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방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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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살랑거리니 바깥보다는 방안이 한결 좋다. 밤의 방안은 더욱이 마음에 든다. 등하(燈下)에 책상을 기대앉으면 마음이 폭 가라앉는 것이 무엇인가를 자연히 사색케 한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말이 있거니와 등화(燈火)를 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 겨울밤인 듯싶다.

저녁을 치르고 일순의 산책이 있은 다음 불을 켜고 고요히 방안에 들어앉으면 내 마음은 항상 무엇에 그렇게 주렸는지 공허한 마음이 저도 모르게 그 무엇인가를 찾기에 바쁘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찾을 수 없는 그 마음이다. 찾아질 리 없다. 허나 그것을 못 찾는 마음은 우울하기 짝이 없다. 나이 인제 사십의 고개턱에 숨이 차게 되었으니 인생의 감상 시절은 지났다고 보아도 좋으련만 내 마음은 무엇을 찾기에 그리 늘 우울한지.

언제나 나는 내 마음에서 그 무엇인가를 찾다 못 찾으면 그것을 서적에서 찾으려고 애를 쓴다. 그 어떠한 책 속에는 족히 내 공허한 마음을 채워 줄 그러한 무엇이 들어 있을 듯만 싶은 것이다. 그래서 멍하니 앉아서 생각을 더듬다가는 벌떡 일어서 서가로 달리어가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지금 단칸셋방의 객사인 내 집엔 서가(書架)는커녕 책조차 비치한 것이 없다. 좋거나, 나쁘거나 그저 얻을 수 있었던 몇 권의 책이 책상 위에 놓여서 있을 뿐, 마음을 끄는 책이라고는 단 한 권도 없다. 책, 지극히 책이 그립다.

고향의 내 서재로 마음을 달린다. 여섯 층으로 된 천정을 찌르는 높다란 서가가 눈앞에 보인다. 거기에 빈틈없이 질서 있게 나란히 책들이 가득 꽂혀 있다. 그러나 그것도 팔아먹고 남은 나머지다. 그것들의 책에 구미가 동할 리는 더군다나 없다.

나는 또 장 속에 처박아 둔 2, 3의 서가를 연상해 본다. 몹시 마음이 허전하다. 한 번씩 눈을 거쳐는 보았다고 해도 내 마음을 살찌워 준 것이 그것들이었다. 그것이 이제 궁여(窮餘)의 일계(一計)에서 담배연기로 화해 버리고 빈 서가만 남았거니 하니 마음의 공허가 더욱 심절하다. 어쩐지 그 빈 서가는 내 자신인 듯도 싶게 내 마음의 공허함을 느끼듯 공허함을 느끼는 것 같은 것이 알뜰히 걸린다. 그 서가에 가득하던 천여의 부수를 다시는 채워 보지 못할까, 아득한 생각이다. 그 부수를 다시 채우기만 하면 그래도 그 속에는 내 마음의 공허도 채워질 그러한 부분이 있을 듯만 싶은데 이제 그것을 임의로 할 수 있을 여유의 생각조차 맺지 못하니 내 자신은 이젠 아무렇게나 장 속에 던져 둔 서가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며 서글프기 짝이 없다.

그리하여 영원히 채울 길이 없는 그 서가와 같이 내 마음속에도 티끌과 거미줄만이 쌓이고 끄슬리는 가운데 나날이 낡아 빠지는 것만 같다.

밤마다 등하에 고요히 앉기만 하면 나는 마음의 공허를 이렇게 느끼고 마음의 구석구석 들어차는 티끌 속에 케케묵어 가는 나라는 인간의 존재를 내다보고는 어이없이 웃어 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