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선물/요술왕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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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집]

옛날 옛적 어느 깊은 산 속에 가난한 나무장수 노인이 있었습니다. 마나님도 없고, 아드님도 며느님도 없고, 다만 손녀 색시 세 사람만 데리고 있었습니다. 손녀딸 세 색시는 그야말로 천하에 당할 사람이 없게 귀엽고 어여뻤으나, 원래 늙은 영감이 혼자서 도끼 하나로 나무를 찍어다 파는 나무장수였으므로, 살림이 가난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노인이 산속에서 한나절 나무를 찍다가 도끼를 놓고 허리를 숙이면서 탄식하는 말이,

‘아이구, 나는 언제나 이 노릇을 아니하게 될까? 이렇게 머리를 하얗게 세도록, 날마다 나무를 찍어도 돈은 한 푼도 모이지 않고……. 그래도 하느님이 도와 주시려면, 손자 사위나 부자 사위를 얻어서 덕이나 보게 되련마는 언제나 이 노릇을 면하게 되려나. 아아 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별안간에,

“왜 불렀나, 왜 불렀어?” 하는 소리가 나며, 그 앞에 사람이 있으므로 보니까, 아주 훌륭한 옷을 입은 키 큰 남자 한 사람이 서서, 왜 불렀느냐고 묻고 섰습니다. 노인은 이상하여서,

“네? 무슨 하실 말씀이 계십니까?” 하니까,

“무슨 일이냐고는 내가 물은 말인데…….” 하면서 이상해 하였습니다.

“아니오. 저는 아무 일도 없었읍니다마는 당신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늙은이가 부르니까 내가 왔지…….”

“네 네? 제가 부르다니요? 언제 불렀습니까”

“방금 여기서 나를 부르지 않았어?”

“그런 일은 없습니다.”

“딴말 말아! 늙은이가 방금 아아 아아 하지 않았어?”

“네에, 그건 저 혼자 신세 타령을 하고 한숨을 쉬느라고 그랬습니다.”

“그래, 그 아아 하는 게 내 이름이야…….”

“네? 아아가 당신 이름이세요?”

“그래, 나는 이 산 속에 있는 요술왕인데, 내 이름은 아아라네. 지금 자네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는 무슨 소원이 있는 모양이니, 소원이 있거든 소원대로 이야기를 하여 보게……. 나는 요술왕이니까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줄 수가 있으니…….” 하는 소리를 듣고, 이때까지 놀랐던 노인은 그제서야 마음을 놓고,

“네, 그럼 말씀을 다 하겠습니다. 소원은 이 늙은 것이 무슨 소원이 있겠습니까. 다만 집안이 가난하여서 이렇게 늙도록 나무찍기를 면치 못하고, 손녀딸 셋이 있는데 옷 하나 변변히 못 입히고, 음식 한 가지 변변히 못 먹이고 사는 게 제일 유감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나무를 찍다가 허리가 아파서 허리를 숙이면서, 신세 생각을 하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하였더니 요술왕은 아주 정답고 부드러운 소리로,

“그건 딱한 형편이로군……. 그러면 이제부터 내가 구원해 줄 것이니, 내 말을 듣겠나? 다른 게 아니라, 나 있는 대궐에 지금 내 심부름하여 줄 사람이 없어서 구하는 중이니, 자네 손녀딸 하나를 내게로 보내 주게. 그러면 그 대신 돈을 많이 주어서 잘 살도록 해 줄 것이니…….” 하는 소리를 듣고 노인은 기꺼워하였습니다. 가난한 집에 밤낮 데리고 있어서 고생만 시키느니보다도, 저런 훌륭한 이에게로 보내었으면, 저도 좋고 집안도 잘 살겠고 하니까 얼른 대답하였습니다.

“네, 그럼 내일 이맘때 이리로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럼 내일 이맘때 여기서 뵙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는 곧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삼형제가 모여 앉아 노는 것을 자기 앞으로 불러 앉히고, 그 이야기를 다 하고, 그 중 큰형을 보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늘 이렇게 놀다가 그렇게 떨어져 가면, 다시 못 만날 줄 알고 큰색시는 싫다 하였으나, 다른 먼 곳도 아니고 요 산속 대궐이니까, 가더라도 종종 만나게 될 것이니 가라고 하는 조부님 말씀에, 어쩌는 수 없이 가기로 하였습니다. 삼형제가 내일은 형을 작별을 할 생각을 하고, 그 밤은 한자리에 누워서 잠도 안 자고 울고만 새웠습니다.

그 날 낮에, 어저께 그 시간쯤 하여, 노인은 큰색시를 데리고 어제 그 자리로 갔더니, 요술왕 아아는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인이 데려온 천하에 제일 어여쁜 색시를 받고, 그 대신 묵직하고 큰 돈주머니를 노인에게 주면서,

“자아, 색시는 분명히 내가 데려다 기를 것이니 그리 알고 가되, 무슨 일이든지 나에게 할 말이 있거든 이레만에 한 번씩 이곳에 와서 나를 부르게. 그러면 어느 때든지 올 것이니…….” 하고 이르고는 돌아서더니만 그만 사라져 버렸습니다. 물론 색시도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요술왕은 아무도 모르게 대궐로 간 것이었습니다.

정든 두 동생을 이별하고 온 색시는, 요술왕을 따라와 보니까, 정말 솔숲 속에 훌륭한 대궐이 있고, 모든 것이 전에 보지 못하던 찬란한 것뿐이어서, 마치 요지경 속에 들어온 것같이 좋고 기꺼웠으나 그러나 그중에 여기저기 사람의 뼈다귀와 해골이 쓰레기처럼 쌓여 있고, 어디든지 썩지도 아니한 사람의 송장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에그머니!” 소리를 지르고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나 요술왕은 그것을 보고 빙글빙글 웃으면서,

“그렇게 놀랄 것 무엇 있니? 너도 하라는 심부름이나 잘 하고 있으면 잘 기르고, 그렇지 않으면 죽여서 내 양식거리나 만들고 할 뿐이지…….”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서, 사시나무 떨 듯하는 색시를 보고, 태연히 은근한 소리로 다시,

“어떻게든지 해서 믿을 만한 사람을 구해 두어야 할 터인데, 이때까지 별별 사람이 다 왔었으나, 한 사람도 나 하라는 대로 잘 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모두 죽어 송장이 되었단다. 이번에야말로 너는 인물도 잘생기고 귀엽기도 하니, 나 하라는 대로 잘만 하면 잘 길러서, 내 색시가 되어서, 호강스럽게 살게 할 것이니, 나 하라는 대로 잘 하여라.”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색시는 저 해골과 송장도 처음에는 자기처럼 왔다가, 요술왕의 말을 듣지 않고 죽은 것인 줄을 알고 어찌해야 좋을 줄을 모르고 떨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요술왕은 광 속에서 보기에도 무서운 사람의 다리 하나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리를 색시 앞에 놓고,

“자아, 나는 사흘 동안 어디를 갔다 올 것이니, 그 안에 이 넓적다리를 먹어 버려라. 응? 꼭 먹어야 한다!” 이르고, 어디론지 나갔습니다.

이것이 요술왕의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사람의 다리를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보기에도 소름이 끼치고 무서워서, 색시는 그대로 두고 본 체도 아니하고 있다가, 그 다음 날, 요술왕이 돌아올 생각을 하니까 그냥 두고 있을 수도 없어서 그 다리를 집어다 마루 밑에 갖다 감추었습니다.

요술왕은 돌아와서 제일 먼저,

“그 다리는 다 먹었느냐?” 고 물었습니다. 색시는 어쩌는 수 없이,

“먹었습니다.” 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요술왕은,

“어디, 그 다리는 요술을 걸어논 다리니까, 정말 먹었나 아니 먹었나 물어보자.” 고, 벌떡 일어나더니 커다란 목소리로,

“이 애! 이 애! 다리야! 어디 있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상하게도

“네, 네,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마루 밑에서 뛰어나온 다리를 보고 요술왕은 불같이 성이 나서,

“예끼, 요 앙큼한 년!” 하고, 그냥 죽여서 광 속에다 넣어 버려 두었습니다.

2[편집]

어여쁘고 착한 색시가 그렇게 불쌍하게 죽은 줄은 알지 못하고, 노인은 이제 살림은 넉넉해졌으나, 손녀딸 소식이 궁금하여서, 이레되는 날 낮에 그 산에 가서 요술왕을 불러서 아아와 만났습니다.

“저는 덕택으로 잘 삽니다마는, 그 애가 잘 있는지 궁금합니다.”

“으응, 잘 있고말고, 좋은 대궐에 좋은 음식에 아주 호강하고 있지……. 그런데 집에 있는 동생 생각을 하고, 혼자서 퍽 쓸쓸해 하는 모양이니, 둘째 색시도 와서 같이 살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으이.” 하니까 노인은

“딴은 그렇겠습니다. 그 어린 게 혼자 떨어져서 퍽 심심해할 터이지.” 하고, 돌아와서는 둘째 색시를 또 데려다 주었습니다.

둘째 색시는 오고 싶지도 않은 것을 언니가 쓸쓸해 한다는 말을 듣고 왔더니 언니는 만나 볼 수도 없고, 그 무서운 송장 많은 곳을 사흘 동안 혼자 지키고 있되, 그 안에 사람의 넓적다리를 먹으라고 명령까지 받고 혼자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다리는 본 체도 아니하고, 다만 언니를 만나려고 이틀 동안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어서 보지 못하고 사흘이 다 지나서, 요술왕이 올 생각을 하니까, 겁이 나서 그 다리를 지붕 위에다 감추었습니다.

요술왕은 돌아오더니 우선 다리를 먹었느냐고 묻는지라, 먹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벌떡 일어나서,

“이 애! 이 애! 다리야! 어디 있느냐”

하고 크게 부르니까, “네, 네, 여기 있습니다!” 하고, 다리가 지붕에서 뛰어 내려왔습니다. 요술왕은 그것을 보고, 얼굴이 빨갛게 성이 나서,

“요 앙큼한 년!” 하고, 달려들어 그냥 죽여서 또 광 속에 넣어 버렸습니다.

3[편집]

둘째 색시까지 이렇게 불쌍하게 죽은 줄을 알지 못하고, 혼자 남은 색시와 노인은 퍽 보고 싶어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래서 이레가 되기를 기다려서, 또 그 자리에 가서 요술왕을 불러 만났습니다.

“아이들이 어떻게나 지냅니까? 잘들 있습니까?”

“잘들 있고말고……. 살이 포동포동 쪄서, 아주 달덩이같이 소담스럽게 더 예뻐졌다네……. 그런데 집에서 끝의 동생 마르자가 혼자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고, 날마다 울며 지내더니 오늘은 나를 보고, 오늘 가거든 마르자를 데려다 달라고 하데…….” 하는 소리를 듣고 노인은,

“그들을 다 보내 놓고 나 혼자 지낼 수는 없지마는, 저희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어쩝니까? 보낼 수밖에 없지요.” 하고, 집으로 돌아와 그 이야기를 하여 주고, 마르자를 데려다 요술왕에게 주어 보내고, 혼자 앉아서 자꾸 울고 있었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혼자서, 언니를 만나고 싶어서 울고 있던 마르자가 요술왕을 따라와 보니까, 언니는 하나도 보이지 아니하고, 대궐 속에는 해골과 송장뿐이므로 벌컥 놀랐으나, 원래 이 마르자 색시는 얼굴도 예쁘거니와 몹시 영악하고 대담하여서, 까딱 아니하고 모든 것을 정신 차려 보고 있었습니다. 요술왕은 이번에도 또 사흘 동안 어디 다녀올 터이니, 그 안에 집을 보고 이것을 먹으라고, 이번에는 팔뚝을 하나 주고 나갔습니다.

마르자 색시는 이것을 먹을 수도 없고, 그냥 둘 수도 없고, 어찌할까 근심하고 있는데, 그 때 어디선지 공중에서 노래 소리가 들리면서,

여보 여보 마르자, 어여쁜 색시,

그까짓 것 그다지 근심 마셔요.

불에 태워 갈아서 재를 만들어

수건에다 잘 싸서 배에 감으오.

수건에다 잘 싸서 배에 감으오.

이렇게 가르쳐 주는지라, 마르자 색시는 그 노래대로 불에 살라서 갈아서 재를 만들어 가지고, 수건에 싸서 배에다 감고 태연히 있었습니다. 요술왕이 돌아왔습니다.

“팔뚝은 어쨌니? 잘 먹었니?”

“네, 맛나게 먹었습니다.” 하니까 요술왕은 놀라면서,

“무어 정말 먹었어?” 하고는 벌떡 일어나서,

“이 애! 이 애! 팔뚝아!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니까,

“네 네에, 여기 있습니다.” 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면서도 팔뚝은 지붕에서도 마루 밑에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요술왕은 이상히 여기면서,

“이 애! 어디 있느냐? 있거든 얼른 나오너라!” 하니까,

“암만 해도 나가는 수가 없습니다.”

요술왕은 화가 나서,

“거기가 어디란 말이냐?”

“마르자의 배입니다.”

“무어! 마르자의 배? 하하, 그럼 정말 먹은 게 분명하구나…….”

“오늘에야 믿을 만한 색시를 얻었다. 인제 너는 죽이지 아니하고 기를 것이니 심부름 잘 하고 있거라.” 하면서 퍽 귀애했습니다. 그 후로는 마르자 색시는 아무 일 없이 지내게 되었으나, 다만 두 분 언니가 보이지 않아서, 만날 수 없는 게 큰 설움이었습니다.

집에서 지낼 때보다도 더 언니가 못 견디게 보고 싶고, 그립고, 단 한 분 계신 할아버지께서는 어찌 지내시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하루는, 마르자가 요술왕의 방을 소제하다가, 그 방 구석에서 조그만 약병 하나와 열쇠 꾸러미를 얻었습니다. 마르자 색시는 그것을 요술왕에게 보이고,

“이것이 무엇하는 것입니까?” 하고 물어보니까, 요술왕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으응, 이것은 내게 그중 중한 것인데, 특별히 너니까 이야기해 주마. 이 병 속의 약은 죽은 송장이라도 먹으면 살아나는 약인데, 어떤 송장이라도 죽은 지 스무하루만 넘지 않았으면 살아나는 귀중한 약이다. 이 열쇠는 저 뒷광의 열쇠란다. 이 두 가지 귀중한 것을 오늘부터는 특별히 너에게 맡겨 둘 테니 조심해서 맡아 가지고 있거라.” 하면서, 그 두 가지를 마르자 색시에게 맡겼습니다. 요술왕은 이 마르자 색시를 잔뜩 믿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르자 색시는 그것을 받아서 잘 간수하여 두었습니다.

그 후 요술왕이,

“오늘 가서 내일 아침 때나 돌아오겠다.” 이르고 나간 틈을 타서, 마르자 색시는 그 열쇠와 약병을 내어 들고 뒷광을 열었습니다. 거기 혹시 언니가 있지나 아니할까 하는 생각으로 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도 언니는 있지 아니하고, 그 광 속에는 어느 나라 왕자님 같은 복색을 입은 남자가 죽어 송장이 되어 쓰러져 있었습니다. 마르자 색시는,

‘이 이가 혹시 죽은 지 스무하루만 넘지 않았으면!’ 하면서 그 입에다 약을 흘려 넣었더니, 이상도 하지요. 그 남자 기사(騎士; 말타는 무사)는 기지개를 펴더니, 자다 일어나는 사람처럼 일어나서는, 마르자 색시를 보고,

“나를 살려 준 이가 당신이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마르자 색시는,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무슨 일로 여기 와서 죽어 계셨습니까?” 하고 되물으니까, 그는 대단히 기뻐하면서,

“이렇게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이 나라 왕자인데, 이 집에 있는 악마를 처치하러 왔다가, 불행히 그 악마의 요술에 걸려서 죽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려 주셔서 감사하지마는, 그 악마란 놈이 살아 있으면 도망해 나갈 수가 없으니까, 될 수 있으면 당신이 그 악마에게 꾀를 써서, 그놈을 어떻게 하면 꼼짝 못하게 죽이게 될는지, 그것을 알아다 주셨으면 좋겠소이다. 그러면 그놈을 아주 죽여 버리고 나서, 이 속에는 나 외에도 죽은 사람이 많이 있는 모양이니까, 모두 살려가지고 나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그 꾀를 알 때까지 여기서 죽은 송장인 체하고 있을 터입니다.” 하므로, 마르자 색시도 그럴 듯하여, 그 광문을 다시 닫고 돌아와 요술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튿날 아침때, 요술왕은 돌아와서 곧 광을 열어 보았으나, 왕자의 송장도 그대로 있고, 다른 송장들도 그대로 있으니까, 안심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아침상을 받았습니다. 마르자는 아침을 먹는 요술왕의 상 옆에 앉아서 아주 다정한 듯이,

“그런데, 저어 여쭈어볼 게 있는데요…….”

“무엇 말인가 응? 무어든지 들어 주지.”

“저를 꼭 신용해 주시고 무엇이든지 제게는 말씀해 주시지요?”

“그러구말구.”

“그런데 아직도 제게 말씀 안 하신 게 있지 않습니까?”

“무얼까? 별로 마르자에게 아니한 말은 없는데…….”

“다른 것보다 제일 먼저 말씀하셔야 할 것인데 잊어버리셨지요?”

“제일 먼저 말할 것? 그게 무얼까…….”

“원래 힘이 세시고, 요술을 잘 부리시니까 누가 대항할 사람이 없지만, 그 대신 사람보다도 아무것보다도 제일 무섭고 겁나는 것은 하나 있겠지요?”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하나 있기는 있지……. 그러나 그건 알아 무얼 하나. 내가 무서운 것을 마르자가 알면 무얼 하나?”

“그걸 말씀하셔야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지만, 만일 제일 무서운 것이 무슨 물건이면 주의하여서, 이 방에나 이 집 근처에 그런 것이 있지 않도록 하고, 또 혹시 그 무슨 짐승 같으면, 요리할 때도 그런 무서운 것의 고기가 아니 들도록 주의를 하지요. 그런데, 그걸 알아야지 주의를 하지요.”

“딴은 그렇군. 내가 잊어버리고 있었구먼. 아암, 그런 걸 알고 있어서, 내 신변에 그런 것이 있지 않도록 주의하여야지……. 내가 세상에 무서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나 꼭 한 가지 원수의 물건이 있어서 안 되었는데, 그것은 버드나무 잎사귀란다. 그 버들잎이 내 귀에 닿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지게 되어서, 그놈이 제일 상극이니 그 버드나무 잎이 내 신변에 오지 않도록 주의해요. 응?” 하고 일렀습니다.

그 날 밤에는 어디가 무슨 일을 하였는지, 몹시 고단한 모양이어서 그냥 자리에 가 누워 잠이, 깊이 들었습니다. 그 틈을 타서 마르자 색시는, 마당에 나가서 버드나무를 찾았더니, 마침 한편 구석 그늘에 버드나무가 한 나무 있어서 그 가지 하나를 꺾어서 감추어 들고 넌지시 들어왔습니다. 깊이 잠든 요술왕 침대 옆으로 마르자는 숨을 죽이고 가만가만 갔습니다. 그때 요술왕이 몸을 틀기에 깬 줄 알고, 마르자는 깜짝 놀랐으나 그냥 돌아누웠을 뿐이었습니다. 마르자는 가만가만 치마 속에서 버드나무를 꺼내서, 버들잎을 요술왕 귀에 틀어 넣으려고 하는데 기어코 요술왕이 잠에서 깨어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버들잎이 귓구멍에 걸려서 요술왕은 그냥 다시 거꾸러졌습니다.

요술왕이 죽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마르자는 곧 뒷광을 열고 왕자님을 일으켰습니다.

“그래,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는지 아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니오, 벌써 제가 죽여 놓고 왔습니다.” 하여 안심을 시켜 놓고, 왕자님과 둘이서 광마다 열어 보니까 송장이 둘씩 셋씩 있었으나, 아무리 약을 먹여도 죽은 지 스무하루가 지난 모양이어서 아무도 살아나지 못하였습니다. 맨 나중에 한 광을 여니까, 거기 반갑고 반가운 두 언니가 누워 있었습니다. 물론 여기 온 지가 스무 날이 되지 아니하니까, 약을 흘려 넣어서 살려내었습니다. 꽃같은 색시 형제는 거기서 반갑게 만나서 어찌 좋아하는지 몰랐습니다.

나가는 길은 왕자님이 잘 알고 계셨으므로, 왕자님과 색시 삼형제는 오래간만에 바깥 세상에 나와서, 우선 산 밑 조부님에게로 갔습니다. 돈이 많아서 집도 좋아지고, 살림도 넉넉하여졌으나, 손녀딸 생각을 하고 늙은 노인은 혼자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시에 돌아온 삼형제를 보고, 어찌할 줄을 모르게 좋아하였습니다. 오래간만에 만난 네 식구가 반갑고 기쁨에 날뛰느라고, 왕자님이 대궐로 돌아가신 것도 모르고들 있었습니다.

산중에 들어가신 후로 종적이 없어서, 근심하던 왕자님이 돌아오셔서, 나라님께서도 어찌 기뻐하시는지 몰랐습니다. 일반 백성들도 왕자님이 없어진 것을 몹시 근심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대단히 기뻐들 하였습니다.

4[편집]

그러나, 큰일 난 것은 요술왕이 아주 죽지 아니하고, 살아난 일이었습니다. 귓구멍에 버들잎이 걸려서 거꾸러졌던 요술왕의 방에 바람이 솔솔 불어 들어와서, 그 귓구멍에 걸렸던 버들잎이 바람에 불려 떨어지자, 요술왕은 벌떡 일어나더니,

“에에, 고년에게 깜빡 속았구나…….” 하며 투덜투덜하면서 뒷광에를 가보니까 왕자도 없고 두 색시도 간 곳이 없으므로, 화가 불같이 나서 머리는 하늘로 치뻗치고, 두 눈은 범의 눈같이 번뜩이면서,

“에에, 요년의 마르자를 잡아다 원수를 갚아야겠다.” 고, 두 주먹을 쥐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 날 밤이었습니다. 고요히 자던 마르자가 언뜻 보니까, 무서운 악마 요술왕이 시뻘겋게 단 화젓가락을 들고, 두 눈을 호랑이같이 번뜩거리며, 방문을 부시시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것을 본 마르자는, 그만 죽는 듯이 까무러쳤습니다. 달아날래야 달아날 곳도 없어 하는 수 없이,

“할아버지!” 하고 소리를 치려 하였으나, 벌써 요술왕이 바싹 와 서서 한 손으로 모가지를 잔뜩 누르고 화젓가락을 번쩍 치켜들었습니다. 마르자는 그만 정신을 잃었습니다. 꼼짝 못하고 누워서 버둥버둥하는 그의 눈에는 다만 시뻘건 화젓가락 끝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요년! 요 앙큼한 년! 너 하나는 내가 꼭 믿고 잘 길러서 내 아내를 삼으려고, 모든 비밀까지 가르쳐 주었더니, 네가 나를 죽이고 형까지 왕자까지 살려 가지고 도망을 가? 너같이 앙큼한 년은 이렇게 화젓가락으로 두 눈을 지져 죽여야 한다!” 하고는, 그 화젓가락으로 마르자의 눈에 대고 누르려 하였습니다. 마르자는 그만 어쩌는 수 없이 한 손으로 그 시뻘건 화젓가락 끝을 덥석 잡고 억지로,

“에그머니!” 소리를 질렀습니다. 자기 소리에 자기가 깜짝 놀래어서 눈을 번쩍 떠 보니까 자기는 머리 위 침대 난간을 붙잡고, 이불을 차 내어 던지고, 몸에는 차디찬 땀이 쭉 흘러 있었습니다.

“아아, 꿈이어서 다행하였다. 그러나, 정말 그 악마가 살아났으면 어쩌나?” 생각하니까 몸이 쭈뼛하여졌습니다. 공연히 무섭기만 하여 잠은 다시 오지 아니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까 옆방인 언니 방에서 별안간,

“에그머니!”

소리치는 언니의 소리가 들리었습니다. 마르자는 벌떡 일어나서 방문을 사르르 열고 맨발로 나가서, 뒤꼍에 가서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사뿐사뿐 다시 와서, 언니 방을 들여다보니까 둘째 언니는 잔뜩 결박을 당하여 쓰러졌고, 정말 요술왕이 지금 버둥버둥하는 큰언니를 비끄러매고 있었습니다.

마르자는 얼른 그 버드나무 가지로 요술왕의 귀를 건드리니까, 요술왕은 그만 큰언니를 묶던 끈을 스르르 놓고 쓰러졌습니다.

마르자는 얼른 그 버들잎을 따서 요술왕 귀에 아주 깊이 틀어막았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일으켜, 쓰러진 요술왕을 잔뜩 얽어매어 놓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서 대궐로 가서 고하였습니다. 왕자님이 그 소식을 들으시고 병정 여덟 사람을 보내어 그 요술왕을 끓는 기름 속에 넣어서 죽이셨습니다.

그 후부터는 산속에 잡혀가서 죽는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레째 되는 날, 나라님 분부로 마르자를 데려다가 큰 잔치를 베푸셨습니다.

일반 백성은 장사와 사무를 쉬고, 이날을 즐겁게 보내었습니다.

그 후에 두 언니 색시도 다 각각 나라님의 분부로 훌륭한 곳으로 시집을 보내고, 늙은 노인은 대궐 뒤 조그마한 별당에서 한가히 지내게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