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계약론/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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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 권[편집]

다양한 형태의 정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확정해 보자. 그것은 지금까지도 잘 설명된 것은 아니다.

제1 장 정부에 대한 일반론[편집]

나는 독자들에게 이 장은 주의깊게 읽어야 된다고 주의를 주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주의를 집중하지 않기를 바라는 독자들에게 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기술이 없다.

모든 자유로운 행동을 만들어 내는 것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가 그 행동을 결정하는 의지이며, 다른 하나는 그것을 실행하는 힘이다. 내가 하나의 물체를 향해서 걸어갈 때 먼저 그 길로 가야될 것을 결심하고 두 번째로 나의 발을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 마비된 사람이 달리고자 결심할 때나 건강한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자 결심했을 때 그들은 단지 그들이 있는 곳에 계속 있게 된다. 정치체도 같은 두가지의 힘을 필요로 한다. 정치체도 동일하게 그러한 힘과 의지가 없을 때 아무 것도 있을 수 없고 있을 필요도 없으며 따라서 어떠한 것이 이루어 질 수도 없다.

우리들은 입법적인 권력이 사람들에게 속하고 또한 단지 속할 수 있다고 본다. 반대로 집행적 권력은 단지 법과 주권의 범위 밖의 특정한 명령 안에서 실행되는 까닭으로 집행권력은 입법권이나 주권이 가질 수 있는 일반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위의 2권 4장과 6장에서 설명하였다.

공적인 권력은 일반의지에 상응하여 그것을 불러들일 수 있고 집행할 수 있는 기관을 필요로 한다. 이를 통해서 국가와 주권자 사이에 의사소통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이 단지 집행기관에 불과하면서 주로 주권자와 혼동하는 정부를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정부란 무엇인가? 피지배인과 주권자 사이의 중개적 기관이며, 법을 집행하고 시민적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러한 기관의 구성원들을 매지스트레이트 혹은 킹이라고 부르며, 통칭하여 프린스라고 한다. 국민들이 군주에게 자신을 내맡기는 조약을 거부하는 학자들은 전적으로 옳다. 왜냐하면 그러한 조약은 단지 위임 조약에 불과하다. 정부의 통치자는 단지 주권자의 하수인으로서 고용관계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 손에 부여된 권력을 행사할 뿐이며, 그러한 권력은 주권자가 제한할 수도 변경할 수도 또한 기꺼이 환수해 갈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권리의 양도는 사회 구성체의 본질과 일치하지 않으며 사회적 결합의 목적에 반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정부를 집행적 권력의 입법적 실행이라고 부르며, 프린스나 매지스트레이트를 그러한 기구의 책임을 맡은 사람이나 기관이라고 부른다.

모두에 대한 모두의 관계 즉 주권자와 국가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매개체는 정부이다. 이러한 마지막 관계는 기하학적 과정에서 처음과 마지막 사이의 하나로 묘사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기하학적 과정 속에서 기하학적 평균이 정부가 된다. 정부가 사람들에게 주는 명령은 주권자로부터 받는다. 그리고 국가가 잘 균형잡혀 있다면 정부가 만들어 낸 권력의 산물과 한 편으로는 주권자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피지배인인 시민의 권력의 산물과 동등해야 한다.

게다가 이러한 균형관계는 비율을 파괴시키지 않고서는 변경될 수 없다. 주권자가 통치하려고 한다든지 집행권자가 입법을 하려한다거나 피지배인들이 복종하기를 꺼려한다면 질서는 무너지고 권력과 의지는 동시에 실행되기를 멈출 것이며 국가는 독재나 전체주의로 빠져들 우려가 있다. 마지막으로 양 극단 사이에 기하평균이 있는 것처럼 어떤 국가를 위한 하나의 가능한 훌륭한 정부가 존재한다. 그러나 수많은 사건들이 국가 내에서 발생할 수 있으므로 서로 다른 정부가 서로 다른 국민들에게도 좋을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시기의 국민들에게도 또한 유익하다.

이 양 극단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관계들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쉽게 비율로써 표현된 사람들의 수로서 예를 들 수 있다. 어떠한 국가가 1만명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주권자는 하나의 몸으로 간주되지만 피지배인들은 각 개인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주권자와 피지배인들의 관계는 1:10,000으로 표현되며 어떤 개인이 주권자에게 복종하지만 개인적으로 1만분의 1의 주권을 소유하고 있다. 만약에 인구가 10만명으로 증가한다면 피지배인으로서의 개인의 지위는 변하지 않지만 주권자로서의 그의 참정권은 10만분의 1로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그는 법을 형성하는 데 미치는 영향력이 10분의 1로 줄어들게 된다. 즉 다시 말해서 피지배인으로서의 지위는 항상 한 명의 개인으로 남지만 주권자 대 피지배인의 비율은 시민들의 숫자에 비례하여 줄어들게 된다. 이는 곧 국가의 크기가 커지면 그에 따라서 개인의 자유는 줄어듦을 의미한다.

내가 비율 증가를 말할 때 또 하나 더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일체감의 상실이다. 수학적으로 비율이 증가한다는 것은 인구학적으로 관계성이 소원해지게 됨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전자는 수학적으로 측정되는 것임에 반해서 후자는 일체성을 고려한 관계성으로 유사성에 의해서 판단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의지와 일반의지 사이의 관계성이 소원해진다는 의미는 국민들의 도덕감과 법 사이의 관계가 또한 그렇게 되어 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강제적인 권력이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좋은 정부는 인구 수에 비례해서 그 힘이 증가되어야 한다.

정부의 크기에 비례해서 공적 권위를 획득한 사람들이 그들의 권력을 남용할 우려가 더 커짐을 의미하므로 그것은 곧 정부가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이 필요한 만큼 국민들이 정부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여기서 절대적 권력의 크기를 말하지 않겠다. 단지 나는 국가의 다른 구성요소들 사이의 상대적인 권력을 말할 뿐이다.

이러한 이중적 관계로부터 도출된 주권자, 군주, 국민 사이의 기하학적인 과정은 임의의 과정이 아닌 정치체제의 본질로부터 나온 필연적인 결과이다. 또한, 피지배인으로서의 국민은 비율의 정도가 크든 작든 단순히 일체감으로 표현되며 정부는 결과적으로 그에 따라 변화하게 된다. 이것은 유일하고 절대적인 정부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즉 다양한 크기의 정부가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종류의 정부가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시스템을 비웃는 누군가는 기하학적인 평균을 찾아서 정부를 구성하려고 한다면 사람들 숫자의 제곱근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나는 단지 여기서 사용된 숫자는 예를 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말한 비율은 단지 사람들의 숫자에 의한 것이 아닌 활동량에 의하여 일반적으로 더 용이하게 측정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내가 덧붙히고 싶은 것은 내가 잠시나마 나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하여 수학적 도구를 빌려오기는 했으나 나는 여전히 수학적 엄밀성이 도덕적 계산을 대체할 수 없다고 믿고 있다.

정부는 작지만, 정치제는 크다. 그것은 적극적으로는 주권자와 같이 소극적으로는 국가와 같이 어떠한 기능을 부여받은 가공의 인물과 같다. 그것은 유사한 관계들로 쪼개질 수 있다.

우리들은 그와 같은 개념의 증식 없이 정부를 국가 안에 존재하는 새로운 구성체로 보자.

이러한 두 가지 구성체 간에서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정부는 단지 주권자를 통하여 존재하는데 반하여 국가는 단지 그 자체로 존재한다. 이와 같이 군주의 우월한 의지는 단지 일반의지이거나 일반의지여야 하며 그의 권력은 그의 손에 집중되어 있다. 그가 그 자신의 권위에 의존하여 절대적이고 독립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한다면 모든 결합은 느슨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군주가 특정한 의지를 주권자의 의지보다 더 활동적으로 만들고 이러한 특정한 의지에 복종을 강요한다면 그는 자신 손에 존재하는 공적인 권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한 공적인 권력은 말하자면 사실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결속은 그 즉시 붕괴되고 정치체제는 와해된다.

정부가 국가와는 구분되는 실제적인 생명력을 가진 존재로서 있기 위해서 그리고 그 정부의 구성원이 함께 행동하고 정부가 세워진 목적을 충실히 해 나갈 수 잇도록 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자아가 존재해야 한다. 그 자아는 그 구성원들에게 공통적인 것으로 그 자신을 보호하려는 힘이다. 그와 같은 특정한 존재는 의회를 암시하는 것이다. 그 의회는 군주에게 속하는 있는 특권과 권리들에 대해서 숙고할 것이며, 행정장관이 좀 더 노력한 만큼 그 지위를 좀 더 명예스럽게 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할 수도 있다. 더 큰 전체 속에서 이와 같은 더 작은 전체를 질서있게 배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것은 그 자신을 강화시키는 동안에 일반의지를 약화시키지는 않는다. 또한 그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사적인 권력이 전체를 보호하기 위한 공적인 권력과 항상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사람들을 위해서 정부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고 정부를 위해서 사람들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것을 말한다.

더군다나 정부가 비록 일종의 빌려온 하부의 생명체라고는 하지만, 정부가 생명력 있고 재빠르게 행동하는 것을 막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정부가 설립된 목적과 다르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을 설립한 방식대로 그 정도를 변화시키면서 목적에서 어느 정도 일탈할 수도 있다.

모든 이러한 차이점은 정부와 국가 사이에 발생하는 다양한 관계들을 발생시킨다. 같은 국가라고 하여도 이런 우연적이고 특정한 관계들에 의해서 변화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 최선의 국가라고 하여도 국가와의 관계가 정치체제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게 수정되지 못한다면 최악의 국가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2 장 서로 다른 형태의 정부 구성에 관한 원리[편집]

이러한 이유의 일반적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여기서는 군주와 정부의 차이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미 인구의 증가에 따라 주권자에 대한 피지배자들의 비율이 증가한다는 것을 보였다. 우리는 관료들의 정부에 대한 관계도 이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정부의 힘이 국가의 힘과 항상 동일하다면, 그것은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의 구성원들을 상대로 실행되는 힘이 증가하면 할수록 전체 사람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힘은 감소하게 된다.

그러므로 관료들의 숫자가 증가하면 할수록 정부는 더욱더 약해진다. 이러한 것을 기본으로 깔고 좀 더 이것을 명확히 해 보자.

우리들은 관료들을 세 가지 의지를 지닌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개인으로서 그 자신에게 속한 의지로 단지 그의 개인적인 이익과 관련된 것이다. 두 번째는 관료들의 집합적 의지와 관련된 것으로 단지 군주의 이득과 관련된 것이다. 이것은 협력적 의지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정부와 비교해서는 일반적이지만 국가와 비교해서는 특정적이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국민들의 의지 혹은 주권자의 의지이다. 이것들은 국가와 비교해서도 정부와 비교해서도 일반적이다.

완벽한 입법체제에서는 개인 혹은 특정한 의지는 존재하지 않으며 정부 스스로의 집합적 의지는 매우 종속적이어서 일반의지 혹은 주권자의 의지가 우월하고 항상 그 밖에 다른 것에 대한 독자적인 규제자가 된다.

자연의 질서에서는 반대로 이러한 다른 의지들은 그들이 자기 중심적일수록 더욱 활성화된다. 따라서 일반의지는 항상 가장 약한 것이 되고 협력적 의지가 두 번째, 특정한 의지가 가장 우선시된다. 정부 안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발생한다. 각 구성원 가장 먼저 자신의 이익을, 그리고는 한 명의 관료로서, 가장 마지막으로 시민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명확하게 사회적 질서가 요구하는 것과는 상반된다.

그것이 이와 같다면 정부가 한 개인의 손안에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 때에는 특정한 의지와 협력적 의지가 완벽하게 결합되어 협력적 의지가 가장 높은 강도로 부상하게 된다. 힘의 행사가 의지의 정도에 의존하고 정부의 절대적인 힘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가장 활동적인 정부는 바로 이러한 한 사람에 의한 정부일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정부와 입법적 권위가 합쳐진다고 가정한다면 그 때에는 일반의지와 합쳐진 협력의지가 더 이상 일반의지만큼 활성화되기 어렵다. 이와 같이 항상 동일한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정부는 상대적으로 최소한의 힘과 활동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논쟁할 여지가 없고 다른 고려들은 그 생각들을 오히려 더 확신케 할 뿐이다. 예를 들어 국가체제 내의 시민들보다 정부 내에서의 행정장관이 더 활동적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특정한 의지가 주권자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보다 정부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더 크다. 왜냐하면 모든 관료들이 정부의 특별한 기능을 위임받은 데 반해서 개개인으로서 시민은 주권과 관련한 어떠한 기능도 위임받지 못했다. 게다가 국가가 팽창하면 그것의 진정한 힘이 국가의 힘에 반드시 정비례해서는 아니지만 아울러 증가하게 되는데 국가가 동일한 크기로 유지되고 있다면 정부가 그들의 실질적인 힘에 아무른 증가가 없다고는 하지만 관료들은 증가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정부의 상대적인 힘과 활동은 그것의 절대적인 혹은 실질적인 힘의 증가 없이도 줄어들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공적인 업무의 처리 속도는 그것을 책임질 사람들에 비례해서 느려진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신중함에 너무 중점을 두면 거대한 개체는 행운을 잡기가 힘들다. 그들은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것은 그들이 너무 깊이 숙고하는 바람에 일정한 이득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방금 정부가 집행 관료가 증대되는 만큼 느슨해진다는 것을 보였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사람들의 숫자가 증대되면 될 수록 폭압적인 힘이 더욱더 증가해야만 한다는 것도 보여 주었다. 이로부터 결과적으로 정부에 대한 집행관료의 비율은 주권자에 대한 피지배인들의 비율 간에는 역의 관계가 성립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다시 말해서 국가가 더 크면 클수록 정부의 등급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집행관료의 숫자는 인구의 증가에 비례해서 줄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정부의 상대적인 힘을 말한 것이지 그들 행동의 질을 말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히고 싶다. 왜냐하면 반대로 집행관료의 숫자가 증가하면 할수록 그들의 집합적 의지가 일반의지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 명의 관료 아래에서는 동일한 집합적 의지도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하나의 개별적 의지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한 쪽에서 얻은 것을 다른 한 쪽에서는 잃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입법자는 항상 반대로 작용하는 정부의 힘과 의지가 국가에 가장 이로운 비율로 조합될 수 있도록 알 수 있어야 한다.

제3 장 정부의 분류[편집]

우리는 앞 장에서 왜 다양한 형태의 정부가 그것을 구성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나누어지는지를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이 장에서는 이러한 분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살펴보겠다.

먼저, 주권자가 정부를 전체 인민의 손에 놓여져서 보통의 사적인 시민들보다 더 많은 시민 관료들이 존재하는 정부가 있다. 이것이 바로 민주정이라고 알려진 형태이다.

그리고 주권자가 정부를 소수의 사람으로 한정해서 집행관료들보다 더 많은 보통의 시민들이 존재한다면 이러한 형태는 귀족정이 될 것이다.

또한, 주권자가 전체 정부를 한 명의 집행관료에게 집중시켜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힘을 바로 그 일인으로부터 이끌어 낸다면 이것은 바로 군주정의 형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들은 어느 정도의 탄력성을 가질 수 있다. 즉, 민주정은 모든 사람들을 포함할 수 있으나 또한 전체 인원의 반 정도를 포함할 수도 있다. 귀족정도 반에서 가장 작은 소수의 인원으로도 귀족정이라 부를 수 있다. 심지어 군주정이라고 불리는 것도 몇 명의 소수를 포함할 수도 있다. 스파르타는 항상 그들의 헌법에 의해서 두 명의 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로마 제국은 제국이 분열되지 않고 한꺼번에 8명의 황제가 존재했던 적도 있다. 이와 같이 항상 각각의 정부형태는 다음의 정부형태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정부는 단지 세 가지의 이름을 가지지만 실지로는 국가가 시민들을 가지는 만큼 많은 다양한 형태들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게다가 정부는 어떠한 관계에서는 그 자신을 여러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도 있기 때문에 세 가지 정부 형태가 다양한 혼합 형태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러한 혼합 형태는 이러한 세 가지 단순한 형태에 의해서 증가된 것이다.

전 시대를 통하여 사람들은 최선의 정부형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논쟁을 하곤 했다. 그러나 그들은 가능한 형태 중에서 어떤 것이 어떠한 상황에서는 최선이고 다른 상황에서는 최악인지를 알아내는 데 실패했다.

만약에 개별 국가에서 최고 행정관료의 숫자가 시민들의 숫자에 반비례한다면, 일반적으로 민주정은 작은 국가에 알맞고, 귀족정은 그 중간 크기의 국가, 군주정은 가장 크기가 큰 국가에 알맞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러한 규칙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공리로부터 직접적으로 도출해 낼 수 있다. 하지만, 규칙에 예외를 제공하는 수많은 특수한 상황들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가?

제4 장 민주정[편집]

법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법을 집행하고 해석하는 일을 잘 한다. 그래서 집행권력 입법권력을 융합시키는 헌법이 가장 좋은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이러한 조합은 어떤 관점에서 봤을 때 약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떨어져 있어야 할 것이 그렇지 못하고 군주와 입법자가 동일인인 경우에는 말하자면 정부없는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

법을 만드는 사람이 법을 집행하게 되거나 일군의 사람들이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지 못하고 특수한 관점으로 대상을 접한다면 그것은 좋지 못한 일이 된다. 어떤 것도 공익에 사익의 영향력이 존재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 정부에 의한 법의 남용도 사익의 추구로부터 불가피하게 파생되어 나오는 입법자의 부패만큼 위험하지는 않다.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국가는 부패하고 개혁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국가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독립성을 남용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항상 잘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은 통제받을 필요성이 없다.

개념적으로 엄격한 의미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존재할 수도 없다. 거대한 다수가 소수를 통치한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공공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한 장소에 계속적으로 모여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통치의 형태가 바뀌어야만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위임자를 임명할 수 있다.

나는 정부가 몇 개의 위원회로 나뉠 때 보다 적은 사람들을 가진 사람들이 보다 큰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공리로 인정하고 싶다.

민주적 형태의 정부는 몇 가지 전제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 번째로 사람들이 쉽게 모일 수 있고 시민들이 서로를 알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국가이다. 두 번째로 과도한 일과 복잡한 논의들을 막을 수 있는 법령과 도덕의 단순함이다. 세 번째로 사회적 지위와 부의 평등이 필요한데 이것이 없으면 권리의 평등이 지속되기 어렵다. 네 번째로 사치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어야 한다. 그것은 부자든 가난한 사람들이든 부패하게 만든다. 그것은 국가를 게으름과 허영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것은 몇몇 사람들을 노예의 상태로 만들고 모든 사람들을 여론의 노예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시민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를 만들어 버린다.

이것이 왜 저명한 학자가 미덕을 공화국의 기본적인 원리로 만들어 낸 것인지에 대한 이유이다. 그러나 이 같은 위대한 천재도 자주 틀리고 불분명해져서 주권자의 권위가 어디에서든지 똑같기 때문에 같은 원리가 모든 국가에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또한, 민주정부만큼 시민전쟁과 참혹한 투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정부는 없다. 왜냐하면 다른 형태의 정부로 변화하려는 경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는 다른 어떤 형태보다 시민들은 무력과 충성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하며, 그들의 삶 중에 매일 즉, 위대한 행정관이 폴란드의 의회에서 “노예제도를 가진 평화보다는 위험에 처해 있는 자유가 더 낫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말들을 반복해야 한다.

하느님의 나라가 있다면 그것은 민주적으로 통치되는 나라일 것이다. 그렇게 완벽한 정부는 인간에게 알맞지 않다.

제5 장 귀족정[편집]

우리는 정부와 주권자라는 두 개의 가공의 인물이 있음을 알았고, 이에 따라 두 개의 일반 의지가 있는데 그 중 한 개는 시민들에게 속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행정부의 구성원들에게 속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와 같이 정부가 내부의 구성원들을 그것이 기꺼워하는 방향으로 조정해 낼 수 있지만 정부는 주권자의 이름으로 나머지 사람들에게 결코 무언가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초의 사회는 귀족정의 형태로 다스려졌다. 가족의 우두머리들이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적인 문제를 숙고하였다. 어린 사람들은 당연히 경험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북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러한 방식으로 남아 있지만 여전히 잘 다스려지고 있다.

인공적인 불평등이 자연적인 불평등을 능가하는 단계에 이르자 부와 권력이 나이를 대신하여 선호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귀족정이 선택되었다. 마침내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재산과 함께 권력을 세습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하나의 족벌은 귀족으로, 그리고 정부는 세습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때에는 20살의 귀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귀족정은 세 가지 종류의 것이 있다. 나이에 의한 자연적인 것, 그리고 부와 권력에 의한 선택적인 것, 그리고 이것이 세습된 형태의 것이다. 처음의 것은 단순히 원시적인 형태의 사람들에게 알맞은 것이며, 세번째의 것은 모든 정부의 형태 중에서 가장 최악의 것이다. 두 번째의 것은 가장 최상의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단어에 대한 진정한 의미에서 귀족정이라 할 수 있다.

귀족정은 주권자와 정부를 구분한다는 점에서 이익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정관료들을 선출한다는 측면에서도 이익이 있다. 모든 인기 있는 정부는 모든 시민들이 행정관료로서 선출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귀족정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행정관료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의회는 보다 쉽게 구성될 수 있고, 나랏 일은 좀 더 쉽게 논의 되고 실행될 수 있다. 국가에 대한 신뢰는 무지하고 품격이 낮은 군중에 의해서가 아닌 덕망이 높은 원로들에 의해서 지지된다.

다시 말해서, 국가의 원로들이 그들 자신의 이익이 아닌 국가의 이익을 위하여 통치한다면 현명한 사람들이 다수를 다스리는 것이 최선의 그리고 자연스러운 형태이다. 사람들은 무용한 도구를 늘리지 않을 것이며 100명의 골라진 사람들에 의해서 할 수 있는 일을 2,000명의 사람들을 고용하여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집단적 이익이 일반 의지와 덜 상응하는 방향으로 나갈지도 모르며 집행 권력이 법의 통제를 벗어날 우려가 있다.

이러한 정부 형태에 알맞은 환경과 관련해서 국가가 너무 작거나 사람들이 단순하거나 순박해서 일반의지로부터 막바로 법의 집행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혹은 국가가 너무 커서 집행관료들에게 주권자의 권한의 일부를 이양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귀족정이 인기 있는 정부보다 덕성을 덜 필요로 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부자들 사이에는 ‘겸손’을 가난한 자들 사이에는 ‘만족’과 같은 그들 자신의 덕성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엄격한 평등이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스파르타에서 조차도 발견되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형태의 정부가 어떤 부의 불평등을 내포하고 있다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공적인 일을 위임하여 그들의 모든 시간을 그 일에 투자할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으며, 그 결과로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바와 같이 부자들만이 항상 원로로서 선택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부자인 것보다 실적이 더 중요한 자격요건이 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왔다.

제6 장 군주정[편집]

지금까지 우리들은 군주를 국가에서 집행권력을 위임받은 가공의 인물로 보았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법에 따라 권력을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권리를 가진 실제의 인물로 보겠다.

집합적인 존재가 개인을 대표하는 다른 체제와는 다르게 여기서는 개인이 집합적인 존재를 대표하게 된다.

이와 같이 사람들의 의지와 군주의 의지, 국가의 공적인 권력과 정부의 사적인 권력 모두 동일한 원인자에 대응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방해할 갈등적인 움직임은 없다. 아르키메데스가 해변가에 조용히 앉아 노력없이 배를 진수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그의 안방에 앉아 광대한 제국을 다스리고 그 자신의 움직임 없이 모든 것을 해 나갈 수 있는 훌륭한 군주의 모델이 된다.

군주정만큼 활동적인 정부가 없다면 그것은 또한 그것만큼 개인이 더 많은 명령을 발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의지를 쉽게 지배할 수 있는 정부는 없다는 것을 말한다. 모든 것은 동일한 목적을 향해서 움직이고 그 목적은 공공의 행복이 아니다. 군주정의 진정한 강점은 계속해서 국가에 불이익한 요소들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왕은 절대적이기를 원하고 사람들은 왕에게 절대적일 수 있는 방법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한다. 이것은 중요한 지침이며 또한 매우 진실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항상 궁중에서 비웃음을 당한다. 사람들의 사랑에 의존한 권력은 의심할 나위없이 강력하지만, 불확실하고 임시적인 것이다. 군주는 결코 그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정치적 설교자들은 군주에게 사람들의 힘이 곧 군주의 힘이요 군주의 최선의 이익은 사람들이 번영하고 인구가 증가하며 강력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군주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들의 개인적 이익은 사람들이 약하고 비열하며 결코 자기에게 저항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나는 피지배인들이 아주 복종적이라면 사람들이 강한 것이 군주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부차적인 이익에 불과할 뿐이고 강한 것은 유순한 것과 양립할 수 없다. 이것은 마키아벨리가 아주 명확하게 증명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공화주의자들의 입문서이다.

우리들은 군주정은 거대한 국가에 알맞다고 논의한 적이 있다. 공적인 관료들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군주 대 피지배인들의 비율이 줄어들면서 평행에 가깝게 가고 결국 1:1의 비율에 이르러서는 민주정이 된다. 이 때 군주와 국민들 사이에 큰 거리가 있어서 통일적 결속이 부족해지게 된다. 이러한 결속은 중간 계급이나 귀족들에 의해서 채워져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작은 국가들에게는 알맞지 않다.

군주정을 공화정에 비해서 열등한 핵심적이고 피할 수 없는 약점은 공화국에서는 인기있는 선택이 현명한 사람들을 항상 높은 자리에까지 오르게 하지만 군주정에서는 하찮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궁중에 어느 정도의 자리까지 오르면 곧장 국민들을 배신하고 음모와 흉계로서 서로 뒤죽박죽 싸우게 된다. 국민들은 군주보다 선택에 있어 덜 실수를 하게 되고 황실에서 실력 있는 사람들이 적은 만큼 민주정에서는 한심한 바보들이 적다. 그 결과 행복한 순간에 탁월한 군주는 여러 무리의 사악한 관리들에 의해서 난파될 뻔한 군주정이라는 배에서 키를 제대로 잡아서 모든 사람들이 그가 발견한 자원에 대해서 놀라워하기도 하고 그의 통치지역은 역사에 있어서 신기원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군주정에 의해서 잘 통치되어진다면 그 국가의 크기는 통치하는 군주의 능력에 비례하여 넓어질 것이다. 그것은 관리하는 것보다는 정복하는 것이 더 쉽다. 충분한 정도의 지렛대를 가졌다면 손가락 하나로도 세계를 뒤집을 수 있다. 그러나 세계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헤라클레스의 어깨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작다면 군주는 거의 항상 부적당하다. 통치자에 대해서 국가가 너무 작다면 가장 최악의 상태에서 국가가 다스려지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군주는 국민들의 이익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그는 보통의 군주가 그 자신의 불충분한 결점을 가지고 국민을 다스리는 것보다 국민들을 더 비참하게 만든다. 그것은 마치 군주의 능력에 따라서 영토는 넓어지거나 줄어들게 되는 것과 같다. 반대로 공화국에서는 고정된 경계를 가지게 된다.

일인의 통치에 의한 가장 불이익한 점은 다른 두 개의 정치제도 안에서는 이루어지는 연속적인 결속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줄 수 없다는 점이다. 왕이 죽을 때 다른 어떤 왕이 필요하다. 선출이란 위험스런 시간적 간격이 된다. 그것들은 논쟁적일 수도 있다. 시민들이 어떤 고결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뇌물과 부패가 성행하게 된다. 이와 같은 정치체제 하에서는 모든 것이 돈으로 좌우된다. 왕 아래에서 누리던 평화는 왕이 없는 시기의 혼란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 된다.

이와 같은 약점을 방지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왕위가 어떤 가계에 의해서 상속되는 것이다. 승계의 질서는 선출의 불이익을 대신하여 왕이 죽었을 때 어떠한 논쟁도 피할 수 있다. 확실한 평화가 현명한 통치자보다 더 선호된 것이다. 즉 우둔한 자식을 선택할 위험성이 좋은 군주를 선택하기 위한 논쟁보다 선호된 것이다. 국민들은 그들 자신이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을 명령하도록 키워진다면 모든 것이 그가 가진 정의감과 합리성을 빼앗도록 하는 것이다. 어린 왕자에게 통치의 기술을 가르친다는 것은 큰 고통이 따른다. 이러한 교육은 그들에게 유익해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국민들에게 복종의 방법을 가르치는 편이 낫다. 역사상 위대한 왕들은 통치를 위해서 길러진 왕들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통치한다는 것은 많은 연습을 통해서도 잘 습득되지 않는 기술이다. 사람들은 명령하는 것보다 복종하는 것을 더 잘 배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알아보는 가장 단기적이고 훌륭한 방법은 너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왕이 된 경우에 너는 무엇이 일어났으면 가장 좋을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러한 통일성 부재의 결과는 정권의 불안정성이다. 이러한 정권은 지속적으로 고정된 목표와 일관성 있는 정책을 가질 수 없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국가를 이 원리에서 저 원리로 혹은 이 계획에서 저 계획으로 표류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황제의 궁전에서는 좀 더 교활한 움직임이 있다면 공화국은 좀 더 현명하다. 공화국이 좀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왕들은 선왕의 정책을 거스르는 것이 보편적인 통치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일성의 결핍은 왕권을 옹호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기만의 술책을 형성하게 한다. 즉, 시민의 정부를 가사를 관리하는 정부로 군주를 가족의 아버지로 비유할 뿐만 아니라 군주에게 모든 그가 필요로 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으며 군주는 항상 그가 존재해야 하는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가정 덕택에 군주의 정부는 명백하게 다른 모든 것보다 선호된다.

그러나 플라톤에 따르면 선천적으로 왕의 자질을 가진 사람들은 드물다. 또한 그러한 자질을 가질 사람이 운이 맞아 왕위를 차지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가 되겠는가? 그리고 왕자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반드시 타락하게 된다면 통치하기 위해서 길러진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군주의 정부와 좋은 왕의 정부를 혼동하는 것은 계획적인 자기기만이다. 이러한 군주정 형태의 정부를 그 본질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보통의 혹은 최악의 군주가 지배하고 있을 때로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분노한 신이 우리들에게 폭군을 내렸기 때문에 그들은 신성한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교훈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학적 이론보다는 단지 설교에 알맞은 논리이다. 기적을 약속하는 의사는 무엇을 약속할 수 있는가? 환자들에게 인내심을 가지도록 가르치는 것은 누구의 기술인가?

우리들 모두는 정부가 나쁠 때 그것을 참아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좋은 정부를 찾아내는 것이다.

제7 장 혼합된 정부 형태들[편집]

엄격히 말해서 단순한 형태의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의 수반은 하위의 집행관료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분화는 때때로 영국과 같이 헌법상 기구가 서로 상호 의존적이어서 동등한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고 폴란드처럼 각 부분의 권력이 독립적이나 불완전하여 동등한 정도의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에는 정부는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고 국가는 유대감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그다지 좋지 못하다. 단순한 형태의 정부와 복합된 형태의 정부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인가? 이것은 정치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이며, 나는 이것들 중에 하나는 이미 대답을 하였다.

단순한 형태의 정부는 단순하기 때문에 좀 더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집행권력이 입법권력에 충분한 정도로 종속되지 못하였다면 정부를 분할하는 것으로부터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다.

아니면 정부를 주권자들로부터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것을 막는 중계적 권력기관을 만듦으로해서 두 개의 권력들 사이의 균형을 이루어내고 그들 각각의 권력을 확정해 낼 수 있다. 그 때 정부란 혼합된 형태의 것은 아니고 단지 부드럽게 완화시킨 형태의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동일한 처방으로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정부가 너무 느슨하다면, 위임을 통해서 정부 기능을 집중시킬 수 있다. 첫 번째의 경우는 정부를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두 번째의 경우는 오히려 그것을 강화시키기 위한 처방이다. 이것이 민주정부의 실재이다. 강한 것을 극대화시키거나 약한 것을 극대화시키거나 하는 것은 단순한 형태의 정부에서나 보여질 수 있는 것이며, 반대로 혼합 정부에서는 힘의 적절한 조절이 이루어진다.

제8 장 모든 정부의 형태가 모든 국가에 알맞는 것은 아니다.[편집]

자유란 모든 상황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열매는 아니며 따라서 사람들의 능력 밖에 있을 수도 있다. 몽테스큐의 사상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것은 더욱더 확실하다. 그 생각에 도전을 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러한 생각은 굳어질 따름이다.

세상에 있는 어떠한 정부도 단지 소비를 할 뿐이며 어떤 것을 생산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정부가 소비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은 정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노동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공적인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게끔 하는 것은 사적인 생산물의 잉여에 의해서 가능하다. 이로부터 시민국가는 단지 사람들의 노동이 그들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 이상일 때 성립될 수 있다.

이러한 잉여는 세계의 모든 국가에 동일한 것은 아니다. 어떤 곳에서는 충분하나, 어떤 곳에서는 그것보다 좀 부족하며, 또 어떤 곳에서는 잉여가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오히려 부족한 곳도 있다. 이러한 차이는 토질의 비옥함, 토지가 필요로 하는 노동의 종류, 생산물의 특징, 거주자들의 강함, 그들이 필요로 하는 소비의 정도, 그 외 기타의 요소들에 의존한다.

덧붙혀 모든 정부는 동일한 속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탐욕스러운데 이러한 차이는 공적인 기여가 그들의 자원으로부터 더 멀리 있다면 그들은 더 부담스러워 한다는 원리에 기인한다. 이러한 부담은 정확한 기여의 양에 의해서 측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왔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가야만 하는 거리에 의해서 측정되어진다. 이러한 순환이 빠르고 잘 성립되어 있다면 지불되어야 하는 것이 많은지 적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항상 부유할 것이고 재정은 풍족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는 것은 적고 또한 그 적은 것 또한 되돌아가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곧 지속적 지불로 인해서 지쳐가게 된다. 국가는 결코 부유해 질 수 없으며, 국민들은 가난하게 된다.

이러한 것은 국민과 정부 사이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세금은 더욱더 부담스러운 것이 됨을 설명해 주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서는 국민들은 최소한의 부담을 지게 되고, 귀족정에서는 그것보다 많은 부담을, 그리고 군주정에서 가장 많은 부담을 지게 된다. 그래서 군주정에서는 부유한 국가에 알맞은 정체이며, 귀족정은 중간 정도의 국가에 민주정은 작거나 가난한 국가에 알맞게 된다.

실제로 생각을 해보면 해볼수록 자유로운 국가와 군주정 사이에서는 이러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전자에서는 모든 것인 공통의 이익을 위해서 쓰여지는데 반해서 후자는 사적인 권력과 공적인 권력이 경쟁한다. 그래서 한 쪽이 우세해지면 반대로 다른 쪽은 그 쓰임이 감소하게 된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치하기 위해서 그들을 비참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어떤 환경에서 정부의 형태를 결정할 수 있는 자연적인 요소들이 있다. 심지어는 환경뿐만 아니라 거주민들의 특징을 문제 삼을 수도 있다.

노동에 대해서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메마른 땅은 개간되지 않고 버려져야 하며, 사람들은 야만적인 상태로 남겨진다. 사람들의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공급되는 땅에서도 어떠한 정치적 사회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야만적인 상태로 남겨진다. 땅이 비옥해서 조그마한 노력에도 큰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곳에서는 군주정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로 군주의 사치가 피지배인들의 생산된 잉여를 소비하게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잉여가 사적인 개인에 의해서 흩어지는 것보다는 정부에 의해서 흡수되는 것이 더 좋은 일이다. 내가 알기로는 물론 예외라는 것이 있지만, 이러한 예외도 자연적 질서로 되돌리는 혁명을 조만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그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들은 ‘일반적인 법칙’과 결과를 수정할 수 있는 ‘특정한 원인’을 구분해야 한다. 남쪽이 공화국으로 뒤덮혀 있고 북쪽은 군주정의 국가로 이루어져 있다면 기후라는 개념으로 독재란 더운 국가에 유리하고 야만은 추운 국가에 유리하다는 것이 여전히 사실일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일반적인 법칙은 인정되어야 하며, 그것의 적용은 논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것은 매우 비옥한 추운 국가, 그리고 매우 메마른 남쪽 국가가 있다는 식으로 논쟁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작은 세세한 부분들을 살피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이다.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어느 누구도 생산, 힘, 소비 등의 요소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두 개의 동일한 크기의 국가를 생각해 보자. 한 국가는 5단위를 생산하고 다른 국가는 10단위를 생산한다. 앞의 국가의 거주자가 4단위를 소비한고 뒤의 국가는 9단위를 소비한다. 한 단위의 잉여가 앞의 국가는 5분의 1의 크기가 될 것이며, 뒤의 국가는 10분의 1의 크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두 개의 잉여 생산의 비율이 그들의 생산량의 크기에 반비례하게 된다. 그래서 5단위를 생산하는 국가는 10단위를 생산하는 국가에 비해서 두 배의 잉여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생산량이 두 배인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나는 추운 국가의 풍성함과 더운 국가의 풍성함을 동등하게 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단은 동일하다고 가정하자. 예를 들어서 영국과 시실리를 비교해 볼 수 있고, 또한 폴란드와 이집트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그것들보다 더 남쪽에 아프리카나 인도가 있을 수 있으나 그것들보다 더 북쪽에는 아무 것도 없다. 농업 기술 상의 어떠한 차이가 생산량의 동등함을 달성하기 위해서 요구되는가? 시실리에서는 땅을 단순히 갈아놓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반면에 영국에서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겠는가? 동일한 생산물을 얻기 위해서 손이 더 가는 곳에서는 그만큼 잉여는 더 적게 된다.

동일한 사람들의 숫자를 가지고 있으나 더운 지방에서 더 적게 소비를 한다는 점을 더 지적해 보자. 기후가 사람들로 하여금 적당하기 유지하기 위해서 절제하기를 요구한다. 더운 지방에 살고자 하는 유럽 사람들이 그들의 식습관을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면 소화불량으로 죽게 될 지도 모른다. 샤르댕이 말한 바와 같이 아시아 사람들에 비한다면 우리들은 육식성의 야수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페르시아 사람들의 절제는 그들의 국가가 덜 경작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반대로 그들 국가가 거주민들이 덜 필요로 하기 때문에 먹을 것에 대해서 덜 부유하다고 믿고 있다. 그들의 검소가 척박한 토양의 결과라면 단지 가난한 자들만이 그래야 하는데 사실은 그들 모두 조금만 먹고 있다. 땅의 비옥도에 따라서 많이 먹고 적게 먹고를 찾기보다는 전 국가를 통해서 동일한 절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을 자랑스러워하며, 그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얼마나 우월한지는 그들의 체질이나 성격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페르시아 사람들은 깨끗하고, 그들의 피부는 희고 섬세하며 부드럽다. 이에 반해서 유럽식의 생활방식으로 살고 있는 그들의 피지배인이라 할 수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은 거칠고 부스럼투성이며 그들의 몸은 살쪄서 둔하다.

적도에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 검소하다. 그들은 좀처럼 어떠한 고기도 먹지 않으며, 쌀이나 옥수수 등이 그들의 주식이다. 인도에서는 수백만이 하루에 1페니 이하의 비용을 먹는 데 쓴다. 유럽에서는 남쪽 사람들과 북쪽 사람들의 식습관의 차이가 눈에 띈다. 스페인 사람들은 독일 사람들의 식사로 8일을 살 수 있다. 사람들이 좀 더 게걸스럽게 먹는 곳에서는 사치가 사람들이 소비하는 물건으로 옮겨 간다. 영국에서 고기와 함께 식탁에 실려간 것들이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에서는 설탕과 꽃으로 실컷 즐긴다.

옷에 대한 사치도 유사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계절의 변화가 급속한 곳에서는 사람들은 단순한 옷을 많이 입는다. 단지 보여 주기 위해서 옷을 입는 곳에서는 사람들은 실용성보다는 보여주는 것에 더 신경을 쓴다. 그리고 옷은 그 자체로 사치품이다. 나폴리에서는 금으로 수놓아 진 자켓과 양말을 신지 않은 채 포실리포를 산책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건물에서도 똑같다. 사람들이 기후에 별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때 건물에 있어서 웅장함을 중요하게 여긴다. 파리나 런던에서는 사람들이 따뜻하고 편안하게 집을 짓고자 한다. 마드리드에서는 그들은 거대한 응접실을 갖추고 있으나, 닫을 창문은 없고 그들의 침실은 마치 쥐구멍 같다.

음식들은 더운 나라에서 좀 더 내실있고 부유하다. 이러한 것이 세 번째 차이점으로 두 번째에 또한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왜 이탈리아에서는 그렇게 많은 채소를 먹는가? 왜냐하면 채소는 영양가도 많고 훌륭한 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채소는 젆 영향가도 없으며 식탁에서 그리 중요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경작지를 가지고 있으며 경작한 만큼 소비한다. 프랑스의 밀보다 열등한 바르바리의 밀이 더 많은 밀가루를 생산하고 프랑스의 밀이 북쪽의 밀보다 더 많이 생산한다는 것을 실험이 증명하고 있다. 이로부터 유사한 변화가 적도에서 극지방으로 갈수록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동일한 양의 생산물 속에 더 적은 양의 영양분을 가지는 것이 불이익이 될 수 있는가?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해 보기 위해서는 먼저 더운 국가가 더 적은 거주자를 필요로 하고 부양해야 할 사람들은 더 많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독재의 이익으로 두 배의 잉여를 공급한다. 동일한 사람들에 의해서 점령된 땅이 크면 클수록 어려운 폭동이 더 많이 발생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거주민들은 빨리 그리고 비밀스럽게 모일수가 없다. 반면에 정부가 음모를 발견하고 의사소통을 방해하기란 쉽다. 반대로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있으면 정부가 주권자를 침해하기 쉽지 않다. 대중의 지도자는 군주가 자신의 의회에서 하듯이 자신의 사적인 공간에서 깊이 숙고하며, 대중들은 군대가 그들의 막사에 모이듯 공적인 공간에 재빠르게 모인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것은 먼 거리를 두고 행동하는 폭압적인 정부의 이익이 된다. 베개로서의 역할을 하는 힘의 거점의 도움으로 정부의 힘은 지렛대의 원리에 의해서 거리에 비례해서 증가한다.

반대로 국민들의 힘은 그 힘이 집중될 때 효과가 있다. 총의 화약이 땅에 떨어져서 단지 가루 하나 하나가 연소하는 것과 같이 그것이 흩어져버리면 별로 효과가 없다. 결과적으로 가장 인구가 없는 국가는 전제 군주정에 알맞다. 거친 야수는 단지 사막을 통치할 뿐이다.

제9 장 좋은 정부의 표징[편집]

그러므로 절대적 의미에서 좋은 정부가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그것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면 국민의 절대적 혹은 상대적 위치의 조합에 따라 다양한 대답이 가능하다.

그러나 만약에 국민들이 잘 통치되고 있는 징표가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이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서는 답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각각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답하고자 하기 때문에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지배인들은 공공의 안녕에 중점을 둔다. 하지만, 시민들은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전자는 소유의 안정성을 고려하지만, 후자는 개인의 안전을 생각한다. 피지배인들은 좋은 정부를 엄격함이라고 생각하는 데 반해서 시민들은 좋은 정부를 관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자는 범죄에 대해서 형벌이 가해지를 원하지만, 후자는 그것이 예방되기를 원한다. 피지배인들은 자신이 그들의 이웃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기를 원하지만, 시민들은 이웃들에 의해서 무시되기를 더 선호한다. 전자는 돈이 순환하는 한 만족스러워 하며, 후자는 국민들이 빵을 가질 수 있기를 요구한다. 이러한 점들에 동의한다 할지라도 어떤 더 발전된 것을 찾을 수는 있는가? 도덕적 차원에서는 어떠한 정확한 측정 표준을 가져다 줄 수 없다. 우리들이 표징들에 대해서 동의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의 가치 정도에 대해서 어떻게 동의할 수 있는가?

나는 항상 사람들이 이러한 단순한 표징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또한 그와 같은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불성실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정치적 결사체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구성원들의 보호와 번영이다. 이것 이상을 보지 말라. 모든 상황이 동일하다면 자연적 인구 증가나 이민이 들어오는 식의 외부적 요소를 제외하고 시민들이 증가하는 정부가 의심할 나위 없이 최상의 정부이다. 사람들이 줄어드는 정부는 최악의 정부이다. 통계학자들이여! 이것은 당신들의 문제이다. 계산하고 측정하며 또한 비교하라.

제10 장 정부의 폐해와 정부의 퇴보하는 경향[편집]

특정한 의지가 멈추지 않고 일반의지에 대항하여 행동하듯이 정부는 주권자에 대해서 계속해서 대항해서 권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권력 행사가 증가하면 할수록 헌법은 좀 더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군주의 의지에 대항해서 균형을 맞춰줄 수 있는 뚜렷한 협력적 의지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조만간 피할수 없이 군주가 주권자를 압박하고 사회적 계약을 파괴하게 된다. 이러한 것은 죽음이 인간의 몸을 파괴하는 것과 같이 정치체제가 발생하면서 본질적으로 그것을 파괴하려는 경향 발생한다는 것은 말해 준다.

정부가 쇠락해 가는 것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그 스스로 계약을 체결하는 때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가 와해되는 것이다.

정부는 그 구성원들이 다수에서 소수로 바뀌게 될 때 계약을 갱신하게 된다. 즉 민주정에서 귀족정, 혹은 귀족정에서 왕정으로 바뀔 때를 말한다. 이것은 정부의 자연적 속성이다.

[1]

만약에 그것이 소수에서 다수로 반대 방향으로 진행한다면 정부는 느슨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역으로의 진행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정부는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기에 에너지를 다 써 버려 너무 약해진 상태가 아니면 자신의 형태를 바꾸려하지 않는다. 정부가 확장해 가는 동안 느슨해진다면, 정부의 힘은 절대적으로 영이 되어 버려서 거의 생존할 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정부가 느슨해지기 시작한다면 그 메카니즘에 다시 활력을 불어 넣거나 단단하게 조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정부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가 곧 멸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와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먼저, 통치자가 법에 따라 국가를 운영하지 않고 주권자의 권력을 침해할 때 발생한다. 그 때 주목할 만한 변화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계약을 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것에 의해서 국가는 와해되고 그 속에서 다른 형태의 것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정부가 주권을 빼앗는 즉시 사회적 계약은 파괴되고 모든 보통의 시민은 복종할 때 도덕적 자발이 아니라 힘에 의한 강제를 통해서 강요된다.

동일한 상황이 통합적으로 행사되어야 할 권력이 정부의 구성원들에 의해서 각각 행사될 때에도 발생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지 위법 행위에 불과하고 더 큰 혼란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이것은 행정관료가 존재하는 만큼의 통치자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정부보다 더 많은 숫자로 쪼개진 국가는 멸망하게 되거나 혹은 그것의 형태를 바꾸게 된다.

정부가 와해되었을 때 정부의 폐해는 일반적으로 무정부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진다. 좀 더 정확히 민주정은 중우정으로, 귀족정은 소수 귀족 정치로 타락하게 된다. 그리고 군주정은 전제정치로 타락한다. 여기서 마지막 것은 뜻이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이해되기를 전제 군주는 힘의 의해서 다스려지며 정의와 법은 고려하지 않는 자를 말한다. 전제 군주는 정확히 말하면 그럴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왕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사칭하는 자이다. 그리스 사람들이 전체 군주라는 단어를 이렇게 이해하였다. 그들은 그것을 무차별적으로 그들의 권위가 정당하지 않으면 좋은 군주나 나쁜 군주나 모두 그렇게 불렀다. 결과적으로 전제 군주는 압제자와 완벽하게 동일한 의미로 쓰여진다. 다른 사물에는 다른 이름이 붙혀져야하기에 나는 왕권을 침탈하는 자를 전제 군주(tyrant)라 부르고 주권자의 권력을 침탈하는 자를 독재자(despot)로 부르기로 하겠다. 전제 군주는 법에 반대하여 법에 따라 통치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이다. 독재자는 그 자신을 법 위에 놓는 자이다. 결과적으로 전제 군주가 반드시 독재자일 필요는 없지만, 독재자는 항상 전제 군주가 된다.

제11 장 정치체의 사멸[편집]

잘 성립된 국가의 자연적이고 피할 수 없는 경향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스파르타와 로마가 멸망한다면, 어떤 국가가 영원하기를 바랄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영원한 헌법을 만들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헌법을 영원하게 만들 꿈을 꾸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단지 불가능한 것을 하려고 하거나 인간의 것에 속하지 않는 영원성을 인간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스스로 우쭐대는 것을 피하는 것으로 단지 성공할 수 있다.

정치체제는 인간의 몸과 동일하게 태어난 순간부터 죽어가기 시작하며, 그 자신 안에 자기 파괴의 원인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종류의 체제도 크든 작든 그 자신을 보존할 수 있도록 건강한 헌법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형성은 자연의 작품이다. 국가의 형성은 인공의 결과물이다.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 밖이지만, 국가의 생명력을 최선의 헌법을 만들어 연장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 안에 있다.

정치적 생명의 원리는 주권적 권위 안에 존재한다. 입법적 권력은 국가의 마음이요, 행정적 권력은 국가의 모든 부분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두뇌이다. 두뇌가 마비되더라도 개인은 살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둔하지만 생존할 수 있으나, 심장이 박동을 멈춰버리는 순간 생명체는 죽을 수밖에 없다.

국가가 살아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법을 통해서만이 아니다. 그것은 입법적 권력을 통해서이다. 어제의 법은 오늘을 묶어내지는 않으나, 침묵은 암묵적 동의가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그들이 한번이라도 그들의 의지가 있다고 선언한 것은 최소한 그것이 취소되지 않는 한 그들은 항상 그에 대한 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왜 고대의 법이 그렇게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가?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단지 그것이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법이라고 믿고 있음에 틀림없다. 주권자가 그 법을 유익한 것으로 지속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 법들은 몇 번이고 취소되었음에 틀림없다. 이것이 끊임없이 잘 구성된 국가에서는 법이 약해지기는커녕 계속적으로 힘을 얻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편견은 그들을 매일 더욱더 존경하게 만들었다. 반대로 법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약해지는 곳에서는 입법적 권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는 죽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12 장 입법권력은 어떻게 스스로를 유지하는가?1[편집]

주권은 입법적 권력과 다름 아니며, 법은 단지 일반의지의 진실된 행동이므로 주권은 단지 사람들이 모였을 경우에만 실행 가능하다. 사람이 모였다. 그것은 오늘날에 있어서 정말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2,000년 전에는 그것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게 많이 변하였는가?

도덕적 영역에서의 가능성의 경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 좁다. 그것은 우리들을 제한하는 우리 자신의 약점이자 악덕이며 편견이다. 천한 마음씨는 위대한 존재를 믿지 않으며, 질 낮은 노예들은 자유라는 단어를 조롱한다.

무엇이 하여졌는지의 관점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자. 나는 고대의 그리스 공화국에 대해서 말하지는 못하나, 로마 공화국은 거대한 국가이며, 로마라는 도시는 거대한 도시인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 인구 조사에서 4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무기를 날랐다고 하며, 피복속인, 외국인, 여자, 어린이들, 노예들을 제외하고도 400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마도 수도와 그 주변의 사람들을 자주 한 곳에 모으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은 몇 주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모였고, 어떤 경우에는 일주일에 몇 번씩 모이기도 했다. 이 사람들은 주권자의 권리를 행사할 뿐만 아니라 정부의 부분이였다. 그들은 어떤 일에 대해서 다루었으며, 어떤 사건에 대해서는 재판하기도 하였다. 공공 의회에 모인 전체 사람들은 행정관들의 역할을 시민들의 역할만큼이나 자주 입법하였다.

국가의 초기 역사로 되돌아 가면 우리들은 고대 정부들의 대다수들, 심지어는 마케도니아나 프랑크와 같은 군주제 국가에서조차도 유사한 모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경우에서도 내가 인용한 그 사실은 우리들의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해 준다. 그것은 실제에서 가능성을 추론해 낼 수 있는 나에게는 좋은 논리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제13 장 입법권력은 어떻게 스스로를 유지하는가?2[편집]

국가의 모든 법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데 사람들이 한 번 모여서 헌법을 구성하는 것으로는 충분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영원한 정부를 만드는 데도 행정관료들을 선임하는 데 있어서도 충분하지 않다. 예상하지 못한 사건에 대비해서 만든 비상적인 모임이외에도 어떤 것도 폐지하거나 중단할 수 없는 고정되고 정기적인 모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임명된 날에 사람들은 곧바로 어떤 형식적인 소집 없이 법 그 자체의 의해서 소환된다.

날짜가 정해진 이러한 모임과는 별도로 행정관료들에 의해서 소환되지 않는 사람들의 어떤 모임이 비법적으로 열려야만 하며, 모임의 순서는 법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앞의 그 모임이 행한 모든 것은 무효이다.

법적인 모임이 얼마나 자주 있는지에 관해서 이것은 미리 어떤 정확한 규칙을 정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다양한 환경에 의존한다. 사람들은 단지 일반적으로 정부가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잇으면 주권자는 의회에서 더 자주 만나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도시에서 유익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가 여러 개의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권자의 권위가 나누어져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도시들을 예속시킬 수 있는 하나의 도시에 주권자의 권위가 집중되어야 하는가? 나는 그 어느 것도 행해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자 한다. 첫 번째의 경우는 주권자의 권위는 단지 하나의 유일한 단위이다. 그것은 파괴되지 않는 한 나뉘어질 수 없다. 두 번째의 경우는 국가가 그러하듯이 도시는 합법적으로 다른 도시에 예속될 수 없다. 왜냐하면 정치체의 본질은 자유와 복종의 결합에 놓여 있다. 그래서 피복속인과 주권자는 동일의 상관물인데 이 동일한 상관물이란 단일한 단어 ‘시민’이라는 것에 함께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나는 몇몇 도시를 하나의 국가로 묶는 것은 항상 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단위를 형성하고자 하는 누군가는 자연적 불이익을 피할 수 있다고 스스로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작은 국가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큰 국가의 악에 대해서 불평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그러나 어떻게 작은 국가가 그리스의 도시 국가가 거대한 왕에게 저항했듯이 네덜란드와 스위스가 오스트리아의 왕가에 대항했듯이 큰 국가에 저항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주어질 수 있는가?

국가가 적당한 경계로 한정될 수 없다면 하나의 해결책이 있다. 그것은 고정된 수도를 가지지 않는 것이고 정부의 위치를 하나의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고 각각 차례로 국가의 각 계급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영토들에 사람들을 균등하게 살게 하고 각자에게 동일한 권리를 부여하며 모든 지역에 동일한 부와 생활을 가질 수 있게 하라. 이런 방법에 의해서 가능한 한 국가는 즉시 강성해지고 잘 통치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벽은 시골 집의 파편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라. 내가 수도에 건설되고 있는 대저택을 볼 때마다 나는 전 국토가 피폐한 집으로 뒤덮이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제14 장 입법권력은 어떻게 스스로를 유지하는가?3[편집]

사람들이 법적으로 주권자의 이름으로 모인 경우 정부의 모든 지배권은 중단된다. 집행권력은 중단되고 가장 비천한 사람들의 지위도 가장 높은 집행관료들의 지위만큼이나 신성 불가침의 것이 된다. 왜냐하면 대표된 사람들이 참여한 상황에서는 또 다른 어떤 대표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의 의회에서 발생한 혼란의 대부분은 이러한 규칙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소홀히 대해진 결과로 발생하였다. 집정관은 사람들의 사람들 사이의 사회자일 뿐이고 호민관은 단지 대변자이며[2], 원로원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러한 중단은 통치권자가 누가 우월한 자인지를 알아야 할 때 통치권자에게 경계해야 함을 알려준다. 정치체의 방패이자 정부의 브레이크가 되는 의회는 항상 행정관료들에 대한 악몽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행정관료들은 시민들이 의회에 대해서 반대하도록 문제를 만들고 그와 관련된 약속을 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시민들이 자유보다는 탐욕스럽고 겁이 많으며 무기력하고 평온함을 찾을 때 그들은 정부의 배가된 노력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 결과로 상대방의 힘이 계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에 대해서 주권자의 권위는 결과적으로 쇠퇴하고 공화국의 다수는 그들의 시간이 되기 전에 멸망해 버릴 것이다.

주권자의 권위와 전제적인 정부 사이에는 지금 우리가 말해야만 하는 그 사이에 존재하는 중계적인 권력이 있다.

제15 장 대리인 혹은 대표자[편집]

공공서비스가 시민들의 주요한 관심사에서 벗어나자마자 그리고 그들이 그 스스로 국가에 복무하기보다는 돈으로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자마자, 국가는 이미 멸망에 가까워진 것이다. 군대가 전쟁을 위해서 행진할 필요가 있을까? 그들은 용병을 쓸 것이며 그 자신은 집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게으름과 돈 덕분에 그들은 나라를 노예화시키는 군인과 그들을 팔아버리는 대리인으로 인해서 속임을 당하게 된다.

개인의 복무를 돈으로 바꾸는 것은 금전에 대한 욕심이요, 안락에 대한 갈망이며, 상업적 갈구이다. 사람들은 쉽게 휴식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이익의 일부를 포기한다. 이와 같이 돈을 사용하게 되면, 너는 곧 족쇄에 매이게 된다. 재정(finance)이라는 단어는 노예라는 뜻이다. 진정한 공화국에서는 그것은 알려져 있지 않는 단어이다. 진정한 자유로운 국가는 자기 손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하며 돈에 의존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무 면제를 위해서 돈을 지불하기는 켜녕 그들은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스스로 돈을 지불한다. 나는 강제적인 서비스가 세금보다 더 자유에 가깝다고 믿는다.

국가가 잘 구성될수록 공적인 사무가 시민들의 마음 속에 사적인 것보다 우선시되는 관습을 가지고 있다. 공공의 행복의 총량이 개인적 행복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작기에 사적인 일은 더욱더 작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잘 통제되는 국가일수록 모든 사람들은 의회에 급히 서둘러 모이게 되고 나쁜 정부 하에서는 의회에서 행해진 것에 대해서 작은 이익을 얻게 되기 때문에 의회로 가지 않는다. 좋은 법은 사람들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 낸다. 나쁜 법은 이와는 반대다. 누군가가 국가의 일에 대해서 말하자마자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야?”라고 말하게 된다면 그 때 그 국가는 멸망해 가고 있음이 틀림없다.

애국심이 식어가고 사적인 이익에 대한 추구가 활성화되며 국가의 광대함, 정복, 정부권력의 남용 등 모든 이러한 것들이 대리인 혹은 대표자의 편리성을 제안하는 논거로 쓰인다. 어떤 국가에서는 이것을 제3의 영역이라고 감히 부른다. 사적인 이익의 영역이 제1, 제2의 영역이 되며 공적인 영역이 단지 세 번째 순위가 되는 것이다.

주권이라는 것은 대표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양도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주권의 핵심은 일반의지이며 의지는 그것이 일반의지이든 그 밖에 다른 어떤 것이든 간에 대표될 수 없는 것이다. 그 의지를 매개할 수 있는 가능성이란 없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대리자는 그들의 대표도 아니고 대표자일 수도 없다. 그들은 단지 그들의 기관에 불과하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결정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스스로 인증하지 않은 법은 무효이다. 그것은 전혀 법이라 할 수 없다. 영국 사람들은 그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큰 실수이다. 그들은 단지 의회의 구성원을 선출할 때만 자유롭다. 구성원이 선출되자마자 사람들은 다시 노예로 되돌아 간다. 영국 사람들은 짧은 자유의 사용이 그것을 그 이후의 시간에 잃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대표라는 것은 현대적인 개념이다. 그것은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린 사악하고 불합리한 제도인 봉건적 정부에서 나왔다. 공화국에서 그리고 고대의 군주제 국가에서도 대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호민관을 매우 신성하게 여겼던 로마의 경우는 주목할 만하다. 어느 누구도 인민들의 기능을 침탈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권위를 어느 한 명의 권위자에게 넘기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락쿠스 시절에 발생했던 것으로부터 군중들이 때때로 발생시킬 수 있는 혼란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었다.

권리와 자유가 모든 것인 곳에서는 불편함은 아무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정당한 방법으로 주어졌다. 호민관이 감히 무엇을 하지 못하도록 릭토르라는 관리가 선임되었고 릭토르가 그들을 대표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았다.

호민관이 인민들을 어떻게 대표하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주권자를 어떻게 대표하는지를 고려해 보면 된다. 법이란 것은 단지 일반의지를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입법권력 속에 일반의지의 대표라는 것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집행권력 속에서는 그러한 대표가 있을 수도 있으며 있어야만 한다. 그 집행권력이란 단지 법을 적용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좀 더 주의깊게 살펴본다면 매우 적은 국가만이 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확실히 집행권력의 어떠한 부분도 차지하고 있지 않는 호민관은 결코 그 자신의 사무적 권리로 로마 사람들을 대표할 수 없으며,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지 원로원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람들이 해야만 하는 모든 것은 그 스스로 해야만 했다. 그들은 계속적으로 시장에 모여 있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온화한 기후에 살고 있어서 결코 탐욕스럽지 않았으며 노예들이 그들의 일을 해 주었고 그들의 주요한 관심사는 그들의 자유였다. 같은 조건이 달성되지 않고 동일한 권리를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 당신의 거친 기후는 더 많은 필수품[3]을 요구할 것이다. 일년의 반 정도가 공공 장소에서는 사람들이 없을 수도 있다. 당신의 닫혀진 입은 공공 장소에서 어떠한 것도 들리지 않게 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자유보다는 당신의 이익을 더 좋아하게 될 것이며, 당신은 노예가 되는 것보다 굶주리는 것을 더 두려워하게 된다.

어라? 그렇다면 자유라는 것은 단지 노예제도에 의해서 유지될 수 있는 것인가? 아마도 그렇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 이외의 모든 것은 그들 자신의 불리한 측면을 가지고 있으며 시민사회는 더욱더 그렇다.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희생하면서 단지 자신의 자유를 보존할 수 있는 불행한 상황이 있다. 그리고 시민들은 단지 노예가 절대적으로 노예의 역할을 해 줄 때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다. 이와 같은 것이 바로 스파르타의 상황이다. 당신은 근대 사회를 살고 있다. 당신은 노예를 가질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바로 당신 자신의 노예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가지고 당신의 자유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당신이 어떠한 특혜를 뽐내는 것은 공허한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통해서 노예가 필요하다든지 노예제도가 합리적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그 반대의 것을 증명하였다. 나는 단순히 왜 근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그 자신이 자유롭다고 믿으면서 대표들을 가지고 고대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이 대표제를 수용하는 순간 이미 그들은 더이상 자유롭지 못하다.

모든 것이 주의깊게 살펴졌으나, 공화국이 작지 않다면 주권자가 그들 권리의 행사를 계속해 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국가가 매우 작다면 예속되지 않을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나는 나중에[4] 어떻게 거대 인민의 방어적인 힘이 자유로운 정부와 작은 국가의 훌륭한 질서와 결합할 수 있을 것인지 살펴볼 것이다.

제16 장 정부의 설립은 계약이 아니라는 것[편집]

입법권력이 한 번 잘 성립되면, 유사하게 집행권력을 성립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단지 특별한 행동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후자는 본질적으로 전자와 다르고 분리되는 것이다. 주권자가 집행권력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있어야 하는 것’과 ‘있는 것’ 사이를 혼동해서 더 이상 사람들은 법인 것과 법이 아닌 것을 알지 못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폭력을 막기 위해 성립된 정치체제는 반대로 바로 그 폭력의 먹이감이 되고 만다.

모든 시민들은 사회적 계약에 의해서 동등하게 취급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자신이 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이 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모두는 모두가 해야 할 것을 규정할 뿐이다. 왜냐하면 주권자는 정부를 성립시키는 데 있어 통치자에게 정치체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주는데 필수불가결한 바로 이러한 권리를 부여한다.

몇몇 이론가들은 이러한 설립 행위가 국가와 행정관료들 사이의 계약이고 그 계약은 두 당사자들 사이에 한 쪽이 명령하고 다른 한 쪽은 복종을 하는 조건으로 명기된 것이라고 한다. 나는 확신하기로 이것은 이상한 계약을 허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좀 더 그 이론이 합리적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최고 권위는 양도될 수 없는 것처럼 수정될 수도 없다. 제한하는 것은 곧 파괴하는 것이다. 주권자가 그 자신을 우월한 자에게 바치는 것은 불합리하고 자기 모순적인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사람들 사이의 계약은 특정한 계약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계약은 법이 아니고 주권자의 행위이다.

계약 당사자들은 단지 자연법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자신의 손에 힘을 가진 이는 항상 무엇을 해야 할 지에 관해서 주인이 되기에, 이것은 곧 당신이 기꺼워 하는 것을 나에게 돌려주는 조건으로 내가 나의 모든 재산을 주겠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사람의 행동에 계약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국가 안에는 단지 하나의 계약만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태초의 계약을 파괴하지 않는 공적 계약을 상상할 수 없다.

제17 장 정부의 설립[편집]

그렇다면 개념적으로 정부를 형성하는 계약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먼저 이러한 계약이 법의 성립과 법의집행이라는 두 가지로 구성된 복잡한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주권자는 성립된 정부가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을 규정하게 된다. 이러한 계약은 명백하게 법이다.

두 번째로 국민들이 성립된 정부에서 일할 행정관료를 임명하게 된다. 이러한 임명은 특별한 행위이기 때문에 이것은 법이 아니고 정부의 기능에 불과하다.

정치체는 모순되어 보이는 활동들을 화해시키는 놀라운 특징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러한 활동들은 어떤 명시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것 없이 단순히 모두의 모두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통하여 시민들은 행정관료가 되며, 일반적인 계약은 특수한 계약으로, 그리고 법은 그것의 집행으로 바뀌는 그러한 방식으로 주권자의 갑작스런 변화에 의해서 성립된다.

관계의 이러한 변화는 실제로 예가 없는 사변적인 것인 아니다. 그것은 영국 의회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곳에서는 어떤 사건에 대해서 하원이 그 일을 좀 더 능숙하게 논의하기 위해서 전체 의회의 위원회로 스스로를 변형시킨다. 그래서 이전에는 임시 기구인 ‘주권을 가진 자들의 모임’ 속의 단순한 위원회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나중에 그 의회는 전체 인민의 의회로서 권능을 가지는 그 자신에게 전체 의회의 위원회로서 의제가 설정되고 논의된 것에 관하여 보고하게 된다.

일반의지의 단순한 결행에 의해서 정부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정부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과정 뒤에 채택된 정부가 민주정부의 형태라면 임시적인 정부가 권력을 잡고 있거나, 법에 의하여 기술된 정부가 어떤 것이든지 간에 주권의 이름으로 성립한 것이 있게 된다. 그리고 나서 모든 것이 질서가 잡히게 된다. 앞 장에서 성립된 원리들을 포기하지 않고 어떤 다른 합법적인 수단으로 정부를 성립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18 장 정부의 압제를 방지하는 방법[편집]

이러한 설명으로부터 결론적으로 16장을 확신하면서 정부를 설립하는 조치는 계약이 아닌 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집행권력을 가진 자들은 국민들의 주인이 아니라 단순한 사무 집행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을 마음 내키는 대로 임명하고 해임할 수도 있다. 국민들은 단지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할 뿐이다.

국민들이 세습적인 정부를 설립했다면, 국민들은 어떠한 부담을 지니지는 않는다. 세습적인 정부는 단지 임시적인 정부 형태로 국민들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부가 성립되지 이전까지 존재한다.

그리고 사실 그러한 변화는 항상 위험하다. 사람들은 공공복지와 양립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미 성립된 정부를 건드릴 수 없다고 하지만 그와 같은 것은 정치적인 교훈에 해당하는 것이지 법적인 측면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국가가 반드시 장군에게 군사적인 권위가 있듯이 행정관료에게 시민적 권위가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또한, 모든 경우에 있어서 합법적인 행위와 선동적인 폭동을 구별한다거나, 전체 국민들의 의지를 어떤 파벌의 외침과 명확하게 구분해 내기 위해서 요구되는 규칙들을 면밀하게 살필 수는 없다. 결국 이것은 국민들이 법의 엄격한 적용을 받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해로운 요구들에 굴복하는 것을 피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치자는 바로 이러한 의무로부터 국민들을 무시하고 권력을 획득할 기회를 끌어낸다. 왜냐하면 단지 통치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동안에 그가 그의 권리를 확대하고 좋은 정부를 재구성하기 위해서 계획된 의회를 방해하기란 쉽다. 결과적으로 통치자는 사람들이 침묵을 깨지 못하도록 하며, 그들이 부정행위를 저지르도록 조장한다. 또한, 그 자신의 취향대로 입이 닫쳐진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를 가정하여 행동하고, 감히 말하려는 사람들을 벌주게 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일 년 동안의 임기를 가진 로마의 10대관이 다른 일 년의 임기를 더 늘리게 되고 마침내는 그들 권력이 영구적으로 보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되면서 로마의 민회는 더 이상 소집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리고 민중의 힘으로 권력을 무너뜨린 세계의 모든 정부는 조만간 이러한 수단으로서 주권을 가진 자들을 압박하였다.

내가 이미 말한 정기 의회가 공식적인 소집을 요구하지 않는 비정기적인 의회라는 악을 방지하고 연기하는 정당한 수단이다. 왜냐하면, 통치자는 그 때서야 법을 어긴자, 그리고 국가의 적이 아닌 이상 그들의 모임을 방해할 수 없게 된다.

사회적 계약을 유지하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이러한 의회가 열릴 때, 절대로 무효로 될 수 없고 분리되어 투표되어져야 할 두 가지 의제가 있다.

첫 번째 : “주권자가 기꺼이 현재의 정부 형태를 유지하고자 하는가?”

두 번째 : “기꺼이 사람들이 행정부를 현재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맡길 것인가?”

나는 여기서 가정하기를 나는 사회적 계약을 제외하고 국가 안에서 취소할 수 있는 기본적인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국민들이 일반적인 동의로서 이러한 계약을 끝내기 위해서 모였다면 어느 누구도 그것이 합법적인 마침이였음을 의심할 수 없다. 그로티우스가 생각하기를 모든 시민들은 국가에 대한 그들의 일체감을 폐기할 수 있으며, 국가로부터 계약의 철회를 통해서 그의 자연적 자유와 재산을 회복할 수도 있다.[5] 그리고 묶여진 모든 시민들이 그들 개인 각각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비합리적인 일이다.

주석[편집]

  1. 늪 속에 있는 베니스 공화국의 느린 형성과 발달은 이러한 과정의 중요한 예시가 된다. 1,200년이 지난 후에도 베니스의 사람들이 두 번째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두 번째 단계는 1198년의 Serrar di Consiglio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로마 공화국을 인용하여 나에게 대항하는 논리를 편다. 로마 공화국은 오히려 반대로 군주정에서 귀족정으로, 다시 귀족정에서 민주정으로 발달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의견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로물루스의 첫 헌법은 혼합정의 형태였으며 그것은 즉시 독재로 타락해 갔다. 특별한 이유로 그 국가는 마치 어린 아이가 성숙하기 전에 죽은 것처럼 시간이 되기 전에 멸망해 버렸다. 타르퀸을 축출한 시점이 진정한 공화국의 탄생이었다. 그러나 공화국은 처음에는 고정된 형태가 아니었다. 귀족 계급을 폐지한 것에 대한 실패가 그 일을 반 쯤 끝내놓은 상태로 남겨 놓았다. 왜냐하면 합법적인 통치 형태 중 최악인 세습적인 귀족정이 여전히 민주정과 갈등하고 있는 상황에 있었고 그러한 불완전한 형태의 정부는 마키아벨리가 증명하듯이 호민관이 성립되기 이전에는 안정되지 못했다. 단지 호민관이 성립된 이후에야 말로 진정한 형태의 정부이며 진정한 형태의 민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실지로 국민들은 그 때 주권자일 뿐만 아니라 또한 행정관료이자 판사이기도 했다. 의회는 단지 조정하는 종속적인 위원회에 불과했다. 반면에 집정관은 단지 전쟁에서 주요한 행정관료 혹은 절대적인 명령자의 역할을 하는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에서 국민들의 대통령과 같은 존재였다.
    이 시기로부터 정부는 그의 자연적 속성에 따라 귀족정으로 강하게 흘러가는 경향이 있었다. 귀족 계급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베니스와 제노바처럼 귀족들 사이에 귀족정이 더 이상 안착되기 힘든 상태에 있었다. 말이 일의 성질을 바꾸어 내지는 못하기에 국민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통치하는 우두머리들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그들이 어떠한 이름을 갖다 붙혀도 여전히 귀족정이다.
    귀족정의 폐해는 시민전쟁과 삼두정치를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술라, 시저, 아우구스투스는 사실은 군주만큼이나 좋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티베리우스의 독재 아래에서 로마는 와해되었다. 그렇다면 로마의 역사는 나의 이론과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더 확신할 수 있다.
  2. 여기서 사용된 단어는 다소 영국 의회가 가지고 있는 어감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기능의 유사성은 비록 모든 관할권이 중단되었다 하더라도 집정관과 호민관 사이의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3. 추운 나라에 동방의 사치와 관대함을 적용하기란 그들에게 더 구속될 것과 동방의 사람들보다 더 복종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4. 이것이 내가 이 작업은 나머지 부분에서 할 것이다. 그 때 외국과의 관계를 다루면서 나는 국가의 연합이라는 주제를 다루게 될 것인데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것으로 그것의 원리는 성립 중에 있다.
  5. 그것은 어느 누구도 그의 의무를 피하기 위해서 국가를 떠날 수는 없고 국가가 그를 필요로 할 때 그가 국가를 구원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한 경우에 탈출은 범죄이며 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것은 ‘계약의 철회’가 아니라 ‘버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