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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선물/한네레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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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네레는 돌일(석수장이)하는 마데른의 딸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데른이 낳은 딸은 아니었습니다.

한네레의 어머님이 한네레의 언니와 한네레 두 형제를 데리고, 어떻게 살아가는 수가 없어서, 궁리를 하다 하다 못하여 언니는 머나먼 프랑스 서울 파리에 있는 아주머님 댁으로 보내고, 한네레를 데리고 마데른에게로 온 지가 3년째였는데, 마데른이 늘 술만 먹고 성질이 사나워서 고생만 하시다가 두달 전에 그만 돌아가셨습니다.

파리로 가서 길리우는 언니는 잘이나 있는지, 견디지 못하게 궁금하지마는, 어떻게 하는 수도 없이 혼자 남은 한네레는 사나운 아버지 마데른의 구박을 받아 가며 그 날 그 날을 애달프게 지냈습니다.

마데른은 낮이나 밤이나 술집에만 가 있고, 어린 한네레 혼자서 돌아가신 어머님과 파리에 가 있는 언니가 보고 싶어서 울며 지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리고 연약한 몸으로 집안을 말끔히 치우고, 조석으로 식사의 준비도 잘 하여 놓지마는 마데른은 술이 몹시 취하여 돌아와서는 무어라고든지 트집을 하여서, 어린 한네레를 사정없이 때려 울려서, 어느 날이든지 눈물 흘리지 않고 지내는 날이 없었습니다.

무섭게 추운 섣달 어느 날 밤 일이었습니다. 창 밖에는 함박눈이 퍼엉펑 쏟아지더니, 게다가 바람까지 또 불기 시작하여 무섭게 춥고, 온 세상이 흔들리는 험한 밤이었습니다. 마데른은 어저께 나가서 술집에 파묻혀 이 때까지 돌아오지 아니하고, 무서운 밤 하늘과 심한 바람이 한데 몰려서, 방 속에까지 몰려 들어오는 듯한 춥고 무서운 밤을 어린 한네레 혼자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때껏 돌아오시지도 않고……, 왜 그렇게 나를 미워만 하고 사납게 구시는지……, 이렇게 춥고 이렇게 무서운 밤에 어머니가 살아 계시고 언니도 같이 있었다면 어머님께서는 바느질을 하시면서,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해 주시고, 언니와 나는 자리에 누워서 자지 않고 듣고 있었을 것을……. 어머니는 어디를 가셨을가? 남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저어 하늘 위의 천당에 가 계신지……, 언니는 나처럼 맞지나 않고 잘 지내는지……, 우리 언니도 나처럼 날마다 얻어맞기나 하면 어쩔까? 불쌍한 어린 생각은 무심히 등불만 들여다보면서, 뒤에 뒤를 이어, 사람 그리는 정이 가슴에 넘쳤습니다.

눈은 자꾸 쏟아지고, 밤은 소리없이 깊어 갔습니다.

한네레는 기다리다 못하여 벌떡 일어나 자리를 펴 놓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 때 문이 부시시 열렸습니다 . 들어온 이는 아버지가 아니고, 모르는 병든 이였습니다. 얼른 보기에도 불쌍하고 병든, 길 가는 나그네였습니다.

갈 길은 멀고, 춥기는 하고, 눈은 퍼붓고, 배는 고프고, 더 가는 수가 없어 염치를 불구하고 들어왔으니, 사람을 구원하여 달라고 그 나그네는 애걸하였습니다. 어린 한네레는 자기 설움도 다 잊어버리고, 다만 그 나그네가 불쌍히 여겨지는 마음만 가슴에 가득하여, 저녁도 대접하고 더운 자리에 눕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나운 아버지 마데른의 그 무서운 눈이 언뜻 생각났습니다.

“병드신 몸으로 몹시 추우시겠습니다. 정한 자리에 하루를 편히 주무시고 가시게 하였으면 좋겠지만, 저어 저어 우린……, 그렇게 못하겠으니 저녁이나 잡숫고 다른 집에 가 주무시고 가십시오.”

하고 저녁을 대접하였습니다. 가련한 병든 나그네는 그것이나마 감사하게 자시고, 뜨거운 차를 후울훌 마시고는 그만하면 살았다는 듯이 기꺼워하면서 나갔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그만큼이나마 구원해 줄 수 있었던 것이 한네레에게는 무한 기꺼운 일이었습니다. 더운 차를 마시고 원기가 생겨서 기꺼워하며, 나그네가 나가던 모양을 어느 때까지든지 한네레는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밤이 퍽 깊어서 취할 대로 취한 마데른이 돌아왔습니다.

어저께부터 나가 술집에서 있다가 인제야 돌아오는 마데른은 어찌 술을 많이 마셨는지, 코에서 술이 자꾸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무섭고 사나운 눈은 한네레에게서 무슨 트집거리를 찾아내려고 흘기는 것 같았습니다. 한네레는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하고 섰었습니다.

아무 트집거리를 찾지 못한 마데른은 상 앞에 가서 쓰러질 듯이 앉으면서 저녁을 가져오라 하였습니다. 한네레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차려 놓고 기다리던 저녁은 불쌍한 나그네가 먹고 간 것이었습니다. 큰일 당할 것을 생각하고, 어릿어릿하고 섰는 한네레를 보고,

“어서 가져 와!”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어쩌는 수 없어 한네레는 벌벌 떨면서 사실대로 고했습니다. 트집거리가 없어서 심심해 하던 차에 잘 되었다는 듯이 끝까지 채 들을 새도 없이,

“무얼 어째?”

하고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히더니, 발발 떨고 섰는 한네레의 어린 뺨을 불이 나도록 때렸습니다. 가련한 한네레는 소리도 못지르고 푹 거꾸러졌습니다.

“무슨 일로 주었으며, 그 나그네가 누구냐?”

하면서, 발길로 차다 못하여 길다란 나무때기로 다리, 어깨, 등, 허리, 머리까지 두들겼습니다.

참다 참다 못하여 소리쳐 울었습니다. 아픈 곳에 손을 내어 밀면, 무정하게도 손등까지 휘갈겨서, 어리고 연한 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주르르 흘렀습니다. 어디 아니 아픈 데가 없이 전신이 물에 젖은 솜같이 되어 늘어져서, 가늘고 쇠진한 소리로 에그머니 에그머니 하며 울었습니다.

눈물이 비오듯 자꾸 쏟아졌습니다.

오시던(내리던) 눈은 그만 그친 것 같았으나, 불쌍한 한네레의 어머니를 부르며 우는 소리는 그치지 않고 처량히 들렸습니다. 그래도 마데른의 귀에는 그 우는 소리가 더욱 골나고 밉게 들리어서, 다시는 보기 싫다고 나가라고 소리쳤습니다. 아무리 울면서 애걸을 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나중에는 와락 달려들어 신발까지 벗기고 버선까지 빼앗아 문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눈은 허옇게 쌓이고, 밤은 고요하게 깊었습니다. 맨발 벗고 쫓겨난 한네레는 다시는 아니 그러겠으니 문을 열어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발에서부터 몸뚱이가 점점 얼어 보고, 바람은 쌀쌀하게 불고……. 영영 아니 열어 주는 문 밑에 서서 한네레는 추위에 떨면서,

“아버지이! 아버지이!”

하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안에서는 마데른이 자는가 봅니다. 들창에 비치던 불까지 꺼져 버리고, 조금 후에는 마데른이 코 고는 소리가 드르렁드르렁 들려 나왔습니다.

세상은 죽은 듯이 고요할 뿐인데, 다만 어린 한네레가 문 밑에서 아버지 부르는 소리만 처량하게 밤 하늘에 멀리까지 들려 갔습니다.

아무리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고, 어떻게 하는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까지 그 구박을 받으면서 살아 오기는 어린 생각에도 어머니는 영영 돌아가셨거니와 언니는 살아 있으니, 어느 때든지 만나서 정답게 살 수가 있으려니 하는 소원이 있는 까닭이었습니다. 인제는 집에서도 쫓겨나고, 밤은 자꾸 깊어 가고 하니, 이대로 섰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넓은 세상 누구에게라도 갈 곳도 없고, 발 한 걸음 내어 놓을 방향이 없이 한 발 두 발 내놓으면서 어린 가슴 타는 더운 눈물은 하염없이 자꾸 흘렀습니다.

그러나, 아무 데로나 자꾸 갈밖에 없었습니다. 자꾸 자꾸 가면, 그리운 그리운 언니를 만날 수 있겠지 생각하였습니다. 작고 연약한 어린 맨발로 하얗게 쌓인 눈을 바삭바삭 밟으면서, 어딘지 모르고 눈 위로 자꾸 걸었습니다. 어머니 생각과 언니 생각에 눈물은 하염없이 자꾸 흘렀습니다.

걸으면서 울면서, 울면서 걸으면서 한참이나 가다가 크디큰 호수라고 해도 좋을 큰 연못가에 이르렀습니다. 연못 가장자리에는 얼음이 얼었어도 가운데는 얼지 아니하였습니다. 한네레는 우두커니 서서 연못물을 보았습니다. 눈은 하얗고 밤은 고요하고, 어쩐지 그 연못에서 어느 누군지, 예쁜 여자가 천당의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 한네레는 그 소리에 마음이 쏠려서, 그냥 그 노래 소리를 따라 터벅터벅 걸어가서 연못물에 풍덩 들어가 버렸습니다.

슬프고 아프고 한 이 세상을 떠나서, 천당에 가서 어머님도 뵈옵고, 어머님 옆에서 따뜻하게 살고 싶어서 어린 생명이 죽은 것이었습니다. 불쌍한 한네레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벌써 동네 사람들에게 건지워서 그이들이 사는 빈민원의 한 구석방 침대 위에 누워 있을 때였습니다. 조용하고 깨끗한 방 한편에 자기가 누워 있고, 누워 있는 머리맡에 촛불이 화안하게 켜 있고, 그리고 자기 침대 옆에 늘 길거리에서 보던 소학교 교장 선생님이 손목을 잡고 가만히 앉아 계셨습니다.

이 집 빈민들과, 이 선생님의 지극히 친절하신 사랑과 정성으로 구원해 주셨을 뿐 아리라, 워드 선생님께서는 선생님 따님의 옷까지 벗겨다 젖은 옷과 바꿔 입혀 주시고, 자기 외투까지 벗어서 덮어 주시고, 의사를 급히 불러 속히 주선하신 덕에 거의 다 죽었던 한네레가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여러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이 해로울까 하여 모두들 물러가서, 되도록 이 방을 조용하게 하고 교장 워드 선생님만 앉아 계신 것이었습니다. 간신히 눈을 뜬 불쌍한 한네레는 물끄러미 워드 선생님을 보더니,

“에그, 우리 아버지가 여기는 아니 왔습니까? 네? 에그 무서워!”

하면서 무서워하였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그 소리를 듣더니, 그만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면서 그윽히 고요하고 다정한 음성으로,

“오오, 여기는 너의 아버지가 오지 않았다. 안심하여라. 이 집에 있는 사람들은 돈은 없어도 마음만은 끔찍이 착하고, 사랑 많으신 이뿐이다. 오오, 한네레야, 아무 걱정 말고 어서 잠이 들어라, 으응. 잠이 들어야 얼른 낫는단다. 아아, 손에서 그저 피가 나는구나…….”

“에그, 그 아버지가 여기는 오지 않았으면……. 네, 선생님! 오더라도 선생님께서 못 들어오게 해 주셔요…….”

“오오, 염려 마라. 오더라도 내가 못들어오게 할 테니 안심하고 어서 자거라. 잠이 잘 들어야지 얼른 낫지.”

안심하는 듯이 한네레는 잠자코 눈을 감아, 잠이 오는 듯하더니 다시 눈을 뜨고 선생님을 보면서,

“그런데, 죽어서 천당에를 가면 거기서 어머니를 만나서 같이 살 수가 있다더니, 암만해도 천당도 안 뵈고, 어머니도 못 만났어요,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만납니까, 네? 어머니를 만나든지 언니를 만나든지…….”

“천당에 가서 어머니를 만난다는 것은 거짓말이란다. 그것 봐라. 너 이번에 천당에 가려고 죽으니까, 어디 천당이 있니? 다시는 그런 말 듣고 그런 일 하지 마라. 그래도 살아 있어야 어머님을 생각할 수도 있고, 어머님 꿈이라도 꿀 수가 있지. 죽어 버리면 그도저도 다 못한다. 그나마도 생각할 수도 없고, 꿈에도 볼 수가 없고……. 네가 살아 있어서 늘 잊지 않고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으면, 그 생각되는 어머니는 늘 네 맘을 떠나지 않고 계시지. 네가 죽으면, 그도저도 그만 아니냐? 자아, 그 이야기는 그만두고 조용히 잠이 들도록 하여라!”

한네레는 폭 가라앉은 몸을 까딱 못하고, 누워서 한숨을 가늘게 쉬더니, 눈을 스르르 감았습니다. 간신히 한네레는 잠이 들었습니다. 숨소리도 안 들리게 잠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한네레의 잠든 것을 보고는 가만가만 발소리 없이 밖으로 나갔습니다.

……방 속이 죽은 듯 고요하였습니다. 쓸쓸한 듯이 혼자 발발 흔들리고 있던 촛불이 저절로 부시시시 꺼져 버리고, 방 속이 캄캄하여졌습니다. 아무 소리도 없이 캄캄한 방 속이 고요하였습니다.

그러더니, 별안간에 어디서 왔는지 무섭고 사나운 마데른이 한 팔은 부르걷고, 한 손에 몽둥이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얼굴은 술을 먹어 그런지, 붉고도 퉁퉁 부어 짐승 같고, 크고 무서운 두 눈을 사자같이 굴리며, 입을 악물고 달려들 듯이 섰습니다.

한네레는 침대 위에서 소리도 못 지르고, 발발 떨고만 있었습니다.

“무엇? 내가 그렇게 무서워? 너를 구박했어? 네가 내 자식이야? 내 자식이야? 안 일어날 터이냐? 어서 일어나서 불을 지펴라. 안 일어나면 죽일 터이니!”

하는 소리에 한네레는 늘 집에서 하듯이 침대에서 뛰어내려서 화덕을 찾다가 그냥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 때 마침 소학교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불 꺼진 것을 보고 곧 촛불을 켰습니다. 불을 켜고 꼼짝 못하는 병자 한네레가 침상에서 내려와 쓰러져 기절한 것을 보시고, 깜짝 놀래어, 안아서 침대 위에 뉘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한네레는 버둥버둥하면서,

“에그! 아버지이, 아버지이.”

하고 소리치며, 애원하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니다, 나다 나야. 교장 선생님이 잠깐 일이 계시다고 해서 내가 왔다.”

“에그, 선생님! 아버지가 갔습니까?”

“으응? 아버지가 언제 왔었니?”

“지금 와서 나를 몹시 때리려구 했는데요. 아주 갔습니까?”

“아마 네가 꿈을 꾸었나 보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어서 잠을 자거라.”

“아아, 무서워……, 아버지, 무서워…….”

“내가 옆에 있으니까 괜찮다. 어서 잠이 들어라. 그래야 얼른 낫지…….”

“또, 그런 꿈을 꾸면 어쩝니까……?”

“아니다. 인제는 그런 꿈이 아니 온다. 아무 생각을 말고 조용히 잠만 들어라!”

한네레는 또 한 번 한숨을 가늘게 휘 쉬고 스르르 눈을 감았습니다.

잠드는 사람같이 힘없이 가볍게 두 눈을 조용히 감은 한네레의 귀에는, 어디서인지 모르게 여러 아이들의 노래가 가늘게 멀리 들렸습니다.

  자아장 착한 아기 잠 잘 자거라.
  뒷동산에 눈이 와서 희기도 하다.
  하늘에서 내려운 눈님의 아기,
  소리없이 누워서 잠도 잘 잔다.
  자아장 착한 아기 잠 잘 자거라.

한네레의 귀에는 이 노래가 얼마나 곱고 아름답게 들렸겠습니까? 아무 생각 없이 정신이 맑아서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노래가 다시 들리지 아니하게 되니까 그 노래를 한 번 더 들려 달라고, 여선생님에게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선생님께선 지금 그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므로 무슨 노래냐고 물으셨습니다.

“자아장 착한 아기라 하는 노래.”

라 하니까, 여선생님은 어서 잠들라고 불을 끄시고, 그리고, 고운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사랑 많으신 여선생님이 잠들기만 바라는 정으로 부르시는 맑고 고운 노랫소리는 조용하고 컴컴한 속에 깨끗이 울렸습니다. 어린 한네레는 또 노랫소리를 아무 생각도 없이 듣고 있더니 이윽고 사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여선생님은 노래를 그치고,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계셨습니다. 그윽히 고요하였습니다.

선녀같이 부스스 소리도 없이 캄캄한 속에서, 하얀 옷 입은 어여쁜 색시가 침대 옆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한참이나 머뭇머뭇하다가 가틀고 어여쁜 목소리로,

“한네레야, 한네레야.”

하고, 불렀습니다.

“에그, 언니!”

소리를 쳤습니다. 거기는 과연 한네레가 이 때까지 기원하던 언니가 온 것이었습니다. 몸을 꼼짝 못하였습니다. 반갑고 기꺼운 한편에 이 때까지 고생하면서 살던 설움이 북받쳐 그냥 누운 채로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측은한 그 꼴을 보고, 언니는 그만 아무 인사도 못하고 울기만 하였습니다.

“언니이, 이 때까지 어떻게 어떻게 언니가 보고 싶었는지 모르우. 어머니가 안 계시고, 보고 싶은 이가 언니 하나밖에 없었어요.”

“오오, 한네레야,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이 나 역시 이 세상에서 너 하나를 어떻게 보고 싶어하였는지 모른다. 밤이나 낮이나 남 아니 보는 데서 나는 이 날까지 울면서만 지냈단다. 한네레야, 그래도 너는 어머니나 모시고 같이 있었지……. 나는 단 혼자서 쓸쓸하게만…….”

“그래도 어머니 돌아가신 후에는 어떻게 견딜 수 없이 매를 맞았는지, 날마다 눈물이 마르는 때가 없었어요. 그럴 적마다 어머니 생각과 언니 생각이 어떻게 나는지 견딜 수 없었어요. 언니는 그렇게 맞지는 않고 살았겠지요…….”

“오오, 한네레야, 나는 구박을 받다 못해서 굶어 죽었단다.”

“으응? 굶어 죽었어요? 아아, 언니마저……, 언니마저 죽었구려…….”

“오오, 한네레야, 나는 죽은 혼이란다.”

“아아, 언니…….”

두 줄기 피나는 눈물은 비오듯 흘렀습니다. 그 중에도 언니마저 잃고, 영영 홀몸이 된 어린 한네레의 애달픈 눈물이 한이 없이 자꾸 흘렀습니다. 언니의 혼은 눈물을 씻고 이야기를 이었습니다.

“파리 시가가 그렇게 번화한데도 나는 구경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이른 아침부터 밤이 깊기까지 집안 일을 온통 다 하여도 그래도 매는 매대로 맞고, 밤이면 고단하여 졸기만 하여도 바늘이 손을 찔러서 어느 날 손에서 피 아니 나 본 적이 없었단다. 겨울이 되어도 털옷커녕 버선 한 짝 신어 보지 못하고 지냈단다. 아아, 한네레야, 그럴 적마다 나는 창가에 홀로 앉아서 얼마나 슬퍼서 울었는지 모른다. 그나마 그래도 억지로 억지로라도 참아 가다가, 이 한 달 전에는 병이 대단히 나서, 참고 일을 할 수가 없어서 누워 있었더니, 꾀를 핀다고 바늘로 하도 찌르기에 견딜 수 없어서, 죽기를 결단하고 일어나서 일을 하다가, 병이 점점 대단해져서 아주 쓰러져 주웠더니, 약 한 첩 지어다 주겠니, 물 한 그릇을 데워다 주겠니, 다만 혼자 아픈 몸을 가지고 몇날 며칠 밤을 울었는지 모른단다. 약은 아니 주더라도 조석이나 잘 주었으면 그래도 살았을는지 모를 것을, 일 아니 하는 애는 굶겨야 한다고 내버려 두어서, 닷새를 굶고는 그냥 죽었단다. 나는 이왕 그렇게 죽었거니와 네가 마저 이 지경이 되어서 어쩌잔 말이냐?”

“아아, 언니이, 언니마저 죽고, 나 혼자 어떻게 살라구…….”

“그러면 어쩌니? 너 하나는 잘 살아야지……. 죽기 전까지는 어떻게 하든지 이렇게 고생을 하다가도, 어느 때든지 보고 싶은 한네레와 만나서 잘 살 때가 있겠지 하였더니, 그만 만나지도 못하고 죽어서……, 어떻게 유한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렇게 죽은 후에야 유한이 된들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지……. 잘 있거라, 나는 가야 한다. 부디 잘 있거라…….”

하고는, 연기같이 스르르 사라져 버렸습니다. 한네레는 역시 몸은 꼼짝을 못하면서, 언니 섰던 곳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한숨을 휘이 쉬고,

“아아, 인제는 한 가지 소원도 끊어지고 말았다. 이 날 이 때까지 그 고생을 하면서도 언니 하나를 만나려고 참고 참고 해 왔더니 언니까지 죽어버리고……, 이 넓은 세상에 누구를 바라고 살겠니? 아아, 물에 빠졌을 때에 아주 죽어 버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선생님,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여선생님은 고개를 번쩍 들고,

“으응, 왜 안 자니?”

“선생님, 불을 켜 주세요.”

선생님이 불을 켜 놓으시고,

“그렇게 잠이 아니 와서 어쩌니……. 잠을 잘 자야 낫는다는데…….”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영영 죽겠습니다…….”

“응? 왜 그런 소리를 하니? 그런 생각을 해서는 못쓴다. 어서 나아서 남처럼 공부도 하고 해야지…….”

“선생님, 저는 공부를 시켜 줄 사람도 없고, 기뻐해 줄 사람도 없고, 제게는 못살게 구는 사람밖에는 아는 이가 없습니다……. 선생님, 저의 언니가 한 달 전에 굶어 죽었대요…….”

“무어?, 그게 무슨 소리냐? 또 꿈을 꾸었니, 응?”

그러나, 다시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의사가 약병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진맥(진찰)을 해 보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근심하는 모양이더니 여선생님께 약 먹일 일을 부탁하고 나갔습니다.

여선생님은 약을 컵에 따라 한네레에게 권하였으나 한네레는 일체 입을 대지 않았습니다. 눈을 꼭 감고 가만히 누웠습니다. 또, 먼 데서 부르는 노랫소리가 가늘게 가늘게 한네레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자아장 착한 아기 잠 잘 자거라.
  아픈 생각 슬픈 울음 울지를 말고,
  따뜻하고 깊이 없는 꿈 속의 나라.
  소리 없이 조용하게 잠 잘 자거라.
  자아장 착한 아기 잠 잘 자거라.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듣고 또다시 한네레는 잠이 소올솔 들었습니다. 희고 고운 날개 달린 아이들이 어린 한네레의 침대를 에워싸고 돌면서 춤을 추더니, 이윽고 그나마도 사라져 버리고 다시 방 속은 무섭게 조용한 속에 가라 앉았습니다.

아아, 이번에야말로 어린 한네레는 잠이 깊이 들었습니다. 영영 깨지 아니하는 깊은 꿈 속에 들었습니다.

괴롭고 아프고 쓸쓸하던 섧던 짤막한 일생을 마치고 이렇게 죽어 간 어린 한네레는, 교장 선생님과 여선생님과 빈민원 어린 학생들이 울면서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으면 긴긴 꿈 속 나라로 들어갔습니다. 가장 섧게 가장 애닯게 눈물의 세월을 보내던 어린 동무 한네레는, 사랑하시는 어머님과 그립고 그립던 언니의 꿈을 따뜻이 꾸면서, 마지막 듣던 노래를 늘 듣고 있을 것입니다. 어느 때까지든지 어느 때까지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