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국장 최규하 추도사
대통령 각하!
갑자기 이 무슨 청천의 벽력이십니까. 졸지에 이 무슨 변이십니까.
이처럼 영전에 엎드려 삼가 영결의 말씀을 드리게 될 줄이야 어느 누가 상상조차 하였겠습니까.
아흐레 전 천지가 진동하여 산천초목이 빛을 잃었고, 경악과 비탄으로 온 국민들 가슴이 메었습니다.
그 다정한 웃음이 눈에 선하고 친근한 음성이 귓전을 맴돌고 있는데, 우리를 남겨두고 홀연히 가시다니 이게 어인 일입니까.
하늘도 무심하십니다. 5년전 영부인께서 불의에 돌아가신 비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직도 나라와 겨레를 위해 하실 일이 많은데 각하 자신마저 불시에 가시었으니, 이 얼마나 망극한 일입니까.
지금 황금빛 물결이 넘실거리는 들녘엔 격양가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전국의 우람한 공장들, 대역사의 현장에서도 생산과 건설을 서두는 일손들이 이 순간 멈추고 있습니다.
각하께서 유명을 달리하신 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국민이 통곡하고 있습니다.
각하! 저 목메어 오열하는 소리를 들으십니까. 저 눈물에 젖은 얼굴들이 보이십니까.
많은 나라에서 혹은 조기를 달고, 혹은 공휴일을 선포하여 애도의 뜻을 나타냈으며, 많은 우방들의 지위 높은 사절들이 이곳에 우리와 자리를 같이 하여 조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각하!
돌이켜보면 이 나라를 이끄신 지난 세월은 각하 자신에게는 형극과 와신상담의 길이요, 성취와 영광의 길이기도 하였습니다.
6·25 동란 후 혼란과 정체가 거듭되고 이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매, 각하께서는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5·16 군사 혁명을 주도하시어 국가재건의 거보를 내디디셨습니다. 조국의 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이념을 제시하시고 확고한 신념과 불굴의 의지로 국민을 뭉치게 하시어, 스스로가 깨닫지 못했던 우리 국민들의 저력을 발휘하게 하셨습니다.
분단된 국토, 격동하는 내외정세 속에서 북한공산집단의 끊임없는 침략도발을 봉쇄하여 국가를 보위하시고 우리의 생존과 안전을 수호하셨습니다.
이와 함께 경제개발과 국력증강을 위한 대행진에 앞장을 서시고, 창의와 정성을 쏟으시기에 하루도 편안하게 쉬시는 날이 없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각하! 농촌에서 태어나신 당신께서는 누구보다도 농민들을 사랑하시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들과 가까운 벗이었습니다. 우리 농촌을 잘 살게 하기 위하여 새마을운동을 구상하고 몸소 지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헐벗었던 산야에 푸른 빛이 소생하고, 척박한 땅이 기름진 옥토가 되어 우리의 농촌은 모습을 일신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도시와 공장으로 확산된 근면 · 자조 · 협동의 새마을정신은 우리 국민들의 생활신조가 되고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우리 국민은 과거의 체념과 좌절에서 벗어나, 자신과 긍지를 되찾고 천년 묵은 빈곤을 추방하며 남부럽지 않게 잘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산업을 진흥하여 국민의 생활수준을 끌어 올리시고 중화학공업의 건설을 촉진하여 국방을 튼튼하게 뒷받침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 속의 한국, 앞서가는 신생공업국가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이를 보고 하나의 기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어찌 기적이나 요행의 소산이겠습니까.
우리는 오늘의 성장이 각하의 위대한 영도력과 애국애족의 경륜에서 비롯된 국민적 노력의 결정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면 된다』는 굳은 신념과 뜨거운 격려에 고무되어, 쉬지 않고 땀흘려 일한 보람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각하! 각하께서는 우리 국민들이 고난과 역경을 겪을 때마다 이를 오히려 약진을 위한 계기로, 또는 전화위복의 발판으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국가의 안전을 위해 유비무환을 되풀이 강조하셨습니다. 나라가 위급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주변 정세의 변화와 북한공산집단의 침략위협이 거듭되는 냉엄한 내외상황 속에서 각하께서는 우리의 국력을 결집하여 자주 · 자립 · 자위의 정신으로 난국을 타개하고, 나아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고자 유신을 단행하시었습니다.
그후에 닥친 자유월남의 패망을 비롯하여 석유파동과 세계적인 경제불안 등 격동하는 국제정세의 와중에서도 우리는 국가를 굳건히 수호하고 국력의 신장을 촉진하면서 나라의 앞길을 우리의 힘으로 개척하였습니다.
대통령 각하!
이제 웅비의 80년대를 눈앞에 두고, 어찌하여 이처럼 어렵고도 보람찬 시기에 갑자기 우리와 영구한 이별을 하십니까. 우리들의 단장의 슬픔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각하의 그 거창한 발자취와 업적으로 하여 우리의 애절한 정이 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나라를 지키고 이끄시는 그 노심초사와 어려운 결정을 하실 때의 고독을 헤아릴 수 있었기에 저희들의 비탄이 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직 근엄하시면서도 소탈하고 자상하시고, 의리와 인정이 넘치는 인간미로 하여 각하를 기리는 마음이 더욱 간절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분주한 국사 중에서도 틈을 내어 방방곡곡을 두루 다니시며, 농민과 근로자와 기업인, 그리고 공무원들을 고루 위로 격려하시고, 의욕과 힘을 북돋아 주시던 광경들이 눈앞에 생생합니다.
각하! 우리 나라의 구석구석까지 각하의 발자취와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으며, 이러한 애정과 집념은 조국의 산야를 금수강산의 모습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대대로 가뭄과 홍수에 시달려 온 농민들을 더욱 잘 살게 하고자, 우리 지도를 바꾸어 놓은 여러 대역사를 친히 창안하고 또 지도하시었습니다.
그중의 하나인 삽교천방조제의 준공식에 참석하시어『상전벽해라는 옛말대로 이 웅대한 인공호를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하시면서 기뻐하시었습니다.
이것이 당신께서 국민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 될 줄이야 그 누가 꿈엔들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여름이면 기능공들의 식사를 걱정하시고, 겨울이면 국민들의 땔감을 염려하시며 나이어린 여성 근로자들에게 입을 옷을 보내 주시고, 그늘진 곳, 어려운 사람들을 잊지 않으시어 진정어린 도움과 함께 용기를 잃지 말고 꿋꿋이 살아가라 하셨습니다.
영부인께서 따뜻한 손길로 불우한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시던 일을 회상하매, 내외분의 훈훈한 인덕은 우리들 가슴 속에 길이 길이 간직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나라 전래의 미풍을 뿌리내리게 하시고, 우리의 훌륭한 정신의 자원을 계발하시어 국가백년의 대계를 세우셨습니다.
각하께서 조국근대화의 횃불을 높이 들고 나라의 키를 잡으셨을 때, 우리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던 유산이라고는 피폐한 민생과 내일에의 희망이 없는 실의, 그리고 침체뿐이었습니다.
오늘날 이만큼 나라가 발전되어 세계속의 한국으로 부각되고 나라의 진운이 일취월장함을 볼 때, 각하께서 창조하신 민족사의 금자탑은 겨레와 함께 영원히 불멸할 것이며, 또한 각하에 대한 세계적인 칭송과 추앙은 날이 갈수록 더 해 갈 것입니다.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각하의 위업과 국기를 공고히 하신 공헌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국민의 이름으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봉정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각하의 유지를 받들어 나라의 기틀을 더욱 굳히고, 성장과 건설을 힘차게 계속할 결의를 새로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굳건히 수호하면서, 민족문화의 꽃이 피는 부강한 나라를 이룩해 나가겠습니다. 나아가 이 토대 위에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기필코 달성하고 민족중흥의 대업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각하의 서거로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으나 불의에 영도자를 잃은 비상사태에 처하여 추호의 동요없이 침착하고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우리 군은 국토방위의 책임에 투철하여 철통같은 방위태세를 견지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슬픔을 누르고 질서있게 각자의 직분을 다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앞길은 평탄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만만치 않은 도전과 시련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어려움에 처하여도 애국심과 지혜와 단합된 힘을 발휘하여 이를 극복하면서, 위대한 통일조국과 민족중흥을 향한 줄기찬 전진을 계속할 것을 영전에 고개숙여 굳게 다짐합니다.
대통령 각하! 정녕 회자정리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란 말입니까.
당신께서는 새 역사를 창조하신 이 나라 중흥의 위대한 영도자로 우리 마음 속에 길이 살아 계실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자녀분들은 우리들이 정성껏 돌봐 드리겠습니다. 이제 영부인곁에서 고이 잠드소서.
재천하신 영혼이시여! 영광과 안식과 영복을 누리시며 하늘 나라의 큰 별이 되시어 이 나라, 이 겨레의 앞길을 비쳐 주시고, 지켜 주시옵소서.
1979년 11월 3일
고 박정희 전 대통령 국장 장의위원회 위원장 최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