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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사담집 5/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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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江原道 洪川). 홍천서도 읍을 떠나서 멀리 산기슭에 있는 외따른 집 한 채.

사람이 거처하니 집이라 부르지, 사실에 있어서는 집이라 부르기는 너무나 창피한 오막살이었다. 그 근처에서 소나무 몇 개를 찍어다가 기둥이랍쇼 세우고 거기다가 흙을 되는대로 붙이고, 벳짚을 겨우 비나 안 샐 정도로 얹은, 그야말로 오막살이었다.

그 오막살이 안에는, 한 내외와 어린 아들 하나 딸 하나, 도합 네 식구가 살고 있었다. 남편의 나이는 사십 남짓, 아내도 그맛 나이나 되었고, 자식들은 겨우 걸음을 걸어 다닐 만한 세살쯤 난 것과 금년 난 어린 젖먹이였다. 아마 가난하여 늦도록 시집 장가를 못 갔다가 이즈막에야 겨우 어떻게 서로 만나서 사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사람의 사는 집안이라, 솥 나부랑이도 걸리고, 뜰에는 기저귀 등도 널려 있기는 하지만 아주 쓸쓸한 집이었다.

이 집에 이춘보의 일족이 살고 있었다.

본시 춘보는 집 한 간도 없이 이집 저집으로 동리 머슴으로 돌아다니며 그날그날 입에 풀칠이나 하여 사십 년간을 지나오던 것을, 이웃 사람들이 보기에 하도 딱하여, 서로 의논한 끝에, 이 산기슭에 오막살이 하나를 지어주고 (얼굴이 못났기 때문에 삼십이 지나도록 시집도 못간) 동리 처녀 하나를 아내로 삼아 주어서, 한 집이랍쇼 쓰고 살게 된 것이었다.

이리하여 이태 三년 지나는 동안, 그래도 남녀가 모였다고 자식도 생기고, 자식이 생겼는지라 의무도 커지고 하였지만, 본시 밑천이 없는 데다가 주변까지 없는 춘보는 더욱 가난하고 고단한 살림을 계속할 따름이었다.

이전 총각 시대에는 남의 집에서 일을 하다가 먹여주면 먹고 날이 저물면 그냥 그곳서 넘어저 자고, 이튿날은 다른 집을 물색하고─ 생활은 고단하나 걱정은 없는 살림을 하였는데, 아내가 생기고, 자식이 생기고 보니, 자기는 굶을지라도 자식은 먹여야 할 의무가 생기고, 자기는 벗을지라도 가족은 입혀야 할 의무가 생기고─ 도대체 귀찮았다.

이런 가운데서도 더욱 고통거리는 춘보의 집 앞에 텃밭이 하나 있어서 거기다가 담배를 심었는데, 그 밭의 세납─ 전결(田結)이 1년에 여덞잎씩 나오는 것이었다.

남의 집 일을 하여 주면 쌀되는 준다. 쌀되가 있으면 끓여 먹기는 한다. 그러나 돈(겨우 여덟 잎이나마)이란 것은 춘보의 손에는 좀체 들어 올 기회가 없었다. 전결은 나라에 바치는 것이라 없다고 보면 된 것이 아니었다.

1년에 단 여덟 잎이지만 과연 그것은 춘보에게는 커다란 짐이었다.

× ×

가을.

짧은 가을 해가 누엿누엿 서산으로 넘어가는 황혼.

가을은 농군에게는 바쁜 시절이라, 춘보는 그 근처의 호가(豪家) 박도사(朴都事)의 집에서 품일을 하고, 집에는 아내가 어린것들을 데리고, 남편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 아랫마을 김풍헌이 찾아 왔다.

『춘보 있나?』

『박도삿댁에 일하러 갔어요.』

『아, 그런데 전결 여덟 잎은 어떻게 할 셈이야.』

『글쎄요. 애기 아버지도 만날 그 걱정은 합니다마는 어디 돈이 생깁니까?』

『안 생긴다고 안낼 뱃장인가?』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럴 리가 없으면 왜 아직까지 안 내? 다른 집 것은 다 됐는데 이집 것 하나이 못 돼서, 지금껏 갖다 바치지 못했는데, 이따가 들어오거든 내일은 꼭 마련해 두었다가 달라고 그래. 사람도 그렇게 염치가 없담. 내일 안 됐다가는 큰코 다치네.』

중얼중얼 하면서 돌아가는 김풍헌의 뒷모양을 보면서 춘보의 아내는 한숨을 쉬었다.

그날 밤, 아내에게서 톡톡한 채근을 다시 받은 춘보는, 드디어 결심을 하였다.

텃밭에 심은 담배를 베기로 한 것이었다. 아직 물도 들지 않아서 며칠을 더 두고 싶었지만, 본시 마음이 착한 춘보는, 김풍헌의 채근을 그냥 모른 체하고 며칠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단 삼, 사일만 더 있다가 비어 팔아도 좀 더 값을 받을 것이지만, 매일 매일 김풍헌이 채근을 오는 것이 너무도 속으로 무안하여, 비록 헐값밖에는 받을 수 없으나마 밝는 날 담배를 베어 팔기로 하였다.

이튿날 춘보는, 유난히 일찍이 일어났다. 일찍이 담배를 베어 엮어놓고 또다시 박도사의 집 추수 일을 보러 가야겠으므로, 다른 날보다 담배 베는 시간만큼 더 일찍 일어난 것이었다. 한 모슴, 두 모슴, 베어 나아가는 이 담배. 심을 적에는 그래도 가을철에는 비어서 자기도 몇 대 먹어보려니 하는 마음으로 심었더니, 그 소망도 모두 꿈으로 돌아가고, 지금 물도 들지 않은 담배를 베어서, 홀짝 김풍헌에게 맡기어야 하는가 생각하면, 섭섭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 팔아야 여덟 잎이 되기나 할가 못되면 이를 어쩌나.

근심 걱정 탄식으로 한 모슴 두 모슴 베어 나가다가 문득 눈을 들어보니, 저편 바위 모퉁이에, 이상한 풀포기 하나가 있다.

『?』

저게 뭐냐 어려서부터 농사와 꼴 베기로 자라난 춘보라, 풀이며 나무며 이름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 바위 아래 돋아 있는 것은 춘보의 사십 평생에 처음 보는 풀이었다.

무엇일가. 춘보는 낫을 든 채로 잠시 바라보다가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 포기를 잡고 잡아당겨 보았다.

『?』

팔뚝지 만한 무(蕪) 하나이 땅에서 뽑혀 나왔다.

『무로구나.』

무? 밑은 무지만, 잎과 대는 무가 아니었다.

『호─. 이상한 무도 있지.』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하도 이상하여 시험 삼아, 뿌리 끝을 조금 꺾어 입에 넣어 보았다.

『앗, 써.』

쓰기가 한량 없었다.

침을 뱉고 입을 닦고 하였으나 쓴맛은 그냥 남아 있다.

『에이 고약하군.』

함부로 먹어서 죽는 것이 아닐가. 도대체 이게 무슨 무람. 휙 하니 저편 귀퉁이로 던져 버리고, 다시 담배를 베기 시작하였다.

한 모슴 두 모슴 베다가 문득 보니, 또 저편 바위 모퉁이에 아까 그런 풀이 하나 있다. 시험삼아 뽑아 보니, 역시 커다란 무가 하나 나왔다. 이리하여 그런 무를 얻기를 세 개.

이윽고 담배를 다 베었다.

다 벤 담배와 무를 안고 집으로 내려와서 담배는 엮어서 볕 잘드는데 걸고, 무는 그냥 지붕 위에 던졌다.

『여보게.』

『녜?』

『이따가 김풍헌이 오시거든, 좀 잘 말해. 저처럼 담배를 비었으니, 한 二, 三일 말리면 오는 장에는 팔 수가 있을 테니까, 그때 팔아 서 드린다구…….』

『그래요.』

이러한 당부를 남겨 두고 춘보는 박도사의 집으로 일을 하러 갔다.

× ×

그 날 조반 때가 좀 지나서 김풍헌은 또 전결 채근을 왔다.

전결 채근을 하다가, 문 밖에 걸은 담배를 보노라고 들던 눈이 춘보의 집 지붕까지 올라갔다가 김풍헌은 깜짝 놀랐다.

팔쭉지같은 산삼(山蔘) 세 밑이 지붕 위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대체 산삼이라는 것은 보통 손가락 같으며, 크대야 겨우 뼘이나 넘는 것이어늘, 팔뚝지 같은 산삼이 그것도 한 개도 아니요 세 개가 허수로히 지붕 위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기는 놀랐다. 그러나 얼른 짐작컨대, 춘보는 그 물건이 무엇인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만약 알 것 같으면 이 천하의 지보를 그렇듯 허수로히 지붕 위에 던져 두었을 까닭이 없다.

『여보게.』

춘보의 아내를 불렀다.

『저게─ 저 지붕 위에 저게 뭔가.』

『글쎄요. 아까 담배밭에서 얻었다나요. 무언지는 모르지만 쓰디 쓰더라구요. 그래서 온 그런 모를 물건을 입에 대었으니 탈이 나지 않을지 걱정이야요.』

『써?』

『네, 몹시 쓰더래요.』

『흐─ㅁ. 쓰다. 그러면 그게 고삼이라는 게로군, 애들 배 앓는데 먹이면 낫는다는 고삼이라는 것이 있는데, 모양은 무 같고 몹시 쓰다 든걸. 정녕코 고삼이로군.』

『무엔지요.』

『그럼. 여보게, 그걸 내나 주게. 우리집 애들이 늘 배앓이가 심해서 걱정인데 어디 갖다 대려 먹여 보지. 그 대신 전결 여덟 푼은 내가 냄세.』

『아이구나. 댁 도련님들이 그렇다면 거저 가저 가시지, 그걸 뭐요. 거저 가져가세요. 아예 다른 염려는 마세요. 저 담배를 말리면 여 덟 잎이야 되겠지오.』

『아니야. 약은 거저 가져가면 듣질 않는 법이야, 그럼, 그 여덟 잎 내가 줌세. 춘보 돌아오거든 그렇게 말하게.』

『아이구, 그걸 뭐요.』

사양은 하였다. 그러나 아내의 마음은 진실로 기꺼웠다. 봄내 여름내 공력을 들인 저 담배를, 남편이 한 모금 빨아 보지도 못하고 홈빡 전결 때문에 팔아 버릴 것을 생각할 때에 가슴에 애연한 느낌이 사모쳐 있었거늘 이제 저 담배가 한 잎도 나지 않고 남편의 입으로 들어 갈 것을 생각하매 터저 오르는 만족은 감추려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럼 가네.』

『아이구, 안녕히 가세요.』

아아, 남편이 돌아오거든 저 담배를 탁 한입 틀어넣어 주자. 얼마나 기뻐하랴. 거저 얻은 고삼 세 뿌리로 남편의 겨우내 먹을 담배를 바꾸었구나. 그날 같이 남편 돌아오기를 고대한 적이 없었다.

× ×

때는 광무주 초엽이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興宣大院君 李昰應)─놀라운 기략과 권모로서 일개 초초한 종실로서 일약 아드님을 이 三천리의 임금의 위에 모시고, 자기는 섭정 대원군으로, 팔도 삼백주를 마음대로 흔들던 운현대감 흥선 이하응.

대원군이 섭정을 시작한 이래, 이 강토는 놀랍게 자라났다.

그 새 오랫동안을 외척의 발호와 재상들의 놀림 아래서, 피폐하고 참담하게 된 뒤끝을 받아가지고 일어선 대원군은, 그의 놀라운 손아귀를 퍼서 조선 천지를 주물렀다.

풍속과 제도를 개량하였다.

국방을 든든히 하였다.

폐정을 일소하였다.

인재를 등용하였다.

일찍이 시정의 한 시민으로 배회하면서, 민간에서 직접 보고 들은 많은 악정을 모두 고치고, 조선이라는 땅을 빛나는 강역으로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였다.

이러기를 四년, 五년, 六년, 나날이 자라고 번창하여 가는 조선을 볼 때에, 가까운 장래에는 아주 흥륭한 국가로 만들만한 자신도 넉넉히 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는 일방, 대원군에게도 근심이 생겨 났다.

아침에는 푸른 실(靑絲)과 같던 것이 저녁에는 눈(雪)과 같이 되었다.

옛날 이태백도 노래한 바와 같이, 제아무리 조선의 천지를 주먹 안에 넣고 뒤흔드는 대원군이라도, 오는 백발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귀밑이 히뜩히뜩 하여지고, 드러누우면 무릎뼈가 마주치고, 탄력 있던 근육에 주름살이 차차 잡혀가는 늙음이라는 것은, 대원군의 세력으로도 방비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이를 막을 도리가 없을가. 전국의 이름있는 의원을 모두 불러서 의론을 하매 언출一구로,

『산삼과 녹용을 많이 잡수시오.』

하는 것이었다.

앞에 할 일은 태산 같고 나이는 차차 먹어가는 대원군은 어떻게든 이 자기의 하던 일의 일단락이라도 맺고 싶은 일심으로, 늙음을 피하기 위하여, 산삼과 녹용의 좋은 것이 나거든 값의 고하를 묻지 말고 구하여 올리라고 팔도방백에게 시퍼런 훈령을 내렸다.

더욱이 산삼과 녹용의 산지(産地)인 강원도와 함경도의 감사에게는 다짐다짐을 하였다.

그래서 함경 강원 두 감사는, 관내 각 수령에게 좋은 산삼이나 녹용이 나거든 곧 구하여 감영으로 보내라고 지령을 하고, 스스로도 사람을 내세워서 산간으로 다니며 산삼 녹용을 구하던 그 시절이었다.

이러한 시절에 김풍헌은 춘보의 집 지붕에서, 다시 구하기 힘든 희대의 산삼 세 뿌리를 얻은 것이었다.

× ×

산삼을 고삼이라 속여서 전결 여덟 잎의 대신으로 받아 가지고 온 김풍헌은, 즉시로 그 산삼을 잘 씻어서 좋은 백지에 싸 가지고 그날로 원주 감영(그때는 강원도 감영이 원주에 있었다)으로 떠났다.

산삼 가운데도 희대의 산삼, 그것도 한 뿌리가 아니요 세 뿌리씩이나 가졌으니만치, 김풍헌의 가슴은 놀랍게 방망이질하였다.

값으로 따질지라도 이것은 천 량이 아니요 만 량 줄로 올라설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것은 값으로 따질 것이 아니다. 운현 대감께서 구하시는 산삼이라 이 희대의 산삼을 바치기만 하면 적어도 몇十만 량이요. 그 위에 하다못해 금부도사는 한자리 놓치지 않을 것이다.

돈과 권력─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돈의 매력과 권력의 매력이란 무서운 것이다. 지금 돈과 권력을 한꺼번에 살 수 있는 희대의 산삼 세 뿌리를 등에 진 김풍헌은, 과연 천하가 발아래 꿇어 절하는 듯하였다.

싱글벙글 밤을 도와서 감영에 이른 김풍헌, 이튿날 삼문이 열리기를 기다려서, 이 산삼 세 뿌리를 감사에게 바쳤다.

(이때의 강원 감사는 그 뒤 군부 대신까지 지나서 연전에 작고한 사람이고 그의 자손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느니만치 이름은 감춘다)

감사는 이것을 받았다. 받아보니 이야말로 금을 주어도 다시 구할 수 없는 희대의 산삼이었다.

「으─a. 나가서 기다리라고 그래라.』

이만치 분부한 뒤에, 감사는 즉시로 그 산삼을 운현궁에 상납할 수속을 하였다.

좋은 간지에다 먼저 편지를 썼다─

─대감 정무에 얼마나 노심하시는지 하정이 황공하오며 그 대감의 보국지심에 만분 一이라도 돕고저 소관 관내 심산궁곡에 수만 명의 사람과 수만의 재물을 털어놓아, 구하고 또 구한 끝에 지금 희대의 산삼 뿌리를 구했압기, 그대로 진봉하오니 이것을 잡수시고 더욱 원기를 얻으셔서, 일층 더 정무를 보시기를 바라나이다.

이러한 편지를 썼다. 그리고 상자 하나를 큼직하게 잘 짜서 그 산삼 뿌리를 넣어서 든든한 하인 하나를 구해서 편지와 함께 봉물짐을 서울 교동 운현궁으로 부쳤다.

× ×

감사께 산삼 세 뿌리를 바친 김풍헌은 나와서 주막 하나를 잡고, 이제나 저제나 감사에게서 돈과 직첩이 내리기만 고대하고 있었다. 내려도 수만금이 내리겠는지라, 술이야 고기야, 마음껏 불러서 질탕치듯 먹고 마시고 다시 먹고 마시고, 영문 사령이 오기만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닷새가 열흘이 되고, 보름이 되어도, 영문에서는 부르는 길이 없고 그새 먹은 술값 고기 값만 잔뜩 짊어지게 되었다.

기다리다 못해서 드디어 채근을 갔다. 채근은 갔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三문 밖에서 기웃거리노라니까, 사령이 웬놈이냐고 묻는다.

『네이 다름 아니오라, 일전 삿도께 산삼 세 뿌리를 받쳤사온데, 그…… 그 값을…… 좀….』

『응, 그래 기다려라.』

사령이 그대로 들어가서 삿도께 엿주매, 삿도는 그 백성 불러 들이라 한다.

삿도는 대청에 좌정하고 김풍헌은 뜰 아래 읍하고 섰다.

『그래 뭐라?』

『네이. 그 산삼 값을…….』

『산삼 값이라?』

『네이…….』

『응. 산삼이라. 그래, 그 산삼은 어디서 난 것이라?』

『홍천 소인의 산에서 난 것이올시다.』

『홍천이라? 홍천은 어디 땅인고?』

『강원도 땅이올시다.』

『강원도라. 강원도는 어느 나라에 붙은 땅인고?』

『조선 땅이올시다』

『그래 그러고, 너는 그 산삼을 얼마에 샀는고?』

『땅에서 캐냈습니다.』

감사의 날카로운 눈이 비로소 들렸다─

『이놈! 그래 강원도 땅에서 난 물건을 네가 돈 주고 사기나 했다면여니와, 거저 얻은 것을 강원도 감사에게 갖다 바치고, 강원도 감 사는 그것을 조선 대원군께 갖다 바쳤는데 돈? 그놈 당장에 맹장(猛杖)해라!』

그날 저녁, 원주서 홍천으로 가는 고개를 엉덩이를 부비며 절룩절룩 황혼의 길을 더듬는 한 행객이 있었다.

실컷 맞은 김풍헌이었다.

× ×

박도사는 연년이 서울 각 재상의 집에 봉물을 보내고 하였다. 강원도 소산인 버섯이며 취며 도라지며를 가을마다 좋은 것으로 골라서 서울 각 재상댁에 한점씩 보내고 하였다.

이 해에도 박도사는 깨끗한 물건들을 선택하여 사람을 사서 서울 각 재상댁에 한 짐씩 보냈다.

그런데 사람을 산다 하여도 특별히 삯을 흔히 주어 보내는 것이 아니라, 소작인들에게 한 사람에게 삯으로 엽전 다섯 잎씩을 주어서 보내는 것이었다.

박도삿댁 소작인의 한 사람인 이춘보도 물짐을 지고 서울로 올라갔다.

목적한 바 재상댁에 짐을 갖다 바쳤다. 바치고 보니, 노자로 다섯 잎 타가지고 왔던 것이 올라오는 길에 세 잎은 쓰고 단 두 잎이 남은 것이었다.

일국의 도읍지인 서울은 휘황찬란하였다. 온갓 곳에 돈만 있으면 사고 싶은 물건이 허다하였다. 그러나, 단 두 잎 남은 것으로 무엇을 사랴.

홍천까지는 이틀 길. 이 이틀길을 하루에 한 잎씩 써야 꼭 내려가게 된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홍천 자기 집 문안에 썩 들어설 때에 어린것들이 『아버지』 하면서 마주 나오면 그 어린것들에게, 빈 주먹을 어찌 내미나? 서울까지 갔다 오는 아버지라고 그래도 무엇을 기다리며 마주 나올 자식들에게 빈 주먹만을 어찌 보이나.

단 두 푼. 단 두 푼.

홍천까지 이틀을 굶어 가자. 이틀 굶을지라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서 눈을 유혹하는 휘황찬란한 물건은 못 사다 주나마, 하다 못해 엿가락씩이라도 사 가지고 돌아가서, 아버지 하며 마주 나오는 자식들에게 옛다 하고 엿 한 가락씩이라도 내어주자.

자식을 가진 어버이의 마음은, 준 이틀 길을 굶어 가면서라도 자식들의 마음을 섭섭지 않게 하려고, 겨우 남은 엽전 두 잎을 꽁문이에 잔뜩 차고, 허리춤을 졸라매고, 홍천까지 굶으면서 내려가기로 결심을 하였다.

서울서 여주(驪州)가 팔십 리.

달음박질 하다시피 여주까지 다달으니 가을 짧은 해는 벌써 서쪽 노을에 잠기고, 사면은 꽤 컴컴하였다.

서울서 강원도로 가자면 여주서는 반드시 묵는 법이었다. 여주서 묵고 이튿날도 종일을 가야 홍천까지 다다를 것이었다. 그러므로 서울서 한낮 길이 되는 여주에는 주막집이 많이 있다. 그러나 주막집을 들를 형편이 못되었다. 그냥 주린 배를 움켜 안고 모른 체하고 그 앞을 지났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기서 묵고 가세요. 방도 깨끗하고, 음식도 좋습니다.』

『여기를 지나면 다시는 주막이 없습니다.』

좌우편 주막에서 부르는 소리도 못 들은 체하고 그냥 주먹을 불끈 쥐고 지나갔다. 이리하여 주막거리를 다 지나서 바야흐로 다시 벌판길로 나서게 되었을 때에, 여보세요 여보세요, 연방 부르는 여인의 소리가 들렸다.

춘보는 그냥 못들은 체하고 지나가려는데 그 여인은 쫓아와서 춘보의 옷깃을 꽉 잡았다.

『여보세요.』

『왜요.』

『하룻밤만 묵어가세요』

역시 주막쟁이었다.

『아니오. 우리 집은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돼요.』

『그래도 하룻밤만 묵어가세요. 밥값도 안 받고 막걸리까지도 한 잔 대접할 테니 하룻밤만 묵어가세요.』

귀가 번쩍 띄었다.

춘보가 자지 않고 가려던 것은 오로지 엽전 두 잎을 그냥 살리고저 함이었다. 시장치 않음도 아니요 곤하지 않음도 아니다. 단지 어린것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엽전 두 잎을 그냥 살리고저 함이었다. 여기서 돈 안받고 묵여 주겠다는데 귀가 뜨이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그 여인이 사정하는 말을 듣건대 사연은 이와 같았다─

여인의 남편은 장사차로 어디 나가고, 여인 혼자 있는데 어제 아침 손님 한 사람이 묵었다. 그 손님은 몸이 편치 않은 모양으로 밤새도록 웅웅 신음을 하더니 새벽녁부터는 신음 소리도 없어지고 조용하여지고, 이때도록 그 방문은 열어보지 않고 그 안에는 인기척도 없는 것을 보면 아마 죽은 모양이다.

그러나 여인 혼자라 열어보기도 무섭고, 차차 날은 어두워 가는데 집에 들어가기도 무서워서 밖에서 떨고 있는데, 하룻밤 묵어만 주면 감사 무지하겠다 하는 것이었다.

할일없이 홍천까지 걸어가려고 결심은 하였으나, 이틀을 굶으며 가기가 난처하기 짝이 없는 춘보는 여기서 생색내며 하룻밤을 묵어가기로 되었다.

그날 저녁도 든든히 얻어먹고, 술잔 대접도 잘 받은 춘보는, 본시 마음이 착하던 사람이라, 이 여인을 동정하여 그 무시무시한 방을 열고 그 안에 죽어 있는 손님의 시체까지 모두 처치하여 주었다.

『고맙습니다. 이 신세를 무엇으로 보답할는지. 그 세상 떠난 손님이 지고 온 무슨 짐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두어야 쓸데도 없으니 그것도 가지세요.』

춘보는 그날 밤 송장이 있던 방에서 한밤을 지나게 되었다.

죽은 사람의 짐이라는 것을 보매 조그만 괴나리 봇짐 하나와, 무슨 커다란 상자 하나였다.

춘보는 먼저 관솔불에 비추며 괴나리 봇짐을 풀어 보았다. 그랬더니 거기서 굴러 나오는 것은 버선 한 켤레와 무슨 편지 한 장이었다.

무식한 춘보는 무슨 편지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좋은 간지에 쓴 품이라든지 또는 그 흐르는 듯한 글씨가, 보매 훌륭한 사람에게서 훌륭한 사람에게로 가는 편지가 분명하였다.

그것을 집어치우고, 그 뒤에는 그 상자를 보았다. 들어 보매 그만한 상자이면 꽤 묵직하여야 할 터인데 거쁜하다.

『?』

이게 뭣일가. 단단히 못을 주어서 열어볼 수는 없다.

좌우간 이 상자는 주막 주인에게서 자기가 얻은 물건이니 즉 자기 것이라, 깨뜨려 보기로 하였다. 거기 놓인 목침으로 힘을 다하여 몇 번 따리니까 상자는 짜개졌다.

짜개진 안에서는 솜이 한 뭉치 나왔다. 그 솜을 헤치니까, 무슨 기다란 물건을 백지에 싼 것이 나왔다. 그 백지를 헤치니까 거기서 데구르 굴러 내려진 물건은?

무 세 밑이었다.

『이게 무로구나.』

무를 이렇게 잘 싸고 봉하고 그 위에 좋은 상자에 넣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춘보는 무를 집었다. 광솔불에 가까이 대고 보았다.

낯익은 무였다. 자기가 수일 전 자기 집 뒤 텃밭에서 담배를 베다가 뽑은 그 무였다. 자기가 맛보느라고 꺾었던 그 자리까지 그냥 있었다. 더욱이 시험삼아 혀끝을 대보니까 쓰디쓴 것이 그때의 그 무가 분명하였다.

그 무는 김풍헌이 전결 여덟 잎을 대신 내마 하고 가져가지 않았던가? 그것이 어디로 어떻게 구을러서 오늘 이 주막에 죽은 사람의 물건으로 되어 있나?

머리를 기울이고 생각하고 숙이고 연구할 동안, 춘보도 겨우 윤곽을 알아채었다.

그것은 무가 아니다. 무슨 귀한 물건이다. 김풍헌의 손에서 누구에게로 어떻게 넘어갔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 상자와 편지를 보면, 어느 높은 분이 어느 높은 분에게 이 아지 못할 물건 세 개를 선사로 보내는 것이 분명하였다.

높은 분이 높은 분에게 보내는 물건일진대, 그것은 단순한 무가 아니고 값진 물건이 분명하였다.

『자……』

그러나! 그 물건은 비록 자기가 자기의 텃밭에서 얻었다 하나, 이미 김풍헌에게 엽전 여덟 잎에 판 이상은 자기의 물건이 아니다. 오늘 다 자기의 손으로 들어왔을지라도 이것을 자기가 가진다는 것은 이치에 어그러진 행동이다. 이것이 어느 분에게로 가는 물건인지는 모르지만 밝는 날 이 편지를 남에게 보여가지고 이 물건 받을 분에게로 갖다 바치자.

착하고 착한 춘보는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

이튿날 이웃 사람에게 물어본 결과로서, 그 편지는 강원감사 모에게서 운현 대감에게로 가는 것인 줄 알고, 춘보는 집으로 돌아가던 발을 다시 서울로 돌이켰다.

× ×

『운현 대감 집이 어디오.』

동대문 안에 들어서면서부터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물어서 춘보가, 운현궁에 찾아 들은 것은 가을 날도 캄캄하여서였다.

일국의 섭정의 지위에 있는 운현은 언제든 아랫사람들 저이끼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매일 저녁 뒤에는 장죽에 성천초를 피어 물고 후원을 한 바퀴 휘돌아서는 발소리를 감추어 줄행랑으로 나가서, 하인들이 저이끼리 주고받는 이야기를 몰래 엿듣고 하였다.

이날도 담배를 붙여 물고, 후원을 한 바퀴 돌아가지고 행낭으로 돌아가려니까, 대문에서 무엇이 왁자지그르 지껄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가만이 가서 내다보니까 웬 헙수룩한 시골 사람이 옆에 무슨 보퉁이 하나를 힘있게 끼고, 머리가 산산히 헤져서 버둥거리고 하인들이 죽 둘러서서 그 시골 사람을 때리고 차고 하는 것이었다.

『아, 이거 운현 대감 줄려구 그래요.』

『이놈아, 대감께서 그런 더러운 물건을 달라시더냐. 썩 나가.』

『못 나가요─』

때리거니 밀거니 받히거니. 야단이었다.

운현은 빨리 사랑으로 돌아왔다.

『이리 오너라.』

『네─이.』

등대하는 청지기에게 물었다─

『대문에서 무엇이 소란하니 무슨 일인지 알아 봐라.』

『네─이.』

『이봐라.』

『네─이.』

『대문에서 무엇이 요란스러운지 대감께서 사실해 올리랍신다.』

이윽고 회보는 왔다.

『웬 헙수룩한 시골 사람이, 무슨 더러운 보자기를 대감께 올린다고 야단이올시다.』

『그래서?』

『그래서, 못 들어오게 하니까─』

말이 맺도록 기다리지 않았다. 운현은 눈을 딱 바로 떴다.

『내게 가져온다는 물건을 너희가 가로 막어? 썩 들여 오래라.』

『네─이』

이리하여 춘보는 운현의 앞에 불리었다. 옷이 산산히 찢어지고 머리가 산산히 풀어진 춘보는 대청 앞에 섰다.

『그거 뭐냐.』

『나리 마님이 운현 대감이오?』

운현 이하 모두 고소하였다.

『그렇다. 그게 뭐냐.』

『이거요.』

보통이째 내미는 것을 하인이 받아서, 청지기에게 바쳤다. 청지기가 받아서 풀으매 거기서는 흙투성이 버선 한 겨레와 편지 한 장과, 팔뚝지 같은 산삼 세 개가 굴러 떨어졌다.

운현은 눈을 크게 하였다. 많은 산삼을 보고 먹고 하였지만 아직껏 이런 산삼을 본 일이 없었다.

『이게─』

『희대의 신품이올시다.』

청지기도 기가 막힌 모양이었다.

함께 떨어진 편지를 보매, 강원 감사 모가 바치는 물건이었다.

잠시는 어리둥절히 그 희대의 신품만 굽어보았다. 그러나 머리를 진정하고 생각하매 강원 감사가 저런 희대의 산삼을 보내는데 사람이 없어서 이 바보를 보냈겠으며, 궤짝 하나 없어서 이런 신품을 버선과 함께 보재기에 싸서 보냈을가.

『오오. 그런데 이것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네…….』

여기서 춘보는, 그 무를 얻은 자초지종─전결 여덟 푼을 마련하고저 물들지 않은 담배를 베든 데서 비롯하여 여주 주막집에서 송장 치워 주고 무를 다시 얻은─을 다 이야기하였다.

운현은 춘보의 이야기를 듣고, 사건의 전면을 통찰하였다. 그리고 마음씨 곱지 못한 김풍헌과 ×감사가 억지로 사려던 공명이 그들에게는 돌아가지 않고, 도리어 정직하고 순진한 춘보에게로 돌아간 그 하늘의 섭리에 머리를 끄덕이었다.

『응. 그래? 고맙다. 그런데 네 성명은 무엇이냐.』

『이춘보요.』

『이춘보라? 어디 이 가냐?』

『전주 이가요.』

『전주 이가라. 우리 일가로구나.』

운현은 미소하면서 청지기를 돌아보았다.

『야, 시골서 우리 일가 한 사람이 올라왔구나. 시골 생장이라, 아무것도 모를 테니 네가 맡아서 좀 가르쳐라. 옷도 갈아 입히고.』

이리하여 춘보는 운현궁 사랑 한구석에 있게 되었다.

× ×

잘 얻어 먹고 있기는 있다. 그러나 춘보의 마음은 여간 끓지 않았다. 박도삿댁 봉물집을 지고 올라왔던 길이라 함께 왔던 다른 동무들은 다 내려갔을 터인데 자기만 내려 못가고 있으니 박도삿댁에서는 얼마나 욕을 하랴, 인제 내려갔다가는 볼기는 정녕코 단단히 맞았다. 소위 일가라는 운현 대감께 어서 내려보내 달라고 조르고 싶지만 그 일가는 어찌 된 셈인지 좀체 한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도 보기 힘들다. 청지기에게 졸라 보아야 대감 분부 있기 전에는 보내지 않는다 한다.

이렇듯 클클하고 역한 날짜를 십여일을 지난 뒤에 하루는 춘보는 운현에게 불리었다.

『너 집 생각 나지 않느냐.』

『왜 안나겠습니까?』

『내려가 보련?』

『네? 그렇지만 내려갔다는 박도사 나리한테 볼기는 단단히 맞었습니다.』

『응. 오늘 내려가라. 그런데, 야 이리 오너라.』

청지기를 불렀다.

『이 이서방께 돈 열량만 갖다 드리고 정자 관 하나 가져오너라.』

청지기는 돈과 정자 관을 가져 왔다.

『춘보야. 너는 내 일가야. 그러니까 이 관을 써야 한다.』

『아이구 나리, 그랬다가는 박도사 나리께…….』

『이놈! 내가 쓰라면 썼지. 네 집에 내려가서는 꼭 이 관을 쓰고 있으렸다. 잠시 한때라도 벗었다가는 당장에 잡아다가 죽여!』

『네…… 그저……』

『응. 내려 가거라.』

일찍이 한때 엽전 두 푼을 가지고 그것으로 어린 것들을 엿이나마 사다 주려 하였던 춘보였다.

열냥 돈을 가지고 종로 네거리에 나가서, 마음껏 사고 또 사서 한 점이 잔뜩 되게 샀지만, 아직도 돈 넉 냥이 그냥 남았다.

이것을 갖다가 탁 아내와 자식에게 주면 얼마나 기뻐하랴. 그 기뻐하는 꼴을 공중에 그려보고는 너무도 기뻐서 혼자 싱글벙글하며, 춘보는 홍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十여일만에 만나는 가족들의 기쁨은 여기 새삼스러히 적을 필요가 없다.

탁 만나고 보니, 기쁨은 기쁨이려니와 인제 박도사 집에서 사람 올 것이 걱정 났다.

『그새 박도삿댁에서 왔었나?』

『오길요. 하루에도 네다섯 번씩 온다우. 좀 있으면 또 오리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문밖에서는 춘보 춘보 왔나 하는 소리가 났다.

춘보는 황급히 운현에게서 받은 정자 관을 쓰고 웅크리고 앉았다.

『춘보 왔나?』

『녜.』

죽어가는 대답이었다.

『오. 왔구나. 언제 왔나?』

박도갓댁 하인은 문을 덜컥 열었다. 열고 보매 춘보는 관을 쓰고 웅크리고 앉아있다.

『이놈이 관은? 너 미쳤구나.』

『나 아니야요. 이건 운현 대감이 주신 거야요. 나는 운현 대감의 일가…….』

『이런 미친 놈.』

와락 달려들어서 관을 벗겨서 찢어버렸다. 그런 뒤에는 보기 좋게 따귀를 몇 대 때렸다.

『이놈. 가자!』

『아이, 관, 관!』

『이놈, 관이 다 무어냐.』

그냥 박도사네 집으로 끌고 가서 바지를 벗기고, 볼기를 피가 뚝뚝 흐르도록 때렸다.

× ×

쩔뚝쩔뚝 절면서 돌아오는 남편을 아내는 붙들어 들였다.

『여보. 인젠 밭도 떼웠지?』

『글쎄. 어떻게 살아갈가.』

이런 때에 임해서는 여인의 꾀가 사내보다 나았다.

『여보, 그 운현 대감이라나 그 일가 되는 양반 말이야.』

『그래.』

『그 양반 때문에 이렇게 되지 않었수?』

『그렇지. 그 양반 탓이지.』

『그럼 말야, 그 양반 부자라지.』

『부자구 말구. 굉장히 크던걸.』

『그 양반한테 가서 살려 달랍시다 그려.』

『글쎄.』

『그러세요. 우리 밥줄을 끊어 놓았으니, 떼거릴 씁시다그려.』

『그럴가?』

이튿날 춘보는, 아픈 엉덩이를 부비면서 다시 몰래 집을 떠나서 서울로 향하였다.

이번에는 운현궁을 들어설지라도 대문에서 하인들도 막지 않았다. 서로 손가락질하며 웃을 뿐이었다.

춘보는 다짜고짜로 사랑 대청으로 올라갔다. 사랑에 앉아서 담배를 피고 있던 운현은 춘보를 보고,

『너 벌써 오느냐.』

고 물었다. 이 말을 듣고 보니 춘보는 너무도 역하여 와─ 하니 울기 시작하였다.

『이 녀석아. 울기는 왜 갑자기 우느냐.』

『이거 보세요.』

엉덩이를 깠다. 보매 아직도 피가 뚝뚝 흐르는 것이었다.

『아프겠구나. 왜 그렇게 됐느냐.』

『왜가 뭐요. 남 싫다는 관을 주어서, 박도사 나리께 매를 맞었어요.』

왕왕 운다.

운현은 고소(苦笑)하였다.

『웅 아프겠다. 야─ 이리 오너라.』

『네─이』

『내 일가가 너무도 어리석어 부끄럽다. 너의 방에 데려다 약질이나 하구─. 또 저 재동 박승지 좀 불러라.』

박승지라는 것은 홍천 내려가 있는 박도사의 친형이었다.

운현이 부른다는 영을 받은 박승지는, 흔연히 운현궁으로 달려 왔다. 이번 가을에는 시골 동생이 운현궁에도 적지 않은 봉물을 보냈는지라 혹은 좀 벼슬이 높아지지 않을가 하고 이날이나 저날이나 벼르던 중에 운현궁에서 부른다는 기별을 듣고, 그야말로 신을 거꾸로 신다시피 하고 달려왔다.

댓돌 아래 등대한 박승지.

『그간 안녕합시오니까?』

고 허리를 굽히고 인사를 드렸다.

그러나 운현은 못본 체 하였다. 잠시를 더 담배만 뻐근뻐근 빨고 있었다. 그러다가야 눈을 겨우 박승지에게로 돌렸다.

『이놈!』

청천에 벽력이었다. 천지가 아득하였다.

『네이. 황공하옵니다.』

『이 놈. 그래 너의 박가가 우리 이가보다 나앗단 말이냐. 죽일 놈 같으니.』

『녜이.』

눈앞이 핑핑 돌았다.

『그래, 네 동생놈이 내 일가의 관을 찢고 볼기를 때렸다니, 너의 형제 놈이 어떻게 죽나 보아라. 썩 물러나가서 포장(捕將)이 오기나 기다리거라.』

기막히다는 간단한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세상이 칵 눈앞에서 꺼져 없어지는 듯하였다.

박승지는 허망지망 운현궁에서 달려 나왔다. 달려 나오는 길로 사린교를 메워 타고 그 달음으로 홍천으로 내려갔다. 어떻게나 몰아 채었는지 그 이튿날로 사린교는 홍천 박도사의 집에까지 다다른 것이었다.

서울서 소식 없이 형님이 밤중에 들어와 닿는 바람에 박도사도 마주 뛰어나왔다.

『형님 이게 웬일이오니까?』

『여보게. 우리 형제는 죽었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자네, 여기서 운현 대감의 일가를 잡아다가 관을 찢고 볼기를 친 일이 있나?』

『운현 대감 일가요?』

『있나, 없나?』

『여기 웬 운현 대감 일가가 있겠습니까.』

『아 그래도…….』

박도사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가만 계십쇼.』

즉시로 하인을 이춘보의 집으로 보내보았다. 그랬더니, 그 집에는 아내만이 있고 춘보는 서울을 올라갔다 하는 것이었다.

『아이구, 이 일을 어쩝니까?』

『이 녀석아, 이 일을 어쩌자느냐.』

『글쎄, 이춘보가 운현 대감 일가 되는 줄이야 누가 알았습니까?』

『야, 이 녀석아, 일을 어쩌잔 말이다. 좌우간 다시 올라나 가보자.』

형제는 다시 사린교를 나란히 하여 가지고, 그달음으로 서울로 올라왔다.

× ×

그로부터 十여일이 지났다.

하루는 운현이 청지기에게

『춘보 불러라.』

고 명하였다.

춘보는 어슬렁어슬렁 나왔다.

『갑갑하지 않으냐?』

『갑갑하고 클클하고 답답하와요.』

『술집에나 간간 가보느냐.』

『언제 밖에 나갑니까?』

『응 오늘 어디 나가서 소풍이나 하고, 술집에 가서 술이나 먹어 봐라, 색주가라고 이쁜 색시들도 있느니라, 야 이춘보에게 돈 한량만 주어라.』

이리하여 춘보는 돈 한량을 타가지고, 어슬렁어슬렁 운현궁 대문 밖에 나섰다.

대문 밖에 썩 나서자 웬 점잖은 차림을 한 사람이 춘보의 앞에 와서 허리를 굽신하였다.

『홍천서 오신 이서방이시니까?』

춘보는 어리둥절하였다.

『네… 저… 홍천서 온 이가는 이가지만……』

『이리 오십쇼.』

『어딜요.』

『오시기만 하세요.』

허리를 굽히고 인도하는 대로 춘보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갔다. 얼마를 가니까, 어떤 소슬대문의 훌륭한 집으로 인도를 한다. 그 집 중대문을 썩 들어서더니, 그 사람은 안을 향하여,

『여보게 이서방님 오시네.』

고함을 지르니까, 사랑 문이 덜컥 열리더니. 웬 점잖은 사람들이, 버선발로 달려 내려와서 춘보의 좌우편 팔을 붙든다.

걸핏 보는 한 사람은 정녕 박도사였다. 춘보는 오금이 저렸다.

『나리 마님.』

『아이구, 이서방님, 어서 오시오.』

『나리 마님 언제─.』

『제발 나리 마님은 그만 둬 주세요. 어리석은 시생 어떻게 이서방님이 그런 분이신줄 알았습니까? 어서 올라 오십시오.』

붙들려 올라갔다. 올라가니까 주안이 배포된다. 영문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좌우간 본시 즐기던 술이라 주는 대로 덥석덥석 받아먹었다. 보리밥과 막걸리에 젖은 춘보의 배에, 좋은 안주와 감흥로가 들어가니까, 마지막에는 아득 아득하여져서 은은히 그 자리에 잠이 들었다.

이리하여 한참을 자다가 깨여보니, 박도사 형제가 발치에 앉아서 자기의 팔다리를 주물고 있는 것이었다.

춘보는 황공하여 벌떡 일어났다.

『아, 왜 더 주무시지요.』

『아니올시다.』

『그럼─ 야, 약주 잘 데워 내오너라.』

다시 벌어지는 주안.

취흥도 이윽히 돈 뒤에, 박승지는 춘보에게 좀 더 다가 앉았다.

『이서방님. 우리 형제의 죽고 사는 것은, 전혀 이서방님께 달렸습니다.』

『그게 무슨 당찮은─』

『아니올시다. 이서방님께 달렸습니다. 이서방님께서, 거저 운현 대감께 박승지 형제를 살려 달라고 한 말씀만 하시면 우리 형제는 살아나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꼭 죽습니다.』

박승지 형제는 교환조건을 제출하였다. 즉 홍천에 있는 박도사의 논 三백석지기와, 메, 밭집을, 그냥 그대로 춘보에게 내어 줄 터이니, 제발 운현 대감께 박승지 형제 살려 달라는 말 한마디만 하여 달라고 빌고 빌었다.

춘보는 처음에는 사양하였으나, 마지막에는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좌우간 그 일가에게 말이나 하여 보기로 승낙을 하였다.

그날 저녁 얼근히 취한 춘보는 비틀비틀 하면서 운현궁으로 돌아왔다.

대청에서 청지기와 한담을 하고 있던 운현은 춘보를 보고 미소하였다.

『너 어디서 잘 먹었구나.』

『잘─ 잘─ 아주 잘 먹었지오.』

『한 량 어치를 다 먹은 꼴이로구나』

『하─ㄴ 랴─?』

춘보는 꽁문이를 들첬다. 그리고 거기서 돈을 절럭절젉하여 보였다.

『한 량은 그대로 곱게 모셔 두었소.』

『이놈, 네 돈 안 쓰고 술 먹은 걸 보니까 도적질해 먹었구나』

『도적질? 이춘보씨 평생에 도적질이라구는 못해 보셨다나. 한데 여보 대감, 저, 홍천… 홍천 말이야요, 그 홍천 있는 박도사네 三백석지기 논 아주 좋지.』

『그 소린 왜 갑자기 하느냐.』

『허허. 박도사한테 맞았던 엉덩이도 인젠 다 나았어요.』

『야. 너 취했다. 들어가 자거라.』

『취해요? 아니지오.』

『썩 들어가 자기나 해라.』

우루루 달려드는 하인들에게 끌려서 춘보는 그냥 자리로 잡혀갔다.

× ×

이튿날 운현은 춘보를 불렀다.

『너 어제 취중에 무슨 소리를 했는지 아느냐.』

여기서 춘보는 어제 자기가 겪은 자초지종을 다 운현께 말하고, 박승지 형제를 살려 달라고 탄원을 하였다.

『응. 그래? 그러면 너 오늘 박승지에게 가서 문서 해 올리라고 그래.』

『살려 주셔야지오.』

『그러기만 하면 안다. 문서만 해 올리래라.』

이 말을 듣고 춘보가 운현궁 밖에를 나서니까, 어제 기다리던 사람이 또 춘보를 인도하여 박승지의 집으로 데려간다.

× ×

그 날 박승지의 집에서 문서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는 이춘보를, 운현은 흔연히 맞았다.

『그래 받어 오느냐.』

『이것 말이지오?』

『그래.』

받아 보매 홍천 일대에 있는 박도사 소유의 땅 전부의 문서였다.

『너는, 박도사가 가지고 있던 것만 그냥 가졌으면 살기에 부족은 없겠느냐.』

『부족이 뭐오니까. 그냥 남지요. 남는 것은 대감께 바치리다.』

『나도 너한테까지 보조받지 않어도 부족은 없다. 한데, 네가 홍천 내려가 사는데 소위 운현의 일가면서 백면(白面)이면야 되겠느냐. 너를 금부도사를 시킬 테니 박도사 대신 이도사가 되어 가지고, 박도사같이 백성을 시달리는 나쁜 도사가 되지 말고 좋은 도사가 되어서 잘 살거라.』

이 고마운 분부 아래, 춘보 이도사는 눈물을 흘렸다.

× ×

착한 사람은 하늘이 돌아보시는 법이라, 이춘보는 그 뒤 홍천으로 내려가서, 영화롭고 안락한 일생을 보내다가 연전에 떠났는데 지금도 홍천 근처에는 이춘보의 후손 되는 전주 이씨가 많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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