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선물/어린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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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에르지가 열한 살 되는 해 생일날 밤이었습니다. 밖에는 캄캄한 밤인데 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었습니다. 에르지는 아버지 크레븐 박사와 둘이서 생일의 축하 음식을 먹으면서 즐겁게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언뜻 생각이 난듯이,

“아버지, 나는 오늘도 학교에서 음악을 연습하였어요.”

하고는, 다시 아주 낙심되는 듯한 소리로,

“그런데, 아버지, 나는 암만해도 바이올린이 잘 안 되어요. 아마 못 배우고 말 것 같아요.”

하니까,

“아니.”

하고, 박사는 웃으시면서,

“아직 처음이니까 그렇지. 처음부터 잘 되는 일이 어디 있겠니…….”

하셨습니다.

그렇게 박사가 말씀할 때에 마침 문 밖에서 가늘게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에그, 누군지 길거리에서 바이올린을 탄다. 잘하는 모양인데…….”

박사는 가만히 앉아서 귀를 기울여 들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에르지도 가만히 앉아서 눈만 깜박깜박하며 듣고 있다가 얼른 들창 옆으로 가서 포장을 조금 헤치고 캄캄한 바깥을 내다보고 섰더니,

“에그, 아버지, 조그만 아이가 비를 맞고 서서 켭니다.”

“응, 아이야? 어서 돈을 갖다 주어라.”

“바이올린도 잘 타는데요. 저것 보세요. 아주 좋은 곡조인데요.”

밤은 어둡고 비는 주룩주룩 오고……, 그 비를 맞고 서서 타는 불쌍한 어린 소년의 바이올린 소리는 가늘게 떨면서 슬프게 우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에르지는 아버지에게로 와서 그 가슴에 매어 달리며,

“아버지, 저 아이를 이리로 불러서 내 생일 음식을 먹이지요, 네? 아버지, 바깥은 저렇게 추운데, 그 비에 몸이 흠뻑 젖어서 좀 춥겠어요? 네, 아버지, 이리로 불러 들여와요.”

하고, 애원하였습니다.

박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허락하는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에르지는 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혼자 자라는 불쌍한 아이였습니다.

박사는 몹시 귀엽게 여기고 길러서, 에르지를 위해서는 어떠한 일이든지 힘써 하여 왔습니다.

부모 없이 어린 아이를 구해 주기도 하고, 어미 잃은 고양이나 강아지까지라도 일일이 구원하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도 에르지의 말을 듣고 즉시 허락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데리러 나갔습니다. 나가 보니까 조그만 어린아이가 몸과 얼굴은 마르고, 찢어진 옷을 입고 비를 맞고서 바이올린을 타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이 집에서는 돈도 한 푼 주지 않는 줄 알았더니 주인이 나와서 들어오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굽실굽실 하면서 그러고 기꺼워하면서 바이올린 옆에 끼고 따뜻한 불을 핀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에르지는 한없이 기꺼워하면서 따뜻한 불 옆으로 의자를 갖다 놓아 주면서 앉히었습니다. 소년은 바이올린을 방바닥에 놓고 불을 쪼였습니다. 그 젖은 옷과 몸에서는 연기 같은 김이 무럭무럭 올랐습니다.

박사는 차와 과자를 내고, 에르지는 자기 음식을 내고 그러고 나서 박사는 묻기 시작하였습니다.

“네 이름은 무어라고 부르니?”

“루이 루부렌이예요.”

하고, 그 아이는 프랑스 말로 대답했습니다.

“응? 프랑스 사람이냐?”

박사도 이번에는 프랑스 말로,

“나하고 이 에르지도 프랑스 사람인데 이렇게 영국 와서 산단다. 아이 퍽 반갑다.”

하였습니다.

루이의 얼굴은 의외의 자기 나라 말을 듣고 기꺼운 빛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자기 신세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나이는 열두 살이고, 어머니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아저씨를 따라서 일 년 전에 영국 땅으로 온 것까지 이야기하고, 길거리에서 바이올린을 하기는 죽기보다 싫지마는 돈이 없으니까 어쩔 수도 없거니와, 아니하면 아저씨가 때려 준다는 말까지 자세히 하였습니다. 눈만 말똥말똥하면서 듣고 있던 에르지는 퍽 불쌍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박사도 퍽 불쌍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박사도 몹시 불쌍하게 생각하면서 한참이나 귀를 기울이고 들으면서 루이가 음식을 다 먹기를 기다려,

“자아, 인제 무엇이든지 네가 제일 잘 타는 것을 한 곡조 들려다오.”

하였습니다.

“잘 타지는 못합니다.”

하고, 루이는 부끄러운 얼굴로,

“바이올린이 아주 나빠서요.”

하면서, 집어드는 루이의 바이올린을 보니까, 참말 다 쪼개져서 못 쓰게 된 아주 헌 것이어서 말만 바이올린이었습니다.

“그럼, 내 것으로 타 보렴!”

하고, 에르지는 자기 바이올린을 내어 주었습니다.

루이가 그 바이올린을 보자, 눈에 새 광채가 났습니다. 그 바이올린은 참 훌륭한 보물이었습니다. 루이가 이 때까지 말로만 듣던 으리으리한 좋은 바이올린이었습니다.

루이는 그 꿈에도 못 보던 훌륭한 바이올린을 주의하여 받아 들더니, 웃는 얼굴로 박사를 보고,

“오늘은, 오래 두고 타지 않던 우리 나라 국가를 켜지요.”

에르지는 그 말을 듣고 기뻐서 뛰고 싶었습니다. 박사도 이 영국에 온 후로 오래 두고 듣지도 못 하던 자기 나라 국가를 듣게 되어서 무한 기꺼워하였습니다.

훌륭한 바이올린의 줄 위에 기꺼움과 피로써 뛰는 루이 소년의 손가락과 활 밑에서 숭엄한 프랑스 국가가 흘러나왔습니다. 높게, 낮게, 길게, 짧게, 힘있게 나오는 바이올린 소리는 조용한 방 속의 구석구석이 울리고, 눈을 감고 죽은 듯이 앉아서 바이올린 소리에 취한 박사와 에르지는 어느 틈에 자기도 모르게 가는 목소리로 바이올린에 맞춰서 국가를 합창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루이의 재주는 희한하였습니다. 바이올린이 끝나자,

“너 누구에게 그렇게 배웠니?”

“아무에게도 배우지 않았습니다. 맨 처음에 줄 고르기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일러 주셨으나, 지금 아저씨는 그것도 모르시니까요. 가르쳐 주지는 않고 돈만 벌어 오라구 하신답니다.”

“그럼, 내 대신 우리 학교에 가 배우면 되겠지…….”

하고, 에르지가 말하였습니다. 박사는 루이에게 더 이런 말 저란 말 물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루이에게 자기 집 주소를 적어 주고, 내일 오후에 너의 아저씨와 함께 놀러 오라고 일렀습니다.

그러자, 박사는 잠깐 어느 회에 참례할 시간이 되어서 잠깐 다녀올 것이니 여기서 둘이 놀고 있으라 이르고 나갔습니다.

에르지와 루이는 난로 앞에서 불을 쪼이고 있다가 잠깐 후에,

“인제 나는 얼른 집으로 가야 해. 늦게 가면 아저씨가 또 때리신단다. 오늘 번 돈을 가지고 어서 가야지 맞지를 않지…….”

그 말을 듣고 에르지는 마음이 퍽 서러워졌습니다.

“너의 아저씨가 너를 그렇게 미워하니?”

“미워하는지는 몰라도 돈을 적게 벌어 온다고 때린단다. 어저께도 이쪽 어깨를 못 쓰도록 맞았단다.”

“그럼, 오늘은 내 돈을 모두 줄 테니 그걸 가지고 가거라. 그래야 오늘은 안 맞지, 응! 자아 옛다.”

하고, 주머니 돈을 모두 꺼내어 주었습니다. 루이는 아무말 아니하고 고개를 숙이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바이올린을 차마 떠나기가 안 된 것같이 섭섭하게 내려 놓으면서,

“이 다음에라도 이런 바이올린을 또 한 번 타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며, 중얼거렸습니다.

“괜찮다, 응. 괜찮아.”

에르지는 바이올린을 루이에게 주면서,

“자아, 오늘 밤에는 이 바이올린을 가지고 가서 타고 내일 가지고 오려무나 응? 자, 가지고 가거라!”

“아버지께서 꾸중 아니 하시니?”

“아버지가? 아아니! 걱정 말고 가지고 가거라, 응.”

하고, 에르지는 갑까지 꺼내어서 바이올린을 갑 속에 넣어서 주었습니다.

루이는 미안해 하면서 받아들고 몇 번이나 절을 하면서,

“그러면, 내일은 꼭 가지고 올께!”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에르지는 부모도 없이 거지 노릇을 하는 불쌍한 루이의 돌아가는 것을 물끄러미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얼마 아니 되어서 박사가 돌아와서 에르지 혼자 있는 것을 보고,

“응? 루이는 어디 갔니?”

하고, 물으므로,

“늦게 가면 매를 맞는다고 얼른 가야 한다고 돌아갔답니다.”

라고, 에르지가 여쭈었습니다.

“그 애가 몹시 영리하던데…….”

하시고, 다시 이어서,

“알아보아서 만일 상당한 아이 같으면 내가 공부를 시켜 주련다.”

“아아, 아버지!”

하고, 에르지는 그 말씀을 감사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 옆 의자에 쪼개진 바이올린이 놓여 있는 것을 보자,

“에그!”

하고 놀라면서,

“그 애가 바이올린을 잊어버리고 갔나?”

“아니요, 잊어버리고 간 것이 아녜요.”

하고, 방그레 웃으면서,

“아버지, 제가 그 바이올린을 빌려 주었습니다. 내일 꼭 가져 오기로 하였어요!”

하였으나, 박사는 그 말을 듣고 또 놀라시었습니다.

“그것 큰일 났구나. 그 바이올린은 대단히 비싼 귀물인데……. 지금은 그렇게 좋은 것을 살래야 살 수가 없는 것이란다. 그 아이가 만일 정직하지를 못한 애라면 어쩌니.”

“그런 그런 나쁜 아이는 아니야요.”

“네가 어찌 아니…….”

“그래도 그렇게 나쁜 애 같지 않던데요. 그리고, 우리 나라 아이구요…….”

“그렇지만 만일 안 가져오면…….”

박사는 기운 없는 소리로 이 말을 하고는 다시는 아무 말도 아니 하였습니다. 에르지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불쌍한 루이의 모양이 잠시도 떠나지 않고 보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기도 하지요. 박사의 염려하던 말씀이 들어맞아서, 루이는 그 이튿날 오지를 않았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되고, 그 밤이 깊도록 영영 루이는 오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이튿날 오후에 박사가 그 애 아저씨 집이라던 곳을 찾아가 보니까, 루이 아저씨와 루이가 그 집에 살기는 하였으나, 바로 어저께 어디론지 이사를 갔다고 하여, 그냥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루이 혼자도 아니고, 그 아저씨 집과 함께 루이는 어디로 갔는지……. 에르지는 아버지께 몹시 미안하기는 하였으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루이는 그런 나쁜 짓을 할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더구나 루이 혼자 어디로 간 것도 아니고, 그 아저씨 집과 한꺼번에 어디로 갔을 때는 아마 루이도 어쩔 수 없이 그냥 끌려 가게 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박사도 에르지가 언짢아할까 겁이 나서 다시는 그 바이올린 이야기를 하지 아니 하였습니다. 에르지도 다시는 그 바이올린 생각을 아니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체 그 불쌍한 루이는 그 사나운 아저씨를 따라서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사는지……, 반드시 그 어느 곳에서 루이는 길거리에서 바이올린을 타겠지……, 생각하며 궁금해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다섯 해가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꽃같이 어여쁘게 훌륭한 색시가 된 에르지는 유명한 음악가들만 출연하는 음악회가 있었으므로 아버지 크레븐 박사와 함께 가서 맨 앞 줄에 앉았습니다.

“에그, 아버지! 이것 보세요. 이상도 한데요!”

하고 순서지(프로그램)를 들고,

“이번에는 바이올린인데 루이 루부렌이랍니다. 그 때 그 루이하고 이름이 어쩌면 이렇게 같을까요.”

“글쎄…….”

이야기하는 중에 손뼉치는 소리가 우레같이 일어나서 졸지에 이 집이 떠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전 번보다 몇 갑절 더 심한 박수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고 박사와 에르지도 쳐다보았습니다.

이 날 출연하는 모든 유명한 음악가 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어린 음악가, 열일곱 살 먹은 소년 루이 루부렌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환영하는 박수였습니다. 끓는 듯한 환영을 받고 쾌활하게 나서는 어린 음악가의 어여쁜 얼굴은 틀림없는 5년 전 루이였습니다.

에르지의 얼굴은 공연히 화끈화끈하고 가슴이 무서워하는 사람처럼 뛰놀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을 꼬옥 잡고 나직한 소리로,

“루이에요, 루이에요!”

하였습니다.

루이는 과연 천재 음악가로 성공하였습니다. 무르녹는 손, 익숙한 연습, 높고 낮게 달밤에 물 흐르는 소리같이, 꽃밭에 바람 부는 소리같이 곱게 아름답게 흐르는 소리에 그 많은 청중은 마음이 취하여 바이올린이 끝나도록 죽은 사람같이 앉았다가 다시 손뼉을 울려서, 다시 한 번 타기를 청하였습니다. 하도 열성으로 청하니까 루이 소년은 또 나왔습니다. 청중에게 예를 하노라고 고개를 숙일 때, 언뜻! 눈에 띄인 것은 반가운 반가운 에르지와 그 박사였습니다. 루이는 예를 하다 말고 무대 앞으로 바싹 나아갔습니다.

역시 박사와 에르지였습니다. 루이는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 같더니, 이윽고 얼굴에 가득하게 웃음을 띄우고 타기 시작한 노래는 5년 전 은인의 집에서 타던 반가운 반가운 프랑스 국가였습니다.

박사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흘렀습니다.

이윽고, 국가도 끝났습니다. 손뼉 소리는 또 퍼부어졌습니다. 루이는 그 퍼붓는 손뼉 소리 속에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무대 뒤로 내려오지 아니하고 앞으로 내려가서 박사와 에르지를 만나서 반가운 인사를 바꾸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눈동자는 루이와 함께 박사와 에르지에게 쏠렸습니다. 에르지의 손을 잡을 때에 루이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서 뺨으로 주르르 흘렀습니다. 루이는 두 분을 청하여 무대 뒤 응접실로 안내하였습니다.

다섯 해의 기나긴 세월을 두고, 그렇게 만나고 싶고 보고 싶던 에르지와 그 아버님을 우연히 오늘 이곳 청중에서 발견하고, 루이는 그 자리에서 뛰어내릴 뻔하였던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 때 그 밤에 바이올린을 빌려 가지고 가서 그 이튿날 도로 가져오려고 하였으나, 그 사나운 아저씨가 무리로 그 바이올린을 빼앗아서 갖다 팔아 가지고 곧 집을 떠나서 리버풀로 가서, 거기서 또 미국으로 건너갔었노라고, 5년 전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 가서도 퍽 고생을 하다가 마침 어느 훌륭한 사람에게 구원을 받아서, 그 분의 주선으로 훌륭하게 음악을 연구하여서 지금은 아주 음악가로서 출세하였노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에르지는 그 말을 듣고 자기가 잘 된 것 같이 기뻐하였습니다.

루이는 그 후에라도 에르지네 집을 찾아가거나 또는 편지라도 자주 하려 하였으나, 불행히 그 때 적어 준 쪽지를 잃어버려서 이 때까지 무심히 지내게 되었다는 말까지, 자세하게 진심으로 이 날 이 때까지 어디서든지 만나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날은 이 곳 각처의 환영회에 가느라고 바빴고, 그 이튿날 루이는 좋은 바이올린을 선물로 가지고 가서 에르지 색시에게 주었습니다. 에르지는 그것을 받고 자기 방 장 속에 이 날 이 때까지 위하고 위해 두었던 루이의 기념물 쪼개진 바이올린을 내보였습니다.

박사와 에르지 색시와 루이가 5년 만에 이 방에 모여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는 그 창 밖에는 오늘도 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