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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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급히 돈 칠천원을 돌리지 아니하면 아니 될 곤경을 당하였다. 백방으로 힘써 보았으나 다 실패하고 나는 내가 과거에 적덕 없음을 한탄하고 파멸의 날을 앉아서 기다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내가 전생이나 금생에 조금이라도 적덕이 있었으면 이런 일을 당하지는 아니하였을 것이다. 나는 분명 이렇게 믿는다. 나는 최후의 계책으로 내 판권 전부를 팔아버리기로 결심하였다.

이러한 곤경에서 괴로와할 때에 나는 C라는 어떤 사람의 만찬 초대를 받았 다. C는 노상 안면을 아는지는 오래지마는 그리 친하게 교제할 기회는 없던 사람이다. 나는 그의 친척의 혼인에 다소 시간을 쓴 일이 있기 때문에 아마 거기 대한 사례로 저녁밥을 주는 것이어니 하였다.

그러나 만찬이 끝나고 차를 마실 때에 그는 내 곤경에 언급하였다. 나는 그리 친분도 없는 이에게 설궁을 함도 부질없다 하여 간단히 요령만을 대답 하였다.

그랬더니 C씨는, 그대의 유일한 재산이요 수입의 원천인 판권을 다 팔아버 려서야 쓰느냐 하고 내게 그만한 액의 돈을 돌려 주기를 허락하고 그뿐 아 니라 내 금후의 사업 자금으로 돈 일만원을 무조건으로 제공하기를 말하였다.

나는 처음에는 C씨의 말의 진의를 알아듣지 못할 만하게 놀래었다. 내가 이만한 호의를 받을 덕을 쌓았던가. C씨가 나를 잘못 평가하고 이러함이 아 닌가. 내가 나를 돌아볼 때에 내게는 그만한 호의를 받을 자격이 없었다.

그러길래 친구에게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그러한 말을 비치어 보고는 다시는 말한 일이 없었다. 내가 무엇이기에 내가 무슨 신용이 그리 두텁고 무슨 공로가 있기에 하고 나는 친구의 호의에 의뢰할 생각을 하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금융기관과 내 판권 파는 것 ─ 즉 내게 있는 것을 모두 팔아버리는 수단만을 이 곤경을 벗어나는 유일하고 정당한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C씨의 이 불의의 호의! 나는 여러 번 사양하다가 마침내 그의 호의에 의뢰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내 곤경은 원만하게 피하였다. 그뿐더러 앞으로 사업을 하여간 기초까지도 얻었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면서도 남의 무거운 은혜를 지는 것은 심히 고통되는 일이다. 은혜란 본래 아무리 갚더라도 다 갚아지는 것이 아니지마는 그래도 이십, 삼십 시대의 은혜면 갚을 여망도 많지마는 오십을 바라는 병약한 몸으로는 은혜를 갚을 앞날이 금생에서는 넉넉치 못함을 한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얼마 후 나는 씨와 C 하루 저녁을 조용히 담화할 기회를 얻었다. 여러 말 끝에 그는 자기의 이십년 전의 과거를 말하였다. 그 말은 족히 만 사람에게 들릴 만한 말이라고 믿는다. 그는 이십년 전에 학업을 마치자 곧 관리가 되어가지고 몇 해를 지내다가 어떤 재산 있는 친구의 출자와 권유로 관리를 내어놓고 안동현에서 좁쌀무역상을 시작하였다. 출자라야 몇 천원에 불과하는 적은 자본 그러나 그는 점점 손님과 은행에 신용을 얻어서 자본의 몇 배나 되는 거래를 하게 되고 상당히 이익도 보게 되었다. 그리다가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의 소식을 듣고 마량인수수를 많이 무역하였다. 과연 수수 값은 날마다 올랐다. 사면 오르고 사면 올랐다. 이만하면 팔자, 다른 사람이 사서도 한두 번 더 이를 볼 만한 때에 파는 것이 상책이다. 더 가면 위태하다 하는 예감을 느낄 때에 웬일인지 평소에는 도무지 간섭이 없던 자본주가 이번 따라 강경하게 더 사들이기를 고집하였다. 그러나 졸연히 일어 나는 수수 값의 폭락 또 폭락 걷잡을 수 없는 폭락에 지금까지 남겼던 이익 뿐 아니라 밑천까지도 다 들어가고 나중에는 은행의 빚만 마이너스로 남게 되었다.

『그때에는 죽고 싶었어요. 남의 돈은 축을 내어 젊은 놈이 전정은 막혀버려. 자살할 길 밖에 없다고 꽉 믿어지더군요.』

C씨의 눈은 빛났다.

그래서 C씨는 침식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여관 구석에서 죽을 방법만을 생 각하고 있노라니까 L이라는 친구가 찾아왔다.

L씨는 C씨와는 그리 친분 있는 사람은 아니나 C씨를 위하여서 출자하였던 K씨와는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K씨는 이번 실패에 그만 낙담하고 손을 떼어버렸다).

L씨는 C씨를 위문한 뒤에,

『그래 자본을 얼마나 가졌으면 또 장사를 시작하겠소?』

하고 C씨에게 물었다.

『글세 이렇게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자본을 대어 줄만한 이도 있을 것 같지 아니하고 또 설사 대어 주는 이가 있다 하더라도 또 전자본주에게 대한 것과 같이 미안한 일이 생기면 죄에 죄를 더하는 일이니 호의를 받을 용기도 없소.』

하고 C씨는 대답하였다. L씨는,

『아니. 젊은이가 전정이 막혀서야 되겠소? 나는 당신이 참된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인 줄은 믿으니 만일 다시 장사를 해 볼 마음이 있거든 내가 토지 문권을 빌려 주리다. 돈은 없으니까 얼마쯤이면 다시 시작할 자본이 되겠소?』

하고 정성을 가지고 물었다.

씨는 씨의 이 호의에 CL 다시 생기를 얻어 한 이천원만 가지고 시작해 보았으면 하오 하고 대답하였다. L씨가 재산이 많지 못한 줄을 알 뿐더러 또 차마 많이 돌려 달라고 할 용기도 없었던 것이었다.

C씨의 말들 듣고 L씨는,

『그러면 그대의 몫으로 이천원, 내 몫으로 이천원, 도합 사천원 자본으로 그대와 나와 동사를 하는 것으로 장사를 시작해 보시오.』

하고 토지 문권과 도장을 C씨에게 내어 맡겼다.

여기까지 말하고 C씨는,

『내가 오늘날 밥술이나 먹게 된 것도 이 친구의 호의외다. 참말 재생지은 이지요. 그런데 이 친구는 내가 다시 시작한 장사에 이를 남겨서 자본의 배나 된 때를 타서 나를 찾아와서 인제는 내 땅 문서를 찾아 주오. 내가 동사를 하자고 한 것은 그대의 책임감을 덜기 위함이요. 나는 문서만 찾으면 그만이고 인제부터는 독립하여서 성공하시오 하였소. 그때에 이 친구에게 대한 내 감격이야 말할 나위 없지요.』하였다.

실업가인 C씨는 말을 꾸밀 줄을 몰랐다. 그는 내가 여기 적은 말보다도 더 간결한 말로 이 뜻을 표하였다.

그후 나는 어떤 기회에 C씨의 소개로 L씨를 만났다. 나는 L씨에게 대하여 의인에 대하는 정성으로 대하였다. 들으니 L씨는 C씨에게 대한 일 밖에도 예사 요새 사람으로 하기 어려운 일을 두 번이나 한 사람이었다. 그 대략은 이러하였다 ─.

L씨는 C씨를 도와 준 뒤에 얼마 있다가 안동현에서 은취린 중매점을 하였는데 어떤 기회에 크게 실패되어서 파산할 지경을 당하였다. 그때에 채권자들은 L씨의 평소의 신용을 생각하여서 중매점에 있는 재산만으로 판 셈을 하고 그 나머지는 탕감하려 하였으나 L씨는 듣지 아니하고,

『내게 재산을 한 푼이라도 남겨 놓고 남에게 손해를 주어서야 되느냐.』

하여 자기의 소유 토지를 다 들이대고 그리고도 부족한 것만을 탕감을 받았다. 그 뒤에 L씨는 다시 은취린에 몇 만원(삼만원)의 돈을 남기자 그는 그 돈을 가지고 곧 예전에 탕감해 줬던 채권자를 찾아서 그 탕감하였던 액의 돈을 갚으려 하였다.

『다 탕감한 것을 인제 무얼 그러오?』

하고 채권자들은 그 의외임을 놀라면서 받기를 거절하였으나 L씨는, 아니요 내게 돈이 『 , 생겼으니 탕감하였다고 남의 빚을 아니 갚을 수 없소. 사람이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이니 날더러 죄를 지고 죽으라 하시오.』

하고 고집하여 기어이 다 갚아버리고 말았다.

L씨는 그 후 잃었던 재산을 다 회복하였다가 또 한 번 실패하여서 토지 문 권까지 다 내어 놓고 무일푼이 되었으나 이때에는 취린소와 기타 채권자들이,

『의인은 도와야 한다.』

하여 L씨의 토지를 곧 처분하지 아니하고 몇 해를 그냥 두고 토지 가격이 오르기를 기다려서 L씨의 손해가 아무쪼록 적기를 기약하기로 하였다.

그리자 다시 좋은 시세가 와서 L씨는 마침내 큰 이익을 남겨서 졌던 빚을 다 갚고 그리고도 본래 있던 재산의 배나 늘었다.

그러나 배나는 그 재산보다도 L씨가 이 여러 번 실패에 얻은 신용은 비할 데 없는 큰 재산이다. L씨의 말이면 곧 현금이다. L씨가 무슨 일에 돈을 꾸어 달라고 할 때에 아니 꾸일 사람이 있을까. 이 신용이야말로 L씨로 하여금 수백만 원 재산가보다도 더 힘있는 사람이 되게 하였다.

『참 감격할 일이외다.』

하고 내가 L씨에게 진심으로 치사할 때에 L씨는 눈을 내리깔고 극히 겸손하게,

『천만에요. 모두 여러 친구의 도움으로.』할뿐이었다.

C씨와 L씨, 그네들은 잊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조선의 이천만이 다 이 두 분 모양으로 될 때에 조선 사람은 세계에서 믿어 주는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참 힘이다. 나 같은 무리는 이러한 사람들의 벗이 된 것만으로 영광을 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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