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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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 사나이는 허리에 바를 동인 채 돌팔매질을 하고 있을까?

고향에 계신 내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또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를 읽고 난 뒷면 무뚝 이렇게 생각되는 것이 일종의 나의 버릇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에 지질려 뻘겋게 흐르던 피가 내 눈에 가시같이 들어박힐 때면 나는 머리를 흔들어 그 기억을 헤쳐 버리려고 몇 번이나 애를 썼지만 웬일인지 이태를 맞는 오늘까지 점점 더 그 핏빛이 선명해질 뿐입니다.

검실검실한 큰 눈에 올챙이같이 머리만 퍼진 코를 가진 사나이, 그래서 양미간이 턱없이 죽었음인지 우직해도 보이고 어찌보면 소름이 끼치게 무섭던 그 사나이, 그는 우금까지 바를 동인 채 돌팔매질을 하는 것같고 그러한 양을 나는 언제나 다시 만날 듯하여 소름이 끼치곤 하였습니다. 근년에 내 신경이 좀 과민해진 데서 이러한지는 몰라도.

차안에서 이 사나이의 과거를 순서없이 주워 들은 것을 종합해 보면 우리 시골 인읍인 S골에 가장 세력가요 부호로 굴지하는 김진사가 남의 유부녀를 보아 난 아들이 즉 그 사나이란 것,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나 그들 모자를 산막으로 쫓은 후에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 것, 어느 때 이 사나이가 김진사 앞에서 칼부림까지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이 사나이에게 호기심을 잔뜩 두어 그의 내력을 좀더 세밀히 알고자 무척 애를 썼지만 워낙 오랜 일이라 결과가 그리 시원치 않았습니다. 궂은 비 느실느실 내리는 날, 나 혼자 호젓이 앉아 바느질하는 밤, 선뜻 떠오르는 그 사나이. 나는 몸이 으쓱해지고 혹은 까맣게 높은 절벽을 볼 때 핑핑 도는 듯한 푸른 호수를 대할 때 그 사나이가 필사의 노력을 다하던 아차아차한 순간이 휙 떠올라 차마 눈을 들지 못하게 아찔아찔하였습니다. 그날 그 사나이 아니었더면……

지금으로부터 이태 전 칠월 이십일경입니다. 돌연히 나에게 전보 한 장 뛰어들었습니다. 그 내용인즉 내 어머님의 병환이 위중하니 곧 오라는 것입니다.

칠순이 다 되고 자주 병환으로 신고하시므로 평소부터 마음을 놓지 못하던 차인데 이러한 전보를 받고 나니 그만 아뜩해지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오후 세시였고 마침 세시 오분에 떠나는 급행이 있으므로 나는 부랴부랴 가방 한 개를 얻어 들고 입던 옷 그대로 남편과 같이 정거장으로 내달리었습니다.

승객들은 거의 다 오르고 대합실은 쓸쓸하였습니다. 나는 단숨에 개찰구로 뛰어나가다 몇 번이나 쓰러지고야 겨우 차에 뛰어올랐습니다. 남편은 표를 사들고 뒤로 따라오며,

"속치마, 속치마……"

하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속치마가 내려 끌리어 자꾸만 넘어지게 되었다고 깨달으면서도 속치마를 걷어 올릴 힘도 없고 숨이 항항 차며 머리를 무엇으로 되게 얻어맞은 듯 어리뻥뻥하고 지긋지긋 아팠습니다.

차가 움직일 때 남편을 돌아보았으나 전에 없이 남편의 얼굴이 다닥다닥 붙어 보이다가 아주 캄캄해지고야 말았습니다. 차창으로 후끈거리는 칠월의 시원한 바람조차도 나에게는 기막히게 안타까웠고 푸른 빛 가득한 광야는 나의 시력을 어지럽게 하였습니다. 펄펄 나는 듯이 뒤로 물러가던 전선대도 하필 오늘은 뜨묵뜨묵 물러가고 나지막한 뫼들도 역증이 나리만큼 오래 보였습니다. 나는 몇 번이나 완행을 타지 않았는가 하여 둘러보려 하였습니다.

급하던 숨은 차차로 가라앉았으나 내 어머님의 오물오물하던 턱이 보이고 그리고부터 얼굴 전체가 환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섯 해 동안이나 내 왜 못 갔나! 뭣하기 못 갔나! 나는 새삼스러이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으며 입에 손 넣고 어린애같이 앙앙 울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가서 만이르 어머니를 못 뵈옵게 된다면, 그 음성을 못 듣게 된다면 어쩌나 하는 초조가 쾅쾅툭툭하는 차 바퀴 소리에 이어 달리고 있습니다.

아들도 없는 내 어머니, 딸들은 동서로 시집 보내고 혼자 댕그라하니 계시는 어머니, 그리고 몹시 앓아 누워 게신들 누가 머리 한 번인들 짚어 올리며 미음 한 그릇인들 따듯이 쑤어 올리랴 하니 어머님을 모시게 못되는 나의 환경이, 보다도 사회제도가 새삼스럽게 더 원망스러웠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차창에 의지하였습니다. 바람결에 훌훌거리는 내 머리카락, 내 어머님에 대한 살뜰한 기억을 한들한들 자아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까맣게 잊었던 내 어려서 일이 아득히 떠오르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우리 모녀가 살 길이 없어 고모가 있는 어느 산골을 찾아가던 그 오불꼬불한 길, 산골에서 살면서 어머니를 찾아 산에 가서 솔가래기를 줍다가 배고프다고 울던 일, 그러면 어머니가 물오른 솔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겨주던 일 웅성거리는 사람의 소리도 꿈같이 아득하게 들리고 몰싹 건너오는 담배연기는 무거운 내 코 끝에 싸하게 부딪치고 있습니다. 콧물을 씻으면서 눈을 번쩍 뜨면 싯누런 얼굴들이 우둑우둑 하였습니다. 그것이 싫어 머리를 창 밖으로 내미니 안개비를 솔솔 뿌리는 듯한 바람이 쉴 새 없이 내 목에 감겨 돌아갑니다.

어쩐지 하늘도 해를 잃고 우울해 있고 까맣게 나는 새들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저 멀리 핑글핑글 도는 나지막한 뫼에 내 어머니의 얼굴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이애야! 이애야! 하고 날 부르시며 뫼와 뫼를 건너뛰어 날 보려고 다그쳐 오시는 내 어머님의 숨찬 환영이 내 눈을 캄캄케 하였습니다. 쿠술쿠술 오르는 가죽 냄새조차도 내 목을 깍 메이게 하였습니다.

그날 밤 차창으로 갈겨치는 빗발을 맞고야 나는 차창을 닫았고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어쩐지 불안한 예감을 자꾸만 가지게 하였습니다. 이듵날 오후 두시 반 가량이나 되어서 내가 경성역에 잠깐 내렸다가 다시 경의선으로 올랐을 때는 사뭇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점점 더 초조한 생각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창문을 겹겹이 닫아 놔서 그런지 차안은 온갖 잡내로 터질 듯하였습니다. 새슬새슬 지껄이는 여인의 음성, 왕왕거리는 남자의 음성, 버들피리 부는 듯한 어린애 울음소리, 저벅저벅 쿵쿵하는 온갖 신발소리, 쾅! 하고 닫히는 문소리, 뒤범벅이 되어 돌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앉은 곳은 변소 옆이라 그런지 문바람에 휘몰려오는 약간 과일내를 품은 시시구러한 냄새에 구역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비바람에 차창이 간혹 흔들리는 듯하고 문틈으로 서늘한 바람이 솔솔 스며들며 눈물 같은 빗방울이 유리문에 주르르 흘러내리고 또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높았다 낮아지는 전선줄은 어미새를 잃고 헤매는 새 새끼 무리 같았습니다. 어느덧 붉은 물에 채어 오둘오둘 떠는 듯한 작은뫼들이 삼아삼아하게 차창으로 보였습니다. 나는 코끝이 차갑도록 창문에 얼굴을 대고 비가 좀 그쳐졌으면 하고 안달은 하였습니다.

이러한 조바심 가운데서 무사히 사리원역에 내리게 되었고 비를 쪼루루 맞고 경편차에 올랐습니다. 비에 움츠러든 내 치맛자락을 쥐어 당시면서 차안을 둘러보니 어쩐지 걱정이 더욱 커졌습니다.

사리원역을 떠나며 보니 온 벌은 그냥 홍수로 뻘겋게 뒤집혔습니다. 빗발만이 어지러운 공중엔 나는 새도 볼 수 없고 멀리 희미한 산밭만이 비참해 있습니다. 홍수에 묻혀 머르만 들고 있는 오곡은 비명을 지르는 듯하였고 이 산 모퉁이 저 산 모퉁이에 모여 앉아 있는 농가들은 공포에 떨고 지는 듯하였습니다.

이 차에선 과일내와 변소내도 맡을 수 없고 걱정만이 한 차 가득한 듯 하였습니다. 승객들은 애꿎이 입맛만 쩍쩍 다시고 담배 피울 것도 잊었으며 정신 없이 밖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낯익은 산천이 내 앞에 가까워질수록 내 가슴은 따가워지고 다리 팔이 후루루 떨렸습니다. 이렇게 와서도 어머님을 못 뵈오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이 자꾸만 커가기 때문입니다. 이러함인지 때로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남들이 싫어하는 창문을 와르르 열고 찬 비를 맞았습니다.

차는 사뭇 홍수를 헤치고 달아납니다. 빼닥빼닥하는 것이 금방 쓰러지는 듯하여 덜컥만 하면 나는 몸이 한 줌만 하였습니다. 이러하기를 거듭하여 머리가 어지러울 제 차는 S역에 달하였습니다. 불과 수인이 역에 내리니 몇 사람의 역원과 경관 한 명이 쓸쓸히 우리를 맞았습니다. 대합실엔 손님들도 없고 처맛물 소리와 벗바람 풍기는 비린내만이 감돌고 있습니다. 얼음같이 차 보이는 회벽에 광고로 붙인 각종 포스터가 울긋불긋하였고 두어 개의 의자가 한켠에 길체에 돌아앉고 있습니다.

"오늘은 차가 못 오기 쉬우니 여관으로 들어들 가 계시오."

역원 하나가 나타나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아뜩하였습니다. 불과 몇 리를 안 남겨 놓고…… 하자 걸어라도 가고 싶어 고향길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하얀 모래가 비친 신작로에 빗발이 어지럽고 행인이란 일체 끊어졌습니다. 누가 가는 사람이 있으면 하고 돌아보니 승객들은 우울에 잠겨 선로 저편으로 남실거리는 붉은 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 물이 선로를 넘어 들이미는 때는 S역뿐만 아니라 전 S가가 다 뜨게 되겠다고 역원들은 부산하였습니다.

"이제 전화를 걸어보니까 차가 떠났답니다. 표들 사십시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승객들은 다투어 차표 사들고 기운을 얻어 뭐라고 지껄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차가 올 길만 바라보고 얼굴에 솜털을 까칠하게 일어세우고 있었습니다. 이슥은 했더니 차가 왔습니다. 큰 버스였습니다. 승객이 오른 바람에 차는 전 속력을 다하여 달리었습니다. 온천 앞의 다리가 위험하니 어서 가야 한다고 운전수는 꼿꼿이 앉아서 옆눈 하나 팔지 않고 핸들은 놀렸습니다. 우리는 운전수 못지않게 긴장되어 가지고 자리 넓혀 평안히 앉지를 못하였습니다.

좌우에 늘어앉은 조 이삭과 수숫대은 홍수에 치렁치렁 잠겼고 신작로 가에 잡풀은 파랗게 빛났습니다. 가다가 신작로에 홍수가 가로질러서 우리로 하여금 놀라게 하였습니다만 차는 그 물을 박차고 내달았습니다.

하늘도 산도 벌도 핑글핑글 돌아갑니다. 이제 타고 온 경편차보다는 훨씬 빠른 듯하였습니다. 어느덧 자욱한 송림을 끼고 차는 씩씩하게 비탈길을 올라가고 있습니다. 낯익은 이 길은 전보다 좀 넓어진 듯하고 흙빛은 옛날 그대로 다홍입니다. 산비탈에 소복소복 앉아 있는 다방솔은 예쁘기도 합니다. 내 애기의 머리털같이 그리도 귀엽습니다. 차차로 높아 가는 좌우 산은 시커먼 연기같이 굼실거리고 송림에 내리는 빗발소리는 좌 하고 바다소리를 냈습니다. 발동기에선 왕하는 소리까지 났습니다.

길을 끼고 쀼죽 나온 산 모롱이를 휘 돌아서 자동차는 딱 멈추었습니다. 운전수는 몇 번 발동기를 되게 트는 모양이었으나 차는 까딱하지 않으므로 조수와 함께 뛰어내립니다. 나는 적이 불안하여 머리를 넘석하여보니, 놀라워라, 차의 앞바퀴가 절벽에 반즘 내밀고 있습니다. 나는 황황히 일어났습니다. 저마끔 먼저 나오려고들 부비는 통에 나는 어떤 사나이의 베두루마기에 얼굴을 알알 부비치고야 겨우 내렸습니다. 차 앞에 서고 있기도 무시무시해서 오수수 빗소리 나는 산 옆으로 뛰어가 아무데나 쪼그려 앉았습니다. 목숨 구한 것만이 다행하여 잠깐 동안 아무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앉은 나의 눈엔 산비탈에 있는 도라지꽃이 파랗게 비치고 있습니다. 차안에서도 추웠는데 이리 비를 맞아 놓으니 사뭇 이가 마주치도록 떨리고 몇 끼 굶은 뱃속이 게르륵 소리를 냈습니다. 승객들은 오굴오굴 모여 서서 운전수와 조수의 분주한 양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제 보니 승객들이란 귀향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뚱뚱한 사나이와 오누인지 부부인지 얼른 알아보기 힘든 남녀와 베두루마기를 입은 별로 뒤통수가 쑥 나온 사나이였습니다.

눈에 흰자위가 많아 힐끗해 뵈는 운전수는 바퀴가 들어박힌 진흙을 후비어도 보고, 앞으로 가서 절벽을 내려다도 보면서 어쩔 줄을 몰라 하였습니다. 너무 급한 김에 차를 빗몰아서 이런 딱한 지경에 이른 듯하였습니다. 운전수와 조수는 한참이나 갈핀를 못 잡고 왔다갔다 하더니 무슨 생각을 했음인지 조수는 비탈길을 쭈루루 달리고 있습니다.

밀어서 되는 것 같으면 시원히 밀어라도 보겠는데 차는 뒷걸음으로 들어와야 할 처지에 있고 산에서 달려 내려온 물에 움쑥 골이 진 진흙속에 뒷바퀴가 저리도 칵 박히었으니 손쉽게 뒤로 물러올 수도 없는 그런 딱한 지경에 있습니다. 돌아보니 우리가 올라온 비탈길은 준령에 가리어 잘 보이지 않고 길이라고는 아주 없을 듯이 산과 산만이 첩첩하여 하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직 일이 정보 가량이나 되게 준령을 타고 넘어 둥글게 돌아온 길만이 마치 공중에 떠 있듯이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 길로부터 잠깐 굽어진 곳에 차는 저 모양이 되었고 그리로부터 길은 내가 앉은 산비탈을 끼고 이제 올라온 길 모양으로 꾸불꾸불 흘러 내려갔습니다.

차가 서고 있는 그 절벽으로 옛날엔 사람들이 올라 다니었다고 하며 그랬음인지 끊었다 이어진 가는 길이 솔포기 속에 숨어 아득하게 보였습니다. 그 길로 곧장 내려가면 그리 넓지 못한 벌이 길게 들여 놓였고 그 벌 위에 조밭과 수수밭이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준령에서 갈라진 지맥은 말허리같이 늘씬하게 되어 그 벌을 싸고 본산맥을 바라보면서 흘러 내려갔습니다.

조수가 뭘하러 내려갔는지 여기에 한 가닥 희망을 붙인 채 나는 달달 덜고 있었습니다. 굵던 비는 차차로 안개비로 변하여 포실포실 내리고 좌우 산엔 송림이 빽빽하여 산봉 끝까지 푸르르 하늘에 닿은 듯하였으며, 그 허리로 안개가 실실 감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어머님을 뵈옵지 못하게 되느라고 이런 일이 다 일어난 듯하여, 나는 한숨을 삼키고 무심히 바라보니 조수는 어느새 저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조밭과 수수밭을 지나 산기슭에 조그만 초가가 아늑히 들어 있습니다. 조수는 그 초가를 향하여 달음질하고 있다는 것을 직각하며, 이런 심산에 사람이 살아? 하고 눈을 크게 떴을 때 조수는 까뭇 그 초가로 들어갔습니다. 저 집엔 뭘하러 갔을까? 사람을 청하렴인가 무슨 도구를 얻으렴인가? 하는 의문에 나는 눈썹에 구슬 지은 안개비를 씻고 보았습니다. 수숫대 바자가 성냥가치로 세워논 듯하고 지붕이 여간 낮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손바닥만한 뜰은 차돌같이 빛나고 산이 울타리가 되어 그 조그만 집을 꼭 싸고 있습니다. 조수가 나오자 조수 키의 배나 되는 사나이가 따르고 있습니다. 나는 반가운 맘이 왈칵 드나, 차를 보면 끔찍합니다. 차를 움직이려다 아무래도 불상사가 일어날 것만 같아 몸이 으쓱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잔망한 생각은 말자 하다가도, 절벽에 앞바퀴를 내밀고 있는 차를 보면 안 할 수 없고, 흰 글로 된 버스의 번호가 웬일인지 뱅글뱅글 돌기도 하고 절벽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양이 오리숭숭하게 보이는 듯하였습니다.

조수와 사나이는 수수밭에 가리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우리가 내려갈 길을 바라보며 조수와 사나이를 기다리었습니다. 푸른 산에 숨었다 나타난 저 길을 아득도 합니다. 승객들은 절벽을 내려다보고 뭬라고 지껄이므로 조수와 사나이가 그리로 올라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마는 몸을 움직일 것이 딱 싫어서 가만히 앉고 있었습니다. 와! 하는 학생 소리 틈에 어떤 사나이는 조수의 손을 이끌고 언덕 위에 올라섰습니다. 한편 손엔 굵은 바가 쥐어 있습니다. 조수의 얼굴은 해쓱하게 질리었고 사나이의 손에서 벗어나자 그는 펄썩 주저앉았습니다.

운전수는 얼른 사나이의 손에서 바를 받아 가지고 버스 뒤로 와서 허리를 굽히고 있습니다. 승객들은 주루루 밀려가서 운전수를 싸고 돌아섭니다. 나도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하나 보고 싶어 일어나서 두어 걸음 나가다가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배가 고파서 이런지 아파서 이런지 쓰리고 들부비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수는 숨을 태웠음인지 승객들을 뻐개고 들어가서 운전수의 하는 일을 조력하고 있습니다. 나는 열심히 이것을 바라보다가 문득 시선을 돌리니 사나이는 아까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그의 집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키는 보통 키에서 훨씬넘어 후리후리 했으며 등은 약간 굽은 편이고 기름한 머리가 위에 가서 탁 퍼졌습니다. 오래 깎지 않은 듯한 머리카락이 보기 싫게 구슬러 있고 흰 머리카락이 희뜩희뜩 보이므로 사오십 되었나 하였으나 그리 나 먹은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웬일인지 사나이는 풀기없이 멍하니 서 있습니다.

운전수는 일어나서,

"자, 이 바를 끄시우."

서슴지 않고 바의 한 끝을 사나이에게 내쳐 주었습니다. 사나이는 잠잠히 바를 받아 가지고 같이 끌 사람이 있는가 하여 둘러보는 양이었으나 누구 한 사람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혼자임을 안 까닭인지 바를 허리에 걸고 옹누를 짓고 있습니다. 그새 승객들은 두 편으로 갈려서 차바퀴를 밀고 더러는 서서 밀려 운전수와 조수는 승객 뒤에서 미는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이러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하여 이를 악물고 차곁으로 와서 차에 매달리었습니다.

"엇차 엇차."

여러 사람은 힘있게 외쳤습니다. 사나이는 버스로부터 이삼 보 가량이나 나가 섰으며 허리에 바를 여유 있게 동였고 주먹을 부르쥐고 앞으로 나가려고 힘을 씁니다. 굵은 짚신 뒤에 귤껍질같이 거칠어 보이는 발뒤꿈치가 힘쓰는데 따라 올랐다 내렸다 하였습니다. 발가락은 어찌나 긴지 여느 사람의 손가락만이나 하였고 그 마디에 굵은 봉취가 박히었습니다.

"엇차 엇차!"

이런 소리가 쉴 새 없이 흘렀습니다. 버스와 사나이 사이서 바는 팽팽히 잡아 씌었고 뚝뚝 하는 바 소리가 사나이의 생사를 결단하려는 것 같아 가슴이 서늘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칫 잘못하며 차가 절벽으로 굴러 떨어질 것이요, 거기에 따라 사나이도 딸려 들어갈 것이 뻔한 것이므로, 그래 바를 허리에 동이지 말고 손으로 끌었으면 하나 누구 한 사람이 말을 입에 올리는 이 없었습니다. 사나이의 발 뒤꿈치는 어느덧 흙에 묻히었고 짧은 잠방이 가랑이 밑의 털이 푸수수한 다리엔 쇠사슬 같은 힘줄이 불뚝 솟아 올랐습니다. 힘을 좀 쓴 탓인지 추운증은 멎었으나 숨이 차고 헛구역질이 나며 앞이 아뜩하므로 나는 산비탈로 왔습니다. 하늘이 팽팽 도는 듯하여 나는 눈을 감고 한참이나 진전하여 가지고 눈을 뜨니 사람들이 모두 버스 빛같이 누렇게 보였습니다. 나의 눈은 사나이 위에 멈춥니다. 그는 머리를 푹 숙이고 헐떡였습니다. 되는 대로 흘러 내려온 새치 가득한 머리엔 안개비로 뽀얗고 그 새로 반쯤 감긴 검실검실한 큰 눈이 반쯤 감겨 있으며 시커먼 눈썹 위에 퍼런 힘줄이 눈을 괴롭힐 듯이 뻗치어 있습니다.

갑자기 솟은 듯한 큰 코밑에 땀인지 빗방울인지 번질번질 흐르고 기름한 턱에 수염이 가득한데 그리로 땀방울이 스며들어 목으로 흘러내립니다. 얼굴에 비하여 가늘어 보이는 목에 순대통 같은 힘줄이 무섭게 뻗치었고 그의 옷은 함빡 젖어 거칠은 뼈마디가 환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허리에 바가 꼭 비틀어 감겨 있습니다.

차는 움직움직하다가는 도로 그 자리에 박힐 뿐만 아니라 더 파고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승객들의 옷에도 흙이 튀었고 얼굴에 땀이 번질번질하였습니다.

철떡하는 소리에 바라보니 사나이는 왼 다리를 깔고 넘어진 것입니다. 그 몸에 매어 있는 바는 웬일인지 보기 끔찍합니다.

사나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체 벌떡 일어나는 참, 힘을 낑 하고 씁니다. 흙이 얼굴에 툭툭 튀어 발렸음인지 껌벅이는 두 눈은 사람의 눈 같지 않았습니다. 이제 넘어지면서 잠방이 가랑이 짖어진 듯하였고 그리고 흙에 매닥질한 무릎마디가 드러났습니다.

사나이가 힘을 쓸 때에야 승객들은 간신히 몸을 추세워 엇차 소리를 약하게 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만 밀려나오는 것을 보아 뒤에는 아마도 위험한 듯하였습니다.

차 곁에 근심스러이 서 있던 여인은 달려오며 앞바퀴가 나간 그 절벽이 푸슬푸슬 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화닥닥 일어나자 그 여인은 내 손을 끌며 돌을 주워 오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산비탈을 뒤졌으나 돌이라고는 눈에 띄지 않으므로 애가 말라 견딜 수 없었습니다.

송림이 캄캄해 오는 것을 보아 미구에 밤이 올 것이 더한층 무서웠습니다. 해서 우리들은 손톱이 자빠지도록 흙을 허비고 돌를 꺼내어 차 바퀴에 고였습니다. 한결 차바퀴가 내려가지 않는다고 하므로 몇몇 학생까지 돌을 주우러 나섰습니다. 사나이는 또 쓰러졌습니다. 우리가 돌을 든 채 걱정스러이 볼 때 사나이는 후닥닥 일어나다가 미끈하여 재차 쓰러졌습니다.

우리들이 전신이 하사분해 섰노라니 사나이는 버둥버둥하다가 후딱 일어나서 힘을 씁니다. 아주 흙사람이 되었고 잠방이 가랑이 찢어져 흙에 묻히었습니다.

사나이는 바를 가슴에 썩 올려 걸어 좌우 겨드랑이로 뽑은 담에 숙였던 머리를 턱 젖히고 가슴을 쑥 내밀었습니다. 그의 짚신짝은 언제 벗겨졌는지 흙속에 되는대로 묻히었고 긴 발가락이 흙을 허비고 있습니다.

우리는 차차 꾀가 나서 사나이가 선 곳에도 잔돌을 깔아 놨습니다. 하도 미끄러워 보이므로 나는 두 번째 가지고 사나이 곁으로 갔을 때 그의 무릎마디가 피에 지질한 것을 보고 머리를 돌리고 달아왔습니다. 나는 돌을 가지고 올 때마다 절벽을 꼭 바라보고 또 사나이를 보곤 하였습니다. 학생 하나가 금 파던 굴을 발견했다고 해서 우리는 돌을 주우러 그리로 가서 큰 돌을 맞들고 내려올 때 차는 미는 승객들은 아우성 쳤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인가 하여 꼼짝 못하고 떨고 있을 때 학생 하나가 오라고 손짓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허둥지둥 내려오니 차는 움직인 것입니다. 우리는 급하게 돌을 밀어 넣고 차에 매달리었습니다.

"엇차 엇차."

차는 삼아삼아하게 앞으로 움직였습니다. 여인의 머리에서 동백기름내를 기막히게 맡으면서 나는 차를 밀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절벽과 사나이가 걱정이 되어 자꾸만 머리를 들려고 하였습니다.

"아갸!"

여인의 소리에 나는 가슴이 뜨끔하여 바라보니 사나이의 한 다리가 미끌어진 것입니다. 찰나에 사나이는 뒷걸음치는 차를 따라 주루루 끌려 오면서도 끌리지 않으려 두 팔을 바람개비 돌리듯 휘저었습니다. 우리는 악 하고 소리치면서 어찌자고 일제히 차에서 물러났습니다.

사나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머리를 꿈틀하고 힘을 쓰자 몸을 솟구치고 가랑이 없는 외다리로 껑충 뛰어 나가면서 미끄러진 다리를 끌고 나갔습니다. 순간에 사나이의 머리털은 공중을 향하여 무섭게 뻗치었고 다리엔 쥐가 수없이 일어나 불뚝이었으며 시커먼 다리털이 생물같이 꿈틀거리었습니다.

우리는 악 하고 소리치면서 그제야 창에 달리어 힘껏 밀었습니다. 사나이는 너무 힘을 쓴 탓인지 퍽 거꾸러집니다.

그러나 벌벌 기어 달아났습니다. 우리는 목이 터지라고 소리를 치고 나아갔습니다.

거짓말같이 차는 길 한복판에 왔습니다. 사나이는 기진하여 머리를 땅에 박고 일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들이 달려가니 그때까지 가랑이 없는 뻘건 다리는 푸들푸들 떨고 있습니다.

운전수가 사나이를 일으키려고 했을 때 갑자기 사나이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바에 지질려 그의 적삼이 문드러졌고 그리고 선혈이 뭉클뭉클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 오마이 업어올까유?"

운전수를 바라보고 툭 뱉는 사나이의 말! 웬일인지 나의 가슴에 딱 맞질리었습니다. 운전수는 머뭇거릴 때 차에서 바를 풀어 꺾이고 오는 조수가,

"아니, 미안하게 되었수마는 오늘 비가 오구, 더구나 날이 저물지 않았수. 그리고 온천교가 어찌 되었는지 모르니까 우리 내일로 미룹시다."

하고 승객들에게 어서 오르라고 하였습니다. 사나이는 조수의 눈을 거쳐 운전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눈에서 나는 확실히 그가 이십 안팎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운전수는 급하게 몇 마디 말을 던지고 황황히 돌아섰습니다. 사나이는 펄썩 땅에 주저 앉는 것입니다.

마침 빗발이 굵어졌습니다. 차는 푸릉푸릉 움직였으므로 우리는 미안하게 되었다는 말이나마 다시 한번 또 하고 싶어서 차창으로 머리를 내 밀었습니다. 사나이는 돌아도 보지 않고 우두커니 앉았더니 벌떡 일어나는 참, 돌을 집어들었습니다.

우리는 흠칫 머리를 돌리고 사례하고 싶던 맘이 공포로 변하여 버렸습니다.

차는 새와 같이 나는 듯하였습니다. 짱! 하고 돌 맞는 소리에 나는 몸이 한 줌만 하여 엎디었습니다.

"웬일이어, 그 자가?"

승객 중에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나는 떨면서도 이 소리를 들으려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다 죽어가는 제 어미를 태워다 병원에 갖다 달라니 길에서 송장 보겠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온천교가 걱정이 아니면 또 모르겠는데."

조수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아까 사나이의 말에 칵 맞질리었던 가슴이 이제야 확 터지면서 걷잘을 수 없이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사나이를 보고 싶은 맘에 머리를 창문으로 내밀었습니다.

아직도 그 사나이는 허리에 바를 동인 채 돌팔매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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