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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사담집 5/동자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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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년수(在位年數) 오십이 년이라는 고금동서에 쉽지 않은 기간을 왕위를 누린 영종(英宗)대왕의 어우(御宇)의 말엽에 가까운 날이었다.

한강, 노들 강변에 작다란 배가 한 척 떠 있었다.

그 배에는 상전인 듯한 노인 하나와 젊은 하인 하나이 있었고, 이 긴 여름날을 낚시질로 보내려는 모양으로 노옹은 낚싯대를 물에 넣고 한가히 속으로 풍월을 읊고 있었다.

“오늘은 고기가 안 잡히는구나.”

“모두 대감마님께서 질겁을 해서 도망했나 보옵니다.”

한가스러운 이런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고기가 낚시에 걸리기를 기다리던 노옹은, 문득 물로 향하였던 눈을 저으기 들고 건너편을 건너다보았다.

“대감마님! 대감마님!”

“응….”

“고기가 걸렸나 보옵니다.”

“응….”

시원치 않은 대답이었다.

대체 낚시질하는 사람으로서 낚시 이외의 일을 주의한다 하는 것은 웬만한 중대한 일이 아니면 못하는 것이다. 분명히 고기가 낚시에 걸렸고 대감께 주의를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대감은 낚시를 잊은 듯이 건너편만 바라보므로, 하인도 의아히 생각하고 건너다 보았다.

별것이 없었다. 웬 헙수룩한 시골사람인 듯한 젊은이 하나이 강가에 배회할 뿐이었다. 하인은 다른 무엇이 없는가고 두루 살폈으나 시골 젊은이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므로 내심 낙망하고 다시 대감을 찾으려 하였다.

이때에 대감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여봐라.”

“네이.”

“너 저기 있는 저 배를 타고 건너가서, 맞은편에 강변에 배회하는 저 시골 젊은이의 행동을 숨어서 지켜보아라.”

“네이….”

대감의 분부라 대답은 하였다. 그러나 영문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보기만 하고 오리까?”

“오냐. 보다가 그냥 돌아가거던 내버려 두고, 만약 물에라도 빠지려는 눈치가 보이거든 붙들어 오너라.”

더우기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하인이 익히 아는 바 놀라운 통찰력을 가진 대감의 지휘라, 혹은 무슨 사변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여 배를 하나 저어가지고 강을 건너갔다.

이 하인이 대감의 놀라운 안력에 몸서리 친 것은, 그의 탄 배가 겨우 건너편 언덕에 닿을가 말까 할 때였다. 그때 강가에 배회하던 수상한 젊은이는 첨벙하니 물로 뛰쳐들었다.

미리 대감께 분부까지 받았더니만치 하인은 노를 내던지고 물로 뛰쳐들었다.

요행히 하인은 물에 익은 사람이었다. 한번 솟아서 뻗치고 또 뻗칠 동안 하인은 그 사람의 빠진 곳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물속에서 솟아오르는 그 사람의 뒷덜미를 움켜 쥐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하인이 뒷덜미를 움켜쥐고 호령을 할 때에 그 사람은 하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물에서 몸부림쳤다. 그 사람은 놀랍도록 힘이 센 사람이었다. 하인도 힘깨나 자랑하는 친구지만 힘으로는 그 사람을 당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장소가 물속이라 물에 서툰 그 사람은, 물에 익은 하인을 당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철레철레 끄을리어 배에까지 이르러 건너편 대감의 앞에까지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감은 장단대신(長湍大臣)이라 이름 높던 이종성(李宗城)이었다. 당시의 어지러운 정국을 좋지 못하게 보고 대신을 사면하고 한가히 낚시질로 소 일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은퇴하기는 하였으나, 당시 불리한 입장(立場)에 있던 왕자(思悼世子라 지금 부르는 분)의 심상을 근심하여 감시의 눈을 게을리지 않던 것이었다.

물에 빠져 죽으려던 사람은 드디어 이 정승의 앞에 끄을리어 왔다.

이 정승은 잠시 물끄러미 그 사람을 굽어보고 그 인물을 대강 짐작하여 본 뒤에야 서서히 입을 열었다―.

“웬 사람이라?”

“…….”

“음, 내가 실수일세. 나는 장단대신 이종성일세.”

이 말에 그 사람을 펄떡 물렀다. 그러나 좁다란 배 안에서 멀리 물러갈 자리가 없었다. 아마 단지 점잖은 늙은이쯤으로 보았던 것이 이 정승인 것을 알고 황공하여진 모양이었다.

“그래 웬 사람이라?”

“소인은 무명 무부(無名武夫)올시다.”

“날씨가 아무리 덥기로 옷을 입은 채 멱감으러 들어간담….”

“황공하옵니다.”

“무부라 하니 술잔이나 잘 하겠지. 여기 술이 있으니 한잔 하게. 물 속보다 술먹는 편이 더 시원하느니….”

이 말만 한 뒤에는 대신은 하인에게 눈짓하여 술을 주게 하고 자기는 다시 낚시를 물에 던졌다.

고요하고 잔잔한 강― 뱃전에 부딪치는 물소리만 찰락찰락 할 뿐이었다.

그날 밤 물에 빠져 죽으려던 사람은 장단대신의 사랑에 손으로 묵게 되었다. 본시 몸이 건강한 무부일 뿐더러 술을 적지 않게 먹은 그 사람은 밤에 곧 잠이 들었다. 깊은 밤 정신모르고 잘 때에 누구가 몰래 그 방에 들어와서 곤히 잠든 그 사람을 흔들었다.

좀체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심하게 흔들 때에는 아무리 깊은 꿈이래야 안 깰 수가 없었다.

“으―ㅁ.”

기지개와 함께 기다린 신음성을 발할 때에, 그의 아직도 잠에 취한 뺨에는 웬 사람의 수염터럭이 와서 문질러졌다.

“여보게, 여보게.”

단 두 마디― 그러나 이 두 마디의 효과는 놀랄 만하였다. 그 사람은 펄떡 일어났다. 뒤로 물러났다. 담벽이 막혀서 더 못 갔지 담벽만 없었더면 썩더 물러갈 것이었다. 꿈결같이나마 들린 음성은 틀림없는 이 댁 대감 장단 대신의 것이었다.

“정신들었나?”

“아이, 대감.”

뒤로 더 갈 자리가 없어서 망설이었다.

“조용하게. 내, 할 말과 듣고 싶은 말이 있어서 왔네.”

“아―이―밤―깊.”

마치 반벙어리였다.

“다른 게 아니라 아까 자네 취한 김에도 한두 마디 하데마는, 어째서 한창 좋은 나이에 물고기 양식이 되려 했어?”

“네….”

“부러 들으러 왔네. 여러가지 곡절도 있겠기에 남의 이목을 피해서 밤을 타서….”

때마침 우는 닭의 소리. 몇 홰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대가에서까지 하인의 기거도 안 들릴 적에는 자시 축시도 훨씬 지난 모양이다.

“네이….”

“마음에 있는 대로 해보아.”

“네이. 다름이 아니오라 청운에 뜻을 두고 고향을 떠나 왔읍더니 세상사가 마음대로 되니 않으와 대감 안목에까지 더러운 꼴을 뵈었읍니다.”

무과(武科)출신이었다. 벼슬을 얻어 하려 서울을 올라왔으나 올라온 지 수 년에 초사 하나도 얻어 하지 못하고, 대가에 운동하느라고 가산만 탕진하고 인젠 처자를 대할 면목도 없는 위에 먹어갈 도리도 없어서 드디어 마지막 결심을 하였던 것이었다.

그 사람의 말을 잠자코 다 들은 뒤에 잠시를 더 생각하고서 정승은 말하였다―.

“자네가 인제 살아서 벼슬자리까지라도 얻을 수 있다 치면 그게 뉘 덕인가?”

“소인은 감히 바라지도 못합지만 되기만 하면 외람된 말씀이오나 대감 은 공입소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네는 그 은공을 알아보겠나?”

“대감! 소인은 비록 초초한 무부오나 의리를 잊는 배덕한은 아니올시다.”

“맹서라는 것은 입에는 쉽고 행하기는 힘들세.”

“소인은 그래도 남아올시다.”

이 말에 대신은 다만 고개만 몇 번 끄덕이었다.

이튿날 이 무부는 기절할 듯이 기꺼운 일을 당하였다. 대감의 분부로써 편지를 한 장 가지고 병조(兵曹)로 병조판서를 뵈러 갔다. 병조판서는 장단 대신의 편지를 뜯어 보더니 즉각으로 이 무부를 홍화문 수문장(弘化門守門將)을 시킨 것이었다.

“네.”

막으려야 막을 수 없이 눈물이 눈에서 나왔다.

상경한 지 오륙 년, 적지 않던 가산을 다 탕진하고 뇌물을 써가면서 운동하여도 얻지 못하였던 벼슬을, 의외에 갑자기 얻게 된 것이었다. 무부는 너무 감겨되고 기뻐서 소리를 놓아 울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를 금치 못하게 하였다.

그 길로 다시 이 정승을 가 뵙고 감지덕지하여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벙벙거리는 것을 정승도 미소하며 굽어보았다.

“인제는 옷 입은 채 멱감지 않아도 되겠지?”

“대감 은공을 무엇으로 갚소리까?”

“자네는 꼭 갚을 생각으로 있나?”

“대감 말씀은 소인을 욕하는 것이올시다.”

“그러면 꼭 갚겠다는 말이지?”

“마음으로는 갚고 싶으옵지만 수, 부, 귀하신 대감께 무엇으로 갚소리까?”

“갚게 될 날도 오겠지.”

“그 날이 오기만 하면 소인은 대감의 시키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하겠읍니다.”

“수화를 피하지 않겠나?”

“이 변변치 않은 목숨이라도 바치겠읍거늘 하물며 수화리까?”

“목숨을 달래도 주겠나?”

“소인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소인의 생명이 아니옵고 대감 것이오니 어찌 사양하리까?”

“다짐두네.”

“네. 맹서하였읍니다.”

사실 의에 굳은 이 무부는 장단대신이 달라기만 하면 결코 생명도 사양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리하여 그는 창경궁(昌慶宮) 홍화문 수문장이 되었다.

당시 이 창경궁 안에는 왕(영종)의 총희 문상궁이, 태중(胎中)이라 하고 피접으로 옮겨 앉아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만삭이 되었다고 대조(大朝 ―慶德宮 대궐)로 궁액들이 연락부절하던 때였다.

그러나 세상에는 괴상한 풍설이 돌고 있었다.

문상궁이 태중이라는 것은 말짱한 거짓말이라는 풍설이었다. 당시 왕과 세자의 부자지간의 의가 좋지 못한 기회를 타서, 태중이라 하고 피접하여 있다가 어느 아이 하나를 구해다가 이것을 자기가 낳은 바 왕자라 하고, 장차 세자로까지 책립케 하여, 장래의 왕모가 되어 보려는 흉계에서 나온 음모라는 풍설이 세상에 떠돌고 있었다.

그 만삭이라 하여 대조와 창경궁이 들썩거리는 어떤날, 홍화문 수문장은 갑자기 장단대신 이 정승에게 불리웠다.

한참을 하인배까지 멀리 물리고 무슨 대감의 분부를 들었다. 대감께 하직하고 나올 때는 수문장의 얼굴도 저으기 긴장되었다.

그 날부터 수문장은 잠시를 홍화문을 떠나지 않았다. 대소변까지도 요강을 내다가 문간에 숨어서 일을 보았지, 문곁을 떠나지 않았다. 하루 세 끼의 음식도 반드시 문에서 먹었다. 어디서 구하여 왔는지 특제의 견고한 쇠를 밤에는 잠그고, 그 열쇠는 꼭 샅에 끼고 잤다. 말하자면 수문장의 눈을 피해서는 벌레 한 마리 창경궁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나흘이 지난 뒤에 한 개의 음식 담은 계자가 홍화문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문에 딱 버티고 섰던 수문장이 가운데 벌리고 나섰다.

“그게 뭐냐.”

“음식계자요.”

왕의 총희에게 시종드는 하인배니만치 수문장 따위는 눈에 두지도 않는 태도였다.

“뉘게 가는 게냐.”

뉘게? 참람된 이 말을 책망하는 듯이 흘기며 대답없이 그냥 들어가려는 것을 수문장은 양팔을 쩍 벌리고 막았다.

“귀가 먹었느냐, 입이 없느냐. 나는 이 문을 지키는 수문장―내 허락이 없이 이 문 출입을 할 분은 지존 한 분뿐이시다.”

산천이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였다.

저편은 이 호령에 주춤하였지만 그 뒤는 뽐내는 모양이었다.

“별일 다 보겠네. 안 들이면 돌아가지. 내가 돌아가면 목이 달아날 놈은 누구인가.”

그냥 돌아서려 하였다.

그러나 수문장은 돌아서는 것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어디를 돌아선단 말이냐. 썩 그 계자를 내려 놓아라.”

“안 들이면 안 들이지 별 참견 다 하려네.”

그냥 돌아가려고 한 발을 내짚을 때는, 수문장의 억센 손이 어느덧 그 어깨를 붙들었다.

“내려 못 놓겠느냐!”

“…….”

너무도 호기있는 호령에 얼혼이 빠진 모양이었다. 어름어름 하였다. 그러나 어름어름 할 동안 차차 얼굴이 창백해 가고 몸과 사지도 우물우물 떨리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보면서 수문장은 칼을 뽑았다. 뽑는 다음 순간은 칼은 음식 산 보자기로 내려쳐졌다. 그 칼을 도로 쳐들 때는 칼에서는 선혈이 뚝뚝 흘렀다.

수문장은 피흐르는 칼로써 보자기를 들쳤다. 그 보자기 속에는 난 지 겨우 이삼 일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갓난애의, 두 동강이로 난 시체가 놓여 있는 것이었다.

“응, 동자삼(童子蔘)이로구나. 어서 가지고 들어가거라.”

한마디 획 던지고는 수문장은 문을 비켜 서 주었다.

그러나 그때는 하인들은 벌써 어디로 도망쳤는지 그 근처에는 보이지도 않을 때였다.

“이 정승의 선견(先見)은 참 귀신이로구….”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수문장.

왕의 총회 문상궁에게 들어가는 음식계자를 막았으며, 그뿐더러 그 하인들을 호령하여 쫓고, 나중에는 칼부림까지 한 죄― 이만한 죄목이면 제아무리 삼공육경이라 할지라도 능지처참은 면할 바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일개 무명 수문장이 저질러 놓았으니 생명이 몇 개라도 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의 이 사건은 암암리에 삭아버렸다.

문상궁 자신까지도 발을 구르며 호령하였다. 웬 고약한 놈들이 자기를 모함하려고 그따위 흉계를 꾸미어 낸 것이지, 그것은 자기의 아는 바가 아니라 하고, 그 놈들을 얼른 잡도록 채비하라고 형조에까지 당부가 급급하였다.

단 한 가지 이상한 일은, 태중이요 만삭이라던 문상궁이 해산하지 않고 배가 작아지고 어찌된 셈인지 왕자는 뱃속에서 사라져 없어진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