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사담집 2/식철수

항전(巷傳)에 의함

『오늘 참수(斬首)를 한다는구려.』

『에구머니나!』

『그런 변이 어디 있겠소?』

『이를 어쩌우?』

이곳서도 수군수군 저곳서도 두선두선, 한 떼거리씩 사람들이 모여서 불길한 얼굴을 하고 걱정들을 한다.

『이 일을 어쩌단 말이요?』

『글쎄, 신첨의(辛僉義)가 없어지면 토색질 강도질에 백성이 또 어떻게 되구?』

『백성은커녕 나라는 어떻게 되구?』

『글쎄 말이지.』

고려 공민왕 이십 년 칠 월, 삼복은 겨우 지났다 하나 볕 은 아직도 쇠를 녹이듯이 뜨거운 가운데 수원(水原)성 내에 는 백성들이 구석구석이 모여서 서로 수군거리고 있다.

영도첨의(領都僉義) 신돈이 고약한 모함에 걸려서 수원으로 정배를 온 지 달포, 신돈 자기도 아직껏 임금의 신임을 그 만치 받고 있었더니만치 얼마 안심하여 왕의 노염이 풀려서 다시 서울로 돌아갈 날을 기대하고 있었고, 백성들도 모두 그렇게 믿고 있었거늘, 오늘 의외에 서울서 대사성 임박(大 司成林樸)이 어명을 받고 신돈을 목 베러 내려온 것이었다.

임박의 일행이 수원땅에 들어선 것은 오정을 좀 지나서였 다. 오정부터 유시(酉時)까지 수원 성내는 마치 벌의 둥지를 쑤셔 놓은 것같이 두선거렸다.

경호하는 경관(京官)들이 겹겹이 둘러서고 목목이 지켜서서 민심의 동요를 진압하기 때문에 표면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 었으나, 속으로 흐르는 공포와 어지러운 기운은 온 천하에 덮여 있었다.

왕의 십 사년에 왕의 부름을 받아서 재상의 임무를 띤 아 래 육년 간, 승도(僧徒) 출신인 이 괴걸(怪傑)의 놀라운 정 치적 수완 아래, 어지러워가던 고려 정국은 다시 정돈이 되 고 아직껏 재상들의 학정 아래 정신을 못 차리던 고려 백성 들은 겨우 숨을 돌리게 되어 <성인(聖人)의 출현>이라는 구 가성이 한창 높아갈 때에 변변치 않은 일로서 신돈은 왕의 노염을 사서 왕의 눈에 벗어나게 된 것이다.

신돈이 일단 왕의 눈에 벗어나니까 아직껏 신돈의 탄압 아 래 머리를 못 들던 고려 대대의 재상들이 모두 들고 일어서 서 「신온이 역적 도모를 하였다」고 왕께 고자질을 하였 다. 역적 도모를 하였으면 물론 당장에 참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캐어 보아도 신돈이 역적 도모를 한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조사하면 조사하느니만치 아직껏 신돈이 왕 과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얼마나 노심을 하였다 하는 그 증 거만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역적도모를 하였다>는 명목으로 잡았던 죄우이니 그냥 백방하기도 싱거워서 가장 경한 형벌─ 수원유배(水原流配)로 일을 막음하였던 것이었 다.

일이 그렇게 되었는지라 신돈 자신도 물론 불일간에 다시 청천 백일의 몸이 되어 정권을 다시 잡을 것을 굳게 믿고 있었고 백성들도 또한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합리 갑자기 대사성 임박이 왕명을 띠고 신돈의 목을 베러 서울서 수원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경계는 어마어마하였다.

아직껏 임금과 온 백성의 신임을 한 몸에 지니고 있던 재 상이라, 어떤 일이라도 생길까 하여 관졸들은 눈을 휘번덕 거리며 경계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시간은 흘러서 미시를 지나 신시도 지나 유시가 거의 가까왔다.

아직껏 쨍쨍 내려 비치던 볕이 문득 흐리게 되었다. 동편 쪽에서 주먹만한 구름 한 덩어리가 떠올랐다.

떠오른 구름은 삽시간에 온 천하를 덮었다. 뇌성과 벽력─ 순간 전까지도 찌는 듯한 볕 아래 잠겨 있던 천하는 갑자기 침침한 암흑 가운데로 잠겨 들어갔다.

이러한 가운데서 관졸들은 더우기 눈을 휘번덕거리며 길마 다 골목마다 지키고, 행형을 할 酉時가 가까와지 면서는 좀 높은 관원들도 우장으로 몸을 엄중히 감싸고 말에 올라서 시내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변한 이 날씨─ 낮까지도 아무렇지도 않던 날이 갑자기 뇌성벽력이 자심하기 때문에 그들도 마음으로 는 적지 않게 공포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순시는 하지만, 경 계는 하지만,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분명히 불안하였다.

뇌성과 벽력─ 험한 날씨 아래서 그날 유시에 전 재상 영 도첨의 신돈은 회자수의 칼 아래서 칠십 년 생애를 끝막음 하였다.

수원서는 영도첨의 신돈의 목을 베는 날 함흥 사성골 시중 이성계의 집 사랑에는 하인들도 모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주인대감 이시중 혼자서 묵연히 앉아 있었다.

머리맡에는 족자가 하나 걸려 있었다. 호상(胡床)에 걸터 앉아서 무심히 앞을 내다 보고 있는 풍만하고 온화한 인물 을 그린 족자로서, 오늘 수원서 참수를 당할 영도첨의 신돈 의 화상에 틀림이 없었다.

이시중은 비스듬히 아랫목에 단정히 앉아서 그의 난란한 눈으로 말 없이 족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원(水原)의 하늘을 덮은 구름은 이곳 하늘도 새까맣게 덮 었다. 뇌성 벽력은 연하여 지동치듯 하고 무서운 소낙비가 소리를 치며 뜰을 흐르고 있는 가운데 이시중은 무엇을 기 대하는 듯한 긴장한 표정으로 뚫어져라 하고 신돈의 화상만 바라보고 있었다.

행형을 할 유시가 차차 가까와 오면서는 이시중의 얼굴은 더욱 긴장하였다. 그의 긴장한 얼굴은 창백하여지고 눈에는 놀랍게 핏기운까지 띠고, 눈 깜박일 틈도 아까운 듯이 족자 를 우러러보고 있었다.

기다리던 유지─ 그때에 기괴한 일이 생겼다.

바람도 없는데 담벽의 족자가 한 번 흔들렸다. 너울너울 한번 흔들린 뒤에는 특 방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그 순간이었다. 온 천지가 한 번 하얗게 번득이었다. 그 뒤 를 이어 놀라운 천둥소리가 울리며 천하가 한 번 크게 움직 였다.

아직껏 그 자리에 붙은 듯이 앉아 있던 이시중은 이때야 비로소 모을 움직였다. 앉은 걸음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나 아가서 방에 떨어진 족자를 끌어당겨서 들여다보았다.

들여다볼 동안 그의 얼굴의 창백미는 비로소 없어지고 그 대신 명랑한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족자 안의 신돈─ 그의 풍만하고 원만하던 얼굴─ 이마에 서 시작하여 빰으로 목으로 한 줄기 줄기 기다랗게 생긴 것 이었다.

「인젠 너도 죽었구나!」

─ 세상은 내 세상이로다. 너 죽은 뒤에 나를 누를 자 누 구냐?

영원히 세도를 할 줄 알았던 너도 죽는날이 있구나. 너만 없으면 이 고려에 나를 당할 자 누구냐?

『야 경삼아, 이리 오너라.』

비로소 하인을 불렀다.

『불러 계시오니까?』

하인 경삼이가 와서 보고 놀란 것은 그의 주인 대감의 얼 굴에서 그 사이 오랫동안을 보지 못하였던 명랑한 미소가 흐르고 넘치어 있는 것이었다.

『주안상 차려 오너라.』

『네이!』

물러가는 경삼이의 발소리를 들으면서 이시중은 편조의 족 자를 집어서 산산이 찢어 구겨 버렸다.

이십 년이라는 날짜가 흘렀다.

신돈이 살아 있을 때에는 신돈의 명안(明眼)에 벗어나지 못 하여, 신돈에게 경원(敬遠)한 바 되어 중앙에 있지 못하고 변방살이만 하던 이시중은, 신돈 죽은 뒤에는 어름어름 중 앙 무대에 등장하여 어느덧 중앙 대신 중에도 가장 실력과 위풍이 출중한 대신으로 되었다. 그의 견식 지배력 활달한 성격 등은 인물이 부족한 고려조에서는 없지 못할 큰 기둥 이었다.

그러나 일찌기 신돈 때문에 불우의 수십년을 보낸 이시중 의 마음에는 신돈을 미워하는 생각은 지워 버릴 수가 없었 다. 그리고 신돈을 미워하는 생각은 차차 벌어져서 중이 미 우면 가사까지 밉다는 격으로 중이라 하는 계급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변하였다.

더우기 고려조의 당시의 상태로 보아서 의식적으로라도 중 을 박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려조의 지금의 재상들(유 생 출신의)은 모두 한결같이 이전 신돈 집정시에 신돈에게 멸시를 받던 사람들이었다. 고려의 재상들의 인심을 사기 위해서는 정책상으로도 중을 탄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위에 또한 신돈 집정 육년 간에 승문 출신인 진돈의 활 달한 정치 아래서 신돈을 찬미하고 불도(佛道)를 찬미하던 고려 백성들의 마음을 자기에게로 돌아서게 하기 위해서도 불교를 없이할 필요가 있었다.

이리하여 이시중은 중앙에서 차차 세력을 잡기 시작하면서 는 극력 불교 박해에 노심하였다.

백성의 마음에서 신앙하는 불교의 뿌리를 뽑아내기 위해서 는 단지 탄압뿐으로는 되지 못할 일인 줄 잘 아는 이시중은 신돈의 악행을 꾸며내어 가지가지고 민간에 유포시켰다.

─ 신돈은 황음 무쌍하다.

─ 신돈은 탐욕 무쌍하다.

─ 여사여사하게 재상가들의 부녀를 겁간하였다.

─ 여사여사한 악행을 하였다.

온갖 풍설을 지어내어 심복인들로 하여금 세상에 유포시켰 다.

이렇게 불교를 꾸준히 탄압하기 수십년 ─ 건망증이 강한 고려 백성들은 과거의 신돈의 공적을 잊고 일변 늙은이는 죽고 인제는 신돈은 고약한 자라 믿고 불교에 대한 신앙심 도 점점 쇠약하게 되었다.

그러한 때에 고려 조정에서는 상(賞)을 걸고 중을 잡게 하 였다.

「중 하나를 잡아 관가에 바치면 상으로 금 오천 냥과 벼 슬을 준다.」

여기서 고려 말년의 불교 수난시대는 벌어졌다.

『경삼아!』

『네이?』

대청에 좌정한 이시중과 댓돌 아래 읍하고 서 있는 경삼 이.

『너는 벼슬을 하고 싶지 않으냐?』

『소인께 무슨 벼슬이 태웠겠읍니까?』

『아, 이 어리석은 녀석아. 벼슬이 태었는지 안 태었는지 힘써 보기나 했느냐?』

『……』

『중놈을 잡아 나라에 바치면 벼슬을 주느니라. 네가 다른 일로는 나라에 훈공을 못 세우겠지만 중놈이야 잡아 바치지 못하겠느냐?』

『중을 잡아 바치면 벼슬을 합니까?』

『그러구 말구. 너는 힘깨나 쓰지?』

『중놈 여남은 놈이야 당장에 잡아 바치리다.』

『어디 잡아 보아라.』

주종지간에 이러한 대화가 있은 날 밤, 경삼이는 자기 아 내와도 밤이 새도록 의논을 하였다.

이 이시중 댁에 있어야 언제까지든 하인으로 밖에는 있지 못한 것이요, 만약 나가서 중을 잡아보아서 요행 하나라도 잡기만 하면 벼슬을 얻어 갈 것이다.

이 댁을 나가면 시재는 생활이 곤란할지 모르지만, 장차 중 하나를 잡기만 하면 벼슬을 얻어 갈 터이니, 시재의 고 생을 쓰다 하지 말고 이 댁을 나가서 중을 잡아 보자.

밤이 새도록 아내와 의논을 하고 이튿날 아침 대감께 하직 을 하였다.』

『소인도 중놈을 잡겠읍니다.』

『잡을 것 같으냐?』

『하 돌아다니노라면 만나는 날이 있겠읍지요.』

『응 그래라. 어디 한 뭇 두 뭇씩 한꺼번에 잡아 오너라.』

이렇게 하직을 하고 오래 붙어 있던 이시중의 댁을 나섰 다.

중을 잡으라는 영이 지엄한지라 서울 안에는 중이 얼씬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멀리 절간까지 가면 무론 중도 있기 는 있으련만 거기까지 가서 중을 잡으려다는 도리어 중에게 욕을 보기가 쉽다. 서울서 너무 멀면 또 잡아 가지고 오기 가 힘들다. 그래서 경삼이의 내외는 서울 성 밖에 작다라한 집 하나를 장만하고 거기 우거하기로 하였다.

거기일 것 같으면 성안과 달라서 간혹 탁발승이라도 올 것 이다. 거기이면 먼 데와도 달라서 중을 잡기만 하면 끌고 서울로 들어가기에도 불편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거기 집 을 장만하고 경삼이는 아침 조반만 먹고는 점심까지 싸가지 고 곧 집을 나서서 그 근처 일대를 행여 중이 지나가지 않 는가고 두루 살피며 편답하였다.

이러하기를 한달 두달 석달 넉달 ─ 아침 조반만 먹고는 나서서 중은 잡으려고 편답 하였지만, 저녁때 돌아올 때는 빈손으로 기진맥진하여 돌아오고 하는 것이었다. 관령이 지 엄하니만치 중들도 서울 근처에는 잘 오지를 않았다.

『아직 못 잡았수?』

기진맥진하여 빈 손으로 돌아올 때마다 행여 오늘은 한 놈 잡아 오나 하고 기다리고 있던 그의 아내는 실망한 표정으 로 묻고 하는 것이었다.

『못 잡았네.』

『그렇게 없읍디까?』

『없데, 없어.』

『그럼 어쩌우?』

『글쎄.』

이시중께 타 가지고 나온 밑천도 인젠 거의 다 먹었다. 그 것이 다 없어지기 전에 중을 반드시 잡아야 할 것이다. 중 을 못 잡으면 벼슬을 얻어가지 못하겠고, 벼슬을 못하면 먹 을 탁이 없다고 인제 다시 이시중 댁으로 들어가기로 면증 한 노릇이라, 어떻게든 중을 잡아내어야 할 터인데 중은 씨 도 보이지를 않았다.

경삼이의 내외는 한숨만 쉴 뿐이었다.

어떤 날 남편은 역시 중을 잡으러 나가고 아내는 혼자서 바느질을 하고 있을 때에 찌걱하는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 렸다. 바느질을 하고 있던 경삼이의 아내는 눈을 들어 내다 보았다.

왔다! 중이 왔다!

『중 동냥 왔읍니다.』

동냥을 하러 중이 온 것이었다.

중을 보는 순간 경삼의 아내의 가슴은 막히는 듯이 무거웠 다.

이 일을 어쩌나? 오기는 왔구만, 자기 혼자서 이 일을 어 쩌나? 놓치면 중은 다른 집으로 갈 것이다. 거기서 잡히면 벼슬은 그 집으로 갈 것이다. 복덩이가 스스로 왔는데 이 복을 어떻게 잡나? 눈이 아득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을 억제하며, 설레이는 마음을 진정하고 서서히 좋은 방책 을 강구하려 우선 동냥을 주는 시늉이라도 하려고 바느질감 을 내어 던지고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뜰에 내려서서 일변 신을 신으며 중을 보다가 경삼 아내는 깜짝 놀랐다.

『에구머니, 이게 누구요?』

중도 이 비명에 뜻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아 복실이 아니냐?』

『아이구 오빠.』

『너희는 함흥 있다는 소문이 있더니 어떻게 여기 와 있느 냐?』

『온 지는 얼마 되지만─ 좌우간 올라오세요.』

『응, 올라도 가겠지만, 시장이 좀 심하니 너희 집에 찬밥 이라도 없느냐?』

『좌우간 올라오세요.』

『응』

중은 더벅더벅 마루로 올라섰다.

『오빠, 그럼 찬밥이나 상 차려 가지고 들어가게 기다리세 요.』

『오냐, 아무것이고 되는데로 다오.』

중은 방으로 경삼 아내는 부엌으로 갈라졌다.

오라버니의 상을 차리러 부엌으로 가기는 갔지만 경삼 아 내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졌다.

중이 왔다.

그 사이 몇 달을 두고 남편이 새벽 일찌기 밖에 나가서 어 두워서야 겨우 피곤한 몸을 집으로 옮기고 하는 것은 오직 중을 잡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 중이 제 절로 이 집에 하나 뛰쳐들었다.

중을 잡아야 벼슬을 한다. 중을 잡으면 벼슬을 한다.

눈 앞에 어른거리는 벼슬.

공중에 흐느적거리는 벼슬.

오빠를 잡아서 남편에게 주기만 하면 벼슬을 한다. 남편이 벼슬을 하기만 하면 자기는 앉아서 하인들을 호령할 신분이 된다. 벼슬에 눈이 어두운 이 여인은 밥상을 차려 가지고 들어올 때는 벌써 결심이 다 되었다.

『오빠!』

중이 상을 물리자마자 경삼 아내는 은근히 오빠를 불렀다.

『왜 그러느냐?』

『오빠도 아시겠지요. 지금 승을 잡으라는 영이 지엄하고 승을 잡기만 하면 벼슬을 준다는 바람에 너 나 할 것 없잉 승을 잡으려고 눈이 벌개서 돌아가는 것을?』

『듣기는 했다.』

『사실로 말하자면 우리 밖에서도 승을 잡으러 지금 돌아 다닌답니다. 그런 가운데를 어떻게 다니십니까?』

『잡히면 잡혔지.』

『그게 무슨 말씀이야요. 더구나 여기는 서울서도 가까운 곳이라 위험하기 짝이 없는데…』

『글쎄.』

『인제 어디로 가세요?』

『내야 정처가 있느냐?』

『아무데로 가시든 낮길을 가지 마세요. 오늘은 우리집 벽 장에 숨어 있다가 밥에 집을 떠나세요.』

『글쎄.』

『그렇게 하세요. 잘못하다 욕보면 어떡헙니까?』

『나는 아무것도 탓하지 않는다마는, 네 말이 그러니 그럼 밤에 떠날까?』

『그러세요. 낮에는 누가 마을이라도 와서 보면 안되겠으 니까, 좀 답답하시겠지만 벽장 속에 들어가 숨어 계세요.』

『그래라.』

이리하여 경삼 아내는 제 오빠를 벽장안에 감추고─ 아니, 가두고 밖으로 소리 안나게 걸기까지 하였다.

중을 하나 잡아 놓고 남편 돌아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 고 있는데, 그 남편은 거의 날이 어두워서야 맥이 다 풀려 서 겨우 돌아왔다.

『에이구, 다리만 아프다.』

신이 없이 덜컥 주저앉는 남편을 아내는 자랑스러운 얼굴 로 맞았다.

『여보세요.』

『응?』

찔긋 눈으로 벽장을 가리켰다.

『응?』

아내는 황급해 말을 말라는 뜻으로 손으로 입을 가리키고 눈으로는 벽장을 가리켰다.

『이걸 갑자기 벙어리가 됐나? 왜 이 모양이아?』

『아냐, 저 시장하시지요?』

입으로는 딴말을 하며 연방 벽장만 가리킨다.

남편은 영문을 몰랐다. 영문은 몰랐지만 좌우간 아내가 너 무도 수다스럽게 벽장을 가리키는 바람에 노곤한 몸을 다시 일으켜서 벽장 쪽으로 가서 열어보았다.

『와!』

벽장 속에는 웬 중이 하나 웅그리고 있었다. 경삼이는 질 겁을 하였다.

『이게!』

『아, 매분가?』

매부? 이 말에 귀가 번쩍 띄운 경삼이는 중의 얼굴을 보았 다. 어둑침침한 벽장안이라 똑똑히는 볼 수가 없으나 여러 해 전에 본 처남의 모습이 분명하였다.

『이게 누군가?』

『낼세.』

중은 어슬렁 어슬렁 벽장에서 나왔다.

『아니, 한데 벽장에는 왜─ ?』

『위험하다고 누이가 들어가 숨어 있으라데 그려.』

『무얼?』

순간 경삼이는 사건의 전면을 알았다. 벼슬을 하고 싶은 제 아내가 표면으론 감추어 주는 체하면서 벽장에 감금한 것이 분명하였다. 힐끗 아내의 얼굴을 보니 거북한 듯 자랑 하는 듯 기괴한 표정이었다.

경삼이는 처남을 방 안에 나오게 하고 자기는 슬며시 뜰로 나갔다. 무론 자기의 아내가 뒤따라 나올 것을 예기하고서 ─ 과연 아내는 조금 뒤에 뒤따라 나왔다. 경삼이는 말없이 뒤뜰로 돌아갔다. 아내는 뒤에서 따라 돌아왔다. 뒤뜰 우물 앞까지 이르러서 경삼이는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돌아보며 아내가 오기를 기다렸다.

아내는 자랑스러운 듯이 생긋생긋 웃으며 남편의 가까이로 왔다.

『인젠 벼슬을 했구료.』

경삼이는 무거운 눈으로 아내를 굽어보았다.

『응, 비장(裨將) 한 자리는 놓치지 않지.』

『그럼, 나 호단(胡緞) 저고리 해 주어.』

『저고리도 해 주마. 그런데 만약 내가 비장이 된 뒤에 대 장(大將)이 임자께 추파를 보내면 어쩌겠나?』

아내는 농담으로 알았다. 그리고 그냥 생긋거리며 남편을 쳐다보려다가 남편의 얼굴이 너무도 무서운 표정이므로 몸 서리쳤다.

『어디 대답을 해!』

『대답이라야…』

『비장의 아내가 되려고 혈육(血肉) 오라비를 사혈(死穴)에 넣는 계집이니 대장의 애첩이 되려고 이성(異性)은 죽이지 못할까?』

아내는 무엇이라 대답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 대답이 나오 기 전에, 경삼이는 아내를 웅켜 잡아서 우물 속으로 거꾸로 박아 버렸다. 그리고는 손을 한 번 털고 방 안으로 들어갔 다.

『여보게, 자네 누이가 자네를 팔아서 벼슬을 하려구 했어.

친 누이까지도 그런데 남을 어찌 믿겠나? 여기까지 남에게 붙들리지 않고 온 것이 대체 조화야. 인제 이 집에서 나가 기만 했다가는 반드시 뉘 눈에든지 띄어서 자네는 잡히고 발견한 사람은 벼슬을 하고 할 게야. 그러니까 한동안 나가 지 말고 백여 있게. 자네 누이가 자네를 가두었던 벽장 속 에 한동안 숨어 있게. 밥은 내 끼니마다 들여 주께, 꾹 백여 서 나오지 말게. 그랬다가 세상이 좀 풀린 뒤에 어디로든가 피신을 하게. 지금은 나갔다가는 단박에 잡혀.』

이렇게 얼러서 경삼이는 처남 중을 벽장 속에 감추어 두었 다. 그리고 끼니 때마다 밥을 벽장 안으로 들여보내고 그래 도 자기는 아직도 벼슬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지를 않아 서 처남 아닌 다른 중을 잡고자 아침마다 집을 나가서는 저 녁 어두워서야 돌아오고 하였다.

벽장 안에 갇히어 있는 처남 중.

매일 들여 주는 밥을 먹는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갑갑하 고 클클하기 짝이 없었다. 밥을 들여 주면 그것이나 먹고는 종일을 우두커니 동무도 없이 웅크리고 있을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하도 갑갑하고 궁금하여 장난을 하였다. 들여 주는 밥을 다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뜯어가지고 그것을 비비어서 떡덩 이같이 만들었다.

그 떡덩이로 조그만 짐승을 하나 만들었다. 짐승을 만들어 가지고는 벽장 속에서 바늘 쌈찌를 얻어내어 바늘을 꺼내어 짐승에게 먹이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 짐승은 난짝난짝 바 늘을 다 받아 먹었다.

바늘을 받아 먹어가면서 약간 큰 짐승을 이번에는 못(釘)을 얻어 먹여 보았다. 그랬더니 턱턱 받아 먹는다.

못을 먹인 뒤에는 가위며 칼을 먹이고, 그런 뒤에는 솥뚜 껑을 벗겨 먹이고, 이렇게 쇠라는 쇠는 안 먹는 것 없이 잘 받아 먹으며 그 짐승은 나날이 커갔다. 그리하여 중강아지 만하게 되어서는 그 집을 뛰쳐 나가 송악(松嶽) 숲 속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다.

어떤 날, 이 날도 경삼이는 중을 잡으려고 진일을 돌아다 니다가 기진맥진하여 집으로 돌아오니까, 처남되는 중은 벽 장에서 나와서 보따리를 지고 길 떠날 준비를 한 뒤에 경삼 이의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신세 많이 졌네. 오늘 떠나겠네.』

『아 떠나서 되겠나?』

『어쩌리. 그런데 자네는 매일 그냥 나다니니 꼭 벼슬을 얻어 하고 싶은가?』

『여보게 이를 말인가?』

『그렇게 벼슬이 하고 싶은가?』

『암!』

『벼슬을 하려면 꼭 중을 잡아야 되겠나?』

『아, 그렇지 않고야 나같은 것이 어떻게 벼슬 자리에 붙 겠나?』

『내 벼슬할 방도를 가르쳐 줄께, 중 잡을 생각은 그만두 게.』

『어떻게?』

중은 부슬부슬 주머니를 열었다. 그리고 부시쌈지 같은 것 을 하나 꺼내었다.

『여보게, 이것을 잘 간수해 두게.』

『그게 무엔가?』

『잘 간수해 두었다가 장차 큰 일을 당해서 열어 보게. 그 러면 중을 잡지 않고도 벼슬을 할 길이 열리리.』

『참말인가?』

『승려두 거짓말 하나?』

경삼이는 그것을 받아서 반닫이 속에 깊이 간직하였다.

그날 밤 깊어서 중은 경삼이의 배웅을 받으면서 수도의 길 을 다시 더듬었다.

「쇠를 먹는 짐승이 서울에 나타났다.」

이러한 괴상한 소문이 퍼지기는 그로부터 한 달쯤 되어서 였다.

송아지만한 괴상한 짐승이 송악에서 내려와서 장안 쇠라는 쇠는 모조리 먹으면서 돌아간다. 이것은 단지 풍문이 아니 고 진정한 사실이었다. 장안 뭇 사람이 모두 본 바이었다.

쇠를 먹는 짐승이니만치 화살로 쏘아도 턱턱 받아 먹고 쇠 뭉치로 때리려 해도 턱턱 받아 먹고 힘이 무쌍하여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괴상한 짐승이었다.

장안은 물끓듯 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전전긍긍하였다. 작 은 것은 바늘에서 비롯하여 큰 것으로는 솥이며 보섭이며 온갖 쇠라는 쇠는 모조리 집어먹으면서 횡행을 한다.

그 괴상한 짐승이 나타난 지 수일에 장안에는 벌써 쇠라는 쇠는 거의 다 없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힘이 무쌍하고 화살 을 무서워하지 않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군대를 풀어 놓을지라도 군대가 쏘는 살촉을 맛있다고 먹어 버리니 군대 도 그 짐승의 앞에서는 아무 효과도 나타내지 못하였다. 나 라에서는 드디어 이 짐승을 잡는 데 큰 상을 걸게 되었다.

─ 금 오만 냥을 주고, ─ 높은 벼슬을 주고, ─ 이미 지은 죄가 있을지라도 다 용서한다.

그러나 여기 응하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경삼이는 이 방을 보고 문뜩 회상한 바가 있었다.

쇠를 먹는 짐승은 일찌기 자기의 처남이 만들어 내보낸 그 짐승일 것이었다. 자기 처남이 떠날 임시에 벼슬을 하려면 이것을 보아라 하고 맡기고 간 것이 있었다.

경삼이는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 돌아와서 반닫이를 열고 전날 처남이 주고 떠난 쌈지를 펴 보았다. 그러니까 그 속 에는 무슨 종이가 하나 들어 있다. 그 종이를 펴 보매 거기 는 간단히─

「화가살(火可殺)」

이라고 적히며 있을 뿐이었다.

「화가살이라. 옳아! 그 짐승은 불로 능히 잡을 수가 있 다.」

그 달음으로 경삼이는 옛날 상전 이시중의 댁으로 달려갔 다.

『대감마님 소인 문후 왔읍니다.』

이시중이 대청 위에서 굽어 보았다.

『누구냐?』

『소인이올시다.』

『오, 경삼이 아니냐? 아직 무사히 살아 있구나?』

『대감마님 덕분에…』

『응, 그래 어떻게 왔느냐?』

『저 쇠를 먹는 짐승이 있지 않읍니까?』

『그래서 ?』

『그 놈을 잡으면 벼슬을 준답지요?』

『주고말고.』

『소인이 잡겠읍니다.』

『네가 능히 잡겠느냐?』

『잡겠읍니다.』

『잡기만 하면 후한 벼슬이야 놓치지 않지.』

『그런데 대감마님, 소청이 하나 있읍니다.』

『무에냐?』

『쇠를 집더미만큼 한 낟가리만 구해 주십시오.』

『쇠를?』

『네…』

『무엇에 쓰려느냐?』

『쇠를 가려 두고 그 놈의 짐승이 와서 먹을 때에 잡겠읍 니다.』

『그렇게 쉽게 잡힐 듯싶으냐?』

『소인은 넉넉히 잡았겠읍니다.』

『그러면 쇠는 마련해 주마.』

이리하여 약속이 되었다.

이시중은 약속에 의지하여 넓적한 마당에 쇠를 한 낟가리 만들어 놓았다.

그 쇠 낟가리 근처에 경삼이는 숨었다. 그리고 짐승이 오 기를 기다렸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만에야 짐승은 쇠 냄새를 맡고 어슬렁어슬렁 낟가리로 왔다. 보매 이전 자기 집에서 나갈 때는 겨우 강아지만하던 놈이 지금은 마치 작다라한 산과 같이 커다랗게 되었다.

그 짐승은 쇠 낟가리로 와서는 거기 가려 놓은 쇠를 맛있 는 듯이 먹기 시작하였다.

경삼이는 숨어 있던 곳에서 기어나왔다. 그리고 발소리를 감추어 가지고 짐승에게로 차차 가까이 갔다. 그러나 발소 리를 감추지 않는다 할지라도 결코 짐승은 경삼이는 해하지 않을 것이니, 지금껏의 과거를 볼지라도 이 짐승은 쇠 이외 의 물건을 해친 일이 없을 뿐더러, 발소리를 감추어 가지고 오는 경삼이를 힐끗 돌아보고도 모른 체하고 다시 쇠를 먹 기 시작하였다.

경삼이는 짐승의 가까이로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미리 준 비하였던 부시쌈지를 꺼내어 쑥과 부싯돌을 짐승의 꼬리털 에 갔다 댄 뒤에 부싯돌을 탁 그었다.

그 순간이었다.

확 하니 불길이 한 번 일었다가는 잦은 뿐이었다. 그 뒤에 는 지금껏 눈앞에 보이던 묏더미만하던 짐승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짐승이 있던 자리에 때묻은 밥덩이 하 나가 먹다가 남은 쇠와 함께 놓여 있을 뿐이었다.

왁자하니 모여드는 군중들.

멀리서 엿보다가 칭찬하는 재상들.

─ 괴상한 짐승은 완전히 퇴치를 한 것이었다.

경삼이는 이 짐승을 퇴치한 훈공으로 오래 벼르던 벼슬과 재산을 얻게 되어서 새로이 장가 들고 부귀가 겸전한 여생 을 보낸 뿐 아니라, 이시중의 총애와 신임을 받아서, 이시중 이 고려 혁명을 하고 이씨 태조가 된 뒤에는, 그의 중신의 한 사람으로까지 출세를 하여 이조의 거족(巨族)이 되고, 그 후 대대손손이 명상 거유가 많이 났다.

그 짐승은 불로써 잡았으므로 그때에는 화가살(火可殺)이라 부르다가 얼마 뒤에는 불가살이라 와전(訛傳)되었다가 더 뒤 에는 아주불가살(不可殺)이란 이름으로 고정되어 버렸다.

(一九三六年 七月 <野談> 所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