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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사담집 4/자루 속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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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主居) 한양(漢陽).

삼천리의 수요 팔도의 중심지로서 십만 장안이라 일컫는 한양부(漢陽府)였다.

그러나 밤의 한양은 진실로 고요하였다. 사멸(死滅)의 도시라고밖에 말할 수 없도록 고요하고 적적하였다. 석양이 무학재를 넘으며 각 집의 저녁 짓는 연기가 온 도시를 덮어서 그렇지 않아도 어둠침침한 이 도시를 더욱 쓸쓸케 만들 동안 여섯 주 비전을 비롯하여 이 시민의 일용 양식이며 그 밖에 일용품을 용달하던 모든 상점은 황황히 가게를 닫아 버리고 종로의 인경 소리 길게 울리며 한양부는 밤의 세계로 잠겨 들어간다.

밤의 한양부는 그야말로 무덤과 같았다. 뭉기어 나오는 김(蒸氣)에 어리어서 보일락말락 하는 음식점의 팔각밖에는 불 하나 구경할 수가 없는 어둠의 도시.

시민은 밤을 즐길 줄을 몰랐다. 재상가의 사랑에는 그래도 불 그림자가 보이고 가무의 소리도 들리지만 서민 계급은 날이 어둡기만 하면 황황히 자리 속으로 들어갈 줄밖에는 모른다. 그리고 길에는 간간 취객들의 그림자며 노름군의 그림자 혹은 길 늦은 행차의 길을 채는 소리, 그 밖에는? 낮에는 행차를 느릴 만한 재산이 없어서 종일을 동저고리 바람으로 집에 박혀 있던 가난한 선비가 겨우 하인 하나에 등불을 들려 가지고 낮에 못 본 일을 밤에나 보려고 집을 나선─ 이런 사람들밖에는 통행인도 없는 침침한 거리.

십만 장안이라는 것도 낮 한양을 두고 말이지, 한양은 심심산곡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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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밤 한양의 골목을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니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시골 사람이었다.

선비였다.

과거를 보러 온 사람이었다. 자기 주인 집을 잃은 사람이었다.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캄캄한 골목 골목을 남의 담벼락과 부딪치며 일변 개천에 퍽퍽 빠지며 왔다갔다 헤매이고 있다.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고 캄캄하여 잘 분간할 수는 없으나 아무 데를 가도 똑같았다. 좁은 골목, 곧지도 못하고 꼬불꼬불하며 몇 걸음만 가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반드시 꺾어졌으며 그 위에 양옆에는 반드시 더러운 개천이 있어서 낮에라도 다니기 힘들고 찾기 힘드는 이 한양의 길을 밤에 더군다나 시골뜨기가 찾노라니 찾아질 까닭이 없다. 모두가 같은 골목 같고 모두가 이미 몇 번째 지나간 곳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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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양부의 골목자기.

이조 창시 이래로 벌써 二십여 대의 임군을 섬겼으되 이 나라의 서민은 아직 인주(仁主)를 만나보지 못하였다.

문치(文治) 방면에 가장 업적이 크시다 하는 세종대왕의 치세(治世)에서도 언문(諺文) 창정(創定) 한 가지가 겨우 서민 계급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업적이었지 그밖에 다른 업적은 서민은 감지를 못하였다. 명문거족(名門巨族)들을 위한 치적─ 실컷 내려와서 사대부에게까지 미치는 치적이었지 서민 계급은 세종대왕의 문치(文治)에도 먹을 기회가 없었다.

이 나라 서민에게는 오직 의무와 부담이 있을 뿐이었다. 권리를 즐겨보지 못하고 편익(便益)에 멱감아 보지 못하였다.

서민의 편익이라는 점은 생각도 않은 권족 정치 아래 생겨난 한양이라, 한양에는 길이 없었다. 치자(治者)가 길의 한계를 지시치 않았는지라 서민들이 제각기 짓고 싶은 곳에 짓고 자기의 집에 출입할 필요가 있는 이상 자기 집 앞에 약간의 공지를 남겨 놓은 것─ 이것이 합치고 합쳐 한양부의 도로가 된 것이지 도시를 형성키 위한 도로가 아니었다. - 그런지라 한양부의 도로가 더욱이 골목자기는 〈할 수 없이 생긴 공지의 연락〉이지 전부민(全府民)의 교통을 위한 길이 아니었다.

그 길에 익은 사람도 밤에는 헛길을 들기가 십중팔구(十中八九)다. 하물며 시골서 갓 올라온 이 선비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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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필시 여우한테 홀린 게로구나.」

그렇지 않고야 같은 길이 이다지도 많을까? 초저녁부터 헤매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자정도 넘었다.

자정까지 넘은 뒤의 한양은 그야말로 무덤 이상의 적막한 곳이었다.

「이를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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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닥닥! 무엇이 벼락같이 이선비에게 달려들었다. 달려든 괴물은 하나뿐이 아니었다. 셋, 넷, 다섯 사람이라면 五~六인, 짐승이나 괴물이라면 대여섯 마리, 후닥닥 선비에게 달려들어서 선비가 채 놀라기도 전에 어느덧 선비를 꽁꽁 묶어 놓았다. 말 한 마디 없이.

선비는 필시 자기가 무슨 짐승에게 홀린 것이거니 하였다. 그렇지 않고는 해석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선비는 한 마디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짐승에게 욕을 보는 이상 소리를 내야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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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은 선비를 결박하여서는 미리 준비하였던 자루에 잡아넣었다. 자루에 잡아 넣어 가지고는 모두들 달려들어 장지 거리를 해가지고 쏜살같이 어디로 내닫는다. 그러면서도 역시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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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까지 이르러서 괴물들은 선비를 내려놓고 자루를 헤치고 선비를 꺼내어 놓은 뒤에 결박까지 끌렀다.

결박을 끄는 뒤에는 선비를 (미리 그곳에 준비돼 있는) 물통에 집어넣었다.

아까 밤의 길을 헤매노라고 더러운 물에 빠졌던 선비의 몸은 여기서 정하게 씻기었다.

몸을 정히 씻은 뒤에는 옷을 입혔다. 비단옷이었다.

옷을 입히고 머리를 빗기고 그 위에는 관복 사모 각대.

그러고는 선비를 끌고 어떤 방 앞에까지 와서 선비를 그 안으로 들여보냈다. 선비는 비로소 자기를 붙들어온 괴물들에게서 해방되었다. 괴물들은 아직도 한마디의 말도 입 밖에 내어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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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촉 동방이었다.

화문석이 깔려있었다. 밀초 촛불이 켜 있었다. 화초 병풍이 둘리어 있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신부와 선비의 사이에는 철창이 간막혀 있었다.

칠보단장을 한 신부는 철창을 건너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그야말로 화중지병 철창을 가운데 두고 이 갑작스런 신랑─ 선비는 마주 앉아 건너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으─ㅁ 무슨 짐승한텐지 단단히 홀렸군.』

선비는 입맛을 쩍쩍 다시었다.

『여보시우.』

『……』

『여보시우.』

대답이 없다. 벙어린가?

그러나 꽤 미색, 짐승이라도 그만한 미색이면 괜찮다.

『으─ㅁ 귀머거린 모양이군.』

선비는 또 입맛을 다시었다.

그러나 귀머거리는 아닌 모양이었다. 미소가 신부의 한편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 뒤에는 더 외면하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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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무슨 영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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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만하였으면 날도 거의 밝을 듯하였다.

아무리 짐승일지라도 날이 밝기까지야 이대로 있을려구. 날만 밝으면 제 정체를 알게 되겠지. 선비는 이런 생각을 먹고 있었다.

그때에 선비가 있는 뒷간 문이 덜컥 열렸다. 장정이 몇 명 뛰어 들어왔다.

선비는 다시 결박을 당하였다. 결박당한 선비는 다시 자루에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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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명의 장정이 선비를 넣은 자루를 메고 달려간다.

어디까지나 가는지 꽤 오래 갔다. 꽤 멀리까지 간 것이 분명하였다.

꽤 먼 길을 가서야 장정들은 선비를 내려 놓았다. 내려 놓이는 감촉으로 풀밭이 분명하였다. 자루 틈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미루어보아 날도 벌써 밝았다.

『인제야 끌러 주겠지.』

선비는 자루 속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끄르기는커녕 자루 위로 허리쯤 되는데 한 번 더 비끄러맨다.

그런 뒤에 장정들은 또다시 선비를 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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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들은 선비를 넣은 자루를 가지고 배에 오른 모양이었다. 배를 젓는 소리가 들렸다. 둥실둥실 강 가운데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대체 어디로 가나?」

선비는 궁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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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강 가운데까지 이르렀다.

『자.』

장정들은 선비를 넣은 자루를 들었다.

그리고 밟기 시작하였다.

『아! 아! 아! 아!』

자기를 강에 던지려는 것을 분명히 알고야 선비는 자루 속에서 비명을 내었다. 그러나 새벽의 강─ 듣는 사람이 있어 구원해 줄 까닭이 없다.

비명과 함께 선비의 몸은 텀벙 강에 던지웠다. 아까 강변에서 허리에 달은 돌 때문에 선비는 자루째 강바닥으로 잠겨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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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로 한강의 물은 그냥 고요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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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있는 일이다.

「소저는 소년 과수가 될 팔자올시다.」

재상가에서 자기네 사랑하는 딸의 운명에 대하여 이런 판결을 받으면 이 과부될 팔자를 타고난 딸로 하여금 가련한 일생을 보내지 않게 하기 위하여 취하는 방법이 이것이다.

국법으로서 부녀의 재가(再嫁)를 엄금한 시대라 소년 과부될 팔자를 타고난 딸로 하여금 그 여생을 독수공방의 참경을 보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미리 과부를 만드는 것이다.

재상가의 딸이라 상민에게는 형식이나마 줄 수가 없고 그래서 하인들을 내세워서 시골서 과거 보러 올라온 선비들을 물색을 한다. 밤에 무엇 모르고 길을 나다니는 시골 선비를 발견하면 이를 잡아다가 이런 기괴한 결혼을 거행한다. 그런 뒤에는 이 신랑을 자루에 넣어서 한강 물에 던져 죽여 버린다.

이리하여 인위적으로 과부를 만들어서 팔자를 개척한다.

자기의 아내 손목 한번 못 잡아 보고 수중고혼이 된 재상가 사위가 이조 五백년 간에 얼마나 되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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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때때로는 이런 연극이 좀 더 인간미화(人間味化)하는 일도 많았던 모양이다.

따는 시골선비라고 다 얼굴이 못생겼을 바도 아니요, 재상가 딸이라고 시골선비에게는 반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 이 연극 결혼이 연극에 그치지 않고 현실화한 일도 여러 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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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가 몰래 자기의 찾던 바 장도를 빼어 선비에게 주어서 밝은 날 아침 강에 던질 때에 그 칼로 자루를 찢고 나오게 했단 말도 전한다. 미리 약속을 하였다가 그 자루를 찢고 나온 선비와 손을 마주 잡고 도망가서 아들딸 낳고 잘 살았단 말도 전한다.

어떤 재상가 딸은 자기 아버지의 하는 일을 좋지 못하게 보고 더구나 선비에게 마음이 동한 나머지 선비를 철창 아래 칸으로 불러 내려서 진정한 의미의 부부의 인연을 맺어 이튿날 새벽 선비를 묶으러 들어온 하인들을 아연케 하고 나아가서는 일을 저지른 이상 이 선비와 해로(偕老)를 하겠다고 도리로 내세워서 제 아버지 재상도 부득이 허락치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단 말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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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재상가의 딸은 철창을 사이에 두었으나마 신랑이 신부라 하여 한밤을 지난 이상에는 명문의 딸로써 어찌 두 지아비를 섬기겠느냐고 이튿날부터 머리를 얹고 소복을 하여 삼년상을 곱다랗게 치르고 그 뒤 일생을 과수로 지내서 명실(名實)이 같게 소년 과수가 되었단 말도 전한다.

말 한 번 건네 보지 못하고 손 한번 잡아 보지 못하였지만, 하룻밤 철창 건너 그 임을 잊지 못하여 병이 들어 죽었다는 순정의 여인도 있다.

자기 아버지인 고시관(考試官)에게 과거의 제목을 알아가지고 그 제목을 선비에게 일러바치고 아울러 제집에서 탈출할 기회를 지어 주어서 그 선비로 하여금 과거에 급제케 하고 급제한 선비를 사위로 맞게 하여 행복된 일생을 보겠다는 슬기로운 소녀도 있다.

부녀재가(婦女再嫁)를 금하기 때문에 창안된 기괴한 습관이며 이 법령 때문에 일생을 눈물로 보낸 많은 가인(佳人)들이 있는 반면에는 또한 까닭 없는 죽음의 길을 떠난 시골 선비의 수효도 적지 않을 것이다.

『동해에 한 원부(寃婦)가 있으면 三년을 하늘이 가문다.』

이 법령 하나 때문에도 수없는 원남원부(寃男寃婦)가 생겼을 테니 만약 한 계집의 원한으로 삼년이 가문다 하면 적어도 이 많은 원남원부의 마음을 풀어주려면 한 삼만년은 가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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