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사담집 5/신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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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가 옥에 갇힌 해에 세상에 나고, 아비가 옥에서 나오는 날에 죽었으니, 이런 일이 어디 있으랴. 옛날 효도에 순(殉)한 자도 이만한 자 없으니 슬프고 가련하다."

대제학(大提學) 홍양길(洪良吉)의 찬에 이런 것이 있다.

그러면 이것은 어떤 사건에 관한 것인가. 여기 얽힌 비참한 이야기를 이하에 적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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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충주 노은동(老隱洞)은 이 속세에 쉽지 않은 안온한 동리였다. 비가 오면 비설거지나 하노라고 들썩거리고, 뉘 집 잔치나 있으면 그 때문에 욱적거리고 —그런 이외에는 아무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아주 안온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그 동리에 홀연히 한 가지의 괴변이 생겨났다.

살인 사건이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은 기록할 필요도 없어서 약하여 버리거니와 그 동리의 한 중늙은이가 피살을 당하였다. 피해자는 혼자 제 밥벌이나 하며 살던 사람이라, 누구에게 원한 진 일도 없고, 재산이 없던 사람이라 강도의 소위라고도 볼 수 없고, 말하자면 무슨 까닭의 살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온 동리는 욱적하였다. 안온하고 평화롭던 동리는 이 때문에 갑자기 소란하여졌다. 그리고 지금껏 아무 사건도 없던 — 지금 말로는 모범동리였는지라, 이 사건은 관가에서도 중대하게 보았다. 그리고 범인을 잡아내려고 눈이 벌겋게 되어 돌아갔다.

그런데 살인의 단서가 잡히지 않았다. 단 한 가지 그 이웃집에 있는 홍선보(洪宣輔)라는 사람과 이번의 피해자가 4, 5개월 전에 말다툼을 하였다 하는 점과, 홍선보의 집과 피해자의 집이 담장 하나 격하여 이웃하여 있고 담장만 넘으면 넉넉히 들어갈 수 있다 하는 점으로, 홍선보를 가장 유력한 혐의자로 볼밖에 없었다. 그래서 흥선보는 즉시로 잡혀서 옥에 갇히었다.

그러나 그 동리 사람은 누구나 홍선보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사람인 줄 안다. 사람도착할 뿐더러 살인할 만한 대담성도 없는 사람이다.

관가에서홍 선보를 잡아 가두기는 하였지만 살인한 증거가 없을 뿐더러 눈치로 보아서 살인함직하지도 않고, 살인할 만한 혐의도 없을 뿐더러, 더욱이 그 동리의 평판으로 보아도 살인할 사람이 아니므로 무죄한 사람으로 짐작은 갔다.

그러나 관청에는 관청의 위신이 있다. 한번 잡았던 사람을 싱겁게 백방(白放)하기도 쑥스러웠다. 그 위에 진범인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더욱이 당시의 관가라는 것은 변변치 않은 일, 그 위에 뇌물이라도 없는 사건은 웬만하여서는 처리하지를 않았다.

그런데 불행히 홍선보는 집안이 가난할 뿐더러 관가에 연줄이 없어서 교섭할 길이 없었다. 연방 탄원할 일도(一道)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 몸이 청백하다는 것은 짐작은 갔지만, 그냥 옥에 갇힌 채 백방될 기약이 없었다. 여기서 한 개의 비극의 씨가 맺어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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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보의 아내는 태중(胎中)으로서 남편이 입옥할 때에 일곱 달째였다.

선보가 입옥한 지 석달째 되는 때에 선보의 집에서는 한 옥동자가 생겨났다.

선보의 맏아들이었다 동시에 홍씨 일문의 장손이었다. 그 출생을 일문이 모여서 경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수심에 쌓인 이 집에서는, 장손이 생겨났으나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

옥중의 원인(寃人) 때문에 일문은 근심 중에 있었다.

일문의 장손이 생겨났지만 그것을 돌볼 사람은 그의 어머니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근심을 모르는 것이란 행복스런 일이다. 아버지는 옥중에 갇혀서 그 죄명이 살인죄라 죽을지 살지 모를 형편이로되,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이리하여 초칠일, 삼칠일, 칠칠일 하여 어느덧 백일 이 되었다.

봉사손(奉祀孫)의 백일이라 그래도 그렇지 못하여, 문중을 모아놓고 빈약한 잔치를 치른 날.

그 날 잔치도 이렁저렁 지나고 문중이 각각 돌아갈 때에, 어린애의 어머니는 몰래 어린애의 삼촌을 꾹 찔러서 멈추어 두었다. 그리고 다 돌아가서 집안이 고요하게 된 뒤에 형수와 시동생은 마주 앉았다.

"아주머니.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이렇게 시동생이 물을 때에, 한참 대답을 못하고 머리만 수그리고 있던 형수가 겨우 머리를 들었다. 어언간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득하였다.

"네. 다름이 아니외다. 차기(次奇)를 좀 맡아주십쇼."

"네?"

동생은 깜짝 놀랐다. 놀란 눈으로 형수를 쳐다보았다.

"문중을 위함이외다. 또 이 아이를 위함이외다. 서방님이 맡아서 길러주시요. 그리고 친자식이라 하고 근본은 당분간 감추어 주세요."

"아주머니!"

"여기서 아무리 기다려야 끝이 안날테니까 나는 서울로 가서 직접 상감님께 소원을 해보겠소이다. 데리고 가자니 못할 일이요, 죽여 버리자니 그래도 홍씨 문의 봉사손이 아니오니까. 서방님께 부탁합니다."

"그러나 아주머니께서 아낙네가 혼자서 서울을 가시 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네. 그것도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되건 안 되 건 힘껏은 써보고 일의 성불성(成不成)은 천운으로 돌릴밖에야 어디 있겠소?"

삼촌도 한참을 생각하였다. 그런 뒤에 아주머니의 의견대로 하기로 하고 어린애는 마침 숙모도 젖이 넉넉한지라 데려다 기르게 의논이 되었다.

이리하여 차기는 삼촌의 집에서 길러나고 차기의 어머니는 남편을 구해보려 서울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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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0년. 당시의 관가의 상투에 벗어나지 못하여 살인혐의 죄수 홍선보는, 생각날 때마다 한번씩 잡아내다가 고문을 하고는 다시 옥에 가두어 버리고 끝장날 기약이 없었다.

서울로 직소(直訴)하러 올라간 차기의 어머니도 시골 여편네가 직소할 길을 알지를 못하여 그저 늘 대 귈 근처에 방황만 하고 소망을 달치를 못하였다. 형조에는 누차 소원을 드려 보았지만 결련(結連) 없이 들어오는 촌부(村婦)의 소원은 하인들의 신 등 매는 노끈으로 변하여질 뿐 사옥(査獄)을 하는 일이 없었다 그동안 기괴한 일이 어런 차기의 몸 위에 흔히 생겼다.

차기는 자기의 삼촌을 친아버지로 알고, 가간하나마 거기서 귀염을 받고 자라고 있었는데, 어린 차기가 갑자기 때때로 아무 이유도 없이 눈을 뒤솟고 넘어져서는 와들와들 떨며 한참씩을 정신없이 지나고 하였다.

의원에게 보여도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혹은 지랄병이 아닌가도 하여 보았지만 지랄도 아니었다.

명색 모를 병이었다.

그런데 후일 우연한 기회에 알아보니, 차기의 아버지 선보가 잔가에서 고문을 당하는 날마다 이 병증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그 눈치를 채고 그 뒤에 유심히 보매, 차기가 이름 모를 병에 기절을 한 날마다 옥중에서는 반드시 그의 아버지의 고문이 있고 하였다.

그래서 문중에서는 차기를 '하늘이 낸 효자'라 하였다.

차기는 제 삼촌을 아버지로 알고 숙모를 친어머니 로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친아버지가 고난을 겪는 날에는 저절로 병이 나고 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10년, 옥중의 형을 공궤(供饋)하노라고 차 기의 삼촌의 집도 드디어 파산을 하였다.

그러나 옥중 원수(寃囚)는 언제 그 원을 벗을는지 기약이 없었다. 이제는 관가에서도 그 죄수의 존재까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신관 교체되기도 4, 5차, 홍선 보에 관한 기록조차 모두 도배지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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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0턴이 지났지만 놓여날 기약은 없고 아버지의 얼굴은커녕 존재조차도 모르는 아들 차기는 어언간 열 살이 되었다.

옥중의 10년!

10년이면 산천도 변한다 한다. 보통 사람도 10년 뒤에는 다른 사람같이 될 것이어늘 하물며 옥중의 선 보랴. 백방될 기약은 없는 위에 나이는 벌써 60을 넘 었다 이제는 어느 때 어떻게 될지 예측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일문은 모여서 의논을 하였다. 그 결과로서 차기에게 비로소 사건의 내막을 일러주기로 하였다.

일문이 모인 가운데서 삼촌이 차기를 불러놓고,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너의 삼촌이지 아버지가 아 니요, 너의 아버님은 원죄(寃罪)로 네가 세상에 나기 석 달 전에 옥에 갇히어서 아직도 청백한 몸이 못 되고 옥수(獄囚)로 계신다. 어머님께서는 아버님의 원죄를 직소하려고 상경하셔서 10년이 되는 지금까지 뜻을 못 이루고 계시다 여러 가지 형편으로 해방되시기까지 비밀히 해두려 했지만, 아버님은 벌써 연로하셔서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기에 너한테 이 말을 하는 바다."

할 때에 나이는 비록 아직 철모를 열 살이라 하지만 지독히 영특한 차기는, 자기의 비밀을 처음으로 알고 거기서 통곡을 하였다.

한참을 통곡을 한 뒤에 차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 삼촌의 집에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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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의 집을 나간 차기는 이튿날 읍내에 몸을 나타내었다.

"아버님!"

생후 처음의 대면인 부자의 상봉에 옥사쟁이도 차마 잡아떼지 못하고, 돌아서서 못 본 체하였다.

"아버님."

"오, 너더냐? 세상에 났단 말은 들었지만 보기는 처음이로구나. 잘 자라느냐?"

"아버님!"

보매 10년 죄수살이에도 여위고 또 여윈 아버지 가슴이 막히고 눈이 어두워서 '아버님' 한마디의 소리밖에는 다른 말은 하지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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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부터 차기는 삼촌의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새벽에 깨어서는 곧 산에 올라가서 섶을 하여다가 팔아서, 몇 푼 되지 않는 것으로 옥중 아버지를 공궤하였다.

밤에는 옥창(獄窓) 밖에서 잤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한결같이 옥 밖을 떠나지 않았다.

겨울에는 옥사쟁이가,

"저것이 어린것이 아마 어젯밤에는 얼어죽었으려니."

하고 나와보면 그래도 죽지 않고 오들오들 떨면서, 섶을 주우려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옥사쟁이도 그 정성에 감복하여, 제 힘으로 되는 일 이면 선보를 백방하고 싶었다. 그러나 상부의 명령이 없이는 못할 뿐더러 잘못하다가는 자기의 밥줄까지도 끊어지기 쉽겠으므로 그저 못 본 체하고 내버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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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내 차기의 어머니가 서울서 객사를 하였다.

10여 년간을 두고 남편을 구하고자 온갖 애를 다 쓰다가 뜻을 못 이루고, 어떤 날 그 날도 역시 형조 밖을 비칠거리다가 차차 몸이 노곤하여져서 그 자리에 넘어져서 그냥 죽어버린 것이었다.

굶어 죽었다. 먹을 것이 없어서 10여일간을 물만 겨우 얻어먹다가 드디어 죽어버린 것이다.

이 소문이 어린 차기의 귀에 들어올 때에, 차기는 너무도 불공평한 하늘의 조화를 원망하였다.

굶어 죽어? 하늘 나는 새도 먹을 것이 있고 물고기 도 굶어죽는 일은 없거늘…… 더욱이 대가에서는 나 귀가 약식을 먹고 고양이가 쇠고기를 겨워하거늘……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러나 이 일은 차마 옥중의 아버지께는 말할 수가 없었다. 어찌 말하랴. 그렇지 않아도 마음 아프실 아버님께 이 일을 알게 하면 그 심적 번뇌로 당장에 세상 떠나실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냥 있을 수도 없었다. 객사하신 어머님의 시신도 시신이려니와, 그래도 일루(一縷)의 희망을 서울에 붙이고 있었거늘 이제 어머님이 떠나시니 누가 서울서 이 원한을 호소하랴, 그 날 밤을 차기는 잠을 안 자면서 생각하였다. 생각한 끝에, 드디어 자기가 서울로 올라가기로 하였다.

옥에 계신 아버님의 봉양도 봉양이려니와 그보다도 더욱 중한 일은 아버님의 설원(雪)이다. 그 사이 10여 년간을 어머님이 하시다가 못하신 유업을 물려서 할 자는 이 세상에 자기 하나밖에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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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옥중의 아버지는 아들이 섶을 팔아가지고 어서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그러나 조반 때쯤이면 오던 아들이 조반 때는커령 점심때까지도 오지 않았다.

선보는 가슴이 선뜻하였다. 무슨 불행이 생긴 것으로 알았다.

그래도 행여하고 이튿날을 또 기다렸다. 그러나 이튿날도 그의 아들은 오지 않았다.

사흘 나흘 거의 발광할 듯이 아들을 기다렸지만 아들은 끝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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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에서 늙은 아버지가 이렇듯 기다릴 동안, 그의 아들은 길을 재촉하여 서울로 올라갔다. 상경하는 즉시로 어머님의 시체를 얻어서 다시 정성스럽게 장사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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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땅땅.

놀랍게 울리는 신문고 소리.

이 소리에 관원이 놀라서 달려나와 보니 신문고를 두드리는 것은 열 두세 살 난 소년이었다.

관원은 소년을 불러들이어서 그 사연을 물었다.

듣고보니 그 사이 10년간을 웬 헙수룩한 여편네가 늘 하던 그 소리였다.

무슨 대사변이라도 있는가 하고 불러들였던 관원은, 이 변변치 않은 사건에 눈살을 찌푸리고,

"알아볼 테니 나가서 하회(下回)를 기다려라."

하고 소년을 내보냈다 그러고 이 말은 이 소년의 죽은 어머니가 그 사이 10년간을 수백 번을 듣다가 낙담하고 죽은 그 소리였다.

그러나 소년은 나와서 기다렸다.

사흘을 기다리다 못해서 또 신문고를 두드렸다.

"사실(査實)해 볼 테니 하회를 기다려라."

또 같은 대답이었다.

또 며칠 뒤에 또 두드렸다. 또 같은 대답을 들었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지는 소년의 마음 —옥중의 아버지는 어찌 되었나? 자기가 홀연히 없어지기 때문에 얼마나 애통해 하시나.

관가에서는 사실해보겠다 했으니 지금은 얼마쯤이 나 조사를 했나.

시골로 내려가자니 여기가 마음이 놓이지 않고, 여기 있자니 시골 옥중의 아버지가 걱정된다.

마음만 조급하였다. 두 조각으로 가를 수 없는 몸뚱이가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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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1년, 2년.

세월은 여전히 흘렀다. 마음을 두 곳으로 갈라붙이고 초조히 지나는 이 소년이 어느덧 열 네 살이 되었다.

그 해는 지독히도 가 물었다. 봄내 비가 안 오고 지 금 하지(夏至), 망종(芒種)이 지났지만 그냥 비는 올 듯도 않았다.

이해의 농사는 전멸할 모양이다. 농촌의 민심은 흉흉하여졌다.

"동해에 한 원부(寃婦)가 있으면 3년을 하늘이 가문다."

조정에서는 하늘이 너무도 가물므로 상감께서도 근신하시는 뜻으로 감찬(減饌)을 하시고 정전(正殿)을 피하시고, 형조(刑曹)에 명하여 원옥(獄), 의옥(疑獄)을 조사하게 하셨다.

그 어떤 날이었다. 예에 의지하여 대궐 밖에 배회하던 차기 소년은 저편에서 오는 어느 대관(大官)의 행차를 보고, 역시 소원을 하려고 그리고 달려갔다. 가 다가 중도에 넘어졌다. 기운이 진한 것이었다. 굶기도 굶었거니와 2, 3일 전부터 무슨 병에 걸린 모양으로 몸이 언짢기가 짝이 없었다.

일단 넘어져서 정신까지 잃었던 소년은 누군가가 흔드는 바람에 번쩍 정신을 차렸다.

보매 정신 잃었던 기간을 매우 짧았던 모양이라, 아까 자기가 향하고 가던 행차가 눈앞에 멈추어 있다.

그리고 초헌(軒) 위의 대관이 자기를 굽어보며, 구종(驅從)이 자기를 흔드는 것이었다.

소련은 벌떡 꿇어 엎드렸다.

"소원(訴)할 일이 있사옵니다."

"응? 소원이라? 어떤 일이냐?"

초헌 위의 대관의 말이었다.

소년은 그 사이 수년간을 몇 십, 몇 백 번을 입밖에 내기 때문에 이제는 암송하다시피 된 이야기를 쭉 늘어놓았다.

그 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던 대관은 다 들은 뒤에,

"14년간을 그냥 두담."

혼잣말로 이렇게 말하고 소년에게,

"응. 나는 형조판서(刑曹判書) 윤동섬(尹東暹)이다.

내가 안 이상에 유죄 무죄간 명백히 할 테니 그리 알아라."

한다.

차기 소년은 상경한 지 3, 4년 대관에게 호소하기 몇 백번, 이번에 처음으로 책임 있고 믿음성 있는 대답을 들었다.

"대감. 언제쯤이나 일의 결말이 나리까? 일각이 여삼추로소이다."

"응. 오늘로 성상께 주달(奏達)해서 명일로 충청 안찰사에게 전교합시도록 하면 3, 4일내로 결말이 나리라."

그리고는 행차를 재촉하여 입궐하는 형판의 뒷모양을 바라보며 접할 때에, 소년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윤판서의 뒷모양이 대궐 안으로 사라진 뒤에 소년은 발을 돌렸다.

이제 무엇보다도 급한 일은 충주로 달려가는 것이다. 이미 14년 전의 옥사로서 기록이 없어진 사건인지라, 안찰사에게 사실령(査實令)이 내릴지라도 사실될지가 의문이었다. 어서 충주로 내려가서 이번은 안찰사에게 탄원을 하여 일을 바로 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소년은 즉시로 충주로 길을 더듬었다.

서울서 충주가 3백리였다. 그 3백리를 소년은 내내 달음박질로 내려가려 하였다.

이렇게 전속력으로 달려가던 소년은, 중도에서 불행히 넘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2, 3일 전부터 기미가 보이던 변 —두창(頭瘡)이 있다—이 이번 급격한 심적 긴장으로 갑자기 더 하였다.

병석에 넘어진 소년.

길에서 넘어진 소년을 그 근처의 농부가 처음에는 승장으로 보았다가 아직 숨이 통하는 것을 발견하고 집으로 업어 가지고 와서 간호한 결과 겨우 다시 정신이 들기는 들었다.

정신은 들었다. 그러나 몸은 이제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음은 급하고 몸은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엉엉 우는 소년의 정경에는 농부의 집안도 같이 눈물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만 이틀을 농가에 넘어져 있던 소년은 사흘째 되는 날 몸을 조금 움직여보고 능히 움직일 수 있으므로 또 길을 떠나려 하였다.

친절한 농부 내외는 소년을 길을 못 떠나게 하였다.

그러나 소년은 농부의 친절을 그냥 받을 수가 없었다.

그 사이 할 수 없이 누워있던 것도 가슴이 저리거늘 이 이상이야 어찌 더 있으랴. 소년은 농부의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일어나서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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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휘휘 도는 것 같았다. 땅이 발 짚을 때마다 꺼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 걸음 지체하면 그만치 아버지 생명의 위험률이 많아지는지라 소년은 나지 않는 용기를 억지로 뽑아내며 길을 갔다.

밤까지 새워서 걸었다. 그리고 이튿날 평명(平明)에 드디어 충주읍내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소년의 걸음이 조금 늦었다. 어명에 의지하여 안찰사는 홍선보의 죄상을 조사하여 보았지만, 벌써 14년 전 일로 상고할 바가 없고 유죄 무죄를 판정할 수가 없으므로 그 뜻으로 성상에 주달을 한 뒤에 소년이 도달된 것이었다.

안찰사도 차기 소년의 효성과 정성을 기특히 여겼으나, 일이 이미 그렇게 된지라 할 수가 없어서 소년 더러,

"이제 여기서는 할 수 없으니 다시 상경해서 직소하고 성은(聖恩)이나 바라거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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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다시 돌아섰다.

여기까지 온 이상에는 옥중의 아버지를 잠시나마 뵙고 싶은 생각이야 한량이 없었지만, 시각이 바쁘므로 그도 못하고 그 길로 돌아서서 다시 상경의 길을 떠났다.

심로(心勞)와 긴장과 피곤과 병에 지쳐서 거의거의 죽게된 소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일명(一命)을 구 하기 위하여 없는 기운을 내어서 다시 서울길을 달음박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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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아직 기운이 든든하였으나 체력이 당할 수가 없었다.

소년은 자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였다. 충주읍을 떠난 기억밖에는 다른 일은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가 정신이 겨우 약간 들은 때는, 그는 충주서 3 백리, 서울 대궐 앞으로 쓰러져 있던 것이었다. 소년의 곁에는 웬 노인이 하나 있었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여기가 육조 앞이로다."

"대궐?"

거기서 비로소 알았다. 자기가 서울을 향하여 충주를 떠나다가 읍외에서 혼도(昏倒)하였다. 그때 마침 무슨 장사차로 서울로 가던 노인이 소년을 발견하였다. 노인이 이 소년을 가엾게 여겨서 간호하고 물을 먹이고 약을 먹이어 보았으나, 소년은 종내 정신이 들지 못하였다.

정신은 못 차리나 혼미한 가운데서 헛소리를 연방 한다. 그 헛소리를 종합하여 보건대 어서 서울을 가야 겠다는 말과 아버지를 구해내어야겠다는 말이었다.

노인은 읍내에서 차기 소년이 아버지를 위하여 노력한다는 소문을 들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이 소년이 정녕코 차기 소년인 줄을 알고 자기의 나귀에 태우고, 자기는 걸어서 서울까지 와서 대궐 앞에 내리어 놓고, 소년이 정신 들기를 기다리던 차이었다.

이 노인의 이야기를 다 들은 소년은 감사하다는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려 하였다. 그러나 입을 벌리려다가 또다시 혼미하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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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다시 정신을 잃었던 소년은 나흘 뒤에 전신이 지독히도 쑤시는 것을 느끼면서 겨우 정신이 들었다.

정신이 들면서 보매 자기가 누워 있는 곳은 어떤 집 방이요, 일전의 노인이 곁에 앉았다가 소년이 정신 드는 것을 보고 오는 것이었다.

소년은 정신이 드는 참에 다른 말을 다 제껴놓고 노인에게,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되셨습니까?"

고 물었다.

거기 대하여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야, 기뻐해라. 살아나셨다."

"에?"

"네 효성이 성청(聖聽)에 들어서 지금쯤은 백방이 되셨으리라."

소년은 벌떡 일어났다.

"녜? 그— 그— 그건 아마 저를 속이 시는 말씀이시지요?"

노인은 무슨 종이를 소년에게 보였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느냐. 이게 판사(判辭)로다.

아마 네가 글을 모를 테니 내 읽을 게 들어보아라."

노인이 읽는 판사, 그것은 분명히 홍선보를 백방을 한다는 것이었다.

소년은 노인의 읽는 판사를 고요히 다 들었다. 들은 뒤에 흐늘흐늘 일어섰다. 몸의 중심을 못 잡았다. 얼굴이 창백하여졌다. 노인이 보고,

"어디 가느냐?"

하여도 소년은 대답도 않고, 몸의 중심을 잡는 듯이 잠시 손을 허공에 저으며 비칠거리다가 퍽석 넘어졌다.

"아이구, 아버지가 오셨구려."

허공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

노인은 당황하여 소년을 흔들었다.

"야, 차기야, 차기야."

"아버지— 아버— 압—."

"야, 정신을 차려라."

그러나 소년은 정신을 못 차렸다. 뿐만 아니라 허공을 쳐다보던 소년의 눈동자가 차차 눈가죽으로 굴러 들어갔다.

"야— 야—"

망지소조(芒知所措)하여 노인이 소년을 흔들 때는 드디어 소년의 숨소리까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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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이 소년은 황천의 길을 떠났다.

아비가 옥에 갇힌 뒤에 세상에 나서, 아비가 옥에서 나오는 날 죽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