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제6장
영신이가 떠나기로 작정한 전날 밤은 달이 유난히 밝았다. 열나흗날 달이 어지간히 기운 것을 보니 자정도 가까운 듯. 다른 사람들은 초저녁에 다 와서 작별을 하고 갔고, 건배의 아낙은 영신이가 친정에나 왔다가 가는 것처럼 수수엿을 다 고아 가지고 와서 눈물로 작별을 하고 갔건만, 동혁이만은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점심때 집에 볼일이 있다고 잠깐 다녀는 갔으나 동화의 말을 들으면 집에는 종일 들어오지를 않았다고 한다. 영신은,
'한마디래두 꼭 허구 가야만 할 말이 있는데…….'
하고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눈이 까맣게 기다리다가,
'내일 아침에야 일찌감치 오겠지.'
하고 누웠었다. 서창을 물들이는 달빛은 이런 걱정 저런 근심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영신을 문 밖으로 꾀어 내었다. 그는 바스켓 속에 감추어 가지고 왔던 조그만 손풍금을 꺼냈다. 그것은 ××여고보를 우등 첫째로 졸업한 상품으로 미스 필링스란 서양 여자가 선사한 것이다.
영신이가 이곳에 온 뒤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 저녁으로 거닐던 바닷가 백사장에는 하아얀 모래가 유리 가루처럼 반짝이는데, 그 모래를 밟으면 바삭바삭 소리가 난다. 옷 속으로 스며드는 밤기운이 조금 산산하기는 하나 바람 한 점 일지를 않는다.
영신은 외로운 그림자를 이끌며 가만가만히 손풍금을 뜯으면서 그 모래 위를 거닐려니 영신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노래가 저절로 입을 새어 나왔다. 그 노래는 드리고의 '세레나데(小夜曲)'였다. 학교에 다닐 때에는, 찬송가나 동요 같은 노래 이외에 애틋한 사랑을 읊은 노래라든가, 조금이라도 유흥 기분이 떠도는 유행가는 귀에 익도록 들으면서도 입 밖에 내기는 삼가 왔었다. 그러던 것이 오늘 저녁은 즉흥적으로 드리고나 슈베르트 같은 작곡가의 애련한 영탄적(詠嘆的)인 노래가 줄달아 불러졌다.
처음에는 입 속으로만 군소리하듯 불러 보던 것이 차츰차츰 그 소리가 높아져서, 무섭도록 고요한 깊은 밤 해변의 적막을 깨트리다가는 가느다랗게 뽑아내리는 피아니시모에 영신은 '내가 성악가나 될 걸 그랬어' 하리만치, 제 목소리가 오늘 저녁만은 은실같이 곱고 꾀꼬리 소리만치나 청아한 듯이 제 귀에 들렸다.
머리를 들면 황금가루 같은 달빛이 쏟아져 내리고, 머리를 숙이면 그 달빛을 실은 물결이 천조각 만조각으로 부서지며 눈과 영혼을 함께 황홀케 한다. 다시금 머리를 들어 하늘을 우러르면, 풀솜 같은 구름 속으로 숨바꼭질을 하는 달 속에는, 쓸쓸한 방구석에 홀로 누워 외딸을 그리는 어머니의 눈물에 젖은 얼굴이 비치는 것 같고, 기다란 한숨과 함께 머리를 떨어뜨리면, 닦아 놓은 거울 같은 바다 위에 꿈에도 잊히지 못하는 고향산천이 아련히 떠오른다.
영신은 백사장에 펄썩 주저앉으며 눈을 꽉 감았다. 이번에는 무형한 그 무엇이 젖가슴을 치밀어 오른다.
'아이, 내가 왜 이럴까?'
하고 제 마음을 의심도 해보았다. 이제까지 참고 눌러 왔던 청춘의 오뇌에 온몸이 사로잡히자, 영신의 떨리는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한 마디는,
'하나님, 제가 그이를 사랑해도 좋습니까?'
하는 독백이었다. 영신은 다시 부르짖듯이 신앙의 대상자에게 호소한다.
'하나님, 일과 사랑과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택해 주시옵소서. 저의 족속의 불행을 건지기 위해서 이 한몸을 바치겠다고 당신께 맹세한 저로서는, 지금 두 가지 길을 함께 밟을 수가 없는 처지에 부닥쳤습니다. 오오, 그러나 하나님, 저는 그 두 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를 버릴 수도 없습니다.'
영신은 모래 위에 푹 엎드러졌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뜨거운 눈물에 번지는 모래를 으스러지라고 한 움큼 움켜쥐고서…….
어디서 무엇에 놀라서 날아가는지 물새 한 마리가 젖을 보채는 어린애처럼 삐액― 삐액― 하고 울면서 머리 위를 지나간다.
영신은 고독과 적막이 등허리에 서리를 끼얹는 듯해서 진저리를 치고는 발딱 일어나면서 치맛자락의 모래를 활활 털었다.
그 외롭고 적적한 생각을 잠시라도 헤쳐 버리려고 곁에 동댕이를 쳤던 손풍금을 다시 집어 들고 감흥에 맡겨 열 손가락을 놀리며 저도 모를 곡조를 한바탕 뜯었다. 누가 곁에 있어서 그 음보를 그대로 오선지에 기록했더면, 혹시 '헝가리인의 광상곡' 같은 작품이 이루어졌을는지도 모르리라.
그는 풍금 타던 손을 쉬고 다시금 머리를 숙이고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그때였다. 바로 영신의 등뒤에 솟은 바위 위에서 시꺼먼 그림자가 괴물과 같이 나타나더니,
"저…… 그 곡조 한 번만 더 타주세요!"
하는 굵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깜짝야!"
영신은 두 손을 짝 벌리며 오금에 용수철이나 달린 듯이 발딱 일어섰다. 전신에는 소름이 쪽 끼쳤다. 달빛을 정면으로 받아 시꺼먼 그림자의 정체가 눈앞에 드러나자,
"난 누구라구요. 어쩌면 그렇게 사람을 놀래 주세요?"
영신은 반가움과 원망스러움에 반죽이 된 표정으로 동혁을 살짝 흘겨본다. 동혁은 빙긋이 웃으며 저벅저벅 걸어서 영신의 앞에 와 선다.
"놀라긴 내가 정말 놀랐어요. 이 밤중에 어디루 가셨나 허구, 빈방 속에서 한참이나 기다렸는데……."
"풍금 소릴 들으시구 여?는 줄 아셨군요?"
"네, 독창회에 방해가 될까 봐 저 바위 그늘에서 입장권두 아니 사구 근청을 했지요."
그 말에 대낮 같으면 영신의 얼굴이 석류처럼 빨개진 것을 볼 수 있었으리라.
잠시 이성을 잃었던 모든 동작과 미쳐 날듯이 목청껏 부른 노래를, 동혁이가 지척에서 보고 들은 생각을 하고 열적고 부끄러워서 영신이가 얼굴을 붉힌 것뿐이 아니다. 바로 조금 전까지 안타까이 하나님을 부르며 '일과 사랑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택해 줍소서!' 하고 빌던 그 상대자가 뜻밖에 유령과 같이 눈앞에 나타난 데는 형용키 어려운 신비를 느꼈다. 신비스럽다느니보다도 폭풍우처럼 뒤설레던 감정이 짓눌리고 머리가 저절로 수그러지리만치 엄숙한 기분이 온몸을 지배하는 것이다.
"앉으십시다."
동혁은 바위 아래 모래밭을 가리키고 저 먼저 앉으며 두 무릎을 끌어앉고는 바다 저편을 바라다본다. 아득한 수평선을 따라 일렬로 주욱 깔린 것은 달빛을 새우는 듯한 새우잡이 중선의 등불들이다. 아까까지 영신은 그 불을 얕은 하늘의 별들이 반짝이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리 와 앉으시라니까요."
눈을 내리감고 발끝으로 모래를 허비적거리며 서 있는 영신을 돌려다보고 동혁은 명령하듯 한다.
"네……."
영신은 들릴 듯 말 듯하게 대답을 하고 동혁의 곁에 가 치맛자락을 휩싸쥐고 앉는다. 오늘 밤만은 동혁의 어떠한 요구에든지 순종하려는 듯이…….
"차차 바람이 이는데 춥지 않으세요?"
"아아뇨."
바닷가의 밤은 점점 깊어만 가는데 해감내를 머금은 바람이 솔솔 불어오기 시작해서, 이슬에 촉촉히 젖은 몸이 감기나 들지 않을까 하고 동혁은 염려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온몸의 피를 끓이며 노래를 목청껏 부르던 영신은 도리어 홧홧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인제 오셨어요? 오늘 밤엔 못 만날 줄만 알었었는데……."
"한 이십 리나 되는 데 누굴 좀 만나 보려구 찾아갔다가 오는 길이에요."
"그럼 여태 저녁두 안 잡쉈게요?"
"주막거리서 요기를 해서 시장허진 않어요."
"무슨 급헌 일이 생겼어요?"
"급허다면 급허지만……."
하고 동혁은 더 자세한 대답을 하기를 피하느라고,
"참 달두 밝군요!"
하고 딴전을 부리며 서녘 하늘을 쳐다본다.
볕에 그을어 이글이글하게 타는 듯하던 얼굴과 그 건장한 몸뚱이를 기울어 가는 창백한 달빛이 씻어내린다. 파르스름한 액체와 같은 달빛이.
영신은 다시 무슨 생각에 잠겨 동혁의 커다란 그림자가 저의 눈앞에 가로 비친 것을 들여다보고 잠자코 있다. 조금 전까지도 외로움과 쓸쓸함을 못 견디어 바람모지에 외따로 선 나무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던 영신은, 동혁이가 와서 제 곁에 턱 앉은 것이 큰 바위 속에다가 뿌리를 박은 것만치나 신변이 든든한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애상적이던 기분은 구름과 같이 흩어지고 안개처럼 스러졌다. 다만 동혁의 윤곽만이 점점 뚜렷하게 커져서 제 몸이 그 그늘 속으로 차츰차츰 기어들어가는 것 같은 환각을 느낄 따름이다.
한참 만에 동혁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 오실 때 편지에 꼭 친히 만나서 의논헐 말씀이 있다구 그러셨지요? 그걸 지금 말씀해 주시지요. 하룻밤쯤 새우는 게 우리헌텐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
"내일은 그예 떠나신다니 또 만날 기회가 졸연치 않을 것 같은데, 꼭 해주실 말씀이건 지금 허시지요."
"……"
영신의 머리는 수그러만 드는데, 동혁의 눈은 점점 탐조등처럼 빛난다.
"왜 말씀을 못 허세요? 무슨 말인지 시원스럽게 해버리시지요. 나두 허구 싶은 말이 있는지두 모르니까요……."
영신은 그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제야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럼, 동혁 씨가 허구 싶으신 말씀버텀 먼저 해주세요."
"아아니, 내가 먼첨 물었으니까, 영신 씨버텀 대답을 허실 의무가 있지 않겠에요?"
"그래두 먼첨 해주세요. 권리니 의무니 허구 빡빡허게 구실 거 없이……."
영신의 목소리에는 소녀와 같은 응석조차 약간 섞였다.
"그건 안 될 까닭이 있에요. 언권을 먼저 드리지 않으면 분개허시는 성미를 잘 알구 있으니까요."
그 말 한마디에 이태 전 ××일보사 주최의 간친회 석상에서 처음 보았을 때의 인상과, 악박골서 밤을 새우던 때의 정경이 바로 어제런 듯 주마등과 같이 두 사람의 눈앞을 달렸다. 그것은 두 사람의 평생을 두고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무한히 정다운 추억이었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은 불시에 몸과 마음이 더한층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동혁은 더 우기지 않았다. 남자의 자존심으로가 아니라, 그런 말을 강제로 시키기가 가엾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럼 이번만은 내가 지지요."
하고 동혁은 한참이나 뜸을 들이더니,
"어째서 그런지 몰라두, 내가 영신 씨헌테 허구 싶은 말이나 영신 씨가 나헌테 꼭 허구 싶다구 벼르면서두 얼핏 입 밖에 내지를 못 허는 말은 그 내용이 비슷헌 것 같은데…… 영신 씨 생각은 어떠세요?"
"……"
"아아니, 말대답이나 시원스럽게 해주셔야지요."
하고 동혁은 달려들기라도 할 형세를 보인다. 영신은 간신히 알아들을 만한 목소리로,
"저 역시두 한평생에 제일 중요헌…… 우리의 운명이 좌우되는 그런……."
하고는 말을 잇지 못하고 떠듬떠듬 토막을 친다. 아무리 고집이 세고, 무슨 일에나 앞장을 서고 누구에게나 지지 않으려는 성벽이 대단한 영신이건만, 오늘 저녁 이 자리에서만은 꽃을 부끄리는 처녀의 속탈을 벗지 못한다.
"아마 연애나 결혼 문제루 퍽 고민을 허시는 중이시지요?"
동혁이가 불쑥 내미는 말이 정통으로 들어가 맞히니까,
"……"
무언중에도 영신의 온몸의 신경은 불에나 닿은 것처럼 움찔하고 자지러들었다.
"나두 그런 문제로 적지 않이 괴롭게 지내는 중이에요. 늙으신 부모의 성화가 매일 같어서 그것두 어렵지만 사실은 나 자신이 몹시 외로울 때가 있에요. 억지루 일을 해서 잊어버리려구는 애를 써두 나만치 건강한 남자가, 언제까지나 독신으루 지낸다는 건 암만 생각해두 부자연헌 것 같아서……."
하고 발꿈치로 조약돌을 부벼서 으깨며 말을 멈추고는 영신을 흘낏 곁눈으로 흘려본다. 영신은 손가락으로 모래 위에다가 글씨를 썼다 지웠다 한다.
"영신 씨!"
동혁은 새삼스러이 저력 있는 목소리로 숨쉬는 소리가 서로 들릴 만치나 가까이 앉은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네?"
영신은 하얀 이마를 들었다.
"멀구두 가까운 게 뭘까요?"
끝도밑도없는 수수께끼와 같은 말에 영신의 눈은 동그래졌다. 무어라고 대답을 하면 좋을지 몰라서 눈을 깜박깜박하더니,
"글쎄요…… 사람과 사람의 사일까요?"
하고 동혁의 표정을 살핀다.
"알 듯허구두 모르는 건요?"
"아마…… 남자의 맘일걸요."
그 말 한마디는 서슴지 않았다.
"아니, 난 여자의 맘인 줄 아는데요."
동혁의 커다란 눈동자는 영신의 가슴속을 뚫고 들여다보는 듯하다.
달은 등뒤의 산마루를 타고 넘으려 하고 바람은 영신의 옷깃을 가벼이 날리는데, 어느덧 밀물은 두 사람의 눈앞까지 밀려들어와 날름날름 모랫바닥을 핥는다.
"……"
"……"
굴 껍데기로 하얗게 더께가 앉은 바위에 찰싹찰싹 부딪히는 파도 소리뿐…… 온 누리는 아담과 이브가 사랑을 속삭이던 태곳적의 삼림 속 같은 적막에 잠겨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형체 없는 영혼만은 무언중에도 가만히 교통한다. 똑같은 고민과 오뇌로 다리를 놓고서…….
영신은 앉아서 꿈을 꾸는 사람처럼 머리를 떨어뜨리고 있다가,
"제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어서……."
간신히 한마디를 꺼내고는 말끝을 맺지 못하더니,
"제 사정은 대강 아시는 터이지만, 얼마 전에 어머니가 청석골까지 다녀가셨어요. 제에발 고만 시집을 가라구 이틀 밤이나 꼬박이 새워 가며 빌다시피 허시는 걸 끝끝내 시원헌 대답을 못 해드렸어요."
"그래서요?"
"그랬드니, 나중엔 '네가 이 홀어미 하나를 영영 내버릴 테냐'고 자꾸만 우시는 데는 참 정말 뼈를 깎어 내는 것 같어서……."
영신은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참느라고 이를 악문다.
"그렇게 언짢어허실 게 뭬 있어요? 얼른 결혼만 허시면 문제는 다 해결이 될걸요."
하고 동혁은 일부러 비위를 긁어 주면서도 그 다음 말이 궁금해서 영신의 곁으로 다가앉는다.
영신은 남자를 원망스러이 흘낏 쳐다보고는 다시금 주저주저하다가 버쩍 용기를 내어,
"저…… 보통학교에 댕길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혼인을 정해 두신 남자가 있었어요."
이 말을 듣자 동혁의 눈은 금방 화등잔만해졌다.
이제까지 사사로운 이야기는 일부러 해오지를 않던 터이나, 영신에게 약혼한 남자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아, 약혼헌 사람이 있에요?"
제아무리 침착한 동혁이라도 저도 모르는 겨를에 이 말 한마디가 입 밖을 튀어나오는 것을 틀어막을 겨를이 없었다. 그와 반대로 영신의 태도는 매우 침착해진다.
"어려서버텀 한동리에 자라나서 저두 그이를 잘 알어요. 김영근(金永根)이라구 시방 황해도 어느 금융조합에 취직을 했는데, 사람은 퍽 얌전해요."
하는데, 그 사이에 제가 너무 당황해하는 눈치를 보인 것을 뉘우친 동혁은, 영신의 말을 자아내는 수단으로 얼른 말끝을 채뜨려,
"그만허면 조건이 다 구비허군요."
하고는 시치미를 딱 갈기고 외면을 한다. 영신은 대들어서 동혁의 넓적다리를 꼬집기라도 하려는 자세를 보이다가,
"글쎄 그렇게 사람을 놀리지만 마시구 들어 보세요. 대강만 얘기를 허께요."
하고는 다시 바다 저편의 고기잡이 등불을 바라보다가,
"그런데 그이는 내가 자기허구 꼭 결혼을 헐 줄만 믿구 있거든요. 지난 겨울엔 일부러 휴가를 맡어 가지구 찾어왔었는데, 이말 저말 해 가며 속을 떠보니까 농촌운동 같은 데는 털끝만치두 이해가 없구요. 그런 덴 취미까지두 없어요."
"그래두 어떠헌 생활의 목표는 있겠지요."
"그저 월급이나 절약을 해서, 한 달에 얼마씩 또박또박 저금을 했다가, 그걸루 결혼비용을 쓰자는 것……."
그 말에 동혁은,
"아무렴 그래야지요. 현대는 금전만능시대니까요. 거 일찌감치 지각이 난 청년이로군."
하고 시골 늙은이처럼 매우 탄복을 한다. 남은 진심으로 하는 말에 한편에서는 자꾸만 이죽거리며 씨까스르기만 하니까 영신은 발끈하고 정말 성미가 났다.
"아아니, 그렇게 조롱만 허시는 법이 어딨어요? 난 인전 암말두 안 헐 테야요!"
하고 톡 쏘아붙인다. 그러나 그 말쯤에 노염을 탈 동혁이가 아니다.
"아아니, 이건 결혼 얼른 못 허는 화풀이를 내게다 허시는 셈이에요?"
하고 더한층 핀둥핀둥해진다.
동혁은 조바심이 나리만치나 영신과 약혼한 남자와의 사이가 어떠한가 하는 것이 궁금하였다. 아무리 저에게는 가림새 없이 모든 것을 터놓고 말하는 터이지만 남녀간의 관계에 들어서는 자연 은휘하는 일이 있을 것이 의심스럽고, 어느 정도까지는 그 남자에게 질투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죄인이나 붙잡아다 앉혀 놓고 심문을 하는 것처럼 빡빡하게 물어 보면 실토를 하지 않을 듯도 해서, 일부러 농담을 하듯 하며 능청스러이 상대자의 속을 떠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영신이가 정말 입을 다물어 버려서 형세가 불리하니까,
"그건 다 웃음엣말이구요…… 남의 일 같지가 않으니 말이지, 그럼 그 사람은 장차 무슨 일을 허구 싶다는 거예요?"
하고 점잖게 묻는다. 그래도 영신은 성적한 색시처럼 눈을 꼭 내리감고는 입을 열려고 들지를 않는다.
"허어, 이거 정말 화가 나셨군요. 그러지 말구 어서 말씀허세요. 달이 저렇게 기울어 가는데……."
하고 동혁은 얼더듬으려고 든다.
"금융조합에서 한평생 늙을 작정이야 아니겠죠."
영신은 그제야 조금 풀린다.
"암, 그야 그럴 테지요."
"돈이 좀 모이면 장변이래두 놔서 늘려 가지구 잡화상을 하나 내구서, 생활 안정을 얻자는 게 그이의 고작 가는 이상이야요. 돈벌이를 허는 것밖에 우리루선 헐 노릇이 없다는 게 일테면 그이의 사상이구요."
"그만허면 짐작허겠에요. 요컨대 어머니께선 그런 착실헌 사람을 데릴사위처럼 얻어서 늙으신 몸을 의탁허구, 인젠 딸의 재미를 좀 보시겠다는 게지요?"
"그런 눈치야요."
동혁은 무엇을 궁리할 때면 으레 하는 버릇으로 두 눈을 꿈벅꿈벅하고 있다가 신중한 어조로,
"그럼, 워낙 주의나 이상은 맞지 않드래두, 그 사람헌테 혹시 애정을 느껴 보신 적은 있기가 쉬울 듯헌데……."
하고 가장 중요한 대문을 묻는다. 그 말에 영신은 뻗었던 두 다리를 오그리고 치마를 도사리며,
"어려서버텀 봐오던 사람이니까 딱 마주치면 무조건허구 반갑긴 해요."
하고 잠시 침묵하다가,
"그렇지만, 난 누구헌테나 입때까지…… 저어 동혁 씨를 만나기 전까지두……."
하고는 저고리 고름을 손가락에다 돌돌 감았다 폈다 한다. 동혁이도 자리를 고쳐 앉더니 영신의 얼굴을 면구스럽도록 똑바로 들여다보며,
"영신 씨는 어머니를 위해서 사랑이 없는 남자에게 한평생을 희생해 바칠 그런 봉건적인 여자는 아니겠지요?"
하니까,
"그런 말씀은 물어 보실 필요두 없겠죠."
하고 영신은 자존심을 상한 듯이 자신 있는 대답을 한다.
"그럼 앞으로 어떡허실 작정이세요?"
"그이허구는 단념허겠어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미련은 남겠단 말씀인가요?"
"아아뇨."
"그러문요?"
"……"
동혁은 영신이가 경솔히 대답하지 못하는 심중을 약빨리 눈치채지 못할 만치 미욱하지 않았다.
"그럼 내 태도를 보신 뒤에 좌우간 결단을 허시겠단 말씀이지요?"
동혁이도 자신 있게 다져 묻는다. 그 말에 영신의 입에서는 분명히,
"네!"
하고 한마디가 서슴지 않고 떨어졌다.
동혁은 불시에 그 무엇이 마음속에 뿌듯하도록 꽉차는 것을 느꼈다. 그 만족감은 물에 불어 오르는 해면처럼 또는 한정 없이 부풀어 오르는 고무풍선처럼 당장 터질 듯 터질 듯하다.
동혁은 벌떡 일어섰다. 팔짱을 꽉 끼고 달빛에 뛰노는 바다를 바라다보고 섰노라니, 그 바다의 물결은 커다란 용광로 속에서 무쇠가 녹은 물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아 보인다. 바다 위가 아니라 바로 저의 가슴 한복판에서 용솟음치는 정열을 눈앞에 보는 듯하였다.
한 십 분 동안이나 동혁은 머리를 푹 수그리고 눈앞에서 조각돌만 탁탁 걷어차면서 왔다갔다하였다. 그러다가 사기 단추와 같이 손 집는 데가 반짝거리는 손풍금을 집어 들더니,
"아까, 그 곡조 한 번만 더 타주세요."
하고 영신의 치마 앞에다 떨어뜨린다.
영신은 마지못해서 풍금을 받아 들면서도,
"얘기를 허다 말구 이건 뭘요?"
하고 뒤설레는 마음을 진정하느라고 몸둘 곳을 몰라하는 동혁을 쳐다본다.
"글쎄 특청이니 두말씀 말구 타주세요."
이번에는 반쯤 명령하듯 한다. 영신은 그만 청을 거역하기가 어려워서 풍금 손잡이에 손가락을 끼면서,
"아까 그건요, 되나 안 되나 함부루 타본 건데 나두 무슨 곡존지 잊어버렸어요."
하고 고개를 외로 꼬더니,
"왜 우리가 다 아는 훌륭헌 곡조가 있지 않어요. 난 어딜 가서든지 동혁 씨와 한곡리 생각이 나면 이 곡조를 탈 테야요."
말이 끝나자 영신은 찬찬히 팔을 폈다 오므렸다 한다. 그 곡조는 시작만 들어도 '애향가'다. 그러나 조기회 때에 부르는 것과는 딴판으로 느릿느릿하게 타는 그 멜로디는, 가늘게 떨며 그쳤다 이었다 하는 것이 무엇을 호소하는 듯이 몹시 애련하다. 이 밤만 밝으면 기약 없는 길을 또다시 떠나는, 그 애달픈 이별의 정을 조그만 악기 속에 가득히 담았다 흩었다 하기 때문인 듯.
허공에 얼굴을 쳐들고 두 눈을 딱 감고 섰던 동혁은 듣다못해서,
"그만 집어칩시다!"
하고 외친다. 그래도 얼른 그치지를 않으니까, 와락 달려들어 손풍금을 빼앗더니 백사장에다 동댕이를 친다. 영신은 어쩐 영문인지를 몰라서 어리둥절하고 입을 조금 벌린 채 동혁의 눈치만 살핀다.
동혁은 술이 몹시 취한 사람처럼 앞을 가누지 못하더니, 그 유착한 몸이 푹 엎으러지자 영신의 소담한 손등은 남자의 뜨거운 입김과 축축한 입술을 느꼈다. 영신은 온몸을 달팽이처럼 오므라뜨리고는 눈을 사르르 내리감고 있다가,
"참 이 바닷가엔 왜 해당화가 없을까요?"
하고 딴전을 부리며 살그머니 손을 빼어 내려고 든다. 그러나 그 손끝과 목소리는 함께 떨려 나왔다.
동혁은 두 팔로 영신의 어깨와 허리를 버쩍 끌어안으며,
"해당화는 지금 이 가슴속에서 새빨갛게 피지 않었에요?"
하더니 불시의 포옹에 벅차서 말도 못 하고 숨만 가쁘게 쉬느라고 들먹들먹하는 영신의 젖가슴에 한아름이나 되는 얼굴을 푹 파묻었다…….
영신은 생후 처음으로 경험하는 남자의 뜨거운 입술과 소름이 오싹오싹 끼치도록 근지러운 육체의 감촉에 아찔하게 도취되는 순간, 잠시 제정신을 잃었다.
동혁은 숨결이 차츰차츰 가빠 오고 두근두근하는 심장의 고동까지 입술이 닿은 손등과 그의 얼굴에 짓눌린 가슴을 통해서 자릿자릿하게 전신에 전파된다.
영신은 조심스러이 손 하나를 빼어, 목사가 세례를 주는 것처럼 부스스하게 일어선 동혁의 머리 위에 얹으며,
"고만 일어나세요. 네?"
하고 달래듯이 가만히 흔들더니,
"나두요, 동혁 씨의 고민을 말씀허지 않어두 잘 알구 있어요. 동혁 씨가 내 맘을 잘 이해해 주시는 것처럼―--- 그러기에 이태 동안이나 그닥지 그리워하던 당신께 제 사정을 하소연허려구 일부러 온 거야요. 이 세상에 다만 한 분인 동지헌테, 제 장래를 의논허려구요……."
동혁은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지독하게 마취를 당했다가 깨어난 사람처럼, 게슴츠레해진 눈으로 눈물에 어린 영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나는 영신 씨를 언제까지나 동지로만 사귈 수가 없에요. 그것만으로는 만족헐 수가 없에요!"
하고는 또다시 그 돌공이 같은 팔로 영신의 허리를 끊어져라고 껴안는다.
영신은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아서 손에 힘을 주어,
"이러지 마세요. 이렇게 흥분허시면 못써요. 우리 냉정허게시리 얘기를 허십시다."
하면서 허리에 휘감긴 동혁의 팔을 슬그머니 풀었다. 그리고는,
"어쩌면 저 역시두 동지로 교제허는 것만으룬 만족헐 수가 없는지두 모르지요. 그렇지만 그 문제를 백번 천번이나 생각해 봤는데……."
"어떻게요?"
동혁은 머리를 숙인 채 매우 조급히 묻는다. 영신은 조금 떨어져 앉아서 잠시 머릿속을 정돈시킨 뒤에 입을 연다.
"연애를 허는 데 소모허는 정력이나 결혼생활을 허느라구 또는 개인의 향락을 위해서 허비되는 시간을, 온통 우리 사업에다 바치구 싶어요. 난 내 몸 하나를 농촌사업이나 계몽운동에 아주 희생허려구 하나님께 맹세까지 헌 몸이니깐요."
"그러니까 그렇게 굳은 결심을 허구, 실지로 일을 해나가는 사람끼리 한몸뚱이루 뭉쳐서 힘을 합허면, 곱절이나 되는 효과를 얻지 않겠에요? 백지장두 마주 들면 낫다는데…… 영신 씨를 만난 뒤버텀 나는 줄창 그런 생각을 허구 있었는데요. 어느 기회에 나를 따러와 주실 줄을 나 혼자 믿구 있었던 것두 사실이구요."
"왜 낸들 그만 생각이야 못 해봤겠어요? 그렇지만 우리의 교제가 이버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필경은 결혼 문제가 닥쳐오겠죠?"
"그럼 언제꺼정 독신생활을 허실 작정이신가요?"
영신은 그 말대답을 주저하고 손풍금을 집어 들고 어루만지며,
"이걸 나헌테 선사헌 미스 필링스란 서양 부인은, 미개헌 나라에 와서 별별 고생을 다 해가면서 우매한 백성을 깨우쳐 줄 양으루 오십이 넘두룩 독신생활을 허구 있어요. 그런 여자의 생활이야말루 거룩하지 않어요. 깨끗허지 않어요?"
"그 사람네와 우리와는 환경이 다르구 처지도 다르지요. 영신 씨가 그런 사람의 본을 떠서 독신생활을 해보겠다는 건, 우리의 현실이 허락지 않는 아름다운 공상에 지나지 못헐 줄 알어요."
"그러니깐 남몰래 살이 내리두룩 고민을 하는 게 아니겠어요? 이렇게두 못 허고 저렇게도 헐 수가 없으니깐……."
"그런 경우엔 벙어리 냉가슴 앓듯 허지 말구 양단간 결단을 내야만 허지요."
"그만헌 결단성이 없는 건 아니야요. 그렇지만 난 청석골을 떠날 수가 없어요. 나를 낳어 준 고향버덤두 더 정이 들었고요. 나 하나를 무슨 천사처럼이나 알어주는 그 고장 사람들을, 그 천진난만헌 어린이들을 차마 버릴 수가 없어요!"
"저엉 그러시다면 당분간 내가 청석골 천사헌테 데릴사위로 들어갈까요? 나 역시 이 한곡리에다가 뼈를 파묻으려는 사람이지만……."
하고 시꺼먼 눈을 끔쩍끔쩍한다. 영신은,
"호호호, 그건 참 정말 공상인데요."
하고 동혁의 무릎을 아프지 않게 치며 별 하늘을 우러러 명랑히 웃었다.
"……"
"……"
동혁이도 덩달아 웃는 체하다가, 속으로는 갑갑해 못 견디겠는 듯이 다시금 벌떡 일어선다. 한참 동안이나 신부리로 바위를 툭툭 걷어차기도 하고 돌멩이를 집어 팔매도 치면서도, 무슨 생각에 잠겼다가 비장한 결심을 한 듯이 다시 돌아와 영신의 앞에 가 바싹 다가앉으며 손가락 셋을 펴들더니,
"자, 앞으로 삼 년만 더!"
하고 부르짖으며 영신의 턱밑을 치받치듯 한다.
"인제 삼 개년 계획만 더 세우구 노력허면 피차에 일터가 단단히 잡히겠지요. 후진들헌테 일을 맡겨두 될 만치 기초가 든든히 선 뒤에 우리는 결혼을 허십시다. 그러구는 될 수 있는 대루 좀더 공부를 허면서 다시 새로운 출발을 허십시다!"
하더니 잠시 뜸을 들이다가,
"영신 씨! 그때까지 기다려 주실 테지요, 네? 꼭 기다려 주실 테지요?"
하고 영신의 두 손을 잡고 으스러지도록 힘을 준다.
"삼 년 아니라 삼십 년이래두…… 이 목숨이 끊……."
하는데 별안간 영신의 입술은 말끝을 맺을 자유를 잃었다.
지새려는 봄 밤, 잠 깊이 든 바다의 얼굴을 휩쓰는 쌀쌀한 바람이 쏴― 하고 또 쏴― 하고 타는 듯한 두 사람의 가슴에 벅차게 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