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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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呉相相[오상억]의 歸京[귀경]

[편집]

『황세민이 해적이었다?』

전보를 구겨쥐고 부르짖는 유불란 탐정이었다. 황교장의 과거가 결코 순탄한 생활이 아니었던 것만은 유불란도 벌써부터 짐작하고 있었으나 그러나 그와 같은 암흑의 일면을 가진 황세민인줄은 실로 예측도 못했던 일이었다.

이제와서 생각하니 저 싯누런 이빨을 가진 괴상한 사나이의 어딘가 해상 생활자인 듯 싶던 풍채와 해적이라는 무서운 과거를 가진 황세민과를 아울러 미루어 볼 때 황교장과 그 괴한과 의 관계가 단언할 수는 없으나 어렴풋이 머리에 떠오르는 유불란이었다.

그것은 두말 할 것 없이 황교장과 괴한은 같은 해적시대의 친구였을 것이며 한걸음 더 나아가서 괴한은 옛적 친구였던 황교장의 그 어떤 비밀, 그 어떤 중대한 약점을 잡아가지고 황교장의 손으로부터 적지 않은 금품을 번번히 갈취해 가곤 한것만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해적이었던 황세민교장! 음 ──』

하고 유불란은 다시 한번 신음하 듯 중얼거리며

『그러면 그 해적이었던 황교장과 해월의 손에 무참히 죽은 백영호씨와는 대체 어떠한 관계가 잠재해 있을까?……백영호씨와 황교장과 복수귀 해월과 ── 이 세 사람이 다 같이 꼭 같은 인물의 사진을 가지고 있다! ──』

유불란은 새로 한시가 거의 가까운 경성시가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광화문 네거리에 오다가다 선 가로등불이 여름밤 무더위에 피곤한 듯 조을고 있다.

그 때 탁상 전화의 벨 이 「 」 고요한 밤공기를 뒤흔들며 요란하게 울리었다.

유불란은 그 어떤 예감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수화기를 들었다.

『유불란입니다. 어디십니까?』

『명수댑니다. 주은몽씨를 경비하는 임세훈이 올시다.』

저윽이 흥분한 임경부의 목소리였다.

『네, 네, 그런데 이 밤에 왜 그러십니까? 무슨 변괴가?……』

하고 묻는 유불란의 말에

『아니올시다. 아직 변괴는 없지만, 하옇든 무슨 사건이 또 일어날 것 같아서요. …… 다른 게 아니라 오상억 변호사가 여행으로부터 돌아와서 지금 막 경성역에 내렸는데……』

『그래서?……』

『그런데 지금 오변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자기 신변이 대단히 위태롭다고요. 여행할 목적은 충분히 달했으나 여행 중 수차나 해월의 습격을 받아가면서 간신히 경성역까지 피해왔지만 경성역에서 명수대까지 오는 도중이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오변호사는 지금 살해를 당한 백남수씨와 똑같은 처지에 서 있는 사람이니만큼 어느 때 어디서 해월의 습격을 받을지 모르니까, 경비대를 경성역까지 파견해 달라는 전화가 외서 나는 은몽씨 때문에 이 자리를 떠날 수 없고 해서 본서로 전화를 걸어 십여 명의 경비대를 보냈는데…』

하는 임경부의 보고를 들은 순간 유탐정은

『나도 곧 가겠읍니다. 그런데 임경부께서는 절대로 은몽씨의 신변으로부터 떠나서는 안됩니다.!』

유불란은 전화를 끊으려다가 다시 말을 이어

『그리고 임경부께서 본서로 전화를 걸어 삼청동 정란씨를 경비할 순경 약 오 륙 명만 파견해 주시도록 힘써 주십시요!』

하는 말에 임경부는

『삼청동은 뭐 경비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해야 된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정란씨야 뭐 그리 위험하지 않은데요. 그뿐만 아니라 문학수가 계시고…』

『아닙니다! 은몽씨보다도 정란씨의 신변이 더 위태합니다! 그러니까 곧 수비를 해 주십시요!』

유탐정은 대답을 기다릴 여유도 없이 전화를 끊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태평동 자기 집을 뛰어나온 유불란 탐정은 때마침 지나가는 빈 자동차를 잡아 타고 깊어진 여름 밤거리를 곧장 명수대를 향하여 질풍처럼 달리고 있었다.

오변호사가 『 여행중 수차나 해월의 습격을 받았다!』

이 한마디가 얼마나 놀라게 했는가는 나중에 이르러서 알리워질 것이나 하옇든 그 한 마디가 지금까지 쌓아온 공상탑(空想塔)을 뿌리채 뒤집어 얻고야 말았던 것이다.

『해월이가 어느새 그리고 어떻게 오상억의 뒤를 따라 갔던가?』

그것이 유불란 탐정으로서는 도저히 풀을래야 풀 수 없는 한개의 신비였다.

만일 유불란의 추리(推理)가 사실과 어그러짐이 없다면 해월은 도저히 오 변호사의 뒤를 따라갈 여유가 없었던 때문이었다.

『모를 일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치 열병환자처럼 중얼거리는 유탐정은 그 순간까지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오상억의 보고에 눈앞이 아찔해짐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을 잊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겠다! 나의 출발점이 너무 공상적이었고 너무 탐정소설적이었던 탓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지금 탐정소설속의 인물이 아니고 한 개의 생생한 현실 속의 인물이다! 탐정은 모름직이「리알리스트」여야 한다. 「로맨티스트」여서는 아니된다!』

그것은 인적이 끊어진 한강인도교를 건느면서 한 유불란의 마음속의 외침이었다.

유불란의 머리는 혼란할대로 혼란하였다. 여기저기서 삐쭉삐쭉 나오는 수 없이 많은 의혹의 실마리를 대체 어떻게 처리하야 할지를 몰랐다.

『처음부터, 맨 처음부터 다시 출발해야 된다!』

그렇게 자신에게 타일렀을 즈음, 자동차는 벌써 명수대 공작부인의 저택 현관 앞에서 머졌다.

여기저기 정원내를 파수하는 경찰에게 인사를 받으며 유탐정은 현관을 들어서 이층 응접실로 올라갔다.

유불란은 층층대를 올라가면서 그 층층대의 한층한층이 자기와 공작부인 주은몽의 지나간「로맨스」를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아서 우울하기 비할데 없으면서도 할편「초코렛」맛처럼 달콤한 감정이 사르르하고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의 일에 지나지 못하였다. 해월은 지금 최후의 발악을 하려고 하지않는가.

응접실에는 임경부와 은몽이 마주앉아 있었다. 오변호사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오변호사가 돌아 왔다지요.』

유불란은 임경부와 은몽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그렇게 물었다.

『네, 아까 전화로도 간단히 이야기했지만 오변호사의 신변에는 항상 해월의 감시의 눈초리가 떠나지 않는다고요. ──』

임경부였다.

『이같은 밤중에 오시라고해서……』

하고 은몽은 적지않게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유불란을 바라보았다.

『오변호사가 여행을 떠난지 벌써 닷새나 되었지요?』

『네, 꼭 닷새만이에요.』

『그런데 ──』

하고 이번에는 임경부를 향하여 물었다.

『그 동안 은몽씨의 신변에는 아무런 사고도 없었읍니까?』

잠깐 무엇을 생각하던 임경부는

『아까 유불란씨 말씀대로 삼청동 정란씨 댁에 경비대를 파견했읍니다만은 몽씨 보다도 정란씨가 한층 더 위험하다는 이유는 대체 무엇입니까?』

『아 그것은 ──』

유불란은 순간 무척 당황한 얼굴로

『그것은 단지 나의 부질없는 추측이니까, 이 자리에서 뭐라고 단언 할 수는 없읍니다. 그러나……』

하고 뒷말을 이으려하던 바로 그 때였다.

경비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무사히 도착한 오상억 변호사가 종이장처럼 창백한 낯으로 응접실 안으로 들어 섰다.

창백한 얼굴로 허둥지둥 들어 서는 오상억 변호사를 맞이하는 임경부, 유불란, 주은몽 ── 일동은 엄숙한 표정으로 오상억을 바라보았다.

오상억은 의자에 몸을 던지 듯 털썩 주저 앉으며 그 때서야 비로서 자기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에

『후우 ──』

하고 긴 한숨을 지었다.

일동은 말이 없다. 여름 밤은 깊을대로 깊어가고 방안은 어지러운 침묵에 가득 찼다.

대리석처럼 싸늘하고 백납처럼 새파란 오상억의 얼굴, 한일 자로 굳게 다운 입술이 도무지 열릴 줄을 모른다. 그 굳게 다문 오상억의 입술을 임 경부는 호기심에 빛나는 눈동자로 쳐다 보았고, 은몽은 어린애처럼 울상을 하고 바라보았고 유불란은 , 가장 엄숙하고 가장 심각한 눈초리로 쏘아 보았다.

『여행하신 목적은 충분히 달하셨어요?』

하고 먼저 그 무서운 침묵을 깨뜨린 것은 은몽의 떨리는 목소리였다.

오상억은 시선을 돌려 싸늘한 눈초리로 은몽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다시 임 경부를 향하여 머리를 돌리며

『대단히 비겁한 말씀입니다만 이 집 주위의 경비는 든든 하겠지요?』

하고 비로소 입을 열었다.

『아, 그것만은 염려 마시오. 정복 사복을 한 십여 명이 정원과 정문 밖에서 엄중히 경비하고 있으니까요. 개새끼 한 마리라도 기어들 수 없을 만큼 수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는 임경부의 말을 그래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방안을 한번 휘 둘러 보며

『좀 더울지 몰라도 들창문을 전부 잠가 주시면 좋겠읍니다. 그리고 「도어」에도 자물쇠를 잠그고요.』

하고 청하였다.

『그렇게 안심이 안된다면 잠그지요. 그러나 그럴 필요는 조금도 없지요.

보시는 바와 같이 들창 밖에 정복 순경이 지켜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잠그기로 했으면 좋겠읍니다. 먼저번 남수군이 살해를 당했을 때도 「도어」를 잠그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 때 유불란이 일어 서면서

『만사는 든든히 하는게 좋겠읍니다. 좀 더워도 오상억씨 말씀대로 사방문을 꼭 잠급시다.』

하고 손수 돌아가면서 들창과「도어」를 꼭꼭 잠가버렸다.

『자아, 이만했으면 아무리 해월일지라도 이 방안에는 한발자욱도 드려 놓지 못할테니까 ──』

그렇다! 해월이가 아무리 위대한 힘과 초인적 재주를 가졌더라도 이같이 커다란 그물처럼 사민팔방을 봉해버린 방안에야 어찌 감히 침입할 수 있을 것이랴.

『자아, 안심하고 이야기 하십시요. 이 방은 요행이 천정에 구멍도 뚫리지 않았으니까!』

하고 도로 제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그제야 오상억도 어지간히 안심한 듯 「아이스ㆍ커피」를 한꺼번에 주욱 드리키고 나서 어디서부터 이야길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양으로 잠깐 동안 복잡하게 떠오르는 사념을 가다듬은 후에

『무엇보다도 먼저, 나는 이번 여행으로 말미암아 문제에 사진속의 처녀가 누군지를 알았읍니다.』

하고 일동을 바라보았다.

『누구예요, 그가?』

오상억의 말이 입술에 떨어 지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은몽은 재빠른 말씨로 그렇게 물었다.

『의외의 인물 ── 뜻하지 않았던 실로 의외의 인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보다도 한층 더 무서운 비밀을 나는 알았읍니다!』

『무서운 비밀?』

임경부와 은몽이 동시에 이렇게 반문하였다.

『그렇습니다.! 살인귀 해월이가 어떠한 인물인지를 나는 알고 있읍니다!』

『해월이가 어떤 인물인줄 알으셨다고요?』

하고 은몽은 연거퍼 물었다.

『알았읍니다. 그리고 해월이가 이 거치른 세파에 탄생하기 까지의 그 무서운 비밀, 그 악착한 숙명의 실마리를 발견했지요.』

『그럼, 해월이도 역시 백영호씨의 고향인 평양 ×천 사람입니까?』

하고 물은 것은 임경부였다.

『그렇습니다! 역시 ×천서 출생한 해월이었지요. 아아, 저 「부부암」에서 벌어진 무서운 죄악!』

경탄하 듯 이야기하는 오상억이었다.

『부부암의 죄악?』

오상억의 이야기에 항상, 그리고 누구보다도 놀라는 것은 은몽과 임 경부였다.

『부부암의 죄악이란 ── 뭐예요?』

『부부암의 죄악이란 ──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말 못 할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요. 그 부부암의 비밀을 탐지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탐지했기 때문에』

이것좀 보십쇼. 나는 하마터면 생명을 잃어버릴뻔 했읍니다. ──』

하고 오변호사는「싸이드ㆍ테이블」위에 놓인 자기의「파나마」모를 사람들에게 보였다.

『총알구멍이 아니에요?』

은몽은 놀랐다.

『그렇습니다. 해월이가 쏜 탄환구멍이지요.』

『아이 무서워! 어쩌면 ──』

은몽은 오그라질 듯이 몸을 웅크리는 것이었다.

다행이 탄환은 모자꼭대기 손잡이를 옆으로부터 꿰뚫었던 것이다. 한치만 더 낮았더면 탄환은 오상억의 이마를 산적처럼 옆으로 꿰뚫고 지나갔을 것이다.

『하마터면 큰일날뻔 했군요!』

하는 임경부의 말에

『그러나 나는 다행이 무사했지만……』

하고 다음 말을 이으려할 때

『아, 오상억씨 ──』

하고 그의 말을 막는 것은 그 때까지 잠자코 있던 유불란이었다.

『이야기 하시는 것을 중단하여서 죄송합니다만 오상억씨가 서울을 떠나서 부부암의 비밀을 탐지하기까지의 자세한 경로를 한번 체계있게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읍니다.』

오상억도 유탐정의 말을 옳다 여기고 잠깐동안 착잡한 머리속을 더듬으려는 듯 말을 끊었다가

『내가 ×천읍에 도착한 것은 그 이튿날 아침이었습니다. ──』

하고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천읍은 여러분도 아시다싶이 대동강 하류에 접한 조그마한 읍인데, 하구(河口)에 있는 진남포와 산을 하나 사이에 두고 서로 격리됐지요. 인가가 약 삼 사 백호나 될까요. 동편은 대동강에 임했는데 깎은 듯이 절벽이 솟아 있고, 남, 서, 북 삼면은 수림이 무성한 △산의 연봉이 평풍처럼 ×천읍을 빙 둘러 싸았읍니다. 평양서 진남포행으로 바꾸어 타고 진지동(眞池洞)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자동차로 약 한 시간 동안 산골짜기로 들어가면 ×천읍인데 ──』

하고 오상억은 거기서 잠깐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천읍에 도착한 것은 오전 열시 였읍니다. 얼마동안 읍내를 이리저리 싸다니다가 금강 여인숙(金剛旅人宿)이란 조그마한 간판이 붙은 객주집 비슷한데 들어가서 아침겸 점심을 먹은 후에 주인을 불렀지요. 이집 주인으로 말하면 나이가 한 삼십 여세 쯤 되어 보이는데 이십 여년 전까지 이 고을에 살고 있던 백영호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더니만, 그는 잠깐동안 백영호 백영호…… 하고 중얼거리더니 아, 저 지금 서울 어디서 산다는 그 백영호씨 말씁입니까 하고 그때야 비로소 생각난다는 듯이 마루 끝에 걸터 앉으며 의아스럽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

오상억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리고 주인은 나를 의아스럽다는 『 얼굴로 쳐다보면서 거 이상하외다, 요 얼마 전에도 서울서 내려왔다는 젊은 신사 한분이 우리집엘 들렸었는데 그분도 역시 백영호라는 사람에 대해서 여러가지 묻습니다. 나는 원래 타고을에서 들어온 사람이 되어서 이십 년 전의 일은 모르는데요. ── 하는 것을 보니 그이가 신문을 통 읽지 않는다는 사실과 얼마 전에 서울서 왔다는 사람이 남수군이었던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읍니다. 그래 이번에는 그 고을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살고있는 면장을 찾아 갔지요. 면장은 연세가 사십을 훨씬 넘은 사람으로서 내가 명함을 내고 백영호씨의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벌써 저 편에서는 나를 신문지상으로 안모양인지, 아 선생이 오상억씨십니까 하고 저윽이 놀라는 얼굴로 백남수씨가 또 살해를 당했다지요 하고 신문 지상에서 읽은 지식을 나열 하였읍니다. 면장의 이야기를 들은 즉 남수군도 역시 그를 찾아갔다는 것인데 자세한 사정은 모르나 어느 정도까지 백영호 씨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면장의 입장으로서는 이번 백남수 피살사건에 관한 보도에 접하여, 자기의 신변도 대단히 위험하다는 말을 하면서 그때 남수군에게 한 것과 대동소이한 이야기를 하였읍니다. ──』

거기까지 이야기한 오상억 변호사는 잠깐 동안 말을 끊고 일동을 바라보았다. 호기심에 가득찬 임경부와 은몽의 눈동자였다. 그러나 유불란만은 아무런 감동의 빛도 보이지 않고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오상억의 이야기에 귀를 기우리고 있다.

면장이 오상억에게 한 이야기를 대강 추려서 말하면 다음과 같았다.

백영호가 ×천읍을 떠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이십 여년 전이었다. 그런데 백영호는 어려서 부터 양친을 여윈 고아로서 그의 백부인 백준모(白準模)의 손에서 자란 사람이었다고 한다. 칠 팔 십만원 ── 아니 백만 원에 가까운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본래 백영호씨의 아버지 백창모(白昌模)도 그만한 재산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러나 백창모는 천성이 호탕하여 계집과 도박과 술로 말미암아 재산 전부를 탕진하고 그가 죽을 즈음에는 겨우 사오만원 밖에 남지 않았다.

백창모가 죽은 것은 아들 백영호가 겨우 여섯 살 되는 해 봄이었다. 백창모의 형 백준모는 조카 아들 백영호를 가련하다하여 자기집에 데려다가 자기 친 아들처럼 길렀던 것이다. 더구나 어렸을 때부터 천성이 총명한 영호를 삼촌 백준모는 자기 친아들 문호(文豪)보다도 더 귀여워하고 아끼었다.

백준모의 외아들 문호는 영호보다 세살 위였다. 문호와 영호는 친형제 처럼 같은 집에서 자랐다.

그런데 그들이 점점 성장하여 모두 이십 고개를 훨씬 넘어선 어떤 해 여름 백준모의 친아들 문호는 , 불행하게도 대동강에서 멱을 감다가 그만 다리에 쥐가 나서 영영 돌아오지 못할 물 귀신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백준모의 비탄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친형처럼 따르던 문호의 죽엄을 가장 슬퍼한 것은 영호였다.

『그 이듬해 가을, 백준모마저 세상을 떠난 후 삼촌의 유산을 상속한 백영호씨는 읍내서 장가들어 남철씨와 남수군과 정란씨를 낳아가지고 ×천읍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오상억은 이야기를 끊고 담배를 붙여 물었다.

『그럼, 그 사진속의 인물은 누구예요?』

하고 물은 것은 은몽이었다.

『네 ── 그건 그 때 나는 문제의 사진을 면장에게 내보이었더니만 면장은 아, 그것 말씀입니까? 그것은 먼저 남수씨도 가지고 왔던 사진인데요 하고 그는 사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의외의 이야기를 하였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