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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펄펄 나리는 오늘 아침에 승호의 어머니는 백일 기침에 신음하는 어린 승호를 둘러 업고 문밖을 나섰다. 그가 중국인 상점 앞을 지나칠때 며칠 전에 어멈을 그만두고 쫓기어 나오듯이 친가로 정신없이 가던 자신을 굽어보며 오늘 또 친가에서 외모와 싸움을 하고 이렇게 나오게 되니 이젠 갈 곳이 없는 듯하였다. 그나마 그의 외모는 말할 것도 없지만 아버지만 쳐다보고 그대로 딸자식이니 몇 해는 그만두고라도 몇 달은 보아주려니보다도 승호의 백일 기침이 낫기까지는 있게 되려니 하였다가 그 역시 남인 애희네 보다도 못하지 않음을 그는 눈물 겹게 생각하였다. 어디로 가나? 그는 우뚝섰다. 사람들은 부절(不絶)히 그의 옆으로 지나친다. 그는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면서 이제야말로 원수같이 지내던 시형네 집에나마 머리숙여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자신은 도수장에 들어가는 소 모양으로 온 몸이 부르르거리고 차마 발길을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비록 그의 남편은 이미 죽었지만 남편의 뒤를 이을 이 승호가 있지 않은가! 이 승호야 말로 친가에서보다도 시형네 집에서는 유리한 조건이 되지 않는가. 조카 자식도 자식이지. 오냐 가자! 하고 그는 억지로 발을 떼어 놓았다. 더구나 시형네는 방금 약방을 펼쳐 놓고 있으니 들어가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가 들어가기만 하면 승호의 이 기침도 곧 나아질 것 같았다. 그는 용기가 났다. 아무러한 모욕을 주더라도 꿀꺽 참자 하고 느려지는 발길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동서의 그 낚시눈과 시형의 호박씨같은 눈이 자꾸 그의 발길을 돌리려고만 하였다.

만주 사변 전만 하여도 시형이 자기의 남편을 하늘 같이 떠 받치었으며 그래서 자기들까지도 시형이 군말 없이 생활비를 대주었던 것이나 일단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그리고 이 용정사회가 돌면하면서부터는 시형도 마음이 변하여 끔찍하게 알던 그 아우를 밤낮으로 욕질을 해가며 역시 자기네 모자를 한결 같이 대하였다. 그래서 일체 생활비도 대주지 않는 까닭에 승호의 어머니는 남의 어멈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특히 일년 전에 남편이 객지에서 죽었다는 기별이 왔을 때 시형은 오히려 좋아하는 눈치를 보였기 때문에 승호 어머니는 있는 악이 다 치밀어서 큰 싸움을 하게 되었으며 그후로는 아주 발길을 끊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그가 머리숙여 들어간대야 시형네 내외가 물론 덜 좋아할 것을 뻔히 아는 터이고 해서 그는 이렇게 주저하고 망설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였다.

가만히 엎드려 있던 승호는 갑자기 머리를 들며 그 몹쓸 기침발을 또 내어 놓았다. 그리고 기침에 못이겨서 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를 한다. 그는 얼른 승호를 앞으로 돌려 안으며 승호의 볼 위에 볼을 맞대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승호야! 아가!」

그는 안타까와서 이렇게 부르르 승호의 입에 그의 입술을 대고 입김을 흠뻑 빨았다. 그것은 아들의 백일 기침이 자기에게로 옮아오고 말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그는 언제나 승호가 기침을 내놓을 때마다 이렇게 하곤 하였다. 그리고는 승호가 기침한 지가 한참이 지나도록 하지 않으면 그가 입김을 가짤은 효과가 나는가 하여 가슴을 태우다가 번번이 그 기침발을 또 만나곤 하였던 것이다. 승호의 기침이 좀 진정된 뒤에야 그는 다시 걸었다. 어느덧 시형네 담 모퉁이로 들어섰다. 그는 멈칫 섰다. 시형이 왜 왔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하나? 살러 왔읍니다...... . 그러나? 뭐라나? 그만 잠자코 있을까? 아니, 어멈 그만둔 것은 말해야지. 그러나 그 집에서도 모른다면 어쩌나? 그는 어떤 지하에나 떨어지는 듯 아찔하여 그만 돌아섰다. 차라리 그렇게 될 바에는 아예 들어가지도 말았으면 하였다. 그러나 그러고보니 갈 곳이 없다. 그만 오늘 밤이나 누구네 집에 가서 자고서 눈이나 그치거든 어디로든지 갈까? 그때 애희네 집에서 쫑기어 나온던 광경을 머리에 그리며 남이야 다 같지 누가 우리 모자를 하룻밤인들 재울 소냐? 이 몹쓸 기침에 걸린 우리 승호를 나 이외에 누가 좋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어. 그나마 자식값에 가니 그래도 시형이 낫겠지. 가서 말이나 해보자. 설마한들 내쫑을까. 그는 다시 발길을 옮겼다. 발길은 점점 무거워오며 자꾸 망설이게 된다. 그리고 승호가 시형과 마주 앉아 이야기할 때 그 기침을 하면 어쩌나. 그래서 다소 불쌍한 마음이 들어 집에 두려고 했다가도 그만 그 기침에 놀라 딱 잡아떼면 어떻게 하나! 좀 기다려서 승호가 기침을 한 후에 들어가야지. 그는 우뚝 서서 승호가 기침을 하기를 고대하였다.

이렇게 바람이 차고 눈 오는 날에 밖에 오래 있는 것이 승호에게 해롭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렇게 망설이며 가슴을 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승호야, 너 큰아버지 앞에서 기침을 참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

자는 듯이 엎드려 있는 승호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이렇게 애원하다시피 하였다. 그는 멈칫 섰다. 시형네 문이 눈에 선듯 띄었던 것이다. 그리고 새로 페인트 칠을 한 시형네 대문은 그가 오래간만에 왔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그는 뛰는 가슴을 쥐며 또 다시 망설였다. 그 때 별안간 문이 열리며 H보통학교 교사로 있는 시형의 딸이 앞뒤를 보며 나온다. 그는 흠찝하여 물러설 때

「아이, 작은어머니 오랜간만이네......」

눈같이 흰 얼굴에 부드러운 외투 깃털이 살짝살짝 스친다.

「잘 있었니......」

그는 질녀만 보아도 머리가 숙여지며 말문이 꼭 막힌다.

「어서 들어가요, 승호는 자우?」

질녀는 곁으로 오는 체하더니 도로 물러선다.

「난 저기 다녀올께, 작은어머니 어서 들어가요. 나 오기 전에 가면 못써요, 작은어머니.」

질녀의 음성은 몹시도 명랑하였다. 그 때 그는 질녀를 붙들고 이런 사정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질녀는 말을 마치자 생긋 웃어보이고 돌아서 간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문 안으로 들어섰다. 신발 소리를 들었음인지 맞동서의 낚시눈이 유리창으로 나타난다. 그는 얼굴이 화끈 달며 마치 원수를 대하는 듯 하였다.

「이거 웬일이여? 자네가 우리 집엘 올 때가 있나?」

미닫이를 드르르 열고 바라보는 동서는 은연중에 노기를 띠우고 그를 대하여 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약내가 물컥 스치며 훈훈한 방 기운이 그의 단 볼 위에 칵 덮어씌운다. 그는 승호가 기침을 할까 하여 누더기를 승호 머리까지 뒤집어 씌우고 앉아서 가슴을 졸였다.

「그래 돈벌이 한다더니 돈 많이 모았겠구먼...... 사람이 못 쓰느니, 자네 아직도 자네가 옳게 한 것 같은가?」

동서는 장죽을 당기어 담배를 담는다.

「잘못했어요.」

「그리고 말이지, 싸울 때는 혹 싸웠더라도 성이 가라앉으면 잘못했다고 빌어야 하는 게지. 그래 일 년이 넘도록 발길하지 않으니 아랫사람으로 웃사람 대하는 법이 어디 그런가.」

잘못했다는 말에 동서는 성이 좀 풀린 모양인지 이러한 말을 한다. 그는 목을 놓아 울고 싶은 것을 겨우 진정하며 자신의 마음이 참말 좁은 것 같았다. 그는 감격하였다. 웃방에서는 중국인이 약을 사러 왔는지 중국인의 음성 틈에 시형의 굵다란 음성이 들린다. 그는 동서가 성이 좀 풀린 뒤 모든 것을 탁 털어 놓고 사정하리라 하였다. 그리고 무슨 말을 꺼내려 하였으나 앞서는 것은 눈물뿐이요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승호가 머리를 들더니 기침발을 또 내놓았다. 그의 어머니는 어쩔 줄을 몰라 쩔쩔 매었다.

「아니, 그애가 백일 기침이 아니라구?」

동서는 금시로 눈이 샐쭉해진바. 승호의 어머니가 어째서 온 것을 짐작하였던 것이다.

「백일 기침에는 약이 없다네. 언제부터 그 병에 걸렸나? 」

승호의 어머니는 약이 없다는 말에 기가 질리어 얼굴이 새하얗게 되었다. 그러면 승호는 죽는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아득하게 하였던 것이다.

「애를 잘 간수할 것이지, 자네 있는 집에 누가 앓는가? 」

「아, 아니유.」

「그러면 그 집에서도 싫어하지 않겠는가.」

「아주 나왔어요!」

말끝에 그는 울고야 말았다. 동서는 횡 돌아 앉는다.

「백일 기침은 전염병이니 누가 좋아하겠나.」

동서는 처음에는 약을 얻으러 온 것으로만 알았으나 지금 생각하니 있을 곳이 없어 온 것임을 알았다. 동서는 갑자기 멸시하는 생각과 함께 가라앉으려던 분이 치받친다.

「흥, 좋을 때는 발길 안 하더니 새끼가 죽게 되고 있을 때가 없으니 온단 말이어. 우리는 모르네. 아 자네 왜 그리 기세 좋게 떠들고 나가더니 일년이 못 되어 돌아오는가. 우리는 그런 꼴 못 보아. 자네 친정 집 있지, 그리 가든지 시집을 가든지, 우리와는 그 때부터 일면을 끊지 않았나!」

담뱃대로 재떨이를 땅땅 친다. 승호의 어머니는 볼을 쥐어 박힌 듯 온 얼굴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그는 입술을 꼭 다물어 다시 한번 사정하리라 하였다.

「어쩌겠읍니까! 한 번 용서하십시오. 」

「흥! 용서, 용서라는 게 몇 푼짜리 가는게야, 우리는 몰라.」

그때 웃방 미닫이가 열리며 시형의 얼굴이 나타난다.

「이거 왜들 시끄럽게 구니!」

소리를 지르며 눈알을 굴린다.

「글쎄, 생전 면대하지 않을 것같이 굴더니 새끼가 병들고 있을 곳이 없으니 또 왔구려.」

「듣기 싫여!」

시형은 소리를 냅다 자르며 미닫이를 도로 닫는다. 그나마 실끝같이 믿었던 시형조차도 저 모양이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잘들 살아요.」

그는 미친듯이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는 정신없이 행길까지 나왔다. 눈은 여전히 소리 없이 푹푹 쏟아진다. 그는 우뚝 섰다. 남편을 그는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곧 후회하였다. 잠 한 잠 떳떳이 자지 못하고 밥 한끼 달게 먹어 보지 못하고 산으로 들로 돌아 다니다가 적에게 붙들리어 죽은 남편을 원망하는 자신이야 말로 너무나 답답한 여자 같았던 것이다.

남편이 산으로 가기 전에 그를 붙들고 뭐라고 말했던가. 우리는 아무리 잘살고자 하나 잘 살수가 없다고 하던 남편의 말이 그때는 무슨 말인가 하였으나 그가 살아올수록 남편의 말이 옳은 것 같았다. 아니 옳은 것이다. 승호에게도 우리는 그렇게 가르쳐야 하오...... . 남편의 말, 아아 그 남편을 잃은 자신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남편이 살았을 때는 아무러한 고생을 하여도 그래도 희망이 떠나지 않더니 지금에야 그는 무슨 희망이 있으랴. 그저 앞이 캄캄한 것 뿐이었다.

그는 우뚝 섰다. 이런 생각을 하니 그런지 남편의 그 눈, 그 입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그는 소리쳐 울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떨어지는 눈송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 눈송이가 혹시 기침에 약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넓적넓적 입을 벌리고 눈송이를 받았다. 그때, 그는 시형네 방에서 맡덴 약내를 얼핏 생각하며 혀끝이 섬뜩해지는 눈송이를 느꼈다. 그리고 무정하게 말하던 동서의 말이 떠올라 그는 눈을 무서웁게 떴다. 다음 순간에 그는 승호가 이 몹쓸 바람을 씌어서 더 기침을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 그는 머리에 썼던 수건을 벗어 승호를 씌웠다. 그리고 걸었다. 어디로 가나? 아무데라도 가지. 그저 용정만 벗어나자. 인심이 야박한 이 용정! 이 용정만 떠나서 자기네 모자와 같은 이러한 궁경에 있는 사람들이야 말로 자기네 모자를 박대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남편이 처음 떠나노라는 그 산이 문득 생각이 난다.

「아니 어딜 가세요, 글쎄 말이나 해요.」

그의 안타까와 묻던 말. 남편은 묵묵히 앉았다가

「산으로 가우.」

남편의 말.

「어느 산?」

「그저 산이라고만 알아 두지......」

그 후 부터 그는 멀리 바라보이는 산을 유정하게 바라보게 되었으며 누구의 입에서나 산이 어데다는 말만 들어도 그는 가슴이 뛰곤 하였던 것이다.

산! 남편은 필시 어느 산인지는 모르나 산으로 갔을 것만은 틀림 없었고, 그래서 죽는 때까지도 산에서 산으로 옮겨 다니다가 ×에 붙들리었을 것이라 하였다. 그는 눈을 들었다.눈송이에 묻히여 잘 보이지 않는 저 산, 꿈같이 아득히 보이는 저 산, 자기네 모자는 산으로 갈 곳 밖에 없는 듯 하였다.

「가자 승호야, 아버지를 따라!」

그는 흥분에 겨워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런지 저 산에 가면 남편의 해골이나마 대할 것 같고, 그리고 죽으면서 자기네 모자에게 남긴 말이나 얻어 들을 것 같았다. 그는 힘이 부쩍 났다. 눈송이 송이는 그의 타는 듯한 볼에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한참 후에 그는 휘휘 돌아 보았다. 보이는 것은 이 눈에 묻힌 끝도 없는 들 뿐이요, 아무도 없는 듯 하였다. 오직 자기네 모자와 그나마 자기네 모자로 하여금 희망을 가지게 하는 산뿐이었다. 그러나 그 산은 웬 일인지 앞으로 가면 갈 수록 아득해 보일 뿐이다. 그리고 보니 그의 얼굴도 눈바람에 부딪히어 못 견디게 쓰리고 아팠다. 다라서 그의 전신에 활활 붙는 듯하던 열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자기는 쓸 데 없는 환영을 쫓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후회하면서 돌아보았다. 용정은 보이지 않았으며 벌써 2리 3리 가량이나 온 듯 하였다.

그는 돌아갈까도 하였다. 그러나 용정으로 돌아가기 전에 먼저 얼어 죽을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돌아섰다. 가는 데까지 가 보자. 그래서 집이 있으면 자고서 내일 어떻게 하더라도 우선 가자. 그는 발길을 옮기며 어딘가 집이 있는가를 살폈다. 이제부터는 확실히 날이 어두워 가는 것임을 그는 알았을 때 그는 한층 더 조급하였다. 그리고 그는 인가를 찾아 헤매었다. 승호는 몇 번이든지 된 기침을 하였다. 그는 기침에도 관심하지 않고 오직 인가만 찾았다.

그가 이 길이 초행이 아니요 늘 다니던 길이므로 이 길 과이를 지나가면 마을이 있을 것을 짐작하나 웬일인지 그 길 과이를 다 지나와도 집이란 없고 그저 눈에 묻힌 들 뿐이었다. 한참이나 이렇게 헤매이던 그는 그가 필시 길을 잘못들은 것이라고 해서 눈을 똑바로 뜨고 두루 살펴 보았으나 어디가 어딘지를 짐작하는 수가 없었다. 그저 무서운 바람 속에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빛나는, 아니 그의 머리를 흔드는 흰 눈뿐이었다. 그는 우뚝 섰다. 그리고 눈에 손을 갖다 대었다. 눈을 부비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손은 마치 나무로 만든 손 같았으며 임의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자기가 지금 죽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손발을 자꾸 놀려 보며 승호를 불러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하여 앞으로 걸었다 그때 그는 저 멀리 인가 같은 것이 보이는 듯해서 허방지방 뛰어왔다. 그러나 역시 인가가 아니요 눈을 이뒤집어 쓰고 있는 기둥 몇 개였다. 그는 놀랐다. 이 집터가 마차 정유소 터 이었던 것을 알수가 있었다. 그런데 기둥 몇개만 남고 이리 되지 않았는가. 그는 그때 토벌난에 농촌의 집이란 대개가 다 탔던 말을 얼른 생각하며 전신의 맥이 탁 풀리었다. 그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 저 앞에 높은 토성을 가지고 있던 중국인의 집을 살펴 보았다. 역시 그 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몇걸음 앞으로 나와 살펴 보았으나 역시 없었다. 확실히 없었다.

바람은 좀 자는 듯하나 눈은 점점 더 내린다. 그리고 땅에 갈린 눈은 그의 무릎 마디를 지나쳤다. 그는 기둥을 바라보며 어쩔까 하다가, 에라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가보자! 그는 이를 악물고 걸었다. 그러나 어쩐지 앞이 캄캄해 오고 자꾸만 넘어지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고무신은 언제 어디서 벗겨졌는지 버선발뿐이었으며 버선발에는 눈이 떡같이 달라붙어서 무겁기 천근이나 되는 듯 아무리 털어도 털어지지는 않고 조금씩이라도 더 붙음으로 어쩌는 수가 없었다. 그리고 머리와 눈썹끝에는 눈가루가 허옇게 불리었으며 입술에도 역시 그랬다. 그는 달음질 쳤다. 그의 생각만이 달음질 뿐이요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었다.

그는 갑자기 허전해지며 스르르 미끄러지자 눈이 눈으로 코로 입으로 막 쓸어들며 숨이 콱 막힌다. 그는 어떤 구렁이나 혹은 개천으로 빠져 들어오는 것임을 직각하였을 때, 나는 죽는 구나! 참말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버쩍 들었다. 그는 두손을 내저으며 무엇을 붙잡으려 하였다. 붙잡히는 것은 푸실푸실한 눈덩이 뿐이고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그는 소리를 지르려고 악을 썼다. 그러나 들어올 때까지는 들어오고야 만듯 그는 마침내 우뚝 섰다.

그는 우선 숨이나 쉬도록 손으로 머리를 내휘둘러서 구멍을 내려하였다. 그러나 구멍을 내면 낼 수록 위에 눈이 자꾸 내려 밀린다. 그 때 그는 갑자기 승호가 이 눈에 묻혀서 그만 죽었는가 하여 승호를 붙들고 승호편을 머리로 자꾸 받아서 구멍을 내놓았다. 눈은 머리털을 밑으로 새어서는 차디찬 물로 변하여 그의 목덜미로 뱀같이 길게 따라 내려온다. 그는 이 물이 승호에게로 새어 들어갈까 하여 그의 저고리 깃에 스며들도록 목을 좌우로 내저었다. 그러나 물줄기는 이리저리 스며 들어간다. 그는 맥이 탁 풀렸다. 그리고 우리 모자가 참말 죽는구나! 하고 다시 한번 생각되었다. 그 때 그는 남편의 죽음을 생각하였다. 그가 죽게된것은 이 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함도 아니요 바다 속에서 혹은 어떤 구렁이나 개천이 아니다.

「 우리는 아무리 살려고 해 갖은 애를 다 써도 결국은 못 살게 되고 또 죽게 된다.」

남편의 말 ! 옳다! 그가 살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가. 그래도 사람이 산 이상에야 살 수 있겠지 설마한들 죽을까. 이러한 미련에 그날도 그날같이 애쓰다가 결국은 이러한 눈 속에서 죽게되지 않았는가. 남편의 죽음과 지금 자기네 모자의 죽음은 얼마나 차이가 있는 죽음이냐.

그는 얼떨결에 아들을 부르며 이 아들로 하여는 결코 자신과 같은 인간을 만들지 않으리라 결심하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못다한 사업을 이 아들로 완성하게 하리라 하였다.

「승호야!」

그는 가슴이 벅차서 이렇게 승호를 부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까짓 눈 속 같은 것은 아무 꺼릴 것이 없다고 부쩍 생각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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