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일과 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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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자 형제가 유업(遺業)을 분배하여주기를 청한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신 말씀에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의 위에 범관과 물건 나누는 자로 삼았느냐 하시고, 무리더러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대개 ‘사람의 사는 것이’ 그 가산이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고”[1]라고. 세상 사람들은 재산이 넉넉하여야 ‘사는 것’같고 ‘잘 사는 것’인 줄로 알았으나 예수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이 귀(句)를 읽을 때마다 연상하는 한 가정이 있다.

시내 모 신문배달부의 가정. 부부와 외아들의 3인 식구. 그 아들이 올봄에 양정고보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기까지 보통학교 이래의 10여년간 학비는 전혀 신문배달로써 지변(支辯)하여왔다. 단, 중등학교에 입학하였을 때에 한꺼번에 지출할 거액을 위하여 전자본인 천2백원짜리 기와집을 팔아 조그마한 초옥으로 바꾸어 들었고, 그 신문이 1개년 넘어 정간(停刊)되었을 동안 세 식구의 호구를 위하여 최후의 소유권인 초옥마저 팔아 2여원의 전세집에 들고자 문밖으로 나갔고, 이번에 전문학교 입학이 확정되면 전세도늘 찾아서 입학 수소갈 작전계획이 서 있다.

이 배달부는 아들에게 금연의 미풍을 가르치기 위하여 자기 스스로 평생의 애연을 단연히 끊어버렸고, 그 아들의 졸업기임박한 때에 그의 담임교사를 심방하고 “오늘날까지 어느날 중도에 폐학하고 말게 될는지 몰랐고 그때의 창피한 꼴이 두려워서 찾지도 못하였으나 이제는 학비부족으로 퇴학할 위험은 지나간 듯하여 지금 왔노라”고 4,5개년분의 가사를 한번에 심사(深謝)[2]하였다. 그 집에 싸움이 있다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공부를 과도히 하지 말라는 간섭이요, 그 집에 은휘(隱諱)[3]가 있다면 아버지 잠들기까지 아들도 자는 체하다가 밤 깊은 후에 일어나 등을 가리우고 공부하는 일이다.

얼마 전에 이 노배달부가 배달감독으로 승진하였다는 소식에 접하여 우리 기쁨이 컸던 동시에 마음 한구석의 불안도 제(除)[4]해졌다. 이렇게 가난하면서 이처럼 사는 것같이 사는 가정을 대경성 안에서 우리는 많이 보지 못하였다.

대개 사람이 사는 것이 그 가산이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가산이 빈핍하기보다 어느 정도로 넉넉한 것은 유조(有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는 일’과 가산은 별개의 문제이다. 거만(巨萬)[5]의 부를 옹(擁)한[6] 서울 장안의 신상(紳商)[7]으로도 집안식구의 시기와 분쟁과 허영으로 지리멸렬한 중에서 죽지 못해 연명하는 부자도 있고, 조석의 호구를 염려하는 빈한한 배달부로서도 그날그날을 ‘참으로 사는’가정이 있다. 이 위에 만일 공중의 까마귀와 들의 백합화를 먹이며 입히시는 이를 믿고, 오직 의와 그 나라를 구하는 신앙의 살림, 대망(待望)의 살림에 입각할진대 그는 ‘사는 일’의 완성이다.

[편집]

  1. 누가복음 12:14
  2. 깊이 사례함
  3. 꺼려 숨겨지는 것
  4. (불안을) 덜다
  5. 많은 수
  6. 감싸는
  7. 상류층에 속하는 점잖은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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