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제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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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은 차마 발길이 돌아서지 않는 것을 하는 수 없이 조선을 등지고 떠났다. 그렇건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동혁에게서는 전보도 편지도 오지 않았다. 차디찬 다다밋방에서 얄따란 조선 이불을 덮고 자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겨우 요기만 하며 지내는 영신에게는 기숙사생활이 여간 신산한 것이 아니었다. 동무들도 친절하기는 하나 속마음을 주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 어울리지 않는 일본옷을 입은 것처럼 동급생들하고도 얼리지를 않았다. 학교도 예상하였던 것보다는 취미에 맞는 것이 없고 농촌에 관한 것은 거의 한 과정도 없어,

'이걸 배우러 여기까지 왔나.'

하는 후회가 났다. 정양할 겸 온 것이라서 수토가 달라 몸은 점점 쇠약해질 뿐.

학교에 가서도 층층대를 오르내리려면 다리가 무겁고 시큰시큰하여서 매우 괴로웠다. 부었다 내렸다 하는 다리를 눌러 보면, 손가락 자국이 날 만치나 살이 무르다. 같은 방에 있는 학생에게 물어 보니,

"암만해도 각기병 같은데 얼른 병원에 가 진찰을 해봐요. 각기가 심장까지 침범허면 큰일난답디다."

하면서도 전염병이 아닌데도 같이 있기를 꺼리는 눈치까지 보였다.

"아이고! 또 병원엘 가야 허나!"

말만 들어도 병원 냄새가 코에 맡히는 듯 지긋지긋하였다. 가보려야 진찰료와 약값을 낼 돈도 없지만…….

'이런 구차스러운 유학이 어디 있담.'

영신은 만사가 도시 귀찮았다. 공부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고향에 가 눕고만 싶었다.

오락한 곳마다 모두 방황하여도
일간두옥 내 집만한 곳이 없고나!

소녀 시절에 부르던 '홈 스위트 홈'을 그나마 남몰래 불러 보려면, 떠나올 때에도 찾아가 뵙지 못하고 온 홀어머니 생각에 저도 모르게 베개를 적시는 밤이 계속되었다.

'내가 천하에 불효녀지, 무슨 사업을 헌답시구 그 불쌍헌 어머니 한 분을 모시고 지내지를 못허니…….'

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밤이면 밤, 꿈이면 꿈마다 보이는 것은 청석골이다. 인제는 제이의 고향이 아니라, 저를 낳아 길러 준 어머니가 계신 고향보다도 청석골이 그리웠다. 어느 것이나 정다운 추억이 아닌 것이 없다.

"오오 청석골, 그리운 내 고향이여!"

시를 지을 줄 모르는 영신의 입에서 저절로 새어 나오는 영탄사건만, 그대로 내뽑으면 시가 되고 노래가 될 듯싶다.

정을 가득 담은 원재 어머니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뒷일을 맡은 청년들의 자세한 보고를 접할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를 받을 때만치나 가슴이 설레었다. 그 중에서도 제가 ㄱ, ㄴ부터서 가르치고 가장 불쌍히 여기던 금분이가 공책에다가 연필로 꼭꼭 박아서,

전 선생님 보구 싶어요. 오늘두 선생님 편지 기다리다간, 체부가 그대루 가서, 옥례허구 필순이허구 자꾸만 울었에요. 우리들은 선생님이 이상스런 옷을 입구 박히신 사진 보구 깜짝 놀랐지요. 아이 숭해, 인전 그런 옷 입지 마세요. 그래두 우리들 보구 웃으시는 걸 보니깐 어떻게 반가운지 눈물이 나겠지요. 아이 그런데 난 몰라요. 그걸 서루 뺏다가 찢었으니 어쩌문 좋아요? 옥례가 찢었에요. 그래서 반씩 노나 가졌는데, 또 한 장만 보내 주세요 네네. 아무두 안 뵈구 저만 두구 보께요.

글자도 몇 자 틀리지 않고 정성을 들여 반듯반듯이 쓴 글씨를 볼 때, 영신은 어찌나 귀엽고 반가운지 그 편지에 수없이 입을 맞추었다. 눈보라치는 겨울에도 홑고쟁이를 입었던 금분이를 저의 체온으로 품어 주듯 그 편지를 허리춤에다 넣고 틈만 있으면 꺼내 보았다.

어떤 날은 사내아이들과 계집아이들의 편지가 소포처럼 뭉텡이로 와서 부족을 물었다. 편지마다 선생님 보고 싶다는 말이요, 사연마다 어서 오라는 부탁이다. 어떤 아이의 편지에는 누런 종이 위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려 글씨가 번진 흔적처럼 보여서,

"오오, 이 세상에서, 어느 누가 이다지도 보고 싶어하겠느냐. 이다지도 작은 가슴을 졸이며, 고 어여쁜 눈에 눈물을 짜내며 이 나를 기다려 줄 사람이 누구냐. 너희밖에 없다. 온 세계를 헤매다녀도 우리 고향밖에 없다. 청석골밖에 없다!"

하고 그 편지 뭉텡이를 어린애처럼 붙안고 잤다. 그는 홈식(思鄕病)이란 병까지 침노를 받은 것이다.

한편으로 동혁의 소식이 끊겨서 가뜩이나 심약해진 영신의 애를 태웠다. 한곡리로 몇 번이나 편지를 했건만 답장이 없다가, 하루는 뜻밖에 정득의 이름으로 편지가 왔다. 동혁은 도청 소재지의 검사국으로 넘어갔고, 동화는 만주에 가 있는 듯하다는 것과, 수일 전에야 동혁이와 한방에 있던 사람이 나와서 일부러 찾아왔는데,

'검사국까지 넘어오기는 했으나, 면소(免訴)가 되어 불원간 나갈 자신이 있으니, 영신 씨에게도 그 말을 전해 주고 아무 염려 말고 건강에만 주의하라고 부탁을 하고 갔으니 안심하라.'

는 사연이었다.

영신은 비로소 마음을 놓고, 그날 밤은 일찍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곁에 누운 학생이 늦도록 촛불을 켜놓고 복습을 하느라고 부스럭거리고 드나들고 하여서, 잠은 들었다가도 몇 번이나 깨었다. 청석골의 환경이 머릿속에 환하게 나타나고, 학원과 아이들의 얼굴이 핀트가 어그러진 활동사진처럼 어른어른하다가는 한곡리의 달밤, 그 바닷가에서 동혁에게 사랑의 고백을 받던 때의 정경! 병원에서 그에게 안겨, 지궁스러운 간호를 받던 생각이 두서없이 왕래해서, 그 환영을 지워 버리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며 무진 애를 쓰다가 근근근 쑤시는 다리를 제 손으로 주무르며 간신히 잠이 들었다.

"땡그렁―--- 땡그렁―---"

청석학원 앞에 새로 단 종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종대에 돌연히 나타나 종을 치는 사람을 보니, 용수를 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으나 시꺼먼 두루마기 앞섶에 번호를 붙였는데, 그 건장한 체격이 동혁임에 틀림없다. 동혁은 커다란 수갑을 찬 두 손을 모아 줄을 쥐고 매달리며 힘껏힘껏 잡아다린다.

"땡그렁―--- 땡그렁―--- 땡그렁―---"

종이 사뭇 깨어지는 듯한 소리가 온 동리에 퍼진다. 불 종소리나 들은 듯, 동네 사람들은 운동장에 백결치듯 모였다. 동혁은 무어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수갑을 낀 팔을 내두르면서도 한바탕 연설을 한다.

그 말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으나, 군중은 우아! 우아! 하고 고함을 지른다. 그러다가 동혁은 무참히도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모양으로 말을 탄 사람들에게 붙들려 질질 끌려간다.

"동혁 씨!"

"동혁 씨!"

영신은 외마딧소리를 지르며 허급지급 그 뒤를 쫓아가는데,

"사이상, 사이상, 네고도 잇데루노? 아 고와(영신 씨, 영신 씨, 잠꼬대를 하오? 아이 무서)!"

하고 어깨를 흔드는 것은 새벽 기도회에 참례하려고 잠이 깬, 곁에 누웠던 동급생이었다.

영신은 전신에 소름이 오싹 끼쳤다. 이마의 식은땀을 손등으로 씻으면서도, 꿈의 세계를 헤매는 듯 눈을 멀거니 뜨고 한참 동안이나 천장을 쳐다보았다. 몸서리가 쳐지는 지겨운 환영에서는 깨어났으나, 종소리만은 현실이었다. 학교 안에 예배당으로 쓰는 강당 앞에서 늙은 교지기가 쉬엄쉬엄 치는 종소리가 졸린 듯이 들린다. 꿈자리 산란한 이역의 서리 찬 새벽 하늘에―---

영신은 기도회에 참례를 하려고 밤 사이에 더 부어오른 다리를 간신히 짚고 일어서 세숫간으로 나가다가 머릿속이 핑 내둘리고 다리의 힘이 풀려 문지방에 허리를 걸치고 쓰러졌다. 학생들은 벌써 기도회로 다 가고 굴 속같이 컴컴한 기다란 복도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없다.

영신은 의식을 회복하고 눈을 떴을 때에야 제 몸이 의료실로 떠메어 와서 누운 것을 깨달았다.

숙직하는 교원에게 응급치료를 받은 후 교의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에, 영신은 몽유병 환자와 같이 눈을 멀거니 뜨고 누워서, 수술실처럼 흰 휘장을 친 유리창이 아침 햇발에 뿌옇게 물이 드는 것을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그제야 맹장염 수술한 자리가 뜨끔거리는 것을 깨닫고,

"아이고! 인전……."

하고 절망적인 한숨을 내뿜었다.

백발이 성성한 교의는 실내에까지 단장을 짚고 들어와서 영신을 자세히 진찰해 본 뒤에,

"몸 전체가 대단히 쇠약헌데, 각기병은 짧은 시일에 쉽사리 치료를 헐 수 없는 병이니, 고향으로 돌아가서 편안히 쉬며 치료를 허는 게 좋겠소. 복부의 수술도 완전히 하지 못해서 재발될 증조가 보이니 특별히 주의를 허지 않으면 큰일나오."

하고는 비타민 B가 부족해서 나는 병이니 현미나 보리밥을 먹으라는 둥, 심장이 약하니 절대로 과격한 운동을 하지 말라는 둥 주의를 시키고 나갔다.

경험 있는 의사의 권고까지 받고, 영신은 더 있을 수가 없었다. 고명한 의사가 들이 쌓였고, 의료기관이 아무리 발달된 곳인들, 고향으로 돌아갈 노자 몇십 원이 없는 영신에게 있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가나 오나 남의 신세만 지는 몸이 더구나 인정 풍속이 다른 수천 리 타향에서 그네들의 진심에서 우러나지 않는 친절을 받느니보다는, 하루바삐 정든 고장으로 돌아가서 피골이 상접해 가는 몸을 편안히 눕히고 싶었다. 편안히 눕히지는 못하더라도 여러 해 만에 어머니를 곁에 모셔 오고, 청석골의 산천을 대하고, 꿈에도 밟히는 어린 학생들의 손을 잡고 뺨을 부벼 보면, 정신상으로나마 얼마나 큰 위로를 받을지 몰랐다. 그는 마침내,

'가자, 죽드래도 내 고향에 가 묻히자!'

하고 비장한 결심을 하였다. 서울 연합회의 백씨에게 급한 사정을 하고 노비를 보내 달라고 편지를 써서 항공 우편으로 부쳤다. 돈 말을 하기는 죽기보다 싫지만, 남에게 구구한 사정을 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한 달 학비를 다가 쓰는 셈만 친 것이다.

노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영신의 고민은 거의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의 결혼 문제는 어떡헐까.'

그것은 물론 시급히 닥쳐오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은 자유를 잃은 몸이 되어 있고, 저는 무엇보다도 첫째 조건인 건강을 잃은 몸이다. 그러나 이미 약혼을 해놓고 이제까지 기다리던 터이니, 그 문제가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이는 불원간 나올 자신이 있다구 허지만 내 몸이 이 지경이 된 것을 보면 얼마나 낙심을 헐까. 그이는 오직 나 하나를 기다리고 청춘의 정열을 억지로 눌러 오지 않었는가. 나이 삼십에 가까운 그다지 건장헌 청년으로 보통 남자로는 참을 수 없는 것을 점잖이 참어 오지 않었는가. 다른 남자는 술을 마시고, 청루에까지 발을 들여놓는데, 그이는 생물의 본능을 부자연하게 억제하며 오직 일을 하는 것으로 모든 오뇌를 잊으려고 하지 않었는가. 더군다나 늙은 부모를 모신 맏아들로 오직 나 때문에 이 변변치 않고 보잘것없는 나 하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동혁에게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나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남의 청춘을 무참히 짓밟는 것이 아닐까. ○○일보사 누상에서 첫번 얼굴을 대한 후 벌써 몇몇 해를 사모해 오고 사랑해 오는 동안, 나는 그이에게 털끝만한 기쁨도 주지 못하였다. 도리어 적지 않은 정신상 육체상 고통을 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인제 와서 무슨 매매계약을 한 것처럼 약혼을 해약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영신의 여윈 뺨을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것은, 아직도 식지 않은 눈물이다. 좀체로 모든 일에 비관치 않으려던 전일에 비해서 너무나 마음까지 몹시 약해진 것을 스스로 깨달을수록, 눈물은 그 비례로 쏟아져 소매를 적시고 베개를 적신다.

사랑하는 사람은 돌덩이 같은 육체와 무쇠 같은 의지력을 가진 사람이니까, 감옥에서 고생쯤 하는 것으로는 끄떡도 아니 할 것만은 믿는다. 그저 무사히 나오기만 축수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이가 나온 뒤까지 오래오래 두고 이 지경대로 있으면 어떡허나. 하나님께서 설마 나를 이대로 버리실 리는 만무하지만…….'

하고 아직도 신앙을 잃지 않으려고 정성껏 기도를 올려 본다. 주를 부르며 저의 고민을 하소연도 해본다.

'내가 만일 건강이 회복되어서, 그이와 결혼생활을 헌다면 어떻게 될까? 구차한 살림에 얽매고, 어린것들이 매어달리고, 시부모의 시중을 들고, 집안 식구의 옷 뒤를 거두고, 다만 먹기를 위해서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다른 농촌의 여자와 같이 집구석 ?구석에서 한평생을 헤어나지 못하고 말 것이다.'

하고 앞일을 상상해 볼 때, 영신의 머릿속은 또다시 시꺼먼 구름이 끼는 것처럼 우울해진다. 아직까지 사업에 무한한 애착심을 가지고 한몸을 이 사회에 바쳐 온 영신으로서는, 두 가지 길 중에 어느 한 가지 길을 밟아야 옳을는지 방황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떡허나? 아아, 어떡허면 좋을까?'

영신은 이불 속에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내가 그이를 진심으로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지금의 나로서는 꼭 한 가지밖에 취할 길이 없다!'

영신은 무한히 고민한 끝에 한 가지 결론을 얻었다.

'나와의 결혼을 단념시킬 것뿐이다!'

이 말 한마디는 창자를 끊어 내는 듯한 마지막 가는 말이다. 그러나 영신은 그렇게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이는 웃음엣말이래도 조선 안의 허구많은 여자 중에 하필 채영신 석 자만 쳐다보고 두 눈을 꿈벅거리고 있는 나 자신이 불쌍해 보인다고 하였다. 그 말이 어느 정도까지는 속임 없는 고백일 것이다. 기막히는 일을 당할 때에 웃음이 터져 나오고, 가슴이 답답할 적에 트림이 끓어오르는 것과 같이, 그는 하도 기다리기가 지루해서 그런 말을 허게까지 된 것이 아닐까.'

하니 두 사람을 만나게 한 운명을 저주하고도 싶었다.

'왜 곧잘 참어 오던 내가 내 발로 걸어서 한곡리를 찾었고, 달 밝은 그날 밤 바닷가에서 경솔히 마음을 허락했던가. 일평생의 고락을 같이 할 맹세까지 했던가.' 하고 그때의 기분이 너무나 로맨틱하였던 것을 몇 번이나 후회하였다.

'아아 그러나, 나는 그이를 지극히 사랑한다. 그이를 사랑하게 된 뒤로부터 나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심까지 엷어졌다. 지금의 '박동혁'은 나의 생명이다! 내 맘이 그이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무슨 일이 있든지, 어떠한 고통을 당하든지, 이 세상에 다만 한 사람인 그이의 행복을 위해서 참는 도리밖에 없다.'

'자아를 희생할 줄 모르는 곳에, 진정한 사랑이 없다. 사업을 위해서 이미 희생이 된 이 몸을 사랑하는 사람의 장래를 위해서 두 번째 희생으로 바치자! 이것이 참되고 거룩한 사랑의 길이다!'

하고 영신은 두번 세번 제 마음을 다질렀다.

'이번에 만나는 때에는 단연히 약혼을 해소하자고 제의를 하리라. 의논을 할 것이 아니라 이편에서 딱 무질러 버리고 말리라.'

하고 단단히 결심을 하였다.

그러나 저의 건강으로 말미암아 이런 결심까지 하게 된 것이 서럽다. 그다지 사랑하던 남자를 놓칠 생각을 하니 분하기도 하였다. 동혁의 넓은 품안에 그 아귀힘 센 팔에, 채영신이가 아닌 다른 여자가 안길 것을 상상만 해보아도, 이제까지 느끼지 못하던 질투의 불길이 치밀어 얼굴이 화끈 하고 다는 것이야 어찌하랴.

'시기를 하거나 질투를 하는 것은 가장 야비하고 천박한 감정이다.'

하고 제 마음을 꾸짖어도 본다. 그러나 꾸지람을 듣는 것쯤으로 그 분이 꺼질까 싶지가 않다.

기숙사의 밤이 깊어 가는 대로 영신의 고민도 깊어 가고, 마음이 괴로울수록 안절부절을 못 하는 육신도 어느 한군데 괴롭지 않은 데가 없었다.

……영신이가 떠나는 날 아침, 널따란 학교 마당에 전송하여 주는 사람은, 사감과 한방에 있던 학생 두엇뿐이었다. 몇 달 동안 숙식을 같이 하던 여자는 매우 섭섭한 표정을 지으면서 현관까지 따라 나와,

"사요나라, 오다이지니(잘 가요, 몸조심하세요)."

하고 굽실해 보이고는 게다짝을 달각거리며 뒤도 아니 돌아다보고 들어가 버린다. 제 방에서 환자를 내보내는 것이 시원섭섭한 눈치다.

오래간만에 조선옷으로 갈아입고, 고리짝 하나를 인력거 앞에다 놓고 정거장으로 나오는 영신의 행색은 초라하였다. 그는 인력거 위에서 흔들리며,

'내가 지금 어디루 가는 셈인가.'

하고 번화한 시가지를 둘러보았다. 돈 있는 집 딸들이 음악학교 같은 것을 졸업하고 그야말로 금의로 환향하는 광경을 상상해 보고는,

'내가 얻어 가지고 가는 것은 병뿐이로구나!'

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웃었다.

그러나 청석골서 정이 든 여러 사람이 마중을 나오고 그 귀여운 아이들이 '선생님! 선생님!' 하고 달려들 생각을 하니 어찌나 기쁜지 몰랐다. 미리부터 가슴이 설레서,

'비행기라두 타구 어서 갔으면.'

하고 기차를 탄 뒤에도 마음이 여간 조급하지가 않았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동혁 씨가 나와서 나를 버썩 안고 차에서 내려놓아 주지나 않을까.'

하였다. 그것이 공상이 되지 말기를 빌었다.

🙝🙟

자동차 정류장에는 청석골의 주민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중을 나왔다.

"아이구, 웬 사람들이 저렇게 모여 섰나? 장날 같으이."

하고 영신은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저의 전보를 보고 그렇게 많이들 나왔을 줄은 몰랐다. 멀리 언덕 위에 우뚝 솟은 학원집의 유리창이 석양을 눈이 부시게 반사하는 것을 볼 때 영신은,

"오오, 저 집!"

하고 저절로 부르짖어졌다. 죽을 고생을 해가며 지은 그 집이, 맨 먼저 주인을 반겨 주는 것 같았다.

자동차가 정거를 하기 전부터 아이들은 어느 틈에 보았는지,

"선생님!"

"선생님!"

하고 손을 내저으면서 엎드러지며 곱드러지며 앞을 다투어 쫓아온다.

"금분아!"

"옥례야!"

영신도 차창으로 머리를 내밀며 외치듯이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영신이가 내리기가 무섭게 백여 명이나 되는 남녀 학생은 벌떼처럼 선생의 전후좌우로 달려들었다.

"채선생님 오셨다!"

"우리 선생님이 오셨다!"

계집애들은 동요를 부르듯 하면서 영신의 손에 소매에 치맛자락에 매어달려서 까치처럼 깡충깡충 뛴다. 영신은 눈물이 글썽글썽해 가지고 그 꿈에도 잊지 못하던 아이들을 한아름씩 끌어안고,

"잘들 있었니! 선생님 보구펐지?"

하고 이마와 뺨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청년들과 낫살이나 먹은 남자들은,

"안녕히 다녀오셨습니까?"

하고 모자나 수건을 벗고 허리를 굽히는데, 원재 어머니는 영신의 두 손을 쥐고,

"병이 덧치셨다는구려?"

하고는 목이 메어서 말을 눈물로 삼킨다. 부인 친목계의 회원도 대여섯 사람이나 나왔는데, 모두 '떠날 때버덤두 더 못해 왔구나' 하는 듯이 무한히 가엾어하는 표정으로 영신의 수척한 얼굴과 다리를 절름거리는 모양을 바라다보며 따라온다.

영신은 원재 어머니의 어깨를 짚고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며 맨 먼저 학원으로 올라갔다.

"바루 집으루 갑시다."

하는 것을,

"우리집버텀 가봐야지요."

하고 간신히 올라가서는 안팎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 동안에 집은 매우 찌들어 보였다. 걸상과 책상이 정돈이 되지 못하고, 벽에는 여기저기 낙서한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는데, 제가 연설을 하다가 쓰러진 강당 맞은편짝에 정성을 다해서 소나무와 학을 수놓아 건 수틀이 삐딱하게 넘어간 채 먼지가 켜켜로 앉도록 내버려두었다.

'이걸 어쩌면 이대로 내버려들 뒀을까.'

하고 영신은 원재더러 발판을 가져오래서 손수 바로잡아 놓고 먼지를 털고 내려오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였다.

아이들은 저희들의 선생님을 다시는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열겹 스무겹 에워싸고 원재네 집으로 내려왔다. 금분이는 반가움에 겨워 자꾸만 저고리 고름으로 눈두덩이를 부비며 홀짝홀짝 울면서 영신의 손을 땀이 나도록 꼭 쥐고 따라다닌다.

영신이가 쓰던 방은 전처럼 깨끗이 치워 놓았다.

"아아, 여기가 내 안식처다!"

하고 영신은 불을 뜨뜻이 때어 놓은 아랫목에 가 턱 쓰러졌다. 다다밋방에서 다리도 못 뻗고 자던 것이 아득한 옛날인 듯, 여러 날 기차와 기선에서 시달린 피곤이 함께 닥쳐와서 몸은 꼼짝도 할 수 없다. 아이들은 방에까지 따라 들어와서 빽빽하게 콩나물을 길러 놓은 것 같다.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자라난 천애의 고아들이, 뜻밖에 자애 깊은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영신의 곁을 떠나려고 들지를 않는다.

영신은 하관(下關)서 사가지고 온 바나나 뭉치를 끌러 달라고 해서 세토막 네토막에 잘라, 아이들의 입맛만 다시게 하였다. 기찻삯만 빠듯이 와서 벤또도 변변히 사먹지 못하고 오면서도, 빈손을 내밀 수가 없어 주머니를 털어서 사가지고 온 것이었다. 원재 어머니는 저녁상을 들고 들어오며,

"너희들두 이젠 고만 가서 저녁들 먹어라."

하고 아이들을 내보냈다.

통배추김치에 된장찌개를 보니, 영신은 눈이 버언해져서 저도 모르는 겨를에 일어앉았다.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여서 기숙사 식탁에 허구한 날 놓이는 미소시루와 다꾸앙쪽을 생각하였다. 영신은 이야기도 못 하고 장위에 배인 고향의 음식을 걸터듬해서 먹었다.

영신은 마음을 턱 놓고 뜨뜻한 방에서 오래간만에 잠을 잘 자서 이튿날은 정신이 매우 쇄락하였다. 다리가 부은 것도 조금 내려서 걷기가 한결 나은 것 같아 예배당으로 올라가서는 감사한 기도를 올리고 내려왔다. 동시에, 동혁이가 하루바삐 무사하게 나오기를 축원하고, 내려오는 길로 한곡리 농우회원들에게,

'나는 그 동안 귀국해서 무사히 있으니, 동혁 씨의 소식을 아는 대로 즉시 전해 달라.'

고 편지를 써 부쳤다.

당자는 동혁의 생각을 잊으려고 애를 쓰건만, 원재 어머니가,

"아이고, 그이가 얼마나 고생을 헐까요? 그렇게두 지궁스레 간호를 해주더니…… 내가 가끔 생각이 날 적에야……."

하고 자꾸만 일깨워서,

"나오는 날 나오겠죠. 인전 그이 말을랑 우리 허지 맙시다요."

하고 동혁의 말은 비치지도 못하게 하였다.

겨우 한 사나흘 동안 쉰 뒤에 영신은 전과 같이 학원의 일을 보고 주학은 물론 야학까지도 겹쳐서 교편을 잡았다. 그 동안 청년들에게만 맡기고 내버려두어서 저희들은 힘껏 일을 보느라고 하건만, 지도자를 잃은 그들은 제멋대로 가르쳐서 조금도 통일이 되지 않는데, 생기는 것이 없는 일인데다가, 그도 하루 이틀이 아니어서 싫증이 나고 고만 귀찮은 생각도 들어, 그럭저럭 시간만 채우고 달아날 궁리를 하는 청년이 없지 않았다.

'이래선 안 되겠다. 내가 또 본보기를 보여야만 다들 따러온다.'

하고 최대 한도의 용기를 내었다. 제가 입원한 동안에 기부금이 다 걷혀서 학원을 지은 빚만은 요행으로 다 갚았으나, 집만 엄부렁하게 컸지그려, 인제는 그 집을 유지해 나아갈 경비가 없다. 등뒤에 무슨 재단이 있는 것도 아닌데, 월사금 한푼 아니 받으니 수입은 없고 지출뿐이다. 심지어 분필이 떨어지고 큰 남포를 서너 개나 켜는 석유를 대지 못해서 쩔쩔매는 형편이라, 신병이 있다고 가만히 보고만 앉았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 오래 섰으면 다리가 무겁고 신경이 마비가 되어 오금이 들러붙는 것처럼 떼어 놓을 수가 없는데, 학원과 예배당으로 오르내리는 데도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해서 그 자리에 넘어질 것 같건만,

'난 기왕 청석골의 백골이 되려고 결심한 사람이다. 다시 쓰러지는 날, 그때 그 시각까지는 손끝 맺고 앉었을 수가 없다.'

하고 학부형들이나 원재 모자가 지성으로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난 우리 청석골을 위해서 생긴 사람이야요. 내가 타고난 의무를 다허다가 죽으면 고만이지요. 되레 내 몸에 넘치는 기쁨으루 알구 있어요."

하고 눈시울에 잔주름살을 잡아 가며 웃어 보였다. 한편으로는 동혁이가 죄없이 감옥에서 저보다 몇 곱절이나 되는 고생을 하는 생각을 할 때,

'오냐, 내 맥박이 끊길 때까지!'

하고 오직 일을 하는 것이, 차입 하나 못 해주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해서 정신적으로나마 어떠한 선물을 보내 주는 것 같기도 하였던 것이다.

약은 얻어먹을 생의도 못 하고, 또 각기증에는 특효약도 없다지만, 의사의 권고대로 현미에다가 보리를 많이 섞어 먹어도, 병이 나아가기는커녕 증세가 점점 더 악화가 되어 갈 뿐이다. 다리가 붓고 무릎이 쑤시기는 했어도 그닥지 아픈 줄을 몰랐더니, 줄곧 그 다리를 놀려 두지를 않아서 그런지 띵띵해진 종아리는 건드리기만 해도 펄쩍 뛰도록 아프다. 밤에는 고통이 더 심해서 뜬눈으로 밝히는 날까지 있으면서도, 그는 이를 악물고 하루도 빼어놓지 않고 교단에 서기를 거진 한 달 동안이나 하였다.

그 동안 하나 둘 흩어져 있던 아이들은, 영신이가 돌아온 뒤에 신입생이 열씩 스물씩 부쩍부쩍 늘었다. 때마침 농한기라 어른들은 물론 오십도 넘는 노파가 손녀의 손을 잡고 와서는,

"죽기 전에 글눈이나 떠보게 해주시유."

하고 진물진물한 눈으로 칠판을 쳐다보고,

"가―갸―거―겨―"

하고 따라 읽는 것을 볼 때, 영신은 감격에 가슴이 벅찼다.

'내가 오기 전에는 이 동네 사람이 거진 구 할 가량이나 문맹이던 것이, 이제는 글자를 알어보는 사람이 칠 할 가량이나 된다. 오십 이상 늙은이와 젖먹이를 빼어놓으면 거진 다 눈을 띄어 준 셈이다.

더구나 부인 친목계를 중심으로 부인네들이 깨인 것과, 생활이 향상된 것은 놀라울 만허지 않느냐.'

하고 자못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럴수록 사업에 대한 애착심은 고향을 떠나 보기 전보다 몇 곱이나 더해져서, 육신의 고통을 참아 나가는 힘을 얻었다.

한두 가지도 아닌 병마에 사로잡혀 거의 위중한 상태에 빠진 영신으로는, 사실 기적과 같은 힘이었다. 그러다가 하루 아침은 천만뜻밖에 동혁의 편지가 왔다. 동경역에서, 못 받아 보려니 하면서도 ××형무소로 부친 엽서를 본 답장인 듯, 모필로 쓴 필적이며 계호 주임의 도장이 찍혀 나온 것이 분명히 동혁에게서 온 것이다. 영신은 손보다도 가슴이 떨리는 것을 진정하고, 바늘 구멍처럼 뚫어 놓은 봉함엽서의 가장자리를 조옥 뜯었다.

이제야 취조가 일단락이 져서 편지를 할 수 있게 되었소이다. 청석골로 다시 돌아오신다는 엽서도 어제야 받고, 그 병이 재발이나 되지 않었는지 매우 놀랐습니다. 긴 말은 쓸 수 없으나 오직 건강에 각별히 주의해 주십시오. 또다시 억지를 쓰고 일을 하실 것만이 염려외다. 나는 아직 수신대학 본과에는 입학할 자격을 얻지 못하였으나, 예과에서도 보통 사람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수양하고 반성하고 싶은 자는 다 이리 오라' 하고 외치고 싶소이다. 몸은 여전한데 하루 세 끼 조막덩이만한 콩밥이 겨우 간에 기별만 해서,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 것만이 불평이외다. 나는 좀더 묵고 싶지만 아마 여관 주인이 불원간 내쫓을 것 같은데, 나가는 대로 먼저 그리로 가겠으니 부디 혈색 좋은 얼굴을 보여 주십시오.

영신은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먹이 입술에 묻도록 편지에 키스를 하였다. 그러고는,

'혈색 좋은 얼굴! 혈색 좋은 얼굴!'

하고 혼자말을 하며 조그만 손거울을 꺼내서 제 얼굴을 들여다보다가는 그 거울을 동댕이를 쳤다. 거울은 문지방에 가 부딪치며 두 쪽에 짝 갈라졌다.

영신은 가슴이 선뜩해서,

'아이, 왜 저걸 내던졌던가.'

하고 금방 후회를 하고 거울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탄식을 한들, 한번 깨어진 유리쪽을 두번 다시 붙여 보는 재주는 없었다.

학원 마당에서 종소리가 들린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한 떼가 몰려 와서,

"선생님, 어서 가세요. 어서요, 어서."

하고 영신을 일으켜 세우고 잡아다리며 떠다밀며 학원으로 올라갔다.

그날은 웬일인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을 그는 억지로 꺼둘려 가서 새 과정을 가르치려다 말고 복습을 시켰다. 계집애들은 채선생이 아니면 배우지를 않기 때문에, 두 반씩이나 맡아 가르칠 수밖에 없어 왔다갔다하며 복습을 시키는 데는 더구나 힘에 부쳤다. 그러나,

'그 속에서, 그 지독헌 고생을 달게 받는 이도 있는데…….'

하고 기를 쓰며 눕지를 않으려고 앙버티었다.

'그이가 나오면 이 얼굴, 이 몸뚱이를 어떻게 보이나.'

하고 이번에는 교실 유리창에 척수한 자태를 비추어 보다가,

'오지 말었으면. 차라리 영영 만나지나 말었으면…….'

하고 제 꼴이 제 눈으로 보기가 싫어 발꿈치를 돌리기를 몇 번이나 하였다.

'그렇지만, 혈색 좋은 얼굴을 보여 주진 못하드래두, 앓어누운 꼴이나 보여 주지 말리라.'

하고 아침에 종소리만 들리면 입술을 깨물며 문고리를 붙잡고 일어났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에는 학부형회에 참례를 하고 늦도록 학원의 유지 방침을 의논하다가, 별안간 심장의 고동이 뚝 그치는 것 같아서 원재에게 업혀 내려왔다. 내려와서는 턱 쓰러지며 고만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