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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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를 타면 자리에 앉기를 그리 즐기지 않는 나이었건만 그날은 몸이 좀 피곤해서 하차할 거리도 멀고 하여 자리를 엿보아 앉았다.

그러나 일단 앉고 보니 뉘 집 심부름아이인 듯한 열셋이나 그렇게 밖에는 안 되어 보일 계집애 하나가 무엇인지 꽤 무거워 보이는 보퉁이를 조심히 두 손으로 받쳐 가슴에다가 안고 내 옆에 서서 심히 거북해한다. 짐은 놓고서 있으면 그런 거북함만은 없을 것인데 그대로 들고만 서 있을 차빌 하는 걸 보면 필시 아무 데나 막 놓아서는 안 될 무슨 그런 중요한 것이 들어 있음이 틀림없었다.

“너 여기 앉고 그 보퉁이는 무릎 위에다 놓아라.”

보다 못해 나는 일어서며 그 계집애에게 자리를 권했다.

“아니에요, 어서 앉으세요.”

계집애는 그럴 수가 어디 있느냐는 듯이 힘있게 몸을 흔들어 보인다.

“어서 앉아라 무거운데.”

“괜찮아요 전. 어서 선생님 앉으세요.”

“어서 네가 앉아.”

“아니에요.”

“앉으래도.”

계집애는 곧장 사양을 하면서 해몰해몰 웃기만 한다.

하는 양이 아무리 해도 그 계집애는 내게 대한 미안을 무릅쓰고 그 자리에 앉을 예를 잃지 않으려고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일단 일어서 권하던 나이니 그 계집애가 앉지 않는다고 해서 나 또한 그 자리에 다시 밑을 댈 수는 없었다.

“어서 앉아. 뭐 미안해서 그러니?”

그냥 권하여 보는 것이었으나 계집애는 여전히

“어서 앉으세요, 선생님.”

하고 고집이다.

서로 이렇게 자리를 사양하는 판인데 새까만 오버 자락이 내 옆 좁은 틈을 비비고 뚫더니 그 자리에다가 커다란 엉덩이를 쑥 들이댄다. 보니 바로 우리 옆에서 처음부터 우리들의 하는 이야기를 흥미가 있는 듯이 듣고 있던 그 신사다. 나도 그 계집애도 다 그 자리에 앉지를 않고 비워 둘진댄, 누구든지 그 자리에 앉음으로 피로를 푸는 것이 마땅한 일이기는 하나 이 자리는 보통 남아 있는 그런 자리와는 성질이 좀 다른 자리임을 안다면 반드시 사양의 여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자리를 빼앗겨서가 아니라 그 예의에 눈 어두운 소행이 실로 불쾌했다. 숭편치 않는 눈이 떠진다. 그 계집애의 눈도 역시 메밀 알이 되어서 힐끗힐끗 신사를 쏘아보다가는 내 편을 향하여 돌린다. 이렇게도 뻔뻔한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하는 내 동의를 구하는 눈치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의 자위요, 그 일순 후엔, 나나 계집애나 다 같이 서로 그 자리를 권할 권리를 잃고 어이없이 제각기 바라만 보는 것이 우리들의 예의요 인사였을 뿐인데. 차가 그 다음 정류장에 머무르려 할 즈음,

“헹이!”

계집애는 닁큼 뛰며 울상이 된다.

보니 그의 가슴에는 이제껏 안고 있던 보퉁이가 없다. 떨어뜨린 것이다.

하얀 보 밖으로는 걸쭉한 물이 스며 나오기 시작한다.

계집애는 떨어뜨린 보를 다시 주워 들으려고도 아니하고 여전히 울상이 된 채 그것만 한심하게 내려다만 보고 있다.

“뭔데 깨졌나 보구나?”

“계란이에요. 다 깨졌을 걸 어떻게 집으로 들어가요, 욕먹을 텐데!”

하얀 눈물이 두 눈에서 쑥 나온다.

가까운 주위의 시선이 다들 이리로 몰린다. 신사의 눈도 분명히 여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빗겼다.

나는 지금도 보는 듯하거니와, 그 신사의 눈도 다른 주위의 눈들과 같이 능히 깨어진 계란을 바라볼 수 있는 대담성에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