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주렸던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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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일][편집]

형과 서로 떠난지가 벌써 팔년이로구려. 그 금요일 밤에 Y목사 집에서 내가 그처럼 수치스러운 심문을 받을 때에 나를 가장 사랑하고 가장 믿어 주던 형은 동정이 그득한 눈으로 내게서 「아니요!」하는 힘있는 대답을 기다리신 줄을 내가 잘 알았소. 아마 그 자리에 모여 앉았던 사람들 중에는 형 한 사람을 제하고는 모두 내가 죄가 있기를 원하였겠지요. 그 김씨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렇게 순후한 Y목사까지도 꼭 내게 있기를 바랐고 「죽일 놈!」하고 속으로 나를 미워하였을 것이외다.

그러나 내가 마침내,

『여러분 나는 죄인이외다. 모든 허물이 다 내게 있소이다!』

하고 내 죄를 자백할 때에 지금까지 내가 애매한 줄만 믿고 있던 형이,

『에끼 ─ 네가 그런 추한 놈인 줄은 몰랐다.』

하고 발길로 나를 걷어찬형 의 심사를 나는 잘 알고 또 눈물이 흐르도록 고맙게 생각하오. 만일 나를 그처럼 깊이 사랑해 주지 아니하였던들 형이 그처럼 괴로와하고 성을 내었을 리가 없을 것이요.

그때에 목사는 가장 동정이 많은 낯으로 내 손목을 잡으며,

『박군 ─ 회개하시오, 회개하시오.』

하고 나를 위하여 기도까지 하여 주었지마는 그보다도 형의 발길로 얻어채인 것이 더욱 고마왔소이다.

나는 그 길로 그 누명을 뒤집어쓰고 동경을 떠났소이다. 떠나는 길에 한 번만 형을 보고 갈 양으로 몇 번이나 형의 집 앞에서 오락가락하였을까. 그러다가도 문소리가 나면 혹 형이 나오지나 아니하는가 하여 몇 번이나 몸을 숨겼을까. 늦은 가을 동경에 유명한 궂은 비가 부슬거리는 그 침침한 골목에서 살아서 영원히 이 세상을 하직하는 나의 행색이 얼마나 가련하였을까.

더우기 사랑하는 형네 남매와 이주년이나 친 동기와 다름없이 지내다가 마침내 내가 형과 맟 형의 매씨에게 대하여 감히 못할 더러운 죄를 지었다는 누명을 쓰고 제가 있던 집에 다시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어슬렁어슬렁 떠나 가는 내 심사가 얼마나 하였을까 ── 형아, 아마 형은 상상하리라고 믿는다. 또 만일 그때에 내가 정말 죄인이 아니요, 진실로 애매한 사람이었다 하면 더욱 나의 심사가 얼마나 하였을까. 형아, 이 말에 놀라지 말라.

二[이][편집]

내가 떠날 때에도 형의 얼굴도 보지 아니하고, 또 떠난 뒤에도 팔년 동안 형에게 아무 소식도 아니 보내다가 지금에 새삼스럽게 이 편지를 쓰는 것은 결코 팔년 전 묵은 일을 끄집어내어 구태 내가 애매했던 것을 변명하고 또 내가 한 조그마한 선(?)을 자랑하고자 함은 아니요. 내게는 그러한 생각은 털끝만치도 없었고, 나 혼자도 아무쪼록 그런 생각은 말아버리리라 하여 거의 다 잊어버리고 있었소이다.

그런데 이상한 사건이 하나 내게 생겨서 그 사건이 나로 하여금 나의 지난 일을 새롭게 생각하게 하고, 또 나로 하여금 형에게 이 편지를 쓰게 하는 것이외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하자면 자연 내게 관한 이야기도 아니 나올 수가 없으니까, 그때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가 어떠하였으며 또 사건이 있은 이래로 내가 지금까지에 어떠한 경로를 밟고 살아왔는지, 이런 것도 지금 이 사건을 이야기하는데 필요한 한도에서 될 수 있는 대로 그 사건에 관계하였던 여러 사람들의 명예에 관계하시 아니하리만큼 말하지 아니할 수 없소이다.

만일 이 말이 형에게 새로운 괴로움이 된다 하면 심히 미안한 일이니 용서 하시기를 바라오.

三[삼][편집]

내가 형의 매씨를 사랑하였던 것은 사실이지요. 그것은 형과 한집에 있게 된 때부터라 하기보다, 기실 서울서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지요. 형과 형의 매씨가 동경으로 떠난 뒤에 나는 마치 얼음 세계에 혼자만 내버림이 된 사람과 같아서 며칠 동안은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어찌할 줄을 몰랐소 이다. 형도 아시는 바에 내가 좀처럼 눈물을 흘린다든가, 남에게 약한 모양을 보이는 일이 없는 사람이지마는 그때에는 참으로 마치 젖 떨어진 어린아 이와 같은 약하고 의지할 데 없고 가엾음을 깨달았소이다.

진정으로 말하면, 이때에야 내가 비로소 매씨를 사랑한다 함을 깨달았고 매씨가 없이는 내가 살아갈 것 같지 아니함을 깨달았소이다. 내가 갑자기 법률을 배운다는 목적을 변하여 신학을 배우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외다.

『신학? 어찌해서?』

하고 형은 의심하시겠지요. 그것도 다 까닭이 있다오. 형과 매씨가 동경으로 떠나시느라고 나를 불러서 저녁을 먹을 때에 매씨가 나를 향하여,

『어째 목사가 되실 것 같아요 ─ 아참, 목사가 되시지요.』

하고 웃은 일이 있는 것을 아마 형께서는 잊으셨겠지마는 나는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었소이다. 아마 그 말을 한 당자인 매씨도 별로 깊은 생각이 없이 농담삼아 한 말이겠지요. 아마 내가 나이에 비겨서는 좀 묵직해 보이고 말이 적고 뚝하고 그래서 청년의 쾌활함이 없는 나의 기질을 비웃은 뜻인지 도 모르지요 ── 아마 그렇겠지요마는 그때의 나로는 매씨의 그 말 한마디로 일생의 목적을 정하지 아니치 못하였소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나는, 〈녜, 나의 사랑하는 이여! 나는 신학을 배워 일생에 당신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리다.〉 하고 속으로 결심하면서 가만히 매씨를 바라보았더니, 매씨도 나를 마주보아 주시기로 나는, 〈응, 내 결심이 감응이 되어 아마 그것에 찬성하는 뜻을 표하는 것이다.〉 이렇게만 작정하였었소이다.

내가 퍽 어리석은 녀석이지요 ── 무척 못난 녀석이지요. 그렇지마는 지금 와서 그런 소리를 하면 무엇하오?

아무려나 이 모양으로 신학을 공부하기로 하고 동경으로 갈 결심을 한 것 이요. 그러고 나서 내가 학비 주시는 은인을 움직이는 일이며 교회 여러 직 분들의 추천을 얻노라고 얼마나 고심을 하였는지 그것도 형께서는 짐작하시겠지요. 어쨌으나 이 모양으로 고심참담하게 경영한 결과로 동경에도 가게 되고, C학원 신학부에도 입학을 하게 되고, 그보다도 더욱 행복되게 형네와 함께 있게도 되었소이다. 아아 그렇게 된 때 ── 내가 학교에 입학까지 하여 놓고 형의 집으로 막 이사짐을 다 나르고 처음 형의 집에서 형과 매씨와 같이 식탁을 대할 때에 ── 아아 그때에 내가 얼마나 기뻤겠소? 얼마나 행복되었겠소? 이때로부터 나는 더운 날이나 추운 날이나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거의 십리나 되는 학교에 터덜터덜 걸어다니는 것도 힘드는 줄을 몰랐고 또 밤을 새워 공부하는 것도 고생되는 줄을 몰랐소이다. 그리고 어찌 하면 내가 눈과 같이 희고 깨끗한 사람이 되고 복음을 위하여 불덩어리와 같이 뜨거운 사람이 될까, 어찌하면 내가 복음을 위하여 구주 예수와 같이 십자가에 달려 죄 많은 세상을 위하여 사죄와 축복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피를 흘리는 사람이 될까. 그때에 매씨가 먼 빛에서라도 ── 극히 먼 빛에 서라도 내가 십자가에 달린 것을 보아만 주면 나의 일생의 소원은 달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지요.

나는 일찍 매씨를 내 것을 만들자 ── 내 아내를 삼자 ── 이러한 생각을 한 일은 없었소. 이런 말을 한대야 믿어 줄 사람이 없겠지요.

『에끼 너같이 더러운 놈이!』

하고 내 낯바닥에 침을 탁 뱉을 터이지요. 형은 안 그러시겠지요 ── 아마 형께서는 내 말을 믿으시겠지요. 그러나 안 믿기거든 안 믿으셔도 좋소.

나는 오직 매씨가 이 세상에 있다 하는 그의 존재의 의식만으로 기뻤고, 또 그가 나와 가까운 곳에 있다 하면 더욱 기뻤고, 만일 그의 가슴 속에 나라는 기억이 한 자리를 차지하리라 하면 더할 수 없이 기뻤지요. 그러나 나는 하나님 앞에서 장담하거니와 일찍 털끝만한 육욕을 가지고 매씨를 대하여 본 일이 없었소이다.

나는 그때에는 벌써 스물 넷이나 된 사람이 아니었소? 나는 부모 없이 자라난 불쌍한 아이라 일찌기 혼인도 할 새가 없었고 서울서 중학교에 다닐 때에도 남들은 계집애들을 따라도 다니고 딸려도 다녔지마는, 나같이 돈도 없고 여자들의 맘을 끌 만한 풍채도 없고 또 끈적끈적하게 여학생들의 발뒤꿈치를 따라다닐 만한 뱃심도 없었고 또 매씨를 만나기까지는 여자라는 것이 그렇게 내 호기심을 끌지도 아니하였었지마는 동경에 가서 한두 해를 지난 뒤에는 점점 가슴 속에 무엇이 비인 듯한 생각을 깨달았고 길가에서나 전차 속에서 젊은 여자를 대할 때에는 말하기도 부끄러운 어떤 충동이 일어 나는 일도 있었지마는 매씨에게 대하여서는 털끝만치도 그러한 생각을 가져 본 일이 없었소이다.

나는 성경 구절을 그대로 실행하노라고 여자를 볼 때에 음욕이 나면 나는 당장에 내 손으로 내 몸을 꼬집기도 하고 내 입술과 내 혀끝을 피가 나도록 물기도 하였소이다.

자기 전 냉수욕이 정욕을 막는다는 말을 듣고 나는 곧 앞마당 우물에서 형이 다 잠든 때에 냉수욕을 시작한 것을 형도 모르시지는 아니하리다. 어떤 날에는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나는 그 추운 방에서 불을 끄고 혼자 꿇어앉아서 밤을 새워 기도한 일도 몇 번인지 모르며 그러다가 내가 독한 감기를 들어 형에게 폐를 끼친 것도 여러 번이었지요.

四[사][편집]

그때에 내 생활에 뛰어든 것이 김씨 아니요? 기숙사에서 위병이 생기고 신경 쇠약이 생기고 입맛이 떨어졌다하여 형의 집에 두어 주기를 간절히 구하는 듯한 말을 주일날 예배당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반드시 하였고 그러다가는 우리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김치만 먹어도 살 것 같아요」 「국맛조차 다른 걸요」 「이렇게 한 달만 먹으면 살 것 같은데요」이러한 말을 수 없이 하고는 흔히 늦은 뒤에야 「아이구 가야겠는걸」「또 가야지」이러한 소리를 하며 시계를 이분에 한 번씩 삼분에 한 번씩이나 보고는 넣고 넣고는 보다가열시가 땅 친 뒤에야 가기 싫은 길을 억지로 가는 사람 모양으로 기숙사로 들어가지를 아니하였소?

그때에 형도 그에게 심히 동정을 하는 듯이 그러나 내가 미안한 듯이,

『글쎄, 그거 안 되었구려 ── 허지만 우리 집에야 방이 있어야지.』

하지 아니하였소?

나는 애초부터 김씨가 맘에 안 들었소. 어째 고 젠체하고 착한 체하고 교회를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밤낮 근심이나 하는 체하고 게다가 남한테 학비 얻어서 공부하는 처지에 양복이나 일복이나 쏙 빠지게 차리고 다니고 예배당에서는 목사보다도 자기가 교회의 주인인 듯이 깝죽거리고 게다가 얼굴에는 항상 기름이 짜르르 흐르고 손가락 끝이 톡톡 불어 터지도록 혈색이 좋으면서도 신경 쇠약이니, 소화 불량이니 불맷증이니 하고 금시에 죽을 사람 같이 떠드는 것이 내 맘에 들지 아니하였고, 더구나 그가 나이로 말하면 나와 어상반한 처지면서 나보다 학급이 두엇 위라 하여 가장 선배인 체하는 것이 내 비위를 몹시 거슬렸소. 형께서도 그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지 아니 하신 줄을 내가 잘 알지요.

그럴 뿐 아니라 ── 이것은 지금도 말하기가 부끄러운 일이지마는 ── 김씨가 온다는 것이 내게는 심히 불쾌하였소. 어째 김씨가 자주 놀러 오는 것이나 또 동정을 구하는 듯하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이나 또 같이 와 있고 싶어하는 것이나 모두 김씨가 매씨에게 무슨 뜻을 둔 것만 같이 보여서 그 것이 내게는 더할 수 없이 불쾌하였소. 우스운 일이지요. 내가 매씨께 무슨 상관이야요? 하지마는 김씨가 매씨를 가까이하는 것이 마치 거룩한 무엇을 더럽히는 듯하여 억제할 수 없는 불쾌감을 가지었소.

그러나 나는 혼자 뉘우쳤지요 ── 밤새도록 회개하는 기도를 드렸지요.

아아 왜 내가 김씨를 미워할까. 왜 나 혼자라도 그의 험담을 하였을까.

나는 성경 구절을 폈다.

「옛 사람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가 들었나니,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 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으나, 오직 나는 너희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여워하는 자마다 재판을 받고, 또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마땅 히 공회에 잡히고, 또 미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 라.」(마태복음四[사]장二一[이일]∼二三[이삼]) 이것을 생각하고 나는 가슴을 두드리고 뉘우쳤지요.

〈아아 내가 죄를 짓는 것이다 ── 내가 김씨를 미워하고 미련한 놈이라 하고 미친놈이라 하는 것이다 ── 나의 이 죄를 하나님도 용서하시지 아니 할 것이요, 내가 사랑하는 이도 용서하시지 아니할 것이다.〉 이 모양으로 나는 정성으로 기도를 드려 마침내 김씨를 미워하고 질투하는 맘이 없어지도록 기도를 하였소.

그러다가 식전에 형이 일어나기를 기다려,

『내가 김씨하고 같이 있기를 원하오.』

하고 그와 같이 있기를 허락하였지요.

그리고는 그날 종일 나는 기쁜 맘으로 지냈고 또 채플 시간에 김씨를 만나 서 전에 없이 반갑게 손을 잡았소.

그랬더니 김씨도 진정으로 반가운 듯이 손을 잡아 주었고 그가 서양 사람식으로 내 어깨에 손을 올려 놓는 것도 이날에는 아니꼽지를 아니하고 도리어 반가왔소이다. 그래서 나는 마치 그날 하루 동안에 갑자기 내 인격이 높아지는 듯하고 내 영혼이 아주 깨끗하여지는 듯하여 그날 밤(그것이 내가 그 방에 혼자 있기로는 마지막이었소. 바로 그 이튿날 김씨가 그 많은 트렁크를 가지고 옮아오지 않았소)에 나는 일생에 처음 경험하고 만족을 가지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소이다. 그러고 극히 화평하게 잠이 들었소이다.

김씨와 한 방에 있게 된 때에 나는 선배에게 대한 예로 남창을 향한 자리를 그에게 주고 나는 낮에도 침침한 동벽을 향하여 책상을 놓았소이다. 나는 맘 한편 구석에서 일어나는 그에게 대한 반항심을 누르고 누르며 내 힘껏 그에게 공손하게 했지요. 그렇지마는 형도 아는 대로 내가 워낙 말이 있소? 게다가 얼굴조차 천생으로 이모 앞으로 뚱하게 생겨 먹었으니 어디 남의 맘을 흡족하도록 해 줄 줄이야 알아요?

김씨가 나와 같이 있게 된 뒤로 얼마 동안은 별 재미도 없이 그렇다고 별 고통도 없이 지내왔지마는 한 달 지나 두 달 지나 하는 동안에 나는 김씨의 행동이 심히 수상함을 깨달았소이다. 그것이 다름이 아니요, 자다가 깨어 본즉 곁에 있어야 할 김씨가 어디를 나가버리고 만 것이외다. 나는 얼른 무엇을 직각하였지마는, 〈아뿔싸 내가 왜 남에게 좋지 못한 생각을 하나?〉 하고 꾹 눌러버렸지요. 그러나 잠은 들지 안 하여 이윽히 기다리노라면 그가 가만히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자리위에 한참 앉아서 무슨 심란한 일이 있는 듯이 한참 동안 한숨을 쉬다가는 가만히 이불을 들고 사르르 들어가서는 곧 잠이 들기나 한듯이 코를 골지요.

이런 일이 두 번 세 번 될수록 나는 도저히 내 맘속에 일어나는 의심을 누를 길이 없어서 하루 저녁은 가만히 잠이 아니 들고 기다리고 있노라니 김 씨가,

『여보시우, 여보시우.』

두어 번 불러 보더니, 그래도 대답 없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들먹하고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미스터 박, 미스터 박.』

하고 또 두어 번 깬 사람이라면 듣고, 자는 사람이면 안 깨리만한 목소리로 부르지요.

나는 그 소리를 다 들으면서도 자는 체하는 것이 죄스러웠으나, 이 사람이 밤마다 내게다 이런 수단을 썼겠구나 할 때에는 김씨가 밉기도 하고 더럽기도 하고 가증스럽기도 하여 못 들은 체 하고 있었소.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김씨가 슬며시 일어나더니 책상 위를 더듬어서 빗을 내어 머리를 빗는 모양이지요. 그리고는 가만히 일어나서 다시 한 번 내 편을 바라보고는 살그머니 문을 열고 사뿐사뿐 부엌 쪽으로 걸어가는 소리가 들리오. 나의 귀는 그 사뿐사뿐 걸어가는 발자취를 따라가다가 그 소리가 뚝 끊기고는 미닫이가 열리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소. 그것은 분명히 매씨의 방이요.

아아 나의 의심은 마침내 참이 되고 말았구려. 그가 밤마다 살그머니 자리에서 빠져 나간 것이 매씨의 방으로 간 것이라고 생각할 때에 나의 코에서는 불길이 확확 내뿜었소. 나는 기둥에다 내 머리를 부딪치어 부셔버리고도 싶고, 이빨로 혓바닥을 물어 끊고도 싶고, 방바닥에서 발버둥을 치며 데굴데굴 굴고도 싶었소이다.

나는 전후를 잊어버리고 벌떡 일어나 김씨가 하는 모양으로 가만히 문을 열고 사뿐사뿐 걸어서 부엌 곁에 붙은 매씨의 방으로 갔소. 가서 창에다 귀를 대고 가만히 엿들을 때에 나는 불길 같은 숨에 창이 펄렁거리지나 아니 할까 하고 고개를 뒤로 돌렸소이다. 그러나 나는 점점 정신을 잃어버리고 나의 다리가 벌벌 떨림을 깨달으면서 열병 들린 사람 모양으로 미닫이를 직 열고 매씨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어두운 중에 이것이 김씨로구나 하는 데를 어림하고 꽉 타 눌렀더니 그것은 김씨가 아니요 매씨외다. 나는 기겁을 하고 벌떡 일어나 방 한편 구석으로 비켜서는 판에 전등이 번적 켜지며 김씨가 뛰어 들어와,

『이 사람! 이게 무슨 일이요?』

하고 내 팔을 꽉 붙들고 매씨는 크게 놀란 듯이 방 한편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나를 바라보며 웁니다. 그때에 나는 매씨에게 대한 모든 존경과 사랑이 다 부서지어 버리고 마치 나의 심히 소중한 물건을 훔치어다가 없애 버린 행실 나쁜 고양이처럼 보였어요. 그러기 때문에 내가 미친 듯이 달겨 들면서 매씨를 발길로 차서 굴린 것이외다.

이리하여 형이 잠을 깨어 나오고 김씨가 형을 향하여 극히 침착하고도 심히 근심되는 태도로 내가 먼저 매씨의 방에 들어간 것과 매씨의 소리를 듣고 자기가 뛰어나와 나를 붙든 것과 그렇지 아니하였더면 매씨가 봉변을 하였을 것과 며칠 전부터도, 나의 매씨에게 대한 행동이 수상하더란 말을 아주 참스럽게 고하였소.

나는 김씨의 거짓말을 들을 때에 하도 어이가 없어서 다만 그 자리에서 뛰 어나와 내 방에 엎드리어 울었을 뿐이요. 김씨의 말을 반박하려고도 아니하 고 나의 행동을 변명하려고도 아니하였소이다.

그 이튿날 김씨가 교회 직분의 한 사람으로 검사격이 되고 형과 기타 몇 사람이 증인과 배석이 되고 목사가 판사격이 되어서 나를 심판할 때에도 나는 「변명 아니하는」태도를 취하였소.

목사가,

『당신이 ○○씨 방에 들어 갔었소?』

하길래 나는 사실 대로,

『녜들어갔었소.』

하였고, 또 목사가,

『좋지 못한 맘을 품고 들어갔었소?』

하길래 나는 내가 음욕을 품지 아니하였던 것만 생각하고 처음에는,

『아니요!』

하고 부인하였으나 다시 생각해 본즉, 내가 그 방에 들어갈 때에 김씨를 미워하는 맘과 매씨에게 대하여 일종의 질투를 가진 것이 사실이요, 또 그것이 「좋지 못한 맘」인 것이 분명하길래 나는 다시,

『녜, 나는 좋지 못한 맘을 품고 들어갔소.』

하였고 또 목사가,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죄를 자복하시오?』

하길래 나는 김을 미워한 것이나, 매씨를 놀라게 한 것이나 또 발길로 찬 것이나 모두 나의 죄인 것을 알므로,

『녜, 나는 나의 죄를 자복하오.』

하였고, 또 목사가,

『죄를 지은 것이 오직 당신뿐이요? 또는 다른 사람도 같이 지었소?』

하길래 처음에 그 뜻을 잘 알아듣지 못하였으나 마침내 이것이 매씨와 김씨에게 관한 말인 줄을 깨닫고 나는,

『여러분 나는 죄인이외다 ── 모든 허물이 다 내게 있소이다!』

하고 소리를 지른 것이외다.

물론 모든 죄는 다 내게 있었다. 내가 왜 이 더러운 이름을 매씨와 김씨에게 씌우랴. 나는 내게 책임 있는 죄나 자복하고 거기 상당한 벌만 받았으면 그만이다. 내가매 씨와 김씨의 공이나 죄를 간섭할 권리를 어디서 얻었을까. 만일 그네게는 무슨 죄가 있다 하면 그것을 자복하는 것이나 그것에 상당한 벌을 당하는 것이나 모두 그들의 자유일 것이지요. 비록 자기네의 죄가 있고 그 죄를 아는 다른 사람이 발설 아니하는 그것을 고맙게 여겨 가장 깨끗한 사람인 체하고 고개를 들고 교회에서 명예로운 직분의 명의를 가지는 것도 다 그들의 자유이지요. 이렇게 생각한 까닭에 나는 모든 허물을 걸머지고 일생의 희망도 목적도 다 집어 던지고 산 송장이 되어 동경을 떠났소이다.

그로부터 팔 년간 내가 어떻게 지내었는가, 그 이야기를 어떻게 이루 다하며 또 한들 무슨 소용이 있소? 다만 나는 나의 받은 교육도 다 내어버리고 오직 빨가벗은 몸뚱이 하나로 온갖 노동을 다하여 가며 내 땀을 흘려 벌어 먹고 살아 왔다는 것과 그러하는 동안에 일생에 오직 하나인 친구인형의 소식을 알아보고 형의 이름과 사업이 점점 높아 가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는 것과 매씨가 마침내 김씨일래 일생을 그르친 것과, 김씨가 교묘하게도 아직까지 「선인」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슬퍼하고 놀랄 뿐이지요.

그러나 사랑하는 형아, 나를 위하여 결코 슬퍼하지 말기를 바라오. 나는 인제는 결코 불행한 사람이 아니요. 지금 내가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곁에 나를 사랑해 주는 아내가 내가 쓰는 이 편지를 보고 눈물로써 동정하여 주오. 비록 조그마하지마는 나는 지금 내 집에서 내 아내로 더불어 사오. 내가 온종일 나의 조그만한 가정을 위하여 노역을 하고 돌아오면 나의 아내는 밥을 지어 놓고 찌개 그릇을 화로가에 놓은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어 주오.

나는 가난하외다. 그러나 나의 정직한 노동이 나에게 밥을 주고 나의 사랑 하고 불쌍한 아내에게 즐거움을 주기에는 넉넉하외다. 그러니까 형이여, 결코 나를 불쌍하다고 말으시오. 나는 인제는 행복된 사람이외다. 내가 왜 팔 년 만에 사랑하는 형에게 이 편지를 쓰나 ── 그것은 내가 행복되게 되었다 하는 기쁨을 형에게 알리려 함이요. 그러니까 형은 이 편지를 보고 기뻐해 주시오.

그러나 형이여! 처음에 약속한 바와 같이 이 편지를 쓰는 것은 결코 내 말을 쓰려는 것이 아니요, 내 말을 쓴 것은 내가 인제 하려는 다른 말의 예비가 되는 까닭이요.

아아 내 말을 쓰기에도 나의 가슴이 아팠소. 읽는 형의 가슴도 마땅히 아프려든 하물며 내 가슴이야 얼마나 아프겠소? 그러나 장차 말하려는 아픈 이야기에 비하면 내 이야기 같은 것은 한 웃음거리에 지나지 못하오. 아아 세상에는 이렇게 슬픈 일도 있을까요?

나는 죄나 있어서 받은 벌이요 ── 나는 김씨를 미워하였고 또 매씨에게 대하여 비록 잠시 동안이라도 질투와 증오의 감정을 품었었소. 예수의 눈으로 보면 이것이 얼마나 큰 죄요? 그러한 큰 죄를 짓고 팔년 동안 지옥의 고생을 다하였다 하더라도 나는 조금도 원망할 것도 없고 부족해 할 것도 없소이다. 그러할 뿐더러 이러한 큰 죄를 짓고도 팔년의 벌로 용서함을 받고 오늘날과 같은 행복을 얻으니 도리어 감사와 기쁨이 있을 뿐이외다. 그러하건마는 아무 죄도 없는 ── 정말 털끝만한 죄도 없는 연약하고 불쌍한 영혼이 내가 받은 것보다도 몇 십배 더 되는 고난을 받았다 하면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이겠소?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이 바로 그러한 일이요, 또 여태껏 지리하게 내 이야기를 쓴 것도 기실은 이 말을 쓰고자 함이외다.

五[오][편집]

나는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주의 가르침을 지어버리지 아니하려고 전력을 다하였건마는 칠년째 잡히던 때부터 검점 맘 속에 일종의 적막과 슬픔을 느끼게 되었소. 그 적막과 슬픔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만으로는 위로할 수 없음을 깨달을 때에 나는 일변 놀라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소. 나는 나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이나 아닌가, 내가 옳지 못한 유혹을 받는 것이나 아닌가 하여 한번은 사흘 동안을 정하고 마니산 꼭대기에 올라가 금식 기도를 드렸소. 나는 예수께서 사십일 사십야를 광야에서 금식 기도하시다가 마침내 모든 유혹을 이기어버리신 것을 본받아 언제까지든지 내가 모든 유혹을 이기어버릴 때까지 결코 산에서 내려오지 아니하기를 결심하였었소. 그때는 마침 음력 구월 보름깨라 산에 나무 잎과 풀조차 다 말라버리고 벌레 소리까지 끊어지고 마니산 제천단에 갈바람이 휙휙 소리를 내고 지 나갈 때요. 낮에는 끝없는 바다를 바라고 밤에는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바라고 기도를 하였소이다. 피곤하여져서 잠간 동안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면 동천에는 붉은 새벽 빛이요, 내 몸에는 하얀 서리였었소.

그러나 형아! 하나님께서는 잠간 동안 나를 버리시었소. 나의 몸의 추움과 맘의 추움은 하나님의 손으로는 더워지지 아니할 듯하였소. 하나님은 너무도 높이 계신 것 같고 너무도 멀리 계신 것 같고 너무도 내가 가까이 하기에는 엄하고 완전하신 것 같아서 나와 같이 죄 많고 불완전한 「사람의 살」이 그리워지었소.

「사람의 살!」사람의 살이 따뜻함이 내 몸에 닿으면 이 찬바람과 찬 서리에 꽁꽁 언 내 몸은 금시에 풀려질 것 같았소. 만일 그때에 마니산 머리에 어떤 사람이 있었던들 ── 그 사람이 아무리 변변치 못한 사람이라도 ── 비록 그 사람이 반쯤 썩어진 문둥병자이라도, 만일 사람만 있었던들 나는 「아 사람이여!」하고 달려들어 껴안고 흑흑 느껴 울었을 것이요.

생각해 보시오 ── 내가 칠년의 긴 세월을 누구를 사랑했으며 누구의 사랑을 받았겠소. 혈혈한 단신으로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걸어온 것이요.

그러다가 나는 마침내 아주 사람을 떠나 산 꼭대기에 올라 사흘을 지내니 내가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도 마땅한 일이 아니요.

그래서 나는 사흘 동안 굶은 배를 안고 기운 없는 팔다리로 간신히 기어 산을 내려왔소. 산을 내려오니 골목골목이 사람의 집이로구려. 저녁 연기가 나는 사람의 집이로구려. 사람의 소리가 나고 아이들이 지껄이는 소리가 나는 사람의 집이로구려. 비록 오막살이 단간집이라도 저 속에는 따뜻한 아랫 목도 있고 김 오르는 솥도 있고 따뜻한 사람도 있겠지요.

『저기다, 저기다! 내가 찾는 곳이 저 아랫목이요, 저 사랑이다!』

나는 이렇게 외치고 촌가로 뛰어 들어갔소이다. 그러나 그 집들에는 모두 주인이 있다. 그 아랫목은 주인이 앉고 남지 못하고 그 사랑은 주인이 안기고 남지 못한다. 그 많은 저녁 연기 나는 집에 내 몸이 들어갈 곳은 하나도 없구려.

이래서 내가 따뜻한 사람의 품을 찾노라는 것이 창기의 집이었소.「창기의 집!」내가 어떻게나 미워하던 곳이요? 어떻게나 저주하던 곳이요? 그러나 형아! 나 같은 사람이 따뜻한 사람의 품을 찾을 때에 거기 밖에 갈 곳이 어디요?

일원짜리 지전 두 장이 젊은 여자 하나를 나에게 주었소. 그 여자도 사람이요. 다른 모든 여자와 같이 피도 있고 눈물도 있고 영혼도 있고 따뜻한 사랑도 있는 꼭 같은 사람이요 ── 나는 그들도 나와 꼭 같은 사람인 것을 발견하였소. 내가 그날 밤에 만난 그 여자가 내게 이러한 진리를 가르쳐 준 것이요 ── 사람은 다 꼭 같은 사람이라는.

그 여자는 나를 위하여 자리를 깔아 주었고 때묻은 내 의복을 차곡차곡 개켜 주었고 내 몸에 신열이 있다 하여 수건에 냉수를 묻혀 머리도 식혀 주었소. 이것이 내가 세상에 나온 뒤로 처음 당하는 남의 사랑이요.

이리하여 나는 마치 첫사랑에 취한 사람 모양으로 그 여자를 사랑하였소.

이 모양으로 두 달은 꿀 같은 꿈같이 지나버렸소.

그러나 사랑에는 돈이 드오. 좋은 집 처녀를 사랑하기에 나 창기를 사랑하기에나 돈이 들기는 마찬가지요. 나 같은 노동자는 이 사랑하는 창기를 자주 만날 힘도 없었소.

하루는 나는 저금 통장을 마지막으로 떨어 나의 애인을 찾아갔소. 나는 이 날을 마지막으로 나의 회포를 다 말해 볼 양으로 소주 한 병을 사서 으슥한 곳에서 병채로 들이키고 먹을 줄 모르는 술이 반이나 취하여서 비틀 걸음으로 그 집에를 찾아간 것이요.

『아이, 왜 약주를 잡수시었어?』

하고 그는 나를 나와 맞았소.

『이 신산한 세상을 취하지도 않고야 어떻게야 지나오 ── 아아 하나님이시여 나를 영원히 취하여 깨지 말게 하소서.』

하고 방바닥에 쓰러지었소.

얼마를 정신없이 졸다가 눈을 떠본즉 그는 자기의 무릎 위에 나의 머리를 올려 놓고 연방 찬 수건으로 내 이마를 식혀주오. 나는 그의 손을 잡으며,

『고맙소이다 ── 나는 금시 죽어도 한이 없소이다. 나도 인제는 세상에 와서 사람의 사랑까지도 맛보았으니,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소? 나는 인제는 이 세상에 남아 있어서 더 볼 일도 없고 또 세상이 나 같은 사람을 만류할 까닭도 없으니 나는 훨훨 달아나고 말겠소.』

하고금할 수 없이 눈물을 흘렸소. 진정 나는 죽을 길 밖에 없었소이다. 나는 이미 하나님의 신용을 잃어버렸고 인생으로 사업을 이룬다는 이상조차 잃어버렸고 나의 마지막의 복인이 창기라는 여자까지도 다시 만날 길이 어렵게 되었소. 나는 그동안에 저금하였던 것도 모두 없애버렸고 사흘 벌어 이원을 저축하는 일도 인제는 어렵게 되었소. 겨울이 될수록 일자리는 줄고용은 늘고 또 칠년 남은 고생스러운 노동 생활에 나의 청춘의 정력도 다 소모되고 말았소.

나는 마지막으로 그를 만나 그와 작별의 인사를 하고는 그 길로 나가 축항의 얼음 구덩이에나, 어디나 닥치는 대로 죽어버릴 작정이었소. 그랬던 것이 먹은 술이 너무 힘을 내어서 그만 여태까지 잠이 들었던 것이요. 잠을 깨어 보니, 마치 자기가 맡았던 중대한 임무를 잊어버린 듯하여 벌떡 일어 났소.

『여보세요, 웬 약주를 그리 잡수세요? 주무시면서도 우시던데.』

하고 그는 차 한 잔을 따라 나에게 주오. 창은 찬바람에 소리를 내고 떠는 데 화로에는 숯불이 이글이글하오.

그는 말을 이어, 왜 그런 숭한 말씀을 『하셔요? 세상을 버리고 가기는 어디를 가요? 어디 갈 데가 있나요? 이 세상 말고 다른 데 갈 데가 있었으면 나 같은 사람은 벌써 가버리고 말았게요. 나 같은 사람도 할 수가 없어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데 당신 같으신 사내 양반이야 왜 그런 생각을 하셔요? 세상이 괴롭기도 하지마는 또 그럭저럭 살아가노라면 그래도 산 보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 모든 것을 다 깨달았다 하는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오. 내가 여태껏 이 여자와 만난 것이 수십차가 되지마는 오늘 모양으로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한 것은 서너 번밖에 못 되오. 그것은 사원을 내어야 하룻밤을 그와 나와 단 둘이만 같이 지낼 수가 있으되, 이원만으로는 한 시간 밖에 같이 있을 수 없었던 까닭이요. 그는 하룻밤에도 나와 같은 이원짜리 남자를 둘이나 셋 많으면 사오인까지도 맡지 아니하면 안 되기 때문이요.

나는 점점 그 여자가 결코 범상한 창기가 아닌 것을 깨달았소. 그래서 두어 번이나 그의 내력을 물었으나 그는 웃을 뿐이요, 대답이 없었소. 그도 나를 보통 노동자와는 다르게 보았던지 한두 번 나의 과거를 물었으나 나 역시 나의 쓰라린 과거를 그에게 말하기를 원치 아니하였소. 그랬더니 지금 그의 눈을 보니 그 눈 속에는 말할 수 없는 무엇이 숨어 있는 듯하오. 원래 유순하게 생긴 여자지마는 그 눈이 더욱 유순하오. 나는 불현듯 이 여자의 과거에 누를 수 없는 흥미를 가지게 되었소. 이 여자의 내력을 듣고 또 이 여자의 지금 품고 있는 생각을 들어 그가 나의 저승길의 동무가 될 만하거든, 같이 정사를 하리가 하는 생각이 났소.「정사!」이 생각이 내 가슴 속에 따뜻한 빛을 던지는 듯하였소.

그래서 나는 담배를 피워 물고 그더러 그 내력을 말하기를 청하였소. 그런 즉 그는 여전히 웃으며,

『당신부터 먼저 말씀하셔요!』

하오. 그래서 나는,

『내 과거? 말하지요. 나는 여태껏 아무에게도 내 과거를 말한 데가 없소.

그러나 나는 세상을 버리기 전에 세상에 남아 있는 당신에게는 말을 하고 싶었소. 그러면 말하지요. 내가 말을 하면 꼭 당신 말도 하지요?』

하고 다짐을 받은즉 그는,

『그러지요.』

하고 지금까지의 냉랭한 태도가 변하여 깊은 흥미를 가진 듯한 태도를 취하오.

나는 나의 과거를 말하였소. 부모 없이 자라나던 이야기, 서울서 공부하던 이야기, 동경으로 가던 이야기, 어떤 여자의 말을 따라 목사가 될 목적으로 신학교에 입학하던 이야기까지는 극히 평범하였거니와 매씨와 나와의 관계, 김씨와 매씨와 나와의 관계, 형과 나와의 관계와 그날 밤 일이며 목사 앞에서 재판을 당하던 이야기와 내가 늦은 가을 궂은 비 오는 밤에 형의 집을 바라만 보고 동경을 떠나던 이야기를 할 때에는 아직도 술이 채 깨지 아니 하고 자기 전 흥분이 채 식지 아니한 나는 심히 흥분하였소. 내가 칠년 동안 대판으로 구주 탄광으로 부산으로 목포로 군산으로 마침내 이곳 인천으로 돌아다니며 부랑하는 노동자의 생활을 하던 것과, 나중에 두 달 전에 마니산 꼭대기에서 금식 기도를 하다가 따뜻한 사람의 살이 그리워 도로 세상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의 눈이 차차 이슬이 맺히고 마침내 그것이 눈물 방울이 되어 흐르다가 내가 인제는 죽어버릴 길 밖에 없다 하고 말이 끝날 때에는 그는 방바닥에 엎더져 흑흑 느껴가며 울기를 시작하오. 그가 어떻게나 슬피 우는지 나는 도리어,「공연한 이야기를 하였다」하는 미안한 맘이 생겨서 그의 들먹거리는 등을 어루만지며,

『울지 마오, 내가 쓸데 없는 말을 했구려.』

하였소.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나도 아니 울지는 못하였소.

둘이 한바탕 울다가 눈물에 붉게 된 얼굴을 마주 볼 때에는 그는 나의 수 십년 동안 같이 살아온 지극히 사랑하고 친한 사람같이 보였소. 그에게도 내가 그렇게 보이는지, 그는 눈도 깜빡 아니하고 맘을 네게 허한다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앉았더니,

『나도 당신께서 무슨 까닭이 있는 어른으로 알았어요. 암만해도 예사 사람은 아니다, 무슨 깊은 비밀이 있는 어른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어쩌면 그렇게도 나와 정지가 꼭 같으십니까 ── 어쩌면 그렇게도 같을까요!』

하고 감개무량한 듯이 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末完[미완])

(一九二五年一月[일구이오년 일월] 《朝鮮文壇[조선문단]》 第四號 [제사호] 所載[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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