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22장
무서운 想像[상상]
[편집]은몽은 잠자코 잠깐동안 유불란을 비들기처럼 말똥말똥 쳐다보다가
『그것이 무슨 말씀인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
하고 정색을 하였다.
『탐정독본 제삼과 쯤에 이런 과목이 한대목 있어도 무방하지요. 즉 ── 탐정은 절대로 사건 중의 인물과 연애를 하지 말것 ──』
그리고 유불란은 앞에 놓인 「아이스·커피」를 한숨에 쭈욱하고 드리켰다.
『그것은 또……』
무슨 의미냐고 물으려는 은몽의 말을 그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킴으로서 무시하고 들창 곁으로 걸어가서 캄캄한 바깥을 내다 보았다.
광화문 네거리는 그리 화려하지는 못했으나 이 무더운 밤, 이 답답한 방안에 은몽과 단 둘이 마주앉아 있는 것 보다는 무척 시원해 보였다.
야간비행이 있나보다. 「푸로펠라」 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온다.
은몽도 자리를 떠나 유불란 곁으로 걸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후우 ──』
하고 유불란은 한숨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아, 저 「푸로펠라」가 그립다! 「로빈손·크로소오」는 연애를 하였던가?』
그리고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묵묵히 서서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얼마동안 그리고 서 있다가 은몽은
『비행기를 타고 「로빈손·크로소오」처럼 무인도로 가고 싶지는 않으세요?』
하고 역시 긴 한숨을 지었다.
『누가?』
『유선생 말씀이예요. ──』
『혼자서요?』
『아아니 ──』
『누구하고 말입니까?』
『유선생이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시는 사람과 ──』
『오상억 변호사가 들으면 ──』
『유선생!……』
은몽은 돌연 그렇게 부르면서 유불란의 품안에 얼굴을 파묻었다.
『저를 데리고……저를 데리고 먼 곳으로……』
정열의 불덩어리 처럼 돌변한 은몽이었다.
『남양도 좋고 북양도 좋고……먼 데로……먼 데로 저를 데리고 가 주세요!』
그러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유불란이었다.
『오상억은……오변호사는 제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니예요! 정말 아무것도 아니예요!』
『약혼을 하신다면서 그런 말씀을 함부로 하시면 못 쓴답니다.』
『유선생이……지금 유선생이 저를 건져주시지 않는다면, 정말 그이와 약혼할 것 같애요. 그러니까 지금, 오늘밤이라도 저를 어디로든지 데리고 가세요!』
은몽은 운다. 울면서 유불란의 팔을 미친 듯이 잡아 흔드는 것이다.
그러나 돌부처처럼 서 있는 유불란이었다.
『먼 곳으로……해월이가 따라 오지 못할 먼 곳으로……』
『아, 그러면 은몽씨는 해월이가 무서워서?』
『아니, 그것도 있지만……유선생은 저의……』
그 때 유불란은 은몽의 어깨를 슬그머니 떠밀며
『은몽씨!』
하고 가장 엄숙한 목소리로 불렀다.
『…………』
『아까도 말했지만, 해월은 은몽씨를 절대로 해하지 않으니까……그 때문이라면 남양도 필요없고 북극도 소용없읍니다.』
『아녜요! 그것도 있지만……아아 수일씨!』
은몽의 안타까운 부르짖음이었다.
『수일씨, 저를……은몽을 버리지 마세요! 네? ──』
그러면서 은몽은 「테이블」 위에 쓰러져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유불란은 어찌할바를 모르는 듯 얼마동안 멍하니 은몽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마침내 은몽의 들먹거리는 어깨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은몽씨 사랑도 『 ! 물론 귀중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지금 한가로이 「러브·씬」을 연출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자아 은몽씨! 울지 말고 나의 말을 들어 주시요. 이제부터 살인귀 해월이가 절대로 은몽씨를 해치지 않는다는 중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릴테니까 ──』
그러나 은몽은 애닮게 흐느껴 울뿐, 통 얼굴을 들지 않는다.
『자아 ─ 은몽씨, 제 말을 자세히 들어 보시요!』
하고 유불란은 「테이블」위에 엎드린 은몽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시가렛·케이스」에서 담배를 한꼬치 꺼내 붙여 물었다.
한목음 깊이 빨아 드리키고 그것을 다시 후하고 기운차게 내뱉으면서 혼잣말 처럼 중얼거렸다.
『해월! 그렇습니다! 해월은 너무도 잔인한 복수귑니다. 그런데 은몽씨!』
하고 또 한번 은몽을 불렀다. 그 때야 비로소 은몽은 눈물어린 얼굴을 가만히 들었다.
『은몽씨도 언제가 그런 말을 하셨지만, 해월은 실로 나같은 자의 적이 아니지요. 해월은 나보다도 곱절이나 영리한 인간입니다. 해월은 내가 생각할 바를 미리 생각했고 내가 취할 행동을 미리부터 짐작하고 있었던 때문입니다.』
『그러면 유선생은 해월이가 어디 있는지, 그 곳을 알고 계셔요?』
애욕에 타오르던 은몽의 눈동자가 이번에는 그 어떤 호기심으로 말미암아 빛나기 시작하였다.
『아니, 이것은 공상을 즐겨하는, 나의 하나의 빛나는 공상 ── 너무도 무서운 공상일 따름이지요. 나의 이 무서운 공상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들어 맞을런지 그것은 물론 단언할바는 못 되지만 하옇든 ──』
하고 점점 해월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은몽을 기뻐하며
『하옇든 우리는 다시 한번 사건 전체를 천천히 재음미하여 보기로 합시다. 그리고 사건의 주인공인 은몽씨의 의견도 들을 겸 ──』
그리고 유불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뚜벅뚜벅 한 발자욱 한 발자욱 힘을 주어가면서 걷기 시작하였다.
『자아 은몽씨! 우리는 무엇 보다도 먼저 사건이 돌발한 맨처음 장면부터 검토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읍니다. 맨 처음 장면 ── 그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은몽씨의 생일날 밤 ── 그것은 틀림 없이 지나간 사월 보름날 밤이었지요. 그 날밤 백영호씨는 약혼자인 은몽씨의 탄생을 호화롭게 기념하려고 조선서는 처음 보는 가장무도회를 열었읍니다.』
은몽은 묵묵히 앉았을 뿐 ── 은 몽씨 나는 이제부터 『 ! 그날밤에 일어난 사건의 전말을 은몽씨와 함께 좀 자세히 연상해 보고자 합니다. 만일 나의 말에 그릇됨이 있거든 염려 마시고 정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날밤 ──』
그리고 유탐정은 자기의 착잡한 머리를 정돈하려는 듯이 한 번
『에헴.』
하고 기침을 하였다.
『그날밤 나는 화가 이선배라는 가명으로 무도회에 나타났었읍니다. 내가 그런 가명과 가장으로 나타난데 대한 이유는 저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오상억 변호사의 물샘틈 없이 치밀한 논리로 말미암아 충분히 설명 되었으니까, 여기서 다시 그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간단히 이야기 해둘 것은 그 때 내가 ── 아니 공작부인 주은몽의 애인이었던 청년화가 김수일이 최후의 다짐을 다지고자 가장 무도회를 기화로 여기고 화가 이선배라는 이름으로 은몽씨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유불란은 그리고 어쩐지 몹시 창백하여 보이는 은몽의 얼굴을 일순간 쏘아보고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나는 안내인을 따라 「홀」에 들어서서 이구석 저구석 은몽씨를 찾아 보았읍니다. 그러나 어쩐셈인지 무도회의 주인공인 은몽씨의 그림자를 도무지 발견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저편 파초나무밑 「소파」에 걸터 앉아 혼자 차를 마시고 있던 남수군에게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은몽씨는 한차례 춤을 추고 다시 안으로 들어 갔다는 것이었읍니다. 그래 나는 하는 수 없이 은 몽씨가 다시 「홀」에 나타나기 기다리면서 남수군과 농담을 하고 있었읍니다.
그 때 남수군은 나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속삭이었지요.』
『무슨 이야기예요?』
은몽은 시선을 들었다.
『가장 무도회에 참석한 인물들을 대개는 다 알아 보겠으나, 그 중 두 사람만은 도무지 그 정체를 알아보지 못하겠다고요.』
『아, 저……』
『그렇습니다! 하나는 두말 할 것 없이 이선배로 가장한 나였고, 또 하나는……』
『저 ─ 도화역자……』
『그렇습니다!』
거기서 유탐정은 잠깐 말을 끊었다가
『그렇습니다. 저편 「뺀드」 바로 옆에 서서 사람들의 춤추는 양을 히죽히죽 웃으면서 바라보고있던 그 도화역자 ── 타오르는 듯한 주홍색 도화복에다 역시 주홍색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매고 흰떡 같은 얼굴에는 간판처럼 색칠을 하고 ── 그 인물이 대체 누군지를 알아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요.』
『해월!……』
하고 은몽은 몸을 웅크리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저 잔인무도한 복수귀 해월이었던 사실을 사람들은 몰랐읍니다. 그러는 사이에 그 도화역자는 나와 백남수군이 서 있는 이 쪽을 힐끔 힐끔 바라보면서 복도로 빠져나가고 말았지요. 그러니까, 그 후 조금 지나서야 「홀」에 나타난 은몽씨가 물론 그 도화역자를 보지못했을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요! 저는 그런 인물을 「홀」안에서는 통 보지 못했으니까요. ── 』
『물론 그랬을 겁니다! 나는 그 때 은몽씨와 초면의 인사를 교환한 후, 은 몽씨를 「발코니」로 데리고 나가서 친우 수일군을 위하여 백영호씨와의 결혼을 중지하기를 여러번 권했읍니다마는 마이동풍, 은몽씨는 통 나의 말을 듣지 않고 그때 삼청동 댁에서 온 백영호씨와 정란씨를 맞이하러 다시
「홀」 안으로 들어가 버렸읍니다.』
『용서하세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그러나 그것이 수일씬줄 알았다고 하더라고 역시 저는……』
하고 은몽은 머리를 또 숙으렸다.
『아닙니다! 나는 지금 그런 것을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지금 해월의 이야기를, 해월이가 은몽씨를 절대로 해치지 않으리라는 이야기를 은몽씨에게 들려 드리려는 사람이니까 ── 그 때 백영호씨와 춤을 몇 차례 추고 난 은몽씨는 화장을 고치겠다는 말을 남겨놓고 백영호씨의 곁을 떠나 다시 안으로 들어 갔읍니다. 화장실로부터 은몽씨의 찢어지는 듯한 부르짖음이 들려 온 것은 은몽씨가 안으로 들어간지 약 오분 후, 그 때 누구보다도 화장실로 뛰어들어간 사람은 나였지요. 삼면경 앞에 쓸어진 은 몽씨의 어깨에 박힌 날카로운 단검 ── 은몽씨는 그 때 방싯하게 열린 들창 밖을 가리키면서 도화역자, 도화역자……하고 외쳤읍니다. 남수군이 곧 들창을 넘어 정원으로 뛰어 나갔지요. 그러나 아무리 정원을 뒤져보아도 도화역자는 온데간데 없이 없어지고 말았읍니다. 두길이나 되는 「콩크리트」 담장을 넘을리는 만무하고 또 그즈음 가장무도회를 감시하던 순경 한사람이 정문 앞을 순시하고 있었더니 만큼 도화역자가 정문으로 나갔다면 순경이 보지 못했을리는 만무한 일이지요.』
『그러면 해월은 어디로 갔을까요?』
『아무데도 가지못했을 것은 매일아침 해를 보듯 정확한 사실입니다!』
『그러면……?』
하고 재차 질문하는 은몽의 말을 무시하고 유탐정은 그냥 계속하였다.
『해월은 정녕코 왼손을 쓰는 사람이었읍니다. 어째 그러냐하면 삼면경 앞에서 화장을 고치고 섰던 은몽씨의 왼편 어깨를 그 놈은 은몽씨의 바로 등 뒤에서 찔렀던 때문이지요. 이것은 그 때 은몽씨가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해월은 왼손잡이!』
은몽은 자기 입으로 한번 그렇게 되풀이해 보았다.
『그런데 불행중 다행으로 은몽씨가 받은 어깨의 상처는 예상 외로 경상이었읍니다. 해월이가 만일 은몽씨를 정말 죽이고자 하였다면 사나이인 그가 그렇게 가벼운 상처만을 남겨 놓고 도망할리는 만무하지 않읍니까?』
『그 때…… 그 때 제가 고함을 쳤으니까요』
『아무리 은몽씨가 고함을 쳤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취해 온 살인귀 해월의 대담무쌍한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 그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홀」에서 화장실까지 뛰어오는 동안이면 은몽씨 하나를 죽일만한 시간은 넉넉하였다는 말씀이지요.』
『그럼 그 놈은 단지 나를 놀라게할 셈으로……』
『놀라게할 셈이라고요? 그렇지요, 물론 그것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것 보다도 좀 더 의미깊은, 좀 더 무서운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무서운 의미!』
은몽의 입술이 바르르 떨리었다.
『그렇습니다. 복수귀 해월이가 은몽씨에게 그렇게 예상 외로 경상(輕傷)을 준데는 좀 더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요!』
하는 유탐정의 말은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것 처럼 맵다.
『깊은 의미라니요? 무슨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말씀이예요?』
의자에 앉은 은몽의 시선과 방안을 왔다 갔다하는 유불란의 시선이 방 한복판에서 무섭게 부딪쳤다.
유탐정은 들창 옆에 우뚝 서서 은몽의 어쩐지 몹시도 창백한 얼굴을 글자 그대로 뚤어질듯이 쏘아보면서
『깊은 의미! 그것은 해월이가 은몽씨를 해하겠다는 것을 표면이유로, 실은 백영호씨 일가에 복수를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그때 나를 『 찌른 그 도화역자 ── 즉 해월은 대체 어디로 갔다는 말씀이예요?』
『아무데도 가지 않았읍니다. 그는 우리들과 같이 있었읍니다!』
『엣?』
하고 은몽은 놀랐다.
『우리들과 같이 있다니요?』
『우리들과 같이 있었다는 말을 못 알아 들으시겠읍니까?』
『무슨 의미인지 통 갈피를 잡을 수 없어요.』
『다시 말하자면 해월은 항상 우리들과 같이 있으면서 우리들의 행동을 일일이 감시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누구예요? 그가 대체 누구란 말씀이예요?』
은몽은 호기심에 찬 두눈을 반짝이며 불현 듯 상반신을 「테이블」위로 내밀었다.
『누구예요? 어서 말씀을 하세요. ── 우리들과 항상 함께 있던 사람이라면 오 변호사?』
『아닙니다!』
『그럼, 그럼 누굴까? 정란과 문학수씨와, 그리고 유선생 이외에는 이렇다 할 사람이 없었는데……』
『나는 물론 해월이가 아니고……』
『그리고 문학수씨와 정란이도 물론 해월이가 아닐테고…… 누구예요? 대체……』
『잘 생각해 보시면 아실 겁니다. ── 은몽씨가 잘 아시는 사람이니까요!』
『제가 잘 아는 사람?』
은몽은 앵무새처럼 반문하면서 상대방의 그 어떤 위대한 마술에 휘말린 사람같이 말똥말똥 유탐정을 바라다 보았다.
그러나 유불란은 말머리를 돌려
『그리고 그 다음 해월은 정란씨에게 협박장을 보내어 은몽씨와 백영호씨의 결혼식을 저 「쇼팡」의 장송곡으로 축하하라고 명령했을 때, 정란씨는 마리야를 대신 「파아니스트」로 세웠지요. 그러나 마리야는 해월의 저릿저릿한 협박장을 두려워하여 명령대로 장송행진곡을 치지않았읍니까. 그것은 하옇든 은몽씨도 아시는바와 같이 그 때 결혼식장에서는 실로 불가 사의의 현상이 일어났읍니다. 은몽씨에게는 아직도 기억에 새로운 일이겠읍니다만 그때 은몽씨는 한구석에서 무심중 해월을 발견하고 고함을 쳤읍니다. 그러나 그 때는 벌써 임경부가 사복한 부하들로 하여금 식장의 앞뒷문을 마치 밀폐한 모말모양으로 꼭 봉해버린 때였었지요. 그러나 은몽씨도 아시다싶이
「홀」안을 이잡 듯이, 그리고 한사람 한사람 엄밀이 취조를 해 보았으나 복수귀 해월은 귀신같이 사라지고 말았읍니다. 이 실로 이상야릇한 사실을 은몽씨는 대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다니요? 그것을 제가 알아 낼 수 있다면……』
이처럼 해월을 두려워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얼굴이었다.
『자 ── 은몽씨!』
하고 그는 한걸음 은몽의 앞으로 다가 섰다.
『여기서 우리는 해월의 입장으로서 그가 만일 귀신이 아니고 사람이라면 이러한 때에 어떠한 행동을 취했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물론 그는 하늘로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며 땅으로 꺼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은 몽씨의 눈을 속일만큼 그러한 훌륭한 변장을, 그러한 긴급한 시간에 그리도 신속히 했을 리도 없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두말 할 것 없이 해월은 사람들 가운데 섞여 있었을 것이 분명하지요!』
『그래, 그가 대체 누구예요?』
『아까도 말한바와 같이 그는 항상 우리들과 같이 있었고, 그리고 은 몽씨가 잘, 너무도 잘 아시는 인물입니다!』
『누구예요? 누구예요? ──』
하면서 은몽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서 유불란의 팔목을 잡아 흔들었다.
『무서워요! 어서 가르쳐 주세요! 왜 그리 잠자코만 있어요.』
『정말 알고 싶읍니까?』
하는 유탐정의 얼굴에는 증오의 빛이 알알이 떠돌았다.
『정말, 정말 알고 싶어요!』
『정말 그렇다면 아르켜 드리지요! 은몽씨가 계신 곳에는 반드시 같이 있던 인물 ──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듯이 ── 그것은 은몽씨 자신이었읍니다.』
그 순간 은몽은
『흑 ──』
하고 숨을 들이키며
『에, 엣……』
하고 외치면서 잡았던 유탐정의 팔목을 탁 놓았다. 그리고는 얼빠진 사람 모양 멍하니 유불란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더니
『유 유선생은……』
하고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의자에 간신히 몸을 의지하였다.
『유선생은 그런 말씀을…… 그런 말씀을 농담으로……』
그러나 유불란은 거기 대해서 곧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악몽 속에서 헤메이는 사람처럼 꿈인지 생시인지를 분간하려는 듯 멍한 표정을 가진 은몽을 언제까지나 물끄러미 바라 볼 뿐이었다.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는 전차의 궤도소리가 우욱하고 들려온다.
그것은 정말 조그만 과장도 없는 실로 납덩이처럼 무거운 침묵이었다.
『은몽씨!』
이윽고 유탐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
『농담치고는 내 얼굴의 표정이 너무 심각하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하는 엄숙한 말에 은몽은 비로서 그것이 하나의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안 모양이었다.
『그래요! 유선생의 얼굴은 무섭게, 무섭게 긴장되었어요! 그러나…… 유 선생은 아무래도 아무래도 제 정신이 아니신가 봐요!』
『은몽씨! 그래도 은몽씨는 내 말을 못알아 들으십니까?』
『알아요! 잘 알겠어요! 유선생의 말씀은 정신병자 ──』
그때 유탐정은
『하하……』
하고 한번 웃고나서
『은몽씨의 입장으로서야 물론 나의 말을 하나의 농담, 그렇지 않으면 하나의 정신병자의 이야기로 돌려보내고 싶을 테지요. 그러나 은몽씨! 이제부터 내가 하나의 정신병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동시에 해월이가 은 몽씨를 절대로 죽이지 않는다는 나의 결론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하여 드리겠읍니다. ──』
은몽은 아무말도 없다. 대체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통 알 수 없는 모양이다.
『무엇보다 먼저 저 가장무도회날 밤 ──』
유탐정은 그리고 열어젖힌 들창을 등지고 멀찍이 서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니 가장무도회란 그 자체가 벌써 내 생각으로는 은몽의 그 어떤 원대한 계획 밑에서 개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 왜 그러냐 하면 가장무도회는 실로 은몽씨의 계획을 진행시키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아니 될 가장 중요한 무대였기 때문이지요. 왜냐하면 거기에는 가지각색의 가장 인물 이 등장하는 (假裝人物) 까닭입니다. 이리하여 은몽씨는 약혼자 백영호씨에게 졸라서 우리 조선사람의 생활상태로서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가장 무도회라는 것을 열었읍니다. 알아 들으시겠읍니까?』
『네 어서 말씀을 하시지요.』
『── 무도회날 밤, 은몽씨는 맨 처음에 「홀」에 나타나서 한차례 춤을 추고는 도로 화장실로 들어 갔읍니다. 화장실로 들어간 공작부인 주은몽은 대체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는 부리나케 입었던 「드레스」를 벗어 버리고 미리부터 장만하여 두었던 주홍색 도화복으로 몸을 감추었읍니다. 역시 주홍색 수건으로 머리를 감추고 얼굴에는 흰떡 같은 분칠을 하고 그 위에다 또 가지각색의 색채로 간판처럼 칠을 하여 놓았으니 설마 그것이 공작부인 주은몽이었을 줄이야 누가 알았으리요. 그는 다시 「홀」에 나타나서 도화역자의 존재를 사람에게 깊이 인박아 주었읍니다. 그리고 다시 복도로 빠져나가 화장실로 숨어 들어간 그는 빠른 솜씨로 도화복을 벗고 얼굴을 씻고 다시 그날밤의 주인공 공작부인으로, 화장을 하고 「홀」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홀」에 나타난 그는 약혼자 백영호씨와 춤을 몇 차례 춘 다음에, 화장을 고치겠다는 구실로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서 대담하게도, 그리고 영리하게도 자기 자신의 어깨에다 단도를 찌르고 삼면경 앞에 쓰러져서 고함을 쳤읍니다.
유탐정은 그리고 어떠냐는 얼굴로 은몽을 바라보았다.
『에에!…… 내가 이 손으로 나 자신의 어깨를 찔렀다구요? 헤에!…… 이 손으로요?』
하고 은몽은 자기의 손바닥을 드려다 보았다.
『그렇습니다. ── 은몽씨의 바로 그 손이 ── 그 바른손으로 은몽씨 자신의 왼편 어깨를 찔렀던 것입니다.』
『이 손이 말씀이지요? 분명히 이 손이 나 자신의 어깨를 찔렀단 말씀이죠?』
은몽은 그러면서 자기의 바른 손바닥을 들어서 유탐정에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틀림없이 그 바른손이 찔렀을 것입니다. 삼면경 앞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던 은몽씨의 등뒤에 도화역자가 쑥 나타나서 찔렀다고 은 몽씨가 말하였을 때, 그것이 만일 사실이라면 범인은 틀림없이 왼손잡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실은 왼손잡이가 아니고 은몽씨 자신이 범인이었던 때문에 생긴 착각이었지요.』
『그리고 제가 들창 밖을 가리키면서 도화역자가 그리로 도망갔다고 말했다단 말씀이죠?』
물론 해월은 실로 『 ! ── 영리하고도 대담한 사람이었읍니다. 그와 같은 자 상행위(自傷行爲)로서 해월이라는 복수귀, 해월이라는 가공 인물(架空人物)의 존재를 사람들의 머리속에 뚜렷이 못박아 주었던 것입니다. ──』
『그것은 유선생의 너무나 지나친 공상이 아니예요? 아무리 영리하고 대담한 범인이라해도 자기의 몸을 자기의 손으로 그 처럼……』
처음에는 그저 망연자약한 태도로 유불란의 그 너무나 무서운 상상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은몽의 얼굴에는 어느새 반항의 빛이 점점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영리한 범인이라면 그만한 것 쯤 못할리 없지요. 더구나 그것이 생명에는 조금도 관계없는 경상인 것이라면…… 이러한 예는 「봔·다인」의 어떤 소설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요. ── 이렇게 생각해 보면 그날밤 은몽씨가 나를 ── 아니 이선배로 변장한 김수일을 김수일이라고 간파하지 못한 은 몽씨의 이상한 행동의 수수께끼도 자연히 풀릴 것입니다.』
『이상한 행동이라구요? 어째서요?』
은몽이 바싹 달려든다.
『아무리 변장을 잘했기로 자기의 애인을 눈앞에 보면서도 그것을 딴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보통으로선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제가 그때 그가 김수일씨란 사실을 알고도 그것을 숨기었다는 말씀이예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지 않아요?』
『숨기는 이유는 뭐입니까?』
『배영호씨 일가를 멸망시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공작부인은 그것이 자기의 애인 김수일인줄을 빤히 알면서도 귀찮으니까 모르는 척 하고 백영호씨와의 결혼의사를 한층 더 강조하였읍니다. ── 아니, 은몽씨는 이 선배의 정체가 김수일이란 사실만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서 김수일이가 즉 탐정 유불란이란 사실도 알고 있었읍니다! ──』
『에?』
하고 은몽은 한번 더 놀라며
『그럼, 김수일씨와 교제를 하면서도 그것이 유불란씨인줄을 알고 있었단 말씀이예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나의 건방진 추측일런지 모르나 은몽씨가 ×× 개인전람회에서 처음으로 저와 인사를 나누었을 때 부터 은몽씨는 내가 탐정 유불란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요. ── 아니 좀 더 건방진 추측을 한다면 내가 탐정이란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그리고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은몽씨는 나와 교제를 하였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요?』
긴장할대로 긴장한 은몽의 얼굴이었다.
『은몽씨! 한번만 더 건방진 상상을 용서하시요. ─ 은몽씨의 그 원대한 게획을 방해할 사람, 해월의 그 저릿저릿한 범죄 설계도를 깨뜨릴 가능성이 있는 적(敵)이 즉 유불란탐정이기 때문입니다!』
유탐정의 이야기는 점점 열을 띄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은몽씨는 계획적으로 나와 교제하였읍니다. 그런 무서운 계획이 있는줄도 모르고 김수일은 ── 아니 유불란 탐정은 공작부인 주은 몽에게 마치 소년과 같은 순정과 정열을 바쳤지요.』
『너무하세요! 그와같은 그릇된 공상을 근거로……』
은몽은 그 어떤 격정을 이기지 못하여 「테이블」에 쓰러졌다.
『공작부인 주은몽은 본래부터 요부는 아닙니다. 단지 자기의 계획을 위하여 요부 노릇을 하였을 따름이지요!』
『너무하세요! 당신은 너무해요! 자기의 부질없는 공상만을 내세우고 저의, 저의 고독한 마음, 의지할 곳 없는 입장은 조금도 이해 못하시는 거예요! 무슨 이유로……어떠한 근거가 있길래 저를 가리켜 해월이라고……』
그러면서 은몽은 흐느껴 우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