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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 이야기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요전번 유럽에 일어났던 세계 대전쟁이 끝난 후에 여러 곳에서 독립국이 된 조그만 나라가 많은 중에 ‘유태’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이 유태라는 나라는 퍽 오래된 역사를 가진 나라인데 유명한 예수님도 이 나라에서 탄생하였고, 예수님 나기보다도 훨씬 예전, 지금으로부터 한 삼천년 전에는 이 나라에 삼손이라는 굉장한 기운을 가진 장사가 나왔습니다.

그 삼손이라는 이는 체격이 무섭게 크고 머리털까지 기운차게 뻗쳐 있고 팔뚝은 쇠뭉치 같은데 더구나, 더 움쑥 들어간 왕눈과 번쩍 내 뻗친 코와 한일 자로 꽉 다문 입을 보면 여간한 사람은 보기만 하여도 놀라 자빠지게 호걸 남자로 생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김보다는 실제로 그의 기운 쓰는 것을 보면 천하에 아무리 힘이 센 장사라도 놀라 쓰러지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참말로 삼손같이 무서운 기운을 가진 사람은 그 전에도 없었고, 그 후로도 다시는 없었습니다. 혼자서 백 명이나 이백 명쯤은 우습게 개미 새끼같이 알고, 한 번 골이 나는 때는 한숨에 천여 명 쯤 우습게 넘겨 치는데 그 무서운 힘이 한 해 두 해 지나갈수록 점점 늘어서 나중에는 몇만 명이라도 해낼 듯이 무서운 힘을 갖게 되어 그 때 사람들은 삼손이라면 귀신보다도 더 무섭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삼손은 그냥 무지스럽게 기운만 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끔찍이 자기의 나라와 동포 형제를 위하고 아끼는 열정(熱情)을 가진 사람이었건만 불행히 그 때의 유태 나라는 이웃 나라와 싸우다가 져서 이웃 나라에 붙은 나라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 그 때 싸움에 이긴 그 이웃 나라 사람들은 유태 사람들을 못 살게 못 견디게 달달 볶아 가면서 자기 나라 사람들의 욕심만 채우고 있었습니다. 삼손은 이웃 나라 사람들이 억지로 자기 나라 사람의 재물을 빼앗아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까닭없이 자기 나라 사람들을 붙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고 두들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서운 삼손의 피는 끓었습니다. 참다 못하여 쇠보다 단단한 주먹을 쥐고 불끈 일어선 삼손은 주먹이 닿는 대로 원수를 갚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웃 나라에서는 큰일 났다고 병정들을 모아 보내어 삼손을 붙잡으려 하였으나, 총이나 대포가 없는 때이라 아무리 몇만 명 군사가 가더라도 좀 가깝게도 달려들 수도 없었습니다. 동포를 사랑하는 정에 끓는 삼손은 사나운 사자보다도 무서웠습니다. 당나귀의 해골 하나를 손에 쥐고 그걸로 천여명을 죽여 넘겼습니다. 한 번만 얻어맞은 사람은 아무리 기운이 센 장사라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습니다.

하도 어이가 없으니까, 이웃 나라 사람들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꾀를 내다 못하여 여기저기 숨어 있다가 삼손이 까쟈라는 동리에 들어갔을 때 얼른 사방 성문을 밖에서 잠궈 버리고 말았습니다.

성내에 들어간 삼손이 그 꼴을 보고 깔깔 웃더니 성문 밖을 향하여 큰 소리로,

“요 조그만 놈들아! 어디 견디어 보아라.”

하고, 호령을 하고는 우뚝 버티고 서는데 그의 머리털은 왼통 하늘로 뻗쳤습니다. 그리고는, 돌로 크게 쌓은 바위 같은 성문을 두 손으로 턱 버티더니,

“응!”

소리를 지르면서 그 성문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 큰 성문은 땅에서 떨어져서 삼손의 손에 대롱대롱 들렸습니다. 삼손은 그 성문을 들고,

“에그머니, 에그머니.”

하면서, 도망가는 이웃 나라 군사들 틈으로 쏜살같이 달음질쳐 가더니 저 성밖에 조그만 산기슭에다,

“엥”

하고, 내어던져 버렸습니다.

이웃 나라 군사들은 그만 혼을 잃고 혼비백산하여 도망해 가서, 그 놀라운 보고를 하였으므로 그 나라 사람들은 모이어서 머리를 맞대고,

“참말 이상스러운 기운인걸, 그 어쩐 까닭으로 그렇게 기운이 센지 까닭을 알아야겠네.”

하고, 별별 짓을 다하여 그 까닭을 알려고 하였습니다. 그래 여러 가지로 탐문하여서 기어코 삼손의 그 무서운 기운은 그 머리털 하나하나에서 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털이 많고 길면 길수록 기운이 점점 많이 생기고, 그 대신 머리를 깎아 버리면 기운이 아주 없어지는 것까지 자세히 알게 되어서, 이제야 큰 수가 생겼다고 사람을 넌지시 보내서 기회를 엿보다가 삼손이 잠자는 동안에 그 머리를 말끔히 깎아 버렸습니다.

애처롭게도 삼손은 그만 머리가 없어져서 조금도 기운 없이 어린 사람처럼, 무지한 이웃 사람들에게 결박을 당하여 끌려갔습니다.

이웃 나라 사람들은 무참하게도 혹독하게도 삼손의 두 눈을 후벼파서 불쌍하게도 다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어 버렸습니다.

분하고 슬픈 캄캄한 지옥 생활이 한 달 두 달 지나갔습니다. 삼손의 검은 머리는 다시 차차 길게 자라서 기운도 다시 굳세게 되었지만, 두 눈을 후벼 패어 앞 못보는 병신이 되고 몸은 감옥 속에 들어 있어, 발목에는 굵은 쇠사슬과 무거운 쇠뭉치가 달렸으니 무슨 별수가 있겠습니까? 갑갑하고 서러운 날이 하루이틀 헛되이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그 후, 어느 때 큰 명절이 돌아와서 이웃 나라 사람들은 늙으니 젊으니 어른 아이 없이 모두 새 옷을 입고 음식을 잘 차려 먹고 굉장히 큰 절간에 모여서 즐겁게 놀았습니다.

한참이나 놀다가 염증이 났던지,

“우리 오늘 좀더 신기하고 재미있는 장난을 할 것이 없을까?”

하고 서로 의논 의논하다가,

“옳지, 옳지. 오늘같이 기쁜 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데서 감옥에 있는 삼손을 끌어내다가 기운 구경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그것이 참 좋겠습니다. 지금 곧 시켜 보지요.”

하고 찬성하므로, 즉시 사람을 보내어 삼손을 끌어 내오고,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 한 집 속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두 눈을 빼앗겨 앞 못 보는 장님 삼손은 쇠사슬과 쇠뭉치를 질질 끌면서 어슬렁어슬렁 끌려 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마치 구경터에서 사자나 코끼리를 보는 것처럼 손뼉을 치고 웃고 좋아했습니다.

한없는 원한과 슬픔을 품은 삼손은 자기의 몸이 원수 놈 앞에서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참지 못할 분기가 솟아오르지만, 어떻게 하는 수 없이 꿀꺽꿀꺽 참으면서 하라는 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큰 바위를 백여 명 되는 사람이 끌어다 놓으면 눈 먼 삼손은 그것을 주먹으로 쳐서 부스러뜨렸습니다. 수십 명이 메고 온 크디 큰 나무는 삼손이 손가락으로 번쩍 들어서 성냥개비 꺾듯이 뚝 꺾어 보였습니다.

그럴 적마다 이웃 나라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저렇게 기운 센 장사를 잘 속여서 눈까지 없애 논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기운 재주가 끝난 후에 삼손은 집 한가운데 굵디 굵은 기둥을 두 손으로 껴안고 앉았습니다.

“아마, 또 무슨 재주를 하려나 봐요.”

하고, 구경꾼들은 유심히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앉았던 삼손이 벌떡 일어서면서,

“응!”

하고, 껴안았던 기둥을 잡아당기면서 몸을 옆으로 번쩍 들으니까, 그 무거운 기둥이 흔들리면서 부쩍부쩍 소리가 나면서, 그 큰 절이 지붕째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에그머니!”

소리와 우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게 일어나면서, 그 안은 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철천의 슬픈 한을 품은 삼손이,

“너희는 우리의 원수다!”

하고, 소리치면서 마지막으로 기둥을 잡아 흔드니까, 그 큰 산같이 큰 절이 그대로 풀썩 무너졌습니다. 무서운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리면서 푹 주저앉은 큰 절 밑에 몇천 명의 이웃 나라 사람은 한 사람도 살아 도망가지 못하고 눌리어 죽었습니다.

물론 삼손도 그 중에 섞이어 죽었습니다.


아아, 장렬한 죽음! 의협의 대용사 삼손! 삼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