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애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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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치고 담배 맛처럼 알뜰한 맛은 세상에 다시없을 것 같다. 내 생활에 있어 담배는 잊을 수 없는 하나의 벗이요, 또 좋은 스승이다.

몸이 피로하여졌을 때 담배를 한 대 피워 무는 맛이란 실로 애연가가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가까운 벗이 일찍이 이 담배 맛에서처럼 지친 심신에 위안을 준 적이 있을까. 한 대 피워 물고 고요히 앉아서 힘껏 한 모금을 들여 빨았다가 후- 내어쉬면 그 연기와 같이 피로도 몰려나와 공중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 같은 기분이 정신을 새롭게 해 준다.

내가 일찍이 담배를 못 배웠던들 이렇게 온갖 맛 중에 제일가는 좋은 맛 하나를 영원히 모르고 지나게 되었을 것이 아닌가 하면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기어코 배워 냈던 지난날의 그 어린 시절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야족의 종교적 예의 중에는 이미 담배 잎을 태워서 신에게 바치는 행사가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담배의 역사는 가장 낡은 역사를 가진 마야족과 같이 이어오는 것으로 추측이 되거니와 신에게 담배를 바치는 승려가 담배의 그 진기한 마취작용 그것이란 신의 현현(顯現)이라 하여 마침내는 그 자신조차가 끽연에의 탐을 내어 일반인사로부터 경끽(競喫)을 하게 되는 취미(趣味)를 가르쳐 준 것이 되어 보편적으로 습관이 길러짐으로 오늘에 와서는 내 입에까지 빨리게 된 것을 생각하면 이 담배의 율칙(律則)을 범한 그 승려에게 나는 다시 한 번 감사함을 사양치 못한다.

처음에는 내가 어떠한 동기에서 담배를 배우기 시작했는지는 생각이 퍽 옹색하나 열한 살 적에 떨어진 대통을 주어다 붓대를 잘라 맞추어서 곰방대를 만들어 가지고 증조모님의 담배함에서 기새미를 훔쳐내다가 변소 같은 곳으로 숨어 다니며 성(盛)히 피워 내던 기억만은 지금도 선하다.

구주(毆洲)에서 담배를 처음으로 피우던 스페인의 로드리크 더 헤레스라는 사람도 담배를 피우는 것 때문에 종교재판을 받아 옥중신세까지 졌다는 말이 전하여 내려오거니와 나도 담배를 배우기까지에는 경을 치기 한두 번이 아니다. 근처 노인네들한테 망해 나가라는 극언을 듣기도 여러 번 하였고 소학교 적에는 선생한테 들켜서 벌까지 서 본 일이 있다.

점심 후 역시 변소에 들어가서 한 대를 피고 났는데 뜻밖에 사무실로부터 호출이 내렸다. 들어가 보니 아무런 말도 묻는 것이 없이 다짜고짜로 선생의 손은 나의 포켓으로 들어와 반도 못 먹은 2전(二錢)짜리 꽃표 권련갑(卷 煉匣)을 드러냈다. 동시에 선생의 다른 한 손은 어느 새인지 철썩하고 나의 뺨에 와 부딪치기에 사정이 없었다. 그것만이면 그래도 헐했다. 두 시간 동안인가를 허수아비처럼 곧장 팔을 벌리고 기척을 하고 딱 서서 벌을 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도 나의 담배에 대한 길은 들지 않았다. 조금도 후회하는 법이 없이 여전히 숨어 다니면서 피우기를 즐겼다.

이렇게 주위에서는 담배 피우는 것을 금할 뿐 아니라, 담배를 피운 다는 것이 또 자신으로서도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건만 끊지를 못했다. 한 모금을 힘껏 들여 빨아 삼키면 그 고통이란 말할 수도 없다. 머리가 얻어맞은 것처럼 텡하고 속이 후리후리한 것이 메스껍고 하여 실로 밥을 못 먹고 병인처럼 근더져서 한나절을 지나보내곤 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웬일인지 그것을 끊지 못하고 끝끝내 계속하여 필야엔 제 맛을 알고 빨게 되기까지 배워 놓고야 말았다.

이리하여 이래 20여 년을 꾸준히 피워 오며 친한 담배를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좋은 벗이 되어진 것이다.

중학 시절에 한 번은 체조 선생이 담배를 조사하는 바람에 호주머니 속에 넣었던 피존 갑(匣)을 갑자기 처치할 길이 없어 책상 밑 뒤 판자 아래 구겨 넣으므로 급변을 피하게 되었든 것이 후일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그것이 나를 도와주는 역할이 되었던 것이니 그 후 하휴(厦休)의 영어시험간(英語試驗間)의 하나로서 물은 비둘기의 스펠이 무엇이든지가 생각이 나지 않아 부등부등 애를 쓰다가 문득 그때의 그 책상 뒤 밑의 피존 갑이 생각나기로 끄집어냄으로써 Pigeon이라 똑똑히 보고 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도 이제 보면 담배를 사귀어 두었던 그 덕이라 아니 할 수 없거니와 정신적으로서의 활동이 계속되는 동안, 그동안에 있어서의 참 벗은 내게는 오직 담배를 두고 다시 없다. 글을 쓰다가도 문득 혀끝에 담배 맛이 당기면 생각이 자자들고 붓이 멎는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담배의 준비가 없이는 붓을 들지 못한다. 그것을 피움으로 권태를 느낄 줄 모르고 심신의 위로를 사며 앞으로의 생각을 길이 더듬어 나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시 담배의 비치(備置)가 없다든가, 끽연에의 자유가 없는 그러한 장소에 처하게 되는 때의 생활은 내게 있어선 생활하는 그 순간이 아니요, 다만 생존해 있는 그러한 순간에 지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이러한 생활에의 욕망은 포켓에의 여유에까지도 기다리기에 급하여 가다간 가끔 가끔 담배값으로 책을 강요한다. 담배로 책을 바꾸게 된다는 것이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담배 역시 책과 다름 없이 내 마음을 쳐 주는 벗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들면 책이나 담배를 가릴 것이 없어 그저 어느 것이든 간 충실한 벗으로서의 역할을 다해 주었으면 그것으로 그만인 것 같아, 하루 세 갑의 담배 소비에 군색(窘塞)을 피치 못할 땐 나의 가난한 서가에는 한 금씩 한 금씩 틈이 벙으러저 나간다.

이로 미루어 볼진대 앞으로 내 생활에 있어 물질의 여유가 있게 되는 것이 아닌 한엔 서가는 서가 저대로 나날이 파리해 가고 있을 것이 빤히 내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