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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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次[제삼차]의 慘劇[참극][편집]

이리하여 영호의 머리속에서 고이고이 자라던 무서운 야심은 마침내 엄씨 댁의 무남독녀 여분을 능욕했을뿐만 아니라, 사촌형 문호를 부부암 절벽으로부터 영원히 대동강 물결속에 장사지내고 말았다.

그러한 무서운 죄악, 저릿저릿한 비밀을 아는 자는 이 세상에 백영호 자신과 무심히 서 있는 부부암 밖에 없으리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삼촌의 백만원에 가까운 유산 상속권은 이 영호에게 있다!』

그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부르짖었다.

더구나 그 날밤 문호가 아버지 백준모에게 쫓겨났다는 사실을 안 영호로서는 더욱 구실이 좋았다.

그런데 문호형님은 『 , 대관절 어디로 갔을까요? 노자나 착실히 주었읍니까?』

영호는 걱정이 되어 못견디겠다는 듯이 그러한 말을 때때로 삼촌에게 하였다.

『어딜 가서 빌어 먹던지, 그건 내 알바 아니다! 문호 놈은 내 아들이 아니니까 ── 빌어 먹다가 먹을 것이 없으면 굶어 죽겠지!』

그렇게 말로는 호기있게 내뿜는 백준모도 마음 속으로는 무척 쓸쓸했던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설마 나가란다고 정말 나가버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형님도 홀아버지를 혼자 남겨두시고, 정말 나가버리면 어떻게 하겠다고 ──』

그렇게 문호를 꾸짖은 영호였다.

『음 ──』

하고 백준모는 신음하 듯

『내 자식이 원수의 딸과 정을 통하다가 쫓겨났다면 세상에 대할 면목이 없어. 그러니까, 죽었다고 그래라 죽었다고! 대동강에서 멱을 감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물에 빠져 죽었다고 그래!』

영호는 무심중에 한 삼촌의 말에 가슴이 뜨끔하였다.

『그렇게라도 꾸며 놓아야 내일이라도 동네 사람들을 볼 낯이 있지. 에이 집안이 망할라면 이럭저럭 망하는 거야!』

이리하여 동네 사람들은 문호가 정말 대동강에서 멱감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영호는 꿈에도 모르리라. 자기가 부부암에서 범한 무서운 죄악을 여분네 집 머슴 홍춘길이가 숲속에 숨어서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목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영호는 통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춘길이는 또 춘길이로서의 흉산(胸算)이 있었다.

문호가 벼랑기슭에 돋아난 조그마한 소나무가지를 죽어라고 붙잡고 영호에게 살려달라고 외치던 그 순간, 춘길이는 금시라도 뛰어 나가서 악마 백영호의 대가리를 갈라놓고 싶은 충동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춘길이는 다음 순간

『참아라 참아라! 참기만 하면 너는 일평생 밥걱정을 하지 않고도 살 수가 있지 않은가!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고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자기자신을 억제하였던 것이다.

그날밤 춘길은 자기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너 남의 집 머슴살이에 싫증이 안나니?』

『싫증이 나도 할 수 없지 뭐 ──』

『할 수 없긴 왜 할 수 없어? 일평생 놀고 먹었다, 일평생 놀고 먹었어!』

『또 몇 푼 땄나보다.』

『흥! 투전판에서 생긴 돈으로야 일평생 먹고 사나? 가만있자! 너 백만 원의 십분의 일, 아니 십분의 일은 좀 과하지, 너 백만원의 백분의 일이 얼만지 아니?』

『미쳤나봐! 갑자기 ──』

『멍텅구리가 그런 걸 알면 멍텅구리 소리를 안 듣게. ── 만원이야 만원!

십만냥 몰라? 십 만냥! 히, 히, 히, 히 ──』

십원짜리 지폐를 모르는 홍춘길이의 눈앞에는 열냥(일원)짜리 종이돈 일만장이 함박눈처럼 우수수하니 자기 마당 위에 떨어지는 환상을 그리면서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하였다.

흩어진 치마 허리를 움켜 쥐고 부부암으로부터 뛰어 내려온 여분은 자기 방으로 가만히 들어가서 이와같은 간단한 유서를 써 놓고 비겁한 악마 백영호로부터 받은 치욕을 금할바 없어 자기의 더러운 몸을 죽음으로서 청산 하리라 결심하였다.

그러나 여분에게는 죽음까지 자유롭지 못하였다.

양잿물 그릇을 들이키려는 바로 그때, 안방에서 주무시던 어머니가 왈칵 달려 들었던 때문이다.

『이년아! 네 에미가 불쌍하다고 생각지 못하느냐? 죽기까지 결심한 일이라면 살아선들 왜 못한단 말이냐? 백문호가 그렇게도 그립다면 내 날이 밝거던 달려가서 머리를 땅에 묻고 청혼이라도 하겠다! 이년! 원수의 앞에서 머리를 굽히겠다는 이 홀에미가 가엾지도 않느냐……』

『아니예요? 어머니 아니예요!』

여분은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흑 하고 쓸어졌다.

어머니는 그 때야 옆에 놓인 여분의 유서를 들여다 보았다.

『두 사나이를 보았다! 아, 이년아 두 사나이를 보다니……』

여분은 얼마 동안 흑흑 느껴 울다가 마침내 오늘밤에 생긴 일을 숨김없이 어머님!

한 계집의 몸으로서 두 사나이를 맞이한 이 불효 여분은 죽소이다.

죽어서 행여 아버님 곁으로 가게되면 죄 많이 지은 이 몸을 한번 더 죽여 줍소서 하고 아버님께 빌겠오이다.

어머니에게 고백하였다. 어머니는

『음 ── 영호! 그 놈은 우리, 엄씨 조상에게 복수를 했구나!』

단지 그것 한마디뿐, 그리고는 이를 바드득하고 갈면서 입술을 꼭 깨물었다.

날이 밝자 동리 사람들이 어젯밤 영호와 더불어 멱감으러 나갔던 문호가 물에 빠져 온데 간데 없이 죽어버리고 말았다는 소문을 듣고 떠들면서 문호의 시체를 건지러 강으로 몰려 나갔다.

『문호가 죽었다?……』

이 한마디는 실로 여분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실이었다.

『문호가 언제 어느 때에 영호와 함께 멱을 감으러 나갔던가?…… 어젯밤 자기는 자정 때부터 문호와 같이 부부암에서 약 한시간 동안이나 이야길 하고 있었고…… 그리고는 부부암에서 내려와 문호와 헤어진 바로 그 때, 영호에게 끌리어 다시 부부암에 올라갔다가 모욕을 당하고…… 다시 쫓겨 내려올 때, 문호는 어딜 가는지 봇짐을 지고 뛰어 올라가지 않았던가……』

거기까지 상념이 도달했을 순간,

『영호다! 영호가 죽였다!』

하고 여분은 외쳤던 것이다.

비록 보지는 못했으나 여분은 두 눈으로 본것처럼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복수다! 복수를 해야한다!』

여분은 자기가 죽지 않은 것을 무엇보다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나 조금 후에 머슴 홍춘길의 이야기를 듣고난 여분은 자기의 직감이 한조각 한조각 깨어져 나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 그래서 백씨댁 큰 도령은 아버지에게 쫓겨나던 길에 아가씨를 한번 더 만나보시겠다고 하시면서 찾아 오시다가 다릿목에서 저를 만났읍니다.

그래 저도 애기씨가 안돌아와서 걱정이라고 그랬더니, 부리나케 부부암으로 다시 올라가시길래 저도 걱정이 되어 뒤따랐읍니다. 도중에서 저는 애기씨를 모시고 돌아오려다가, 그런 때 저 같은 놈이 나서기가 뭣해서 숲속에 숨었다가 애기씨가 내려오신 후에 부부암까지 따라 올라갔더니만, 큰 도령과 작은 도령이 뭐라고 아웅다웅 하시다가 큰도령은, 에이 너 같은 놈도 사람이냐 하고 침을 탁 뱉으시면서, 다시는 이 놈의 고향에 발을 안들여 놓겠다고요. 그러시곤 남포로 가는 앞재길로 봇짐을 지시고 떠났읍니다. ── 그런 걸 아마 백씨댁에서는 쫓아 버렸다고 해서는 동리사람 볼 낯이 없으니까, 물에 빠져 돌아가셨다고 해두는게 나을 것 같으니까 그랬을 겁니다. 그러니까 애기씨 조금도 염려 마십시요. 다시 발길을 안하시겠다고 그러셨지만 애기씨를 모시러 큰도령님은 , 이제 또 돌아오실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요. 제 말이 맞나 안맞나』

머슴 홍춘길의 이야기를 듣고야 여분은 비로소 모든 것을 안 듯 싶었다.

춘길의 말이 사실이라면 문호는 죽지않고 살아 있으니 어느땐가 한번은 자기를 찾아 주리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홍춘길의 흉악한 거짓말인줄이야 여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구나 열길이나 되는 높다란 벼랑 밑으로 떨어진 문호의 시체를 그 후 사흘 동안이나 찾아 보았으나 물살이 센 탓이었는지, 통 건질 수가 없었던 것이 한층 더 홍춘길의 말을 여분으로 하여금 신용케 하였던 것이다.

여분은 매일매일 문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돌아와서 자기를 거느리고 먼 나라로 떠나 주기를 고대하였건만 벌써 물귀신이 되어버린지 오랜 문호가 여분을 찾을리는 만무하였다.

여분의 어머니는 그 날 밤, 영호가 여분이의 몸뚱이에 저질러 놓은 비밀을 꿈에라도 입 밖에 내서는 안된다는 것을 머슴 춘길에게 다진 다음에 그의 입을 봉하는 의미로 적지 않은 금액을 춘길이에게 쥐어 주었다.

『원 천만에 ── 이런 대금을…… 조금도 걱정 마십시요. 제 입이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애기씨의 비밀을 누설할리야 있겠읍니까? 원, ……』

춘길은 이처럼 뭉텅이 돈이 자기 주머니에 슬슬 들어오게 된 자기의 팔자를 늘어지게 행복하게 여겼다.

한개의 비밀을 지켜 줌으로서 엄씨와 백씨 사이를 공교롭게 헤엄쳐 다니는 홍춘길의 계획은 예상보다도 더 정확히 들어 맞았던 것이다.

그가 백영호를 붙잡고 그 날밤 부부암에서 일어난 무서운 비밀 ── 사촌형 백문호를 벼랑밑으로 떠밀어 죽인 백영호의 죄악을 마치 눈앞에 보는 듯이 설명했을 때 영호의 놀람이 어떠했으랴. 홍서방이 근 삼십 년 동안 백영호로부터 받은 금액은 실로 거액에 달하였다. 현재도 그는 광산엘 갔다옵네 하고 어디론가 나갔다 오면 그의 수중에는 일 이천원은 반듯이 있었다. 물론 백영호로부터 갈취한 돈이었다.

『모두가 참을성 있는 탓이지! 그때 ── 문호가 벼랑 밑으로 떨어질 때, 젊은 혈기에 못견디어 벌컥 뛰쳐 나갔던들 내 팔자는 이렇게 늘어지진 못했을 걸!』

그는 늘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것은 하옇든 부부암 사건이 있은지 보름 후에, 여분네 일가는 얼마 되지않는 가재를 정리해 가지고 대대손손이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어머니가 딸 여분일 데리고 부랴부랴 고향을 떠난 것은 여분이의 뱃속에 벌써 삼개월이나 넘은 문호의 피가 고이고이 자라고 있었던 때문이다.

처녀의 몸으로서 ── 더구나 원수의 자식 문호의 피를 받은 여분의 신세를 어머니는 무척 미워하고 무척 가엾이 여겼다.

아무리 원수의 피라한들 피 그 자체에야 무슨 죄가 있으랴. 너그러우신 어머니는 여분이의 배가 더 커지기 전에 산설고 물설은 타향에 나가서 해산시키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천 골을 떠나기 전날 밤, 여분은 어머니 몰래 부부암에 올라가서 자기의 배를 쓸어 보고 떠나간 낭군 문호의 옛자취를 더듬으면서 한루밤을 눈물로 세웠다.

언제 돌아올런지 알 수 없는 문호를 그리워 하면서 여분이가 다시 집으로 내려오던 도중에 그는 홍춘길이의 처를 만났다.

그때 춘길이의 처는 내일 아침엔 영원히 ×천읍을 떠나버릴 주인 애기씨 여분의 귀에 무엇을 속삭이었던가!

남편 춘길이가 절대 입 밖에 내서는 안된다고 열번 스무번 다진 무서운 비밀 ── 영호의 간계로 말미암아 그렇게도 그리던 문호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무서운 사실을 알았다.

『역시 그랬던가?……』

여분은 놀라는 대신, 파리한 입술을 피가 흐르도록 꼭 깨물었다.

『영호야! 두고 보아라!』

여분이가 뱉은 이 한마디 ── 이 한마디야말로 이 기나긴 이야기의 근원이 되는 말이었으며 사랑의 처녀 여분으로 하여금 복수의 권화(權化)를 만든 무서운 서언(誓言)이었다.

고향 ×천읍을 떠난 여분이 모녀는 평양 옥리(玉里)에서 셋방살이를 하면서 여분이의 해임기(解姙期)를 기다렸다.

한달 두달 점점 커가는 자기의 배를 드려다 볼 때마다 여분은 이를 악물고 악마 백영호에게 복수하기를 수 없이 부르짖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남편 문호를 위하여,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백가에 모욕을 당한 엄씨 조상을 위하여 여분은 어떠한 일이있더라도 복수를 해야만 되겠다고 신명에게 서약하였다.

날이 가고 달이 옴에 따라 여분의 배는 커질대로 커져서 그 해 겨울 함박눈이 창밖에 소리 없이 내리는 날밤 여분은 마침내 아기를 낳았다.

그것은 옥과 같은 사내였다.

『애비없는 자식!』

얼마 후 정신을 차린 여분은 어린애를 물끄러미 드려다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보기 싫다! 울지 마라!』

그렇게 딸을 꾸짖은 어머니 자신도 얼굴을 가리고 코를 풀었다.

그러나, 아아 어찌 그리도 무심한 하늘인가!

여분은 해산한지 사흘만에 산후가 순조롭지 못하여 그만 열 아홉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여분은 세상을 떠나면서 비로소 저 부부암에서 일어난 백영호의 악착한 범죄를 어머니에게 이야기하였다.

『어머니, 저는 비록 가슴 속에 사무친 원한을 풀지 못하고 죽더라도 어머니만은 오래 오래 살아계시다가 얘가, ……얘가 자라거든 이 어미를 대신하여…… 그 놈 백영호게…… 백영호에게 이 어미의 원수를……』

『알았다. 알았어! 어서 편안이 죽기나 해라! 네 원수는…… 얘가…… 얘가 갚아 주리라!』

이리하여 어머니와 딸은 골수에 사무친 원한에 피눈물을 흘리면서 유명의 세계로 영원히 작별하였던 것이다.

한편 백영호는 어떻게 되었는가.

여분이 모녀가 ×천읍을 떠난지 일년 후에 삼촌 백준모가 세상을 떠났으므로 영호는 백만원에 가까운 재산을 상속하였다.

홍서방 춘길이의 말에 의하면 그 처럼 건장하던 백준모가 그와 같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도 제눈으로 보지 못했으니까 단언할 수는 없느나 필경 백영호의 잔인한 작위(作爲)가 숨어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백영호는 그후 읍내 어떤 관리의 딸과 결혼하여 남철(南鐵)(실종선고를 받은 남수의 형) 남수와 정란일 낳아 가지고 서울로 이사하여 갔는데, 그는 어렸을 때부터 조각(彫刻)에 남달리 우수한 재주를 가졌으므로 중앙으로 가서 그 방면에 대한 연구를 하겠다는 것이 고향을 떠난 유일한 동기였었다고 한다.

백영호가 ×천골에 살고 있을 때는 두말 할 것도 없이 그가 서울로 이사하여간 후에도 홍서방은 어느때나 생각나면 찾아 올라가서 물질적 보조를 적지 않게 받았다고 ── 이상이 홍서방의 이야기를 오상억 변호사가 생략하고 부언하여 가면서 꾸며놓은 「로맨스」였다. ── 백씨와 엄씨 사이에 서리어 있는 무서운 「로맨스」의 대강 줄거리.

홍서방은 그 때 술잔을 꿀꺽 드리키면서

『그때 여분 애기씨가 낳은 사내 자식 ── 그가 바로 해월이라는 승명(僧을 가지고 나타나서 名) 백영호씨를 죽이고 남수씨를 죽인 그 사람이지요?』

하고 얼굴을 들었다.

『그때 여분이가 낳은 사내 아이가 해월이었다?』

홍서방의 기나긴 이야기를 듣고난 오상억은 그 때야 비로소 엄씨와 백씨 사이에 얽히어 있던 모든 비밀을 알았다.

오상억은 시계를 꺼내 드려다 보았다. 길기 쉬운 여름밤은 벌써 자정이 훨씬 넘었던 것이다.

아침 여섯시 차로 상경할 예정이었던 오상억은 ×천읍을 떠나기 전에 문제의 부부암이란 곳을 한번 보고 올 셈으로 홍서방에게 그 뜻을 말했더니

『아, 그러시지요. 다행이 달도 밝고 한데 ── 』

하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리하여 오상억과 홍서방은 읍내로 흐르는 개울을 끼고 동편쪽 대동강을 향하여 걷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홍서방은 그때 여분이가 평양서 해산한 사실을 대체 어떻게 알았소?』

하고 묻는 오상억의 물음에 홍서방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여분이가 그처럼 어린애를 낳고 덜컥 죽고보니 여분이 어머니는 생각다 못해 이왕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머슴 홍춘길의 아내를 몰래 데려다가 약 일 년 동안이나 어린애에게 젖을 먹여 길렀다고 한다.

그때 홍춘길의 처도 바로 해산한 뒤라, 일은 무척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 후 여분이 어머니가 어린아일 데리고 어디로 갔는지 그건 도무지 알 수 없읍니다. 지금까지 종무 소식입니다. ──』

『그러면 그때 여분이가 낳은 어린애가 해월인줄은 어떻게 알았소?』

『그거야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까 ── 그렇다고 똑 잡아 뗄 수는 없지만 ── 그 후 이런 일이 있었지요. ── 백영호씨가 이사하여 서울로 올라간 지 사 오년 후에, 해월이라고 부르는 열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애기중 한 사람이 이 ×천골에 나타나서 백영호씨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묻고 간 적이 있읍니다. 그때 나는 무슨 볼일이 있어서 몇일 동안 평양엘 들어 갔었는데,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그것이 여분씨의 아들 같애요』

그런 이야길 하면서 두 사람은 숲새길을 더듬어 부부암으로 올라갔다.

『그러면 여분의 호적은 아직도 이×천읍에 있는가요?』

『예 있고말고요.』

『그럼 그때 여분이가 낳은 아들의 이름은 호적상 무엇이라고 적혀 있소?』

『그것이 말입니다. 호적에는 도무지 오르지 않았답니다. 그것도 생각하면 그럴 듯 하지요 . 애비어미 없는 애를 ── 더구나 원수의 피를 받아 난 애를 왜 호적에까지 올리겠읍니까? 그러니까 호적상으로야 여분 아기씨는 깨끗한 처녀로 죽었지요.』

바로 그 때였다.

홍서방과 오상억이 부부암 앞에서 캄캄한 대동강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던 바로 그 순간 ── 등뒤로 부터

『탕 ── 』

하는 한방의 권총 소리가 고막을 찢는 듯 울리었다.

오상억은

『앗!』

하고 외치면서 땅위에 납작 업디었다. 오상억의「파나마」모가 휙 하고 땅 위에 나부끼면서 떨어졌다. 하마트면 총알은 오상억의 이마를 깰번 하였다.

『탕!』

하고 또 한방의 총소리가 울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벼랑 기슭에 섰던 홍서방의 몸뚱이가 짚으로 만든 인형처럼 흿뚝 하고 허리를 꺾으면서 희미한 달빛을 등지고 벼랑 밑으로 툭 떨어져 내려갔다.

『해월이다! 복수귀 해월이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면서 아무런 무기도 갖지 못한 오상억은 땅 위를 벌벌 기어서 반대편쪽 숲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탕! 탕! ── 』

해월의 총소리가 저릿저릿하게 오상억의 등뒤를 따라 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