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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수상록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사람이 세상에 날 때에 일생의 필자를 그 얼굴에다 내여 박고 나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대개 그 사람의 팔자가 그 얼굴에 그려 있는 듯이 보이기는 한다. 붙음 붙음이 괴롭게 정리되고, 번듯하게 생긴 얼굴의 소유자는 그것이 그대로 그 사람의 복을 말하는 것 같고, 또 그와는 반대로 얼굴이 조밀작해서 어딘지 구차해 보이는 얼굴의 소유자는 아무리 해도 복은 없을 것 같게만 보인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그렇지도 않은 예를 우리는 빤히 내다볼 수 있는 것이니, 육안으로 보아도 그렇게 번듯하게 복스럽게 생기고 아니 생긴 것으로는 그 사람의 운수를 따져 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얼굴이 번듯하게 생긴 사람을 보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해도 어쨌든 복 좋은 사람같이 보이는 데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또 그것이 장래의 팔자에는 어찌 되었든 뭇 사람에게 그렇게 복스럽게 보이는 것만 해도 천복을 타고 난 사람 같아 나는 그러한 얼굴의 소유자를 대할 때마다 내 얼굴을 연상하고, 그러면 내 얼굴은 뭇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 하는 생각에 가끔 거울에다 자신의 얼굴을 비춰 놓고 요모조모 뜯어 가며 장단점을 찾아본다. 그리고 오늘까지 보아 오는 동안에 제일 잘생겼다고 인정하던 그런 얼굴에다도 비해 보고, 또 제일 못생기었다고 보였던 그런 얼굴에다도 비해 본다.

그러나 내 얼굴은 내가 좋아하는 형으로 그렇게 복스럽게 환하지도 못하고 할복한 형이라고 인정하는 그렇게 조밀작한 얼굴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나 하나의 보통 얼굴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면 내 얼굴 같은 이러한 형은 그 소위 관상학상으로는 어떤 것일까 나는 근래 그것이 무척 궁금하였다. 이것은 무슨 관상법을 믿어서가 아니라 복스럽게 생긴 사람도 복이 없고 복스럽게 생기지 못한 사람도 복이 있는 것을 볼 때 관상학상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보나 하는 호기심이 내 관상에서 한번 그것을 시험하여 보고 싶은 까닭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인즉 역시 쑤그러운 짓이라 돈을 주고까지 보일 필요는 없어 한번 보여 보자 하고 그 어떤 기회만을 엿보아 오던 것이 월전(月前)에 우연히도 모모 씨로 더불어 이야기를 하던 끝에 관상이야기가 나서 돈을 아니 받고도 보아 준다는 청운정(淸雲町) 오개석 씨(吳介石氏)를 찾아가 관상을 보인 일이 있다.

그러나 관상학상으로 보는 관상은 우리가 척 보기에 그저 번듯하고 아니 번듯한 것으로 복(福), 불복(不福)을 따져 버리는 그런 추상적 관법이 아니라, 사람의 일생에 굴곡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얼굴에도 그 부분부분에 굴곡이 있어서 그것을 일생에 맞추어 보는 그러한 구체적인 관법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 보는 법이 아주 과학적이요, 조직적이다.

그러면 관상법으로 본 내 얼굴은 어떠하였나, 그 역시 대체로 볼 때는 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그저 평범한 하나의 보통 얼굴로 본다. 그가 본 내 얼굴의 형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나 자래형이라는 단안을 내린다. 그리고 세부분으로 들어가 일생의 그 소위 팔자를 논하는 데 있어선 머리가 좋으니 초년 팔자는 좋았으나 이마가 들어가 삼십대 팔자는 극히 좋지 못한 데, 코가 또한 좋아서 사십대부터는 다시 운수가 좋다 한다. 그러나 그 직업의 가집에 있어 운(運), 불운(不運)이 좌우될 것인즉 문필을 집어 던지고 장사를 하여야 성공을 할 것이라 한다. 그래 그 성공이라는 것이 어떠한 정도의 것이냐고 물었더니 이천 석 하나는 염려 없다는 것이다. 그런 데다 입까지 또한 좋아서 그것을 족히 지킬 것이니 부디 장사를 하란다. 그리고 뺨 아래 뼈가 넙적하게 두드러졌으니 부하를 많이 거느릴 관상으로 유순한 마음은 심성으로 그 부하를 사랑하고 지도하나, 그 심성을 몰라주는 부하들이라 그들로부터의 시비는 면할 수가 없는 형이라고 한다. 이것이 그의 관상법으로 본 내 얼굴에 두드러진 팔자다.

무슨 이것을 믿을 것은 아니요, 또 믿고 싶은 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문필을 던져야 된다는 얼굴이 내게는 갑자기 밉게 보였다. 그리고 가만히 얼굴을 뜯어보니 그 어느 한 모에 문재(文才)를 나타내는 그러한 재기에 찬 부분을 사실상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또한 나는 문필을 황금으로 바꾸어 버릴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 내 팔자에 타고났던 벼 이천 석을 아깝게도 쌓아 보지 못하고 뉘 집 곳간에다 자선을 베풀게 되는 셈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