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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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집]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운봉이는 적지 않이 긴장하였다. 마지막 시간에 치른 담임 선생의 태도에 분개에 가까운 흥분을 품은 때문이다. 시간 마감이 가까워서 선생은 교과서를 접더니 느닷없이 상급학교 지원할 생도들은 손을 들라고 한다. 늘상 제 혼자일망정 생각해 오던 바가 있으므로 운봉이도 바른손을 창칼같이 기운차게 뽑아 들었다. 60명 넘는 중에서 단 다섯 아이뿐이다. 누구라고 돌아볼 것도 없이 금융조합장의 아들, 양조소 하는 집아이, 의사 아들, 이 고을서 제일 부자라는 김좌수 손자, 그 틈에 뜻밖에도 김운봉이의 바른팔이 섞인 것이다. 이 선발된 행운아 다섯 명 중에서 김운봉이의 야무진 얼굴을 발견한다는 것은 선생뿐 아리라 여러 아이들도 뜻밖으로 생각하는 바이었다. 선생은 안경 낀 눈으로 대충 껀듯껀듯 세어보다가 운봉이의 얼굴 위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않았으나 이윽고,

“요로시(좋습니다)─.”

하고 잠깐 창밖을 내다보았다. 운봉이도 손을 내리고 그의 얼굴 위에 많은 눈총이 들이 쏠리는 것을 귀따갑게 느끼면서도 헛눈을 팔지 않고 면바로 칠판 쪽만 바라본다.

“김움뽀 ─.”

선생의 나직하나 밑힘 있는 부름에 운봉이는 ‘하이’하고 기척하였다.

“운봉이는 어느 학교를 지원할 생각인가?”

“경성 제일고등보통학교올시다.”

선생은 말 대답도 뜻밖이란 듯이 고개를 기우뚱한다. 반의 모든 아이들도 숨을 죽이고 긴장하여 있다. 방안의 긴장한 기분이 압력이 되어 운봉이의 작은 몸을 향하여 육박하는 것 같은 착각에 운봉이는 숨이 가쁘고 눈이 곧아오고 목이 마르는 것 같다. 누가 뭐라고 부드럽게 등이라도 두드려주면 금시에 눈물이 콱 솟쳐질 것만 같다.

“아버지와 어머님과두 다 ─ 의론했을 테지.”

이 물음에 운봉이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경성 제일고보 지망이 온전한 제 생각뿐이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이 혼란하여 횃불 같은 것이 두서너 개 엉켜 돌고 거반 깎게 된 머리칼 밑이 때끔때끔하여 안타깝게 괴로웠으나 운봉이는 암짓도 안 한다. 입술을 약간 떠는 듯하다가 제 귀에도 유난히 높으리만큼 ‘하이!’하고 대답해버렸다.

선생은 운봉이의 태도에서 눈치를 챈 모양이나 그 이상 더 묻지 않고,

“그럼 아부지께 오늘이든 내일이든 될수록 빨리 학교로 한번 오십사고 여쭈어.”

다시 잠깐 생각하는 듯하는데 하학종이 우니까 멍하니 그것이 끝나는 것을 기다려,

“이제는 가을도 중추로 접어 들었으니까 입학 시험 준비하는 사람은 물론, 그렇지 않은 제군들도 열심히 공부하여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구 상급학교 지원하는 생도는 사무실에 잠깐 들려주시오.”

경례가 끝나고 단에서 내려서려다가 다시 운봉이 쪽을 향하여,

“운봉이는 안 와두 좋으니까 아버지께 말씀만 여쭈어 응?”

하고 교실을 나가버린다.

교실에서 일어난 일이란 이것뿐이다. 이 작은 사건이랄 것도 없는 조그만 일이 운봉이에게는 대단한 흥분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첫째로 그는 선생을 속였다. 물론 속인 것이 발각이 안 될 수는 있다. 아버지께 미리 가서 일러놓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가 흥분하고 또 그 흥분이 분개에 가까운 것으로 옮아가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지원한 생도 다섯 명 중에서 자기를 따로 취급하는 것이 그에게는 단순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학교로 오시라는 것도 그에게는 원치 않는 일이다.

아버지는 폐인에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학교서 부른다고 쉽사리 올 사람도 아니거니와 외려 학교나 선생을 욕지거리나 안 하면 용할 형편이다. 물론 운봉이가 상급학교를 가느니 안 가느니 같은 건 그에게는 문제도 안된다. 이런 아버지를 학교로 오시라는 건 선생님이 모르시고 하는 소린지는 모르되 운봉이에게는 여간 불쾌한 일이 아니다.

어머니 역시 운봉이가 경성으로 유학을 가느니 어쩌니 한 것을 찬성한 적도 없고 또 찬성할 건더기도 없었다.

이런 형편이고 보니 담임 선생이 운봉이의 지망을 뜻밖으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고 또 한반 아이들이 곧 터져 나오려는 조롱인지 선망인지도 모를 웃음을 참고 두리번두리번 운봉이의 상판때기를 유심히 바라보는 것도 결코 이유 없음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운봉이로서는 누가 뭐란대도 꼭 한곳 믿는 곳이 있었다. 서울 간 지 이태가 가까워오는 동안 한 달에 20원씩은 꼭꼭 송금해오는 누이를 믿는 것이다.

서울로 떠나갈 때에 ‘내가 서울루 가는 건 너 공부시킬 준비루다 미리 가는’게라고 한 말도 있지마는 1년 전에 친히 제게루 한 편지도 있다.

‘네 공부 하나는 뼈가 가루되는 한이 있어도 내가 맡어 시킬 것이니 공부만 열심히 하야라. 네가 서울서 바루 내가 볼 수 있는 눈앞에서 고등학교에 댕길 생각을 하면 몸에 벅차는 괴로움도 낙으로 변한다.’

육학년도 이학기로 접어 드니 특별히 전 같은 입학 준비는 없다 쳐도 자연히 마음 설레고 졸업 후의 일이 이야기되었다. 아무개 아무개가 평양 어느 학교를 지망하느니 서울 어느 학교를 지원하느니 하는 소리는 벌써부터 들어온 지 오래다. 그 애들은 그 애들로서 넉넉히 그만 공부를 시킬 만한 집안이므로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될 것도 없다. 이런 소리를 귓등으로 들을 때마다 운봉이는 누이의 편지만 혼자서 뇌보고 속으로 뱃심만 단단히 먹을 뿐이다. 운봉이보고는 어느 학교에 가려느냐고 묻는 놈조차 없다. 그는 가만히 《중등학교 입학시험 문제집》을 사다두었을 뿐이다.

오늘 비로소 선생의 물음에 그는 기운차게 손을 뽑아 들고 여태껏 마음으로만 새겨두었던 것을 발표해놓았던 것이다.

다시 한번 어머니에게 다짐을 받아보고 서울 있는 누이에게로 똑똑히 기별을 해둘 것, 그리고 선생에게는 아버지나 어머니는 사정 때문에 학교에 올 수는 없으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기의 상급학교 지원은 틀림없다고 말해버리리라고 혼자서 생각해본다. 아버지에겐 말했자 소용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분경이나 일으킬지도 모르니 어머니에게만 물어보자. 그러나 어머니도 누이가 알지 내가 아니 하고 씽긋이 웃어버리고 말 것이 분명하다. 에이쿠소! 꼬라 백성, 양 꼬라사. 시험쳐서 들은 놈은 나 하나밖에 없다. 누이에게 하가키(엽서)로 편지를 쓰자.

그는 갑자기 유쾌해지기나 한 듯이 바른 팔을 내두르며 소래기를 질러본다.

“완, 투, 트리, 꼬라, 백성, 양, 꼬라사!”

뛰다보니 거리 어귀다. 좀 점직해서 길 건너를 쳐다보니 완일네 자전거 포다.

마침 완일이는 펑크한 걸 때우느라고 기름 묻은 당꼬 즈봉에 툭 튀어나도록 궁둥이를 싣고 연신 개꿉 서서 도야지같이 돌아간다. 운봉이는 죽어라 하고 달음박질을 하여 그 집 앞을 지나갔다.

본시 운봉이가 완일이를 송충이처럼 꺼려하기 비롯한 것은 누이가 서울로 가기 바로 전 아직도 담홍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서 기생 노릇을 할 때부터였다. 하루는 자전거 살로 작살을 만들려고 완일네 가게 밖에 서서 컴컴한 골 속 같은 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파쇠로밖에 못 쓸 낡은 자전거가 집게와 모루 옆에 다섯 틀이나 먼지에 파묻혀 있는데 새 자전거는 한 틀밖에 없다. 선반 위에 부속품들이 널려 있고 조그만 유리창 안에는 빤뜩빤뜩하는 쇠바퀴가 몇 개 걸려 있다. 광고 포스터를 발라서 구멍이 띠군띠군한 낡은 바람 벽을 감추어놓았다. 운봉이는 나무 상자 안에 그득히 담겨 있는 자전거 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완일이 사이상 나 쟁곳살 하나 주구레.”

하였다. 코로 흥얼흥얼 수심가를 넘기며 자전거를 만지던 완일이는 훌적 얼굴을 돌리며 이쪽을 보더니,

“응? 너 누구가? 응 ─ 너 담홍이 오래비로구나. 쟁곳살은 뭘 할란?”

운봉이는 싱끗이 웃으며 그러나 얼굴이 발개져서 대답하였다.

“쏠챙이잽이 할라구 작살 맨들래요.”

“작살을 맨들래. 작살을 쯔꾸루까. 요씨 주지 내주지.”

그러더니 한뭉텅이 아마, 한 여남은 개 덤석 들고 그의 곁으로 온다. 그는 기뻐서 손을 내밀었다. 쇠줄로 작살을 만들려고 여러 번 못을 거꾸로 꽂고 뾰죽한 놈을 밑으로 하자니 동그란 대가리가 거치적 거려 방망이로 귀를 죽이느라다가 손만 다치고 만 일이 있기 때문에 운봉이는 오랫동안 자전거 살이 그리웠었다. 그걸 지금 듬씩 10개나 집어주려는 것이다.

완일이는 어슬렁어슬렁 그의 옆으로 오더니 꺼멓게 기름과 때에 그을린 손으로 운봉이의 손을 잡고 또한 손에 들은 자전거 살을 움켜쥐어주었다. 받아가지고 손을 뽑으려고 하니 완일이는 그의 귀에다 입을 대고,

“나 너이 매부디?”

하면서 담뱃진에 걸은 이빨로 닝글닝글 웃었다. 운봉이가 팩 그의 손을 뿌리치니 자전거 살이 쏴르르 흩어져서 널장판 위에 떨어진다. 운봉이는 그길로 입을 감물고 강 있는 골목길을 도망치듯 장달음을 놓았다.

이런 일이 있는 뒤부터는 줄창 운봉이를 볼 적마다 ‘야 쟁곳살 줄라’하든가 누이가 서울로 간 뒤에는 ‘학구 보구 싶다고 핀지 완네?’하고 놀려대었다. 학구란 건 한오래 옆집 기생의 오빠로 지금은 광산에 다니는데 처음 완일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 그뒤 차츰 알아보니 학구가 담홍이에게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던 중에 어느덧 완일이한테 놀리는 날은 재수 없는 날이고 무사히 지나친 날은 재수가 있다고 운봉이는 혼자서 작정해버렸다. 이 푼수로 치면 오늘도 재수가 좋아야 할 게다. 그런데 그는 집 대문을 들어서자 저보다 일찍이 학교에서 돌아온 누이동생 운희한테서 아버지가 갑자기 위독하시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허둥지둥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2[편집]

아버지라야 실상은 신통찮은 아버지였다. 뻐드러지기기라도 했으면 싶다고 어머니는 울화가 뻗칠 때마다 옹알대고 시악(恃惡)을 퍼붓던 그런 아버지다. ‘에구 언제믄 이 꼬락서닐 안 보구 사나.’─ 하루도 몇 번씩을 뇌는 통에 어머니의 표정은 모르는 새에 포달스럽게 굳어져버렸다. 반반히 떨어진 눈썹자국이 물결같이 도두 서고 미간엔 밭고랑처럼 주름이 잡히고 입술은 탄력 없는 꺼풀이 이그러져서 드믄드믄 빠진 어금니까지 드러나 보인다. 아버지는 이런 때 두 다리를 쭉 뻗고 괴침도 못 가눈 채 종이꺼풀처럼 누런 상판이 묵묵히 눈을 내려 감고 어머니의 지청구를 귓등으로 홀리고 앉았다. 반찬 가시 같은 노란 수염이 찰깍 붙은 가죽 위에 지저분하다. 상고 머리로 깎았던 머리가 새둥지 모양으로 어수선하다. 어머니의 아우성을 그는 그린 듯이 움직이지 않고 받아 넘기는 것이다. 아편에 잔뜩 취했을 때이다.

약이 떨어지면 이와는 정반대다. 오늘 아침만 해도 벌써 어저께 저녁부터 약 기운이 진해서 안절부절을 못하고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새벽이 되자 집이 떠나가라고 지랄 발광을 하고 드디어는 가슴을 두들기면서 통곡을 하였다.

운봉이가 강에 나가 세수를 하고 들어오는데 운희가 운규놈을 업고 울먹울먹하며 대문으로 나온다. 어디를 가느냐, 왜 들먹거리느냐고 물으려는데 기왓골이 울리도록 고래고래 지르는 아버지의 높은 언성이 방에서 들려온다. 대체 뼈에 가죽만 씌운 것 같은 몸에서 그리고 어느 때는 모기소리만큼도 분명치 못한 목소리가 어쩌면 저렇게도 요란스러우랴 싶게 이런 때의 아버지의 언성은 파격적으로 높았다.

“모두 벼락을 맞을 년덜 같으니. 집안이 망할라니 암탉이 승이 세서 글쎄 이년들 먹구 살구서야 공부두 공부 아닌가. 또 간나새끼들이 공분해 뭘할텐가. 아니 제 년들이 진사 급젤할 텐가 뭔가. 아냐 오눌 당장에 담임 교사 놈을 찾어가서 떼오구 말으야지 나이는 벌써 오래잖아 성년할 텐데 소리두 배우구 춤도 배와둬야 제 밥벌이나 안하나. 또 간나이년두 자식인 바에야 길러준 애비에미 모른다구 할 텐가. 서방 얻어 가기 전에 밥술이나 벌어주야 에미애비두 허리를 펴 잔나. 저 계집년이 몹쓸어 자식을 덜되게 가르친단 말야. 이 담홍이란 년 안 보았겠다. 요년이 낫살이나 차라서 겨우 화댓닢이나 벌라 하니께 저년이 귓속질을 해서 서울루 쫓았겠다. 저년, 송가의 딸년 같으니. 그놈어 뒤상 소갈머리가 고약하니 딸 하나 둔 게 저 모양이야. 뒤상 죽을 때 제 딸년마자 데리구 갔으믄 이 고약스런 기구한 팔자나 면할 걸. 이년 이 송가의 딸년 생게두 없어지지 않구 내속을 태우네? 이 주리땔 안길 년아. 모두 소리 안 나는 총이 있으믄 좋겠다. 아니 이, 운희란 년 어데루 살짝 도망쳤나. 제 에미 년이 빼돌렸겠지. 이 아새끼놈은 또 새박에 나가더니 어데루 갔나. 그놈어 새낀 물구신한테 홀렸나. 새박이면 눈이 짜개지기가 무섭게 강으루 내빼니 물구신이 잡아다 뼈두 안 남기구 삼켜버릴 간나새끼덜 같으니.”

한참 뜸한 것 같더니 그 다음엔 화가 천둥 같아서 주먹으로 샛문을 뚜드리며,

“아니 이 송가의 딸년이 이대루 나를 생매장할 테냐. 이 마른 벼락을 맞을 년아. 아이구 이년아. 아이구 복통이야 아이구 가슴이야.”

넋두리로 변하다가 목을 턱 놓고 초상당한 것같이 섧게 울어댄다.

소문난 집이라 웬만해서는 창피할 것도 없지만 이른 새벽에 곡성이 진동하니 동리 사람 보기도 미안하다. 하는 수 없이 낯이 새파랗게 질린 어머니가 물 묻은 손을 치마에 씻고 괴춤에서 1원짜리 1장을 꼬기꼬기 개킨 채로 아버지에게 집어던진다. 장판에 낯을 파묻고 엉이엉이 울어대던 아버지는 종이 떨어지는 소리에 귀가 반짝 열리는지 시름히 고개를 들어 쥐 낚는 고양이처럼 지폐장을 각 채들인다. 울음을 두어 번 어린 아이같이 떨칵떨칵 삼킨 뒤에 푸시시 일어난다. 누장판 같은 바지를 괴춤만 움켜잡고 커다란 고무신을 철레철레 끌면서 운봉이의 옆을 지나서 뿌르르 대문으로 나가버린다. 그의 안중에는 운봉이도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아침에 이렇게 나갔던 아버지가 그날 오후 4시에 임종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꿈 같은 일이나 그것이 현실이었다. 운봉이는 구긴 봉투를 1장 들고 우편소로 가는 길이다. 누이에게 전보를 쳐야 한다.

그렇듯이 지체밀망을 하던 폐인이라고 할지라도 역시 남편이었고 또 아버지였다. 언제나 이 꼬락서닐 안 보구 살 거냐구 아침까지도 지청구를 퍼붓던 어머니도 미적지근한 복닥재 모양으로 식어 들어가는 초라하고 빈약한 육체를 앞에 놓곤 누구보다 더 바빠하고 손 붙일 곳을 몰라 쩔쩔매었다. 약을 과히 써서 중독이 되어버렸다 한다. 의사도 손을 떼고 지금 겨우 달락달락하는 희미한 숨결만 거두면 뼈와 가죽 새에 최최하게 흐르던 다 날라버린 핏줄은 영영 굳어져버리리라 한다.

운봉이는 울지 아니하였다. 어찌할 바를 몰라서 초점을 못 잡는 두 눈알을 부리부리 굴리던 어머니가 두서없이 내뱉는 말을 좇아 그는 낡은 봉투지를 찾아 들고 우편소로 뛰어가는 것이다. 사실 그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가 실감을 가지고 느껴지지 않았다. 또 그것을 새겨서 연상해볼 여유도 없었다. 손땀이 찐득하게 묻은 봉투지를 뒤적여 뒷면을 찾아보니 희미하게 ‘경성부 관철정 ××번지 가후에 ─ 구로네꼬 내. 김설자 요리’라는 삐뚤삐뚤한 글자를 골라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그는 전보 용지에 그대로 옮겨 쓰고 전문에는 ‘치치기 도꾸수구고이 오도도(아버지 위독 곧 오기 바람. 아버지)’라고 썼다. 집으로 뛰어오는 노상에서 의사를 만났으나 그는 운봉이를 모른 체한다. 뛰던 걸음을 멈추고 아버지의 병세를 물으려고 하나 땅만 들여다보며 의사는 운봉이의 거동을 무시해버린다. 의사는 묵묵히 걸어가다가 골목을 휘어돈다. 대문을 들어서면서 운봉이는 어머니와 운희와 운규의 곡성을 듣고 멍하니 서 있다. 뜰 안에서 낯을 돌리니 초벽한 것이 다 떨어져서 수숫대가 뼈다귀 모양으로 앙상하게 드러난 바람벽이 눈앞에 있다. 여태껏 황망한 가운데도 그의 마음과 머리밑을 찐득이 흐르고 있던 ‘내일엔 서울서 누이가 온다’는 생각이 펄깍 달아나고 다른 생각이 ─ 무엇이 불쌍하고 최최한 아버지를 금박(금방) 가져가 버렸다는 생각이 귀가 황황거릴 만큼 그의 머리를 휩싸버린다. 두 귀가 징 ─ 하니 울고 콱 막혔던 콧구멍이 휭하니 열리는 순간 그는 비로소 눈물이 올라 솟구는 것을 깨닫는다.

3[편집]

삼일장이니 성복제니 오일장이니를 딱히 작정해두지 않았다. 운명한 날 밤에 앞집 명월이 오빠 학구가 광산에서 돌아와서 밤 경할 사람들을 윗방에 모두며 화투판이니 마작판이니를 차리고 문밖에 초롱도 장만해 걸어놓은 뒤, 사주 잘 보는 이한테 가서 날을 받아 왔다는 것이 사일장, 다시 말하면 성복날이다. 운봉이 어머니는 나흘 동안이나 묵혀둘 경황이 없다 생각했으나 잠자코 아무말이 없다. 그로서는 삼일장이니 오일장이니 별로 아랑곳할 게 없었다. 전보 쳐서 하루를 지나면 서울서 담홍이가 올 것이므로 그를 기다리고 있으면 그만이었다. 기다린다고 하여도 아들과 달라 그가 없으면 입관을 못한다던가 하는 격식으로 그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아닌게아니라 얇다란 소나무 관을 사다가 둘쨋날 되는 날 아침 벌써 입관을 해버렸다. 딸을 못 보았다고 죽은 이가 저승에 못 갈리는 없을 게다. 담홍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장례비가 생기기를 기다리는 게나 마찬가지였다. 운명한 뒤 다시 전보를 친 것까지 시간으로 따져서 그 이튿날 하루종일 차시간마다 기다렸으나 담홍이는 오지 않았다. 베 한필을 못 사고 무명 한 끝을 바꾸어오 지 못한 채 돈전개니 만장이니 하는 데도 엄을 내지 못하고 그 이튿날을 그대로 보내게 되니 어머니는 설움 같은 건 생둥생둥해져서 없어지고 걱정이 불쑥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담홍이가 이렇듯 늦어지는 것은 갑자기 준비가 없었다가 장례비를 충분히 마련하느라니 자연 이리 되는 것을 게라고 제 마음에 타이르고 안심하려 들었다.

운봉이도 누이의 일이 궁금하였다. 그의 생각 같아서 전보가 떨어지자 곧 출발할 테니 적어도 그 이튿날은 올 게라 하였다. 명색이 상주라고 차시간 마다 정거장에 친히 나가 기다리진 못하나 운희와 운규가 나갔다가 시름해서 빈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 한없이 낙망이 갔다.

“누이가 아침차에두 안 완?”

학구는 일을 쉬지는 않았으나 광산에서 돌아오면 찾아왔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밤대거리를 끝막고 돌아오는 길에 운봉이가 실심하여 토방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머리를 쩔레쩔레 흔드는 것을 보더니,

“아니거 어떻게 된 판국인가.”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운봉이 옆에 구럭을 놓고 궁둥이를 앉힌다. 몇 사람 안 되는 밤경꾼도 날이 훤히 밝자 뿔뿔이 돌아가버려 큰일을 치른 집같지 않게 조용하다. 운봉이는 아직도 두서 없는 생각에 골똘해 있다. 정작 아버지가 돌아가버리니 처음은 한없이 서러웠으나 그것이 이틀을 지내는 동안 종적을 잡을 수 없이 사라지고 운봉이 제일이 자꾸만 생각되었다. 학교에는 그 뒤에 가지 않았으니 선생의 말대로 실행은 안했더라도 좋으나 제 생각같이 상급학교에 갈 수 있겠는가가 하루바삐 안타까웁게 알고 싶다. 엽서로 누이에게 물으려던 참이니 누이가 오게 된 것은 이 문제만으로 보면 맞춤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아버지의 죽음은 상급학교 가는 문제에는 별반 지장이 되지 않을 것이므로 담홍이누이의 확답만 있으면 그만이다. 처음에는 슬프고 바쁜 통에 통히 그 문제에 생각이 가지 않았으나 누이가 이틀 사흘째 되어도 오지 않으매 불쑥 이러한 근심이 치밀어 올랐다.

“누이한테서 편지 온 게 원제가?”

학구는 운봉이를 잠간 솔깃하니 바라보면서 묻는데 운봉이는 좀 퉁명스럽게,

“한 달 됐나 몰라.”

한다. 주소의 이동을 염려하는 것이다. 이것을 그때서야 알아차리고 운봉이는,

“명월이뉘한텐 편지 안 왔나?”

하고 되려 학구에게 물어본다. 그러나 학구는 멍하니 마당만 바라보고 있을 뿐 운봉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는다. 무슨 생각에 골똘해 있는지를 운봉이가 의아스레 생각하는 것 같아서 한참 동안 물끄러미 움직이지 않던 고개를 약간 들면서,

“발쎄 펜지 서루 안 하는 데 오래다.”

하고 자기도 무심결에 가느다란 한숨을 짓는 듯한다. 그렇게 친하던 사인데 그리고 이번 일에도 명월이가 안일을 맡아서 도웁고 있는 터에 어찌하여 담홍이와 편지 왕래가 끊어진 지 오래인가? ─ 응당 이것이 설명되어야 할 것을 학구는 운봉이의 표정에서 간취하고 제가 쓸데없는 발설을 한 것을 뉘우쳤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은근히 쩔쩔 매며,

“괜하니 쓸데없는 일 때문아. 인제 오믄 다 풀어버릴 테지.”

하고 어색하게 중얼대었다. 명월이와 담홍이가 거래가 끊어진 것은 순전히 자기 때문에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담홍이가 서울로 간 지 얼마 안 되어 눈이 부시게 휘황찬란한 사진이 담홍이 집으로 왔다. 뒷굽 높은 구두쯤에 새삼스레 놀랄 필요는 없겠으나 이 고을서 보지 못하던 경쾌한 양장과 머리 모양에는 눈을 뒤솟지 않을 수 없었다. 양복이라면 여훈도의 쿠렁쿠렁하고 몸에 붙지 않는 곤색 서지거나 여름에 오카미상(여인네)들이 고시마키(일본옷의 허리띠)위에 들쓰는 간땅후꾸(간편한 옷)만 보아온 눈에 담홍이의 사진은 노상히 일경을 시키게 함에 충분하였다. 그것을 받아 들고 운봉이는 윗거리에 있는 양복점 안에 사진틀에 넣어서 주룬히 매달은 서양 사람들을 연상하였다. 서울 가는 데 반대하던 아버지도 이 사진에는 만족한지 물끄러미 치어다보다 휙 던져주며 ‘소갈머리 없는 게 하이카라만 부리넌 게건’하고 핏기 없는 피부를 궁상맞게 함칠거리며 입 가장에 웃음을 띤다. 물론 이 사진은 빈틈없이 총총히 붙여서 매달았던 길쭉한 사진틀을 내려서 다른 것을 뽑아내고 맨 가운데다 모셔서 걸었다.

그렇게 한 지 며칠 뒤에 운봉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막 대문소리를 내고 들어오는데 방문이 열리고 황망한 표정을 얼굴에 드러낸 채 두 손에 무슨 종이조각 같은 걸 들고 학구가 어마지두 뛰어나온다. 어인 영문을 몰라 더 놀다 안 가느냐고 말을 건네려는데 그는 뿌르르 나가버린다. 방안에 들어와 보매 집안엔 아무도 없다. 마실을 갔는지 아마 앞집에나 뒷집에나 잠깐 다니러 갔을 테지만 방안은 휭하여 학구의 수상한 행동을 알아낼 길이 없다. 마침 방바닥에 인화지 조각이 하나 남아 있어서 사진틀을 쳐다보니 담홍이의 양장한 사진이 없었다.

이러한 작은 사건과 자전거 포 하는 완일이의 놀리는 수작밖에 운봉이는 담홍이와 학구의 내막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지금도 학구 때문에 담홍이와 학구의 누이동생 명월이와의 새에 의가 상한 것은 짐작할 도리가 없었다.

“담홍이 서울 간 데가 발쎄 이태가 되나.”

싱겁고 면구스러운 김에 해보는 말임에 틀림없으나 벌써 학구의 말에서 어떤 기미를 눈치챈 운봉이에게는 이러한 학구의 말은 더욱 부자연한 것으로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스물 둘 난 학구와 열 네 살 난 운봉이의 대화가 부자연해가려고 할 때 마침 운봉이 어머니의 갑작스런 울음이 문창을 울릴 듯이 요란스럽게 들려온다. 따라서 운규가 이에 못지 않게 큰소리로 울어댄다. 이 바람에 학구는 껑충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서며,

“이전 고만 두슈. 돌아가신 이가 운다구서 머 ─.”

하다가 그 다음 말이 잘 나오지 않아,

“운규 웁네다. 어린것덜 봐서래두 오마니가 울문 되갔쉥까.”

하고 어루만진다. 운봉이도 슬며시 기둥을 지고 일어섰다.

그러나 다행히 참말 다행히 그 다음 차로 담홍이가 왔다. 웬걸 낮차에 올게냐구 아무도 정거장에 나가지 않았더니 바로 그 차에 온 것이다.

“서울서 옵네다.”

하는 어떤 여인네 소리가 대문 밖에서 나므로 운봉이가 뜰로 뛰어가보니 담홍이는 아래위 흰 옷으로 긴 치마를 두르고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다. 갑자기 할말이 없어 토방 위에서 어물어물하고 있는데 방안에서 담홍이를 본 어머니가 흰 포장 친 뒷목을 향하여 궹궹 쳐울기 시작한다. 그 바람에 담홍이와 그 뒤를 따라오던 여인네와 고리짝을 하나 지게 위에 진 머슴아이의 시선은 일시에 방안으로 쏠린다. 운희만이 침착하게 운규를 업고 마중 나서더니 토방 위에 올라서는 언니의 앞으로 가서 푹 치마폭에 얼굴을 묻는다.

담홍이는 커다란 핸드백을 들고 처음부터 아무말이 없다. 머리는 푸시시하니 헝클어져 있으나 눈은 그전같이 뚱그런게 찻속에서 시달린 탓인지 띄꾼하다. 눈가장엔 약간 검버섯이 끼고 낯색이 바짝 희게 질려서 윗니틀이 좀 두드러진 것 같다.

운희와 운규를 한참 묵묵히 내려다보다가 슬며시 옆으로 돌려 세우고 고무신은 토방에 벗어놓고 방안으로 들어간다. 나지막한 병풍을 둘러 세우고 그 위로 흰 포장을 늘인 뒷목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고 섰으나 그는 무표정에 가깝다. 목을 놓고 울던 어머니가 이마와 얼굴에 뒤엉키는 파뿌리 같은 눈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치켜 올리면서 반가움인지 슬픔인지 노염인지 분간키 어려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볼 때 비로소 담홍이의 커다란 두 눈에는 핑하니 물기가 떠올랐다.

4[편집]

장례를 치르고도 담홍이누이는 가지 않았다. 남에게 매인 몸이란들 삼우제도 안 치렀는데 그대로 가버릴 리는 없을 터이니 아무런 갈 차비도 차리지 않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으나 가지고 온 고리짝을 끌러서 그 속에 든 알맹이를 펼쳐놓을 제 운봉이는 누이가 서울을 아주 떠나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안 생길 수 없었다. 철이 지난 백구두, 선기가 나서부터는 입지 못하는 여름 옷가지, 무엇보다도 푸르런 모기장 이런 것들은 집에다 버리고 갈려고 일부러 싣고 온 게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바엔 닥쳐오는 가을이나 겨울엔 소용 없는 물건들이었다. 그리 크지도 않은 고리짝 속엔 이 대신에 별로 몸에 지닐만한 물건도 없다. 벌써 1년 반이나 지난 일이기는 하나 처음 서울 가 몇 달 만에 박아 보낸 사진과 같은 양장은 어느 구석을 털어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은 입지 않는 여름 옷가지가 몇 벌 주름살이 고기고기 구겨진대로 뭉치어 있으나 별반 값나는 옷가지는 아니다. 지금 당철에 입을 옷은 하나도 없다.

또 하나 수상한 것이 있다. 누이는 적어도 100원 1장은 가지고 오리라 생각했던 것이 내놓는 것을 보니 40 원이 좀 남짓할 뿐이다.

“전보를 일찍 받았더면 좀더 돈이래도 둘러보잘게 내가 그 집을 나온 지가 얼마 된 때문에 이틀을 걸러서야 나 있는 하숙을 찾아왔으니 급작스레 돈 맨들 구멍이 있어야지.”

그래 아무런들 주인한테 고만한 돈이야 못 두를 것이냐고 어머니는 생각하는 모양이나 딸의 모양이 뜻밖에 최최한데 질리어서 그는 아무 말도 안 하였다. 우선 삼우제나 지내놓고 ─.

그래서 통히 이런 것에는 눈이나 마음을 팔지 않고 삼우제까지를 치렀다. 묘에 갔다 오니 방은 휭한데 아편장이 아버지 대신에 윗간 구석에 초라한 혼백상이 하나 뎅그렁하니 놓여 있다. 이 혼백상만 해도 하루 세 때를 변변히 해받치지 못할 처지라면 그리고 삭단제니 졸곡제니 말도 말구 죽은 날 3년 동안 제사는 해야 안 하느냐고 말이 많아져서 아예 당초에 법식따라 하지 못할 바엔 혼백을 불사르는 게 어떻느냐는 말까지 있었으나 남들이 보나마나 해두 그럴 수는 없다고 저렇게 인조견 자박이나마 늘여두게 한 것이었다.

삼우제까지를 치르고나면 아버지를 위한 의무는 우선 풀어져버린다. 담홍이누나는 저만 바란다면 서울로 돌아갈 수도 있고 운봉이와 운희는 학교에 를 다시 가야만 한다.

저녁을 이럭저럭 치르고나서 마실 왔던 학구 어머니마저 다녀가니 처음으로 단출하게 가족끼리 방안에 모이었다. 운규는 며칠 동안 바쁜 틈에 들볶인 탓에 벌써 아랫목에 네 활개를 펴고 곯아떨어졌고 운희는 궤짝 뒤와 발치 구석과 혼백상 다리 밑으로 머리를 틀어박고 흩어진 책을 모으기에 바쁘다. 한참씩 꺼끕 서서 다리를 뒤로 뻗고 데가닥거리다간 먼지 묻은 책을 꺼내 들고 ‘운봉이 산술책 못봔’하곤 이편을 본다. 모아온 책을 시간표대로 책보에 싸서 머리맡에 놓고 휭하니 아랫목으로 내려가는 폼이 어딘가 처녀꼴이 난다. 아버지가 학교를 떼서 기생으로 넣어야 쓴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안달을 부릴 때마다 밥도 채 못 먹고 책보를 들고 학교로 뛸 때엔 아직 철딱서니 없는 어린애만 같더니 저렇게 채국채국 제 할일을 치른 뒤에 뒷골방에서 요와 이불을 꺼내다 쭈루루 깔아놓는 것을 보면 제법 색시티가 나는 것 같다.

윗방 샛문턱에 팔굽을 세우고 멍하니 이것을 보다가 운봉이는 밖으로 나왔다. 나와도 갈 데가 없다. 학구한테나 갈까 했더니 그는 지금 밤대거리가 되어 이곳서 한 5리 가량 되는 광산 기계간에 가 있을 게다.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아서 캄캄한 토방에 쭈그리고 앉았다.

운희가 책보를 꾸리는 것을 보나마나 벌써부터 운봉이도 내일은 학교에 가야 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아까부터 이 생각에 골똘했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에 없으니 담임 선생이 데리고 오라던 말은 소용 없이 되었다.

그러나 공부를 시키고 안 시키는 열쇠를 쥐고 있는 장본인이 와 있다. 내일 학교에 가는 바엔 이 문제를 단단히 다짐을 받아가지고 가야만 할 게다. 지금이라도 선뜻 방안으로 들어가서 바람벽에 기대어 한 다리는 뻗고 또 한 다리는 세우고 왼팔로 머리를 무르팍 위에 괸채 암것도 안 하는 담홍이의 낯을 붙들어 세우고 ‘누이야 나 서울 공부 시켜주지?’한다든가 ‘전에 약속한거 잊지 않았지’라든가 해놓으면 만사는 결단이 날 게다. 그러나 이 한마디 말이 용이하게 입밖에 나오지를 않는다. 떨어진 지가 한 이태 된다고 별로 서먹서먹해진 탓도 아닐 게다. 아버지 세상 떠나자 이건 또 무슨 구살 맞은 변이냐고 눈총을 맞을까 두려워 그러는 것도 아닐 게다. 제 입에서 이 한마디가 나온 뒤에 누이의 입에서 어떠한 판단이 내릴지가 은근히 무서운 것이다.

‘염려 마라. 그것만은 결심한 대루 잊지 않았다.’이 말이 과연 나에게 올 수 있는 합당한 말일 거냐. 만일 이 말 대신에 ‘학교가 다 무슨 태평세월에 하는 치다꺼리냐’소리만 나오게 된다면 그때에 자기가 당할 불행을 대체 어떻게 처치할 것이냐. 모든 것이 끝이 난다. 모든 것이 불행하게 끝이 난다. 이 불행을 한시각이라도 멀리 물리쳐 보겠다는 의식하지 않은 생각이 그로 하여금 누이와 대뜸 들어가 단판하는 것을 망설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질없는 상상은 곧잘 화려한 환상이 되기 쉽다. 누이에게 말해볼 게냐 말 게냐를 골똘하게 생각하다가도 어느 새엔지 공상은 그를 학교로 끌고 가서 교실 속으로 몰아넣는다.

“운봉이는 어느 학교를 지원할 생각이냐?”

이렇게 선생이 묻는다.

“제성 제일고등보통학교올시다.”

기운차게 운봉이가 대답한다.

“학비는 누가 댈 참이냐?”

“서울에 있는 제 누이가 대이기로 되었습니다.”

선생도 놀래고 생도들도 놀랜다. 선생도 부러워하고 생도들은 더욱 부러워한다. 운봉이는 만면에 웃음을 잠그고 의기양양하다. ─

자꾸만 이런 생각이 앞을 선다. 누이와 담판하여 이러한 결과를 낳게 되면 운봉이의 행복은 하늘가로 둥둥 뜬다…….

운봉이는 토방에서 일어난다. 어찌 되었든 누이에게 물어보자. 낮을 돌려 아랫방을 보니 전등으로 윗방으로 올려 걸고 아랫방은 캄캄하다. 그 동안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그들은 벌써 잠에 취한 모양이다. 운봉이도 윗방으로 들어가 전등을 끄고 제자리에 누웠다. 하는 수 없이 이야기는 내일 아침으로 미루어야 한다. 그는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는다. 눈은 감기는데 머릿속이 생둥생둥해서 잠을 들 수가 없다. 1 주일 가까운 피로에 지쳐서 자릿속에 몸을 눕히자 온몸은 안식을 요구한다. 그러나 머릿속이 이상스럽게 새록새록하다. 간혹 졸음에 휩쓸려도 가위에 눌리었다.

그런데 아랫방에서 이야기 소리가 난다. 무엇한테 바짝 눌리었다. 펄딱 소스라쳐 깨는데 아랫방에서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잠귀에 똑똑히 들렸다.

“너 언제 몸이 있선?”

어머니의 묻는 말이다. 이 말만 가지고는 그것이 누구에게 묻는 말인지 똑똑하지 않다. 운희보고도 물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대답도 없다.

“담홍이 발쎄 자네?”

또다시 어머니의 재치는 말이다. 그 물음이 담홍이 누이에게로 가는 것임은 똑똑해졌다. 그러나 자는지 깨고도 덤덤한지, 담홍이 누이의 대답은 들리지 않는다.

이어서 어머니의 긴 한숨이 들려온다. 그러나 그 한숨이 채 끝나기 전에,

“넉 달채야.”

하는 가는 목소리로 누이의 대답이 들려왔다. 또 다시 아무말이 없고 감감하다.

이 짧은 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운봉이에게도 족히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누이의 얼굴과 옷맵시와 고리짝의 내용이 대충 설명이 되는 듯싶다. 임신 4 개월이라면 배도 어지간히 불렀을 게다. 쿠렁쿠렁하니 긴 치마를 두르고 두 손을 늘상 앞치맛자락에 읍하던 것이 생각난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그런 재주를 가지곤 좀처럼 숨길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아이 애비는 뭘 하는 사람이냐?”

한참만에 다시 어머니의 묻는 말이다. 사실 아이를 배어서 이미 넉달이 지난 바엔 그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 것을 나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제일 긴요하였다. 물론 어디 사람인데 성은 무엇, 이름은 무엇, 본은 어디 하고 묻는 것이 아니다.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다. 직업이 뭐냐 좀더 뾰죽하게 털어서 말하자면 부자냐 가난뱅이냐 돈냥이나 실히 낼 사람이냐가 궁금한 것이다. 어머니의 간단한 물음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담홍이도 어머니의 묻는 뜻을 지나치게 잘 안다. 그러므로 이러니 저러니를 길게 늘어놓는 것이 아무 소용도 없는 것, 그리고 긴요한 것을 말하지 않고 딴 변두리를 빙빙 돌았자 어머니의 속만 더 클클하게 할 것을 잘 알고 있다. 한참만에 제가 제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는 어조로,

“돈 낼 만한 사람 같으면 고리짝 싸가지구 왔겠수.”

이 한마디는 모든 것을 설명하고, 해석하고 결단지었다. 전보친 뒤부터 자꾸만 뒤틀려 나가던 담홍이에 대한 예측이 지금 이 한마디로써 그 전부가 설명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말이 가져오는 타격이 그들에게는 한없이 컸다.

어머니의 입에서는 숨소리조차 안 나온다. 그럴 리야 없겠지 아무러면 그럴 리야 있겠느냐구 여태껏 속으로 되씹고 되새기고 하던 것이 이 한마디에 여지없이 부서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말에 의하여 타격을 받은 것은 어머니뿐만이 아니었다. 윗방에서 이들의 대화를 듣던 운봉이는 거의 머리빡이 돌덩이처럼 감각을 잃어버렸다.

방안에는 칠흙같이 검은 침묵이 질식할 듯 꽉 찼다. 운규와 운희의 숨소리만이 버러지 울음같이 고요하다. 꿈에 누구한테 쫓기는지 운희가 몸을 뒤채며 끄긍거리고는 입을 쩔갑거리며 깊은 숨을 쉰다. 또 다시 숨소리.

하룻밤을 뜬눈으로 새우다시피하고 아침 일찌감치 운봉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책보에 교과서와 잡기장과 참고서를 함께 꽁꽁 싸 놓았다. 《중등학교 입학시험 문제집》도 뚜껑을 한참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다른 책과 함께 보에 쌌다. 그것을 아버지 혼백상 다리 밑에 놓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간밤에 작정한 대로 실행한다.

첫 실행으로 학구를 찾았더니 아직 광산에서 안 왔다. 올 시간이 되었는데 어인 일이냐고 물었더니 명월이가 새벽에 시장한 김에 오다가 묵집에 들렀을 게라고 한다.

운봉이는 묵집에로 갔다. 학구는 구럭에 옆에 놓고 감발하고 지카다비(작업화) 신은 채 다리를 쭉 뻗고 앉아서 파르스름한 녹두묵에 마늘장을 쳐서 후후 불며 넉가래(곡식이나 눈 등을 한곳에 밀어 모으는 데 쓰는 기구) 같은 술로 연신 퍼넣고 있다가,

“운봉이 너 웬일이가. 둘어오나라.”

하더니 부엌 쪽을 향하여,

“오마니 나 더운 묵 5전어치만 더 주.”

한다. 운봉이는 아무말도 안 하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학구형이 만낼라구 집이 갔대서.”

“날? 날 만낼라구?”

학구는 입에서 술을 빼며 눈이 둥그래진다. 뜨거운 묵을 혀끝으로 슬슬 돌리다가 꿀거덕 소리를 내서 삼켜 넘긴다. 빤히 쳐다보는 바람에 운봉이는 점직해서 씩하니 웃었다. 학구도 버륵하니 마주 웃는다.

“학구형이 나, 형이 댕기는 기계깐에 넣어 다우.”

그대로 웃는 낯으로 졸라보았다.

“머? 네가? 학굔 어떡하구. 내년에 졸업인데 학굔 어떡하구.”

그러나 운봉이가 이 말에 대답하지 않으매 학구도 재처 묻지 않는다. 학교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광산으로 가게 되던 6, 7년 전의 자기의 사정이 지금 운봉이를 찾아온 것이라고 그는 이해한다. 묵이 올라왔다. 상 귀퉁이로 마늘장을 밀어놓으며,

“어서 묵이나 머.”

하고 운봉이에게 권한다.

묵을 먹고 학구를 따라 행길에 나서니 가을 아침의 맑은 햇발이 몸에 상쾌하다.

완일네 자전거 포 앞을 지났으나 완일이는 껀득 인사만 하고 아무 말이 없다. 놀려댄다고 하여도 운봉이에겐 부끄러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아무 것도 부끄럽고 무서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