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문학과 건강
저온(低溫) 생활을 하려니 일현(日鉉)이 생각이 가끔 난다.
그는 몇 해 전 내 시골 집에 머슴으로 있던 스물둘이든가, 아마 그러한 연령이었던 엄지럭 총각이었다. 백설이 펄펄 날리는 엄동에도 그는 구들에 불을 넣는 법이 없었다. 구들이 차면 병이 난다고 아무리 불을 넣고 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고 맨구들 위에다 그저 짚북데기를 약간 깔고는 그 위에서 그냥 잤다.
남의 집이라 혹 샛더미에 때마다 임의로 손을 대기가 어려워 그러지는 않을까 싶어 하루는 조부님이 이렇게도 말씀을 해 보았다.
“네 방에 불은 산에 가서 네가 나무를 해다가 넣고 자도록 해라.”
그리고는 그 태도를 보았던 것이다. 그래도 그는 그저 여전히,
“전 춥지 않아요?”
한마디로 나무 한 조각 해 오지 않고 그 추운 겨울을 냉돌에서 끝끝내 났다. 그러면서도 감기 한 번 뱃증 한 번 걸리고 앓는 일 없이 건강한 몸으로 일은 일대로 남 지지 않게 해내는 아이였다.
조부님뿐이 아니요, 나뿐이 아니라, 우리 전 가족, 아니, 온 동내에서 모두 이 일현이의 생활에는 아니 놀라지 못했다.
물론 그의 정신에 다소 이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철도 연변의 밭에서 김을 매다가 무심중 기적을 울리며 달리어 들어오는 기차에 놀라 기절을 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정신이 좀 부족해진 듯하다고는 하나, 그러나 그의 모든 행동을 종합해 보면 그의 행동이 전연(全然) 정신 이상에 있다고만 그렇게 단순히 볼 수는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거리에서 거지로 노숙을 흔히 보거니와 빈한(貧寒)한 그의 가정은 그 후 곧 산지사방(散之四方)하게 되면서 그는 잠깐 남의 집 사람이 되었다가 한 해 동안을 한지(寒地)에서 아니 지낼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한(耐寒)에의 단련을 받게 된 것이, 지금의 체질을 만들어 내었는가 보다고 그 자신도 말하는 걸 들었거니와, 사실 거기에 원인이 없었다고 볼 수가 없었다.
이건 내가 직접 자식들을 기르며 지나도 본 일이지만 추위를 타거나 타지 않는 것은, 그리하여 건(健), 불건(不健)의 체질을 갖게 되는 것은 아이의 그 기르는 방법에 있어 좌우됨이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조모님은 증손자가 귀하다고 내 자식을 일상 품에 품으시고 추울세라 절절 끊는 아랫목에다 묻어 놓고도 바람이 어디로 들어오는 것은 아닐까 수건을 씌우고 또 머리맡을 가리고 하시며 방한과 보온에 할 수 있는 힘과 정성을 온통 기울여 길러 냈다.
그리고 그 다음 것 계집아이는 그까짓 것은 여차라고 누구 하나 탐탁히 안아 주는 사람조차 없어 어머니의 젖을 떨어져선 아랫목 맛이라고는 보지도 못하고 웃목에서 저 혼자 되는대로 자라났다.
그러나 결과에 있어서는 되는대로 길러낸 아이 편의 건강이 오히려 좋은 것이었다. 냉기나 겨우 피한 정도의 온돌이 밤 열한 시나 그러한 시각이 되면 코뿔이 얼어들고 손이 시럽고 하여 으슥거리는 몸이 이불을 뒤집어쓰지 않고는 배겨날 수가 없는데 이 아이만은 뎅글하게 등에다 샤쓰 하나만을 걸치고 종아리는 벌거숭이 그대로 들어내 놓은 채 조금도 한습(寒襲)을 두려워하는 일 없이 그저 저 할 일에 자세가 천연하다.
나는 그게 여간만 부럽지 않다.
한참 혈기에 충만한 아이들과 건강을 동석에서 비해 말할 것은 아니로되 허투로 길러지지 못하고 아랫목에서 뼈가 굵게 된 내 건강은 아이 적에도 그리 좋은 편은 못 되었다. 그러나 운동에 취미를 얻음으로 단련이 된 몸은 씨름 같은 것도 한태 할 줄 아는 건강이었다.
그렇던 것이 문학과 인연을 맺게 되고부터는 운동이라는 데는 조금도 관심을 아니 하게 되고 오직 그것이 생명인 것처럼 칠팔 년을 꼭 두문불출 방(房) 속에 박혀서 기거를 하며 책과만 씨름을 하게 되는 무리(無理)가 감행되는 동안 건강은 저도 모르게 좀이 먹어 들었다. 십칠 관(十七貫)을 넘던 체중이 아무리 발에 힘을 주고 굴러 보아도 십칠 관 상하에서 저울 침을 더 돌릴 수가 없게 깎여 내린 것이다. 누워서 독서를 했기 때문에 눈이 나빠지고, 책상에 다년간 수굿하고 앉아 있었던 관계로 비색증(鼻塞症)도 생기고―하는 것이 그 부분적으로도 영향이 큰 것을 따져 짚은 의사의 말이었다.
아니 그것만이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심장도 확실히 약해진 것을 알고 있거니와 이것도 문학이 그렇게 만든 것이 사실이다.
정신생활을 위하여 희생시킨 건강을 장(將)한 일이라고 볼 것인가, 건강의 지속이 없을 때 정신생활도 따라서 영위할 수 없게 될 것은 빤한 일이다. 건강이 제일이라는 말은 보약 광고의 과장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여기서 절실히 느끼게 된다. 아니 오히려 좀더 굳세게 건강은 그대로 그것이 인생이라고 나는 강조하고 싶다.
문학을 위하여 건강을 희생하고 문학을 할 능력을 잃게 된다는 것은 그 얼마나한 비극일 것인가.
시작한 지 불과 한 시간밖에 아니 되었을 이 짧은 글을 이까지 쓰는 동안에도 나는 몇 번이나 붓을 놓고 혹은 입김으로도 혹은 엉덩이 밑에도 깔아 보고 불어 보고 하며 그리곤 그 손으로 코끝을 감싸 녹히고 하기에 몇 줄 건너 거듭하여 왔는지 모른다. 아니 이것만이 몸에 마취는 견디기 어려움이라면 오히려 헐할 것이다. 정신이 어찔함을 느끼게까지 된다는 것은 참…….
일현이 같은 건강, 그러한 건강의 꿈을 나는 왜 일찍이 꾸어 보지 못하였을까, 그리하여 길러 오지 못하였을까.
겨우내 불이라고는 단 한 번 맛도 보지 못한 그 냉돌(冷突) 위에서 자기의 체온만으로 엄습하여 들어오는 한파를 조금도 곤란 없이 막아내며 천연히 앉아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루 너어머간다.”
하고, 가끔 한 가닥씩 넘겨가며, 밤마다 새끼를 꼬던 일현이, 그 일현이의 건강이 나는 얼마나 부러운 것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