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고/의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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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편집]

三秩以上 紫衣牙笏金魚

五秩以上 緋衣牙笏銀魚

六秩以上 淺緋衣木笏

八秩 綠衣木笏

遼天顯四年 太宗幸遼陽 使人皇王 備乘輿羽衛以迎 乾享五年 聖宗巡東京 留守具儀衛迎車駕 盖故渤海儀衛云



按宋史 太祖問趙普 拜禮何以男子蛫 以婦人不蛫 普問禮官不能對 王溥孫貽孫以練達稱曰 自唐太后朝 婦人始拜而不蛫 大和中幽州從事張建章 著渤海國記 備言其事 普大稱之 意其書多載渤海儀文 而東國不傳 唐藝文志 張建章渤海國記三卷

번역문[편집]

삼질(三秩) 이상은 자의(紫衣), 아홀(牙笏), 금어(金魚)

오질(五秩) 이상은 비의(緋衣), 아홀, 은어(銀魚)

육질(六秩) 이상은 천비의(淺緋衣), 목홀(木笏)

팔질(八秩)은 녹의(綠衣), 목홀


요(遼) 천현(天顯) 4년, 태종(太宗)이 요양(遼陽)에 행차하는데 인황왕(人皇王)을 보내 가마를 깃털로 장식하여 맞이하게 했다. 건향(乾享) 5년, 성종(聖宗)이 동경(東京)을 순행할 때, 유수(留守)가 의위를 갖추어 수레와 가마를 맞이했는데, 대게 옛 발해(渤海)의 의장이라고 했다.


송사(宋史)에 따르면, 태조(太祖)가 조보(趙普)에게 물었다. "배례(拜禮)할 때 남자는 무릎을 꿇는데 부인은 아니 꿇는 이유가 무엇인가?" 보(普)가 예관(禮官)에게 물으니 답하지 못하였다. 왕부(王溥)의 손자 이손(貽孫)이 연달(練達)하여서 말하길, "당 태후(唐太后) 이래로, 부인이 비로소 무릎을 안꿇었다는데 대화(大和) 중에 유주종사(幽州從事) 장건장(張建章)이 발해국기(渤海國記)를 지었는데 그 일을 말했습니다." 보가 크게 칭찬했다고 한다. 그 책에 발해의문(渤海儀文)에 관한 글이 많이 실린 것 같으나 동국(東國)에는 전하지 않는다. 당예문지(唐藝文志)에 장건장의 발해국기 3권(渤海國記三卷)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