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길을 묻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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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기운다. 길을 가다가도, 정전지대(定全地帶)에 섰다가도 나는 흔히 시골 사람에게 길을 묻기운다. 주위에 사람은 많건만 시골 사람은 두리번두리번 사람을 살피어 물색을 하다가는 내 앞으로 와서 나더러 길을 가르쳐 달란다.

이 시골 사람들이 하고 많은 사람 가운데서 하필 왜 나를 쫓아와 붙들고 길을 가르쳐 달라는지 나는 길을 묻기울 때마다 이 시골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내 자신의 인물됨이 무척 알고 싶어진다.

“자기보다 낮춰 보여서?”

“시골 사람처럼 보여서?”

“겸손하게 보여서?”

그 이유는 분명히 셋 가운데 어느 하나이리라고 짐작된다. 그러면 이 셋 가운데 그 어느 것이 그들에게 보이는 나인 것일까?

자기보다 낮춰 보여서―

글쎄 그렇게 내가 낮춰 보일까. 키가 작으니 위풍이 없다. 위풍이 없으면 초라하게 보이는 법이다. 초라한 사람을 대하면 자기가 잘난 것 같아, 어깨가 자연히 올라가게 되는 것이 보통 사람의 심정으로, 이 사람이야 내가 물으면 황공히 가르쳐 주겠지 하는 그런 심리에서가 아닐까.

그러나 아무리 풍채에 가난한 나이라 해도 그렇게까지 내가 초라하게 보 임직하지는 않고.

겸손하게 보여서―

하지만 아무리 거울에 비춰 내 외모를 뜯어보아도 겸손 이자(二子)의 인상을 주기론 되어먹지를 않은 것 같다. 눈초리가 치붙고 광대뼈가 쑥 두드 러졌으니 설령 마음은 그와 반대로 착하다 해도 그렇게 보일 리는 도저히 없을 것이고.

시골 사람처럼 보여서―

여기에 나는 어느 정도까지 그들의 마음을 찾고 싶어진다. 도시의 물을 먹고 사노라고는 해도 시골서 나서 시골서 자라난 나이니 시골 때가 벗겨질 리 없고, 또 애써 그 때를 벗으려고도 힘쓰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종로 한복판에 팔을 벌리고 섰다 해도 서울 사람 냄새는 그 어느 한 모에서도 맡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시골 사람의 인상을 받게 되는 데서 같은 시골 사람이라, 어려움성이 적어지는데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것은 다 내 추측에 불과한 것이고, 한 가지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은 그들이 나를 보는 데 있어 내 외모에서 나를 보지 아니하고, 내 마음을 엿뚫어 보는 것 같은 것이 그것이다.

나는 누구에게서나 길을 묻기우면 알 수 있는 한에서는 데리고 까지 가서라도 찾아 주리라는 친절을 도모할 마음을 굳이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내가 어렸을 때 생소한 곳에서 길을 잃고 길을 묻다가 그들의 불성의에서 찾아야 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밤이 이슥하도록 고생을 해 본 일이 있는 후부터 길만은 친절히 가르쳐 줘야 한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굳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 후부터 길을 묻기울 때마다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정성을 다하여 인도(引導)를 베풀어 왔고, 또 앞으로도 그것은 그래야 된다는 것이 도덕인 줄을 알고 있는 나이므로 주위에 많은 사람을 두고 하필 나더러 길을 가르쳐 달랄 땐 그 무슨 점으로든지 그러한 내 마음을 엿뚫어 보는 것 같아서 한참이나 그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곤 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나를 반드시 그렇게 보아 주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기는 하다. 나는 이러한 친절을 베풀다가 단단히 실패한 일이 가까이 한 번 있다.

밤 열두시가 거의 가까웠을 때다. 견지정(堅志町) 거리를 올라가노라니 어떤 젊은 여인이 청진정(淸進町) ××번지가 어디일가요 하고 묻는다. 일견(一見) 시골서 서울로 요즘 이사를 올라온 모양으로 야시(夜市)에 무엇을 사러 나왔다가 집을 잃은 것이 분명하였다. 그래서 저 여자를 집까지 찾아 줘야 된다는 생각으로 나를 따라오시오 하고 가던 길을 되돌아서 청진정(淸進町) 쪽으로 빠져 들어가니 그 여자는 길만 가르쳐 주지 아니하고 자기를 데리고 가는 것이 필시 내가 무슨 나쁜 마음을 먹고 딴 곳으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닐까 하여 의심이 바짝 동하는 모양이었다. 컴컴한 불 없는 좁은 골목을 들어서기만 하면 그 여자는 몰래 내빼려고 나를 따르지 아니하고 자꾸만 외딴 골목으로 새곤 한다. 그러나 그가 새는 길이 찾는 번지와는 엄청나게도 반대쪽이므로 그런 걸 빤히 알면서 그대로 두는 수가 없어 내닫는 것을 찾곤하면 겁(怯)이 시퍼렇게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래, 나는 그 여자가 집을 잃고 헤매는 것보다 내가 데리고 다니는 것이 더욱 그의 마음을 태우는 것 같아 어째든 그 번지는 그리로 가면 안 될 것이고 이쪽으로 찾아보아야 될 것이니 이쪽으로만 골목골목 뒤져 보라 이르고 돌아섰다.

짐작컨대 이 여자는 그 전에도 집을 잃고 길을 찾다가 한번 혼이 난 경험이 단단히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내 심정을 몰라주는 그 여자가 얼마나 섭섭했는지 모른다.

아마 지금도 그 여자는 그날 밤의 그 일을 생각하고는 나를 고약하게만 알고 몸서리를 치고 있을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