는 얼빠진 사람 모양으 로 망연히 서 있었다.

「이 백제를! 이 원수의 백제를!」

정당히 서 있는 그의 입에서는 이런 머리도 끝도 없는 말 이 때때로 새어 나왔다.

사서(史書)에 기록하기를,

「伊 金春秋聞之, 倚柱而立, 終日不瞬, 人物過前而省之, 旣 而言曰, 嗟乎大丈夫, 豈不能呑濟乎」云云

망연히 서 있는 그의 머리에 일고 잦는 단 한 가지의 생각 은, 이 원수의 백제를 그냥 두지 못하겠다는 것뿐이었다.

크게 보자면 나라의 원수요, 작게 보자면 그 일생을 애처 롭게 마친 가련한 딸 고타조의 원수다. 이를 어찌 그냥 두 랴.

이름 없는 군사─ 단지 침략한 위한 군사를 연해 일으키는 백제로서, 어제는 미후 등 四O 여 성을 빼앗고 오늘은 대야 성을 빼앗았으면, 무론 내일 또 어디를 침략하여 올지 예측 을 할 수가 없으되, 올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원수도 원수려니와 한 번 단단히 두들겨 주어서 다시는 야 심을 몸 품도록 곯려 주지 않았다가는, 연해 오는 무명지사 에 신라의 관민은 마음 놓고 명일의 조반을 준비할 수가 없 다. 원수까지는 못 갚는다 할지라도 한 주먹을 단단히 가해 주어서, 다시는 넘실거릴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이라도 해 주어야 하지, 그렇지 않았다가는 내 나라에서는 하루도 베 개를 높이이하고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러나 워낙 내 나라의 힘이 부족한 것을 어찌하랴. 기둥 을 기대어 서 있는 춘추의 머리에는 가지가지의 생각이 일 고 잦았다. 명신명장(名臣名將)이 배출한 위에 또한 명군 의 자(義慈)왕이 위에 임한 백제는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날카로운 끝을 막을 자 없다. 거기 반하여 우리 신라는 지 금 겨우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합하여 통일의 공은 이루었 다 하나, 아직 튼튼한 자리는 잡지 못하였다. 김춘추 자기가 일국의 신망을 한 몸에 지니고 있고, 대장군 김유신의 위력 이 국내를 덮고 있기는 하지만, 자리잡히지 못한 나라이매 아직 백제를 대적하기에는 힘이 훨씬 부족하다.

그러나 이대로 버려 두면 그칠 바를 모르는 백제의 횡포를 어찌하랴.

그로부터 김춘추는 식불감이, 와불안면─ 현저히 기분이 침울하여지고 기력이 줄어졌다.

지금 이 국가의 불안한 상태에 있어서, 임금(선덕여왕(善德 女王))은 오직 김춘추 한 사람을 믿고 김춘추에게 어떻게든 지 지금의 국면을 타개하기를 은근히 촉망하는 것이었다.

내 나라이 워낙 약하니, 임금도 김춘추에게 어떻게 하라고 재촉을 하든가, 왜 이러이러하게 하느냐고 힐책을 하든가 하지는 못하나, 김춘추가 담당하면 어떻게든 이 국면이 타 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요행심으로 은근히 춘추에게 촉망을 하는 것이었다.

임금도 그러하거니와 온 백성도 또한 김춘추 한 사람을 믿 고, 김춘추가 어떻게 활동을 하면 이 불안한 상태에서 조금 이라도 벗어날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김춘추의 동정을 엿보고 있다.

이렇듯 임금과 온 국민에게 무언의 책무를 지고 있는 김춘 추는 이 촉망에 대해서라도 어떻게든 무슨 보답이라도 있어 야 할 터인데, 두고두고 생각하여 보아야 아무 방책도 생각 나지 않아서 혼자 애타하고 번민하고 있을 따름이다.

김춘추 자기의 처남이요 막역지우요 겸하여 지모가 겸비한 대장군 김유신과 늘 마주 앉아서는 무슨 대책이 있지 않을 까 머리를 모으고 협의하고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무슨 묘 방이 생각나지를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그해에 九월도 어느덧 지나가고 一O도 지나 갔다.

사람의 근심이나 분한 생각은 세월이 흐르면 거기 따라서 씻기운다 한다. 그러나 김춘추의 마음에 맺힌 근심과 억분 함은 세월의 힘으로도 씻기우지를 않았다. 그것이 춘추 혼 자의 근심이거나 억분함이면 혹은 세월의 힘으로 씻기웠을 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춘추의 마음에 맺힌 자는 그와는 달 라서, 온 신라 백성의 편달이 춘추의 뒤에서 춘추를 재촉하 였다.

서쪽으로 무시무시한 원수 백제를 가지고 있는 온 신라 백 성은, 하루도 마음을 놓고 내일의 살림을 준비할 수가 없는 지라, 따라서 여기 대한 보호책과 방비책을 김춘추에게 채 근하는 것이었다. 온 국민의 채근을 몸으로 받고 있는 춘추 는 그 책임감 때문에 잠시 한때도 마음 놓이는 때가 없었 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문제를 해결치 않으면 안되겠다─ 이 생각으로 춘추의 몸이 쇠약하여감을 따라서 차차 강박적 위 험까지 띠어서, 이 문제를 급속히 해결짓지 못하면 무슨 큰 일이 생겨날 듯이 그의 마음을 누르고, 그의 관념을 재촉하 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여야 우리의 약한 힘을 가지고 도저 히 백제를 대적할 수가 없고, 실력으로 백제를 대적치 못하 여 가지고는 해결이 되지 않을 문제임을 어찌하랴.

물에 빠진 자는 짚이라도 붙든다.

물에 빠진 춘추는 마지막에 할 수 없이 짚이라도 붙들 수 밖에 없었다.

「고구려에게 조력을 청하자.」

고구려와 백제는 본시 같은 조선(祖先)의 후손으로서, 고구 려의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을 백제는 자기네의 시조로 모 시고 숭앙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내려오고 서로 춘추가 멀어지고 하는 동안에, 자연 분규도 생기고 티각태각하는 일도 일어나고 서로 싸우는 일도 잦아져서, 어떻게 보자면 지금은 원수지 간인 듯이 보이기도 한다.

고구려와 백제의 새가 이러하매, 혹은 신라에서 썩 잘 고 구려를 달래면 백제 공격에 협력해 줄는지도 알 수 없다.

신라라고 무슨 고구려와 친근할 연분이 있는 바가 아니다.

친근은커녕 늘 국교관계에 분규가 있어 왔다.

그러나 물에 빠진 지금에 있어서는 짚이라고 붙들지 않을 수가 없는 형편으로, 고구려에게 협력을 빌어 보고자 생각 한 것이다.

이렇게 마음먹고 이를 계청하고자 임금께 뵈올 때는 춘추 에게서는 차마 말이 나오지 않고 눈물만 비오듯 하였다. 임 금과 국민의 신망을 한 몸에 지니고, 춘추면 어떻게 이 난 국을 타개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는 촉망을 받고 있는 자기로서, 아무 신통한 묘책도 없이 이제 최후로 고구려의 힘을 빌자고 임금께 계청을 하려 하니, 말문이 막혀서 입이 벌려지지를 않았다.

주저하고 주저한 끝에 간신히 말을 더듬으며 이 뜻을 임금 께 아뢰었다.

임금께는 다른 의견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내야 일국의 군왕이라 하나 구중의 아녀가, 무엇을 알겠 느냐? 이찬(伊 )만 믿는 바니 이찬의 의향이 그렇다면 이찬 의 의향대로 하려무나.』

『…』

반드시 성공하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위에, 실패하면 국 가의 치욕만 더하는 이 일에 대하여 춘추로서는 더 아뢸 말 씀이 없었다.

『이찬, 그런데 그 청병을 고구려에서 응낙할까?』

『글쎄옵니다.』

무론 그것부터가 문제였다.

과거에 있어서도 고구려에서는 그 강대함을 자세삼아 늘 신라에게 왕자의 볼모[人質]를 요구하고, 왕자가 볼모로 가 면 대개는 늙기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고구려에서 종신하고 하였다.

과거의 예도 그러하였지만 더우기 현재 고구려의 재상으로 앉아 있는 사람은 일대의 영웅 연개소문(淵蓋蘇文)으로서 연 개소문의 품고 있는 마음이 신라와 백제를 고구려의 손아귀 에 집어 넣으려는 것이니만치, 신라의 두드러진 인물로 알 리어 있는 김춘추를 혹은 그냥 볼모로 붙들어 둘는지도 알 수 없다.

사세가 그런지라, 고구려에서 신라의 청병에 응낙할는지는 춘추로서는 무어라 아뢸 말씀이 없었다.

『신 김장군(유신)과 잘 협의를 하와 최선의 힘을 다 하오 리다.』

『이찬만 믿으니…』

이리하여 어전을 퇴출하였다.

성사 여부는 미지수이지만 좌우간 고구려에게 청병을 한다 하는 일에 대해서는 임금의 윤허까지 얻은 뒤에, 김춘추는 비로소 이 일을 대장군 김유신에게 알리었다.

벌써 一O월도 다 가고 동짓달에 들어서는 절기. 남국(南 國) 계림에도 동색(冬色)은 완연히 이르러 만물은 가을의 소 슬한 빛깔에서 겨울의 무장으로 들어서려는 절기에, 가슴 깊이 무거운 수심을 간직한 춘추는 김유신을 그의 집으로 찾았다.

유닛 은 춘추를 맞아서 그의 내실로 인도하였다.

유신장군의 인도로 춘추가 유신과 대좌한 방은, 춘추에게 있어서는 감회 깊은 방이었다.

일찌기 춘추와 유신이 혈기 방장한 어떤 해 정월 상원일 (上元日)에, 유신의 집 후원에서 축국(蹴鞠)을 논 일이 있었 다. 그때 유신은 실수(?)를 하여 춘추의 옷 자락을 밟아서 찢었다. 유신은 이 경솔을 사과하고 춘추를 안내하여 안으 로 인도하여, 찢기운 옷을 벗게 하고 그의 누이 문희(文姬) 로 하여금 찢어진 상처를 깁게 하였다.

그날 춘추의 찢어진 옷자락을 기운 문희가, 오늘날 춘추의 사랑하는 아내였다. 그날의 찢어진 옷이 연분이 되어 두 남 녀는 결합이 된 것이었다.

지금 중대한 사명을 띠고 사지(死地)로 감에 임하여, 옛날 에 인연 있던 그 방에, 옛날에 그 인연을 지어 준 유신과 대좌하매, 만감이 스스로 가슴에 사무쳐 잠시는 아무 말도 못하였다.

이 수심 띤 춘추에게 대하여 유신은 누차 그 수심의 원인 을 물었다. 한창 구미 좋은 때는 하루에 서 말 밥과 꿩 아 홉 마리를 먹던 춘추가, 이 날은 유신의 대접에 마지 못해 수저를 움직이는 뿐이었다.

유신의 수차의 질문을 받고 춘추는 비로소 오늘 임금께 계 청하여 윤허 받은 일에 대해서 유신에게 자세히 말하였다.

춘추의 말을 다 듣고도 유신은 곧 대답치 못하였다. 기다 란 탄식성이 나온 뿐이었다.

한참 뒤에야 비로소 유신이 입을 열었다.─

『성부 여부는 둘째두고 이찬의 신상이 안전하리까? 고구 려에서 무사히 귀국하시게 되리까?』

『그게─ 』

춘추는 말을 중도에 끊고 한 무릎 유신에게 다가 앉았다.

손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그 손에 대하여 마주 나오는 유신의 손을 꽉 잡었다.

『장군! 장군과 나는 이신동심. 같이 나라의 고굉지신으로 ─』

말을 끊었다. 손을 마주 잡은 채 머리를 푹 수그렸다. 등에 진 짐의 중대함이 더욱 절실히 느껴졌다.

『지금 중명을 띠고 저 나라에 갔다가, 불행 저 나라 사람 에게 해를 받는 일이 있으면 장군은 어떻게 하겠소?』

춘추의 말이 떨어지기 전에 유신의 대답이 먼저 나왔다.─

『불행 그런 일이 생기면, 내 말발굽이 여제(麗濟) 두 나라 왕정(王庭)을 쑥밭을 만드오리다. 그렇지 않고야 내 무슨 면 목으로 장차 국인을 대하리까.』

유신은 그의 눈을 들어서 춘추를 건너 보았다. 유신의 눈 에는 눈물이 한 껍질 서리었다.

『그렇지만, 이찬, 내 생각으로는 성사는 지난한데─』

한 길밖에는 딴 길이 없음을 어찌하겠소이까?』

『……』

『……』

잠연히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

성사키 지난하고 그 위에 생명조차 보전키 힘든 길을 꺼나 려는 사람과 이 사람을 보내는 사람.

서로 할 말이 없어서 얼굴만 마주볼 따름이었다.

『자, 우리 서약을…』

『그럽시다.』

두 사람의 앞에는 잔이 내놓이었다. 두 사람은 칼로 손을 베어 흐르는 선혈을 잔에 받았다. 잔에 받은 피를 저어 섞 어서, 둘이서 나누어 마시었다.

『장군, 내 六순─ 두 달을 기약할 테니, 두 달이 지나도 내가 돌아오지 않거든 차생에서는 다시 볼 기약이 없는 사 람으로 알아 주오.』

『네, 두 달을 기다려 보아, 이찬께서 안 돌아오시거든 내 성상께 여쭈어서 용병 일만을 빌어 가지고 여지(麗地)에 돌 입해서 그 나라를 쑥밭을 만들어서, 이찬의 원수를 갚으오 리다.』

『내 사삿 원수도 원수려니와 국사는─ 저 백제의 횡포 는?』

『그도─ 지금 우리 나라의 민심이 해이되었기에 백제를 당하지 못하지,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으로야 우리 나라나 백제나 일반이 아니오리까? 이찬께서 저 나라에서 해(害)를 보시면 그로써 민심을 격동시키면, 우리 나라 백성인들 어 찌 백제인에게 지리까? 격동된 민심으로 저 나라를 들이치 면, 능히 백제의 강병이라도 넉넉히 당할 수 있으리라고 믿 습니다.』

『그저 뒷일을 장군께 믿을 뿐이외다.』

『뒷일은 염려 마시고 성사에나 주력을 하세요.』

『그럼 六순을─』

『네, 고대하오리다. 부디 성사하세요.』

이리하여 피를 나누어 마시고 작별하였다.

김춘추는 간소한 행차에 종자 몇 명을 데리고 계림을 떠났 다. 향하는 곳은 고구려의 서울. 그의 어깨에 짊어진 짐은 국가 사활의 중대한 열쇠였다.

동짓달에서 섣달로 차차 더 깊어가는 엄한의 절기에 남국 에서 북국으로, 차차 더 찬 곳으로 길 가는 김춘추이었지만,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짐 때문에 추위도 짐작할 수 없도록 긴장된 심경이었다.

길을 재촉하여 대매현(大罵縣)까지 이른 때였다.

그 지방에 사는 두사지(豆斯智)라는 사람이 춘추를 와서 뵙 고 청로(靑布) 三백필을 바쳤다.

『이찬께서 지금 천금의 귀하신 몸으로 나라를 위하시어 만리 이역(異域)에 가심에, 혹은 무엇에든 옹색한 일을 당하 실 때에 소용이 되실까 하와, 약소한 물건이오나 바치옵니 다. 쓰실 때가 계시다면 바친 소인의 무한한 영광이옵니 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혹은 짐스러울지는 모르나, 이도 모두 소민(小民)의 국가에 대한 충심에서 나온 바이며, 또한 춘추 자기가 지니고 있는 중대한 책무에 대한 국민의 헌납품이라 생각하매, 고맙기 한이 없었다.

『고마우이. 객지에는 무엇이든 부족한 법이라, 이것도 지 니고 가면 얼마나 유용할지 모르겠네. 내 일신보다도 이번 의 사명이 무사히 성취되기를 신명께 축원이나 해 주게.』

『그거야 분부 안 계신들 어련하오리까? 그럼, 이 모진 삭 풍에 몸 보중하옵시고 무사히 사명을 치르옵소서.』

『고마우이!』

이리하여 대마현을 떠나고 또 길을 재촉하였다.

드디어 고구려의 서울까지 이르렀다.

일찌기 수(隋)나라 문제(文帝)의 三O만 대군을 어린애 다루 듯 쳐 물리치고, 그 뒤를 연한 수나라 양제(煬帝)의 二백만 대군을 겨우 二천 七백의 패잔병 이외에는 전멸을 시키고, 수나라는 고구려 패전이 볼미되어 망한 뒤, 대신으로 선 당 나라의 고조(高祖)의 정벌군 태종의 정벌군을 뒤이어 전멸시 켜, 그 위력이 천하를 누르는 고구려.

국체가 해이되고 군심이 문란된 신라에서 장성한 김춘추에 게는 고구려 서울의 모양은 가슴을 서늘케 하였다. 그 국민 의 표표함은 둘째 두고, 병비의 정밀함이며 군사의 정비됨 은 과시 동방을 웅시하는 국군의 도시다왔다.

이웃나라가 이러하거늘 내 나라의 현황을 돌아볼 때는 한 심한 생각뿐이었다.

그날 밤 춘추는 장려(長旅)에 피곤한 몸이로되 빨리 잠이 들지를 못하였다.

아아, 인제라도 돌아서서 나라로 돌아갈까.

남을 의뢰할 생각을 왜 품으랴. 내 나라의 무비가 이 고구 려만 같다면, 백제의 횡포가 무엇이랴. 백제가 횡포한 것은 필경은 내 나라가 약하기 때문이다. 내 나라가 약한 것은 백성의 탓이 아니라, 위에서 거느리고 지도하는 치자(治者) 계급의 무위한 탓이다. 내 나라 백성도 같은 사람일진대 잘 지도하고 훈련만 하면, 왜 이 고구려만 못할지며, 내 형세가 고구려만 하면 왜 남의 나라의 수모를 받으랴.

남을 의뢰하기보다 먼저 나 자신을 고칠 필요가 있다. 남 을 의뢰할 생각을 지금이라도 내던지고, 발을 돌이켜 내 나 라 신라로 돌아갈까? 돌아가서 내 나라를 어서 바삐 키우기 에 정력을 다할까?

그러나 눈에 다닥치고 현재 겪고 있는 백제의 수모에 우선 임시적으로라도 피할 필요가 있는 현재의 형편으로는, 일껏 여지까지 왔다가 청병을 해보지도 않고 귀국한다는 것은 너 무도 싱거웠다.

국력 양성은 차차 하려니와 우선 현재 받고 있는 모멸에서 면할 겸 이미 받은 수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는 청병은 해 보아야 할 것이다. 모사는 재인이요 성사는 재천이라, 성불 성은 예측할 수가 없으되 부딪쳐 보기는 해야 할 것이다.

이 고구려의 강대함을  고 춘추는 신라 국민 훈련의 필요 를 절실히 느끼고 그 실행의 결심을 굳게 하였다.

사서(史書)에는,

「高句麗王高藏, 素聞春秋之名非凡, 嚴兵衛而後見之」

라 하였지만 유난스럽게 위엄성을 보인 것이 아니라, 예사 때의 병위로 보았지만 신라인의 눈에는 그렇게 비친 것이었 다.

춘추는 고구려 조정에 자기가 이번 고구려에 오게 된 사명 을 대강 아뢰고 왕께 알현하기를 청하였다. 이리하겨 고구 려 임금의 어전에 나아가게 되었다. 고구려 임금은 그때 갓 등극한 보장왕(寶藏王)이었다.

임금의 곁에는 일대의 영웅 연개소문이 시립하고, 기치창 검이 휘황하고 엄엄하게 번득이었다.

문약한 신라 조정의 풍습에 젖은 김춘추는 처음 한 순간은 이 위엄에 위압되었다. 이 위압에서 정신을 수습할 때에 왕 께 시립했던 연개소문이 물었다─

『이 추운 절기에 먼 길을 어떻게 ─』

거기 대하여, 춘추는 먼저 임금께 신라왕에게서기 위해서 문안을 어쭙고 그 뒤에 이번의 사명을 말하였다. 그리고,

『지금 여쭌 바 같이 백제가 무도하게도 늘 우라 나라의 강역을 침범하므로 대국의 병마를 빌어 백제에게 받은 치욕 을 면할까 하는 생각으로써 하신을 보내와 지금 대국에 청 병을 하는 바이옵니다.』

고 내의를 말하였다.

보장왕은 그의 막리지(벼슬 이름) 연개소문을 돌아보았다.

연개소문이 왕을 대신하여 춘추에게 물었다─

『그럴 리가 있겠소? 아무리 백제국인들 까닭 없이 남의 국가를 침범하고 강역을 노략할 리가 없겠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 까닭이 없이 남의 나라를 침략─』

계속하는 말을 이번은 보장왕이 가로 끊었다.

『사신의 말은 까닭이 없다 하지만, 백제로 보자면 무슨 연유가 있겠지. 신라와 백제의 옥신각신은 짐이 모르는 배 지만.

허하고 굶주렸던 창자에 기름진 음식과 향기로운 술이 들 어가니, 추위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춘추의 심신은 차차 녹 아들었다.

따르는 술을 연해 받으면서 춘추는 생각하여 보았다. 지금 도해가 옥중에 자기를 찾아 온 것은 물론 청포 三백 필의 효과일 것이다. 그러나 춘추는 청포 三백 필을 도해에게 보 낸 것은 단지 이렇게 술이나 한 번 얻어먹고자 하여 한 바 가 아니다. 도해도 춘추의 입장과 환경이며 사정을 짐작하 는 사람이거니, 청포 三백 필을 보낼 때에 무슨 덧붙이의 사연이 없었을지라도 그 의미를 짐작은 할 것이다.

그렇다 하면, 도해는 무슨 수단, 어떤 방법으로서 자기를 (혹 잘하면)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려는가? 술을 주고 받으며 도해의 입에서 혹은 행동에서 무슨 그런 듯한 점을 얻어보 려 퍽으나 주의해 보았지만, 도해는 다만 시시하고 너절한 잡담 한담만 연해 하면서 술 먹기에만 골똘한 모양이었다.

감시하는 옥관이 있으매 물론 노골적으로 어떤 언사니 행 동을 표시하지는 못하겠지만, 좌우간 좀 다른 무엇을 발견 해 보려 하였지만, 도해는 연해 쓸데없는 한담만 하고 술만 연거푸 먹고 있었다.

꽤 술이 취했다. 그러나 도해에게는 무슨 별다른 표시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한담과 옛말─ 한담과 옛말만 연해 하는 가운데 도해는 이 런 이야기를 하였다.

『계림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 고구려 에는 이런 재미있는 옛말이 있읍니다. 토끼하고 거북이의 이야긴데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내 그 이야기를 할 테니 이 찬 들어 보세요.』

이러한 서두로 도해가 춘추에게 한 한 가지의 옛말, 그것 은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동해 용왕(龍王)께는 사랑하는 따님이 있었다.

그 따님이 우연히 병에 걸렸다. 좋다는 약은 구할 수 있는 대로 다 써보고, 굿이라 경이라 온갖 노릇 다 해보았지만, 따님의 병은 나날이 더 침중하여 갈 따름이었다.

고칠 약방문이 없는 배가 아니었다. 약방문은 났으나 그 약을 구할 수가 없었다. 영한 의원들의 여출일구하는 말은 가로되,

『토끼의 간을 잡수셔야 이 탈이 낫겠읍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심해(深海)중에 있는 용궁에서, 어떻게 해서 산 짐승 토끼의 간(肝)을 구할 수가 있으랴?

그래서 다른 약으로 다스려 보았지만 용녀님의 탈은 나날이 더 중하여 갈 뿐이었다. 토끼의 간이 아니면 용녀의 탈은 도저히 가망이 없었다.

사랑하는 따님의 탈 때문에 용왕은 수심에 잠겼다. 구할 수 없는 토끼의 간─ 그러나 따님을 어떻게든 구하여 보려 는 성심으로, 용왕은 이 구할 수 없는 토끼의 간을 어떻게 하여 구할 도리가 없을까 하고 머리를 싸매고 생각하였다.

드디어 한 가지 방책을 안출하였다. 어족(魚族) 중에서 고 래로 뭍[陸]에 올라가서 장시간을 지낼 수 있는 자는 오직 거북이다. 이 거북에게 토끼의 간을 구하는 중대한 사명을 부탁해 보기로 하였다.

거북을 용궁으로 불렀다.

높은 벼슬과 많은 상금으로 토끼의 간을 구해 오기를 거북 에게 명하였다. 빠르고 날래기로 유명한 토끼를 느리고 둔 하기로 으뜸인 거북이, 어떻게 붙들어 가지고 그 간을 얻어 오나?

지중막대한 사명을 띤 거북, 벼슬과 재물에만 욕심난 바가 아니라 천성이 충직한 짐승이라, 용왕께 대한 보담으로 무 슨 수단을 써서든지 토끼의 간을 구해다가 용왕께 바쳐서 용왕의 사랑하는 따님을 병에서 구원하고, 이로써 용왕의 근심을 해소시켜 드리려고 굳이 결심하였다.

느리고 더딘 거북이매 토끼를 붙들어서 힘으로 그 간을 꺼 낼 생각은 꿈에도 낼 수가 없었다. 이 직하고 슬기롭지 못 한 거북은, 그의 둔한 머리를 짜내어서 토끼를 속여서 바다 로 끌고 가기로 하였다.

우선 문제는 토끼의 생김생김이었다.

『대왕님, 분부대로 봉행은 하오리다마는 소신이 뭍에 올 라가서 토끼란 놈을 만날지라도 그 생김생김을 모르오니 그 것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도 그럴 듯한 말이로다.』

용왕도 토끼의 생김생김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뭇 어족 들을 불러 가지고 토끼의 생김생김을 아는 자를 구해내 가 지고, 그로 하여금 토끼의 생긴 모양을 거북에게 설명해 주 게 하였다.

설명뿐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화 공을 불러서(설명하는 대로) 토끼의 모양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였다.

『자, 토끼의 화상이로다. 이것을 ㅍ뭄 깊이 잘 간직하고─』

『네이!』

화공에게서 받은 토끼의 화상을 잘 간직하고 어슬렁어슬렁 뭍으로 기어올랐다. 수풀을 찾아갔다. 그의 짐작으로는 토끼 가 다닌 듯한 곳으로 찾아 기어갔다. 토끼의 화상을 펴들고 기다리기를 한나절. 한 마리의 토끼가 깡총깡총 달려와서 거북이 앉아 있는 그 곳에 와서 코를 발룩거리며 무엇을 살 피고 있다.

여기서 거북은 길게 그의 목을 내어 뽑았다.

『여보게 토끼!』

『아이 깜짝이야! 거 누구야!』

『내로세.』

『내라니?』

『바다의 별주부로세.』

『별주부! 바다의 별주부가 무얼 하러 뭍에 올라왔나?』

거북은 다시 토끼의 화상을 실물과 비추어 보았다.

『임자가 분명 토낀가? 틀림이 없지?』

『토끼구 말구.』

여기서 거북은 그의 지혜로 연구한 바의 꾀를 베풀 순간이 이르렀다. 그의 능치 못한 언변으로 토끼를 속이지 않으면 안될 차례였다. 그는 다시 화상을 굽어보고 눈을 들어 실물 토끼를 쳐다보고 목을 뽑아 올려 감탄하는 얼굴을 하였다.

『그럴 듯하이. 털도 이쁘기도 해라. 부드럽기도 비단 이상 인걸. 눈깔 빛깔도 새빨갛게 물들었는가? 어쩌면 저리도 고 울까? 주먹 같은 저 귀, 어쩌면 머리 꼭대기부터 꼬리까지 저렇듯 이쁠가? 저런 것들을 모두 잡아서 종자를 없애야지, 그냥 두었다가는 우리 용궁에서는 용녀는 통 없어지겠다!

요놈 토끼야. 네가 이쁘게 생겨서 우리 용왕님의 따님이 어 쩌다가 너를 잠깐 보구 그만 홀딱 반해서, 상사병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됐다. 인삼 녹용, 백약이 무효고 네놈하고 혼인 을 하지 못하면 다시 자리에서 일지 못할 지경이댜. 우리 용왕님도 처음에는 뭍[陸]의 천종(賤種)을 어떻게 용궁에 불 러들여 부마(駙馬)로 삼겠느냐고 노염이 심하시고 꾸준이 심 하셨지만 , 따님이 워낙 네놈의 눈빛같은 터럭에 흠빡 반해 서, 너하고 혼인하지 못하면 죽는다고 야단이니 어찌하느 냐? 타이르고 꾸중하고, 하다 못해 종내 따님에게 지시고, 나더러 너를 좀 용궁까지 데려 오라시누나. 이 벼락맞을 놈, 우리 용궁 일색을 뭍에 사는 네놈에게 빼앗길 일 생각하면 분하기 끝이 없지만, 우리 대왕의 분부가 계시니 할 수 없 지, 여보게 토기생원! 나허구 좀 함께 가세. 여보게, 임자 데 려오느라고 그릇 딴놈 데려올까보아 임자 화상까지 그려서 내게 분부야. 이 복벼락 맞을 자식 같으니. 천하 일색 용궁 의 햇빛─ 네놈이 용궁 공주를 데려가면 우리 용궁은 컴컴 해지겠구나.』

능하지 못한 언변으로 늘어놓는 바람에 토끼는 얼떨해졌 다.

『자, 이 자식 내 등에 올라라!』

『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아, 용궁에 들어가지.』

『그러나─』

『잔말 말고 어서 올라!』

좌우간 해롭지는 않은 일이다. 게다가 천하 일색이라 하고 용왕의 부마라 하니, 토끼 비위가 동하였다.

『오르면 되겠는가?』

『염려 말고 어서 올라!』

이리하여 토끼를 등에 실었다.

다시 텀벙 바다로 들어갔다. 한참을 해엄쳤다. 한 바다까지 이르렀다.

한 바다까지 이르러서 인제는 토끼를 놓칠 염려가 없이 되 매, 거북은 비로소 안심하는 동시에 인제 토끼를 잡아온 덕 으로 받을 막대한 상과 높은 벼슬이 생각나며, 스스로 얼굴 에 떠오르는 미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여보게 토끼!』

『왜?』

『자네의 덕으로 나는 인제 많은 상과 높은 벼슬을 하게 됐네그려.』

『내가 부마가 되면 나도 그저 있지 않을 테니.』

『하하하하하, 네가 부마가 돼? 등에 업고 보니 네 살이 꽤 부드럽구나. 맛있겠는걸. 네 간은 꺼내서 대왕님께 바치 구 네고기는 내가 얻어 먹겠네.』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할 말이었다.

『응?』

『너를 잡아서 간을 꺼내 먹는단 말이야.』

정직한 거북은(인제는 토끼가 도망치려야 칠 수 없는 한 바다인 데에 안심하고) 자기가 토끼를 속여서 지금 업고 가 는 까닭을 토끼에게 다 말하여 주었다.

『뭍엣 짐승이란 그렇게 어리석단 말인가? 용궁 안에는 얼 마나 사내가 없어서, 너같은 방정맞고 야스꺼운 것에게 공 주가 반하겠느냐 말이다. 저 잘난 맛에 산다구, 너는 그래 네 꼴이 스스로 이쁜 줄만 아느냐? 이 어리석은 뭍것아.』

토끼는 잠자코 있다가 비로소 생긋 웃었다.

『흥, 내가 어리석어? 어리석기는 네가 어리석다.』

『왜?』

『내 간이 어째서 그런 영약이 되겠는지─ 이놈의 간 저놈 의 간 다 제쳐놓고 유독 내 간이 그렇듯 영약이 되겠는지, 그점을 생각해 보지 못한 자네가 어리석지 않고 어떻단 말 인가?』

『그야 내가 알게 있나?』

『여보게, 내 간은 남의 간과 달라서 한달의 절반은─ 초 승부터 보름까지는 몸속에 넣어 두되 보름부터 그믐까지는 꺼내어 영기로운 곳에 걸어 두어서, 영기와 볕을 쬐네그려.

반삭을 영기와 볕에 쬐어서 몸을 간직하면 그게 천하 영약 이 되는 걸세그려. 그런 유다른 간이 아니고야 왜 하필 토 끼의 간이 약이 되겠나?』

거북은 이렇게 걱정이 났다.

『그게 정말인가?』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나?』

『그럼 지금 자네는 간을 가지고 있는가 안 가졌는가?』

『지금이 스무날이 아닌가. 지금은 꺼내서 영기롭고 인적 안 이르는 청명한 곳에 잘 널어 두었지.』

『그럼 헛길일세그려.』

여기서 토끼는 한번 그의 귀를 종긋하였다.

『여보게, 거북네 아저씨!』

『응?』

풀이 죽었다.

『내 산에 돌아가서 그 간을 가져다가 몸소 넣고 용궁에 가면─ 공주가 천하 일색이라지?』

『나 중매해 주겠나?』

『어떻게?』

『간을 갖다가 공주께 바쳐서 공주의 불치의 병이 낫는다 하면 나는 공주의 재생의 은인이 아닌가? 재생의 은인이 용 왕님의 부마가 못되겠나?』

『그렇지만 임자는 간을 꺼내서 공주께 바치면 살겠나?』

『지금도 간 없이 살아 있지 않은가. 뿐더러 간을 아주 꺼 내면 반년만 지내면 또 새 간이 돋아나네그려. 중매만 서 주겠다면 내 그 간을 갖다가 공주께 바치마.』

『그건 내 담당하마. 자네 아니면 죽을 목숨을 자네 덕에 살아 났으면, 일생 해로야 그 보은으론들 못하겠나. 중매는 내 장담하마. 』

『그럼 뭍으로 돌아서게.』

『간은 꼭 가져오겠지?』

『염려 말게. 내야 간을 바쳐도 반년간 있으면 새 간이 돋 아나니 염려 없고, 그 대신 용왕의 부마가 되는 일이니 내 일은 염려 말고 중매나 다짐 두네.』

『그건 내 담당하마.』

이리하여 거북은 토끼를 업은 채로 돌아섰다.

해안까지 이르렀다.

한 번 다시 서로 다짐을 주었다. 그리고 거북은 등에 업었 던 토끼를 내려놓았다. 거북의 등에서 뭍에 내린 토끼는 여 남은 걸음 달려가서 거북에게 돌아섰다.

『이 어리석은 짐승아! 이 세상에 간을 꺼내고 사는 짐승 이 어디 있단 말이냐? 간은 여기 내 가슴 속에 그냥 있다.

잘 가거라. 나는 산으로 간다.』

한 번 소리 높이 거북을 비웃고는 몸을 돌려서 산으로 향 하여 달아났다.

선도해는 춘추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바다에서 피할 도리가 없으니까, 제가 하지 못할 일을 하겠노라고 거짓말을 해 가지고 이로써 거북을 속이고 사지 (死地)를 피해 났단 말씀이야요. 바다에서고 옥에서고 살아 나기 위해서는 거짓말이 필요한 때는 거짓말도 할 줄 알아 야 하는 법인 모양이지요. 허허허 그 놈의 토끼 슬기롭지 않아요?

【김춘추는 선도해의 수수께끼를 알아들었다. 감시하는 옥관 이 있으매 노골적으로는 말하지 못하였지만, 선도해가 춘추 에게 한 바 토끼와 거북의 이야기는, 말하자면 춘추에게 고 구려 조정을(토끼와 같이) 거짓말로 속이고 몸을 빼어 나가 라는 뜻임에 틀림이 없었다. 무슨 거짓말을 어떻게 한다는 것은 김춘추 자기가 안출해야 할 일이지만, 속이고 몸을 빼 어나가라는 선도해의 의견만은 넉넉히 알아들었다. 청포 삼 (三)백 필의 값이 넉넉하였다.

선도해를 보낸 뒤에 쓸쓸한 옥중에 혼자 남은 춘추는 고구 려 조정을 속일 일을 생각하였다.

고구려 조정에서는 춘추더러 「지금 신라가 차지하고 있는 마목현(麻木縣) 죽령(竹嶺) 등지는 본시 고구려의 땅이니 도 로 돌려 보내라」는 요구를 한다. 그 요구만 들어 주면 무 론 춘추는 본국으로 돌려 보내 줄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영토를 자의로 어떻게 한다는 것은 김춘추 의 권한에 없는 일일뿐더러, 설사 권한 안의 일이라 할지라 도 내몸 하나를 위하여─ 내 일신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국 가 영토를 운운한다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도저히 응낙치 못할 일이다.

그러나 <돌려 준다>는 거짓말로써 이 몸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하면 그맛 방편은 혹은 취하여도 무방할까?

김춘추의 몸이라는 것도 신라 국가에서는 꽤 중요한 것이 다. 현재의 인망으로 보든 신분 지위로 보든 혹은 역량 수 완으로 보든, 춘추의 존재는 현하 신라의 무게를 훨씬 더하 고 있는 배다. 실질적으로 국가의 손해만 없을 터이면 임시 방편의 거짓말쯤은 하여서라도 일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 은 오직 자기 한 사람을 위함이 아니요 국가적으로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김춘추는 자기의 일신의 자유를 도모하기 위하여, 고구려 조정에 비공식으로 마목현, 죽령 지방을 돌려 주겠노라는 거짓 약속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김춘추는 막리지(莫離支─군부대신) 연개 소문을 좀 만나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춘추는 개소문의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

『나를 좀 보자고 그랬어요?』

호상에 걸터앉아서 개소문은 춘추를 보았다. 사람을 위압 하는 그의 눈초리 앞에 춘추는 마주 앉아서 고요히 그를 우 러러 보았다.

『네, 막리지께 뵙구 잠깐 대왕님께 상주할 말씀을 주달해 주시기를 청하고자…』

『대왕님께는 무슨 사연이오?』

『내 몸을 고국으로 돌려보내 주신다면 마목현, 죽령 등지 를 귀국에 돌려보내오리다.』

『그럼, 내 대왕님께 여쭈어서 이찬을 뵈옵게 하리다.』

이리하여 춘추는 고구려 보장왕의 어전에 나아가게 되었 다.

『마목현, 죽령 등지를 우리 고구려에게 반환하겠다고?』

보장왕은 춘추를 보자 곧 이 말부터 꺼내었다.

『네이─ 외신이 무사히 환국하오면 우리나라 임금님께 여 쭈어 그 땅을 대왕님께 돌려 보내도록 하오리다.』

『그래, 그게 될 듯싶은가?』

『네이, 소국으로 말씀하옵자면 하신이 비록 우매하오나 소국의 귀한 몸이옵고 겸하와 왕실의 지친이옵니다. 소국 몇백 리의 불모지지(不毛之地)보다는 한 하신을 소중히 여기 옵니다. 하신의 무사환국을 위하와는 몇백 리의 불모지지는 결코 아끼지 않으리라고 하신은 믿사옵니다.』

『만약 계림 임금이 응낙치 않으면?』

『하신의 이 몸뚱이가 계림의 국가로 보자면 약간한 영토 보다는 더 귀중하옵니다.』

왕은 그의 막리지 개소문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할까 하는 의견을 묻는 눈치였다.

개소문이 왕께 아뢰었다.

『계림은 본시 반복 무쌍하와 그대로 믿기 힘들지만 이찬 을 인질(人質)로 삼아 국경까지 호송하옵고 거기서 마목현 죽령 등지를 우리나라로 거두는 수속을 끝내고 이찬을 계림 으로 돌려보내면 무방할 듯하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해 보지.』 ㅇ리하여 마목현, 죽령 등지를 고구려로 돌려보내는 교환조건으로 김춘추의 귀국을 허락하기로 작정이 되었다.

三백 필의 청포로 몸의 해방의 약속을 얻은 김춘추. 옥에 서 해방이 되어 그가 나라에서 데리고 온(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종자(從者)들이 묵어 있는 사관으로 몸을 의탁하였다.

김춘추를 국경까지 호송할 관원이 준비되기까지 二, 三일간 을 더 고구려에 묵어 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옥에서는 나왔다.

그러나 장차 고구려의 호송 군관들과 함께 국경까지 가야 겠으니 거기서 고구려의 호송관원들을 어떻게 하고 자기 홀 로이 고국으로 돌아가는가?

약속한 바 마목, 죽령 등지 반환은 마치 토끼가 거북에게 약속했던 생간(生肝) 출급과 마찬가지로 춘추는 꿈에도 생각 하지 않은 바였다. 그야말로 임시의 방편에 지나지 못하였 다.

적지 않은 생령과 적지 않은 물자와 적지 않은 노력을 들 여서 얻었던 그 영토를 왜 고구려에게 돌려 주랴. 변변치 않은 몸뚱이 하나를 구하고자 그 피의 대상품을 고구려에게 주어? 당치않은 소리다. 또 그만한 영토를 얻을 수 있다 하 면 이 목숨을 아끼지 않겠거늘, 지금 일껏 얻었던 영토를 내 목숨 살겠다고 도로 내주어? 큰 망령이요 망발이다.

설사 내가 어떤 망발로 우리 나라 조정에 그런 건의를 한 다 할지라도, 우리나라 조정에서 승낙할 리가 만무하다. 섣 불리 그런 소리를 꺼냈다가는 장군 김유신의 성난 칼에 몸 과 머리가 두 토막이 나고야 말 것이다.

고구려 조정에서는 호송관원을 동행케 하여 국경까지 보낸 다 하니, 국경까지 가서 영토 반환의 수속이 되지 않으면 도로 자기를 붙들어 서울로 데려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번에는 성난 고구려의 군신에게 목숨을 잃을는지도 알 수 없다.

죽기가 아까운 바는 아니다. 그러나 자기 한 사람이 없어 진다 하는 것은 신라의 국가로 보아서 막대한 손실이다. 똑 똑히 가치(價値)를 따져보면 마목현, 죽령 등 지방과 비겨서 그다지 가볍다고도 볼 수 없다. 자기 일개인으로는 죽기가 아깝지도 않다 할지라도 국가적 안목으로 보아서 경경히 죽 을 수도 없는 이 몸이다.

어떻게 해서든 목숨을 그냥 보전하여 가지고 귀국을 해야 겠다. 여기서 그렇게 헛 죽음을 하지 않고 곱게 보전해 주 기만 하면, 장차 나라를 위하여 얼마만한 공로를 세울지 어 찌 알랴 . 여기서 죽는 것은 의미 없는 헛죽음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 목숨을 보전해 가지고 귀국을 하나?

그날 밤이었다.

춘추는 따로이 방을 하나 차지하고 종자들은 종자들끼리 딴 방에서 자고─ 밤이 어지간히 깊은 때.

춘추는 소리를 감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구려의 감시 병의 눈은커녕 자기네(신라) 종자들에게도 들키지 않을 만치 소리를 감추어서, 곁방(종자들이 자는 방)으로 소리없이 건너갔다.

눈[雪]의 반사광 때문에 방 안의 형지는 어렴풋이 알아볼 수가 있었다. 곤하기 때문에 이 잠든 종자들을 한 사람 넘 고 두 사람 넘어 그가 목적했던 사람에게까지 이르렀다.

먼저 그 사람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가만가만 몸을 흘들 었다. 몇 번 흔들리우기 때문에 깨어나는 그의 입을 수건으 로 단단히 누르고, 입을 귀에 갖다 대었다.

작기는 하나마 폐부를 찌르는 듯한 음성으로 한 마디 한 마디 똑똑히 종자의 귀에다가 불어넣었다.─

『먼저 귀국하거라. 김유신 대장군께 국경까지 정병을 이 끌고 맞아 달란다고 부탁해라. 나머지는 알아차려 좋도록 하거라.』

그만치만 분부하면 그 뒤는 알아차려 잘 처리할 만한 사람 을 골라서 분부했는지라, 이 간단한 부탁만 하고는 춘추는 자기의 자던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이번은 시킨 일 다 시켰는지라 마음 놓고 자리에 들었다.

본시 김춘추가 고국을 떠나 고구려로 올때에 김유신과 약 속한 바─ 六순─ 두달이 지나도 춘추가 귀국치 않으면, 고 구려에서 해(害)를 본 줄로 인정하고, 김유신이 정병을 이끌 고 달려와서 여제(麗濟) 두 왕정(王庭)을 쑥밭을 만들마, 한 그 두달이 거진 다 되었다. 외에 굳고 용감한 김유신은 혹 은 지금 그 정병의 준비를 해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만약 김춘추가 두 나라 국경까지 이르기 전에 김유신의 행 동이 시작되면, 모든 일은 다 허물어지고 만다. 지금 김춘추 가 보낸 사자가, 유신이 정병을 이끌고 출발하려는, 그 같은 때에 도달해야 꼭 좋은 것이다.

아직도 김유신 정병의 비보가 고구려 조정에 뛰어들지 않 았으니, 여기의 사자가 빨리 가기만 하면 꼭 알맞은 날짜에 들어가 닿을 것이다.

「그렇게 됩소서─」

춘추는 심축하였다. 드디어 춘추가 고구려를 출발하는 날 이 이르렀다. 김춘추는 고구려 임금께 하직하고 고구려의 장상들과 작별하고 귀국의 길에 올랐다.

춘추가 이 곳으로 올 때에 데리고 와서 그새 춘추가 왕옥 에 갇히어 있을 동안, 밖에서 기다리던 신라의 종자들이며, 춘추를 호송하는 고구려의 호송 관원(二十명)의 일행은 북국 정월의 매운 바람을 가슴으로 안고 고구려 서울을 떠났다.

춘추 본시의 목적이었던 청병(請兵)은 완전히 실패하였다.

지금 구원병은 커녕 무사히 국경을 넘는 것까지도 의심스러 운 처지 아래서, 두 달 전에 왔던 길을 거꾸로 더듬어서 고 국으로 길을 밟았다.

청병을 왔다가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만 해도 언짢은 일이어늘, 자기가 무슨 죄가 있다고 호송병로 엄중히 단속 을 받으면서 길을 가야 하는가?

그 위에 인제 장차 국경까지 이르러서 거기서 예기한 바와 같이 김유신의 영접 정예군이 와 있지 있으면, 그 뒷처리를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환(放還) 귀국의 길이지만 앞일을 생각하면 답답하였다.

고구려에서 실패한 구원병의 문제는 자기가 무사히 귀국하 기만 하면 다시 다른 길로 활동하여, 당(唐)나라에 청병을 하여 당나라의 힘을 빌어서 백제에게 분풀이를 하면 되기는 될 것이다. 같은 이웃나라의 분규를 가지고 멀리 당나라에 까지 청병을 한다는 것은 사체가 어긋나기는 하지만, 고구 려가 이 청병을 응낙하지 않고 딴 시비를 꺼내니 부득이 그 렇게 할 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보다도 선결 문제는 자기의 무사 귀국이어들, 이 문제가 어떻게 귀결지으려는가? 하루 이틀─ 한 걸음 두 걸음─ 국경에 가까와감을 따라서 무사 월경 문제가 차차 더 가슴을 무겁게 하였다.

여기서 김유신에게 보낸 사자는 어떻게 되었는가? 중도에 지체되지나 않았는가? 무사히 계림까지 득달하여서 예기했 던 바와 같이 김유신을 만나서, 지금 이리로 달려오는 도중 인가? 혹은 어떤 고장이 생겨서 모든 예기가 틀려 나가지나 않았는가?

내일이면 국경까지 이르는 그 전날 밤이었다. <내일>이라 하는 중대한 운명의 기로에 선 춘추는 그 밤은 긴장되어 좀 체 잠이 못 들었다. 지금껏 너무도 아무 소식도 없으니 불 안증이 마음에 적지 않게 일었다.

그저께와 꼭같은 어제요, 어제와 꼭같은 오늘이니, 내일도 오늘과 꼭같은(아무 변화도 없는) 날이 이르면 어찌하는가?

지금 고요히 잠든 이 세상에서 내일이라고 무슨 별다른 일 이 생겨날 듯싶지도 않았다.

무슨 변동, 무슨 변환가 있어 주어야 할 터인데, 오늘과 꼭 같은 내일이 이르면 이 일을 어찌하는가?

근심 걱정으로 좀체 잠이 들지 못하고 이리 돌아눕고 저리 돌아누우며 전전불매하다가, 거진 날이 밝게 되어서야 간신 히 잠이 들었다. 첫잠을 풀껏 들다가 밖에서 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었다.

밖에서는 수다한 인마성이 요란스러웠다. 날은 벌써 밝아 서 동천에는 불그스레한 아침빛 그림자까지 보이고, 인마성 이 소란하고, 노호성 질타성 무슨 큰 소란이 일어난 것이 분명하였다. 동시에 이 소란한 소리를 누르고 우렁찬 노호 성이 불러 가로되─

『우리 이찬 어디 계시오니까? 약속에 의지해서 소장 김유 신 봉영차로 왔읍니다.』

무얼? ─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옷을 입고 자던 몸이매, 그냥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김장군!』

『어디 계시오니까?』

『여기오, 김장군!』

마주 붙들었다. 붙들매, 무슨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너무 억하여 눈물만 주르르 흘렀다.

『김장군 어떻게?』

『정병 삼천을 이끌고 이찬을 봉영하러 왔읍니다.』

이 근처의 민가를 점령하고 이틀 전부터 여기서 춘추의 오 기를 기다렸다 한다.

춘추를 호송하여 온 고구려의 호송 관원들은 김유신에게 잡혀서 한편 방에 감금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김장군,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성상께 욕을 돌렸으니 사 람을 대할 면목이 없소이다.』

『백제의 무도함을 갚고자 이 나라에 청병을 왔더니, 대왕 께서는 도리어 내게 땅을 반환하라 요구하시니, 이것은 일 개 사신의 자유 처리치 못할 문제라 지금 임시의 방편으로 한때 거짓말로 응낙했지만 이는 위법에 못이기어 부득이한 대답이라 시행치 못할 일이라고 대왕께 여쭈어라.』

자기를 호송해 온 고구려 관원들께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고 신라의 삼천 정예에게 호위되어 김유신과 말을 나 란히하여 서울로 서울로 길을 채었다. 어깨에 지고 갔던 사 명은 다 하지 못하였지만, 무사히 귀국한 것을 기뻐하여 임 금은 큰 잔치를 열고 춘추를 맞았다.

이때에 국경까지 진군하여 춘추를 무사히 맞아온 공로로 임금은 김유신을 압량주(押梁州) 군주(軍主)를 제수하였다.

(一九四三年 一二月˜四四年 一月 <野談> 所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