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아의 추억
鳳兒[봉아]야, 네가 이 世上[세상]을 떠난지 벌써 나흘이 지났구나. 문소리가 날 때마다 혹시나 네가 들어 오는가 하고 고개를 돌린다. 한길 가에서 지나가는 전차와 자동차를 보고 섰는가, 장난감 가게에서 갖고 싶은 장난감을 못 사서 시무룩하고 섰는가, 대문간에 동네 아이들을 모아 가지고 딱지치기를 하는가. 잠깐 어디 나가 있다가 금시에 「엄마, 엄마, 엄마」하고 뛰어 들어올 것만 같구나.
그렇지만, 아아, 나는 분명히 네 몸에 수의를 입히고, 네 말 없는 입에 쌀 세 알을 물리고 너를 솔나무 널로 짠 관에 넣고, 그 위에 「愛兒李鳳根[애 아이봉근] 安息之處[안식지처]」라는 명정을 내 손으로 써서 분명히 미아리 묘지에 내다가 묻었다. 횡대를 덮고 회 섞은 흙을 덮고 다지고, 그리고 봉분을 이루고 들어 왔으니 네가 「아빠 아빠 아빠」하고 뛰어 들어 올 리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
그러하건마는, 내 아들아, 너를 잃은 슬픔으로 어리석어진 이 아비의 마음에는 아직도 네가 영원히 갔다고는 믿어지지를 아니하는구나. 금시에 대문 밖에서 혹은 아랫방에나 혹은 건넌방에서나 또 혹은 뒤꼍에서나 「아빠 아빠, 하나님이 어디 계셔 응, 아빠?」하고 성큼성큼 뛰어 나와서 내 어깨에 매어달릴 것만 같구나.
보름 이월 이십일(一九三四年[일구삼사년]) 오후 여섯 시 삼십분에 네가 네가 떠난지 벌써 보름이 되었다. 아침에 상머리에너 하나가 없는 것을 생각하고 아빠는 눈물이 쏟아졌다. 어제 저녁때에 나는 네가 늘 가던 장난감 가게에 들러서, 네가 그 언젠가 내 손을 끌고 가서,
『아빠, 이게 피아노야. 자 보아, 피아노 소리가 나지?』
하고 키를 두드리며 그 피아노를 사 가지고 와서 네 동생을 주었다. 보름 전만 같으면 내가 두 개를 사 가지고 가서 너희 형제를 노나주었을 것인데, 그러하면 잘 때에 네가 그 피아노를 머리맡에 놓고 좋아하였을 것인데. 네 가 그 장난감 피아노가다가 보였으랴. 엄마와 아빠는 그 피아노를 네가 생전에 즐겨 부르던 「예 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인데」를 치고, 「너 왔니? 반갑다. 재미있게 놀아 보세」를 치고, 「아리랑」을 치고 울었다.
『이 슬픔을 품고 어떻게 살지?』
『동성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무도 낯을 아는 이가 없으니 외로운 혼이 어떻게 견딜까.』
『내가 죽어서 봉근이의 동무가 되기만 한다면 곧 죽기도 하련하는 ──.』
『어젯밤 꿈에는 봉근이가 나를 따라다니면서 운동회 구경을 가자고 하던데.』
엄마는 이런 소리를 중얼거리면서 울고 있다.
유치원 서 은숙 선생이 내게 전화를 거시고 금년도 수업 증서 받는 네 반 기념 사진에 네 사진 하나를 넣어 준다 하시고, 또 네 수업 증서도 주신다고 하기로 나는, 고맙습니다 하였다. 스무 이튿날 수업 증서 수여식에는 너는 없는데 아빠만 혼자 가서 네 대신 증서를 받아 오련다. 아가, 이런 슬픈 일도 있느냐.
엄마와 네 동생과 함께 네 산소를 찾고 네가 좋아하던 딸기 아홉 개를 나무 상자에 담아서 네 무덤 앞에 놓았다. 아직도 네가 죽은 것 같지 아니하여 그 딸기를 가지고 가면 네가 기쁘게 먹을 것만 같았다. 네 어린 동생은 네 무덤을 안으며,
『언니, 나 왔소, 영근이 왔소. 딸기 먹어.』
하였다. 엄마는 네 무덤의 흙을 손으로 파고 울었다. 나는 네 어린 동생을 안고 느껴 울었다.
밤에 폭풍우가 일어났다.
『이 비 오고 바람 부는데, 봉근아, 어디를 나갔느냐. 감기 들겠다.』
하고 엄마는 울었다.
二十二日[이십이일] 악아, 오늘이 삼월 이십 이일이다. 네가 간 것이 이월 이십 이일이 아니냐. 네 간지 벌써 한 달이 되었구나.
오늘 아빠는 네가 다니던 이화 유치원에 가서 네 졸업 증서와 너도 한데 박힌 졸업 기념 사진과, 또 유치원에서 졸업하는 아기들에게 선물로 주는 공책 하나를 받아 가지고 왔다. 네가 좋아하던 서 은숙 선생이 너를 잃은 엄마와 아빠의 마음에 위로를 주실 양으로 이런 것을 주신 것이언마는 악아, 이것을 갖다 줄 네가 없으니 이것이 도리어 눈물이 되는구나. 만일 이 것을 네 엄마한테 보이면 엄마는 필시 이것들을 안고 통곡할 것이다. 나는 이 세 가지 기념물을 앞에 놓고 어찌할까 하고 눈물을 머금는다.
네 졸업장과 사진과 선물을 가지고 네 무덤을 찾아 가겠 지마는 가면 무엇 하느냐 엄마와 아빠가 한바탕 . 울 따름이지 가버린 네가 돌아오지를 아니하니 무엇하랴.
오늘 네 무덤에 세울 비를 마추었다. 피란 관 포청색, 높이가 두 자 가웃, 넓이가 한 자, 두께가 네 치, 화강석으로 대를 받치고 그 앞에 네 이름을 쓰고 뒤에 내가 지은 비문을 새길란다. 내가 글을 배워서 이런 것을 쓰게 될 줄을 어찌 알았겠느냐.
그러나 악아, 사람이란 아무 때라도 한 번은 죽는 것, 세상이란 더구나 조선의 세상이란 그리 살기 좋은 곳도 못 되는 것. 차라리 네가 엄마 아빠의 사랑과 슬픔 속에 간 것이 너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나 생각할까. 오직 뒤에 남은 엄마와 아빠의 가슴 속에 남은 그리움과 애처로움과 원통한 자국을 악아, 너삼아 보고 살까.
꿈 꿈 이야기라고 웃지 말아. 인제는 꿈에 밖에 너를 볼 길이 없지 아니하냐.
네가 왔다 간 것도 꿈이 아닌가. 내가 지금 꿈 이야기를 쓰는 것도 꿈이 아닌가. 누가 아느냐.
꿈에 내가 잠을 깨니 무릎 위에 네가 자고 있었다. 네 생전에 여러 번 그러하던 모양으로 네 얼굴이 어떻게 아름답고 빛나는지,
『이게 봉근인가. 하늘에 간 봉근이가 어떻게! 이게 영근인가.』
하고 나는 곁을 돌아 보았다. 영근이는 제자리에서 자고 있었다.
열린 들창인 듯한 곳으로서는 꽃잎이 함박눈과 같이 펄펄 날아 들어 와서 네 얼굴과 가슴 위에 앉았다.
『아아, 빛나고 아름다운 내 아들!』
하고 나는 기뻐하면서도 네 모양이 스러질까 싶어서 스러지기 전에 너를 그렇게도 보고 싶어하는 엄마에게 한 번 보이고 싶어서 나는 자는 엄마를 향 하여 들릭락말락한 소리로,
『여보, 봉근이 여기 있소. 봉근이 여기 있소.』
하고 불렀다.
그러나 엄마가 잠을 깨어,
『어디?』
하고 고개를 들 때에는 네 모양은 스르르 스러져버리고 꽃보라만 펄펄 창으로 날아 들어 왔다.
악아 네가 편안히 쉬고, 네 몸을 향하여 처녀가 꽃을 뿌려서 공양한다는 것을 아빠에게 알린 것이냐. 아이 고마운 꿈, 아름다운 꿈, 슬픈 꿈이로구나.
엄마의 슬픔 너를 잃은 엄마의 슬픔은 아빠보다 여러 갑절 더한 모양이다. 엄마는,
『봉근아, 용서해라.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라.』
하고 네 생각을 하고는 통곡하고 네 무덤을 안고는 통곡한다. 엄마는 네 생전에 너를 때리고, 너를 구박하고 한 것을 아프게 후회하는 모양이다. 그리 고 너를 다치던 집에 데리고 간 것도 엄마는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쓰꼬시 다녀서 아빠 계신 호텔로 가자고 그처럼 조르는 것을 내가 공연히 그 집에를 데리고 가서…….』
이렇게 한탄하고 운다.
『그것이 그렇게 몹시 다친 것을 곧 병원으로 끌고 가서 소독을 해 줄 것을…….』
하는 것도 엄마의 후회가 된다.
엄마는 너를 살리려고 세 번이나 피를 뽑아서 네 혈관에 넣었다. 넷째번 수혈의 반응에 못견디어서 너는 경련을 일으키고 세 시간이 못하여서 죽었 다고 엄마의 피가 너를 죽였다고 그것도 후회를 하고 운다.
『여덟 살까지 길러서 학교에 보내려다가 죽였고나.』
하고 엄마는 암만 울어도 단념이 못되는 모양이다.
『그 어린것이 어떻게 혼자 댕기나. 종로에도 혼자 나가지 못하던 것이 어 떻게 혼자 댕기나.』
하고 네가 외로울 것을 생각하고는 운다.
『내가 따라 가랴 내가, 따라 가서 동무해 주랴.』
하고는 운다.
눈 오고 비 오는 어느 날 밤에 엄마는 문득문을 열어젖뜨리며,
『계순아, 큰애기 불러 오너라. 비 오고 바람 부는데 감기 들겠다.』
하고 울었다.
대문을 누가 흔들면,
『봉근이냐?』
하고 엄마는 문을 열었다. 네가 어디 나가서 놀다가 「엄마!」하고 뛰어 들어올 것만 같은 것이다.
『아이구 아까워라.』
하고 엄마는 네가 세상을 떠난 것을 무궁무진 아깝게 여긴다.
악아, 봉근아, 너는 죽은 뒤에 생명이 있느냐. 너는 엄마가 걱정하는 것같 이,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곳에서 외로이 헤맨 것이 아니라고, 죽은 뒤는 편안하고 광명하고 자유롭고 부족함이 없다고 꿈 속에라도 엄마께 와서 일러라 떼 악아, 네 무덤에 떼를 입혔다. 이 떼가 삼년만 되면 어여쁜 금잔디가 된다 고 한다. 내외 사성을 쌓아서 바람이 없고, 남향이 되어서 볕이 잘 드니, 네가 거기 나와서 딱지를 치고 놀든지, 네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네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부르고, 네가 그렇게도 흥미 있어하던 하늘을 바라보고 놀겠느냐. 이때와 이 사정이 네 몸을 비와 눈과 추위와 더위에서 잘 보호 하여서 네가 아주 편안하게 영원한 잠을 자겠느냐.
나던 기쁨 아빠가 엄마와 혼인한 지 오년이 넘도록 엄마는 성태를 못하였다. 그래서 엄마는 늘 슬퍼하고 적막해하였다.
그러다가 엄마가 서른 살, 아빠가 서른 다섯 살 되던 해에 엄마가 잉태한 것이 발견되었다. 그때의 엄마와 아빠의 기쁨이 얼마나 컸던고!
『이게 정말일까?』
하는 말을 엄마는 나를 보면 날마다 뇌었다. 혹시 아이가 아니면 어찌하나 하여서 네가 뱃속에서 놀기를 시작할 때의 엄마와 아빠와의 기쁨은 얼마나 하였던고!
『펄떡펄떡 놀아요.』
하고 심한 입덧으로 귀신이 다 된 네 엄마는 수없이 이 말을 하고는 기뻐하였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여 보았다. 내가 이 죄 많은 몸이 새로 오시는 손님을 온전히 받을 자격이 있는가 하고. 좋은 아들이나 딸을 점지받을 자격이 있는가 하고. 나같은 죄 많은 사람은 차라리 어린 새생명을 청하지 아니함이 옳지나 아니할까 하고. 비록 내가 금생에 죄가 많다 하더라도, 내가 알기에는 내 조부와 아버지와 어머니가 못나시기는 하셨을망정 별로 남에게 악한 일 한 일이 없으시니 그 덕으로나 귀한 새 손님을 내 깨끗지 못한 집에 받아 들일 수가 있을까 하고.
네가 세상에 나올 날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엄마와 아빠와의 기쁨과 황송함은 더하였다 그때에 나마저. 병들어 누웠으니 엄마의 심정이야 그 어떠하였으리. 그러나 내가 비록 죽더라도 새로 나는 아기만 잘 자라면 엄마에게는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될 것이니 내가 죽더라도 마음이 가뿐하다고 생각하였다.
하늘에서 새로 내려 오시는 새 손님을 맞기 위하여, 네가 미국 아저씨라는 크롤리씨는 몸소 감독하여 온 집을 새로 도배를 하고, 또 아빠의 정성으로 뜰과 부엌과에 깨끗한 석비레를 깔고, 또 엄마는 새 아기가 입을 옷과 포대 기와 기저귀와 처네와 베개를 장만하고, 큰 기쁨의 날을 오늘인가 내일인가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월에도 삼십일이자 음력으로도 사월 삼십일 아침 일곱 시 반, 창경원과 성균관 수풀에서 꾀꼬리가 수없이 울던 아침볕에 네가 이 세상에 나왔다.
커다랗고 깨끗한 아들인 네가 처음으로 내 집에 와서 힘차게 첫 울음을 울었다.
거의 스물 네 시간이나 무서운 난산의 진통을 겪은 엄마는 네 울음 소리를 들을 때 벌써 모든 괴로움을 다 잊어 버리고 전신에 넘치는 것이 오직 기쁨이었다. 병석에 누웠던 몸으로서 너를 기다리노라고 더할 수 없는 긴장과 초조로 밤을 새운 나는 네가 옴에 모든 병이 다 스러진 것과 같은 기쁨으로 네 외가와 친한 이들에게 네가 왔다는 전화를 걸고 일변 네 태를 꼭 내 손으로 태웠다. 엄마는 너를 보고 어떻게나 기쁨으로 흥분하였던지, 너만 보고 너만 만지노라고 사흘 동안이나 도무지 잠을 자지 못하였다.
나도태를 사르고 기별할 데 기별을 다 하고 나서는, 내 방에 와서 병석에 누워 피곤한 몸을 쉬이려 하였다. 그 소중하고 그 사랑스럽고 그 바라는 것이, 큰 손님인데 엄마 곁에 누워서 쌕쌕 자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이 고마우시고, 조상님이 고마우시고, 내게 이러한 큰 복이 내린 것이 황송스러워서 못견디었다.
네가 첫 오줌을 누고 첫 똥을 눌 때에, 그 촉촉하게 젖은 기저귀가 어떻게 나 반갑고 소중하였는가는 오직 아는 이만이 알 것이다.
나는 어디다가 어떻게 감사할 바를 몰랐다. 나는 예수 교회 사람도 아니요 불교 사람도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아기가 나면 산신께 감사하는 재물을 드렸다. 예수교인은 하나님께, 불교도는 부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올린다.
그러나 나는 신앙을 잃은 사람으로 어디다가 감사할 바를 몰라서 다만,
『하나님, 하나님!』
하고 불렀을 뿐이다.
네가 온 날 내 병세는 악화하여서 의사에게 절대 안정의 명령을 받았다.
나는 마음대로 산실에 가서 네 얼굴을 보는 자유를 잃었다. 나는 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간절하건마는 너를 내 방에 안아 오기를 엄금하였다. 부정한 병인의 곁에 너를 오게 하기를 나는 절대로 원치 아니하였다. 나는 다시 일어나지 못할는지 모를이만큼 내 병은 침중하였다. 그러나 생전에 네 얼굴을 한번 다시 못보아도 좋으니, 너를 내 곁에 데려 오는 것은 절대로 참을 수가 없었다.
네가 아직 나기 전에 나는 너를 위하여 여러 가지로 이름을 준비해 두었었 으나 네가 처음 날 때에 두 눈초리가 우으로 올라 갔기로 새 봉자를 네 이름으로 지은 것이다. 그 뒤에 네가 날 때에 아침 햇볕이 명랑하던 것을 생 각하여 「日光[일광]」이라는 글자를 주었고, 네가 잉태되던 해에 뜰에 오동나무 하나가 났기로, 네 당호를 梧軒[오헌]이라고 지었다. 그러나 악아, 너는 아빠의 선물인 이 당호를 써 보지도 못하고 갔구나.
믿고 따르던 鳳根[봉근]이
『하나님이 무엇이야, 응 아빠?』
『하나님이 저 하늘에 있어, 응, 아빠?』
하고 그렇게도 알고 싶어하던 네 의문을 인제는 아비인 나보다도 네가 먼저 알았을 것 같다.
『하나님이 있기는 있어?』
하고 네가 가장 근본적으로 파물을 때에 나는,
『오, 하나님이 계시기는 계시다.』
까지는 내가 믿는 대로 확실히 대답하였으나,
『하나님이 어디 계셔?』
하고 한걸음 내켜 물을 때에는 나는,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다. 너도 마음이 착할 때에는 네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
이런 대답 밖에 못하였다. 鳳兒[봉아]야, 그럴 수밖에 있느냐, 내 지식 그 밖에 없었으니, 봉아 야 너는 鳳兒[ ], 이 아비에게 여러 가지 일을 물었다. 네가 보기에 이 아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또 거짓말 없이 믿을 만한 사람으로 알았었다. 그뿐 아니라 너는 이 아비를 퍽 착한 사람으로 믿었다. 이런 것은 다 너를 잃고 애통하는 네 엄마의 눈물 속에서 하는 말에서 들었다.
그러나 내 아들아, 나도 그렇게 무엇을 아는 사람도 못되고, 거짓이 없어 믿을 만한 사람도 못되고, 더구나 착한 사람도 못된다. 내가 성을 내어서 너를 때린 때가 여러 번이 아니냐. 네가 보는 앞에서 내가 추태를 보인 때도 여러 번이 아니냐. 그러한 때에 네가 슬프게 운 것은 잘못해서는 아니 될 내가 잘못한 것을 슬퍼하였음인줄 믿는다.
너는 참으로 나를 믿고 따르고 사랑하였다. 너는 내 말이면 믿고, 내 약속 이면 믿었다. 너는 내가 날마다 저녁때에 일터에서 돌아 온 때에 억제할 수 없이 반가움을 보였지마는, 네가 속으로는 반가우면서도 겉으로 발표하지 아니한 반가움과 내게 대한 사랑은 그보다도 몇 갑절 더 큰 것을 믿는다.
너는 간사스러운 애는 아니요 대범한 애였다. 대범하기 때문에 내가 발표하는 네게 대한 사랑의 표현은 물 위에 나타난 빙산 꼴밖에 안되는 것을 믿는다.
鳳根[봉근]아, 이 아비는 열 한 살에 부모를 여의고 이래, 사십여 년 간에 형제·자매·자녀를 물론하고 도무지 육친의 정을 모르고 살다가 너를 본 지 육 년 팔 개월 동안에 비로소 혈족에 관한 애정을 알았다. 게다가 네가 하도 나를 사랑하고 따르고, 또 모든 것에 장래성이 있기 때문에 나는 사내라 비록 발표는 별로 않더라도 너를 내 눈으로 지팡이로 친구로 믿고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내 몸이 깨끗지 못함을 두려워 일찍 네 입술을 대어 본 일이 없었고, 너를 안을 때에는 반드시 고개를 돌리고야 숨을 쉬었다. 네가 마지막 숨을 쉬기 몇 시간 전에 나는 네가 아주 나를 떠나려 하는 줄을 깨닫고 비로소 네 입술에 입을 대이고,
『아빠다!』
하였다. 너는 그때야 내가 아빠인 것을 알아 들어서(눈을 둘 다 싸매어서 보지는 못하기 때문에),
『응.』
하고 대답 한 마디를 하여 주었다.
너는 나를 찾았다고 한다. 내가 잠시 병원을 떠나서 집에 다니러 갔을 때에 너는 「아빠 아빠」를 부르고, 왜 한번 더 나를 안보고 갔느냐고 울더란 말을 네 엄마한테 들었다.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내가 네 병상으로 달려 와서 네 불같이 뜨거운 손을 잡고,
『봉근아, 아빠 왔다.』
할 때에 너는 손을 들어서 네 눈을 싸맨 붕대를 끄르려 하였다. 사랑하는 아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보려고.
『앗아라, 붕대는 못끄른다.』
하는 내 말을 믿고 너는 두 손으로 내 두 손을 자세히 만져 보고 그리고는 내 입과 코와 눈과 귀와 머리와 목을 다 떨리는 손으로 만져 보고 그리고는 네가,
『허.』
하고 길게 한숨을 지었다. 그때 네 눈에서는 응당 눈물이 났을 것이다. 그 눈물은 네 두 눈을 싸맨 가제가 다 빨아 먹었을 것이다. 의식의 마지막 순간까지 너는 아빠를 잊지 못하고 사랑하였구나. 네가 세상에 대한 의식을 버리고 영원한 나라의 의식에 들어 가는 문지방에서 너는 반드시 이 아비를 생각하고 나를 불렀을 것을 믿는다.
『아빠, 엄마랑 아주머니랑 다 두고 아빠하고만 가.』
하던 네 마지막 말이 그 뜻이 아니냐.
나는 너 밖에도 아들도 있고 딸들도 있고, 세상 여러 가지 마음 끌리는 친구도 있고, 일도 있다. 그러나 육년 팔 개월의 짧은 일생을 가진 너로서는 마음을 잡아 매고 사랑을 온통으로 쏟은 곳이 엄마와 아빠뿐이 아니냐.
그런데 너는 갔구나, 봉근아!
네가 살았느냐 너는 우리 집에서 가장 귀한 손님이었다. 네가 육년 팔 개월 유숙하고 떠나 가는 동안에 우리는 네게서 가장 높은 기쁨을 받았다. 육년 팔 개월 아니라, 육만 팔천년을 유숙시키고 싶은 반가운 손님이었다.
그러나 너는 무슨 인연으로 육 년 팔 개월만, 돈과 덕이 다 가난한 우리 집에서 유숙하고 갈 예정을 가졌던가. 엄마와 아빠가 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 숨을 쉬일 때까지 네가 우리 곁에 있기를 바란 것은 우리가 어리석음이었던가. 우리 욕심이 너무 외람된 것이었던가.
만일 네 우리 집을 떠나서 다른 더 좋은 집에 태어났든지, 또는 천당이란 곳이 있어서 거기를 갔다든지, 또 극락이란 곳이 있어서 거기를 갔다든지, 어디나 내 생명이 남아 있고 우리 집에 있을 때보다 행복된 줄만 믿을 수 있다하면 우리의 슬픔은 위로가 될 것이다. 다시 네가 네 동생으로 화하여 우리 집에 오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으나, 다시 생각해 보면 지나간 육년 팔 개월 동안에만 해도 어리석은 엄마와 아빠는 너를 때리고 슬프게 하고 병들게 한 것이 뼈가 저리게 후회가 나거든, 이미 간 너를 다시 내 집으로 불러 오기는 차마 못할 일인 것 같기도 하다.
너를 ── 그 어리고 약한 것을 때리던 내 손은 저주받을지어다. 너를 슬프게 하고 성나게 하는 말을 하던 내 입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내가 편하기를 위하여 때로 너를 귀찮게 생각하던 내 마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악아, 봉근아! 네 무덤을 안고 이 모든 네게 대한 잘못을 뉘우치고 통곡하면 그 소리가 네 귀에 울리느냐. 너는 과연 영혼이 있어서 하나님이라는 극히 완전하신 아빠의 옳은편에 앉았느냐. 만일 옳은 사람 ── 죄 없는 사람이 죽어서 하늘에 오른다 하면 너는 반드시 하늘에 올랐을 것을 믿는다. 네가 무슨 죄가 있느냐. 육년 팔 개월의 어린것, 재산이라고 크레용과 딱지와 핑구 밖에 없는 네게 무슨 죄가 있느냐. 하물며 개미 한 마리도 죽이기를 삼가던 착한 네야 무슨 죄가 있느냐. 예수의 말씀에도, 어린애같이 되지 아 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수는 없다고 하였으니, 너같이 착한 어린애야 하나님 나라에 아니 들어 가고 어디를 가겠느냐. 악아, 봉근아, 너는 진실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 있느냐.
나는 목사에게 묻고, 중에게 묻고, 만나는 사람마다 묻는다. 사람이란 죽은 뒤에 생명이 있느냐고.
구세군 사령관 조세프 바아 소장이 맾 참모 총장의 위문을 전하러 우리 집에 왔을 때에, 나의 슬픔을 위로할 길은 네가 죽은 뒤에도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죽기 전 내 집에서 하던 고생스러운 생활보다 행복된 생활을 한다는 믿음 하나뿐인데, 내게는 그 믿음이 없다고 말하였다. 그때에 바아 소장은 힘있게,
『사후에 생명은 있읍니다. 당신의 아들이 죽기 전전날 맾 참모 총장의 축복 기도를 받도록 한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의 집을 마련해 놓으신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힘있게 대답하였다. 악아, 과연 그러하냐.
그렇지 아니하면 무슨 인연으로 너라는 생명이 생겨서 우리와 같이 살다가 그 인연이 다 하매 구름 슬듯 안개 슬듯 네 생명이 스러지고 만 것이냐.
그리고 네 몸만이 무덤 속에서 흙과 물로 분해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냐. 악아, 만일 그렇다 하면 이 슬픔은 더욱 견디기가 어렵구나. 아빠도 죽고 엄마도 죽어서 다 너와 같이 구름 모양으로, 안개 모양으로 사라질 때까지 너를 잃은 슬픔은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하는구나.
만일 전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사람의 몸은 나고 죽고 하더라도 넋만은 전생후생의 여러 생을 ·도는 것이라고 하면 사랑하던 너를 오는 어느 생에 다시 만날 때가 있느냐. 악아, 그러하냐.
세상에 모든 종교와 철학과 전설이 왜 있는지를 인제 알았다. 사랑하던 이 가 죽은 때에 그 견딜 수 없는 슬픔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것이 모든 종교와 철학과 전설의 근본 문제인 줄을 인제 알았다. 그러나 악아, 나는 그중에 어떤 것을 믿어야 옳으냐. 어느 것이든지 네가 살아 있다고 내게 믿게 하는 것을 믿으려 한다.
나무리 九十里[구십리] 네가 나서 백 날이 되는 것을 다 보지 못하고 나는 병든 몸을 끌고 집을 떠났다. 나는 내가 집에 있는 것이 네게 해로울 것같이 생각되었던 까닭이다. 새로 오신 가장 귀한 손님인 네 곁에 병든 부정한 몸을 두는 것이 죄송하여서 그리한 것이다.
나는 황해도 안악 연등사의 남암에 방 하나를 집고 병든 몸이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암자에 모신 관세음보살에게 네가 병 없이 잘 자라기를 빌었다.
내 병이 더쳐서 잘 기동도 못하던 어떤 날 밤에, 그것은 시월도 지나고 늦은 가을이라기보다는 이른 겨울 어느 궂은비 오는 날 밤이 길어서였다. 네가 어떤 사람에게 업혀와서 내 품에 엎드릴 때에 내가 어떻게나 울었는가.
반갑기도 하지마는 그 어린것을 이렇게 끌고 네 엄마를 원망함이 더욱 컸었다. 나는 내 부정한 몸에 차마 너를 안 지는 못하고 너를 보고 울었다. 몸에 있는 눈물이 다 없어질 것같이 울었다.
너는 그때에 난 지 넉달도 다 못지난 핏덩어리였다. 서투른 사람이 우는 것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너도 울었다. 아아, 이 깊은 밤, 깊은 산중의 부자의 눈물의 대면 ── 악아, 그것은 내 일생에 가장 큰 비극 중에 하나였었다.
너는 그때에 기러기 소리 같은 소리를 지를 줄 알았다. 나중에 학이 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네가 그때에 지르던 소리가 학의 소리이던 것을 알았다.
그때에 네가 어떻게나 사랑스럽던지! 어떻게나 반갑던지! 네 눈이 어떻게 정기가 있고, 네 살이 어떻게나 맑고 희고, 네 소리가 어떻게나 맑고 힘차 던지! 네가 어떻게나 유쾌하게 방아를 찧던지!
나는 추위가 올 것을 염려하여 엄마를 재촉하여 사흘 만에 너를 쫓아 보내었다. 바람 없고 볕 따뜻하던 날, 네가 남암 주지 노장의 등에 업혀서 처네를 펄렁거리며 가물가물 저 동구로 나가는 것을 나는 아픈 몸을 끌고 산국 화 많이 핀 등성이에 나와 앉아서 얼마를 가슴 아프게 울고 보냈던고!
내게 『남은 목숨을 왼통 저 어린것에게 주시옵소서.』
하고 빌고 빌었던고.
그날 밤에 내가 비길 수 없는 슬픔으로 잠을 못이루고 누워 있을 때에 산 내에는 폭풍우와 뇌성·벽력성이 일어나고, 그것은 마침내 눈이 되어서 내 창을 쳤다. 악아, 우리 아기 잘 갔다. 따뜻하고 바람 없는 날 우리 아기 잘 갔다, 하고 나는 기쁨을 못이기어 네가 레코오드로 늘 듣던 「우리 애기 날」이라는 노래를 지어 찬미가 곡조에 맞추어서 혼자 불렀다.
『어젯날 좋은 날, 우리 애기 날 나무리 구십리 일점품 없네.
오늘 밤 수리재 눈보라 치나 우리 애기 한양에 편안히 쉬네.
우리 애기 가는 데 봄바람 불고 우리 애기 잠들면 물결도 자네 복 많은 우리 애기 가는 곳마다 세상에 기쁨과 화평을 주네.』
이 노래는 안기영 교수가 곡조를 지어 김현순양이 레코오드에 불어 넣은 것이다. 이 레코오드를 틀 때에는 너는,
『아빠, 이게 내 노래야.』
하고 기뻐하였다.
새집에서 그렇지마는 새집을 지으매 가장 잊고 싶은 것은, 금년 봄에 세상을 떠난 어린 아들 봉근이다. 그렇게 맑고 깨끗하고 재주 있고 명민하던 사람이 어째서 그렇게 일찍 갔을까. 비록 모든 것이 다 인연이라 하더라도 아깝기 그지없다. 그가 만일 다시 내 집에 태어난다면 나는 그를 전보다 좀 잘 사랑하고 인도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마는, 만일 하에 태어나서 無窮[무궁]한 極樂[극락]을 누리지 아니하고 다시 이 世上[세상]에 태어난다면 우리보다 좋은 父母[부모]에게 태어나기를 바란다.
鳳根[봉근]아, 나는 네가 죽지 아니한 것은 믿는다. 다만 네가 暫時[잠시] 썼던 軟弱[연약]하던 몸을 벗어 버리었을 뿐이요, 그 靈[영]은 無始[무시]에서 無終[무종]까지 살아 있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지나간 前生[전생]에 도 너는 나와, 或[혹]은 父子[부자]로, 或[혹]은 兄弟[형제]로, 或[혹]은 親友[친우]로 여러 번 만났던 것도 믿거니와, 今後[금후]에도 너와 나와는 世世生生[세세생생]에 여러 곳에서 여러 關係[관계]로 만날 줄을 믿는다.
前生[전생]에는 네가 내 恩人[은인]이었던 것만은 안다. 或[혹]은 네가 내 先生[ 선생]이었던 것도 안다. 네가 前生[전생]에 내게 미처 다 가르치지 못하고 간 人生[인생]의 理致[이치]를 너는 나에게 가르치고 갔다. 너는 나를 예수께 紹介[소개]하고 다음에는 佛陀[불타]께 紹介[소개]하였다. 네가 가 매 나는 詩篇[시편]을 읽고, 金剛經[금강경]과 圓覺經[원각경]과 華嚴經[화엄경]을 읽고, 사람이란 決[결]코 죽지 아니할 뿐더러 죽지 못한다는 것을 배우고, 因果[인과]의 原理[원리]를 깨닫고, 變[변]치 아니할 人生觀[인생관]을 얻었다. 그래서 네가 죽을 줄만 알고 슬퍼하던 마음을 돌려 너를 위 하여 비는 마음을 얻었다. 그립고 아쉬운 마음은 前[전]에나 只今[지금]에 나 다름이 없지마는, 너는 없어진 것이 아니요, 있다는 믿음을 나를 든든하게 한다.
네 얼굴이 그만큼 아름답고, 네 精神作用[정신작용]이 그처럼 銳敏[예민] 하고 네가 그처럼 物慾[물욕]에 恬淡[염담]하고, 또 慈悲心[자비심]이 있 고, 하나님·부처님 問題[문제]에 늘 興味[흥미]를 가지던 것을 보면, 네 바로 前生[전생]에는 必是[필시] 相當[상당]히 修養[수양]이 있던 사람인 것을 믿는다. 그러나 네게는 아직도 때때로 불 같은 嗔心[진심]이 있었다.
그것은 나와 共通[공통]하였다. 事實上[사실상] 너는 나와 共通[공통]한 點 [점]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너는 나를 따랐다. 나를 가장 사랑하였다.
이 世上[세상]에 누구보다도, 엄마보다도 나를 많이 따랐다. 그렇지마는 나는 네게다가 忍辱[인욕]의 본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너는 八年[팔년]의 一 生[일생]에 내가 성내는 것, 내가 어리석은 것을 數[수]없이 보고 갔다. 이 것이 甚[심]히 가슴이 아프다. 네 八年[팔년]의 一生[일생]에 적더라도 내 가 네게 忍辱[인욕] 하나만을 가르쳐 주었던들 너와 나와의 因緣[인연]은 더욱 깊었을 것을.
나는 不足[부족]하게나마 네게 거짓이 나쁜 것과 남에게 주라는 것만은 보여 주었다. 그러나 아아, 나는 先生[ 선생]으로 치면 네게는 極[극]히 나쁜 先生[ 선생]이었다.
네가 네 동무의 발길에 채워서 죽은 것이 亦是[역시] 네 業報[업보]인 것을 나는 안다. 네 前生[전생]에 본래 마음은 착하지마는 그 嗔心[진심] 하나를 조복 調伏[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마 어떤 機會[기회]에 어떤 사람을 발길로 차서 죽였던 모양이다. 그 業報[업보]를 네가 받은 것이다. 또 너를 발길로 찬 아이가 엄마와 아빠와의 친구의 아들이요, 兼[겸]해서 내가 이름을 지어 준 아이인 것을 보건댄, 본래 親[친]한 집 아이에다가 아마 무슨 機會[기회]에 네 발길에 채워서 죽을 때에 너를 원망하는 마음을 품었던 가 보다.
그러나 다행히 너는 二晝夜間[이주야간] 앓는 동안에 精神[정신] 맑아서나 無意識中[무의식중]에라도 너를 찬 아이를 원망한 일이 없었다. 오직 한번 네가 意識[의식] 없는 동안에 손으로 다친 데를 가리키며 누구의 묻는 말에 대답하는 모양으로,
『여기를 다쳤어요.』
하고 빙그레 웃은 일이 있었을 뿐이다. 그 語聲[어성]·顏色[안색]이 甚 [심]히 和平[화평]하였었다.
이것으로 보더라도 너는 分明[분명]히 발길로 너를 찬 아이에게 터럭끝만 한 원망도 품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나는 기쁘다. 너는 決 [결]코 怨魂[원혼]은 되지 아니하였다. 이 世上[세상]에 와서 도무지 아무러한 惡業[악업]도 지음이 없이 한 가지 業報[업보](그것은 避[피]할 수 없 는 것이었다)만을 벗어 놓고 깨끗이 떠나간 너는 반드시 前[전]보다 더한 아름다움과 재주와 착함과 健康[건강]과 上上[상상]의 壽命[수명]을 가지고, 우리 집보다도 나은 집에 태어나서 사람들의 사랑과 우러러 봄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을 믿는다. 그리고 만일 네가 다시 내 집에 태어나지 아니하더 라도 내 今生[금생]에 다시 무슨 關係[관계]로나 반갑게 만나서 네 前生[전 생]에 맺었던 짧은 因緣[인연]을 이을 것을 나는 믿는다. 그때에 나는 너보다도 四十餘歲[사십여세]나 더 나이 많으니까, 아마 父子[부자]의 關係[관계]가 아니면 師弟[사제]의 關係[관계]로밖에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때에 나는 네게 좋은 아버지나 스승이 되기 爲[위]하여 내 準備[준비]를 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나는 대단히 바쁘다. 내가 지금 여기 지어 놓은 새집이 다시 너를 맞을 집으로 믿고, 내가 보기를 좋아하는 이 넓은 하늘과 많은 별과 흔한 해와 달의 빛을 너도 좋아할 것이요, 내가 恒常[항상] 너를 생각하고 觀世音菩薩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 파 놓은 우물의 물을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는 나는 네게 이번에는 無上道[무상도]에 이르는 길을 指示[지 시]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다.
『鳳根[봉근] 아, 鳳根[봉근] 아,』
하고 나는 西大門町[서대문정] 舊宅[구택] 앞에서 日前 [일전] 어느 밤에 너를 불렀다.
鳳根[봉근] 아, 鳳根[봉근] 아, 鳳根[봉근]아. 너는 貪嗔癡[탐진치]를 끊고 佛菩薩[불보살]을 供養[공양]하여 菩薩行[보살행]을 닦아 無上道[무상도]를 일러 衆生[중생]을 건지는 이가 되어라. 生死間[생사간]에 輪廻[윤회]하기를 끊어라.
집에 네 어미가 있고, 네 兄[형]과 동생 둘이 있고, 또 한 동생을 지금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도 하여야 하려니와, 건지는 길을 찾지 아니할 수 없다. 나 自身 [자신]이 一切[일절] 智[지]와 善方便[선 방편]을 배우고 普賢行[보현행]을 닦아서 본이 되지 아니하면 그들을 이 生 [생]에서 만났던 보람이 없지 아니하냐. 나를 찾아 왔던 그들에게 아무것 도 대접함이 없지 아니하냐. 마치 너를 대접 못하고 보낸 모양으로, 나는 이것을 생각할 때에 甚[심]히 悚懼[송구]하다.
鳳兒祭文[봉아제문]
사랑하는 아들 鳳根[봉근]아! 네가 지난해 二月二十二日[이월이십이일] 午後[오후] 六時[육시], 이 世上[세상]을 떠난 지 바로 한 해가 되었다. 네가 숨을 끊은 날 아비 나는 네 무덤에 와서 네 넋을 부른다.
네 몸이 이미 썩었으니 그 몸에 네 넋이 없음을 알건마는, 네 간 곳을 모르니 네 무덤에서 밖에 어디서 부르냐.
너는 이제 어디 가 있느냐. 다른 별에 가서 하늘 사람으로 태어났는냐. 이 世上[세상]에서 다른 집에 아들로 태어났느냐.
아직도 갈 곳을 찾지 못하여 헤매느냐. 네 얼굴이 맑고 아름다왔고 네 마음이 맑고 어질었고, 네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보는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았으니, 네 필시 전생에 좋은 뿌리를 심은 줄을 믿으매, 내 아들로 태어났을 때보다 나은 곳에 간 줄은 믿는다마는, 내가 사십 평생에 가장 사랑하던 사람이요, 벗이던 너를 여의매 내 슬픔은 쉬일 길이 없다. 네가 내 무릎 위에 있는 동안 나는 네게 좋은 것을 하나도 못하여 주고 도리어 좋지 못한 꼴만 보였다. 내 어찌 네 마음을 늘 기쁘게 못하였던고? 내 어찌 네 눈에 거룩하고 높고 깨끗하고자비로운 사람이 되지 못하였던고? 네가 하나님을 묻고, 부처님을 묻고, 착한 사람은 어찌하여 착하며, 악한 사람은 어찌하여 악한가를 묻고, 사람이 죽으면 어찌 되는가를 물을 때에 네게 옳은 길로 대답할 지혜를 갖지 못하였던고? 그 많은 병을 앓고, 그 많은 매를 맞고, 그 많은 비위에 거슬림을 받게 하였던고?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너를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하였건마는, 너는 죽음의 방편으로 내게 바른 길을 지시하였다. 네가 가는 것을 보고 나는 내 지금까지의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고작 높은 바른 길을 찾기를 결심하였다. 나는 천만 번 나고 죽어 지옥아귀의 고생을 하더라도, 고작 높은 바른 길을 찾아, 잘못 사는 무리들을 건지리라는 큰 원을 세웠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너를 만날 것을 믿는다. 너와 함께 고작 높은 길을 닦아 괴로움에 허덕이는 모든 산 무리를 건지는 일을 함께할 날이 있을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내 슬픔을 죽인다. 악아, 너도 네 슬픔을 죽여라.
네 마음에 박힌 모든 번뇌를 다 불살라 버리고, 고작 높은 길을 닦기를 힘써라. 네 태어날 곳을 찾거든 돈 많은 집이나 세력 많은 집을 찾지 말고, 어진 마음을 가지고 어진 일을 하기를 힘쓰는 집을 찾아라.
사랑하는 내 아들아, 鳳根[봉근]아, 네가 일곱 해 동안 아비라고 부르던 좋지 못한 아비, 나는 오늘 네가 생전에 좋아하던 「미루꾸」와 과자와 사이다와 포도주를 가지고 네 무덤 앞에 와서 너를 부르니, 아아 鳳根[봉근] 아, 아비의 정성을 받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