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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사담집 5/삼십년의 독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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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도에서는 홍경래의 난리로 세상이 불끈 뒤집히는 동안 전라도 어떤 전라도 어떤 조그만 산촌에서는 평화로운 활극 하나가 발생되어, 지금까지도 노인들의 이야기거리로 입에 오르내린다.

춘향과 이도령으로 이름있는 남원읍을 상거한 삼십리 밖에 교룡산이라 하는 그림과 같이 아름다운 산이 있다. 그 산을 넘어서 인주골이라는 아늑한 산촌이 있다.

이야기는 이 마을에서 생긴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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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주골에 박보패라는 처녀가 있었다. 나이는 열여덟살, 소위 떠오르는 보름달과 같다고 형용하고 싶은 실하고 아담한 처녀였다.

작다란 산촌의 처녀라 통 내외 없이 나다니므로 그 근처에서는 보패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보패를 보는 사람마다 탐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늙은이는 늙은이대로 며느리를 삼았으면 하여 탐내고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마누라를 삼았으면 하고 탐내어, 이 보패의 존재라는 것은 아무 변화가 없는 아늑한 산촌에 一점의 긴장미를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보패에게는 벌써 주인이 있었다. 읍내 어떤 집에 며느리로 주기로 벌써부터 부모끼리 작정이 되어 있었다.

보패도 그것을 안다. 알므로 이 얌전한 처녀는 자기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기가 어떻게 처세를 하여야 할지를 스스로 마음에 작정하고 믿는 바대로 행하였다.

누가 무에라던 그는 눈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유혹의 손길인들 적었으랴만 이 얌전한 처녀는, 그런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마음을 두지도 않고 지났다.

어서 혼인날이 이르과저. 아직 누구에게 완전히 매운 몸이 아니라 이렇듯 성가시게 들어오는 유혹이매, 어서 바삐 내 주인에게 완전히 결박된 몸이 되과저.

보지도 못한 임이거니 어떻게나 생겼을가 이야기에 듣기는 씩씩하고 사내다운 임이라니 하루 바삐 그 임과 마주 즐길 세월이 오과저.

이 처녀는 고요히 자기의 혼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룡산 봉우리에 날아드는 두루미의 떼를 바라보며 또는 안개 피어있는 앞 벌을 바라보며 이 처녀는 혼자서 보지도 못한 임의 면영을 이리저리 생각해 보다가는 얼굴을 붉히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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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혼인날이 거진 가까운 어떤 초가을 날이었다.

『우리 집의 물도 인젠 며칠을 더 못긷겠구나.』

그날도 우물에서 물을 한 동이 길어 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서 빙그레 웃을 때에 누가 자기를 유심히 보고 있는 듯한 기색이 있으므로, 무심코 곁눈으로 그곳을 보았다.

곁눈으로 잠깐 보았다. 잠깐 보고는 곧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무심히 지내버렸다. 무심히 지냈는지라 곧 잊어버렸다.

그러나 二三일 뒤에 일이 좀 벌어졌다. 다른 것이 아니라 어떤 곳에서 새로히 혼담이 생긴 것이었다.

읍내 어떤 군노였다. 홀아비로 있으니 달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정혼한 처녀라 그냥 좋은 말로 거절하였다. 거절하였더니 그냥 부득부득 달란다.

할 수 없이 마지막에는 이 보패는 모처에 이미 정혼을 했으니, 줄 수 없소 하여 거절하였다.

이만치 거절하였으면 인젠 안 오려니 했더니 매파는 그 뒤에 또 왔다.

『정혼이야 파혼하면 그뿐이 아니오?』

하는 것이었다.

시골 농가라 군노의 비위를 거슬리는 것은 후환이 있을가 두려웠다. 그래서 부모는 미심질로 보패에게 의향을 물어보매, 보패는 두 말도 없이 딱 잡아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그 군에게서서 온 매파에게 사연을 잘 말하고, 이러이러하여 할 수 없으니 연분이 없는 줄 알고 잊어버리라고 타이르듯이 하여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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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모레가 잔치날이라고 색씨 집에서는 한창 잔치 준비에 분망할 때에, 놀라운 소식이 경사의 집에 뛰처 들었다.

신랑이 횡액으로 죽었다 하는 것이었다.

밤에 칼 맞아 죽었는데 누구의 소위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직 열여섯 난 총각이며 성질도 온순하던 사람이매 누구에게 원한 질 일도 없는데 뜻밖에 이런 횡액을 당한 것이었다.

그때 마침 자기의 잔치 준비라고 처녀의 마음에 부끄러우면서도 내심에 기뻐서 서둘고 있던 보패는, 이 놀라운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석 하였다.

이게 웬일이냐.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껏 자기의 온 정신으로서 사모하던 그 사람이 행복된 날을 눈앞에 두고, 갑자기, 그것도 비명에 세상을 떠나단 웬일이냐. 눈이 아득하여진 그는 방안으로 뛰처 들어와서 이불을 쓰고 누워 앓았다.

부끄럼도 느낄 경우가 아니었다.

『야. 너 어디 아프니?』

『야. 의원이라도 불러 보잖느냐?』

속으로 짐작이 안 됨은 아니로되 그래도 근심스러워서 딸의 머리맡에 앉아서 연방 이렇게 묻는 어머니의 말에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남 보기에 마음으로 부끄러웠다. 출가 전의 처녀가 정혼했던 사람이 죽었다고 이렇게 쓰고 눕는다는 것이 열적고 부끄러웠다. 그러나 마음이 너무도 아프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일어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누워있는 동안 보패는 연하여 기괴한 환상을 보았다.

그의 눈에 연하여 떠오르는 것은 十여일 전에 잠깐 곁눈으로 본 군노의 모양이었다. 왜 눈에 떠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에 그렇게 무심히 보았더니만치, 그 즉시로 잊어버렸던 얼굴이었다. 그런데 일단 잊어버렸던 얼굴이 다시 기억에 소생되어 잠간 본 그 얼굴이나마 구석구석 그의 세세한 점까지 다시 모두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것이 무슨 큰 죄나 되는 것 같아서 지워 버리려고 머리를 힘있게 젓고 눈을 감고 하였지만 그래도 연방 떠올라서 성가시게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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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행의 집에 불행이 있은 이튿날 매파가 찾아 왔다.

처녀는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가, 밖에서 나는 매파의 소리에 이불을 벗고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와 매파와의 이야기, 소근거리는 소리라 똑똑히 다 들을 수는 없었지만 역시 군노에게서 온 매파가 분명하였다.

『이런 좋은 혼처가 어디 있다구. 얼른 주어 버리우.』

매파는 연하여 권하는 모양이었다.

『인젠 주인 없는 몸.』

『오직하면 또 보내겠소?』

『새서방도 여기 혼인 못 하면 죽고 말겠다고 쓰고 누었다우.』

연하여 이런 말로 어머니를 꾀이는 모양이였다.

어머니는 끝끝내 거절하는 모양이었다.

처녀는 귀를 기울이고 듣다가 기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그 날 매파는 종내 성공을 못 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매파는 그 뒤에도 하루 건너큼 꼭 읍내에서 이 인주골을 찾아왔다. 참 조르기도 근기 있게 졸랐다. 매일 와서는 같은 말로 꾀이고 같은 말로 거절을 당하지만, 그것을 탄하지 않고 또 와서 조르고 하였다.

이리하여 졸리기 수십 차, 어떤 날 밤 깊이 어머니와 나란히 누워서 자려다가 보패는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

『왜? 안 자느냐?』

『……….』

『왜 그러느냐?』

『어머니. 나 갈가 부.』

『응?』

어머니는 그 뜻을 알아채지 못하였다.

『무얼?』

『저 거시키 중매 할머니 가라는데.』

처녀는 말을 더듬었다.

『응?』

어머니는 놀랐다.

어머니로서도 짐작 못하는 배가 아니다. 그렇듯 마음이 심한 애가 어떻게 이렇듯 쉽사리 마음이 돌아 섰을가. 딸의 마음을 잘 아는 어머니라 감히 군노에게 시집을 가라고 권치 못하고, 늘 거절해 왔지만 과년한 딸을 가진 어머니의 마음은 좋은 자리만 생기면 주고 싶었다.

저쪽이 군노라 하나 자기네 집안도 보잘것없는 빈농의 집안이라, 딸이 절대로 안 갈 줄 알고 거절해 오던 판인데 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고 보니 의외로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음으로 도리어 기쁘게 여겼다. 그만하면 맞잡히는 혼처니 딸의 승락만 있으면 주어 버릴 것이다.

이리하여 보패는 그 군노에게 시집을 가기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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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이 벼르던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여온 박가(군노)의 기쁨은 여간이 아니었다.

보패도 아주 만족한 듯이 보였다. 무게 있고 단아하던 처녀이더니만치, 기쁘다고 날뛰거나 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기뻐하는 양이 분명하였다.

보패는 훌륭한 그 지어미 구실을 하였다.

쓴일 고단한 일 아픈 일을 모두 탓하지 않고, 자기의 살림에 아주 만족한 듯이 다닥치는 일을 모두 척척 치러 나갔다.

다만 한가지 박가로서 약간 불만한 점은 새색시의 얼굴에 화기가 부족한 것이었다. 기쁜 일이 있거나 좋은 일이 있으면 약간 빙그레 웃기는 하지만 통상시에는 어디인지 수심을 띈 듯한 검은 그림자가 늘 나타나 있었다.

『여보게 마누라. 좀 얼굴을 쫙 펴고 웃어보지.』

박가가 제 흥에 겨워서 이렇게 얼려 대면 아내는,

『원체 못난 얼굴이라…….』

하고는 그냥 적적한 듯이 씩 웃고 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꿈과 같은 신혼의 세월은 흘러갔다.

반년, 열 달, 아내의 맛이 은근하니만치 언제까지는 염증나지 않는 아내였다. 박가는 이 아내를 얻고 온 천하나 얻은 듯이 기뻐하였다.

이렇듯 꿈과 같은 1년이 지난 뒤에 아내에게는 태기가 있었다.

박가는 어쩔 줄을 모르듯이 기뻐하였다.

『허 이놈이 인제 어서 세상에 나와야지. 이놈이 될지 이년이 될지.』

박가가 너무도 기뻐서 아내의 배를 두드리며 이런 농담이라도 하면 아내는 몸을 소스라쳐 놀라고 하였다.

태기가 있은 뒤부터 아내의 얼굴은 나날이 초췌하여 갔다. 놀랍게 차차 초췌해 가는 양을 보고 박가는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이란 음식을 모두 구하여다가 아내에게 받치고 하였지만, 아내는 아무것도 달갑지 않다는 듯이 모두 사양하고 얼굴만 더욱 창백해 가는 것이었다.

아내는 무엇을 번민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늘 한숨이 그의 입에서 새었다. 남편 몰래 우는 일도 흔히 있었다.

태기가 있은 뒤부터는 가뜩이나 수심 끼었던 아내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남편이 나가면 늘 아내는 집에서 울고 있었다.

울면서도 남편 기다리노라고 초조해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남편이 돌아오면 몸서리치며 남편을 피하는 아내였다.

어떤 날 아내는 남편이 나간 뒤에 반다지를 뒤적이다가 명주 부스러기를 얻어내어 무심코 갓난애의 저고리를 말라보려고 만지적거렸다. 조금만 만지적거리다가 스스로 얼굴이 창백해지며, 그 감을 구겨서 발치로 집어 던졌다. 그런 뒤에 안타까운 듯이 자기의 배를 주먹으로 꽉 쥐어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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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기대와 아내의 불쾌 아래서 뱃속에서 생장하던 어린 생명은 어이 된 까닭인지 여섯 달 만에 광명한 세상을 보지 못하고 그냥 사라져버렸다. 낙태가 된 것이다.

박가는 이때에 너무도 기괴한 일을 보았다. 낙태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아파하던 아내가 핏덩이를 낳은 후에 겨우 정신을 수습하는 순간에, 아내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

박가가 아내를 맞아온지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아내의 밝은 얼굴을 보았다.

『후!』

하니 기다랗게 숨을 내어 뿜으면서 눈을 뜰 때에, 안해의 얼굴에 나타난 그 명랑한 미소.

그러나 그 명랑한 미소도 한순간뿐이요, 그 직후에 아내는 자기의 몸에서 떨어진 핏덩어리를 통곡하였다. 핏덩이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통곡이었다.

박가도 그 핏덩어리를 애석히 조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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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삼십년.

박가의 나이가 오십이 지나고 그의 아내도 근 오십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 부처는 소생이 없었다.

수태를 못한 것이 아니었다. 전후하여 四五차나 수태를 하였다. 그러나 그 매번 二四삭 혹은 五六삭하여 낙태되어 버렸다.

인젠 벌써 아내의 나이가 오십이라 다시 수태할 가망도 없었다.

이 한 가지가 결점이지 그밖에는 흠잡을 데가 없는 아내였다.

시집온 지 삼십 년, 화기 있는 얼굴은 하여 보지 않았지만, 그것은 그의 천성이라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밖에는 나무랄 데가 손톱만치도 없었다.

바느질도 잘 하겠다, 음식 솜씨도 그만하면 쓰겠다, 사람이 인자하니 남의 평판도 좋겠다, 살림도 칠칠하고 조리 있게 잘 하겠다……

이리하여 三십년 뒤 이 박가 내외는 몸도 관청에서 뽑아내고 그새 푼푼이 번 돈으로 취리를 해서 그들의 생활도 인전 안정되어서 사실 남부럽지 않은 집안이 되었다.

슬하가 없는 것이 쓸쓸할 뿐이었다.

『내가 만들기는 꾸준히 잘 만드는데 왜 낳지를 못한단 말이여.』

박가가 슬하의 쓸쓸함을 탄식하여 이렇게 아내에게 말하면 아내는 머리를 수그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역시 쓸쓸한 태도로

『양자라도 합시다그려.』

하고는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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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 밤. 그 밤에 박가는 술상을 대하여 三十년 애처의 딸으는 술을 먹고 있었다.

박가의 술이 반취쯤이나 되었을 때에 아내는 잔에 술을 따르며 이런 말을 남편에게 건넸다─

『여보세요.』

『응?』

『내가 당신하구 보다 먼저 정혼했던 사람이 있는 줄 아시지오?』

『그 말은 왜 새삼스럽게?』

『글쎄 말이야요.』

『알잖구.』

『문득 그 생각이 납니다 그려.』

박가는 기이한 눈으로 아내를 보았다.

『아니, 그 사람이 생각이 난다는 게 아니라 그 일이 생각이 난단 말이야요. 지금 우리가 슬하에 자식이 없는 것 하나이 부족하지, 그것밖에야 사실 상팔자 아니외까? 무슨 걱정 근심이 있겠수, 혹은 고생이 있겠수. 지금 팔자가 이만치 좋으니만치 전에 당신한테 안 오구 딴 데 갔더면 어떻게 됐을가 이런 생각두 나는구려.』

이에 박가는 만면에 웃음을 보였다.

『그렇지, 그런 코흘리개에게 갔더면 지금쯤은 바가지 들구 남의 집 문간에 동냥 다니기 쉽지.』

『그러구 보면 그 사람을 누가 죽였는지 죽인 사람을 사당에 모시구 제사나 드려야지 않겠소? 늙느라고 그러는지 간간 그런 생각이 나면 고마운 생각이 드는구려.』

『암. 더 받쳐야구 말구.』

박가가 만약 술에만 취하지 않았더면, 이때에 자기 위에 던져진 아내의 날카로운 시선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밤은 이만치 하여 이 문제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 二, 三일 뒤 아내는 술을 딸으고 남편은 먹다가, 반취나 넘은 뒤에 아내는 또 그와 같은 말을 꺼내었다─

『사람이 은혜를 모르면 짐승에 다를 것이 무에겠소? 그 사람의 덕으로 오늘 이만치 지나니 그 사람의 은혜를 어찌 잊겠소? 그래서 뒤뜰에 칠성단을 묻고 어제부터 축원을 드린다오. 그 사람의 성명이나 알게 해 달라구.』

아내는 이런 말을 하였다.

그날 밤 이 늙은 부처는 한 이불 아래 들었다.

취기 때문에 마음이 흥그럽고 그 위에 뽐내고 싶은 충동까지 생긴 박가는, 늙은 아내를 쓰러 안고 등을 두드리며 귀에 소근거렸다.

『내 그 사람 알게 해 줄가?』

『당신이 어떻게 안단 말씀이오?』

『암. 내가 모르는 일이 어디 있담.』

『그래 누구란 말이오?』

『누구? 임자의 영감님. 이 박판서로세 그려. 알겠나? 대감께서 그 총각놈을 없애 버렸단 말이야. 임자를 이렇게 붙안아 보고 싶어서.』

『그러면 누가 속을 줄 아오?』

『속이긴 누가 속여? 그때 함께 갔던 놈도 지금 멀정히 살아 있는데, 내일 가서 알아라도 보지.』

『그럼 그게 누구란 말이오?』

『누룩골 최서방, 그놈이 망을 보고 나는 들어 가서…….』


이튿날 이 좁은 남원읍에는 놀라운 사건이 돌발하여 남녀노소가 왁자지껄하였다. 박서방이라는 자의 아내가 삼십년 같이 살던 남편을 살인 죄로 등장 들었다 하는 일이었다.

박서방은 관가에 잡혔다. 박서방과 함께 가서 살인을 도왔다는 최서방도 잡혔다.

관가의 국문에 그들의 죄상은 백일하에 명백히 드러났다.

살인자인지라 박서방과 최서방은 물론 사형을 받았다.

동시에 박서방의 아내의 열행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였다. 정혼하였던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마음에 없는 이에게 몸을 바치고 삼십 년간을 참고 지내면서, 드디어 목적했던 바 살인 증거를 얻어서, 본의를 풀은 이 열녀 보패에 대한 칭찬성이 우뢰와 같이 리울었다.

그러나 이때는 그 당자인 보패는 모든 사람의 칭찬성도 듣지 않고 어디로 사라졌는지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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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망졸망한 무덤 가운데 새로 생긴 무덤이 두 개이었다.

한 개는 박서방의 것, 또 한 개는 최서방의 것이었다.

그 무덤이 새로 생긴 날 깊은 밤, 그렇지 않아도 귀기가 도는 이 음산한 메켠을 더욱 처참히 하려는 셈인지, 매서운 바람이 휙휙 날카로운 소리로 울고 있는 무시무시하고 음산한 밤이었다.

이 밤 박서방의 새 무덤을 파헤치는 괴물이 있었다. 무서움도 모르는지 일심불란히 호미로 무덤을 파고 있다.

드디어 흙속에서 나온 시체, 관도 없이 거적에 싸서 묻은 시체를 얻어 내인 괴물은 그 위에 거꾸러졌다.

박서방의 아내였다.

『용서해 주세요. 三十년 전의 그이는 마음의 남편이요, 당신은 몸의 남편. 마음의 남편이거나 몸의 남편이거나 누구가 중하고 누구가 경하리까.』

처음의 일념을 관철하기 위하여 박서방을 오늘 이 꼴이 되게 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삼십년을 박서방과 같이 살 동안에 든 정이야 또한 버릴 수가 없었다. 살 동안에 드는 정을 스스로 부인하고 깎아버리고 지워버리려고 했지만, 그래도 삼십년 같이 산 정이야 어디 가랴. 처음의 一념을 관철하기 위하여 드는 정을 아닌 체하고, 그의 씨를 받지 않기 위해서 씨마다 떨구어 버리며, 복수의 귀신으로 화해서 삼십 년간을 살기는 살았지만, 그 목적을 관철하고 나니 아직껏 아닌 체하던 박서방에게 대한 경애가 한꺼번에 솟아오른다.

용서해 주세요. 당신만이 내 남편이외다. 당신을 이 모양이 되게 한 뒤에 혼자서 잘 살 내가 아니외다. 당신의 뒤를 따르리다. 이생에서 다하지 못한 연분, 길이길이 저생에서 당신만을 위해 받치리다. 이생에서는 퍼지 못했던 마음, 저생에서는 길이길이 펴고 살아 봅시다.

차디찬 남편의 시체를 쓰러 안고 안해는 몸부림치며 통곡하였다.

날카로운 바람 소리에 섞여서 나는 이 여인의 통곡성을, 저편 마을에서는 귀곡성이라 하여 벌벌 떨면서 밤새도록 잠을 못 잤다.

이튿날 길 가든 사람이 발견한 두 개의 시체.

하나는 무덤에서 다시 꺼내 놓은 박서방의 시체요, 그 곁에 나무토막을 줏어다가 베개 삼아 박서방과 한 베개 하여, 박서방의 아내가 스스로 제 목을 매고 죽어 있다.

스스로 제 남편을 관가에 사뢰어 이 모양을 만든 뒤에, 또한 남편의 곁에서 남편을 따라 죽은 이 아내의 마음은 아는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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