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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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窓語[병창어][편집]

여름 밤 달 달은 가을에만 볼 것이 아니다. 秋天一夜靜無雲[추천일야정무운]하고 斷續鴻聲[단속홍성]이 到曉聞[도효문]할 때 半空 [반공]에 덩두렷하게 걸린 秋月[추월]이 무론 좋지마는 여름 밤 茂盛[무성]한 풀잎에 구슬 같은 이슬이 풍풍 내릴 때에, 或[혹]은 논밭 사이로 或[혹]은 냇가에 풀숲으로 거닐면서 바라보는 달이 決[결]코 어느 달만 못지아니하다.

온終日[종일] 지글지글 끓이던 더위도 거의 식고 후끈후끈 단 김 섞인 바람이 차차 서늘한 기운을 띠게 될 때면 벽에 걸린 늙은 時計[시계]가 땅땅 열 점을 친다. 자는 것도 아니요, 안 자는 것도 아니요, 마치 終日[종일] 뙤약볕에 시달린 벌판의 풀잎 모양으로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웠다가 時計[시계]소리에 놀라는 듯이 번쩍 눈을 뜨면 활짝 열어 놓은 東窓[동창]으로부터 靑蓮華[청련화] 피게 한다는 淸凉[청량]의 月光[월광]이 흘러 들어와 내 모기장을 비추고 내 病[병]든 몸을 비추고 그리고도 남아서 넘쳐진 물 모양으로 장지를 지나서 마루의 때묻은 창널까지 黃金色[황금색]으로 물들여 준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하염없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일어나려고도 아니 하고 돌아 누우려고도 아니하고, 그렇다고 자려고도 아니하건마는, 가슴 속에서는 마치 달 밝은 산골짝에 피는 흰 안개 모양으로 부드러운 悲哀[비애]의 안개가 피어 오른다. 비록 오래 病[병]들어 누운 몸이언마는 두 팔을 벌려 무엇을 껴안고 싶은 듯하는 淡淡[담담]한 憧憬[동경]이 불그레한 안개로 피어 오른다.

이 달은 東窓[동창]을 가진 房[방]에는 다 들었으려니 하면 우리의 想像 [상상]은 오래 개켜 넣었던 다 낡아빠진 想像[상상]이 날개를 떨쳐 입고 하늘에 찬 月光[월광]을 타고 모든 東窓[동창] 있는 집을 찾아 돌아간다. 여름인지라 東窓[동창]은 다 열렸으니 나를 막을 이도 없을 것이요, 사람들은 다 나와 같은 幻想[환상]과 憧憬[동경]을 가졌을진댄 기쁘게 나를 맞을 것이다. 모든 東窓[동창] 가진 집이 다 내 임의 집이 아니냐. 그러다가 모르게 잠이 든다. 얼마나 잤는고? 번쩍 눈을 뜨면 달은 西窓[서창]으로 들어 내 머리와 가슴을 비춘다. 그 煩惱[번뇌]로 찬 머리와 가슴을!

자다가 깨어서 내 몸이 달빛 속에 잠겨 있는 것을 볼 때, 고개를 들어 내 모양을 달빛에 비추어 무슨 哀愁[애수], 憧憬[동경]을 하고 있는 나무들과 집들을 볼 때에 우리는 초저녁 달을 대할 때보다 한層[층] 더 夢幻境[몽환경에 있는 듯한 ] 感[감]을 받는다. 다시 잠이 들려고 눈을 감으니 그리 興奮[흥분]되는 것도 아니언마는 잠은 들 수 없고 한숨만 지어진다. 人生[인생]의 無常[무상]이 애닲기도 하고 또 自然[자연]의 美[미]와 人生[인생]의 行樂[행락]이 대견키도 하다.

無端[무단]한 생각을 抑制[억제]할 수 없어서 벌떡 일어나 後園[후원]에 나서면 이슬을 흠뻑 받은 풀잎이 내 발과 다리를 스친다. 草木[초목]은 밤 새도록 月光[월광]을 품고 품겨 愉悅[유열]과 疲困[피곤]의 땀에 젖은 듯하다. 새벽 가까운 하늘에 반짝반짝하는 별들의 눈은 그것을 샘함인가 유난히 빛나다. 北斗星[북두성]은 北漢 [북한] 바로 가로 누웠고 이 모든 愉悅[유 열]과 煩惱[번뇌]의 主人公[주인공]인 달은 약간 해쓱한 얼굴로 昌慶苑[창 경원] 숲 위에 걸렸다. 풀밑 벌레들은 밤이 새고 달이 가는 것을 아끼는 듯이 더 소리를 높여서 부른다. 그 부르는 소리는 마디마디 無常[무상]과 行樂[행락]의 후렴이다.

그들은 밤을 새워 男性[남성]을 부른다. 愛慾[애욕]의 煩惱[번뇌]다. 소리를 내는 것이 숫놈이라 하니, 아마 암놈들은 귀를 개웃개웃 가장 기운차고 아름다운 소리를 찾아 풀잎 사이로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혀둥지둥할 것이다. 이리하여 愛慾[애욕]은 連綿[연면]히 繼續[계속]된다. 쥐를 엿보는 노란 點[점]박이 고양이가담을 넘어 아슬랑아슬랑 나를 핼끗핼끗 보며 들어온다.

한 여름 어떤 날의 밤 달이여!

(一九二八年 十月五日[일구이팔년 시월 오일] 《東亞日報[동아일보]》 所載[소재])

朝鮮[조선]의 하늘[편집]

七月[칠월]十九日[십구일]. 今日[금일]이 初伏[초복]이다. 室內氣溫[실 내 기온] 三十三[삼십삼]. 甚[심]히 淸明[청명]하여 마치 잘 맑은 가을 날과 같아서 살랑살랑 바람까지 불어서 더운 줄도 몰랐다.

終日[종일] 一點雲[일점운]이 없고 하늘은 찬바람이 날듯이 푸르다. 북창으로 보이는 北漢 [북한]과 道峰[도봉]이 손에 잡힐 듯하고 그 살에 주름까지 보일 듯이 가깝다. 이렇게 푸른 하늘과 맑은 空氣[공기]의 그 속에 分明 [분명]하게 힘있게 그려진 山[산]은 朝鮮[조선]에서만 보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日本 [일본]이나 中國 [중국]에 나그네로 있을 때에 가장 그립고 잊히지 못하는 것이 朝鮮[조선]의 하늘과 山[산]이었다.

오늘 이러한 하늘을 對[대]하니 病苦[병고]를 頓脫[돈탈] 하는 것 같다.

赫赫[혁혁]한 近午[근오]의 日光[일광] 밑에 벌거벗고 누워 이 江山[강산]에 솟은 淸冽[청렬]한 물을 마시고 누웠으나 진실로 爽快[상쾌]함이 그지 없다. 釋迦佛[석가불]이 일찍 阿羅[아라]더러 「아름답도다 이 景致[경치] 여, 이 속에 一劫[일겁]을 살고 싶도다」하고 어딘가를 讃嘆[찬탄]하던 것과 같이 나도 이러한 自然[자연] 속이면 오래 살아도 심심치 아니하리라고 생각하였다.

七月[칠월] 二十日[이십일] 지난밤 눈을 떠서는 별을 보며 보며 잤다. 별을 볼 때마다 저녁에 昌慶苑[창경원] 수풀 위에 걸렸던 新月[신월]을 생각 하였다.

눈을 뜨니 어제와 같은 맑은 하늘이 보인다. 바람도 살랑살랑한다. 또 조금 잠이 들었다가 매미 소리에 깨었다. 지지지지하는 소리는 約[약] 一週日 以來[일주일이래]로 들었거니와 「매암 매암」하고 토라지게 부르는 소리는 오늘 처음 듣는다. 어저께 잠자리 두 마리를 보았는데 오늘 또 매미의 소리를 듣는구나. 秋風[추풍]도 몇 날이 안 남았다.

뒤꼍에 코스모스 한 송이가 피었다. 희다. 壽昌[수창]이 생각난다. 壽昌 [수창]이는 우리 어린아이를 보아 주던 열 네 살 먹은 아이다. 승 같다고 하면 아니라고 사내로라고 辯明[변명]하던 애다. 그 애는 또 내가 咯血[각 혈]할 때에 내 더러운 심부름까지도 하여 주었다. 어느 모로 보든지 내게는 적지 아니한 恩人[은인]이다. 그 애가 뒤꼍에 풀을 매고 또 코스모스를 심 고 옮겨 심었다. 自請[자청] 꽃 수업을 한다고는 하였으나 그리 잘 하는 솜씨도 못되었다. 그렇지마는 인제 그가 두고 간 好意[호의] 모양으로 그는 善良[선량]한 아이였었다. 自己[자기] 집이 본래 賤[천]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윽히 자랑으로 아는 善良[선량]한 아이였었다. 그러나 좀 까불었다.

그렇지마는 열 네 살에 아니까부는 아이 있으랴. 그는 善良[선량]한 나의 恩人中[은인중]에 하나다. 前生[전생]의 무슨 因緣[인연]으로 暫時[잠시] 모였다가 헤어진 人生[인생]의 머나먼 行路[행로]의 동무였다. 이에 그는 그가 심은 흰 코스모스가 피었다. 그가 보고 싶다. 그도 제가 업어 주고 안 아 주고 하던 鳳兒[봉아][내 어린 아이의 이름이다]를 생각할 것이언마는 어디 남의 집에 가서 고생을 하는고—

(一九二八年[일구이팔년] 一十月[일십월] 六日[육일] 《東亞日報[동아일보]》蘇齋[소재])

立秋[입추][편집]

『퍽으나 덥습니다.』

『네 덥습니다.』

『오늘이 立秋[입추]라지요, 어째 바람이 살랑살랑 한 것 같아요 하하.』

『오늘부터는 가을이니까요 하하.』

하고 말하는 두 사람의 눈은 길 위로 날아가는 빨강 잠자리를 따랐다.

가을은 슬프다고들 한다. 秋風[추풍]이라든지 낙엽이라든지 하는 것이 우 리에게 悲哀[비애]의 感情[감정]을 일으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벌레 소리, 그 中[중]에 밤새도록 머리맡에 씰씰거리고 우는 蟋蟀[실솔]의 소리 도 어째 歲月[세월]이 덧없음과 生命[생명]과 榮華[영화]가 믿을 수 없음을 알리는 것 같아 여름에 자라고 퍼지어 싱싱하게 푸르던 草木[초목]이 하룻 밤 찬서리에 서리를 맞아 축축 늘어지는 꼴은 아무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난데없는 찬바람이 뒤를 이어서 누렇게 말라버린 나뭇잎을 그냥 떨어버리는 것만 아니라 이리 날리고 저리 굴러 止接[지접]할 곳이 없이 휘몰아가는 소리를 枕上[침상]에서 들을 때에 비록 愁人[수인]이 아니더라도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勿論[물론] 한 번 達觀[달관]하는 눈을 뜰 때에 봄이라도 기뻐할 것도 없고 가을이라고 서러워할 것도 없을 것이다. 스러지는 풀, 떨어지는 잎사귀 가 다 저 할 職分[직분]을 하고 涅槃[열반]의 安息[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라 하면 賀[하]할지언정 弔[조]할 바는 아닐 것이다. 五月飛霜[오월비상]으로 萬物 [만물]이 한창 生長[생장]하여 아직 結實[결실]이 되기 前 [전]에 橫死[횡사]한다면 아깝다 할까, 生命[생명]의 快樂[쾌락]도 실컷 누리고 目的 [목적]도 充分[충분]히 達[달]한 뒤에 구지레한 存在[존재]를 오래 끌지 아 니하고 肅殺[숙살]한 一夜[일야]의 風霜[풍상]에 뚝 生[생]을 끊어버리는 것이 도리어 바랄 만한 快[쾌]한 일일 것이다.

한 걸음 더 내켜서 萬法皆空 [만법개공]의 慧眼[혜안]으로 본다 하면 봄은 무엇이며 가을은 무엇이랴. 生[생]도 空 [공]이요, 死[사]도 空 [공]이어니 喜悅[희열]은 무엇이며 哀愁[애수]는 무엇이랴. 오직 如是如是[여시여시]할 뿐이다. 그렇지마는 人情[인정]이 어디 거기까지를 가는가. 滅却心[멸각심] 頭火[두화]하면 火宅[화택]이 即[즉] 淸凉[청량]하련마는 사람이 그것을 아니하고 부채를 들어라, 얼음을 들어라, 自動車[자동차]를 달려라, 避暑地 [피서지]를 찾아라 하여 더욱더욱 기름 땀을 짜내는 것과 같이 愛慾[애욕]의 煩惱[번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人生[인생]에게는 가을은 亦是[역시] 슬픈 것이다.

후원 의 몇 後園[ ] 그루 나무와 몇 포기 풀, 내게 꽃을 보여 주고 잎을 보여 주고 極[극]히 貧弱[빈약]하게나마 그늘을 보여주어 한 여름 앓는 나의 벗이 되어 주는 그들이 이로부터 얼마 아니하여 찬 서리에 落葉[낙엽]이 져서 낱낱이 낯이 익고 情[정]이 든 그 얼굴은 한 여름의 綠分[녹분]이라는 그리운 記憶[기억]만 남기고 永遠[영원] 히 다시 못 돌아올 過去[과거]의 黑暗[흑암] 속으로 가버리려니 하면 慈悲[자비]에 가까운 愛別離苦[애별리고]에 가까운 感懷[감회]가 湧出[용출]하여 얼마 동안 두고 보지 못한 그 잎사귀들과 바람에 비끼는 줄기들이 더욱 자랑스럽고 애처로와진다. 다만 病者 [병자]의 內弱[내약]한 센티멘탈리즘일까.

한 가을이 지날 때마다 나도 늙는다. 비록 이번에 앓는 病[병]이 나를 놓치더라도 나는 가을이 지나는 족족 늙어 마침내는 서리맞은 풀 모양으로 죽어버릴 것이다. 그러면 草木[초목]을 위하여 솟는 슬픔은 結局[결국] 自身 [자신]을 위한 슬픔이든가.

(一九二八年 十月七日[일구이팔년 시월칠일] 《東亞日報[동아일보]》 所載[소재])

젊은 魂[혼]의 讃美歌[찬미가][편집]

立秋後[입추후] 맑은 어떤 날 아침 이웃집에서 讃美歌[찬미가] 소리가 들린다. 매우 젊은 서너 男女 [남녀]의 목소리다. 새로 누가 옮아 왔는지 예수 믿는 家族[가족]이 아침 祈禱會[기도회]를 하는 모양이다. 목소리는 그리 좋지 못하나 어린것이 淸雅[청아]하다.

나는 멀거니 秘苑[비원]을 바라보았다. 이 젊은 魂[혼]들이 부르는 讃美歌[찬미가]는 나의 병든 魂[혼]을 數十年[수십 년]의 過去[과거]로 끌어간다. 나의 魂[혼]은 잠자리 모양으로 虛空 [허공]을 날아 소리높이 讃美 [찬미]를 부르고 섰는 어떤 紅顏美少年[홍안미소년]에게로 들아간다. 그 少年 [소년]의 눈에는 聖潔[성결]에 對[대]한 渴仰[갈앙]과 未來[미래]에 對[대] 한 希望[희망]의 幻想[환상]이 맑은 눈물과 불타는 듯한 情焰[정염]이 되어서 어리어 있다. 그 少年[소년]은 어렸을 적 나다. 永永[영영] 다시 만나 볼 수 없는 나다.

저들은 무엇이 기뻐서 讃美歌[찬미가]를 부르나? 무엇이 感謝[감사]해서?

日氣[일기]는 가물어 곡식은 다 죽는다고 야단이요, 革命[혁명]이 끝난 지 며칠 아니된 中國 [중국]에서는 數萬[수만]의 銃[총] 칼 맞아 죽은 屍體[시체]가 時方[시방] 지글지글 썩노라고 야단이다. 가만히 눈을 들어 人類[인류]를 살펴보라. 앓는 者[자], 죽는 者 [자], 우는 者[자], 늙은 者[자], 병신된 者[자], 監獄[감옥]에서 이 더운 때에 똥통 내를 맞고 앉았는 者 [자], 妻子[처자]를 먹일 것이 없어서 漢江人道橋[한강인도교]로 自殺[자살]하러 나가는 者[자], 其他[기타] 愛別離苦[애별리고], 怨憎會苦[원증회고], 求不得苦等[구부득 고등]가지각색 煩悶[번민]과 懊惱[오뇌]가 들끓는 苦海火宅 [고해화택]에 이 人生[인생]에서 무엇을 좋다고 感謝[감사]하고 讃美 [찬미] 하는고.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人生[인생]은 願[원]치 않는 무거운 짐이요, 免[면]치 못할 쓰라린 試鍊[시련]이다. 마치 요새 같은 복달 더위에 끝없이 멀고먼 먼지 이는 길을 타박타박 걸어가는 것만 같다. 自殺[자살]할 지경까지 深刻[심각]하지는 아니하더라도 모르는 곁에 죽어지면 시원할지언정 아까울 것도 없는 人生[인생]이다. 한 고개 한 고개 암만 고개를 넘어간대야 그턱이 그턱이요 別[별]로 神通[신통]한 수도 있을 것 같지 아니한 人生[인생]이다. 그러하거늘 저 젊은 魂[혼]들은 무엇을 좋다고 讃頌[찬송]하고 感謝[감사]하는고?

讃頌[찬송]하기로 말하면 나도 예전에 하지 아니하였는가. 나도 예전에는 人生[인생]이 고맙고 기뻐서 땅을 보고 웃고 하늘을 보고 노래하지 아니하였던가. 그때에는 슬픔이란 있을 수가 없었다. 自然[자연]과 人生[인생]이 모두 粉紅色[분홍색] 꿈의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그때에 만일 슬픔이나 괴로움이 있었다 하면 그것은 기쁨에 겨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으면 기쁨 에 지친 것이었었다. 사랑과 活動[활동]과 征服[정복]과 功名[공명]과 이것들은 그때에 귀찮게도 나의 발뿌리에 채는 조각돌들이었었다. 神 [신]은 나에게 靑春[청춘]의 동당버섯을 多量[다량]으로 먹였었던 것이다. 나는 그 동당버섯의 毒[독]에 醉[취]하여서 자꾸만 기쁘고 자꾸만 웃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 人生[인생]과 世上[세상]의 고생은 동당버섯의 解毒劑[해독제]였던 모양이다. 自然[자연]과 人生[인생]을 싸고 덮였던 粉紅[분홍] 안개는 걷히고 동당버섯기운도 가시고 말았다. 그리고는 暴露[폭로]된 醜惡[추악] 한 現實[현실] — 나 自身 [자신]과 내가 屬[속]한 人生[인생] — 을 차마 正視[정시]하지 못하여 아무쪼록 거기서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려 한다.

그러나 젊은 魂[혼]들이 부르는 讃美歌[찬미가]를 들을 때에는 문득 가버린 옛날이 犯罪[범죄]의 記憶[기억]과 같이 쓴맛을 먹고 더 올라온다. 옛 記憶[기억]을 쓰다고 하는 것은 決[결]코 今是昨非[금시작비]란 뜻이 아니다. 도리어 그와 正反對[정반대]로 昨是今非[작시금비]일는지도 모른다. 기쁘고 감사한 것이 참말 人生[인생]일 것이다. 참이 아니라 하더라도 더 正當[정당]하고 더 愉快[유쾌]하고 더 아름다운 人生[인생]일 것이다. 그러므 로 옛 기억 記憶[ ]이 쓰다는 것은 그것을 蔑視[멸시]함이 아니요, 그것이 나를 荒凉[황량]한 曠野[광야]에 혼자 내어 버리고 어느 틈에 달아나 버린 것을 원망함이다. 마치 나를 배반한 옛 愛人[애인]을 원망하듯이. 그러나 걱정없다. 靑春[청춘]을 잃은 者[자]는 잃으라, 늙은 者[자]는 늙으라, 죽는 者 [자]는 죽으라. 地球[지구]에 日光[일광]과 空氣[공기]와 물이 있는 동안 讃美 [찬미]를 부를 젊은 魂[혼]은 끊어짐이 없을 것이다.

(一九二八年 十月九日[일구이팔년 시월구일] 《東亞日報[동아일보]》 所載[소재])

離別行進曲[이별행진곡][편집]

내 病窓[병창]에서 보이는 한 조각 푸른 하늘은 알맞추 昌慶苑[창경원] 늙은 수풀에 代代[대대]로 살아 오는 새들이 들고 나는 길이다. 가만히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느라면 소리개, 왜가리 같은 큰 새들이 저마다 제 法 [법]대로 날아 나가고 날아 들어온다. 너울너울너울너울 헌거럽고 멋지기로야 왜가리가 으뜸이지마는 꼴은 천생 욕심꾸러기 거지 같더라도 아주 悠 悠[유유] 하고 超然[초연]하기로는 소리개를 당할 者 [자]가 없을 것이다. 鳶飛戾天[연비려천]이라 하는 말과 같이 소리개는 둥둥 하늘에 높이 떠서 다른 새 모양으로 날개도 너풀거리지 아니하고 그저 둥둥, 마치 아무것도 求 [구]하는 것도 없고 待[대]하는 것도 없는 듯이 冷然善也[냉연선야]라고 할 만하게 언제까지든지 둥둥 떠 있다. 그가 가지마는 갈 뜻이 있어서 가는 것 같지 아니하고 휘이 돌지마는 돌 뜻이 있어서 도는 것 같지 아니하다. 「삐 오로로로」하는 소리도 決[결]코 왁살스럽지 아니하고 脫俗[탈속]한 맛이 있다.

나는 본래 農村生長[농촌생장]이라 병아리를 차가는 凶惡[흉악]한 도적놈으로만 소리개를 알았으므로 그에게 對[대]하여서는 決[결]코 好感[호감]을 갖지 못한다. 까치가 그 조그마한 몸뚱이를 가지고 악을 악을 쓰고 깩깩깩깩거리며 이 도적놈을 따라가서 — 오르락 내리락 어디까지든지 따라가서 아마 그 도적놈의 등덜미를 죽어라 하고 물어뜯을 때에 까치보다 삼갑절이나 되는 그 커다란 소리개놈이 깡깡 아픈 소리를 하고 쫓겨 달아나는 꼴을 볼 때에는 「잘한다―」하고 소리를 치다시피 痛快[통쾌]하다. 그렇지마는 그것은 그것이요 이것은 이것이다. 그는 決[결]코 밉다고만 할 작자는 아니다. 그의 생김생김과 行動[행동]이 그러함과 같이 그에게는 무슨 엉성 깊은 생각이 있을 것 같다.

어떤 여름날이다. 가을날같이 잘 맑은 여름날 午前十時頃[오전 십 시경]이다. 나는 病席[병석]에서 문뜩 碧空 [벽공]에 높이 一隊[일대]의 소리개가 實[실]로 雄大[웅대]한 曲線[곡선]을 그리며, 高空旋回飛行[고 공 선회 비행]을 하는 것을 보았다. 모두 여섯 마리다. 一列縱隊[일열종대]다. 참으로 秩序[질서]있게 分列式[분열식]을 한다. 先頭[선두]에 선 소리개가 西[서]으로 向[향]하면 모두 西[서]으로 向[향]하고 北[북]으로 方向[방향]을 바꾸면 行伍[행오] 各各[각각] 右[우]로 北[북]을 向[향]하고 先頭[선두]에 선 이가 슬쩍 위로 向[향]하면 모두 위를 向[향]하다가 先頭[선두] 急角度[급 각도]로 地面[지면]을 향하고 내려오는 듯 다시 위로 向[향]하여 抛物線[포물선]을 뒤집어 놓은 듯한 進路[진로]를 取[취]하면 뒤따르는 다섯 소리개도 꼭 그와 같이 하여 雄大[웅대]한 各樣[각양]의 曲線[곡선]을 그린다.

이러하기를 아마 半時間[반시간]은 하더니 「언제까지 이래도 마찬가지다」하는 듯이 行列[행렬]의 速力[속력]이 느려지고 進路[진로]의 曲線[곡선]의 半徑[반경]이 漸漸[점점] 줄어들고 相互[상호]의 間隔[간격]이 次次 [차차] 가까와지더니마는 마침내 行列[행렬]이 어지러워지고 마치 서로 붙들고 이야기나 하려는 것처럼 한테로 모여들어 「삐오로로 삐오로로」하고 힘있게 몇 소리 외치고는 다시 나란히 一列縱隊[일렬종대]를 이루어서 서너 번이나 漸漸[점점] 큰 圓[원]을 그리며 旋回[선회]하다가 문뜩 세째 소리개가 列[열]에서 뚝 떨어지어 새로 先頭[선두]를 지으며 뒤따르는 세 마리가 새 先頭[선두]를 따르니 一列[일열]이던 것은 문득 두 行列[행렬]을 이루었다. 그래서는 한참은 二列[이열]이 平行[평행]으로 旋回[선회]을 繼續[계속]하더니마는 새 先頭[선두]가 문뜩 方向[방향]을 돌려 아까와는 反對方向 [반대 방향]으로 逆旋回[역선회]를 始作[시작]한다. 그로부터 새 先頭[선두]는 예전 先頭[선두]이던 두 마리는 關心[관심]치 아니하는 듯이 제 멋대로 東西南北[동서남북] 上下 [상하]로 複雜[복잡]한 旋回[선회]를 하여 그 速力 [속력]이 빠름과 進路[진로]와 曲線[곡선]이 힘있음이 讃嘆[찬탄]할 만하다. 누구나 이것을 보면 「新興[신흥]」이라는 感情[감정]을 經驗[경험]하였을 것이다.

하늘은 맑다. 무슨 바람인고, 꽤 세인 바람이 白雲片[백운편]을 날린다, 내 주먹은 불끈 쥐어졌다. 이윽고 「삐오로로 삐오리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새 行列[행렬]은 西[서]로 向[향]하던 進路[진로]에서 急角度[급각도]로 北[북]으로 꺽여 昌慶苑[창경원] 松林北端[송림북단]을 두어 번 旋回[선회]하고는 뒷山[산]을 넘어 北[북]으로 北[북]으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뒤에 떨어진 두 소리개는 처음에는 새 行列[행렬]을 따르는 듯하더니 「아니다! 아니다!」하는 듯이 急角度[급각도]로 方向[방향]을 돌려 南[남]을 向 [향]하여 한참이나 날아가다가 휘음하게 동으로 돌다가 다시 아까 一列[일 열]로 있던 곳에 와서 지나간 일을 回想[회상]하는 모양으로 아까 進路[진로]를 反復[반복]하고 돌아갈 길을 잊은 듯하다.

『젊은 것들아 갈지어다! 北[북]으로 北[북]으로 가서 너희들의 새 나라를 세울지어다!』

하고 今春[금춘]에 깐 새끼 네 마리를 다 길러 오늘에 새 運命[운명]의 먼 길을 떠보내는 이별이 아닌가.

(一九二八年 十月十日[일구이팔년 시월 십일] 《東亞日報[동아일보]》所載[소재])

菩薩[보살]의 病[병][편집]

維摩[유마]는 오래 病[병]으로 누워 있으면서 四方[사방]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說法[설법]을 하였다. 그는 釋迦佛 [석가불] 在世當時 [재세당시]의 一奇人[일기인]이었다.

釋迦佛 [석가불]이 文殊菩薩[문수보살]을 보내어 維摩[유마]의 病[병]을 慰問[위문]하는 것이 維摩經[유마경]의 大旨[대지]어니와 그 中[중]에 維摩 [유마]의 病[병]에 對[대]하여 文殊[문수]와 維摩[유마] 사이에 이러한 問答[문답]이 있다—.

文殊菩薩[문수보살] 말이,

『居士[거사]의 病[병]은 어떠한고?世尊[세존]이 간절히 慰問[위문]하시더니와, 居士[거사]여 居士[거사]의 病[병]은 어떤 緣由[연유]로 생겼으며 생긴지 얼마나 된고? 또 어찌하면 나으리라 할꼬?』

維摩居士[유마거사]의 말이,

『癡[치]에서 愛着[애착]이 나나니 내 病[병]은 그곳에서 일었노라. 모든 衆生[중생]이 煩[번]는지라 나도 앓노라 만일 모든 衆生[중생]이 앓지 아니하면 내 病[병]도 없어지리라 어찜이뇨? 菩薩[보살]은 衆生[중생]을 爲 [위]하여 煩惱[번뇌]의 生[생]에 人[인]하나니 마치 자식이 病[병]들면 父母[부모]도 病[병]들고 자식의 病[병]이 나으면 父母[부모]의 病[병]도 나음과 같으니라.』

文殊[문수]의 말,

『그대의 病[병]은 무슨 因[인]으로 일었는고?』

維摩[유마]의 말,

『菩薩[보살]의 病[병]은 大慈悲[대자비]로 因[인]하나니라.』

文殊[문수]의 말,

『居士[거사]여, 이 방에는 어찌하여 侍者[시자]도 없고 이렇게 빈고?』

維摩[유마]의 말,

『모든 世界[세계]가 빈지라 이 방도 비니라.』

또 文殊[문수]가 묻기를,

『그대의 病[병]은 心[심]의 病[병]이뇨, 身 [신]의 病[병]이뇨?』

維摩[유마]의 대답이,

『이미 身 [신]을 離[이] 하였거니 어찌 身 [신]이 病[병]하며 또 心[심]을 幻[환]으로 解[해]하거니 어찌 心[심]인들病[병]하랴. 오직 衆生[중생]은 四大[사대](春園[춘원]曰 [왈], 四大[사대]는 地[지], 水[수], 火[화], 風[풍]의 四元素[사원소])로 因[인]하여 病[병] 드나니 衆生[중생]이 病[병]드는지라 나도 病[병]듬이로다.』

文殊[문수]의 말이,

『菩薩[보살]은 어떤 모양으로 앓는 사람을 위로할 것이뇨?』

維摩[유마]의 대답이,

『몸이 無常[무상]함을 말하라. 그러나 몸을 厭棄[염기]하기를 勸[권]치 말지어다. 몸의 苦[고]됨을 말하되 涅槃[열반]을 願[원]하기를 勸[권]치 말지어다. 我[아]가 없음을 말하되 衆生[중생]을 敎導[교도]하기를 勸[권]할지어다. 前 [전]에 지은 罪[죄]를 뉘우칠지라도 過去[과거]에 거리끼지 말고 나의 病[병]으로써 남의 病[병]을 어여삐 여기며 過去[과거] 多生[다생]의 限[한]없는 苦[고]를 알며 맑은 목숨을 念[념]하여 憂悲[우비]를 生[생]치 말며 항상 勉勵[면려]하며 醫王[의왕]이 되어 衆生[중생]의 病[병]을 고치도록 할지어다 하여 病人[병인]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라.』

文殊菩薩[문수보살]이 또 묻기를,

『그러면 病者自身 [병자 자신]은 어떻게 맘을 調御[조어]하여야 할죠?』

維摩居士[유마거사]의 대답이,

『病者 [병자]는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라. 이 病[병]은 다 前世[전세]의 忘病[망병]과 煩惱[번뇌]에서 난 것이요, 實相[실상]이 있는 것이 아니니라. 病[병]을 받을 者[자] — 뉘뇨. 四大[사대] — 合[합]하여 身 [신]이라 假名[가명]하였거늘 四大[사대]에 主[주] — 없고, 身 [신]에 我[아] — 없거니, 病[병]들者 [자] — 없지 아니하고. 이 病[병]은 我[아]에 執着[집착]함에서 일었으니 我[아]의 想[상]과 衆生[중생]의 想[상]을 버리라. ……의 本[본]은 攀緣[반연]이요 攀緣[반연]되는 곳은 三界[삼계]라, 어찌하면 攀緣[반연을 끊을꼬] ? 無所得[무소득]에 말미암음이라. 無所得[무소득]이란 무엇인고? 內 [내]에 我[아]를 見[견]치 말고 外[외]에 法[법]을 見[견]치를 말미니 文殊師利[문수사리]야 病[병]있는 사람이 이렇게 맘을 調御[조어]하면 老病[노병], 死[사]의 苦[고]를 斷[단]하리라.』

(一九二八年 十月十一日[일구이팔년 시월 십일일] 《東亞日報[동아일보]》 所載[소재])

死[사][편집]

나는 昨年[작년] 一月[일월] 發病以來[발병이래]로 三次[삼차] 危機[위기]를 通過[통과]하였다. 第一次[제일차]는 六月[육월]의 咯血[각혈]이요, 第二次[제이차]는 九月[구월], 第三次 [제삼차]는 十一月[십일월]의 咯血[각혈]이다. 그 中 [중]에 가장 危險[위험]하였던 것은 第二次[제이차]의 咯血 [각혈]이다. 그때에는 一晝夜間[일주야간]에 六百[육백] 그람假量[가량]의 피를 吐[토]하여 視力[시력]이 衰[쇠]하여 모든 物象[물상]이 分明[분명]치 아니하고 形狀[형상]이 怪異[괴이]하게 보이며 마치 희미한 夢中[몽중]에 있던 것과 같고, 一日[일일]의 大部分[대부분]을 昏睡狀態[혼수 상태]에 있어서 一週日[일주일] 동안은 어떻게 지냈는지 記憶[기억]이 남지 아니한다.

말하자면 내 一生[일생]의 時間中[시간중]에서 一週間[일주간]은 내가 모르는 동안에 經過[경과]하여버린 것이다. 그러고도 三週日[삼주일]이 넘도록 記憶力[기억력]이 減退[감퇴]하여 親友[친우]의 姓名[성명]도 생각이 나지 아니하는 일이 흔히 있어서 내 一生[일생]의 過去[과거]가 갑자기 朦朧[몽롱]하여짐을 깨달을 때에 나는 혼자 웃지 아니할 수 없었다. 내가 死[사]를 覺悟[각오]한 것은 勿論[물론]이어니와 周圍[주위]의 사람들은 나보다도 더 내 生命[생명]에 對[대]하여 絶望[절망]하였던 모양이다.

이번 重病[중병]이 든 뒤 나는 즐겨 死[사]에 對[대]한 생각을 하였었다.

死[사]가 咫尺[지척]에 臨迫[임박]한 줄을 생각하면 그것이 가장 要緊[요 긴]하고 또 興味[흥미]있는 생각거리가 될 것은 自然[자연]한 일이다. 또 설사 이번에 死[사]를 面[면]치 아니하고 만다 하더라도 이러한 機會[기회]에 死[사]에 關[관]하여 瞑想[명상]하고 推理[추리]하고 想像[상상]해두는 것과 또 實踐的[실천적]으로 死[사]에 對[대] 한 나의 態度[태도]를 定[정] 해 두는 것이 所用[소용]있는 일이라고도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第二次[제 이차] 危機[위기]에 臨[임]하여 갑자기 死[사]에 對[대]한 準備[준비]를 할 必要[필요]는 없었다. 말하자면 死 國[사국][거기가 極樂[극락]이든지 地獄 지옥이든지 그것은 [ ] 내가 알기를 허락되지 아니한 것이어니와]에 旅行[여행]할 行裝[행장]은 다 準備[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어느 때에나 使者 [사자]가 와서 부르면 서슴치 않고 나서면 고만이다. 그 後事[후사]는 내가 알 바가 아니요, 오직 나의 業[업]이 定[정] 할 바이다.

그렇지마는 行裝[행장]만 차려놓고 무슨 抽身[추신] 못할 事情[사정]이 있어서 出發[출발]을 遷延[천연]하는 사람이 흔히 있는 모양으로 나도 이번에 죽으려는가 하는 危機[위기]를 當[당]할 때마다 내 行裝[행장]의 準備 [준비]를 다시 한 번씩 되풀이하여 보았다. 그러느라고 旅行者[여행자]가 흔히 느끼는 모양으로 或[혹]은 쓸데 없는 것을 써놓은 것도 있고 또 或 [혹]은 必要[필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도 있어서 남이 들여다보면 부끄러울 만한 일이 많다. 그래서 나는 한 번 풀어서 다시 쌀 때마다 더러는 집어내 고 더러는 새로 집어넣고 또 더러는 이왕에 집어내었던 것을 다시 찾아다가 집어넣기도 한다. 내가 第二回[제이회] 危機[위기]를 當[당]하였을 때에도 이러하였다.

(一九二八年 十月十二日 [일구이팔년 시월 십 이일] 《東亞日報[동아일보]》所載[소재])

懺悔 [참회][편집]

1[편집]

내가 스스로 重病[중병]이 들어 죽을 의심이 있는 때나 내 家族[가족]이 그러한 때에나 나는 매양 「내가 一生[일생]에 무슨 좋은 일을 하였나」하고 反省[반성]하는 것이 習慣[습관]이 되었다.

내가 죽을 의심이 있을 때에 一生[일생]에 한 좋은 일을 생각하는 것은 死後[사후]에 極樂[극락]에 갈까, 地獄[지옥]에 갈까 하는 希望[희망]이나 恐怖[공포] 때문은 아니다. 나는 死[사]에 對[대]하여서는 甚[심]히 活淡 [활담]하다. 極樂[극락] 갈 慾心[욕심]도 없고 地獄[지옥] 갈 恐怖[공포]도 없다. 그러면 死後[사후]의 存在[존재]를 斷定的 [단정적]으로 否認[부인]하여서 그러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死後[사후]의 存在[존재]에 對[대]하여서 다 懷疑的[회의적]이다. 있다고 긍정할 確信[확신]도 없는 同時 [동시]에 없다고 否定[부정]할 根據[근거]도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生[생]의 輪廻[윤회]를 肯定[긍정]하려는 內的要求[내적요구]는 있다. 이것은 나의 朝鮮人[조선인]인 人種的 因襲[인종적인습]에도 因[인]함이려니와 또한 나 自身 [자신]의 特殊[특수]한 理由[이유]도 있다. 그것은 첫째 各個人[각 개인]의 性格[성격]과 運命[운명]이 決[결] 코 同一[동일]할 수 없도록 差異 [차이]가 있음과, 둘째 各國人[각국인]이 生[생]에 行[행]한 善惡[선악]이 그 生[생]에서 完全[완전]히 報應[보응]되는가 싶지 아니함이다. 나는 七十 [칠십] 가까운 늙은 婦人[부인] 한 분이 아들과 싸우고 며느리와 싸우고 딸과 싸우고 모든 親戚[친척]과 다 싸우고 남의 집을 살면서도 主人[주인]과 싸울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이 지글지글 남의 마음을 끓이고 轉轉[전전]하는 양을 보았다.

그의 一生[일생]은 前生[전생]의 罪惡[죄악]의 刑罰[형벌] 받는 一生[일생]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 같다. 이 問題[문제]에 關[관]하여서는 다른 機會[기회]에 좀 더 仔細[자세]하게 내 생각을 말하려 하거니와 이러한 理由[이유]로 나는 생의 輪廻[윤회]를 믿고 싶은 要求[요구]가 있는 것은 스스로 神奇[신기]하게 여기는 事實[사실]이다. 그렇지마는 내가 生命 [생명]의 危機[위기]에 臨[임]하여 「내가 무슨 좋은 일을 하였나」하고 懺悔的反省[참회적 반성]을 하는 것은 決[결] 코 惡道[악도]에 隨[수]할 것을 두려워함에 因[인]함은 아니다. 아니 차라리 이 世上[세상]에서 좋은 일일 진대 그것을 하기 때문에 永劫[영겁]에 三惡道[삼악도]에 輪廻[윤회]를 하더라도 敢然[감연]히 그것을 行[행]할 慾望[욕망]도 있고 勇氣[용기]도 있다. 못 믿을 來生[내생]을 위하여 目前 [목전]에 보는 現實[현실]의 善[선]을 犧牲[희생]할 나는 아니다. 그러면 내가 懺悔的反省[참회적 반성]을 하는 理由[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내가 내 눈에 보는 人類同族[인류동족]들이 괴롭게 또는 옳지 못하게 사는 양을 도와 주지 못한 것이(그것을 도아주는 것을 一生[일생]의 目的[목적]으로 自誓[자서]하였음에 不拘[불구]하고) 맘에 걸리는 것이요, 둘째로는 내가 子女 [자녀]에게 남겨 줄 것이 積德[적덕] 밖에 없거늘 그것을 못한 것이 맘에 걸리는 것이다. 나는 昨年[작년]에 妻[처]가 難產[난산]으로 兩個生命[양개생명]이 危險[위험]에 瀕[빈]하였을 때에(때는 새벽이 다) 나는 가장 엄숙하게 내 生命[생명]으로써 妻[처]와 및 아직 보지 못한 어린 生命[생명]을 代身 [대신]할 것을 빌었다. 이렇게 빌기를 세 번 하였다. 그러나 세째번 빌 때에 나는 스스로 失望[실망]함을 禁[금]치 못하였다. 대개 내 生命[생명]이 무슨 값이 있길래 두 生命[생명]을 死[사]에서 救出[구출]하는 贖[속]이 되랴 하고 自反[자반]함이다. 그리스도의 生命[생명]은 全人類[전인류]를 死[사]에서 救出[구출]하는 값이 되었다 하고 地藏菩薩[지장보살]의 大功德[대공덕]은 地獄[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救出[구출하는 힘이 ] 되고도 남아서 그의 名號[명호]를 부르는 이는 누구나 濟度 [제도]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지내온 生涯[생애]를 돌아보매 무슨 좋은 일을 하였는가. 남을 도와 주기커녕 남의 도움만 받았고 남의 괴 로움을 덜어 준 일은 記憶[기억]하기 어려워도 남을 괴롭게 하고 슬프게 한 일은 열 손가락을 몇 번 꼽았다 펼 만하지 아니한가. 나 같은 것이 生命[생명]을 犧牲[희생]하기로 무슨 功德[공덕]이 되랴고 생각할 때에 슬펐다. 더구나 나같이 重病[중병]이 들어서 거의 다 죽게 된, 썩은 새끼 같은 生命 [생명]을 생각하면 스스로 苦笑[고소]함을 禁[금]치 못하였다.

2[편집]

나는 가끔 懺悔[참회]하는 맘을 가지게 된다. 깨끗하게 人生[인생]을 살자 하는 理想[ 이상]이 어그러질 때마다 나는 懺悔[참회]의 苦痛[고통]을 맛본다. 어린것이 痢疾[이질]로 아흐레째가 되어도 낫지를 아니하고 곱똥을 눈다. 어저께는 세 번만 누기로 安心[안심]하였더니 오늘은 일곱 번이나 누웠다. 먹는 牛乳[우유]가 消化[소화]가 아니되고 몽글몽글 되어서 나온다.

漸漸[점점] 기운이 지치는 것 같아서 슬프다. 黃昏[황혼]에 나는 저를 안고 大門[대문]간 문지방에 앉았었다. 길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그 까만 눈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바라보는 것이 애처롭다. 무슨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인가.

이것이 죽지나 아니하려는가 하고 나는 그의 황혼에 더욱 해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발자취가 들릴 때마다 그것을 하나도 아니 빼어 놓으려는 듯이 앞으로 뒤로 연해 바라본다. 黃昏[황혼] 속에 발락거리는 한 生命[생명]!

이것이 죽지나 아니하려는가 하고 나는 두 팔에 더욱 힘을 주어 그의 허리와 볼기짝을 꼭 껴안었다. 그는 나의 情[정]을 알아보는 듯이 머리를 내 가슴에 가만히 기댄다. 세상에 온지 열넉 달 되는 어린 생명이.

그가 죽지나 아니할까. 몸이나 맘이나 그렇게 神秘[신비]하게 아름답게 생긴 것이, 그 속에 간직한 모든 빛과 香氣[향기]와 힘을 펴 보지도 못하고 죽어서 되랴. 그는 살기 위하여 난 것이 아닌가. 宇宙[우주]도 그에게 어떤 職分[직분]을 맡기려고 그를 낳게 한 것이 아닌가. 그의 손은 반드시 아름답고 큰 무엇을 만들기 위하여 있는 것이요, 그의 빛나는 눈은 宇宙[우주] 와 人生[인생]의 眞僞[진위]와 美醜[미추]를 分離[분리]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요, 그의 아직 조그마한 머리 속에는 人生[인생]의 슬픔을 除[제]하고 기쁨을 줄 무슨 經綸[경륜]이 옴돋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것이 아비의 자식 子息[ ]에게 對[대]한 愚痴 [우치]일는지도 모르거니와 내게 있어 서는 이것은 決[결]코 幻想[환상]이 아니요, 이 地球[지구]와 같이 實在[실 재]하는 事實[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는 죽어서는 아니 된다. 그는 살아야 한다. 힘있게 오래 살아야 한다. 그의 큰 사명을 다하도록 살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맘이 든든해진다.

그러나 그의 病[병]이 좀 더칠 때마다 어버이의 가슴은 무거운 바윗돌로 내려누르는 듯하다. 그가 漸漸[점점] 조금씩 衰弱[쇠약]해지는 것을 어버이는 붙잡을 수는 없고 그의 軟軟[연연]한 壁[벽]을 파먹는 病菌[병균]을 어 버이의 타는 애로는 어찌할 道理[도리]가 없음을 볼 때에 어버이는 오직 헬프리스한 悲哀[비애]만을 느끼는 同時[동시]에 自己[자기]의 罪[죄]를 懺悔 [참회]하는 맘이 날카로와질 뿐이다. 남의 집 아이들이 病[병] 없이 투실투실하게 자라는 것을 볼 때마다 그 父母[부모]는 罪[죄]가 없다, 나는 罪 [죄]가 많다하고 내 罪[죄]의 罰[벌]을 대신 받는 듯한 어린이를 보고 미안한 생각이 난다. 아까 그의 어머니는 장난감 念珠[염주]를 그의 목에 걸어 주며,

『아가 너는 자라서 중이나 되고 자식은 낳지 마라.』

하는 것을 들었다. 얼마나 자식 앓는 것을 보기에 가슴이 아파서 하는 말일까.

『곧잘 아니 낳고 있다가 왜 이것을 낳았어.』

하고 恨歎[한탄]한 일도 있었다. 왜 그들이 이 世上[세상]에 불려들여서 生苦[생고]와 病苦[병고]에 부대끼게 하는고. 말도 못하는 불쌍한 것을.

이렇게 나의 가장 深刻[심각]한 懺悔[참회]는 어린 자식이 앓는 것을 볼 때에 운다.

(一九二八年 十月十三日[일구이팔년 시월 십삼일] 《東亞日報[동아일보]》所載[소재])

生命慾[생명욕]과 所有慾[소유욕][편집]

「주고는 싶은데 못 주는 괴로움!」 이것도 人類[인류]의 運命的[운명적] 괴로움 中[중]의 하나다. 健康[건강]하고 싶은데 不健康[불건강]한 괴로움,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 못하는 괴로움, 살고 싶은데 죽는 괴로움, 이러한 것 들과 같이 주고도 싶은데 못 주는 것도 運命的[운명적]인 괴로움이다.

어떤 사람이 每月[매월] 一百圓收入[일백원 수입]이 있다 하자. 그 一百圓 金[일백원금]을 집세, 糧食[양식], 나무 等[등] 必需[필수]한 生活費[생활비에 벌려놓으면] 一錢[일전]은커녕 五厘錢[오리전]의 여유도 없다 하자.

그러한 때에 或[혹] 親戚[친척]이, 或[혹]은 故舊[고구]가 죽을 地境[지경]으로 急[급]한 일이 생겨서 十圓[십원]만 돌려달라고 와서 조른다 하자. 그 十圓[십원]은 돌려 주면 다시는 回收[회수] 못 되는 돈이라 하자. 그때에 그 사람은, <十圓[십원]을 주어라, 열흘 먹을 糧食[양식]이 비어라. 그러면 굶어 죽어라, 안 굶어죽자니 무엇서 典當[전당]을 잡혀라, 다시 찾아올 돈이 없으니 典當[전당] 잡힌 것은 올라감사를 하여라, 다시 사자니 살 돈은 더구나 없어라.>

이러한 甕算[옹산]을 몇 번 反復[반복]한 뒤에, 「아저씨」하든지, 「여보게」 하든지 그 境遇[경우]에 가장 親切[친절]하고 同情[동정] 있는 語調 [어조]로 불러놓고는 힘만 있으면 돌려드리다 뿐이랴마는 若此若此[약차약 차]하여 囊中[낭중]에 分錢[분전]의 時在[시재]가 없을 뿐더러 二日後[이일 후]나 三日後[삼일후]에는 꼭 還[환]해야만 하지 그렇지 아니하면 큰일날 急債[급채]가 있다고까지 示威運動[시위운동]을 해서 피 한 방울 안 내이고 싹 베어버리려는 것이다. 그때에 그 아저씨나 여보게가 우는 상을 하고 어깨가 축 처져서 돌아설 때에 그 사람의 맘은 호주머니에 꽁꽁 싸여 있는 十 圓[십원]짜리 紙幣[지폐]를 보면서, <아아 怨讐[원수]엣 돈아 주고는 싶건마는 못 주는구나.> 하고 길게 한숨을 짓는다.

以上[ 이상] 假說[가설]에서 나는 두 가지 疑問[의문]을 본다.

(一[일]) 그 사람이 불쌍한 아저씨나 여보게에게 十圓[십원]을 돌려 주었더면 果然[과연] 十日糧食[십일양식]이 없어서 굶어 죽었을까.

(二[이]) 이러한 境遇[경우]에 現代 [현대]의 各普通學校[각보통학교] 高等普通學校[고등보통학교]의 修身先生[수신 선생]들은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는가 —주라는가, 주지 말라는가.

이 問題[문제]에 對[대]하여 釋迦[석가]는 그 前生[전생]에 自己[자기]의 몸까지도 布施[보시](보시라고 읽는다, 보자는 上聲[상성]이다) 하였다 하 여 布施[보시] 즉 남에게 주는 것을 六度[육도]의 首位[수위]를 삼았고 예 수는 가장 分明[분명]하게, 힘있게 달라는 者[자]에게 拒絶[거절]하지 마라, 줄 때에 갚을 것을 바라지 말고 겉옷을 달라거든 속옷까지도 벗어 주라 하였다. 그리하되 그들은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釋迦[석가]는 위에도 말 한 바와 같이 八十平生[팔십평생]을 단벌 옷과 바리때 外[외]에는 無一物 [무일물]한 거지 生活[생활]을 하였고, 예수도 전대도 안 가지고 두 벌 옷도 안 가진 거지 生活[생활]을 하였다. 釋迦[석가]를 따르는 者[자]들, 예수를 따르는 者[자]들 중에도 꽤 많이 그들의 스승의 본을 받은 者[자]도 있었다. 三界衆生[삼계중생]을 火宅[화택]에서 濟度[제도]하기 위하여 菩薩 行[보살행]을 닦으라, 그러면 衆生[중생]이 너희를 供養[공양]하리니(應供 [응 공]) 너희가 그 供養[공양]을 받음이 마땅하니라(應供[응 공])하고 釋迦 [석가]는 가르쳤고, 「오직 그 나라와 義[의]를 求[구]하라. 그러면 모든 것(먹을 것, 입을 것)을 너희에게 더하리라.」하여 예수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을 어리석고 文化 [문화]가 없는 異邦人[이방인] 의 일이라 하였다. 이분들의 人生觀[인생관]과 世間[세간]의 人生觀[인생관]과 果是[과시] 大有徑庭[대유경정]일다. 어느 것이 옳은가, 둘이다 옳은가.

(一九二八年 十月十六日[일구이팔년 시월 십육일] 《東亞日報[동아일보]》 所載[소재])

마음의 편안[편집]

무슨 福[복] 무슨 福[복] 해야 마음이 편안한 福[복]에서 더한 福[복]이 있을까. 무슨 禍[화] 무슨 禍[화] 해야 마음이 편안치 못한 데서 더한 禍 [화]가 있을까. 極樂[극락]도 마음에 있고 地獄[지옥]도 마음에 있다. 마음이 편안한 이는 天國[천국]의 福樂[복락]을 누리는 聖徒[성도]요, 마음이 편안치 못한 이는 地獄[지옥]의 刑罰[형벌]을 받는 罪人[죄인]이다. 前生 [전생]에 罪[죄]를 많이 지은 者[자]는 今生[금생]에 마음이 괴로움으로 그 罰[벌]을 받는 것이다.

가난한 者[자]가 돈이 없어서 마음이 끓고, 賤[천]한 者[자]는 남의 賤待 [천대]에 마음이 끓는다. 돈 없는 것, 賤[천]한 것이 벌써 罰[벌]인 것은 毋論[무론]이어니와 그렇다고 富[부]와 貴[귀]가 반드시 마음에 편안을 주 는 것은 아니다. 最高最大[최고최대]의 富[부]와 貴[귀]를 가진 帝王[제왕] 으로 懊惱中[오뇌중]에 죽은 이가 얼마나 많은가. 福[복]의 源泉[원천]으로 알았던 富[부]와 貴[귀]가 도리어 禍[화]의 源泉[원천]이 된 例[예]는 너무나 많다.

靑春男女 [청춘남녀]는 아름다운 異性[이성]을 제 것을 만듦으로 福[복]의 源泉[원천]을 삼거니와 戀愛[연애]가 다 이루어지는 날 다만 幻滅[환멸]의 悲哀[비애]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天下一等[천하일 등]으로 아름답고 착하던 愛人[애인]이 찬란한 婚姻式服[혼인식복]을 벗어 놓을 때에 利己[이기]의 物慾[물욕]과 憤怒[분노], 憎惡[증오], 嫉妬[질투]의 可憎[가증]한 存在[존재]로 變化 [변화]하여 心身 [심신]의 精血[정혈]을 끓이고 태워버리는 夜叉[야차]와 羅刹[나찰]이 되는 것이 稀罕[희한]한 일이 아닐 것을 어찌하랴.

돈 있고 地位[지위] 있고 아름다운 配偶[배우] 있고 健康[건강]하고 이렇게 四合[사합]이 具備[구비]하였으면 마음이 편안함즉도 하지마는 어디 그러한 八字[팔자]가 있는가. 그만한 福力[복력]이 있도록 積善[적선]을 많이 한 이면 벌써 成佛 [성불]을 하였거나 忉利天宮[도리천궁]에라도 났을 것이 지 이 맛답지 아니한 人間[인간]에 으아 소리를 치고 울고 떨어졌을 리가 있나? 이 世上[세상]에 禀生[품생]할 때부터는 어디 변변치 못한 구석이 있길래일 것이다.

「白髮三千丈緣愁似個長[백발삼천장연수사개장]」만 오리 센터럭과 천 줄기 주름살이 모두 다 마음 고생에서 나온 것이로구나. 열흘에 오른 살이 하루 아침에 모두 빠지어버린다. 全身[전신]의 피가 마구 머리로 끓어 오를 때에 눈이 아뜩아뜩하고 가슴은 금시에 터져버릴 것 같다. 주먹을 들어 제 가슴패기를 안길 때에 혼자 부르르 떨며, 「地獄[지옥]아, 네 유황 나는 아 가리를 벌려서 나를 통으로 삼켜다구!」하고 詛呪[저주]의 맹세를 한다. 이러할 때에 그 사람의 찌그러진 얼굴을 地獄[지옥]의 불꽃 푸른 腹臟[복장]으로서 튀어 나온 餓鬼[아귀]와 다를 것이 없다. 그 醜惡[추악]함이여!

한 번 이러한 發作[발작]이 있을 때마다 그의 肉體[육체]와 精神[정신]은 立冬[입동]의 무거운 서리를 맞은 풀 모양으로 또는 흠씬 얻어맞은 뱀의 새끼 모양으로 生命[생명]의 精氣[정기]가 빠져서 푹 늘어져버린다. 虎列刺 [호열자]나 腸窒扶斯[장질부사]를 되게 치르고 난 놈과 같이 —.

이리하여 靑春[청춘]은 老衰[노쇠]하고 또는 夭折[요절]하는 것이다.

(一九二八年 十月十七日[일구이팔년 시월 십칠일] 《東亞日報[동아일보]》所載[소재])

小兒[소아][편집]

1[편집]

내집에 어린애 하나가 왔다. 그는 나의 希望[희망]도 되고 근심도 되고 기쁨도 되고 슬픔도 되고 거울도 되고 스승도 된다. 어떠한 때에 希望[희망]이 되나, 나 自身 [자신]의 無力無價値[무력무가치]함을 意識[의식]할 때 마다, 「저것이나 자라서 나보다 勝[승]하게 되었으면」하는 생각이 난다.

내가 不足[부족]한 것은 — 健康[건강]이나 聰明[총명]이나 叡智[예지]나 德 덕행이나 行[ ] — 다 이 어린아이에게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決[결]코 나와 같은 無能[무능]한 凡夫[범부]는 아니 될 것 같다. 그는 오직 나와 내 아내에게 있던 모든 좋은 것만 받아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라, 數[수]없는 祖先[조선]이 가졌던 모든 좋은 것은 다 가지고 나온 것같이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그가 이 世上[세상]을 살아갈 때에 個人[개인]으로도 福[복] 있 는 生活[생활]을 하려니와 人類[인류]의 一員[일원]으로 다른 어느 一員[일 원]보다도 人類[인류]를 잘 사랑하고 도와 주는 사람이 될 것같이 생각한다. 이 아이 하나가 이 世上[세상]에 出現 [출현]하기 때문에 人類[인류]의 運命[운명]의 方向[방향]이 福[복]된 편으로 다만 몇 度[도]라도 轉換[전환]될 것같이만 생각된다 — 그렇게 믿으려 하고는 혼자 滿足[만족]한 微笑 [미소]를 띄운다.

그렇지마는 이렇게 생각할 때에 그는 나의 근심이 된다. 나 같은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그가 무엇이 그리 대단하랴. 나 같은 不健康[불건강]한 肉體[육체]와 힘과 美[미]가 不足[부족]한 精神[정신]을 가진 者[자]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가 나같이 前生今生[전생 금생]에 아무 積功[적공] 積德[적 덕] 없는 薄福[박복]한 者[자]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가 무엇이 그리 끔끔하랴, 하고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希望[희망]의 蜃氣樓[신기루]가 말 못되게 스러져버린다. 그런 때에는 나는 어리석게도 어린아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눈에 精氣[정기]와 光彩[광채]가 있나, 天項[천항]이 光明[광명] 한가, 코가 豊厚[풍후]한가, 귀가 壽格[수격]을 띠었는가, 목소리가 雄壯[웅장]한가, 表情[표정]과 行動[행동]이 씩씩한가, 이 모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날마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바라보고는 생각한다.

아무러하든지 어린것이 무에라고 옹알거리며 놀 때에, 무엇이 좋은지 소리를 내어 깔깔 웃을 때에, 두꺼비같이 덥적덥적 기어다닐 때에, 전에 없던 새 재주와 새 재롱이 생길 때에, 해죽거리고 기어와서 매어달릴 때에, 내게는 모든 希望[희망]도 근심도 다 잊어버리는 기쁨이 있다. 발톱끝까지도 머리끝까지도 다 顫動[전동]하는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은戀愛[연애]의 기쁨과 같이 情慾[정욕]에 타는 기쁨이 아니요, 靜謐[정밀]하고도 줄기차고도 聖潔[성결]하고도 慈悲[자비]로운 기쁨이다—. 이것이 아버지의 기쁨이란 것인가. 더우기 나같이 오랜 병석에 누워 있는 사람으로 모든 것이 다 支離 [지리]하고 지긋지긋하여 存在自身 [존재자신]이 厭症[염증]날 때에 그의 意味[의미]없는 외마디 소리(그것이 그네 어린이 種族[종족]의 意味 深長[의미 심장]한 言語[언어]인듯 하다)가 昏朦[혼몽]하게 寂滅[적멸]의 深淵[심연]으로 漸漸[점점] 가라앉으려는 나의 魂[혼]을 깨워서 불러내는 것이다. 그러할 때에 내 혼은 어린애에게 魂[ ] 낮잠을 깨움이 된 아버지 모양으로 부시시 일어나서 다시 괴로운 人生[인생]의 길을 걷는 것이다. 내가 가는 人生 [인생]의 길이 괴롭다 하더라도 그의 웃는 얼굴만 있으면 꽃밭 속으로 거니는 것 같을 것 같다. 그렇지마는 내게 슬픔이 있다.

2[편집]

지금에 있어서 내게 가장 큰 슬픔은 어린아이가 앓는 것이다. 아비 되는 내가 健康[건강]치 못한 때문인지 그는 난지 一年[일년]이 못 되어 紅疫[홍 역], 流感[유감]을 連[연]하여 앓고 나고 또 母乳[모유]가 不足[부족]하여 牛乳[우유]와 암죽을 먹고 살기 때문에 두어 번 관격도 되어 失神狀態[실신 상태]에 빠지었었다. 그러할 때마다 그의 母親[모친]이 寢食[침식]을 잃고 애를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病席[병석]에 누워서 앓는 저를 한 번 안아 주지도 못하는 나의 슬픔도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다. 쌕쌕하고 苦悶 [고민]하는 어린 모양을 볼 때에 나는, 「저 苦痛[고통]을 나로 하여금 대신하게 하여지이다!」하고 빌며 그가 一晝夜[일주야]나 남아 오줌을 누지 못하여 눈도 잘 뜨지 못할 境遇[경우]에는 나는, 「내 목숨으로 그의 죽음을 대신하여지이다.」하고 빌었다. 그의 머리가 더울 듯할 때 똥빛이 좋지 못할 때 짜증을 낼 때 나의 가슴은 내려앉는 듯하다.

그가 苦痛[고통]하는 것은 모두 내 罪[죄] 때문인 것만 같이 생각되는 것 이 나를 슬프게 하는 가장 큰 理由[이유]다. 「나같이 薄福[박복]한 것이 왜 자식을 낳아!」하고 나는 自責[자책]한다. 첫째 내가 좋은 肉體[육체] — 그것은 健全[건전]하고도 아름다운 肉體[육체]다. —를 가질 福[복]이 있는 사람이라 하면 그도 그만한 肉體[육체]를 繼承[계승]할 蓋然性[개연성]이 많았을 것이요, 둘째 내가 精神力[정신력]의 富[부]와 物質[물질]의 富[부]를 享有[향유]할 福[복]이 있는 사람이라 하면 그도 一生[일생]에 貧困[빈곤]의 고생을 免[면]하고 安樂[안락]히 살아 갈 蓋然性[개연성]이 많았을 것이다. 이 福[복]도 저 福[복]도 없는 것이 한갖 性慾[성욕]의 衝動[충동] 과 分[분]에 넘는 親本能[친본능]을 抑制[억제]치 못하여 無辜[무고]한 生 命[생명] 하나를 病[병]과 貧窮[빈궁]속으로 끌어들인 것은 容怨[용원]치 못할 큰 罪[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실로 나는 그가 病[병]으로 苦痛 [고통]할 때마다 이러한 慙愧[참괴]와 悔恨[회한]의 情[정]이 가슴을 박박 긁는 것을 깨닫는다. 健康[건강]하고 富[부]한 者[자]에게도 人生[인생]은 苦海[고해]라 하고 火宅[화택]이라 하거든 病弱[병약]하고 貧窮[빈궁]한 者 자 [ ]에게야 그 얼마나 地獄[지옥]이랴. 나 自身 [자신]이 지금 그것을 經驗 [경험]하지 아니하는가. 그러면서 왜 그를 네 집에 끌어들였는가. 이제는 後悔莫及[후회막급]이요 오직 그에게 健康[건강]과 富[부]를 주기에 全力 [전력]을 다함으로 그 罪[죄]의 萬一[만일]을 報[보]할 수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或[혹] 壽夭[수요]와 貧富[빈부]가 그 어린이 當者 [당자]의 運命[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或[혹]은 偶然[우연]히 或[혹]은 前世多生[전세 다생]의 業[업]으로 壽富[수부]나 夭貧[요빈]을 타고 나는 것이요, 또 다른 좋은 아비와 집을 다 버리고 病弱[병약]한 나를 아비로 貧弱[빈약]한 내 집을 제 집으로 이 世上[세상]에 온 것도 前世多生[전세다생]의 因緣[인연]이라고 생각하거나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方法[방법]도 있다. 그러나 壽夭貧富[수요빈부]의 무서운 責任[책임]을 피덩어리 어린아기에게 돌릴 수 있으랴 — 그처럼 뻔뻔스럽고 無情[무정]할 수 있으랴.

내가 애쓴대야 그에게 무슨 큰 補益[보익]이 되랴마는 구걸을 하더라도 배나 아니 골리과저, 아파할 때에는 藥[약]이나 먹이과저, 하고 싶은 장난 이나 마음껏 시키과저, 願[원]하는 工夫[공부]나 하도록 하여 주고 싶어서 제가 아파서 잠 못 잘 때에 나도 저와 같이 잠 못 자과저 — 이렇게 밖에 내가 무엇을 더하랴. 만일 내 功德[공덕]을 그에게 廻向[회향]할 수 있다 하면 이후란 힘 없으나마 衆生[중생]에게 功德[공덕]될 일이나 하과저.

3[편집]

아이는 본래가 사랑스럽게 생겼다. 그 부드러운 살, 연연한 姿態[자태], 그 어리석음, 그 울음, 그 웃음, 그 보채는 모양이며, 좋아하는 꼴, 어느 것이나 사람을 魅惑[매혹]하는 美[미] 아닌 것이 없다.

이 魅惑的[매혹적]인 美 [미]가 어른을 誘惑[유혹]하는 미끼인 것은 勿論 [물론]이다. 그는 이것을 專制君主[전제군주]같이 어른을 號令[호령]하고 부려먹는다. 말도 잘 할 줄 모르는 것이 單綴音[단철음]인 소리로 어른들에게 絶對的 [절대적]인 命令[명령]을 내린다. 그 命令[명령]에 對[대]하여서는 抗拒[항거]하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猶豫[유예]나 辯明[변명]이 도무지 쓸데 없고 오직 唯唯然[유유연]하게 服從[복종]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귀여운 專制君主[전제군주]를 미워하거나 反抗[반항]하는 어른이 일찍 있어 보았을까.

어린 아기는 決[결] 코 無理[무리]한 號令者 [호령자]는 아니다. 그는 어른들 모양으로 쓸데 없는 理由[이유], 싱거운 理由[이유] — 가령 禮節 [예절]이라든지, 體面[체면]이라든지, 所有慾[소유욕], 支配慾[지배욕] 같은 — 로 어른의 服從[복종]을 要求[요구]하지 아니하고 그와 反對[반대]로 또 自己 [자기]가 願[원]하는 것이 있을 때에는 남의 눈치를 보거나 面[면]에 거리 끼어 어른을 못 부리지도 아니한다. 要[요]컨데 그는 가장 正直[정직]한 利己主義者 [이기주의자]다. 그가 어른과 다른 點[점]은 正直[정직]뿐이다. 어른은 不正直[부정직]한, 外飾[외식]하는 利己主義者 [이기주의자]다.

배가 고파 젖을 내라고 울음이라는 號令[호령]을 한다. 조금만 擧行[거 행]이 遲緩[지완]하여도 號令[호령]은 더욱 峻嚴[준엄]하여진다. 그러나 젖 만 물리면 울음도 뚝 그치고 엄마를 작지작지 해 준다. 그는 怨嬚[원염]을 記憶[기억]하는 者[자]가 아니다. 碧空 [벽공]에 떴던 片雲[편운] 모양으로 제 要求[요구]만 滿足[만족]하면 그의 憤怒[분노]와 怨嬚[원염]은 자취 없이 스러지고 만다. 그러다가 어른이 제 要求[요구] 以上[ 이상]으로 무엇을 더하여 주려 할 때 그는 感謝[감사]하는 대신에 誚責[초책]하는 號令[호령] 을 한다. 젖도 제 量[양]에 찰 만치 먹고는 아끼는 빛도 없이 젖꼭지를 뱉아버리고 만다. 더 먹으라고 빈다고 들으며, 威脅[위협]한다고 들을까보냐.

참으로 澹泊[담박]하거든. 만일 그가 오줌 똥이 마려우면 곧 누어버린다.

옷이 젖거나 이불이 젖거나 손님의 무릎이거나 무엇이거나 돌아볼 것도 없 고 未安[미안]할 것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이 가장 泰然自若[태연자약]하게 할 일은 하여버린다. 그리고는 똥도 네가 쳐라, 오줌도 네가 쳐라, 나는 그런 것을 아랑곳할 양반이 아니시다 하는 모양으로 저 가고 싶은 데로 달아나버린다.

그에게는 過去[과거]에 對[대]한 悔恨[회한]이 없다. 記憶[기억]조차 애써 싸두고 잠거 두려고 아니하고 바람받이 時間[시간]의 江[강]가에 아무렇게나 내어던져버린다. 그에게는 未來[미래]에 對[대]한 思慮[사려]도 없다.

當場[당장] 배만 부르면 그까진 젖꼭지 쥐가 물어가더라도 알은 체할 그가 아니다. 그에게는 오직 現在[현재]가 있을 뿐이다. 現在[현재]의 刹那刹那 [찰나찰나]만이 그에게는 기쁨도 되고 슬픔도 되어 意味[의미]를 가질 뿐이지 過去[과거]나 未來[미래]는 그에게는 意味[의미]만 없을 뿐이 아니라 存 在[존재]조차 意識[의식]에 오로지 아니한다. 하물며 남의 存在[존재] 같은 것을 關心[관심]할 그가 아니다. 되지 못하게 남을 위한다는 일도 아니하는 대신에 남을 害[해]하는 일도 생각을 아니한다. 그가 보기에 人類[인류]는 다른 自然現象[자연현상]과 같이 或[혹]은 興味[흥미] 있는, 或[혹]은 興味 [흥미] 없는 구경거리에 不過[불과]한다. 그처럼 그는 超然[초연]한 것이 다 그의 . 超然[초연]은 몸과 衣服[의복]에 가장 잘 드러난다. 몸에다가 무엇을 바르든지, 어떠한 옷을 입히든지 그는 밉살머리스러우리만큼 無關心 [무관심]하다. 그는 남을 보아 거기서 여러 가지 재미를 受[수]하나 저를 보지 않는다. 사람이란 원체 제 얼굴은 보지 않게 생긴 것이니 사람이 저를 보기를 그치면 自慢[자만]과 自嘆[자탄]과, 요새 시체 말로 自己陶醉[자기 도취]의 大部分[대부분]은 消滅[소멸]할 것이다. 어린아이는 저를 아니 보려는 點[점]에서 어른보다 智慧[지혜]롭다. 대저 사람이 自己[자기]를 보려고 하는 것은 자기의 不足[부족]이나 過失[과실]을 反省[반성]하려 함이 아 니요 곰보 얼굴에서도 변변한 데만 찾아보고 변변한 체하렴이기 때문이다.

(一九二八年 十月十八~二十日 [일구이팔년 시월 십팔~ 이십일] 《東亞日報[동아일보]》所載[소재])

거지[편집]

「나는 거지다」하는 생각이 불현듯 난다. 내 집에도 가끔 나보다도 더 어려운(듯한) 거지가 문간에 와서 혹은 장타령을 하고 혹은 回心曲[회심곡]을 하고 (동냥 중은 물론 거지다, 아니다 本義上[본의상] 모든 중은 다 거지다), 또 혹은 「마님이나 아씨나 아씨나 마님이나 돈이 되나 쌀이 되나 쌀이 되나 돈이 되나」하여 시끄러워서 동전 한 푼이라도 아니 내주고는 못 배기게 한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글을 써서 讀者[독자] 여러분에게 한 푼 두 푼 구걸하는 것이다. 같은 거지라도 그냥, 「돈 한 푼 적선합시오」하느니보다는 목청 좋게 장타령이라도 하고 이 家門[가문]에 福[복]이 들어오라고 덕담이라도 늘어놓는 이가 돈 줄 재미가 더 많다. 나도 그냥 讀者[독자]에게 구걸하기보다는 장타령이 되거나 덕담이 되거나 내 재주껏 목청껏 늘어 놓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벌어먹는 편으로 보아서 세 가지 사람이 있다. 한 가지는 남이 벌어 놓은 것을 빼앗아다가 먹는 사람이다. 이것이 지금 世上[세상]에서 가 장 兩班[양반], 即[즉] 「놀고 먹는 이」가 가장 上等[상등] 사람이요, 둘째는 제 힘으로 제 땀으로 벌어먹는 사람, 即[즉] 「일하고 먹는 이」니 이 것이 모든 農夫[농부], 勞動者等[노동자등], 요새 시체말로 新興勞農階級 [신흥노농계급]이요, 세째는 제가 땀을 흘려 벌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남이 벌어 놓은 것을 빼앗아 먹을 힘과 재주도 없어서 혹은 익살로, 혹은 재주넘 이로 혹은 어여쁜 얼굴로, 혹은 고운 목청으로, 혹은 장타령으로, 혹은 이야기책으로, 혹은 阿諂[아첨]으로 다른 두 가지, 그중에도 특별히 兩班[양반님네의 잔반낙효 ] 殘飯落肴[ ]를 얻어먹는 거지들이다. 이 세 가지 사람 가운데 第一[제일] 福[복] 좋은 이는 무론 첫 階級[계급]이니 그들은 모든 집 가운데 가장 크고 좋은 집에 살고, 모든 飮食[음식] 가운데 가장 新鮮[신 선]하고 慈養[자양] 있고도 美味[미미]하고도 보기조차 좋은 飮食[음식]을 먹고, 여편네 中[중]에도 가장 변변하고도 토실토실하고 상냥한 여편네를 두고, 좋은 옷에 좋은 수레에 果是[과시] 地下仙[지하선]답게 산다. 이 世上[세상]은 그 兩班[양반]들 위해서 생긴 것 같다. 중들의 말을 듣건대 이러한 兩班[양반]들은 모두 多劫多生[다겁다생]에 많은 福[복]을 심고 높은 德[덕]을 닦는 어른들이라 하니 우리네 薄德[박덕]한 下賤輩[하천배]야 그 윽히 부러워나 할지언정 焉敢生心[언감생심] 우러러나 볼 수 있으리?

비지땀 흘려 농사해서 얼음 같은 白米[백미] 지어 細沙[세사] 같은 胡 [호]좁쌀하고 바꾸어 먹는 農夫[농부]의 八字[팔자]나, 짓는 집은 남의 집 끄는 구루마도 남의 구루마 고리고 구린 남의 집 똥뒷간의 오줌 똥까지 쳐 주어야 할 八字[팔자]도 上八字[상팔자]될 것은 없지마는 그래도 남 위해서 제 땀을 흘리는 것 보니 혹시나 來生福樂[내생복락]어늘 積功[적공] 積德 [적덕]이 될는지도 모른다.

이 모양으로 혹은 놀고 먹고 혹은 일하고 먹어서 貧富[빈부], 貴賤[귀 천], 上下 [상하], 苦樂之別[고락지별]은 있다 하더라도 먹을 제 것을 가지 기는 하였건마는 우리네와 같이 놀고 먹을 福[복]도 없고 일하고 먹을 功 [공]도 없는 거지之類[지류]는 兩班[양반]네 脾胃[비위]를 잘 맞주면 한 밥 얻어먹고, 兩班[양반]네 눈밖에 나는 날에는 所謂[소위]不運[불운], 落魄 [낙백]으로 촐촐히 배를 곯다가 까딱 잘못하면 屈原[굴원]이 모양으로 汨羅水[멱라수]는 槃纒[반전]이 없어서 못 가더라도 가까운 漢江人道橋[한강인도교] 밑에서라도 千秋[천추]의 芳名[방명]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一九二八年 十月二十一日[일구이팔년 시월이십일일] 《東亞日報[동아일보]》 所載[소재])

應供[응공][편집]

그러나 거지中[중]에도 上中下 [상중하] 三品[삼품]이 있는 것은 盜賊中 [도적중]에도 義[의]와 不義[불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몸 성한 거지와 병신 거지, 衣冠[의관] 깨끗한 거지와 누더기 입은 거지, 서울 거지와 시골 거지, 이 모양으로도 差別[차별]이 있으려니와 그것으로 上中下 [상중하] 三品[삼품]이라고 價値判斷[가치판단]의 標準[표준]을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거지의 上品[상품], 下品[하품]의 價値[가치]의 差別[차별]이 생기는 標準[표준]은 무엇인고.

釋迦如來[석가여래]는 五十年[오십년] 거지 노릇한 大[대] 거지다. 아마도 五十年間[오십년간] 거지 生活[생활]로 一貫[일관]한 사람은 진실로 曠前絶後[광전절후]할 것이니 이 點[점]만으로도釋迦如來[석가여래]는 레코드 홀더다. 그는 一日一食主義[일일일식주의]이므로 하루 한 번 꼭 바리때를 들고 閭閣[여각]에 내려와서 門前 [문전]에 밥을 빌고 그 값으로 說法[설법]을 하였다. 普通[보통]거지가 장타령하는 대신에 人生[인생]의 無常[무상]한 것을 말하여 들린 것이다. 그에게 밥을 준 주인은 혹은 어떤 중 녀석이 덕담을 하는고 하여 귀담아 듣지도 아니하였을 것이요, 혹은 釋迦如來[석가여래]의 說法[설법]하는 말을 興味[흥미]있게 귀 기울여 듣고 흥흥 그러려니 말딴은 옳다고 혀를 챈 이도 있었을 것이요, 또 甚[심]히 드물게 어떤 이는 그 거지의 말에 無上[무상]의 法悅[법열]을 얻어 出家成道[출가성도]한 사 람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려나 釋迦牟尼[석가모니]가 그 많은 弟子[제자]를 얻은 것이나 또 그 많은 說法[설법]을 한 것이 다라고는 못하여도 그 大部分[대부분]은 이 거 지 노릇에서, 말하자면 그의 獨特[독특]한 一種[일종]의 장타령에서 얻은 것이다. 그는 거지中[중]에 王[왕]거지라고 아니할 수 없다. 우리 經驗[경험]으로 보더라도 어떤 거지는 혹은 容貌[용모]로, 혹은 그 주워대는 사설로, 혹은 行動[행동]으로 여러 가지로 깊은 印象[인상]을 우리 心中[심중]에 주고 가는 수가 가끔 있다. 거지뿐 아니라 車中[거중]이나 路上[노상]에서 번뜻 한 번 본 사람이 두고두고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記憶[기억]도 되고, 敎訓[교훈]을 주는 模範[모범]도 되는 수가 있고 그와 反對[반대]로 所謂 [소위] 「달라는 것 없이 밉다」는 格[격]으로 언뜻 어디서 한 번 본 어떤 사람의 꼴이 또는 말이 두고두고 우리에게 不快感[불쾌감]을 주는 사나운 꿈자리가 되는 수도 있다.

이 意味[의미]로 보아서 사람이란(사람뿐 아니라 禽獸草木山川日月星辰雲霧等[금수 초목산 천일월성신운무등] 모든 自然現象[자연현상]도) 特別[특별] 히 有意的 [유의적]으로 무슨 活動[활동]을 하지 아니하더라도 그의 存在自身 [존재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른 自然物 [자연물]에게 그 一生[일생] 동안 끊임없이, 아니하려 하여도 아니 할 수 없이, 一種[일종] 形言[형언]할 수 없는 微妙[미묘]하고도 深刻[심각]하고도 複雜[복잡]한 影響[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라듐 모양으로 晝夜長川[주야장천]에 微細[미세]한 分子[분자]와 神秘[신비]한 光線[광선]을 放射[방사]하는 것이다. 이 點[점]으로 보건댄 釋迦如來[석가여래]는 決[결] 코 주인에게 害[해]나 不快[불쾌]를 주는 門前乞客[문전걸객]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여도 지금 釋迦如來[석가여래]가 내 집 門前 [문전]에 와서 바리때를 내어민다 하면 나는 얼른 부엌에 뛰어 들어가 밥솥에서 숫밥으로 듬뿍 퍼다가 바리때에 가득 꾹꾹 눌러 드리고 그가 만일 說法[설법]을 하거든 적어도 사랑에 들여서 요새 같은 여름날이면 시원한 얼음 冷水[냉수]라도 대접해 가며 들을 생각이 있고, 또 그런 거지 같으면 날마다 와서는 키 작은 쌀 두주와 입 뾰족한 마누라가 허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일부러 청해라도 오고 싶다. 거지도 이처럼 집집에서 대접을 받게만 된다 하면 분명 上等[상등] 거지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니, 이렇게 萬人[만인]에게 기쁨과 德化[덕화]와 利益[이익]을 주는 거지를 부처님이라 하여 그의 織啣[직함]의 劈頭[벽두]에 「應供[응공]」二字[이자]를 놓았다.

(一九二八年 十月二十三日[일구이팔년 시월이십삼일] 《東亞日報[동아일보]》 所載[소재])

福田[복전][편집]

그러면 應供[응 공]이란 무슨 뜻인가. 「삑삑이 供養[공양]함」이라는 뜻이니 주는 편인 一般民衆[일반민중]으로 보면 줄 만한, 即[즉] 衣食[의식]을 供給[공급]할 만하단 말이요, 받는 편인 거지편으로 보면 받을 만함, 即 [즉] 사람들이 땀 흘려서 지은 衣食藥品[의식약품]을 받아서 먹고 써도 괜찮을 資格[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一言以蔽之[일언이폐지]하면 應供[응 공]이라면 거지 노릇할 資格[자격]이 있단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예사 거지들은 사람들이 주기 싫다는 것을 귀찮게 굴거나(門前 [문전]에서 「쌀이나 돈이나」하고 漸漸[점점] 더욱 요란하게 떠들어서) 떼를 들이대거나(衣冠[의 관]한 窮交貧族[궁교빈족]이라는 거지들 모양으로) 속이거나 하여 얻어먹지 마는 應供[응 공] 地境[지경]에 이른 거지로 말하면 사람들이 自進[자진]해서, 기뻐서, 願[원]해서 아까운 줄 모르고 갖다가 바치는 것을 받아 먹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면 應供 地位 [응 공지위]를 얻을까. 이것은 거지들에게는 重大問題[중대문제]다. 만일 學校[학교] 卒業證書[졸업증서] 모양으로 應供學校 [응 공학교]나 博士[ 박사]를 얻을 수 있다 하면 그 學校[학교]는 크게 繁昌[번창]할 것이다. 그러나 應供資格[응 공자격]은 學校 工夫[학교 공부]만으로 얻는 것은 아니다. 教員免許狀[교원 면허장] 모양으로 試驗[시험]을 치루어서 얻는 것도 아니요, 分參奉帖紙 [분참봉첩지]모양으로 某某[모모] 貴族 [귀족]에게 돈을 바치고 사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親任[친임]거지 勅任[칙임]거지 모양으로 國家[국가]의 主權者 [주권자]가 任命[ 임명]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이 資格[자격]은 어떻게나 생기는 것인가 달팽이 껍질 모양으로, 늙은이 白髮[백발] 모양으로 저절로 생겨서 저절로 자라서 조금씩 조금씩 世人[세인]의 認定[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釋迦[석가], 耶蘇[야소], 孔子[공자], 이 모양으로 人類[인류]의 代表的[대표적]이라 할 만한 應供[응 공]거지들은 다 그렇게 生成 進化 [생성 진화]한 것이지, 大科及第[대과급제] 모양으로 된 것도 아니요, 米豆猝富[미두 졸부] 모양으로 된 것도 아니다.

그들은 宏壯[굉장]한 應供帖紙 [응 공첩지]를 태기 때문에 死後[사후] 數千年[수천 년]이 지나도록 數億男女 [수억남녀]의 供養[공양]을 받는 것이다. 果然 [과연] 大[대] 거지 王[왕]거지라 아니할 수 없다.

이렇게 應供 地位 [응 공지위]에 오른 거지는 福田[복전]이라고도 일컫는다.

그 뜻은 이러한 거지에게 밥 한 그릇 옷 한 가지라도 주면 그것이 주는 者 [자]에게 福[복]이 되어 돌아온다 하며 이런 福田[복전]에 한낱 布施[보시]의 씨를 떨어뜨리는 것만 해도 — 다시 말하면 이런 거지에게 밥 대접 한 번만 해도 그것이 그 사람의 一生[일생]의 功德[공덕]이 될 뿐 아니라 百生 [백생] 千生[천생] 無限[무한]한 未來[미래]의 功德[공덕]이 되고 自己 一身 [자기일신]의 利益[이익]이 될 뿐 아니라 今生[금생], 前生[전생], 來生[내 생]의 父母妻子[부모처자]에게까지 利益[이익]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 하면 이 福田[복전]은 果然[과연] 金提萬頃[김제 만경]벌보다도 나무리, 어로리 벌보다도 좋은 田土[전토]일시 分明[분명]하다.

이렇게 福田[복전]이 되는 거지에게는 무슨 客觀的價値[객관적가치]가 있 는가. 슬픈 이에게 기쁨이 되고, 괴로운 이에게 慰安[위안]이 되고, 어리석은 이에게 智慧[지혜]가 되고, 惡苦[악고]를 받는 이에게 善悅[선열]을 주 는 무엇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釋迦[석가]나 耶蘇[야소]는 다 이러한 힘을 가졌던 이라고 책에 써 있다.

그러나 釋迦[석가], 耶蘇[야소] 같은 大福田[대복전]만 福田[복전]이 아 니요, 無數[무수]한 等級[등급]의 小福田[소복전]도 있을 수 있다. 大海[대 해] 만물이 아니라 小海[소해]와 湖水[호수]와 澤[택], 井等[정등]을 거쳐 서 一盃水[일배수], 一滴水[일적수]에 이르기까지 水量[수량]에 無數[무수] 한 等別[등별]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와 같이 應供[응 공]의 거지도釋迦[석가], 耶蘇[야소] 같은 王[왕]거지만이 아니요 우리네 같은 凡夫[범부]가 바라볼 수 있는 境界[경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도 못하면 놀고 먹을 福[복]도 없고 일하고 먹을 힘도 없는 우리 따위 거지는 밤낮 「쌀이나 돈이나」 남을 시끄럽게만 구는 이가 되고 말 것이 아닌가.

(一九二八年十月二十四日[일구이팔년 시월이십사일] 《東亞日報[동아일보]》 所載[소재])

주기[편집]

福田[복전]에 福[복]을 심는 씨는 「주는 것」이다. 원체 무슨 씨나 심는다는 것은 다 주는 것이다. 내게 있던 것을 남에게로 넘기는 데 다섯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힘이 부치어서 빼앗기는 것이요, 둘째는 거기 相當[상당]한 값을 받고 파는 것이요, 세째는 잃어버리는 것이요, 네째는 내어버리는 것이요, 다섯째는 주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길 중에 처음의 네 가지는 누구나 다 하는 것이지마는 나중의 준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빼앗길지언정, 도적을 맞을지언정, 차라리 내어버릴지언정, 주기는 아까운 것이 사람의 욕심이다. 남이 내게 주는 것은 大讚成[대찬성] 이나 내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은 大反對[대반대]다. 이 點[점]에 있어서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다. 國際的[국제적]의 모든 葛藤[갈등], 個人間 [개인간]의 모든 爭鬪[쟁투]와 訴訟[소송] — 이 모든 것이 뒤꼍에서 뼈다귀 하나를 가지고 서로 제가 갖는다고 서로 남을 안 준다고 으르렁거리고 싸우는 개 싸움과 本質[본질]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다를 것이 없다. 生物 [생물]의 이러한 方面[방면]을 보고 다아윈이라는 털보 영감이 그것을 生存競爭 [생존경쟁]이라고 이름 지었고, 또 사람의 이러한 方面[방면] 때문에 警察署[경찰서]와 裁判所[재판소]와 監獄[감옥]과 戰爭[전쟁]이 생기는 것이라고 現制度[현제도] 擁護論者[옹호론자]가 팔을 뽐낸다. 사람의 이러한 方面 [방면]을 보고 性惡說[성악설]도 생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生物 [생물]은 그처럼 單純[단순]한 것이 아니어서 털보 영감 다아윈 先生[ 선생]이 生存[생존]을 위한 相互爭 奪[상호쟁탈]의 原理[원리]를 證明[증명]하던 自然現象[자연현상]을 고대로 無政府主義[무정부주의]의 맑스라 할 크로포트킨 老人[노인]이 이 生存[생존]을 爲[위]한 相互扶助[상호 부조]의 原理[원리]를 證明[증명]하였다. 얼른 보면 이것은 심히 파라독스的 [적]이어서 인류의 推理力[추리력]의 妥當性[타당성]을 의심케 할 만한 일이어니와 기실은 그러한 속에 天地[천지]의 妙味[묘미]가 있는 것이다.

불로만 된 듯한 宇宙[우주]를 자세히 보면 물로만 된 듯하고, 물과 불은 暫時[잠시]도 同一[동일]한 時間[시간]과 空間[공간]에 같이 있을 수 없는 것 같건마는 곧잘 水素瓦斯[수소와사]가 燃燒[연소]하는 곳에 물이 나오는 것이다. 사람(日語[일어]를 흉내 내인 시체 말로 人間[인간])도 꼭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만드는 욕심꾸러기만 같으면서도 남의 것을 빼앗던 그 손으로 곧잘 제 것을 아까운 줄 모르고 남에게 턱턱 내어준다. 심지어 제 몸뚱과 제 목숨까지도 「엿소 가져가오」하고 헌 신짝 모양으로 턱턱 내어던지는 수가 있다. 원수를 물어 뜯는 입은 同時[동시]에 愛人[애인]을 입맞추는 입이요, 남을 할퀴는 손은 同時[동시]에 子女 [자녀]를 어루만지는 손이다. 아 무리 욕심꾸러기이기로 제 子女 [자녀]에게 무엇을 주기를 아까와하는 이가 어디 있으며, 아무리 凶惡[흉악]하기 虎狼[호랑] 같은 사람이기로 제 子女 [자녀]를 愛撫[애무]하여 그를 爲하여 自己[자기]의 一部分[일부분]을 犧牲 [희생]하기를 모르는 이가 어디 있으랴. 鐘路[종로] 네거리에 오글오글 끓는 數[수]없는 사람들은 모두 餓鬼[아귀] 같은 무리라고만 하지 말아라. 그들의 胸中[흉중]에는 「사랑하고 싶어」, 「주고 싶어」하는 생각이 나아갈 길을 못 찾아 눈물을 짓고 있다 — 내가 어찌 남들의 속에 들어가 보았으랴 마는 내가 내 속을 들여다보니 그러한 것 같고 또 나같이 못난 거지가 지금까지 먹고, 입고, 사랑받고 살아 있는 것을 보니 그러한 것 같다.

社會制度[사회제도]는 갈수록 더욱 「주기」를 禁[금]하고 사랑하기를 禁 [금]하건마는 그래도 주고 싶어 하는 可憐[가련]한 사람의 마음은 흙에 덮이움과 같이, 그릇에 담긴 물과 같이 밖으로 밖으로, 남에게로 남에게로, 나올 틈만 찾고 눈물진다.

(一九二八年 十月二十五日[일구이팔년 시월이십오일] 《東亞日報[동아일보]》 所載[소재])

梧桐[오동][편집]

나는 梧桐[오동]에 對[대]하여 퍽 愛着心[애착심]이 强[강]하다. 내가 樹木中[수목중]에 가장 사랑하는 것이 솔나무나 梧桐[오동]이다. 松[송], 梧桐[오동] 두 가지 中[중]에서 다시 더 사랑할 것을 고르라 하면 솔이라 하겠으나, 나는 사랑하는 이 兩者中[양자중]에 差別[차별]을 세우고 싶지 아니하다. 대체 兩者 [양자]에게는 兩者 [양자] 所有[소유]의 美點[미점]이 있어 서로 이것으로 저것을 대신할 수 없는 까닭이다.

내가 梧桐[오동]을 사랑하게 된 原因[원인]이 무엇인가 하면 毋論[무론] 나 個人[개인]의 性癖[성벽]도 되려니와 어렸을 때에 들은 아버지의 梧桐 [오동] 讃美 [찬미]가 매우 有力[유력]한 듯하다. 내가 八歲[팔세]에서 十一歲[십일세]까지 살던 집에는 뒤꼍에 梧桐[오동]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鳳凰[봉황]은 非梧桐[비오동]이면 不棲[불서]라는 말과 거문고는 梧桐[오동]과 石上松[석상송]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과 白樂天 [백낙천]이가 집을 살 때에 집 값을 다 치르고 나서도 階前 [계전]에선 梧桐 [오동]에 月上[월상]한 것을 보고 梧桐[오동] 값을 따로 내었다는 말을 하였다. 鳳凰[봉황], 거문고, 白樂天[백낙천], 이 모든 것이 어느 것이나 나의 어린 憧憬[동경]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없다.

그래서 어찌해서 이 梧桐[오동]에는 鳳凰[봉황]이 깃을 아니 들이는고 하 고 가끔 손바닥 같은 잎사귀 속을 바라보기도 하고 이것을 베어서 거문고를 하나 만들까 하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나는 梧桐[오동]에 對[대]하여서는 一種[일종]의 尊敬[존경]에 가까운 愛着心[애착심]을 가지어 어디를 가든지 梧桐[오동]이라면 반드시 이를 愛撫[애무]하여 그 가지 뻗음과 잎사귀 모양 과 年齡[연령]을 살폈다. 梧桐[오동]이란 朝鮮[조선]에서는 그리 흔한 나무 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에 目擊[목격]한 것은 손꼽아 세일 수가 있을 것 같을 뿐더러 그 생김생김조차 記憶[기억]에 남아 있다. 그 中[중]에도 慶南[경남] 熊川郡[웅천군] (지금은 昌原[창원]에 合郡[합군]이 되었다) 馬川[마천]이라고 記憶[기억]한다. 그 學校[학교] 마당에 섰는 늙은 梧桐[오동]은 가장 나에게 깊은 印象[인상]을 주었다. 내가 十九歲[십구세]적인가 보다. 나는 熊川[웅천] 갔던 길에 馬川[마천]에서 그 늙은 梧桐[오동]과 마당을 같이 하여 一夜[일야]를 지내었다. 나는 밤에도 몇 번이나 일어 나 나가서 그 梧桐[오동]을 우러러보았던고. 길게 뻗은 가지에는 梧桐[오 동] 特有[특유]의 씩씩한 잎사귀가 소리없이 성긋성긋 모여 있고 그 틈으로 사이사이 동실동실한 열매와 별이 보였다. 八月末 [팔월말]이라 아직도 무더운 어스름 달밤이든가 싶다.

日本 [일본]에 있을 때에 梧桐[오동]으로 衣欌[의장]이며 나막신 만드는 것을 보고는 冒瀆[모독]에 가까운 不快感[불쾌감]을 가진 것도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다. 梧桐[오동]이란 혹은 밤 달에, 혹은 여름 소낙비에, 혹은 맑고 밝은 여름 볕 밑에 바라보기나 하고 만일 그것으로 무엇을 만든다 하면 自枯[자고]하기를 기다려 거문고나 만들 것이지 그 以外[이외]에 利用 [이용]한다 하면 冒瀆[모독]인 것 같이 생각된다. 내 迂濶[우활]함인가.

그런데 내가 漢陽[한양]에 寓居[우거]한지 于今[우금] 七年[칠년]에 내 집에 梧桐[오동] 三株[삼주]가 났다. 하나는 요전 살던 집에 난 것인데 벌써 亭亭[정정]한 大木[대목]이 되었으나 서로 만날 緣分[연분]이 不足[부족한 ] 것이 恨[한]이어니와 내가 現在[현재]에 들어 사는 집에도 再昨年[재작년]에 梧桐[오동] 한 나무가 안방 西窓[서창] 밖에 나서 今年[금년]에는 기운찬가지와 걸걸한 잎사귀가 높이 지붕 위에 솟았고 또 今年[금년]에 千萬[천만]뜻밖에 사랑마당에 梧桐[오동] 한 나무가 나서 一尺[일척]이나 자랐다.

내년 후년에는 내 사랑 마당이 이 梧桐[오동] 그늘로 가리워질 줄 믿는다. 이로 보면 나만 梧桐[오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梧桐[오동]도 나를 따르는가 싶다.

(一九二八年 十月二十六日[일구이팔년 시월 이십 육일] 《東亞日報[동아일보]》所載[소재])

病[병]과 秋[추]와 自然[자연][편집]

1[편집]

나는 오랫동안 自然[자연]과 떠나 있었다. 내가 黃海道[황해도] 安岳郡 [안악군] 燃燈寺[연등사] 鶴巢庵[학소암]을 떠난 것이 昨年[작년]十一月 [십일월] 末 [말]이다. 그때부터 至今[지금]까지 滿一個年[만일 개년] 동안을 나는 都會[도회]의 한 편 구석인 病室[병실]에서 지냈다. 病室[병실]에 누워 있더라도 하늘도 보고 山[산]도 보고 昌慶苑[창경원] 수풀에 代代[대대]로 살아 오는 새들이 오고 가는 것도 보았다. 猫額[묘액]만한 後園[후원]에 대싸리가 成林[성림]한 것을 보고 十五年前 [십오년 전]에 汽車[기차]로 通過 [통과]하던 小白山[소백산]의 林相[임상]을 聯想[연상]하고 담 밑에 파다 옮긴 밤나무 한 그루에서 아람 쏟아지는 것을 줍고는 三十前 [삼십전] 내가 生長[생장]하던 故鄕[고향]의 가을을 回憶[회억]하였다. 사람이 어느 곳에 있은들 自然[자연]을 떠나랴. 비록 깊은 獄[옥]속에라도 有時乎[유시호] 봄의 새소리와 가을의 달빛이 들어오는 것이다. 사람은 自然[자연]의 품에서 떠나려 하여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自然[자연]도 類萬不同[유만부동]이다. 成均館[성균관] 뒤 山[산]과 金剛山[금강산]과를 같다고 해서는 거짓말이요, 都會[도회]의 萬夫紅塵 [만부홍진]을 通[통]하여 光線[광선]의 여러 部分[부분]을 잃어버린 뿌연 日光[일광]과 一碧無纖塵[일벽 무섬진]한 하늘에 全國 [전국]으로 폭폭 내려붓는 日光[일광]과를 같은 日光[일광]이라고 해도 안될 말이다. 人事[인사]를 點綴[점철]하여서 自然[자연]이 더욱 情[정]답게 아름답게 되는 수가 있으니 山[산] 밑, 들머리에 二[이], 三[삼 ], 農家[농가]가 조는 듯함이나, 湯 탕탕 湯[ ]한 長江[장강]위에 一葉白帆[일엽백범]이 뜬 것이나 다 그러하거니와, 그래도 自然[자연]의 眞味[진미]는 亦是[역시] 그의 處女性[처녀성]에 보다 더 많은가 한다. 車馬[거마]가 自由[자유]로 다니도록 坦坦[탄탄]히 뚫린 大路[대로]에서 우리는 人生[인생]의 힘의 美 [미]를 느낀다. 그러나 人跡[인적]이 지난 듯 만 듯한 崎嶇[기구]한 小路[소로]에서 우리는 自然 [자연]의 處女美 [처녀미]를 느끼는 것이다.

都會[도회]의 自然[자연]은 人生[인생]에게 壓迫[압박]을 當[당]하고 變形[변형]을 當[당]하고 蔽遮[폐차]를 當[당]하고 있다. 내가 내 病室[병실]에서 멀리 道峯[도봉]의 한 뿌다구니를 바라보며 自然[자연]의 夢幻境[몽환경]에 耽溺[탐닉]하려 할 때에는 박석고개 넘어 오는 自動車[자동차] 소리가 나를 개솔린 내 나는 文明[문명]의 都會[도회]로 끌어들인다.

二個年間[이 개년간]이나 病席[병석]에 있는 몸이 하고 싶은 일인들 한 두 가지랴마는 浮碧樓[부벽루]에서 바라보는 大同江[대동강]과 釋王寺[석왕사] 의 松林[송림]에 걸린 달과, 萬瀑洞[만폭동]을 올라가며 바라보는 金剛山 [금강산]의 모양은 가장 보고 싶어 잊지 못하는 것 中[중]에 하나였다. 한 번 더 그것을 보았으면 — 이것은 죽으려는 나를 붙들고 매어 달리는 꽤 힘 있는 未練[미련]이었다.

平生[평생]에 이 버릇을 못 놓나니 煙霞放浪[연하방랑] 名山大川[명산대천]을 생각만 해도 어깨춤이 저절로 나는 내 일은 나도 몰라하노라.

다행히 나는 汽車旅行[기차여행]은 하여도 관계치 아니할 만큼 健康[건강]도 恢復[회복]이 되었고 때마침 丹楓時節 [단풍시절]도 되기로 매우 맘이 움직이던 次[차]에 지난十九日[십구일] 밤에 除萬[제만] 하고 家族[가족]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咸鏡線[함경선]의 밤 十時五十分[십시오십분] 車[차]를 탔다. 妻[처]는 근심도 하고 성도 났으려니와 重病患者[중병환자]가 遠距離旅行[원거리여행]을 한다 하면 펄쩍 뛸 것이므로 驛頭[역두]에서 葉書 [엽서] 한 장을 집에 부치고는 도망군 모양으로 釋王寺[석왕사]를 向[향]하였다. 미상불 病[병]이 근심도 되지마는 明朝[명조]에는 雪峯山[설봉산]의 丹楓[단풍]과 釋王寺[석왕사]의 松林[송림]을 보려니, 그 못 잊히던 물소리를 들으려니 하면 마치 못 볼 뻔하던 愛人[애인]이나 찾아가는 양하여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이 들지를 아니하였다.

2[편집]

여기도 단풍이 좋으려니 丹楓[ ] 물소리도 좋으려니 하고 눈을 감고 있어도 환히 내다보이는 낯익은 三防[삼방] 三十里[삼십리] 長峽[장협]을 생각만 보지는 못하면서, 高山[고산] 龍池院[용지원]도 새벽 꿈결에 지나 釋王寺驛 [석왕사역]에 내린 것은 午前六時十七分[오전육시십칠분]. 雪峯山[설봉산] 위에 啓明星[계명성]이 아직도 제 영채를 나타내고 있는 새벽이다.

驛[역]에서 내린 것은 나 한 사람과 郵便物 [우편물] 한 주머니. 驛頭[역 두]에는 巡査[순사]의 붉은 테가 유난히 빛날 뿐이요 졸린 듯한 改札驛夫 [개찰역부] 外[외]에는 사람도 없다. 丹楓[단풍]조차 다 늦어간다는 이때, 솜옷을 입고도 덜덜 떨리는 이곳에 雪峯山[설봉산]의 啓明星[계명성]을 바라고 새벽 찬서리를 밟으러 오는 사람도 없는 것이다. 自動車[자동차]가 있나. 人力車[인력거]가 있나. 巡査[순사]도 성큼성큼 다 달아나고 보니 病身 [병신] 나 하나만이 이 벌판에 홀로 버림이 되었다. 五里[오리]나 넘는 旅館村[여관촌]에를 어떻게 걸어가나. 經學院[경학원] 앞 네거리에서 昌慶苑 [창경원] 앞 電車停留場[전차 정류장]까지도 昨年以來[작년이래]에 四[사], 五次[오차]나 걸었을까 말까 하는 내가. 나를 태우고 오던 汽車[기차]는 너 잘 떨어졌다 하듯이 푸푸거리고 淸津[청진]을 가느라고 내닫는다 — 그것조차 아니 보인다. 달고 치면 아니 맞는 壯士[장사] 있나. 또 피를 토할 때에는 토하더라도, 가다가 中路[중로]에서 쓰러지더라도 인제는 가는 수밖에는 없다.

나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아무쪼록 힘들지 아니하도록 걸음을 걸었다. 梧山場[오산장]에서도 다들 자고 아직 일어나지 않아 아직 나온 사람이 드물었다. 거기를 지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벌판의 老松[노송]들을 바라보면서 두리번 두리번 서리에 젖은 길을 간다.

雪峯[설봉]의 偉大[위대] 한 屛風[병풍]은 아직도 灰色[회색]에 싸였다.

丹楓[단풍]이 어떠한고 할 즈음에 俄然[아연]히 진실로 俄然[아연]히 雪峯 [설봉]의 上峯[상봉]인 鷲峯[취봉]이 피를 흘리는 듯이 鮮紅色[선홍색]으로 물이 드는구나. 진실로 俄然[아연]히! 나는 우뚝 섰다. 내 가슴은 뛴다. 나는 돌아섰다. 붉은 햇바퀴가 半[반]만 山[산] 허리에 걸렸구나. 이글이글 씨 물씨물한 불덩어리가 곧 쑥 올라오는구나.

야 보아라, 雪峯山[설봉산] 하늘에 닿은 屛風[병풍]이 모두 핏빛이로구나. 아니다 五色[오색]이 玲瓏[영롱]하구나. 仔細[자세]히 보니 千色萬彩 천색만채 [ ]로구나. 앓은 것이 비틀거리고 찾아 온 精誠[정성]은 十二分[십이분]으로 報應[보응]이 되었다. 이 앞을 지난 사람이 千[천]이요 萬[만]뿐이랴마는 이 瞬間[순간]을 본 사람은 나 하나뿐이로구나.

啓明星[계명성] 바로 밑에 검은 것이 雪峯山[설봉산]이 치쏘는 아침 빛에 문득 五色[오색영롱]키는 요사이 이어 친 서리에 물든 丹楓[단풍]이로다.

문득 五色玲瓏[오색영롱]키는 나를 위하여 그럼이라고 하고도 싶으나 버릇없는 말이기로 참았다.

나는 가고 보고, 보고 가고 혼자 웃고 혼자 아하였다. 그렇게도 重病[중 병]에 다 죽어가던 것이 이만큼이라도 살아나서 이러한 天地[천지]의 偉觀 [위관]들을 보게 된 것도 또한 고마운 일이로다, 하고 걷는 걸음도 더욱 가벼웠다.

3[편집]

논에 늦은 벼는 키가 한 뼘 밖에 아니 된다. 이삭은 꼬부라졌으나 알갱이는 일여덟 개, 그것도 쭉정인가 뿌옇게 血色[혈색]이 없다. 아마 그까진 걸 무얼 베여 하고 저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 둔 모양이다.

그렇게라도 걷는 길이 어느덧 半[반]은 지나서 어떤 村落[촌락]앞에 이르렀다. 볕은 벌써 村家[촌가]의 서리로 덮인 草家[초가] 지붕을 불그레하게 물들였다. 물동이 인 부인들이 우물길에서 돌아오고 닭들도 쓰러진 코스모스 밑에서 모이를 줍는다. 코스모스는 언제 보아도 산 듯하게 금세 핀 듯하지마는 식전 새벽에는, 더구나 새로 분세수한 아가씨 얼굴과 같이 新鮮[신 선]한 것이다. 씨는 누가 뿌렸는지 뿌려만 놓고는 돌아보지 아니하여 이리 쓰러지고 저리 쓰러지고 암탉수탉에게 매양으로 밟히는 코스모스, 그러면서도 滿足[만족]한 듯이 꽃은 필 대로 피어 謙遜[겸손]하게 가을 農村[농촌]의 아기 딸 노릇을 하는 것이다.

春三月[춘삼월] 五六月[오육월]을 말도 없이 다 지내고 서리 되게 친 날 이른 새벽 날을 받아 피옴도 맑고 찬 그의 性稟[성품]인가 하노라.

그렇게 軟弱[연약]해 보이는 — 줄기나 잎사귀가 꽃이나 — 코스모스가 찬 서리 치는 늦가을에 泰然[태연]히 피어 있는 것은 女性[여성]의 매운 절개와 같다.

뜰가에 코스모스 희고 붉고 자주로다 아담한 그 양자가 비바람을 못 이기어 누워서 수줍은 양이 못내 가련하여라.

코스모스에 여러 빛갈이 있거니와 그 中[중]에 代表[대표]되는 것은 암만 해도 흰 빛이다. 못 견디게 맑고 못 견디게 싸늘한 맛이 코스모스의 本色[본색]이 아닐 리가 없다. 위에 적은 노래 中章 [중장]에 아담한 그 양자는 내 게 印象[인상]되는 코스모스의 代表的[대표적] 形容語[형용어]다. 「淸楚 [청초]한 그 姿態[자태]」라 함이 더욱 적당한 듯하건마나 音韻[음운]이 그만 못하기로 아담한 그 양자라고 하였다. 그 코스모스는 제 몸을 가누는 힘이 甚[심]히 弱[약]하여 가을 開花期[개화기]까지에 바로 선 대로 견디는 것이 드물고 여름내 된 風雨[풍우] 등에 부대끼고 부대끼어 쓰러지고 만다.

그렇지마는 몸은 쓰러져도 고개만은 반짝 치어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굽히지 않은 뜻을 보라고 외치는 것이다.

된서리 치던 날에 마을 길을 가노라면 農家[농가] 마당 끝에 흐트러진 코스모스 밑에서 노닐던 닭이 소리치고 닫더라.

이것은 即景[즉경]이다. 코스모스 흐트러뜨리는 된서리 때문인 것 같이도 보이고 또 코스모스 아름다운 꽃 속에 무뚝뚝한 닭들이 설레는 것도 우스웠던 것이다. 農家[농가]의 한 情景[정경]이라고 할까.

4[편집]

釋王寺[석왕사]의 松林[송림]은 언제 보아도 좋다. 沙器里[사기리]에서 斷俗門[단속문]까지의 平原性松林[평원성 송림]도 特色[특색]이 있거니와 斷俗門[단속문]에서 登岸閣[등안각]에 이르는 約[약] 五里間 [오리간]의 溪谷性松林[계곡성 송림]이 더욱 좋다.

松林[송림]의 美[미]는 單純[단순]한 소나무의 集合[집합]이라는 一條件 [일조건]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첫째는 소나무 개개의 생김생김, 둘째는 어린 솔, 젊은 솔, 늙은 솔, 큰 나무, 작은 나무의 布置[포치]된 位置[위치], 세째는 松林[송림]이 놓여 있는 環境[환경], 네째는 全松林[전송림]을 統一[통일]하는 어떤 原理[원리], 어린 것들이 어떤 松林[송림]의 美的價値 [미적 가치]를 決定[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釋王寺洞口[석왕사 동구]의 松種[송종]으로 말하면 優美典雅[우미 전아]한 赤松[적송]인데다가 老[노], 少[소], 大[대], 小[소]의 布置[포치]와 雪峯山[설봉산]의 雄大[웅대] 한 背景[배경]으로 하고 高低[고저]와 句配 [구배]의 曲線[곡선]이 不險不夷[불험불이]한 丘陵[ 구릉]의 形勢[형세]가 다 그 宜[의]를 得[득]하였고 또 물 맑고 소리 맑고 屈曲[굴곡]과 形狀[형상] 아름다운 一條溪流 [일 조계류]가 全幅[전폭]의 風景[풍경]을 統一[통일] 하여 주었고 이 溪流 [계류]를 沿[연]하여 내인 道路[도로]가 또 우리에게 琓賞 [완상]하는 變化 [변화] 많은 位置[위치]를 提供[제공]하는 外[외]에 蜿 蜒[완연]한 道路自身 [도로 자신]이 自然[자연]의 美觀[미관]을 돕는 一要素 [일요소]를 成[성]하였다. 斷俗門[단속문], 登岸閣[등안각], 不二門[불이문], 曹溪門等[조계문 등]의 길목목이 세운 優雅[우아]한 古代 建築[고대건축]이 自然[자연]의 美 [미]에다 人類[인류]의 審美感[ 심미감]의 高尙[고상]한 一校正[일교정], 一補添[일보첨]을 加[가]한 것은 勿論[물론]이다.

나는 陰曆[음력] 九月九日[구월구일] 夜[야]에 上弦月下[상현월하]에 斷俗門[단속문] 안 시내가에 兀然[올연]히 홀로 섰다. 얼음같이 찬 大氣[대기]는 엉키어서 움직이지 아니하건마는 달빛과 별빛을 이고 선 老松[노송] 의 가지 끝에서는 그침 없는 읖조림이 무슨 森嚴[삼엄]인고, 이 무슨 靜寂 [정적]인고, 돌 위로 어둠 속으로 굴러오는 시냇물 소리조차도 멀고 깊은 神秘[신비]의 나라에서 울려오는 듯 하다. 반쪽보다 약간 더 큰 달은 垂楊 [수양]버들 모양으로 가지 축축 늘어진 키 큰 늙은 소나무 위에 徘徊[배회] 한다. 수풀 속으로서는 송진 향기가 있는 듯 마는 듯 떠나온다.

平生[평생]에 솔이 좋아 곧음도 좋거니와 굽음도 멋있거니 애솔인들 궂으랴만 늙도록 더 아름다움을 못내 부러워하노라.

소나무는 늙을수록 몸이 붉어지고 가지가 축축 늘어지고 살이 윤택해지고 俗態[속태]를 벗어 仙風[선풍]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世界[세계]에 朝鮮 [조선] 사람처럼 솔을 愛好[애호]하는 이가 있으랴. 소나무 집에 소나무 때고 살다가 소나무 棺[관]에 담겨 솔밭 속에 묻히는 이는 朝鮮人[조선인] 밖에 없을 것이다. 소나무의 脫俗[탈속]하고 崇高[숭고]하고 閑雅[한아]한 氣象[기상]을 사랑함이다.

별과 달솔과 나와 울어예는 저 물소리 향기론 찬바람이 더운 볼을 스쳐가네 수풀이 어둡사옴이 더욱 거룩하여라.

××× 어렴픗 아는 듯도 채 모르는 宇宙神秘[우주신비] 耿耿[경경]한 작은 魂[혼]이 그 앞에 섰사오니 이 밤을 어이 잘까나 잠 못일까 하노라.

5[편집]

하루 이틀 대단히 춥고는 날은 다시 따뜻하여져서 키 작은 빨강 잠자리와 동글한 무당벌레들이 松林[송림] 사이 日光[일광]의 바다에 數[수]없이 오르락 내리락하고 논다. 더구나 夕陽[석양]의 光線[광선]이 살같이 쑥쑥 뻗 을 때면 진실로 無窮無盡[무궁무진]한 微細[미세]한 生物 [생물]들이 남은 日光[일광]과 남은 生命[생명]을 아끼는 듯이 아지랑이 모양으로 떠 논다.

어이 그리 많은 生命[생명]인고!

釋王寺[석왕사]는 海拔[해발]로는 그리 높은 곳도 되지 못하는 모양이언마는 地形[지형]에 因[인]함인지 空氣[공기]의 淸澄[청징]하고 日光[일광]의 純强[순강]함이 서울의 比[비]가 아니다. 옷을 벗고 살을 日光[일광]에 直接[직접] 내대어 보라. 마치 數[수]없는 銳利[예리]한 針[침]으로 폭폭폭 皮膚面[피부면]을 찌르는 듯이 刺戟[자극]이 强[강]하다. 煤煙[매연]과 塵埃[진애]에 紫外線[자외선] 다 빼앗긴 뜨뜻미지근한 日光[일광]과는 同一 [동일]의 語[어]가 아니다.

적이 몸도 休養[휴양]이 되었기로 하루는 人力車[인력거]를 얻어타고 旅 舘村[여관촌]에서 五里[오리]나 되는 절 구경을 가기로 하였다. 내 마음에는 절 구경보다도 절에 가는 途中[도중]의 風景[풍경] 구경이 主[주]다. 하늘에는 一點雲[일점운] 없고 또 一點風[일점풍] 없다. 봄같이 따뜻한 날이다.

松林[송림] 속으로 가느라면 때때로 雪峰山[설봉산]의 錦繡屛[금수병]의 바로 中央上部 [중앙상부]가 눈에 뜨인다. 내가 처음 오던 날 볼 때보다도 더욱 빛이 날고 峰頭[봉두]에는 完全[완전]히 落葉[낙엽]이 되어 앙상하게 된 나무들도 멀리 바라보인다. 그러나 釋王寺[석왕사]의 丹楓[단풍]을 雪峰山[설봉산]의 錦繡屛[금수병]만에 限[한]할 것은 아니다. 溪谷[계곡]에 沿 [연]한 松林[송림] 밑에 生長[생장]할 여러 가지 灌木[관목]들도 雪峰山[설 봉산]에 五色[오색]의 玲瓏[영롱]할 때가 되면 저마다 제 빛을 들고 나선다. 一年生[일년생] 풀잎사귀까지라도 色彩[색채]의 絢爛[현란]은 정말 丹楓[단풍]만 못할지언정 누르스레, 붉으스레, 제 힘껏은 차리고 나서서 이 철의 큰 裝飾[장식]에 제 分[분]대로는 寄與[기여]를 하는 것이다. 푸른 솔잎, 朱紅色[주홍색] 솔나무, 그 밑에 울긋불긋한 나무잎, 풀잎, 이것도 決 [결]코 버릴 景致[경치]는 아니다. 만일 얼음같이 차고 水晶[수정] 같이 맑은 寒溪[한계]의 고인 물굽이에 이끼 덮인 틈에 이름도 없는 한두 포기 누른 풀, 붉은 풀이 비치인 것을 본다 하면 그 一幅[일폭]의 小品畵 [소품화] 가 決[결]코 어느 滿山紅綠[만산홍록]에 지지 아니할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丹楓[단풍] 구경 갔던 길에 丹楓[단풍] 가지를 꺾어 오거니와 마음 있는 이는 그것이 부질없음을 깨달을 것이다. 丹楓[단풍]의 美 [미]는 여러 가지 나무의 저마다의 色彩[색채]가 가지각색 모양으로 配合 [배합]된 綜合[종합]에 있는 것이요, 決[결]코 어느 한 나무, 어느 한 가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보이던 風景[풍경] 속에서라도 그 中[중]에서 어느 것 하나만을 집어내면 오직 平凡[평범]한 一草[일초], 一木[일목], 一石[일석], 一水[일수]에 不過[불과]하는 것이니 美[미]의 本質 [본질]은 複雜[복잡]의 調和[조화]에 있는 것이다. 저 山[산]의 傾斜[경사]와 岩石[암석]과 溪流 [계류]의 形狀[형상]과 松林[송림]과, 그 밑에 生長 [생장]하는 草木[초목]들과, 그것들의 各種[각종] 色彩[색채] — 이런 것이 모두 범연한 布置[포치]가 아니요, 實[실]로 생각 깊은 「뎃상」으로 되어서 우리에게 美感[미감]을 주는 것이다. 釋王寺[석왕사]의 溪谷美[계곡미]는 奇[기]한 데도 있지 아니하고 壯[장]한 데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平凡 [평범]의 調和[조화]에 있다. 아무 神奇[신기]한 것, 絶妙[절묘]한 것도 없건마는 그 地形[지형], 林相[임상], 溪谷[계곡], 水石[수석], 道路[도로], 明暗[명암]이 수수하게 그러면서도 俗[속]되지 않아서 여러 번 볼수록 淡 [담]한 情[정]이 듦을 깨닫는다.

정작 釋王寺[석왕사]라는 절에 이르러서는 내 눈에 드는 것은 그 陽明[양 명]한 집터와 建築物 [건축물]로의 龍飛樓[용비루]와 方花即果[방화 즉과]라는 無名氏[무명씨]의 額[액]뿐이요, 싫은 것을 주워섬기라면 限[한]이 없거니와 그 中[중]에 最[최]되는 것은 그 좋은 位置[위치]와 建物 [건물]이 主人[주인]을 못 만남이다.

(一九二八年 十月二十七日 ~ 三十一日[일구이팔년 시월 이십칠일~삼십일일] 《東亞日報[동아일보]》所載[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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