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제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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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저녁때에야 공의의 진찰을 받게 되었을 때 영신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눈은 정기없이 뜨고도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데,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소리만 높았다 낮았다 할 뿐…….

영신의 선성을 들은 공의는, 원재 어머니만 남겨 놓고 방 안에 그득히 찬 사람을 다 내보낸 뒤에 거진 한 시간 동안이나 정성껏 신체의 각 부분을 진찰해 본다. 그는 환자에게서 손을 떼고 한참이나 눈을 딱 감고 앉아서, 머리를 외로 꼬고 바로 꼬고 하다가 청진기를 집어넣고는 잠자코 일어서 밖으로 나간다.

"어떻습니까? 대단허죠?"

원재 어머니는 조급히 물었다. 공의는 알코올 솜으로 손을 닦으며,

"대단 섭섭헌 말씀이지만……."

하고 주저주저하다가,

"내 진찰이 틀리지 않는다면 며칠을 못 넘길 것 같소이다."

하고 고개를 떨어뜨린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여러 사람의 눈은 동시에 둥그래졌다. 원재 어머니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괴었다.

"각기가 심장까지 침범헌 것만 해도 위중헌데, 원체 수술을 완전히 허지 못헌 맹장염이 재발이 됐습니다. 염증이 대단허니 어디다가 손을 대야 헐지 모르겠는걸요."

하고 입맛을 쩍쩍 다시다가,

"왜 좀더 일찌감치 서두르지를 못했나요?"

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알코올 솜을 튀겨 던진다.

"누가 이럴 줄 알었나요. 엇저녁까지 기동을 했었으니까…… 어떻게 다시 수술이라두 해봐 주실 수 없을까요?"

학부형 중에서 한 사람이 나서며 물었다. 공의는,

"지금은 수술두 못 해요. 몸 전체가 몹시 허약허니까요."

하고는 가방을 들고 일어서며,

"그래두 혹시 천행이나 바라려거든 큰 병원으로 데리구 가보시지요."

하고 마당으로 나간다. 원재 모자는 버선발로 쫓아 나가서 공의의 소매를 붙잡으며,

"아이구, 이를 어쩌나. 참 정말 아무 도리두 없습니까? 네 네?"

"우리 선생님을 살려 줍쇼! 어떻게든지 살려 주구 가세요!"

하며 엎드려서 말 반 울음 반으로 애원을 한다.

"주사나 한 대 놔드리지요."

공의도 한숨을 쉬며 다시 들어와 캄플 한 대를 놓고 나왔다.

의사에게 죽음의 선고를 받은 줄도 모르는 영신은 주사 기운에 조금 의식을 회복하였다.

"원재 어머니!"

손을 공중으로 내저으며 부르는 목소리는 모기 소리처럼 가늘다. 원재 어머니는 앓는 사람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참이나 지게문 밖에 돌아서서 눈두덩을 부비다가 들어갔다.

"의사가 뭐래요?"

진찰을 받을 때는 몰랐다가 주사침이 따끔 하고 살을 찌를 적에야 의사가 온 줄은 알았던 모양이다.

"……"

"뭐라구 그래요?"

영신은 채우쳐 묻는다.

"……"

그래도 원재 어머니는 대답이 목구멍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살지 못허겠다죠?"

영신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목젖만 껄떡거리고 섰는 사람의 눈치를 살핀다.

"수술을 허면 낫는다구…… 그러구 갔어요."

그 말에 영신은 베개 너머로 머리를 떨어트리며,

"아이구! 또 수술……."

하고 오장이 썩는 듯한 한숨을 내쉰다.

장로와 다른 교인들이 들어와 병원으로 가기를 번차례로 권하였다. 그러나 영신은,

"싫여요, 싫여. 난 청석골서 죽구 싶어요!"

하고 맥이 풀린 손을 내저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병세는 시시각각으로 더해 가는 한편이건만, 영신은 어머니에게도 편지를 못 하게 하였다. 고통이 조금 덜해서 정신만 들면 유리틀에 끼워서 책상머리에 모셔 놓은 어머니의 사진을 내려 달래서, 멀거니 들여다보다가 눈물을 지으면서도 곁엣사람이,

"오시든 못 오시든 사람의 도리가 그렇지 않으니 전보나 한 장 칩시다."

하고 저다지도 그리운 어머니를 마지막 뵙지 못하면 눈이 감기겠느냐는 뜻을 비치건만, 영신은,

"우리 어머니헌테, 마지막 가는 효도는……."

하고 한숨을 섞어,

"내 이 꼴을 뵈어 드리지 않는 거야요!"

하고 기별을 하지 말아 달라고 두번 세번 간청을 하였다. 영신의 고집을 아는 원재 어머니는,

"그럼 서울로나 통기를 헙시다요."

하여도,

"내 병을 고쳐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하고 머리를 흔들다가,

"하나님이 나를 설마……."

하고 다시 살아날 자신이 있는 듯이 가냘픈 미소를 띠어 보인다. 그러다가도 반듯이 누워 가슴 위에 합장을 하고 허옇게 바랜 입술을 떨면서,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오오,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연거푸 부른다. 그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며 최후로 부르짖은 말이었다.

등잔불에 어룽지는 천장을 쳐다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원한과 절망과 참을 수 없는 슬픈 빛이 어리었다. 닥쳐오는 죽음을 짐작하면서도, 인력으로 어길 수 없는 가장 엄숙한 사실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그 사실을 억지로 부인하려는 마음! 끝까지 신앙심을 잃지 않고 그 대상자를 원망하지 않으면서도 이적(異蹟)이라도 나타내어 주기를 안타까이 기다리는 그 심정―---

창 밖에서는 아이들이 추운 줄도 모르고 열겹 스무겹 선생의 방을 둘러싸고 땅바닥에가 쪼그리고 앉아서 흐느껴 운다. 그 소리가 방 안에까지 들려서 영신은 베개에서 조금 머리를 들며,

"저게 무슨 소리요?"

하고 묻는다.

"……아마 바람 소린가 봐요."

원재 어머니의 목소리는 문풍지와 함께 떨렸다. 영신이가 평시에 가장 귀여워하고 불쌍히 여기던 금분이는 이틀째나 밥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선생의 머리맡을 떠나지 않으며 시중을 든다. 가뜩이나 헐벗고 얻어먹지 못해서 파리한 몸이 기신없이 쓰러졌다가도 바스락 소리만 나면 발딱 일어나,

"선생님, 왜 그러시유?"

하고 영신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앓는 사람과 간호하는 사람들이 나가 있으라고만 하면,

"난 싫여, 난 싫여. 왜 날더러만 나가래."

하고 발버둥질을 치며 통곡을 내놓아서 하는 수 없이 내버려두었다.

한편으로 교인들은 예배당에 모여서 밤늦도록 기도를 올린다.

"저희들을 창조하시고 길러 주시는 아버지시여, 당신이 모처럼 이 땅에 내려 보내신 귀한 따님을 왜 어느새 부르려 하십니까? 이것이 과연 당신의 뜻이오니까? 그 누이는 이곳에 와서 무식한 저희들을 위해 뼈가 깎이도록 일을 했습니다. 육신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는 그 시각까지 불쌍한 조선의 자녀들을 위해서 걱정했습니다. 자기의 손으로 지은 학원 하나를 붙잡으려고 온갖 고생을 참아 왔습니다.

주여! 그는 청춘입니다. 열매도 맺어 보지 못한 순결한 처녀입니다. 인생의 기쁨도 즐거움도 맛보지 못하고, 다만 당신 한 분을 의지하고 동족을 사랑함으로써 그 귀중한 몸을 바쳤습니다.

주여! 오오, 사랑이 충만하신 주여! 그에게 생명수를 뿌려 주소서! 저희들의 천사인 채영신 누이를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우리 청석골에서 떠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아아멘"을 부르는 남녀 교인의 목소리는 일제히 울음으로 변하였다.

학부형들은 사십리 오십리 밖까지 가서 고명하다는 한의를 데리고 왔다. 칠십도 넘어 보이는 노인을 가마에 태워 가지고 온 성의에 감동이 되어서 영신은,

'저 늙은이가 뭘 알꼬.'

하면서도 맥을 짚어 보라고 팔을 내밀었다. 그들이 집증하는 것은 다 각각이나, 화타(華陀) 편작(扁鵲)이가 와도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리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였다. 그래도 학부형들은 화제를 내어 달라고 부득부득 졸라서, 또다시 장거리로 약을 지으러 가는 것이었다.

오늘은 초저녁부터 영신의 숨소리가 더 거칠어졌다. 목구멍에서 가래가 끓는 소리까지 그르렁그르렁 한다. 아랫도리는 여전히 감각을 잃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몰라도 가슴이 답답해서 몹시 괴로워한다. 병마가 사방으로부터 심장을 향하고 몰려들기를 시작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상스러이도 영신의 정신만은 그 말과 함께 똑똑하다.

"자꾸 울지들 말어요. 나두 안 우는데……."

하고 간호하는 부인네들을 둘러보기도 하고,

"너희들은 어서 가 공부해. 응, 어서!"

하고 상학 시간이 되면 저의 주위로 모여드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올라가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는 자기가 누운 동안 하루도 주야학을 쉬지 못하게 하였다.

창 밖은 별빛조차 무색한 그믐밤이다. 앞뜰과 뒷동산의 앙상한 삭정이를 휩쓰는 바람 소리만 파도 소리처럼 쏴아쏴아 하고 지나간다. 떨어지다 남은 바싹 마른 오동 잎사귀가, 창 밖 툇마루에 버스럭 하고 떨어지는 소리에 영신은 고이 감았던 눈을 떴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로 들렸는지,

"문 열어요. 동혁 씨 왔나 봐……."

하고 잠꼬대하듯 헛소리를 하며 뒤꼍으로 통한 문으로 고개를 돌린다. 벌써 그 눈동자에는 안개가 뽀얗게 낀 것처럼 정기가 없다.

"아이, 그저 안 오네!"

영신은 한숨과 함께 원재 어머니 편으로 머리를 돌렸다. 무슨 생각이 번개같이 나는 듯,

"저어기, 저것 좀."

이번에는 머리맡에 놓인 책상 서랍을 입으로 가리킨다.

"어머니 사진요?"

원재 어머니는 책상 앞으로 갔다.

"아아니, 그이 편지……."

동혁의 편지를 받아 든 영신은, 감옥에서 나온 봉함엽서의 획이 굵다란 먹글씨를 희미한 불빛에 내려보고 치보고 한다.

동혁이와 처음 만나던 때부터 경찰서에서 면회를 하던 때까지의 추억의 가지가지가 환등처럼 흐릿하게나마 주마등과 같이 눈앞을 지나가는 모양이다. 그는 조심스러이 편지에 입을 맞추고 나서, 어눌하나마 목소리를 높여,

"동혁 씨, 난 먼첨 가요! 한곡리허구 합병두 못 해보구…… 그렇지만 난 행복해요. 등뒤가 든든해요. 깨끗헌 당신의 사랑만은 영원히 변허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구 끝까지 꿋꿋허게 싸우며 나가실 걸 믿으니까요……."

하고 나서, 숨을 가쁘게 들이쉬고 나더니,

"동혁 씨! 조끔두 슬퍼하진 마세요. 당신 같으신 남자는 어떤 경우에든지 남에게 눈물을 보여선 못씁니다!"

하고는 몹시 흥분해서 헐떡이다가, 원재 어머니를 보고,

"그이가 오거든요, 지금 헌 말이나 전해 주세요, 뭐랬는지 들었죠?"

하고 당부를 한다. 붓을 들 기력도 없는 그는, 말로나마 사랑하는 사람에게 몇 마디를 남긴 것이다.

그리고는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앙가슴을 헤치더니, 그 편지를 속옷 속에 꼭 품고 저고리 앞섶을 여민다. 이제까지 그들은 사진 한 장 바꾸어 가진 것이 없었다.

새로 두시―--- 세시―---

간병하던 사람은 여러 날 눈도 붙여 보지 못해서 꼬박꼬박 졸고 앉았고, 그다지 떨어지지 않으려던 금분이마저 기진맥진해서 선생의 발치에 쓰러진 채 잠이 깊이 들었다.

태고의 삼림 속과 같이 적막한 방 안에 홀로 깨어 있는 것은 영신의 영혼뿐. 지새려는 봄 밤, 한곡리 앞바다에 뜬 새우잡이배의 등불처럼 의식이 깜박깜박하면서도, 악박골 약물터 우거진 숲속의 반딧불과 같이 반짝 하다가 꺼지려는 저의 일생을, 혼몽중에 추억의 날개로 더듬어 보는 듯.

"꼬끼요오―"

건넛마을에서 졸린 듯한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이어 안마당에서도 홰를 치며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영신은 반쯤 눈을 뜨더니 가까스로 손에 힘을 주어 원재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아다린다.

"워 원재를 좀……."

원재는 눈을 부비며 황급히 들어왔다. 안방에 모였던 다른 청년들도 서넛이나 원재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남편의 임종을 한 경험이 있는 원재 어머니는, 이웃집에서 숯불을 피어 놓고 약을 달이다가 이구석 저구석에 쓰러진 부인 친목계의 회원들까지 깨워 가지고 와서, 방 안은 그들로 가득 찼다.

청년들은 영신의 머리맡에 둘러앉았다. 여러 사람은 숨소리를 죽여 방 안은 무덤 속같이 고요한데, 영신은 할딱할딱 숨을 몰아쉬다가 원재의 손을 잡고 나머지 힘을 다 주며,

"원재, 내가 가드래두…… 우리 학원은 계속해요! 응, 청년들끼리……."

하고 여러 청년의 수심이 가득 찬 얼굴을 둘러보며 마지막 부탁을 한다.

원재는 무릎을 꿇고 다가앉아 두 손으로 식어 가는 영신의 손을 힘껏 쥐며,

"선생님, 왜 그런 말씀을 허세요? 네, 선생님!"

하고 목이 메었다가,

"염려 마세요! 저희들이 무슨 짓을 해서든지 학원을 붙잡으께요. 죽는 날꺼정 해나가께요!"

하고 굳은 결심을 보였다. 여러 해 동안이나 영신에게 지성껏 지도를 받아 온 청년들의 눈에서는 굵다란 눈물 방울이 뚜욱뚜욱 떨어진다.

"울지는 말어. 못난 사람이나 울지."

그 목소리는 간신히 알아들을 만해도, 아우를 달래는 친누이의 말처럼 정답고 은근하다. 영신은, 치맛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를 죽이는 부인네들을 보고,

"청석골 여러 형젤 두구…… 내가 어떻게 가우?"

하다가, 그저 잠이 깊이 든 금분이를 가까이 안아다 눕히게 한 뒤에 발발 떨리는 손끝으로 앞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이것들을 어떡허나?"

하고 가늘게 가늘게 흐느낀다.

"걱정 마슈. 얘 하난 내가 맡어 길를께."

울음 반죽인 원재 어머니의 말에, 영신은 고맙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다가 다시금 깜박 하고 정신을 잃었다. 호흡은 점점 가빠 가는데, 맥을 짚어 보니 뚝뚝 하고 절맥이 된다.

그렇건만 영신은,

"끄응!"

하고 안간힘을 쓰며 턱밑까지 닥쳐온 죽음을 한 걸음 물리쳤다.

"나, 날……."

하고 혀끝을 굴리지 못하다가,

"학원집이 뵈는 데다…… 무 묻어……."

하는데, 인제는 말이 입 밖을 새지 못한다. 입에다 귀를 대고 듣던 원재 어머니는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영신은 또다시 기함을 했다가, 그래도 무엇이 미진한 듯이 헛손질을 하는데, 벽에 걸린 손풍금을 가리키는 것 같다. 원재는 냉큼 일어나 그것을 떼어 들었다. 그는 일상 영신의 것을 장난해 보아서 곧잘 뜯을 줄 안다.

"찬미 하나 허까요?"

"……"

영신은 고개만 뵈는 듯 마는 듯 끄덕여 보인다.

원재는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날빛보다 더 밝은 천당
믿는 것으로 멀리 뵈네.
있을 곳 예비하신 구주
우리들을 기다리시네.

를 고요히 고요히 뜯기 시작하는데, 영신은 그것이 아니라는 듯이 머리를 흔든다. 원재가 손을 멈추고,

"그럼 무슨 곡조를 허까요?"

하고 귀를 기울이니까, 영신은,

"사 사 삼천리……."

하고 자유를 잃은 입을 마지막으로 힘껏 움직인다.

손풍금 소리와 함께 청년들은 입술로 눈물을 빨다가 일제히 목소리를 내었다.

……(찬송가 전문 생략)……

목청을 높여 후렴을 부를 때, 영신은 열병 환자처럼 몸을 벌떡 일으켰다. 여러 아이들 앞에서 그 노래를 지휘할 때처럼 팔을 내젓는 시늉을 하는 듯하다가,

"억!"

소리와 함께 고개를 제치고는 뒤로 덜컥 넘어졌다.

……기름이 졸아붙은 등잔불이 시름없이 꺼지자 뿌유스름한 아침 햇빛은 동창을 물들이기 시작하였다.

청석골은 온통 슬픈 구름에 싸였다. 학부형과 청년과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친목계의 회원들은 영신의 수시를 거두고, 수의를 지어 입혀 입관까지 자기네 손으로 하고, 그 관을 둘러싸고 잠시도 떠나지를 않는다.

부모의 상사를 당한 것만치나 섧게들 울며 밤낮을 계속하는데, 그 중에도 금분이는 사흘씩이나 절곡을 하고 참새 같은 가슴을 쥐어짜며 울다가, 지금은 선생이 입던 헌 재킷을 끌어안은 채 관머리에 지쳐 늘어졌다.

명복을 비는 기도와 찬미 소리는 만수향의 연기와 같이 끊길 사이가 없고, 수십 리 밖에서까지 일부러 조상을 하러 온 조객들도 적지 않은데, 영신이와 처음 역사를 시작하던 목수는, 친누이나 궂긴 것처럼 제 손으로 세워 놓은 학원의 기둥을 붙안고 소리를 죽여 울면서,

"내 손으루 관까지 짤 줄을 누가 알았드란 말요?"

하고 여간 원통해하지를 않았다. 군청과 면사무소에서도 조상을 나왔는데, 영신의 일동 일정을 감시하고 말썽을 부리던 주재소 주임까지 나와서 관머리에서 모자를 벗었다.

빈소 방에는 어느 틈에 책상 하나만 남기고, 영신이가 쓰던 물건이라고는 불한당이 쳐간 듯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영신의 손때가 묻은 손풍금은 원재가 가져가고, 바람 차고 눈 뿌리는 밤이면 저를 품어 주던 재킷은 금분의 차지인데, 부인네들은 요 이불 베개 하다못해 구두, 고무신까지 다투어 가며 짝짝이로 치맛자락에 싸가지고 갔다. 그만 물건이 탐이 난 것이 아니라,

'우리 선생님 보듯이, 두구두구 볼 테다.'

하고 서로 빼앗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러나 장사를 지낼 날짜 때문에 의논이 분분하였다. 고인의 유언대로 청석학원이 마주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묏자리를 잡았는데 (공동묘지의 구역 밖이건만 면소에서 묵인을 해주었다), 서울서 급보를 접하고 내려온 백현경은 감옥에 있는 사람이 부고를 받더라도 때맞춰 나올 리가 만무하다고 삼일장으로 지내기를 주장하고, 원재 어머니와 회원들은,

"우리 한 이틀만 더 기다려 봅시다. 그래두 어머니나 박씨가 혹시 올지 누가 알어요? 장사 지내기가 뭐 그렇게 급해요?"

하고 오일장으로 지내자고 우겼다. 작고한 사람의 친척이나 애인을 기다린다느니보다도 영신의 시체나마 하루라도 더 자기 집에 두고 싶었던 것이다. 어머니에게는 물론 당일로 전보를 쳤건만 외딸을 그리다 못해서 먼저 자진을 했는지 회답조차 없었다.

그러자 사흘 되는 날 아침에 뜻밖으로 동혁의 편지가 왔다. 백씨는 수신인이 없는 편지를 황급히 뜯었다.

지금 놓여 나오는 길입니다. 형무소로 부치신 편지는 두 장 다 오늘에야 받어 보았는데, 이번에는 각기로 고생을 하시다가 돌아오셨다니 참으로 놀랍소이다. 또다시 학원의 일을 보시든지 하였다가는 참 정말 큰일납니다.
바로 그리로 가려고 했으나, 동화는 멀리 만주로 뛴 듯한데 어머니가 애절하시던 끝에 병환이 대단하시대서 집으로 직행합니다. 가보아서 조금만 감세가 계시면, 백사를 제치고 갈 터이니 전처럼 먼길에 마중은 나오지 마십시오. 흉중에 첩첩이 쌓인 말씀은 반가이 얼굴을 대해서 실컷 하십시다.
×월 ××일 당신의 박동혁

일부인(日附印)을 보니, 사흘 전의 날짜가 찍혀 있지 않은가.

"아이고 이를 어쩌나. 이리루 바루 왔드면 마지막 대면이나 했을걸."

하고 백씨는 즉시 특사 배달로 한곡리에 전보를 치도록 하였다.

……전보를 받은 동혁은,

"엉? 이게!"

하고 외마딧소리를 질렀다. 심장의 고동이 덜컥 그치고 온몸을 돌던 피가 머리 위로 와짝 거꾸로 흐르는 듯 아뜩해서 대문 기둥을 짚었다. 하늘은 샛노란데 그네를 뛰면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땅바닥이 움푹 꺼졌다 불쑥 솟아올랐다 한다. 억지로 버티고 선 두 다리에 맥이 풀려서 앞으로 고꾸라질 것만 같아서 그는 문지방에 가 털썩 주저앉았다.

극도에 이르는 놀라움과 흥분을 억지로 눌러서 가라앉히기는 참으로 힘드는 노릇이었다. 돌멩이나 깨무는 것처럼 아래웃니를 응물고 두번 세번 전보지를 들여다보는 동혁의 입에서는,

"꿈이다! 거짓말이다!"

하고 다시 한번 부르짖어졌다.

그날 저녁 동혁은 거의 실신이 된 사람처럼 청석골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발길을 내어딛기는 하면서도 다리는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요, 제정신으로 걷는 것 같지는 않았다. 평소에는 너무 무뚝뚝하리만치 건전하던 동혁의 심리상태가 이처럼 어지러운 것을 경험하기는 생후 처음이다. 다만 커다란 몸뚱이를 화물처럼 배에다 실리고 자동차에다 붙였을 따름이었다.

청석골의 산천이 가까워 올 때까지 동혁은 영신의 죽음을 억지로 부인하려고 저의 마음과 다투었다. 기적이 나타나기를 빌고 바라는 미신 비슷한 생각에 잠겨 보기도 또한 이번이 처음이다.

자동차는 정류장에 와 닿았다. 영신이가 손수건을 흔들며 달려오는 환영이 눈앞을 어른거리다가, 원재가 홀로 나와 서서 저를 보고는 머리를 푹 수그리는 현실로 변할 때, 혹시나 하고 기적을 바라던 동혁의 공상조차 조각조각 깨어졌다.

병원에서 같이 영신을 간호할 때에 정이 든 원재는 동혁에게 손을 잡히자 말 대신 눈물이 앞을 가렸다. 동혁은 입술을 꽉 깨물고 원재의 뒤를 따라 묵묵히 논틀 밭틀을 걸었다. 이제 와서 동혁의 다만 한 가지 소원은, 온 세상에 둘도 없이 사랑하던 사람의 길이길이 잠이 든 그 얼굴이나마 한번 보고 싶은 것뿐이었다.

"입관은 했나?"

비로소 동혁의 말문이 열렸다.

"벌써 했어요."

이 한마디는 그의 마지막 소망까지 끊어 버렸다. 동혁은 커다란 조약돌을 발길로 탁 걷어차고 하늘을 원망스러이 흘겨보다가 다시 걷는다.

원재는 그제야 띄엄띄엄 울음을 섞어 가며 그 동안의 경과를 이야기한다. 영신이가 운명하기 전에 저의 어머니를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해 달라던 유언과, 감옥에서 나온 편지를 가슴속에 품고 갔다는 것이며, 벌써 해가 기울어 가니까 집에서는 발인을 해서 학원에서 영결식을 할 터이니 그리로 바로 가자고 한다. 동혁은,

"음, 음."

하고 조금씩 고개를 끄덕여 보이다가, 그 유언을 다시 원재의 입에서 들을 때는 발을 멈추고 우뚝 서서 팔짱을 끼고 한참이나 눈을 딱 감고 있었다.

동혁은 학원 마당에 허옇게 모여 선 조객들의 주목을 받으며 현관 앞에 세워 놓은,

우리의 天使 蔡永信之柩

라고 흰 글씨로 쓴 붉은 명정 앞까지 와서 모자를 벗었다. 여러 달 동안 면도도 못 해서 수염과 구레나룻이 시꺼멓게 났고 그 검붉던 얼굴이 누루퉁퉁하게 부어서, 문간만 내다보고 있던 원재 어머니는 동혁을 얼른 알아보지 못하다가,

"아이고, 인제 오세요?"

하고 나와 반긴다. 그는 입술을 떨면서,

"채선생 저기 계세요!"

하고 교단 위에 검정보를 덮고 가로누운 영구(靈柩)를 가리킨다. 영결식도 끝이 나서 마지막 기도를 올리느라고 남녀 교인들과 아이들은 관 앞에 엎드려 흐느껴 우는 판이었다.

동혁은 눈 한번 꿈벅이지 않고 관을 바라보며 대여섯 간통이나 걸어들어온다. 관머리까지 와서는 꺼먼 장방형의 나무궤짝을 뚫어질 듯이 들여다보는 그의 두 눈! 얼굴의 근육은 경련을 일으킨 듯이 실룩거리기 시작한다. 어깨가 떨리고 이어서 온몸이 와들와들 떨리더니 그 눈에서 참고 깨물었던 눈물이 터져 내린다. 무쇠를 녹이는 듯한 뜨거운 눈물이 구곡간장으로부터 끓어오르는 것이다.

"여, 여, 영신 씨!"

그는 무릎을 금세 꺾어진 것처럼 꿇으며 관머리를 얼싸안는다.

그 광경을 보자 식장 안에서는 다시금 흑흑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