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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원자탄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무어라고 따집을 수 없는 허전한 마음이 나를 늘 헌책전으로 끌어낸다.

이 마음의 요구엔 아무리 친한 벗도 응할 자격이 없고, 아무리 맛나는 음식, 아무리 재미나는 오락도 인연이 멀었다. 먼지 앉고, 곰팡내 나는 그 어느 책 속에서 활자를 셈으로만이 그저 요구의 대상일 것 같아, 벗에서나, 음식에서나, 오락에서나 마찬가지로 역시 속아는 오면서도, 그래도 제일 신용이 있음직해서, 속아도 속아도 나는 이 헌책전의 유혹에만은 벗어나지 못한다.

옛날 어떤 서적광이 맨 처음으로 만든 책은 어떤 것이었을까, 있을 수도 없는 이 책이 그리워, 모든 일을 전폐하고 도서관이란 도서관은 온통 뒤락, 지구 위를 행각(行脚)하며 돌아가다가 하루는 어떤 도서관에서 몇 길이고 높이 쌓아 올린 서가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먼지를 털며 뒤적이다 그만 실수를 하여 떨어져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어느 문헌에서 보고 그 어리석음을 웃었거니와, 내가 지금 받는 유혹도 이런 어리석인 짓이 아닐까, 필시 어리석인 짓일 것 같으면서도 헌책전을 눈 담고 떠나게 되고, 길을 가다가도 헌책전이 눈에 뜨이면 아니 들어가고는 못 배긴다.

그러나 수많은 철인, 문인이 몇 세기를 두고 정력을 다하여 짜 낸 그 정수도 하나같이 내 가슴을 날카롭게 찔러 무릎을 되사리고 앉게 만들어 주지는 못했다. 결국은 현대 문화의 최고 수준이 몇 천 년 전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복이었던 것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와서 나를 한 번 놀라게 하고는 세계의 정신은 또 이것의 반복 답보이었다. 스트린드 베리의 「다마스커스에」가 그것이었고, 월포울의 「경인(鏡人)」이 그것이었다. 이러한 반복 속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찾고 나는 또 한 번 놀랐던 것이니, 이것이 내 허전한 가슴에 찔린 두 번째의 자극이었다.

그리고는 괴테, 도스토예프스키에서 그냥 답보를 하여 오던 현대의 정신은 식사나 궐한 것같이 이렇게도 마음이 늘 허전한 현대인의 가슴에다 「파우스트」나 「죄와 벌」같은 영양소 대신에 원자탄을 안겨 주는 놀라운 창작을 하였다. 이 누구의 가슴에다 자극을 주렴인가. 이 원자탄을 가슴에 안고 놀람에 앞서 대담히 한 번 껄 껄 웃은 자, 이 지구 위에 과연 있었을까.

인류를 지극히 사랑하여도 위인이라 받들고, 인류를 무참히 죽여도 영웅이라 받드는 것이 현대인의 정신임을 내 모르지 않거니와, 아무튼 「죄와 벌」이후, 이 놀라운 승리가 원자탄이라면 이건 현대인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놀라운 노력을 가슴 허전한 현대인을 위하여 부어넣어 주었던들 현대의 정신은 얼마나 살이 쪄 자라고 있을 것인가. 그랬으면 이 혜택으로 나도 한동안은 이렇게 날마다 헌책전을 뒤타지 않고도 살쪄 볼 수 있었으련만, 오늘도 나는 여전히 허전한 마음에 헌책전으로 의연히 나서야 하는 신세다.