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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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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객: 병세 위독하신 때에 이번만 재기하면 기필코 완성하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습니까?

환자: 예전에 어떤 왕이 장자(莊子)를 찾아가서 나라를 잘 다스릴 방책을 물었더니 대답도 않고 책망하여 보내더라 합니다. 그 후에 수년이 지나서 재방(再訪)하고 내가 잘 사는 방침을 가르쳐 달라한즉 무릎을 치면서 쾌락하고 일어나 응대하더라 합니다. 나도 이제는 큰 사업 성취보다 내가 참되게 살아갈 것이 소원이요.

객: ······

환: 형무소에서 생활하려면 별별 놀라운 일을 많이 봅니다. 아무리 살인 강도와 그 밖에 극악의 인물이라도 이편에서 사랑과 성심으로 대한즉 그 눈동자에 감응하는 광채가 보입니다. 대체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즉 저들에게도 아직 구원의 소망이 있더라는 말씀이올시다. 저들은 사상범이라면 매우 존경합니다. 그런데 끝끝내 감응이 없고 냉랭한 것은 사기범들이올시다. 저들은 지능적 범죄자인 만큼 용이히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호의에 대하여도 의아(疑訝)로써 응합니다. 예수께서 바리새 교인들과 서기관들을 통격(痛擊)하신 것은 너무 과하신 듯한 감을 불금(不禁)이었으나 그도 아마 지능범인 까닭인가 합니다. 다른 죄인은 모두 구함을 얻는다 하더라도 지능범만은 영원히 구제받기 어려울까 합니다.

객 : 과연 그럴 것이올시다.

환: 반년 이상 입원생활을 하려면 병원이 내 집 같습니다. 그러나 변소문을 열어 보아서 너무 추잡하면 문을 닫고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것이 만일 내 집이라면 어떻게 할까. 또 타인들이 보면 누가 이렇게 어지럽게 하였느냐고 물을 때 그 심중에 조선인! 이외에 누구를 짐작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간호 청년과 함께 불결한 변소를 만날 때마다 청소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는 우리 할 일을 하기 위해서, 또 하나는 단 한 번이라도 조선인의 욕먹을 기회를 제해 주고자 해서.

○ 환자의 사상의 시내는 흐르고 또 흘러서 그칠 바를 알지 못한다. 말씀을 먹고 산다 함은 이런 사람을 가리킨 것인가 싶다. 병상에 있는 일은 이미 동정할 일이다. 그러나 병상에 누워서 생리적 병세의 진퇴 이외에 아무런 사상의 내왕이 없는 사람처럼 가련한 인간이 없다. 저는 괴로움을 괴로워하는 외에 위로받을 길이 전혀 막힌 사람이다. 몸은 병마에 잡혀 있으나 그 영은 항상 시간의 고금(古今)을 통하여 비약하며 그 마음은 언제나 생명의 사랑에 젖어 있을 때에 저는 홀로 있어서도 위로에 넘치려니와 위로하고자 오는 객들까지도 도리어 위로하여 보낸다. 걱정할 것은 사상의 고갈(枯渴)이요, 신앙의 부동(浮動)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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