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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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할 일 없어 생애를 생각하고
고기 낚기 하자 하니 물머리를 어찌하고
나무 베기 하자 하니 힘 모자라 어찌하며
자리 치기 신 삼기는 모르거든 어찌하리
어와 할 일 없다 동양이나 하여 보자
탈망건 갓 숙이고 홑중치막 띠 끄르고
총만 남은 헌 짚신에 세살부채 차면 (遮面)하고
남초 없는 빈 담뱃대 소일 (消日) 조로 가지고서
비슥비슥 걷는 걸음걸음마다 눈물 난다
세상 인사 꿈이로다 내 일 더욱 꿈이로다
엊그제는 부귀자 (富貴者)요 오늘 아침 빈천자 (貧賤者)라
부귀자 꿈이런가 빈천자 꿈이런가
장주 호접 황홀하니 어느 것이 정 꿈인고
한단치보 (邯鄲稚步) 꿈인가 남양초려 큰 꿈인가
화서몽 칠원몽에 남가일몽 깨고 나서
몽중흉사 (夢中凶事) 이러하니 새벽 대길 (大吉) 하오리다
가난한 집 지내치고 넉넉한 집 몇 집인고
사립문을 드자 할가 마당에를 섰자 하랴
철없는 어린아해 소 같은 젊은 계집
손가락질 가라치며 귀양다리 온다 하니
어와 고이하다 다리 지칭 고이하다
구름다리 징검다리 돌다리 토다리라
춘정월 십오야 (夜) 상원야 밝은 달에
장이니상 열두 다리 다리마다 바람 불어
옥호 금준은 다리다리 배반 (杯盤)이요
적성 가곡은 다리다리 풍류로다
윗다리 아랫다리 석은 다리 헛다리
철물 (鐡物)다리 판자 (板子)다리 두 다리 돌아들어
중촌 (中村)을 올라 광통다리 굽은 다리 수표 (水標)다리
효경 (孝經)다리 마전 (馬廛)다리 아량 위 겻다리라
도로 올라 중학 (中學)다리 다리 나려 향다리요
동대문 안 첫 다리며 서대문 안 학다리
남대문 안 수각다리 모든 다리 밟은 다리
이 다리 저 다리 금시초문 귀양다리
수종다리 습다린가 천생이 병신인가
아마도 이 다리는 실족하여 병든 다리
두 손길 느껴지면 다리에 가까오니
손과 다리 머다 한들 그 사이 얼마치리
한 층을 조곰 높여 손이라나 하여 주렴
부끄럼이 몬저 나니 동냥 말이 나오더냐
장가락 입에 물고 아니 가는 헛기침에
허리를 굽힐 제는 공손한 인사로다
내 허리 가이없어 비부 (婢夫)에게 절이로다
내 인사 차서 (次序) 없이 종에게 존대로다
혼잣말로 중중하니 주린 중 들어온가
그 집사람 눈치 알고 보리 한 말 떠서 주며
가져가오 불상하고 적객 (謫客) 동냥 예사오니
당면하여 받을 제는 마지못한 치사로다
그렁저렁 얻은 보리 들고 가기 어려우리
어느 노비 수운 (輸運)하리 아모려나 저 보리라
갓은 숙여 지려니와 홑중치막 어찌할꼬
주변이 으뜸이라 변통을 아니하랴
넓은 소매 구기질러 품속으로 넣고 보니
긴등 거리 제법이라 하 괴이치 아니하다
아마도 꿈이로다 일마다 꿈이로다
동냥도 꿈이로다 등짐도 꿈이로다
뒤에서 당기는 듯 앞에서 미옴는 듯
아모리 굽흐려도 자빠지니 어찌하리
머지 아닌 주인집을 천신마노 겨우 오니
존전 (尊前)의 출입인가 한출첨배 하는고야
저 주인 거동 보소 코웃음 비웃으며
양반도 할 일 없네 동냥도 하시었고
귀인도 속절없네 등집도 지시었고
밥 싼 노릇 하오시니 저녁밥 많이 먹소
네 웃음도 듣기 싫고 많은 밥도 먹기 싫다
동냥도 한 번이지 빌긴들 매양 하랴
평생에 처음이요 다시 못할 일이로다
차라리 굶을진정 이 노릇은 못하리라
무삼 일을 하잔 말고 신 삼기나 하자 하고
짚 한 단 추려다가 신날부터 꼬아 보니
조희 노도 모르거든 삿기 꼬기 어이하리
다만 한 발 다 못 꼬아 손바닥이 부르트니
할 리 없어 내어 놓고 긴 삼대를 베껴 내어
자리 노를 배와 꼬니 천수만한 이내 마음
부칠 데 전혀 없이 노 꼬기에 부치었다

각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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